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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15일 월요일

반딧불

반딧불 하나가 어둠 속에 있다. 그 반딧불은 드넓게 펼쳐진 밤의 수해를 가로지르며 앞으로 이동한다. 한 사람이 천천히 앞으로 걷는 것과 같은 속도이다. 그 반딧불은 거대한 나무의 나뭇가지들 사이로 안착한다. 그 반딧불을 따라가던 나는 그 반딧불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십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난다. 그 반딧불이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라 앞으로, 저 앞으로 간다. 자연스럽게 나는 그 반딧불의 뒤를 따라가지만 그 반딧불이 내가 십 분 전에 따라가던 반딧불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내가 왼쪽 손을 펴고 위로 올린 자세로 걷자 이내 내가 쫓던 반딧불이 내 왼쪽 손 위로 올라온다. 그 반딧불은 너무 작고 미세해서 손에 올린 감촉이 없다.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지만 크게 빛나는 것은 아니고, 조금의 열기도 없다. 반딧불은 왜 빛나는 걸까. 나는 반딧불이 올려져 있는 나의 왼손 끝을 조금만 움켜쥐었다가 편다. 반딧불이 다시 저 앞으로 날아간다. 이번에도 나는 저 앞으로 이동하는 반딧불이 지금까지 내가 쫓던 반딧불인지 확신할 수 없다. 곧 숲과 나무들의 수해가 끝나고, 인적이 드문 교외에서 다시 주거 건물이 늘어서 있는 주택가로 이동한다. 내가 쫓던 반딧불은 불 켜져 있는 가로등들의 불빛의 세기에 밀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꼭 그 반딧불들 중의 하나인 것처럼, 그들의 일부로서 되려는 것처럼 날벌레들이 가로등 안으로 솟구치고 있다. 나는 그러한 장면을 간직한 한 가로등 밑에 서 있다. 지금은 밤이고, 이 가로등이 켜져 있는 시간은 새벽까지다. 새벽이 지나면 모든 가로등은 꺼지고, 하늘에는 빛나는 태양의 구가 떠오르게 된다.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반딧불의 뒤를 따라갈 수 없다. 내가 지금까지 반딧불의 뒤를 따라갔던 것은 단순히 반딧불이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숲의 밖에서 그 빛에 이끌려 그 숲을 모두 지나왔고, 이제는 불 켜진 가로등들 사이에서 그 반딧불이 어디에 있는지 분간할 수 없어 쫓는 일을 그만두고, 단순히 서 있는 중이다. 단순하다. 가만히 서 있는 일은 단순하다. 내가 반딧불의 뒤를 쫓았던 것은 그 반딧불이 앞으로 이동하는 도중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한 사람이 천천히 걷는 속도라고 하더라도 공중에서 움직이는 존재의 뒤를 쫓는 일은 지상의 장애물들에 이따금씩 가로막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 내가 서 있던 가로등의 불빛 안에서 아주 미약한 불빛 하나가 분리되어 튀어나온다. 나는 그 불빛이 반딧불인지, 작은 먼지 조각인지, 아니면 내가 반딧불을 쫓던 이 한 밤의 여정이었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앞으로 걷는다.

2021년 3월 12일 금요일

황야 풍경

크로키 노트에 황야가 그려져 있다. 가령 난을 그리는 것은 황야를 그리는 것과는 다르다. 난을 그리는 것은 동양의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이들이 하는 일이다. 그것도 옛날에 그랬다. 지금 크로키 노트에 그려져 있는 황야의 풍경은 우선 좌우로 비쩍 마른 나무 두 그루가 있고, 그 사이에 적막한 황야가 그려져 있다. 내가 그린 것은 아니고,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그려 놓은 것이다. 크로키 노트의 총 페이지 수는 80 정도이며, 반 정도가 누군가가 그린 황야의 그림들로 채워져 있다. 그 그림들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 황야를 그린 것이다. 나는 이 노트를 구석진 골목의 책방에서 샀다. 내가 치른 값은 5천 원이었다. 책방에는 구제 옷을 입은 노인이 카운터에 서 있었다. 내가 그 크로키 노트를 골라 값을 치르려고 할 때 노인이 말했다. “그걸 사시오?” “네.” 하고 나는 말했다. “그건 거의 한 개인의 기록인데... 마치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일기장과 같지. 내가 그것을 거기에 놓아둔 건.” 하고 노인은 그 노트가 놓여 있던 책장 쪽으로 눈짓을 했다. “누군가 필요한 이가 있을 것 같아서였소.” 하고 그 노인은 말했다. “네.” 하고 나는 답했다. “그것은 황야들이 그려져 있는 노트인데, 그것이 필요하시오?”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쩐지 마음에 듭니다.” “그렇다면 가져가세요.” 노인과 그런 대화를 나눈 후에 그 노트를 가져왔던 것이다.

나는 노트의 비어 있는 부분에 하루에 하나씩 난 그림을 그렸다. 난을 친다, 고도 한다. 내가 난을 그렸던 것은 별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그 황야의 풍경들이 가득 그려져 있는 노트에다 나 자신의 어떤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나는 난을 잘 그릴 줄 몰랐으나, 내가 갖고 있는 어느 음악가의 앨범 표지에 바로 그러한 난들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앨범을 옆에다 두고 조심스럽게 난을 따라 그렸다. 난을 그리고 있으려니까 동양의 고귀한 신분을 가진 이가 된 것 같기도 했고, 별생각이 없기도 했다. 가끔씩 나는 그 크로키 노트의 첫 장부터 전체의 반절이 되는 부분까지 그려져 있는 황야의 풍경들을 넘겨봤다. 이것은 어떤 이의 비밀스러운 기록, 보다는 마치 심부름할 것을 적어 놓은 메모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래서 넘겨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왜 노트에다가 황야의 풍경들을 그렇게 계속해서 그려다 놓은 것일까? 내가 노트 너머로 보는 그 황야의 풍경들은 정말로 황야의 풍경인 것처럼 그것들을 닮고 또한 근접해 있었다. 왜 나는 이 노트를 골랐으며 5천 원이라는 값을 치르고 사기까지 한 걸까? 나는 눈을 감았다.

2021년 3월 8일 월요일

포도나무

그것은 썩고 있다. 그것은 내 생각 속의 밭에 있다. 그것은 썩어서 거름이 된다. 그것은 거름이 되어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그것은 다 큰 과일나무의 밑에 있다. 그것은 모여 있지 않고 드넓게 헤쳐져 있다. 한 사람이 다가와 그것을 삽으로 옮긴다. 그것의 생김새는 흙과 유사하지만 흙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삽으로 파낼 수 있다. 그것이 말한다. “나는 썩고 있었어. 저 밑에서, 저 밑에서. 이제는 어떤 사람이 삽으로 나를 파내는군. 파내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작정이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파고 있는 사람이 말한다. “난 널 파내어서 다른 곳으로 옮길 거야. 넌 내 생각을 아는군.” 그것은 흙과 유사하지만 말을 할 줄 알고 생각도 한다. 내 생각 속의 다 큰 과일나무 아래에서 그것은 말한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숨을 내뱉는다. 그것이 내뱉는 숨은 다시 거름이 되어 식물의 생장을 돕는다. 작은 새끼 멧돼지 하나가 다가와 그것 위에 있는 작은 풀을 뜯는다. “먹지 마!” 그것이 말한다. “그거 내가 키운 거야.” 그것이 소리친다. 소리치다가 두 발로 선다. 그것의 몸체가 일어나 멧돼지를 쫓는다. 멧돼지가 도망간다.

그리고 잠시 후. 내 생각 속의 밭에 있는 다 큰 과일나무에서 과일 하나가 떨어진다. 그것은 포도이다. 다 큰 과일나무는 포도나무이다. 그것은 포도를 먹는다. 포도를 한 알 먹을 때마다 그것은 씨를 뱉는다. 그것은 씨를 먹지 않는다. 사람들 중에서도 포도의 씨를 먹는 사람과 먹지 않는 사람으로 나뉘는 것처럼. 그것은 흙과 유사하지만 말과 생각을 할 줄 알고 사람처럼 포도를 먹을 때마다 씨를 토해낸다. 그것이 내뱉는 씨는 땅에서 자라나 다시 포도나무 묘목이 되고 다 큰 나무로 생장한다. 그것은 농부인가? 그것과 사람들, 농부들은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썩고 있다. 그것은 내 생각 속의 밭에 있고 썩어서 거름이 된다. 그것은 두 발로 일어설 줄 알고, 멧돼지를 쫓는다. 자신이 먹여 키운 식물을 지키기 위해. “먹지 마!” 그것이 말한다. 그것이 키운 식물을 망치는 것은 그것이 싫어하는 일이다. 마치 농부들처럼.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지키려는 것을 두 발로 일어서면서까지 지킬 줄 안다. 마치 사람들처럼. 그리고 그것은 삽으로 파내어서 조금씩 옮길 수 있다. 마치 흙처럼. 그것이 말한다. “귀찮아! 날 옮기지 마.” 귀찮아하는 그것은 농부들과, 사람들과, 흙과는 다르다. 그것은 다 큰 과일나무의 아래에 있다.

2021년 3월 1일 월요일

조경

“조경이 뭐죠?” “풀 잘라서 모양 내는 거요.” 나는 조경사에게 그렇게 물었고 조경사가 내 물음에 대답했다. 우리는 정원에 있었고, 조경사가 풀들을 매만지며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정원 벤치로 고용인이 쟁반에 다과를 들고 다가왔다. 나는 조경사를 부른 다음 다과를 권했다. 조경사가 나에게 말했다. “어떠신가요, 이 정원의 조경은.” “아름답군요.” 이렇게 말하면 끝인 것 같다. “풀은 왜 자르는 거죠?” 나는 조경사에게 물어보았다. “자라는 대로 멋대로 내버려 두면 관리가 안 된 것처럼 보이니까요.” 관리...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조경사는 부업으로 저택의 일을 돕기도 한다. 우리는 저택에서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내가 조경에 관해 갖고 있는 지식은 조금 추상적인 것이었다. “저번에는 들짐승이 나타나서 잔디를 먹어 치웠어요.” “그래서요?" “쫓았죠.” 저번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모양이다. 벨벳 나무 앞에 있는 벤치에 우리는 앉아 있었다. 나는 이 저택의 주인이었지만 저택에 갇혀 있기에는 갑갑했다. 나는 자주 정원으로 나와 쉬곤 했다.

내 친구 중에는 탐정이 있었는데, 그는 마침 이 저택의 식객으로 와 있었다. 나는 그를 불러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 친구의 이름은 릭이었다. “릭 씨. 차는 입에 맞으십니까?” “네, 맞아요.” 하고 그가 말했다.” “이 벨벳 나무 앞에 아침이면 담배꽁초들이 버려져 있곤 해요. 딱히 나올 사람이 없는데, 누가 버린 걸까요?” 하고 고용인이 탐정에게 물었다. “그건 내가 버린 거예요.” 내가 말했다. “탐정이 추리를 하길 기대했던 것 같은데, 안타깝게 되었군요.” 하고 조경사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정원에서는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농담 같은 흐름 속에 자신을 내맡겨 갔다. 조경사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다음으로는 탐정이, 그리고 다음으로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저택으로 들어갔다. 고용인은 뭘 하는지 먼저 저택으로 들어가 있었다.

2021년 2월 28일 일요일

릭과 배반

소녀는 수업을 듣고 집에 가고 있었다. 소녀는 박물관 앞에서 잠시 거기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소녀의 곁으로 닷지 자동차가 다가왔다. 닷지 자동차에 타고 있던 릭이 말했다. “타.” 릭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여인이 그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에게는 릭을 위로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박물관 안에 있는 조형물들이 대신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들은 여기에 있어요. 일단 타요.” 소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릭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닷지 자동차 안으로 몸을 굽히고 들어갔다. 닷지 자동차 안은 넓었다. 소녀는 두 발을 좌석 앞으로 누이고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 릭의 눈물이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릭은 운전을 하고, 소녀는 릭이 앉아 있는 운전석을 잠시 바라보았다. 닷지 자동차는 시내를 향해 가고 있었다. 릭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반당했고, 소녀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릭에게는 한쪽 손가락이 없었다. 험한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되었다. 한쪽 손가락만 없으면 다행이었다. 릭은 수다쟁이처럼 말이 많았다. 릭이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소녀는 왜 닷지 자동차에 탔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박물관에 있는 조각 조형물들이 입을 열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조형물들에게 눈길이 끌렸다. 그래서 잠시 그들의 말에 감화되었다. 차내 온도가 꽤 높아서 소녀는 후드 집업을 벗고 안에 입은 크롭티 차림이 되었다. 릭은 한참이나 말을 하다가 잠시 말이 없었다. 소녀는 릭 쪽으로 왼쪽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손가락 비행기를 만들어서 그것이 떠 다니고 있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것은 소녀가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제스처와 연속성을 가진 것처럼 소녀가 릭에게 물었다. “넌 어째서 앞으로 가고 있지?” 다소 생소한 질문임에도 반문할 필요가 없다는 듯 릭이 입을 열었다. “배반당했으니까.” 소녀가 박물관에 대해 말했다. “아까 내가 보고 있던 거기에서는 조각상이 살아 있는 것처럼 있었어. 그것들이 대신해서 네 맘을 말하는 것 같더라.” 릭이 대답했다. “뭐라고 했는데?” “일단 타라고. 닷지 자동차를 타래.” “그렇군.” “넌 앞으로만 가지. 내가 이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너는 너의 성질이나 행동을 변질시킬 수는 없을 거야.” “웃기네, 정말.” 소녀는 릭과 친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녀는 릭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릭이 운전하는 닷지 자동차를 탄 것은 소녀와 릭이 거리에서 만나도 인사 한 번만 하고 지나갈 만큼 거리가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이 거리꼈다. 그럴 때 자주 쓰이는 관용구처럼 소녀가 말했다. “어째서 넌 배반당했지?” “몰라. 너무 그랬나봐.” 소녀는 다시 비행기 제스처를 하며 부연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너무 그랬다는 거지. 너무 사랑했던 거지.” “사랑이 뭔데?” 릭은 잠시 말이 없었다. 릭은 사랑을 모르는 것 같았다. 적어도 소녀가 보기엔 그랬다. 아까 전부터 에어컨을 틀어 차내의 온도가 내려가 있었다. 소녀는 올려 두었던 발을 접고 벗어두었던 후드 집업을 다시 입었다. 소녀는 후드 모자를 썼다. “이제 내릴 시간이야. 다른 박물관 앞에 내려줘.” 릭이 말했다. “박물관엘 왜 가는데?” 글쎄, 하고 말하고선 소녀는 닷지 자동차 밖으로 내렸다. 소녀가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단순히 그렇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생활에는 단조로움이랄 게 있었다. “이걸 두고 내릴 뻔했군.” 릭이 그렇게 말하며 아까 전까지 소녀가 하고 있던 비행기 제스처를 따라했다. 소녀가 쿡쿡 웃었다. “그래서, 잠시간의 자동차 여행은 어땠죠?” “네.” 소녀는 비행기를 만들어 날렸고, 그것을 따라가는 척하면서 릭의 얼굴 앞에 당도했다가 조수석 밖으로 내렸다. 릭이 손 인사를 했다. 릭은 소녀의 박물관 친구였다. 잠시 동안 박물관을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닷지 자동차를 운전해 곁으로 오는 사람. 소녀는 나중에 돈을 모으면 닷지 자동차를 살까, 생각하다가 제 자리에 엎어지는 시늉을 했다. 그녀가 보기에 닷지 자동차는 쓸데없이 비쌌다. 그녀가 내린 곳의 박물관에도 여러 가지 종류들의 조형물들이 있었다. 그 조형물들을 보고 있으면서 소녀는 ‘천사’라고 하는 것들을 상기했다. 왠지 그것들은 천사를 닮아 있었고 스스로 말을 할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그들의 조언을 따랐는데, 오늘 닷지 자동차를 탔던 것도 그들의 조언에 의해서였다. 박물관에 있는 천사들. 소녀는 그런 말을 떠올리곤 왠지 즐거워서 웃었다. 그리고 오늘부로 자신이 몇 살이나 되었는지, 하는 것을 생각했다. 닷지 자동차에는 다른 닷지 자동차들이 없는 것처럼, 박물관에 있는 조형물들은 천사들이다. 



2021년 2월 25일 목요일

가장 중요한 것

과장을 잘하던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받은 고통을 과장해서 희화화하는 광대였고, 실제로 고통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몸의 한 군데를 못 쓰는 병자이기도 했고, 단순히 그냥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 그래서 아무리 과장을 하더라도 과장이 아니게 된, 가련한 여인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죽어서 슬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거기에 깃들게 된, 그 사람은 나의 유년 시절의 엄마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이 죽어서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병원에 가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었고, 치료를 거부한 채 자택으로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작용했을까요. 그 이유를 난 잘 알 수가 없지만 죽음이 가까워져 오면서 그가 느꼈을 고통이 짐작이 됩니다. 난 묘를 관리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인지 타인의 많은 죽음들을 겪었습니다. 그중에서 슬프지 않은 죽음이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누군가가 죽었거나 죽는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기 바빴죠. 나는 그러한 죽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슬픈 날에 나는 또 한 가지 슬픈 일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내 기억입니다. 학창 시절, 나를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어느 날, 슬픔을 겪게 됩니다. 그것은 그분을 가르쳐 주셨던 은사님의 죽음입니다. 그 죽음은 은사님의 은사님을 죽음으로 인도했으며, 꼭 지금의 저처럼 그 은사님을 잠시간의 슬픔으로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그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잠시 말이 없던 그 순간을 기억합니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고통스럽고 또한 슬픕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이 우위인가 하면, 슬픔의 쪽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 또한 쉽게 지워 없애지는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고통 또한 나의 소중한 감정이니까요. 과장을 잘하던 나의 엄마는 그런 분이셨습니다. 자기가 받는 고통을 다른 것으로 비유하지 말라던 분. 그런 솔직함이 오늘은 떠올라서 더 괴롭습니다.

얼마 전 그런 이의 죽음을 알게 되었고, 나는 그 이후로 슬픔 속에 빠져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생각이 났던 건, ‘나는 그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였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리고 다음으로 생각이 들었던 건, 그분이 한 인간의 엄마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자식과의 거리가 그리 가깝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그와 나 사이의 거리를 애써 먼 것으로 조장해야만 했습니다. 사실대로라면, 죽기 전에도 그분은 이지를 약간 상실한 분이었으니까요. 나는 그 생각으로 내가 느끼는 그의 죽음에 대한 고통과 슬픔, 분노 등을 덜었습니다. 얼마 전 나는 그의 죽음을 접하고, 울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제 이야기는 여기서 끝입니다. 네, 곧 단막극이 시작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이름의 단막극이요.


*니콜라이 예브레이노프, <가장 중요한 것>

2021년 2월 22일 월요일

초대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있다. 여행지가 보내오는 풍경들 속에서 나는 일종의 권태에 젖어 있었다. 이럴 거면 왜 집을 나왔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지에 온 이유는 누가 나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곧 그 사람이 나와서 나를 반길 것이다. 그럼 나는 그 사람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할 터였다.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가 내 맘에 별로 안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그 사람의 초대에 응한 이유는 지금 생각해보면 사소한 이유 때문이었다. 저번에 그 사람이 주전자 하나를 선물로 줬는데 나는 그 주전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 사람이 초대한 장소는 우리 집에 있는 주전자보다 지루하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곧 그 사람이 나왔고 그 사람은 미안하다는 사과부터 했다. 더 일찍 나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솔직히 말했다. 당신이 초대한 이 장소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 사람은 미소를 입가에 짓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네, 그랬습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군요. 기왕에 초대해주신 장소인데. 나는 우리 집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아요.

나는 그 사람에게 굳이 나를 이곳에 초대한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이곳은... 제가 좋아하는 장소거든요. 나는 그때 당신이 내게 선물로 준 주전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당신이 이제 나를 초대한다면 그 초대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를 보며 또 웃더니 어떤 방향을 가리켰다.

기왕에 오신 김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를 보여드리고 싶군요. 하더니 그 사람은 산길을 올랐다. 나는 잠자코, 궁시렁거리며, 그 사람의 뒤를 따랐다. 올라가는 동안 나는 그 사람이 내게 준 주전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멈춰서 내 쪽을 뒤돌아봤다. 이곳은 제가 좋아하는 장소입니다. 아, 그래요. 여기에선 뭘 할 수 있죠? 그 사람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제가 좋아하는 약수터가 있습니다.

나는 내려가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약수터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에 가고 싶었다.

그 사람은 이쪽으로 와서 나를 붙잡았다. 이것이 여행지에 와서 일어난 그와 나 사이의 일이었다. 아마도 그는 이 장소를 정말로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았지만. 인사를 하고 고속버스 위에 타는 나를 보며 그 사람이 말했다. 언젠가 그 주전자 같은 선물을 또 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네, 그래요 하고 나는 답했다.

2021년 2월 18일 목요일

편지

발몽 자작이 내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다. 메데이아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순간 나는 당황하게 되어 여러 감정이 들었다. 우선은, 항상 메데이아 부인이 보내는 편지를 받던 입장인 발몽 자작이 무슨 연유로 갑자기 메데이아 부인에게 편지를 쓸 마음이 들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발몽 자작은 무표정한 채로 자신이 죽는다면 메데이아 부인에게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했다.

메데이아 부인은 편지를 완벽하게 봉하지 않곤 했다. 그래서 전달하는 동안에 편지를 열어볼 수 있었다. 나는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발몽 자작에게 전해주는 일을 맡고 있었다. 편지를 열어본 적은 지금껏 한 번 있었다. 내가 그것을 보고 확인한 감상은 바깥의 평가에 비해 그녀의 말투가 순진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에 하나씩의 일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메데이아 부인의 저택의 집사였다. 그런 내게 발몽 자작은 부탁을 한 것이다. 지금껏 받기만 했던 편지의 최초의 답장을. 그 부탁을 받고 나는 온종일 고민했다. 메데이아 부인은 사교계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 성격의 어떤 부분이 편지를 전달하는 일에 적합했기에 나를 적임자로 삼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가 한번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혹시 다음번부터 발몽 자작에게 보내는 편지를 대신 써줄 수는 없겠냐고. 나는 메데이아 부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나와는 다른 쪽의 성별로 사교계의 유명인인 그녀의 말투를 모방해 한 남자에게 변치 않을 관계를 약속하는, 그런 편지를 쓰기에 나는 부담스러우며, 나는 멍청하고, 약간의 두려움이 느껴진다고. 이미 발몽 자작에게 부탁을 받은 입장인 나로서는 상황에 맞는 말이 그런 것뿐이 없었다.

메데이아 부인이 떠났다. 나는 그녀를 대신해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발몽 자작에게 전해주러 가고, 발몽 자작의 부탁으로 내가 그를 대신해 쓴 편지를 다시 메데이아 부인의 저택으로 송달해 가고, 하는 식으로 둘 사이에 오가는 편지를 쓰고 보내는 모든 일을 맡게 되었다. 나는 이렇게 부탁을 받기 전에 혼자서 고민했던 내용을 다시 상기해 보았다.

사실 며칠 전에 메데이아 부인은 떠났으며, 이것은 그녀가 내게 부탁한 일이라고 발몽 자작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발몽 자작이 아니며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날랐던 집사라고 메데이아 부인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메데이아 부인의 옆에 서 있을 때 났던 향기가 향기로웠다는 것도 발몽 자작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나는 한 번에 하나씩의 일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며, 메데이아 부인의 편지를 중간에 한 번 열어본 일이 있다고 두 사람에게 말해야만 할까? 말해야만 할 것이다.

발몽 자작의 질투를 불러일으켜 나는 메데이아 부인이 이 저택에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메데이아 부인이 사귀었던 발몽 자작조차도 이미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편지 보내는 일을 미뤘다.

발몽 자작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메데이아 부인이 자신을 떠난 것을 알고 실의에 잠겨 죽음을 택하게 되었는지. 혹은 내가 편지를 전달하던 시절부터 발몽 자작은 저택에 있는 미라였고 나는 없는 사람에게 편지를 전달하곤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두 사람이 살아 있게 만들고 싶다. 다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바깥의 평가에 비해 순진했다는 것이며, 나는 그녀의 편지를 중간에 한 번 열어본 일이 있었고, 나는 그의 부탁을 받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마지막이었는지도 모를 그런 부탁을. 

2021년 2월 15일 월요일

배웅

동굴 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클리셰에 대한 사랑. 늘 하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그 생각을 즐기고 있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갔던 사람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올 때까지, 꽃가게에서 기다리고 있어.” 무슨 의미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른다. 그 사람과 나는 아는 사이였다. 나는 그 사람이 혹여나 나오지는 않았는지 하루에도 몇 번 꽃가게에 들렀다. 거기서 그 사람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 사람이 얼른 동굴 속에서 나오기를 바랐다. 꽃가게의 주인은 심드렁했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이따금씩 그의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는 일을 눈감아 주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일은 내게 있어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나는 그 사람과 놀이동산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놀이 기구를 잘 못타는 편이었고, 그 사람은 내게 무서운 놀이 기구들을 같이 타자고 말했다. 무서운 놀이 기구들을 탈 때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그 사람은 안전 장치를 어깨 위에 걸친 채로 나를 보며 웃었다. 놀이 기구를 다 타고 난 후, 우리는 테마 파크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그 사람과 나는 아침 일찍 만나서 놀이공원에 갔다. 꽃가게의 주인은 그곳에 없었다.

꽃가게의 주인이 나를 배웅했고, 나는 곧 동굴 앞으로 되돌아갔다. 그곳은 우리 집이었다. 우리 집 안에는 한 사람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의 입구가 있었다. 내가 이따금씩 보는 TV를 올려둔 찬장 아래에 그 입구가 있었다. 나는 그 입구 앞에 턱을 괴고 앉아 있는 일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내가 들어가지 않을 입구였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달리, 나는 입구 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돌아온 건, 동굴 속으로 들어간 지 ※※쯤 지난 저녁의 일이었다. 그 사람이 걸친 웃옷에는 나뭇잎들이 붙어 있었다. 그 사람은 주웠다며 솔방울을 하나 내게 건넸다. “꽃가게에서 기다리지 않고 있었네.” 나는 돌아온 그 사람에게 작은 파이를 구워주었다. “이런 맛있는 음식을 내가 먹어도 될까?” 그 사람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이따금씩 꽃가게에 갔었어요. 왜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라고 했었죠?” 나는 그렇게 말했다. “글쎄, 이젠 그렇게 상관은 없는 일이지.” 나는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 있었다. “또 놀이공원에 갈래요?” “아니.” 그 사람은 그렇게 말했다. 현관으로 나가는 그 사람을 나는 배웅했다. “또 놀러 갈게요.” 나는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했다.

2021년 2월 11일 목요일

거미 이야기

하루는 내가 기르는 거미에게 물린 일이 있었어요. 독성이 강하거나 한 거미는 아니어서 상처 부위가 붓고, 팔이 조금 저릿한 정도였죠. 약을 먹을 필요까지는 없었어요. 단지 내가 기르는 거미에게 물렸다는 사실, 그 사실이 조금 마음에 걸렸어요. 왜냐하면 이 거미는 외로워 보였거든요.

그래요, 상처 부위가 조금 붓고, 가려웠었어요. 그래서 손으로 약간 긁었죠. 상처가 다시 날 만큼은 아니게 약간만 긁었어요. 그랬더니 상처 부위가 조금 더 붓는 것이 느껴졌어요. 가려움이라. 난 가려운 데는 긁는 편이에요. 상처가 다시 덧난다거나 하더라도 말이에요. 왜냐하면 나는 그 감촉을 좋아하거든요. 가려운 데로 의식이 집중되고, 그 위로 손을 올려 긁으면 살살 긁히는, 그런 느낌이 나는 좋아요.

그 거미는 우리 집 안에 있는 찬장에 살았어요. 가끔 그릇이나 찻잔을 꺼내려고 할 때, 그 앞에 있는, 반짝 하고 빛나는 거미줄을 나는 보곤 했었죠. 무덤덤하게 그렇게 보거나 했어요. 가끔 죽지 않고 살아 있어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어요. 거미에게는 뭘 줘야 하는지 몰랐어요. 가끔 그릇이나 찻잔을 꺼낼 때마다, 반짝 하고 빛나는 줄 위에 그 거미는 살아 있었고, 또 가끔은 움직이기도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숨죽여 그 광경을 바라보곤 했었어요.

그야말로 내가 ‘기르고 있는’ 거미였죠. 기르고 있는 것은 그 외에도 꽤 있었어요. 크고 작은 화초들,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 내가 기르고 있던 것들의 권역에 그 거미는 없곤 했어요. 찬장이라니. 마치 세 들어 사는 것처럼 그 거미는 얌전히 그 자리에 있곤 했죠. 거미도 주거지를 옮기거나 하는 건가요. 글쎄요. 그렇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거미가 나의 세입자였다면, 내가 기르고 있던 것들은 순전히 내가 예쁘게 여겨 그 자리를 허락한 것들이었어요. 그 거미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아주 깜짝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 찬장은 오래되고 꽤 낡았으며 그때까지만 해도 관리나 청소가 거의 안 된 집 안의 애물단지 같은 것이었거든요. 거미가 한 마리 그 안에 있었다고 해서 놀라울 정도는 아니었어요. 나는 덤덤히 그 거미를 바라보곤, 꺼내려던 그릇을 줄이 상하지 않게 그 밑으로 꺼낸 것이었죠. 그 거미는 그렇게 거기서 제거당하지 않고 살기 시작한 것이었어요.

기르는 것보다는 반쯤은 방관으로, 나머지 반쯤은 흥미 삼아 거기에 놓아두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죠. 가끔은 꺼내려고 하는 그릇이나 찻잔이 있을 때에, 그 거미가 아직도 있는지 궁금하게 됐던 거예요. 아직까지도 그 거미는 찬장 안에 있으니, 그런 궁금증들은 이내 곧 풀리는 것이었고... 말이에요. 나는 그 거미가 왠지 외로워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거미에게 이름을 지어줄까 잠시 고민해본 적도 있었지만... 그냥 이름 없는 거미로 놔뒀어요. 거미에게 이름은, 거미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려 보였거든요.

네, 나름의 재미가 있었죠. 치우지 않고 그냥 거기에 내버려 두게 된 건.... 말이에요. 그 이름 없는 거미는 내 시선을 잡아끌곤 했어요. 손가락 반 마디는 되는 만큼의, 꽤 큰 거미였어요. 거미도 벌레 과에 속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거나 그 거미를 난 꽤 좋아했고, 가끔은 문득문득 그 거미에 대한 생각이 났어요. 왜냐하면, 그 거미에 물리게 된 건 오늘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거든요.

저쪽으로 나가면, 그리 근사하지는 않지만 내가 꾸며 놓은 우리 집 정원이 있어요. 가끔 그곳으로 나가서 풀을 치거나, 심을 것을 심고, 잘라낼 것을 잘라내거나 하곤 했죠. 거미를 내 손가락 위에 올려서 그 정원에다 풀어둘까 하는 생각을 해 보기도 했어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었단 말이죠. 하지만 그 거미는 실내의 찬장 안에 있는 것이... 조금 더 근사한 광경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가끔 그 정원에 나가 담배를 피우곤 했어요. 풀들의 냄새가 주위에서 나고, 작은 귤나무 몇 개도 거기다 심어 놓았거든요. 그리고 꽤 큰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죠. 그 거미를 외롭다고 여기게 된 건...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알고 지내는 친구가 우리 집에 왔었거든요. 그때 나는... 구워 온 파이를 내주면서, 혹시 찬장 안에 내가 기르는 거미가 그 친구의 눈에 띈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거미를 외롭다고 여기게 된 건... 아마 그 거미가 진짜로 외롭게 보였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물곤 하니까... 지금까지 대여섯 번은 물렸던 것 같아요. 이 집 안에서 나는 꽤 외로움을 탔던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따금 그 거미가 내 눈앞에 있었죠. 보통은 거미가 어디에 사는지 난 잘 모르겠어요. 가령 나무 위에 줄을 치고 있다든지... 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어디 들판에 살 수도 있을 것이고... 거미가 보통은 어디에 사는지 난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 거미에게 물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내 손을 그 근처로 가져다 댄 직후의 일이었어요. 원래는 그릇 하나만 꺼낼 생각이었는데, 그 거미의 몸통이 눈에 들어왔었어요. 나는 그때 깜짝 놀랐었죠. 꽤 아픈 데다가... 거미는 독이 있다고 하는데 얼마만큼 강한 독인지는 몰랐으니까요. 바로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이 거미를 계속 길러도 될까요, 라고 물어봤었어요. 권하지는 않습니다만... 하고 말을 꺼낸 것은 의사였죠. 그리 강한 독은 아니라고, 그 의사는 나에게 말했어요.

그래요, 그래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이에요. 그 거미에게 아직도 이름을 붙여줄 생각은 없어요. 정말, 거미에게는 거미라는 이름이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거든요. 굳이 꼭 어울리는 이름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냥, 이대로도 괜찮아 보여요. 글쎄요. 몇 년이나 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죽을 때가 된다면, 내가 그 모습을 보고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사실 큰 자신은 없어요. 나는 다른 사물들에 대한 이해력이라고 할까요. 관찰력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거든요. 하루는 식탁 위에서 찬장 쪽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 거미의 모습을 한번 그려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식탁 위에서는 그 거미의 모습이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한 번 열어본 다음에, 내 눈에 보이는 그 거미의 모습을 기억해서 하나 그려 봤었어요.

거미가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집 안에 음악을 틀고 그걸 눈을 감고 듣고 있곤 해요. 고양이들이 있고, 화초가 있지만 그때 언뜻 내 생각 속에 있는 건 바로 그 거미의 모습이에요. 거미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그때 그려 놓은 그림이 저 서랍 안에 있답니다. 한번 그려놓고 꺼내 보지는 않았었지만요. 나는 그런 적이 많은 것 같아요.

거미가 움직이는 광경을 느릿하게... 본 적이 있었어요. 물론 찬장 안에 사는 그 거미였죠. 그 거미가 움직이는 광경을 보곤, 별 감흥이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그냥 움직이나 보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 뿐이었죠.

그 거미가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아무래도 내가 지내는 곳이 사람이 거의 찾아오지 않는, 아무도 없는 실내여서 그랬는지도 몰라요. 그 생각이 내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허투루 말하거든요. 왜 그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뭔가 더 중요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 것 같기도 해요. 그 거미가 나와 닮아 보였던 걸까요? 하지만 나는 외로운 것 같지는 않아요.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가끔 길을 걷고 있다 보면, 문득 그 거미가 나의 뒤를 느릿하게 쫓아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바람이 적게 불고, 하늘이 조금 어둡고 대기가 습할 때 그런 생각이 자주 들곤 해요. 그 거미가 무슨 모습을 취하고 내 뒤를 따라오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냥 따라오는 것 같은 거예요.... 무슨 모습을 하고서. 그 모습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언어적인 생각으로 그렇게 나에게 다가오곤 하는 것 같아요. <무슨 모습을 하고서...>

거미가 어떤 모습으로 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거미에게 거미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것처럼. 언젠가 내가 한번 그려봤던 딱 그 외양인 것 같아요.

제 얘기는 여기서 끝이에요. 얘기를 하면서 조금 편했던 것 같아요. 아무렴 거미를 기른다니. 일상적인 일은 아니죠. 나는 일상적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안녕히 가세요. 내가 구운 파이는 맛있었나요?

2021년 2월 8일 월요일

광인

광인이 의자 위에 앉아 있다. 고양이가 광인이 덮은 무릎 담요 위에 올라가 있다. 어린애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우리 모두 같이 춤을 춰요.” 고양이가 무릎에서 달아나고. 옛날에 유행했던 가곡이 흘러나온다. 광인은 귀고리를 걸고 있다. 광인이 춤 동작을 할 때마다 귀고리가 반짝 빛난다.

어린애는 광인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고양이는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든다. 춤출 줄 아는 고양이이다. 마치 옛날에 상연되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 같다. 고양이의 이름은 나비이고, 광인의 이름은 광인이다.

아이의 이름은 앨리스이다. 앨리스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 소절은 지금 나오는 음악 소리에 꼭 들어맞는다. “그렇게 되고 난 후로부터는 나는 사물들에 붙여진 이름들을 변호할 궁리를 했어요. 마을에서 나는 <물 긷는 소녀>였죠. 지금은 <앨리스>이고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들으면 도통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앨리스가 되기 전,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은 <구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일이고...

그 일을 각색해 내가 다니는 학원 연극제에서 연극을 상연했어요.”

“그 연극제 당일 나는 <사진 찍는 사람>이었고... 내 친구들은 나무와 별을 연기했죠. 그 사실을 넣어 이번 연극제의 홍보 문구를 작성하기도 했어요. 배경인 나무와 별, 내 친구들이 연극제가 상영되는 동안 정말 가만히, 가만히만 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그 도중에, 꼭 저 고양이처럼 멋진 턱시도를 입은 남자가 몸에 와이어를 걸고 내려왔어요. 우리가 준비한 공연의 일부였죠. 우리는 그 사람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불렀어요. 그 이름은 꼭 들어맞았어요. 지금 나오고 있는 가곡의, 내가 부르고 있던 가사 소절처럼 그의 등장은 당연하고, 또 깜짝 놀랄 만큼... 죄송해요.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래요,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모순>이랍니다. 나는 <모순>이라고 불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을 나는 지금 이야기하고 있어요. 나는 차라리 <이야기꾼>이 될래요. 그래요, 지금 당신이 걸고 있는 귀고리처럼. 어린애인 나는, 그런 사람이 지금 될래요. 광인이여. 내가 하는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어 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고양이야, 너의 이름은 나비이고, 부르면은 곧잘 무릎 위에 올라오는 고양이란다.”

광인이 춤을 춘다.

“광인도 사물인가요. 광인의 이름은 광인 말고는 부를 이름이 없어 보여요.”

2021년 2월 4일 목요일

대화의 스무 가지 요령

1. 재미있는 상대를 구할 것. 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

2. 가능한 한 길게 할 것. 대화를 길게 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물들이 필요하다. 먼저 가치가 있는 자료들과, 대화하는 사람들의 능동적인 태도가 요구된다. 다만 실제로 대화에 입장할 때는 사람에 따라서 능동적인 자와 수동적인 자가 갈릴 수 있다. 이러한 의사-역할에 대한 능동적인 고려를 통해 실제 대화가 이상적인 시간-보내기로 변모할 수 있다.

3.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언급은 신중히 할 것. 이것도 사람의 개성에 따라 다름이 드러나는 분야다. 먼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라면 사족을 못 써 주구장창 하는 타입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대화 상대가 필요할 것이다. 또한, 대화에는 어떤 사전적인 권위-설정과 그것의 빈번한 무너짐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일이 약방의 감초를 찾는 것처럼 쉬운 일이라면 이것으로 대화하는 사람들 간의 학식이 부족한 모습은 감춰진다.

4. 꼭 학식에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이것은 다른 외부적인 조건들ㅡ돈과 명성,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성, 또는 서로가 상대에게 보내는 호감을 비롯한 감정들까지도 아우른다. 학식은 중요하지만, 대화 자리는 그보다 더 폐쇄적이다. 학식은 넓은 분야에서의 성공을 도와주는 큰 요소이지만 대화에서는 그때그때 서로 올바른 카드를 내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5. 이것은 좀 애매하지만 가급적이면 대화는 두 사람이 할 것. 왜냐하면 사람 수가 많아지면 예산이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에서는 서로 허영을 부르는 말과 행동을 하게 되니 조심할 것. 물론 이것도 사람의 성정에 따라서 그런 무대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값싼 재질의 옷을 일부러 입기도 하는 것처럼 사전에 좋은 대화를 제지하는 상황 설정은 가급적이면 피할 것.

6. 항상 어떤 만남이 있을 것. 이를 위해서는 사전에 마음에 드는 장소를 고르는 등의 씀씀이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씀씀이가 있다고 해서 꼭 대화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러한 씀씀이의 발현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대화의 무대를 특별하게 삼되 모든 면에서의 새로움은 구하지 말라. 때로는 오래된 것, 안락한 것에 대한 선택이 좋은 대화를 만들기도 한다.

7. 집중할 것. 물론 매 순간마다 집중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대화 상대를 찾는 일은 어려울 것이며 물론 그것이 보람 있는 일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면서 혹시 내가 놓친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대화하는 상대가 항상 똑같이 말한다고 느껴진다면 내 행동이나 태도에서 미진함이 없었는지 생각해 보라. 너무 당연한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나의 못남이 나의 부정적인 태도에서 발견된다면 그것을 능동적인 것으로 순화할 방향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대화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으므로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꾸려 가거나 고통을 받는 일 등은 피해 가야 한다.

8. 손안에 중요한 카드를 들고 있는 것처럼 지금 당장 당신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표출할 수 있음을 표현해라. 하지만 대화를 살벌한 무대나 전장으로 만드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나쁜 방법이다. 물론 떨리는 대화라는 것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좋은 대화의 상호 작용은 서로 간에 있는 배려에서 나오는 것임을 납득하고 있어야 한다.

9. 대화는 편한 분위기에서 할 것. 만약 사람들 간의 대화가 불편한 분위기로 진행되고 있다면 그 속에서 비꼬는 말이 나왔는지를 한번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대화 속에 등장하는 비꼬는 말의 위력은 떨어지는 유성 같아서 유성이 떨어질 때는 모두가 고개를 저 하늘로 향하게 되고, 유성이 떨어진 자리에는 큰 흔적이 움푹 패일 수 있다. 비꼬는 말은 상호적인 대화에 있어서 피해갈 수 없는 위력을 지닌 것임과 동시에 서로 간의 신뢰 관계를 위협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서로 능동적인 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면, 비꼬는 말이 나왔을 때 그것을 인식하고 아까 전에 비꼬는 말이 나왔지, 하고 생각해 둘 것. 왜냐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비꼬는 말은 그 위력을 갑자기 잃고 사라지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비꼬는 말을 내뱉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자연히 그 말이 뇌리에서 떠나게 될 때는 그 이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라. 왜냐하면 그 말은 눈앞의 상대보다는 활기가 없는, 단순히 죽은 것의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0.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말고 자신이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을 피력하라. 때로 불리한 처지에 놓여 있는 한 사람의 입장은 효과적인 유머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또한 사람의 시선은 신호등과 같아서 빨간 불일 때는 잠잠하다가도 초록 불이 될 때는 돌연 빛나며 압도적인 대수의 차량들이 운행하는 것처럼 갑자기 영문을 알 수 없이 물꼬가 트이기도 한다. 그러한 물꼬를 틔울 때는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전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유념할 것.

11. 상대방의 꼬투리를 잡으면 그 서막을 장황하게 하라. 왜냐하면 한 사람의 불리한 입장이 희화화될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정당한 구실 하나는 긴 여정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단점은 지적만 훌륭하다면 훌륭한 교사로부터 배움을 얻는 것처럼 재미있는 분위기와 함께 그것을 교정해 나가는 장이 될 수도 있다. 꼬투리를 잡을 때 서막을 장황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웃기고 재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비장한 각오로 어떤 일에는 임하라.

12. 상대방의 눈에 호소하라. 이것은 설명하기 어렵지만 만약 감식안이 뛰어난 이라면 세상에 존재하는 칭찬을 좋아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감식안에 대한 칭찬을 받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또한 상대방의 눈에 호소하라는 것은 때로 자신을 겸허하거나 예절 바른 이로 만들 수 있는 좋은 신조다. 과정에 대해 평가받고 그 결과를 손 위에 올려 마치 동의를 구하는 것처럼 리듬을 따를 것.

13.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참을성을 가져라. 한 권 이상의 장편소설을 쓴 사람이 이상적인 대화 상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화에서 인내심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얘기하는 주제의 폭이란 서로 다 다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 영민한 눈으로 상대방의 한결같음에 대해서 폭로한다면 예쁘고 풀기 좋게 마련된 매듭을 푸는 일처럼 서로에게 재미있는 것이 될 수 있다. 놀이 중에서 특정한 한 종류는 바로 택배 박스에 들어 있는 운송용 포장을 하나씩 눌러 터뜨리는 일이다.

14. 외부적인 장치에 의해 도움을 받을 것. 수려한 외모의 사람들이 대화 상대로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건 그러한 사람들의 태도에서 어딘가 배움을 얻는 계기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외모가 대화에서 중요한 면을 담당하는 요소이긴 하다. 하지만 외모는 마음의 창이라는 독선적인 말에서 느낄 수 있듯이 외모가 부족한 사람은 그에 대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대화의 한 분야는 상대의 그러한 자격지심을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시킬 것인지를 고려하는 것임을 알고 서로가 갖고 있는 단점으로 인해 분위기를 한쪽에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엉엉 우는 일도 여기에 동원될 수가 있다. 먼 길을 돌아가면 빨리 닿기도 하는 것처럼, 가능하다면 외부적인 장치들을 동원해서라도 한쪽의 입장을 일방적인 것으로 만들지 말라. 여기에는 단맛이 나는 과자들이 좋은 도움이 될 수가 있다.

15. 상대방이 갖고 있는 명성에 대해 눈을 감을 것. 왜냐하면 눈을 감을 때 사람의 얼굴은 여러 개의 표징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눈을 뜨고 있을 때의 상태는 일반적이고, 일반적이라는 것은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한 요소로 파악될 수도 있다. 물론 일반적인 예시는 아니지만, 만약 명성을 갖고 있는 사람(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 등)들에게는 그 명성에 대해 눈 감아 버리는 태도가 단순하고 효과적이다. 또한 상대방에 대한 놀라움을 느꼈다면 그 놀라움에 대해 잘 표현해야 한다. 왜냐하면 눈을 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경이 자신이 목적한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드라마가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 대화에 있어서 연기자의 자질은 있어도 그만인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의 무덤덤한 성정을 표출하는 것에서 좋은 대화 상대의 요령이 발생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대화를 하는 사람들은 서로 어떤 것을 미묘하게 갈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 좋게도 그 상대가 눈앞에 있다면 바깥의 것은 무용하고 지금 상대만이 좋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기류에 흐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성정에 지루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으니 무덤덤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은 일상에 있어서 정치적인 변신을 자주 꾀하라. 폐쇄된 세계들을 도서관 등지에서 열람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될 수 있다.

17. 항상 마음을 젊게 하라. 늙은 사람들이 규탄을 받는 것은 항상 그들이 어린애와 같은 행동 원리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젊은 것은 어느 정도 성숙한 상태임을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러한 순간이나 분기점을 지나고 있을 때에는 항상 대화하는 상대방을 눈앞에 있게 하라. 왜냐하면 대화를 하는 일과 일기를 쓰는 일은 서로 다르고, 시점이 추가되어 조명받는 것은 한 개인의 입체적인 면모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할 때는 거추장스러운 잔가지들을 하나씩 걷어내는 마음으로 임하라. 사람은 나이가 들면 좀 더 성숙해지고, 사람들 속에서 대담한 입장 표명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마주 서게 된다.

18. 상대방이 본 책들에 관해서 일일이 묻지 말라. 책의 세계는 복잡다난한 이 세계의 일들과 같아서, 목적하는 바와 다르게 세상사가 요동칠 수도 있다. 그 세계 속에서 목적하는 곳에 다다르는 방법은 물론 훌륭한 조언에 따라서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스스로 선택하는 법이 필요하다. 자신이 했던 선택들을 곱씹으면서, 상대방이 하는 말이 어렵더라도 그것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라. 훌륭한 이해자만이 좋은 대화 상대가 된다는 건 어폐가 있는 말이지만 거기에 더해 적당한 몰염치함과 자신의 마음을 감출 줄 모르는 성실함이 있다면 누구나 좋은 대화 상대가 된다.

19. 대립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오히려 좋은 것들이 생겨나기도 한다. 그 좋음을 구가한다는 건 대화에 있어서 숙명적인 일과도 같다. 좋음을 구가하지 못할 것이라면 어째서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는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자신의 내면 속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을 통틀어 오직 필요에 의한 만남은 그 수가 적고 희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필요하지 않은 만남이나 관계들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추억으로 남거나 하는 일도 빈번하다. 하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만남과 관계들을 찾아 나서는 건 그 여정길이 험난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에게 필요한 만남이나 관계들을 숙고해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상대방의 말을 반박하기도 하며 자신의 필요성을 따르고 있음을 상대에게 입증하라.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에게서 대립된 존재들의 도움을 바라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20. 대화를 길게 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하여. 긴 것은 왠지 좋은 것 같다. 내가 장편 소설을 한 권 이상 쓴 사람들이 최고의 대화 상대라고 꼽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긴 것은 왜 좋은 것인가? 장편 소설을 쓴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고 있거나, 알고 있지 못하더라도 체득은 하고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수많은 익명적인 사람들에게 거는 기대이다. 나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들이 좋다. 하지만 참을성이 많다고 해서 장편 소설을 한 권 쓴다는 건 왠지 성립되지 않는 일일 듯싶다. 이 모든 것에 기이하고 엉성하며 이상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으며, 나는 그 아래에 잠겨 있다. 무엇이 길게 이어진다는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또한 대화를 길게 할 수 있는 상대란 그 모든 신경을 거기에 집중하고 있지 않더라도 말하고 있는, 그래서 대화 도중에 쉴 수도 있는 상대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쓰는 동안 잠시 쉬는 시간이 있었으며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2021년 2월 1일 월요일

실감

여느 때처럼 나는 집 앞을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기는 내 버릇이었다. 이런 버릇을 가지게 된 건 어느 학원을 다니면서 체력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달려야 하는 거리를 다 달리고 난 후, 나는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항상 마시는 음료를 샀다. 음료는 토레타였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는 집에 들어와 거실에 앉았다. TV를 자주 보지는 않지만 오늘은 왠지 TV가 보고 싶었다. 집에 있는 과자를 그릇에 쏟아 가져왔다. 그리고 커피를 탔다. 이 집 안에서 맞는 휴식 시간이 나는 좋았다. 나는 이 집을 좋아했다. 전세 대출로 얻은 집이었다. 집 주인은 친절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집 앞을 달렸다. 달리는 거리는 3km였다. 남들과 비교해서 많은 거리인지는 잘 몰랐다. 나 혼자만의 버릇 같은 것이었으니까. TV에서는 어떤 사람이 불가 앞에 앉아 있엇다. 그리고 잡은 생선을 꼬치에 끼워 불가 앞에 놓아두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며 과자를 먹었다. 그리고 문득 마음이 동해 내 방에서 노트를 가져왔다. 그 사람이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람은 외국인이었다.
노트를 가져와 그림을 그렸다. 과자를 다 먹고 난 후 딸기를 가져왔다. 그릇 안에서 싱긋한 딸기 냄새가 났다. 내 노트에 그려지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은 TV에서 나오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과 어느 정도 닮아 있었다. 사물을 닮게 그리는 건 내가 학원을 다니면서 중요하다고 들었던 일이었다.
나는 학원에 다녔다. 그 학원은 집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그 학원에 등교하는 데 약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서 중간중간에 나는 딸기를 먹었다. 이렇게 중간중간에 뭘 할 수가 있는 것이 나는 좋았다. 문득 나는 내 생활이 너무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지진 않았는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내가 뭔가 하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과일을 자주 사 먹지는 않았다. 과일을 먹는 것도 뭔가 하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몰랐다.
그림을 그리는 건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TV를 보는 일과, 음악을 듣는 일 역시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달리기도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많이는 하면 안 되는 일인 것 같았다. 학원을 다니거나 부모님께 연락을 하는 일 역시 해도 되는 일인 것 같았다. 저 사람처럼 불가 옆에서 생선을 굽는 일은 내게서 너무 멀리 떨어진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일을 나는 노트에 그리고 있었다. 노트에 그려지는 그림을 보면서 이것이 어떤 그림으로 될지 생각하는 것은 해도 안 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의 애매한 회색 지대에 속해 있는 것 같았다.
딸기를 다 먹고 나니까 그림이 어느 정도 그려지고 난 뒤었다. TV에서는 계속 그 사람의 모습이 나왔다. 나는 중간중간에 다른 일을 하거나 하는 것이 없이 그림에 집중했다. 왜 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는 몰랐다. 실내의 분위기가 고요했다. 그림을 다 그리자 고양이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고양이를 만지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그리고 TV로 음악을 틀었다. 집 안에 음악 소리가 퍼지면서 나는 어쩐지 뭘 해야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 빠졌다. 방금까지 하던 일을 손에서 떼고 나니까 그런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림을 다 그리고 난 후였고, 식사는 아직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미약하게 잠이 왔다. 나는 소파에 누워 내가 다니는 학원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학원을 다니면 언제나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가서 토레타를 사 먹곤 했다. 그 일이 뭔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실제로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있었고, 오늘 따라 왠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실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2021년 1월 28일 목요일

무너진 병원

의자 앞에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는 귤이 몇 개 들어 있는 은색 그릇이 있다. 귤을 까먹으면서 나는 작업을 했다. 얼마 전 근처에 있는 병원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무너진 병원에 대해 생각했다.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작업이 좀처럼 진행되질 않았다. 
무너진 병원으로 인해 생긴 손해는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식은 뉴스에 나오고 이 나라에 알려졌을 것이다. 나는 뉴스를 보지 않아서 그 소식이 얼마만큼 대서특필되었는지는 모른다. 잠시 생각에 열중해 있을 무렵 고양이가 내 책상 위로 올라왔다. 고양이를 쓰다듬으면서 문득 나는 게으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는 나에게 뭘 감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너진 병원 앞에 취재하러 나온 사람들이 TV에서 나오고 있었다. 뉴스를 보는 건 오랜만의 일이다. 작은 크랜베리 파이를 입에 넣으면서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소식을 전해 듣는 건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듯 미디어를 통해서이다. 그게 아니라면 주위의 사람들에게 소식을 듣는다. 뉴스를 보지 않는 나는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소식을 전해 듣는 일을 좋아했다. 오늘 TV를 튼 이유는 내가 너무 게으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일쯤 우리 집으로 놀러오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의자 위에 앉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은 무너진 병원에 대해 알고 있을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이 세계 전반에 관한 소식을 전해 듣는 건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이 재미 있는 일이었다. 나는 무너진 병원에 관한 이야기를 그 사람의 입을 통해 자세히 듣고 싶었다.
그 사람이 우리 집으로 놀러온 지가 두 달이 되었을 무렵이다. 그때 나는 그 사람과 뉴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뉴스를 싫어하는 편이지만 왜 싫어하는 것인지는 몰랐다. 그 이유에 대해 알려주겠다면서 그 사람은 파이를 준비해 놓으라고 말했다. 파이 위에 올라가는 고명은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넌 파이를 맛있게 굽는다면서.
담소의 시간이 지나고 책상 위에 올라온 고양이를 묵묵히 만지면서 나는 언제 최초로 무너진 병원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지 의문이 생겼다. 아마 다른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껴서 그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나는 뉴스를 보지 않으니까.
얼마 전 우리 집에 놀러 와 내가 만든 파이를 먹은 그 사람은 무너진 병원 건물 터에 실제로 가 보았다고 말했다. 내가 너무 게으른 것 같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그 사람이 무척이나 나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라면 그런 소식만 전해 듣지 현장에 직접 찾아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곳을 나에게 묘사하는 그 사람의 눈은 어떤 열의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TV를 끄고 그 사람과는 반대로 내 생각 속의 열기들을 지워 없애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 사람이 무너진 병원 터에 찾아갔던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들었다. 그 사람은 그 이유에 대해 나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아마도 근처에 무슨 볼일이 생겨서. 으레 어떤 일이 일어난 직후에 흔적이 남는 것처럼. 그 흔적들로 가득한. 그 흔적들밖에 없는. 그런 장소를 미연에 생각하다가 찾아가게 된 것이 아닐까. 그 사람이 내일 우리 집에 놀러온다고 한다.

2021년 1월 25일 월요일

낡은 식당

나는 낡은 식당에 대해서 생각했다. 나는 낡은 식당을 좋아한다. 꾸미지 않은 인테리어와, 그 외의 것들. 식당에 자주 가지 않아서 식당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낡은 식당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느 낡은 식당 앞에 있다. 불 켜진 가로등이 보이고 그 안으로 날벌레 떼들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잠에 대해 생각했다. 최근 나는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약을 먹지는 않았고, 잠이 잘 올 만한 행동들을 생각해서 그대로 실행에 옮겼다. 거기에는 일주일 정도 동안 내가 찍어 놓은 사진들을 천천히 넘겨보는 것이 있었다. 그중에 내가 갔던 낡은 식당과 그 앞에 있는 불 켜진 가로등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화면이 클로즈업되어 희끄무레한 윤곽으로 보이는 날벌레 떼들의 사진도 있었다. 그 식당에서 나는 제육 덮밥을 하나 주문했다. 나는 날벌레 떼들이 싫지 않았다. 빛을 쫓아간다는 점이 그랬다.

나와 같이 낡은 식당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몸을 씻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은 다음에 그 사람과 만났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나면 말이 많아졌다. 우리는 실컷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장소인 카페에서 만나거나 했다. 그 사람도 낡은 식당을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인지는 몰랐다. 그 사람은 나와 다르게 잠이 오지 않거나 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나는 낡은 식당(내가 자주 가는) 안에 앉아서 제육 덮밥을 시켰다. 그리고 밖으로 보이는 가로등 안의 날벌레 떼들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곧 음식이 나왔고, 나는 먹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와 같이 식당에 오는 것을 싫어했다. 그건 예전부터 그랬던 것이었어서 언제부터 그랬는지를 몰랐다. 하지만 혼자 식당에 찾아오는,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식당에 찾아오는 일은 싫지 않았다. 내가 시킨 음식을 먹으면서 나와 같이 낡은 식당 얘기를 하던 그 사람을 생각했다. 그 사람의 외양을 생각했다.
나는 낡은 식당을 좋아한다. 꾸미지 않은 인테리어와, 그 외의 것들. 나는 어느 낡은 식당 앞에 있었다. 불 켜진 가로등이 보이고 그 안으로 날벌레 떼들이 솟구치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휴대폰으로 틀고 넘기며 바라보다가 나는 잠이 들었다.

2021년 1월 6일 수요일

오물

쥐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쥐가 오물을 물고 있다. 쥐가 물고 있는 오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쥐는 더러운 생물인가. 쥐가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반경 7.5cm 정도의 작은 구멍이다. 쥐는 고양이에게 쫓기고 있다. 고양이는 구멍 안을 드나들지 못한다. 저쪽 편의 구멍 앞에서, 고양이가 손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 쥐가 나타나면 내려칠 생각인가 보다. 다시, 쥐가 드나들었다. 고양이의 손은 방금까지 쥐가 있었던 자리를 덮친다. 이 집 안에서 빵 굽는 냄새가 난다. 다시, 쥐가 드나들었다. 고양이는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그 시선을 따라가보면 개다래가 하나 있다. 고양이가 그쪽으로 움직인다. 쥐가 작은 구멍 안으로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쥐가 물고 있는 것은 작은 빵조각이다. 쥐는 더러운 생물인가. 원래는 깨끗했더라도 쥐가 물고 있는 것은 오물이 되는가. 쥐가 물고 있는 작은 오물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가. 다시, 쥐가 드나들었다. 쥐는 애완용의 햄스터와는 조금 다르게 생겼다. 다시, 쥐가 드나들었다. 나는 작은 구멍 앞에서 지켜보고 있다. 쥐는 5cm 정도의 크기의 작은 쥐이다. 색깔이 까맣고 움직임이 빠르다. 쥐는 왜 구멍의 양쪽을 쉴 새 없이 드나들고 있는 걸까. 집이라도 지으려는 생각일까. 마치 개미처럼. 오물로 만든 집은 오물이 되는가. 방금까지 개다래를 쫓던 고양이가 이쪽으로 나타난다. 쥐가 드나들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흥미를 가지게 된 고양이. 오물을 물고 있는 쥐. 만약에 쥐가 고양이의 손에 움켜잡히면 고양이의 손도 오물이 되는 걸까. 오물의 범위를 어디까지 좁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이 집 안에는 쥐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아직 전해지지 않았다. 이 집 안에 쥐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나뿐. 나는 쥐를 뭐라고 부르는지 아직 모른다. 집 안에 쥐가 존재한다는 것은 나의 위생상 문제가 되는가. 쥐는 초대받지 못한 생물인 걸까. 나는 작은 구멍 앞으로 엎어졌다. 어린 아이들은 길에서 엎어진다 하더라도 큰 충격을 받지는 않는 것 같다. 기다리고 있던 고양이의 손이 방금까지 쥐가 있었던 자리를 덮친다. 그 위로 환한 오물들이 비산하여 쏟아져 내린다. 오물은 환하고 비산하더라도 계속 오물로 남는가. 나는 허공에서 반짝거리며 내리는 물질이 무엇인지 모르고, 계속 지켜보고 있다. 고양이가 스스로 개다래를 놓치고 내 앞으로 온다. 방금까지 내가 들이마시고 있던 공기는 위생상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 

2020년 12월 4일 금요일

탐험

아이가 혼자 길을 걷고 있다. 그 아이는 길을 가던 도중 잠시 멈춰 강가에 손을 집어넣는다. 강물의 흔들림을 느끼며 그 아이는 공허를 만지고 있었다. 멀리서 어느 성가대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강물에 집어넣었던 손을 빼고 계단 위에 올라간다. 계단 위에서는 이미 내려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선물을 들고 내려오는 한 사람. 그 사람은 아이를 보곤 그것을 한 아름 건넨다. 아이는 선물을 받아 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다. 그런데 그 선물은 내가 아이라서 준 것인가요. 이것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아이는 다른 몇 아이들과 합심해 탐험을 나왔다. 강가에 손을 집어넣었던 이유는 물고기를 잡으려고, 였다. 같이 탐험을 나왔던 아이들은 모두 집에 들어가고. 한 여인이 아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기만 하다. 그 여인은 어려진다. 그렇게 된 이후로 그 아이에게 다가간다. 아까 그 아이는 처음 보는 아이를 만난 것이다. 인사를 한다. 그 아이들은 둘이서 움직이기로 한다. 그 아이들은 처음 보는 광경을 만난다. 어떤 마을가인데, 천막들이 즐비하다. 마을의 중앙에는 성가대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아이들 앞으로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래를. 그 아이들은 노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단지 뭔가 즐거워 보인다는 인상. 나귀를 끄는 사람이 천막들 앞에 짐을 풀고 장사를 시작하려고 한다. 아까 강물에 손을 집어넣었던 아이는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그런데 혼자란, 고독이란 무엇이죠? 아까 강물에 손을 집어넣었던 아이가 묻는다. 물음 받은 사람이 누구였을까? 아까 어려진 그 여인은 지금은 아이이지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가 없다. 그녀도 혼자란 무엇인지, 고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가 묻는다. 그 사람은 알까? 혼자란 무엇이죠? 난 장사를 해야 해. 아까 난 계단 위에 있던 사람에게 선물을 받았어요. 그것을 받은 건 내가 아이이기 때문인가요? 난 잘 모르겠구나. 그 아이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빈 공허를 만지고 있다. 나도 혼자란 무엇인지, 고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잘 모르고. 그 아이에게 대답해줄 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질문이 주어져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아닐까요, 라고 말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혼자라서 선물을 받았던 것도 아니고, 아이라서 선물을 받았던 것도 아니다. 어려진 그 아이를 만났기 때문도 아니다. 이제는 같이 다니게 되어 혼자는 아니지만. 계단 위의 그 선물은 아무에게도 주지 않을 선물이었기 때문에 받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한 아름 선물을 받아들었던 아이는 그 선물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2020년 11월 16일 월요일

작은 문

 


지금은 회사 밖이다. 나는 보도블록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내 옆의 몇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나는 작은 발판같이 생긴 보도블록의 튀어나온 데 위에 섰다. 그리고 나도 전화를 받았다. 팀장의 전화였다. 나는 외근을 나와 있었고, 조금 있다가 편의점에 가서 커피를 하나 사서 마실 것이다. 팀장의 전화는 미팅 일정을 잡자는 것이었다. 정확히 세 시간 후에 회사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한쪽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무언가 빛나는 것이 보도블록 위에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니 그건 작은 문 같았다. 열고 드나들 수 있는. 그런 문이 왜 보도블록 위에 있는지는 몰랐다. 나는 쪼그려 앉아서 그 작은 문의 손잡이를 손으로 잡고 열어보았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것은 열리지 않는 문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담뱃갑을 꺼내서 담배를 하나 더 피웠다. 주변에 있는 몇 사람들의 통화 내용에 관심이 갔다.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그렇게 서 있었다. 방금 본 작은 문에 대한 생각도 했다. 킥보드를 타고 있는 어린아이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가령 이러한 상가 건물에 있는 문들은, 다 여는 쪽에서 열 수 있도록 고안된 그런 문들이다. 아까같이 안 열리는 문, 게다가 그렇게 작은 문들은 없었다. 혹시 그 문을 열려면 열쇠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다시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곤 뭔가 빛나는 것이 없는지, 보도블록 가를 지켜보았다. 그랬더니 아까 그 작은 문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위로 다시 쭈그려 앉아서 열쇠구멍이 있는지 잠자코 들여다봤다. 그랬더니 문고리 옆에 열쇠구멍이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열쇠 대신에 어떤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는지 고심했고, 가방에 있던 샤프심을 하나 꺼내 집어넣어 보았다. 그랬더니 샤프심이 부러졌다(저 문을 열면 그 앞에 문지기가 앉아 있을 법했다). 나는 편의점에 가서 면봉을 하나 사 왔다. 그리고 열쇠구멍에 집어넣어 문을 열었다. 문안에는 작은 난쟁이 문지기가 한 명 앉아 있었다. 앉아 있는 문지기는 더 이상 문을 열지 말라는 듯 한 손을 들어 이쪽을 제지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회사로 돌아가 팀장을 만났다. 조금 이르게 도착한 시각이었다.

2020년 11월 9일 월요일

인형 골렘

골렘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시일이 많이 늦어버렸다. 내가 갖고 있는 이 골렘은 백팩에 다는 장식용 인형과 같은 생김새이다. 이 작은 골렘을 만든 이유는 어떤 인간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나는 이 골렘을 직접 만들었다. 만드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고, 과연 어떤 용도의 골렘이 될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이제 내가 만든 이 골렘은, 꼭 비맞이 인형*과 같은 목적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이 골렘을 인형 골렘이라고 부른다. 혼자서 움직이는 기능도 있다! 태엽을 감아줘야 하지만(그럼에도 나는 태엽 인형 골렘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이것은 정지해 있는 채로 내 백팩의 고리 위에 달려 있다.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물으면 나는 인형 골렘이라고 대답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왜 이것을 인형 골렘이라고 부르는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반쯤 인간 형상을 띤 골렘들은 관절의 가동 범위가 넓다. 이것도 그럴 수 있었을 테지만 이 골렘은 관절이라고 부를 부분이 딱히 없다. 이것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골렘을 빼고 인형이라고 답할 것이다. 뭔가를 숨기기 위해 이 골렘을 만들고 백팩에 달아둔 것은 아니었지만 만들고 보니 숨겨야 할 것이 생겨버렸다. 골렘 같은 구조물을 만들 때 귀금속류가 다량 들어가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실이다. 그 귀금속들이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골렘 사용자의 편의성에 집중이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골렘을 만든 사람일 뿐이고, 골렘 사용자는 아니지만 나도 편의성을 염두에 둬 이것을 인형 골렘이라고 부른다. 위와 같이 이 골렘은 비맞이 인형처럼 다음 날의 날씨를 기원하는 용도가 있다. 이것은 인형 골렘에 대한 글이다.



*테루테루보즈

2020년 10월 29일 목요일

어느 실내

화분 위에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는 반쯤 몸을 펴서 꼬리가 수직으로 서게 한 뒤 기지개를 켰다. 나는 그 앞에서 하품을 했다. 조금 즐겁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말에, 집에 있는 소파에 누워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 일은 즐거웠다. 그리고 졸립기도 했다. 순간적으로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시간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러나 시간은 갈 것이고, (저 고양이가 자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듯이)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흘러서 나는 점점 늙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체감하고 있는 시간의 속도는 빨랐다. 나이를 먹게 되면 이렇게 된다고 하지. 나는 어느 신문 기사에서 그렇다는 사실을 훑어보기도 했었다. 점점 잠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화분 위에 있는 고양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고양이는 점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화분 위에서. 저 화분은 우리집 고양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였다. 나는 장소라는 말을 좋아했다. 기억이 나는 여러 사건들을 나는 영사되는 영화를 보듯 하나씩 떠올려 갔다. 주말의 이러한 시간에 고양이를 보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일이 좋았다. 좋으면서 왠지 좀 불안하기도 했다. 그 불안은 내가 자리 잡고 있는 근저에서 작용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앉아 있는 의자 뒤가 약간 꺼림칙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식탁으로 갔다. 토스트기를 작동시켜 식빵을 구웠고, 구워진 식빵을 먹으며 나는 다시 고양이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고양이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까 왠지 불안했던 의자 등받이에 다시 앉았다. 일하지 않는 한가한 날이었다. 나는 내가 할 만한, 집에서 할 수 있을 만한 그런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이 휴일의 집 안에서 나는 게을렀다. 씻지 않아서 머리도 떡 져 있었다. 나는 머리가 그렇게 되면 쉽게 티가 나는 유형이었다. 나는 고양이가 앉아 있는 화분 위로 잠깐씩 눈길을 돌리며 TV를 봤다. TV에서는 뉴스가 나오는데, 나는 뉴스가 싫어서 채널을 돌렸다. 그러면서 나는 희미하게 내 불안에 대해 생각했다. 한 손으로는 식빵을 잡고 있었고 다른 쪽 손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점점 늙을 것이다. 이 생각이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이 아닌지 하는 추측이 생겼다. 물론 누구나 늙지만 나는 특히 이 자리, 이 장소에서 느끼는 그러한 불안일 수도 있는 생각이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 기꺼웠다. 생각해 보면 불안에도 사람을 그 근저에 묶어두는 매력이 있는 듯했다. 나는 그러한 것들을 느끼며 한 손으로 잡은 식빵을 점점 뜯어 먹고 있었다. 고양이는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했다. 저 화분 위에 자주 올라가는 고양이는 언제인지 모를 무렵 담장 위에서(아마 학창시절이었을 거다) 봤던 고양이와 닮아 있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