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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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공기
아기
부장급들이 업무 중 이상한 소리(끄윽, 후후, 습습 등)를 내는 건 어딜 가나 똑같은 것 같다. 실업급여를 다 타고도 두 달이 지나 겨우 일을 시작했다. 가증스런 11개월 계약직. 나까지 해서 사무실에 5명.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좋지 않으면 어쩌겠나? 그쪽에서도 나름 내 사정을 봐줬다. 나는 아기를 얻었다. 아기도 자나 깨나 부장님처럼 이상한 소리를 낸다. 크으엑, 흐륵, 헤엑... 아기 보기의 삼분지일은 유튜브로, 삼분지일은 조리원에서, 삼분지일은 몸통박치기로 배우자와 함께 배우고 있다. 아기는 뭘 먹으면 트림을 시켜줘야 하는데 쉽지 않다. 들었다가 놓았다가 난리도 아니다. 속싸개는 왜 또 그렇게 어려운지, 가장 미묘한 문장보다 세심하게 가장 아름다운 문장보다 팽팽하게... 한 획만 틀려도 와르르 펼쳐지며, 그 속에서는 완전 미완의 새로운 인간이 발버둥치고 있다. 오늘은 좀 다른 트림 방법을 시도해 볼 참이다. 뺨을 잡고 등을 받치고... 뭘 어떻게 해주지 않아도 쉽게 트림이 나오는 부장들이 부럽다. 배우자가 지난 10개월간 인하우스 인간 생산을 도맡아 개고생하는 동안 나는 이것저것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지금은 뭔 육아 콘텐츠를 써보고 싶은 유혹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이 경험을 내 것으로만 두고 싶은 맘도 크다. 쓰기와 인간이 콘텐츠라는 틀거리 속에 한없이 모욕받고 있는 이런 시대에, 아기에 대해 뭘 쓴다면 그것은 그래도 되는 일인가? 아기를 얻었다 하고 말기에는 아쉽고 전부 다 쓰자니 하염없다. 지난 열 달간 아는 사람들이 나더러 기분이 어떻냐고 물으면 두렵다고 답할 도리밖에 없었다. 스스로에게 ‘육아는 인생 최대의 콘텐츠’라고 되뇌며, 아파트 거주자들이 주도하는 육아 문화-쇼츠의 홍수에 떠밀려, 성채 같은 아파트들을 전전하며 이것저것 당근을 해왔다. 지금은? 지금 인간은 모두 개새끼로 보이고 그 어떤 시발것도 두렵지가 않다. 아기는 기사고 나는 말이다. 작고 온기 있고 꼬물거리는 자신의 인간 아기를 처음 품에 안아보는 그 순간 생각, 인간이 모두 아기였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하고 한스런 일인가? 부모가 되어보면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분명히 그렇고, 부모의 마음은 선의 심연 속 악의 등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또한 아기를 왜 ‘얻었다’고 하는지를 알게 되고, 그리고 아기를 왜 ‘본다’고 하는지를,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를, 어째서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아지는지를, 부활이 무엇의 비유인지를, 쏟아지는 빛살을 등져 아기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듯 알게 되고... 아직 안팎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기는 더하고 덜 것이 없고 고칠 곳이 전혀 없군... 책보다 낫고 시집보다 낫군, 내 것이되 내 것 아니군... 읽을 수 없군... 유리관의 부활일기 같은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