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8일 목요일

잠들어 있는 얼굴

연기 곁에 재가 흩뜨려져 있었다. 그 재는 다시 연기에 날리기도 해, 조금씩 넓게 원을 그리며, 마치 이 모양대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지그재그를 그린, 그러나 멀리서 보면 하나의 원을 그리는 형태가 되어가며, 점점 커져갔다. 연기는 재를 이동시킬 힘이 없다. 그러나 연기 속에 섞인 바람이라면 그것이 가능했고, 무언가가 앞으로 나아갈 때 바람을 맞닥뜨리는 것처럼, 그 바람은 제 권세가 있다는 듯이, 연기 속에 섞인 채로 재와 먼지들을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의 가장 뒤인, 바람이 시작되는 곳의 최후방에서도, 먼지와 재가 공중에 뜬 채로 곧 날아갈 것처럼, 그러나 날아가지 않는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회전 중이었다. 선풍기를 끄자 바람은 멈추었고, 재와 먼지들도 이전의 동력에서 갈아탄 채, 서서히 힘을 받지 못하고 제자리로 떨어져 갔다. 그 재들이 쌓인 곳 경계선 너머를 손가락으로 훑자, 눈에 안 보이던 먼지들이 손가락 위에 종합되어 있었다. 나는 그 경계선 근처와 선풍기가 서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줄자로 쟀고, 그 수치를 노트에 적었다. 이와 같은 방 안에서 나는 갇혀 있었기 때문에, 신경질적이었다. 그런데 이곳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명 있었고, 그는 소파 위에 누워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나도 잠들어 있을 때는 저렇게 평온한 얼굴일 것이다. 달빛이 창문 너머로 새어들고 있었다. 나는 그 달빛 중에서 무언가를 안다는 듯이, 달빛의 들어오는 직선에 손가락 한 개를 집어넣었고 바닥에는, 그것으로 제외한 부분의 빛이 없어진 모양으로, 남에게 들키지 않은 채로, 당연하게 보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피자를 집어 먹으며 나는 이게 몇 번째인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저들은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이렇게 뒤에서 봤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팔을 흔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렇게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있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관상용인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뒤에서 이렇게 웃고 있을 때는 말이다. 저들은 어쩐지 종교적인 것처럼 보인다. 지금 내가 이렇게 손가락으로 총을 만들어 겨눠보고 있을 때는 말이다. 그리고, 저들은 나보다 앞서 걸어 나가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충분히 쫓을 수도 있었으나, 나는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나와 지금 잠들어 있는 저 사람은 그들 중의 일부였다. 앞서 걷고 있던 사람들. 옥상에 있으면 헬리콥터가 내려오고 뒤에는 철거되지 않은, 아직 시공 중의 철골 구조물이 있는 반면. 그 헬리콥터에 타고 있는, 양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었다. 나는 얼마든지 그들에게 빌 수 있었다. 이런 얕은 절망이 사람을 얼마나 들뜨게 하는지, 내가 이렇게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이 건물 옥상에 있었고, 그는 내게 자기 앞으로 와서, 빌라고 말했다. 그는 장면을 뚫고 나오지 못한다. 그런데도 그 음성이 내게 전달된 것은, 소파에 잠들어 있던 사람이 내 앞으로 다가와서 빌면서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늘어놓고 있었을 때였다. 그의 후회는 각 나라들의 국기를 연결해놓은 올림픽 정신의 긴 띠로서, 이 방의 뒤에 가보면 비슷한 것이 걸려 있다. 나는 그를 데리고 나가, 옥상 위에 올라가서 그를 거칠게 꿇어앉히고, 나 또한 그렇게 앉았다. 저 멀리서 헬리콥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후회와 집착, 그리고 그 이후에 오는 피폐 등과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거기에 동일시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기 어려웠고, 뭔 참담함이냐는 듯한 무뚝뚝함으로 헬리콥터는 옥상 위에 건물처럼 떠 있었다. 곧이어 거기서 줄이 내려왔고, 우리 같은 상대를 준비할 시간과 자원, 그리고 적절한 장비 등을 갖춘 그들이, 줄을 타고 내려왔다. 여기까지 쓰고서 나는 아까 잠들었던 사람에게 보여주었다. “좀 어때?” 문밖에서는 아까 구조대원들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곧 여기는 그들의 발길을 허락하게 될 것 같다. 아까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던 사람과, 나중, 누가 누구를 납치했는가를 상의하에 정해놓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이면 거래 또한 하게 된다면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누가 납치한 것이지? 나는 그를 깨우고 물어보았고, 그도 잘 모른다고 했다. 그럼 감방에 가고 싶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감방에 가고 싶은 눈치였는데(그야 외로우니까), 사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경쟁하듯이 네모 모양으로 절단된 문의 틈으로 들어오고 있는 구조대원이 다치지 않도록 가서 붙잡아주었고, 얼떨결에, 같은 체면을 공유하는 채로 우린 서로를 납치한 게 아니며, 그보다 나쁜 사람이, 아주아주 나쁜 사람이 우리를 여기에 가둬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우리들은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어린아이들이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거기 갇히기도 하는 것처럼, 지금 잠들어 있는 네 얼굴은 참람하게도, 이 세상의 일과는 상관이 없다는 듯한, 평온한 기분으로 자고 있구나. 옥상 위에는 아직 헬리콥터가 떠 있는데도.

2022년 4월 27일 수요일

― 제132주년 세계노동절 대회 견학단 모집 ―

그 일은 가능하다


22년 5월 1일 일요일 오후 1시
서울 2호선 시청역 9번 출구 앞



행사의도

좀 갑작스럽고 한편 수상쩍겠습니다만... 곡물창고 이용자들(필자/독자/관리인)을 대상으로, 제132주년 세계노동절대회 서울대회에 어쩐지(?) 가보고는 싶은데 딱히 핑계가 없는 사람들(저 포함)을 위해 ‘드나듦이 자유롭고 홀가분한 견학단’을 비공식적으로 조직합니다.


참가자격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예비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구)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사실상 노동자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노동자의 친구
· 곡물창고 이용자 겸 노동자의 가족
· 위 해당자의 일행


예상인원

6~?명
*참가 의사 확인에 따라 업데이트됩니다.


프로그램

· 13시 시청역 9번 출구 집결(주최자 주황색 손피켓 ‘곡물창고’ 찾기)
· 대회 장소로 이동
· 전국민주노총조합총연맹 주관 22년도 세계노동절 서울대회 견학
· 자유 해산
· 18시경 눈치 봐서 마무리
*구체적인 장소와 프로그램은 현장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준비물

· 이미 먹은 점심
· 노동절에 대한 최소한의 흥미
· 길바닥에 그냥 앉아도 되는 옷, 언제든 꺼낼 수 있는 엉덩이 깔개 등 앉기 대책
· 걷기 편한 신발, 활동성 있는 복장 등 행진 대책
· 손수건, 모자 등 개인 위생 및 일광 대책
· 개인 식수, 간식 등
· (원한다면) 주장을 적은 손피켓


주의사항

· 곡물창고 관련 기획 일체 없음
· (원한다면) 간단 손피켓 제작 재료 선착순 제공
· 지하철 이용 강력 권장(일대 도로교통 마비 예상)
· 뭘 따로 하자고 하지 않음(최소화된 가이드를 원칙으로 대회의 큰 흐름에 맞춤)
· 단체 가입, 종교 권유, 여타 부담스런 개수작을 금하고 상호존중 및 배려 원칙 동의
· 주최자는 모임과 관련하여 일어난 일에 대하여 무책임/무대책(미안합니다)


참고자료

· 민주노총 대회 공지 링크

· 포스터


· 일정표

2022년 4월 19일 화요일

그 이상 같은 것

옥상에서 담배를 피운다. 여기 있으면 옆집 안테나에 앉은 새를 볼 수 있다. 이름은 모르겠다. 이름을 몰라서 새야, 라고 부르니 내 눈치를 본다. 자주 놀란다.
어제는 많은 비가 내렸다. 개방된 황동 파이프가 건물 아래로 물을 토하고 있다. 그때마다 이 일은 여름답다. 홀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조심히 다가가지 않으면 요란한 파이프가 빛나버리고 빛나는 파이프가 다해버린다.
나는 이만 실내로 들어선다. 새를 볼 수 없는 각도의 실내다. 무른 나뭇조각으로 만든 새 모형이 바닥에 놓여 있다. 습도 높은 이곳에서 약간은 축축해져 있고 그건 내 손바닥도 마찬가지. 이런 것들은 서로 껴안으려다 서먹해진다. 서먹한 것들은 수시로 서로의 손을 풀고. 그리고는 오래 멍한 새 모형이자 새를 찾지 않는 새 모형이다. 바깥에서 들리는 물소리. 어쩔 수 없이 쏟아지는 물소리가 있다.
물이 넘치면 실내는 침수되고 작은 것들은 다 떠내려간다. 사건에 대처할수록 소매가 젖겠지. 사라진 것을 보고서 사라진 것의 눈치를 본다. 이후로 조용해져 더할 나위 없을 때 여전히 남아 있는 새 모형은 이 집의 장식 그 이상이다.

장마서림

생각이 장마철의 숲속에 있다. 서가가 숲이라면 빗물은 눈길이다. 빛은 손이고 그늘은 생각이다. 중력이 밤 같다. 이런 따위 비유들. 장마는 안다. 숲은 뭔가? 숲은 쓰레기다. 장마는 냄새다. 나는 장마철의 숲속에서 자신과 숲 밖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 나가라! 여기에서 나가라! 질식 직전의 내가 지렁이처럼 내밀어지고 있다. 별처럼 쏟아진다. 바늘에 꿰인다. 한 가지도 없다. 뭔가를 읽어서 파국을 막을 수 있을까, 뭔가를 써서는 막을 수 있을까? 있다면, 읽거나 쓰는 일이 막는 일과 어떻게 관계있을까? 없다면 어떻게 없을까? 숲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듯이, 읽거나 쓰는 일도 막을 수 없다면, 숲이 없어지는 것도 막을 수 없을까? 막는다는 것도 생긴다는 것과 같이, 생각만으로는 없어서, 그것은 물러설수록 오가는 것이고 다가갈수록 오가는 것인가? 오가지 않으면 없다는 뜻인가? 숲을 위해 장마가 있는 것이 아니고 장마를 위해 숲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들이 여기서 서로를 위하는 듯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래서 서로를 위한다고 할 수 있다면 어떻게? 결코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장마도 여름도 없는 곳에선? 때에선? 마른 발이 장화 속에 담겨 있다. 그것이 바닥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바닥이 숲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2022년 4월 11일 월요일

챔피언출판사

오늘 사원에서 과장으로 진급했다. 3계단 특진이지만 3계단 임금 상승은 없었다. 그보단 이제부터 업무 평가를 해서 임금에 반영하겠다고 한다. 이 무슨... 그게 그렇게 됐다고, 비몽사몽 커피를 타다가 정수기에 붙은 A4 공지에서 읽었다. 그렇게 나는 이전까지의 두 대리님, 두 주임님, 다른 한 사원님과 함께 과장님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지난 6년간 차장은 나를 ○○ 씨라고 불렀는데, 오늘부터는 소름이 끼치는 ○과장님이다. 같은 성씨인 다른 두 명의 ○과장님이 동시에 돌아본다. 그들이 불릴 때 나도 돌아본다. 총원 11의 이 사무실에 이제 8명의 과장님이 앉아있다.

이곳은 이른바 편집 대행사다. 주로 전공서적의 디자인, 조판, 교정을 대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일은 무슨 해외 미디어? 그룹?의 한국? 지부? 출판사?로부터 넘겨받고, 저자 또는 역자들은 모두 어딘가의 교수들이다. 나는 이곳에서 교정공이다.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앉아 하염없이 교정만 본다. 누구를 만날 일도 없고 통화할 일도 없으며, 동료들과 이야기할 일조차 거의 없다. 명함도 직함도 당연히 없었고, 필요도 없다. 나의 일이 변할 일도 없다. 업무 평가? 대체 무슨 놈의... 그런데도 이렇게 얼렁뚱땅 팔과장 중 최약체...가 된 것은 사장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한 명씩 면담을 진행한 결과다. 들은바 거기서 저자들이나 원청에 ‘무시’당하지 않게 직급이라도 높여달라는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다. 소규모·하청 업체에서 갑을관계 때문에 겪는 고충을 두고 사원들의 직급을 뻥튀기하는 것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일단 역겹고 환멸이 나는 일이다. 처음 다녔던 곳도 이런 식이었다. 거기선 6개월 만에 대리 명함을 줬다. 그때도 명함 따윈 하등 필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사장, 그러니까 나의 1대 사장은 때에 따라 세 가지 직함으로 불러야 했다. 실장님 대표님 사장님... 2대 때는 어땠느냐면... 아니다. 이게 다 무슨 지랄인가? 책 한 권을 두고 도대체 몇 명이 각자의 책임을 서로의 직함을 향해 썩은 것 다루듯 떠넘기고 있는지, 한번 세어본 적이 있다. 막무가내 일정이 나오면 프리랜서들을 구하기도 하고, 자기가 맡은 부분을 누군가들에게 찢어서 맡겨버리는 교수들도 있기 때문에, 최대로 싸그리 모으면 제법 규모 있는 토너먼트도 열 수 있을 것이다. 왜 하필 토너먼트 생각이 났는지.

가끔 하는 생각. 그럴 수만 있다면, 몽둥이를 들고 쫓아가서, 차가운 주차장에 대가리 박게 하고 앉았다일어나 시키고, 찢어진 우산을 쥐여쥐면서 폭우 쏟아지는 한강변을 타이어 끌며 달리게 만들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어쩌면 ‘직급을 높인다’고 하는 방향은 맞는데, 단지 충분히 높지 않다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충분히’ 높인다면? 일테면, 나를 대표로 진급시킨다면? 그게 답이라면? 찢어진 우산 들고 어쩌고 하는 일을 지금처럼 내가 하든가 아니면 남이 하든가 꼭 그래야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대표라면? 내가 대표가 된다면? 만약 열여섯 명의 대표들이 이 책을 만든다면? 대표 대 대표로 할 이야기들이 있다. 대표보다 높을 순 없나? 어차피 모든 것이 그대로라면, 챔피언 같은 걸로 부르면 안 되나? 챔피언 대 챔피언으로 할 이야기들이 있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쓰레기 같은 원고를 들여다보며 챔피언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고 있다.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2022년 4월 6일 수요일

그레고리의 업무

우선순위가 위에 있는 문화재들을 관리하는 그레고리는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말을 하지 않게 됐다. 그는 따사로운 햇살을 맞으며 접이식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저기 저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은 하나의 무리가 오밀조밀 움직이는 것이 눈에 보인다. 아주 조용한 광경이다. 말이 없다.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일까. 새끼 거미들이 흩어지는 것처럼 그 광경은 순식간에 파했다. 마치 다른 게 생각났다는 양 그레고리는 바닷가에 향하고 있던 시선을 돌렸다. 물론 그레고리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 사람이다. 그레고리는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그레고리의 손을 붙잡아왔다. 위에 있는 것을 끌어내리듯이 그레고리는 그 손을 이쪽으로 당겼다. 그러나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상대는 쉽게 끌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레고리를 저쪽으로 끄는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레고리도 이 상대를 힘으로 어찌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 사람은 문화재였다. 그레고리가 관리하는 수많은 것들 중에 하나. 마찬가지로 그레고리처럼 말이 없게 된 그런 것들 중에 하나. 문화재는 현실을 침식하는 경향을 가진다. 수성에서 온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든 것은 그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아까 보고 있었던 바닷가의 광경도 사실은 문화재가 벌인 사상의 침식이었다. 이렇게 위험한 일을 그레고리가 맡게 된 이유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또한 그레고리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자문 역으로 인형사의 사무실에 찾아가곤 한다. 그레고리가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그 인형사가 오래되었으며 새로운 계약을 그레고리의 마력적 저변에 작성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레고리도 거기에 동의한 일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지금 갖고 있는 문화재의 양만으로도 그레고리는 침식될 우려가 있었으니까. 아무리 마법 적성이 그쪽으로 의도적 편향된 그레고리라 하더라도 이같은 양을 한 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것은 힘들었다. 인형사는 며칠 전 죽었다. 그리고 만들어둔 인형의 몸으로 다시 활동했다. 인형사의 시각으로는 이미 살아 있다는 것은 ‘활동의 재개’를 뜻했다. 그것은 ‘마모되어 감’일지도 몰랐으나, 어쨌든 간 인형사의 성격은 밝고 명랑한 편이었다. 인형사의 조수가 커피를 타와 그레고리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그레고리에게 커피 잔을 내밀었다. 그레고리는 아까 침식될 우려가 있었던 바닷가의 사상을 이쪽으로 하며 잔을 받고 커피를 마셨다. 조수는 거기에서 마력적 반응을 느낀 듯 잠시 말이 없었다. 불황이 된 이 나라의 경제 상황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러한 대단위 기류는 실제로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이 되거나 하며 조금 웃긴 이야기지만 비가 자주 오게 했다. 비가 온다는 것은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기쁘거나 행복해진다는 것을 뜻했다. 이것은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무언가를 끌어당겨 쓴다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었다(그레고리의 계약 또한).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기쁘거나 행복해진 이유를 찾아내 손에 쥐고 있었는데, 이러한 합리화 마법이 결국 문화재들의 침식을 보다 안정적으로 만드는 보호되는 필드의 생성과 이어지는 일이란 사실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조건 위에서는 전보다 많은 살인 사건과 범죄 행위가 일어나곤 했다. 그러나 내 주관을 말하자면, 인간의 불법적 행동을 점화시킨 것이 그러한 조건이라 하더라도, ‘원흉’이라는 것이 거기에 있다고는 말하기가 어렵다. 이 점 그레고리의 말에 내가 영향받은 것이다. 나는 여러 효과적인 방법들을 구상했지만 그것으로 그레고리의 사상에 개입할 명분은 찾기 어려웠다. 나는 이 사무실에서 ‘작가’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그러한 문화재들의 침식이 본질적으로 비가 내리는 데 이어지며 그 아래에서 사람들이 과도하게 기쁘거나 행복해지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에 회의의 입장을 표하는 쪽이었다. 물론 그들의 경험적인 결과를 의심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이러한 관측이 다시 보호되는 필드를 만들어내 문화재로부터의 사상의 개변에 더욱 매끄러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면 어떨까. 조수가 보기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러한 이도 저도 아닌 입장에 서게 되었다. ‘그것을 믿지만 믿지 않는다.’ 정도의 그러한 입장. 이 점 모순이라고 달리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세계 선이 필요했고, 나는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는 농담에는 아무런 재능이 없었기에 지금 내놓는 ‘화성’에 대한 의문을 말하는 이 자리가 코믹하게 흘러가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쉽게 말하면 내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침식이 있으면 그 반대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잠정적으로 ‘안으로 말려 들어 감’이라고 표현했는데, 내 말을 듣고 있었던 인형사가 탄식이 섞인 숨소리를 내뱉었다. 자기가 이미 그건 원리를 알고 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이어진 대화는 기초적인 인형사의 마법 이론에 대한 강연과 실행 계획에 대한 시간이 되었고,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걸 들었다. 인형사가 말하는 도중에 제안된 핵심적인 계획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1. 원흉은 없으나, 그 원흉이 살고 있는 맨션은 있을 수 있음. 2. 그 맨션을 마법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은 원하는 결과에 닿기 어려움. 3. 여기에서 ‘肅’이라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공간을 압착하는 것으로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원리의 공간의 좌표를 지정하는 것에 가까움. 4. 그 ‘肅’이라는 기능을 지닌 문화재를 이쪽에서 만들어낼 수 있음. 5. 검사에게 그 검을 쥐여주고 들여보내(맨션에) 이 이야기에 말려 들어 간 근거로 보호되는 필드를 베게 할 것(이 과정에서 사무실에 있는 조수가 구체적인 지시를 맡을 것). 6. 여분의 몸은 이미 여러 벌로 준비되어 있음. 검사는 살아서 돌아올 것.

2022년 4월 5일 화요일

모자 같은 고양이

만우절 장난 같은 고양이가 내 앞에 앉아 있다. 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하수구 구멍이 보인다. 난 길 위에서 그런 고양이를 쳐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 고양이는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그런데 고양이는 머리에 모자를 얹고 있었다. 나 또한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눈을 뜨고 앞을 보고 있다. 저 고양이는 낮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내 머리 위의 고양이와 아까부터 내가 쳐다보고 있었던 고양이는 생김새가 비슷하다. 어쩌면 형제일 수도 있다. 나는 생김새가 정말로 비슷한지 확인해 보려고 모자를 벗어 잠시 바라봤다. 그런데 내 손에 들린 것은 모자였지 고양이가 아니었다. 순간 나는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고양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아까 전과 같은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고양이는 할로윈 분장 같은 모자가 아니었다. 내가 다시 모자를 쓰자 그 모자는 다시 고양이가 되었다.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하수구 구멍 속(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에서 악어 인형이 걸어 나왔다. 진짜 악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악어 인형은 자기가 진짜라는 듯이 귀여운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왜냐하면 그 악어가 한심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머리 위에 고양이를 얹고 있는 나도 저 악어에게 한심하게 보였을 수 있다. 그래서 하수구 구멍(악어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에서 걸어 나온 것이다. 저 악어 봉제 인형에는 태엽도 안 달려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누가 감아주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는 태엽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저 악어는 어떻게 움직이는 것일까? 나는 누군가의 다마고치 안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이동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렇다면 내 도착지는 다른 누군가의 다마고치 안인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어떤 사람과 어떤 사람이 각자의 다마고치를 맞대고 전송하는 순간인지도 몰랐다. 저 악어 인형은 그 순간을 알려주는 전송의 요정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잠시 철학적인 생각은 여기에서 접어두기로 하자. 그 요정 같은 악어가 뚜벅뚜벅 걸어가 내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고양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으니 말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악어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저 인간을 좀 봐. 모자 위에 머리를 얹고 있어. 아니, 이게 아닌가? 머리 위에 고양이를 얹고 있어. 뭔가 한심하군. 네가 보기엔 어때?” 고양이가 먀, 하고 울었다. 아쉽게도 고양이의 말까진 알아들을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나는 내 느낌상 고양이가 “그러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고양이들은 동의의 천재니까 말이다. 순간 아까 먹은 커피의 카페인이 내 혈관 속에 돌고 있는 듯하여 나는 잠시 휘청, 했다. 그리고 뒤에서 날 붙잡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친절한 이는 거대 고양이, 캣트시였다.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거대 고양이는 날 이상하게 바라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고양이는 할로윈 분장처럼 팔짱을 끼고 나를 이렇게저렇게 쳐다봤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그 거대한 고양이를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니. 굉장히 특이한 인간이로군요. 저 고양이의 스핀은 저 위치에 고정되어 있어 살아 있지만 이 세계의 그늘에 가리어진 상태예요.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봤으니까요.” 거대 고양이 할로윈 분장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부터 살아 있는 고양이의 촉감이 내 머리 위에서 느껴졌다. 나는 저 거대 고양이에게 감사해야 할까? 내가 잠시 고민하고 있자 아까 전의 악어 인형이 뚜벅뚜벅 걸어와 캣트시에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안녕. 용무가 뭐니?” “그냥요.” “그냥?” “왠지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나는 그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저 인간이요.” “응?” “그런데…” “응.” “좀 한심한 것 같지 않아요?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다니까요!” 캣트시는 미니 선풍기의 전원을 켜고 이쪽을 흘깃, 쳐다보았다. 그리고 악어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구나. 좀 한심한걸.” 순간 나는 내가 아까부터 보고 있었던 저 고양이도 다시 먀, 하고 우는 것에 후회가 됐다. 나는 집에서 거울을 쳐다보며(아침에)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는 것이 어울려 보이도록 점검했다. 그런데 저 고양이와, 악어와, 거대 고양이는 내 머리 위에 얹힌 고양이엔 문제가 없으나, 내 쪽엔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저기요.” 나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이렇게 된 것도 인연으로 나는 그 사람과 카페에 같이 들어가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본론을 말했다. “혹시 제가 고양이를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것이 한심해 보이나요?”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네? 머리 위에 고양이가 있어요? 없는데요?” 저 앞에서 악어가 다시 하수구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만우절 장난은 아니죠? 지금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럼요. 벌써 지났잖아요. 저는 머리카락만 보여요.” 분명 나는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쳐다보니 그런 것이 없었고 고양이가 손으로 누른 듯한 자국만이 보였다.

2022년 4월 1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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