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8일 일요일

릭과 배반

소녀는 수업을 듣고 집에 가고 있었다. 소녀는 박물관 앞에서 잠시 거기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소녀의 곁으로 닷지 자동차가 다가왔다. 닷지 자동차에 타고 있던 릭이 말했다. “타.” 릭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여인이 그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에게는 릭을 위로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박물관 안에 있는 조형물들이 대신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들은 여기에 있어요. 일단 타요.” 소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릭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닷지 자동차 안으로 몸을 굽히고 들어갔다. 닷지 자동차 안은 넓었다. 소녀는 두 발을 좌석 앞으로 누이고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 릭의 눈물이 섞인 이야기를 들었다. 릭은 운전을 하고, 소녀는 릭이 앉아 있는 운전석을 잠시 바라보았다. 닷지 자동차는 시내를 향해 가고 있었다. 릭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반당했고, 소녀는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릭에게는 한쪽 손가락이 없었다. 험한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되었다. 한쪽 손가락만 없으면 다행이었다. 릭은 수다쟁이처럼 말이 많았다. 릭이 하는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소녀는 왜 닷지 자동차에 탔는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은 박물관에 있는 조각 조형물들이 입을 열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조형물들에게 눈길이 끌렸다. 그래서 잠시 그들의 말에 감화되었다. 차내 온도가 꽤 높아서 소녀는 후드 집업을 벗고 안에 입은 크롭티 차림이 되었다. 릭은 한참이나 말을 하다가 잠시 말이 없었다. 소녀는 릭 쪽으로 왼쪽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손가락 비행기를 만들어서 그것이 떠 다니고 있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것은 소녀가 자주 하는 행동이었다. 제스처와 연속성을 가진 것처럼 소녀가 릭에게 물었다. “넌 어째서 앞으로 가고 있지?” 다소 생소한 질문임에도 반문할 필요가 없다는 듯 릭이 입을 열었다. “배반당했으니까.” 소녀가 박물관에 대해 말했다. “아까 내가 보고 있던 거기에서는 조각상이 살아 있는 것처럼 있었어. 그것들이 대신해서 네 맘을 말하는 것 같더라.” 릭이 대답했다. “뭐라고 했는데?” “일단 타라고. 닷지 자동차를 타래.” “그렇군.” “넌 앞으로만 가지. 내가 이 티셔츠를 입은 것처럼 너는 너의 성질이나 행동을 변질시킬 수는 없을 거야.” “웃기네, 정말.” 소녀는 릭과 친한 사이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소녀는 릭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릭이 운전하는 닷지 자동차를 탄 것은 소녀와 릭이 거리에서 만나도 인사 한 번만 하고 지나갈 만큼 거리가 벌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는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이 거리꼈다. 그럴 때 자주 쓰이는 관용구처럼 소녀가 말했다. “어째서 넌 배반당했지?” “몰라. 너무 그랬나봐.” 소녀는 다시 비행기 제스처를 하며 부연 설명을 요구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너무 그랬다는 거지. 너무 사랑했던 거지.” “사랑이 뭔데?” 릭은 잠시 말이 없었다. 릭은 사랑을 모르는 것 같았다. 적어도 소녀가 보기엔 그랬다. 아까 전부터 에어컨을 틀어 차내의 온도가 내려가 있었다. 소녀는 올려 두었던 발을 접고 벗어두었던 후드 집업을 다시 입었다. 소녀는 후드 모자를 썼다. “이제 내릴 시간이야. 다른 박물관 앞에 내려줘.” 릭이 말했다. “박물관엘 왜 가는데?” 글쎄, 하고 말하고선 소녀는 닷지 자동차 밖으로 내렸다. 소녀가 박물관에 가는 이유는 단순히 그렇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녀의 생활에는 단조로움이랄 게 있었다. “이걸 두고 내릴 뻔했군.” 릭이 그렇게 말하며 아까 전까지 소녀가 하고 있던 비행기 제스처를 따라했다. 소녀가 쿡쿡 웃었다. “그래서, 잠시간의 자동차 여행은 어땠죠?” “네.” 소녀는 비행기를 만들어 날렸고, 그것을 따라가는 척하면서 릭의 얼굴 앞에 당도했다가 조수석 밖으로 내렸다. 릭이 손 인사를 했다. 릭은 소녀의 박물관 친구였다. 잠시 동안 박물관을 밖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닷지 자동차를 운전해 곁으로 오는 사람. 소녀는 나중에 돈을 모으면 닷지 자동차를 살까, 생각하다가 제 자리에 엎어지는 시늉을 했다. 그녀가 보기에 닷지 자동차는 쓸데없이 비쌌다. 그녀가 내린 곳의 박물관에도 여러 가지 종류들의 조형물들이 있었다. 그 조형물들을 보고 있으면서 소녀는 ‘천사’라고 하는 것들을 상기했다. 왠지 그것들은 천사를 닮아 있었고 스스로 말을 할 줄 아는 것 같았다. 그녀는 가끔 그들의 조언을 따랐는데, 오늘 닷지 자동차를 탔던 것도 그들의 조언에 의해서였다. 박물관에 있는 천사들. 소녀는 그런 말을 떠올리곤 왠지 즐거워서 웃었다. 그리고 오늘부로 자신이 몇 살이나 되었는지, 하는 것을 생각했다. 닷지 자동차에는 다른 닷지 자동차들이 없는 것처럼, 박물관에 있는 조형물들은 천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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