2017년 6월 16일 금요일

지남

자석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지남철指南鐵이다. 남쪽을 가리키는 광물이라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남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남쪽을 가리킨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방위를 의미한다. 정신분석학/뇌과학에서는 지남력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는- 현재 자신의 위치/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현재>가 언제인지 안다는 것은 시간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공간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인간개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을 정말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나?) 여하간 이런 개념들을 대략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제법 철학적인 명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별 것은 아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환자에게 다음 질문을 하는 의도와 같다.

1. 환자분, 지금이 몇 년도인지 아세요?
2. 환자분, 여기 어딘지 아세요?
3. 환자분, 본인 이름 기억 나세요?

지남력을 영어로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고 한다. 입문교육식 따위를 뜻하는 오리엔테이션과 통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입문교육으로서의 오리엔테이션은 새 집단/프로젝트에서의 역할과 사회적 위치를 재학습하는 과정이므로. 오리엔테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오리엔스oriens로 보인다. 오리엔스는 동쪽, 동방, 태양이 뜨는 방향 등을 의미하며, 익히 알려진 오리엔탈oriental의 어원이기도 하다. 지남력이라는 어휘에는 남쪽이,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어휘에는 동쪽이 들어있는 셈이다. 각 어휘를 만든 문화권이 어떤 방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해볼 만한 흔적이다.

자석을 지남철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게 지남의 능력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석 자체가 지남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그것도- 지혜로운 광물이라고, 옛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광물 상태로 발견되는 자석들은 높은 온도로 가열하거나 세찬 충격을 가하면 지남력을 잃어버린다. 같은 일을 인간에게 행하면 인간도 십중팔구 지남력이나 생명을 잃는다.

지남력이 없이도 생존은 가능하므로, 지남력을 가졌다는 사유만으로 자석들을 생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석들이 살아있다 믿었던 옛 사람들에게 현대의 전자석을 보여주면 어떨지를 상상해 본다. 광물 상태로 발견되는 자석들이 인간이라면 전자석은 안드로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6월 13일 화요일

여우

고향에 개를 많이 키우는 노파가 있었다. 노파는 학교 앞에 살았다. 학교는 야산 중턱에 있었고 노파의 집도 그 근방 비탈 어디쯤이었다. 학교가 향교였을 때부터 그 근방에 살았다고 했다. 본인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따금 그 노파의 심부름을 했다. 하관이 길고 코가 높고 양쪽 눈이 서로 다른 농도로 흐려져 있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사나운 인상이었는데, 그런 얼굴로 꾸지람을 하면 더 무서울 것 같아서 거절하지 못했다. 심부름의 내용은 주로 담뱃집 할머니더러 인편으로 (물론 그것도 내 역할이다) 이런 저런 약을 보내라고 전해달라는 것이었다. 마을에 하나뿐인 잡화점을 다들 담뱃집이라고 불렀다.

노파는 눈도 나쁘고 건강도 썩 좋지 않아 담뱃집에 오가는 일이 힘에 부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 말하자면… 보름에 한번 꼴로 악을 쓰며 나를 찾는 무서운 노파가 썩 달갑지는 않았다. 노파의 집은 진흙 벽과 슬레이트 지붕으로 되어 있었고 TV와 이불이 있는 방 한 칸을 빼면 모든 공간이 뚜렷한 용도 없이 어지럽혀진 채였다. 세간도 얼마 없는 집이 그렇게 너저분했던 까닭은 물론 개가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노파의 개들은 매우 빨리 크는 편이었고 노파는 개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언제 보아도 개들은 절대로 <너무> 많아지지는 않았다. 어릴 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노파는 내가 졸업하기 전에 마을에서 사라졌다. 노파의 집에 남은 개들은 마을 노인들이 나눠가졌다.

마을에서 어떤 노인이 안 보이게 되면 모친에게 까닭을 묻곤 했다. 모친은 거의 매번 서울로 갔다더라고 대답했다. 개 키우는 노파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 분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냐고 모친이 내게 캐물었다. 노파의 마지막 심부름을 한 게 그 한달 전쯤이었다.

그날은 노파의 집이 무척 조용했다. 노파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귀가 어두운 사람은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노파는 거의 고함을 치듯 이상한 개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한 개가… 이상한 개가 있다. 이상한 개 말고는 없다.

나는 심부름을 하러 그 집에 간 것이었다. 노파는 언제나 이상했고 개들도 언제나 그랬다. 노파는 정신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젓고 담뱃집 할머니더러 한번 다녀가라고 해라, 하고 나를 내보냈다.

나오는 길에 어두운 부엌 쪽에서 한 쌍의 안광을 봤다. 노파의 개들은 늘 집 이 곳 저 곳에 아무렇게나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그리 이상하게 생각지는 않았다. 그날 담뱃집 할머니에게 노파의 소식을 제대로 전했는지 어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학교는 내가 졸업하고 삼년 뒤에 폐교되었고 노파의 집도 지금은 흉가가 되어 있다. 그 근방으로는 아무도 가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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