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 31일 일요일

게시판 아래 모금통


모금통은 게시판 아래 선반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로 만들어진 작은 함이고, 뚜껑에 수확의 신을 뜻하는 기호가 그려져 있습니다. 별다른 잠금장치는 보이지 않습니다. 긴 안내문이 아래 붙어 있습니다.

2020년 5월 22일 금요일

곡물창고 모금통 관리평의회 초대 메시지 양식 및 모금통 관리평의회 공지문

초대 메시지


안녕하세요! 모금통 프로젝트를 위한 단톡방인 「모금통 관리평의회」 링크를 드립니다. 모금통 등록을 원하시면 입장 및 공지 참조를 부탁드립니다. 입장코드는 **** 입니다. open.kakao.com/******



공지문


환영합니다!
모금통 담당자 유리관입니다.
다음 사항을 공지합니다.

* ‘곡물창고 모금통 관리평의회’는 팀 블로그 곡물창고의 모금통 프로젝트 등록 필자를 위해 개설된 오픈채팅방입니다.

* 입장 코드는 ****입니다.

* 곡물창고에서 사용하는 필명과 오픈채팅방 닉네임의 통일을 권장합니다.

* 참여자는 격려금을 전달받을 수 있는 계좌번호를 등록(계좌번호 목록 공지에 댓글로 달아 주세요)해야 합니다.

* 원한다면 입출금 내역 확인 및 회계 감시 등을 위해 곡물창고 모임통장에 입장할 수 있습니다(유리관에 문의―카카오뱅크 가입 설치 필요).

* 모금통 등록 필자 외 인명의 초대를 금합니다.

* 모든 참가자에겐 기금 사용과 곡물창고 발전 관련 의견 제출의 권리가 있습니다.

* 그 외 잡담은 최대한 자제 부탁드립니다.

모두의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5월 21일 목요일

도인과의 대화


홍당무> 왜 인터뷰를 못하겠다는 거죠?
이도인> 개인적인 얘기를 인터뷰하면 오해를 살 수가 있으니까요.
홍> 지금 계신 곳에 누가 되지 않게 할게요.
이> 그래도 안돼요.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몇 번의 실랑이를 거치면서 난 녹음 버튼을 눌렀다. 그가 입을 열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화장실에선가 본 주문을 읊었다. 한자가 희한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훔치훔치.

그랬더니 뜻밖에 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내가 기억해 낸 주문은 그와 다른 쪽의 것이었나 보다.


― 인터뷰 전문 웹진 『퍼슨웹』에 게재된 2000년도 기사,
「홍당무, 초보 도인(道人)만나다」 중

2020년 5월 8일 금요일

[17호 서신]


*환절기
- 기후위기 폭염 대비 철저.
- 환절기 식중독 주의.

*새로운 알림판 알림 양식 시범 적용 기간 종료
- 알림판 입하 알림 시 게시글에서 1~3문장 발췌 요망.
- 매주 일요일 오후 10시, 알림판에 입하 현황 보고 시작.

*곡창 3.0으로의 운명을 건 도약
- 슬로건 수정: 필자에게는 자신의 글이 으뜸가는 보상이며, 독자에게는 시간 말고 다른 값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 플랜 콜호스(가) → 모금통 프로젝트(준)으로 구체화. 하지 전 개시 추진.

*붙임
- 현재 일부 이용자들이 곡물창고 후원 시스템의 도입을 준비 중이며, 관리실에서도 이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하는 창고발전위원회 논의 사항을 바탕으로 필자 유리관이 주관하여 작성한 기획안입니다.


「모금통」 프로젝트

배경: 곡물창고 건설 4해째, 전자문예 분야 동종 사업체들의 역내 진입으로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곡물창고에도 다음 단계로의 도약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옴.

개요: 능력에 따라 쓰고 필요에 따라 읽는 곡물창고의 암묵적-핵심적 정신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창고의 중심지도력인 정예독자진의 참여 활로 확보와 도탄 상태인 필자들에 대한 독려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곡물창고 특색의 후원 시스템인 ‘모금통’ 프로젝트를 추진코자 함.

목표: 필자와 독자를 아우르는 전체 이용자 상호작용을 가능케 하는 경험 체계를 도입하고 곡물창고의 발전 잠재력(오까네)을 조성.

운영계획:
  1. 준비와 개시
    곡물창고 격려금계좌를 개설합니다.
    곡물창고 창고발전기금계좌를 개설(또는 별도 보관 방안 강구)합니다.
    창고의 모든 필자에게 참여 여부를 물어 희망자를 별도의 모임방-모임계좌로 초대합니다(입출금 내역 확인용. 곡물창고에 등록된 필자는 상시 참여 신청 가능).
    프로젝트 담당자 명의로 ‘모금통’ 태그를 개설,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참여 필자와 격려금계좌를 공지합니다.

  2. 격려 단계
    누구나 곡물창고의 격려금계좌로 격려금을 보낼 수 있습니다.
    태그 격려: 입하를 격려하고 싶은 태그가 있다면 입금자명을 태그명으로 바꿔 격려금을 보냅니다(이하 ‘격려’).
    격려금 입금이 확인되는 즉시 알림판에 공지합니다. (곡물창고가/ㅇㅇㅇㅇ태그가 격려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그명을 분간할 수 없는 경우(필자명만 적시한 경우 포함), 격려된 태그의 필자가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경우(창고에 현재 등록되어 있지 않은 필자의 태그가 격려된 경우 포함) 격려금은 창고발전기금(이하 ‘기금’)으로 들어갑니다.
    원한다면 이미 완결된 태그를 격려할 수도 있습니다.

  3. 전달 단계
    태그명으로 들어오지 않은 격려금은 기본적으로 기금에 들어갑니다.
    그달 격려된 태그의 게시물이 말일까지(=익월 1일 0시 전까지) 입하됐다면 그 필자에게 격려금이 돌아갑니다.
    격려-입하의 순서는 격려금의 전달과 무관합니다. 같은 달이기만 하면 해당 태그 게시물이 입하된 이후의 격려금도 그 필자에게 전달됩니다.
    그달 격려된 태그의 게시물이 말일까지 입하되지 않았다면 격려금은 기금으로 들어갑니다.
    공용 태그가 격려되었을 경우 그달 말일까지 공용 태그 게시물을 입하한 필자의 ‘머릿수’대로 나눠 십원 단위까지 분배하며, 나머지 금액은 기금으로 들어갑니다(작성되지 않았다면 개별 태그의 경우와 같습니다).

  4. 보고 단계
    아무리 늦어도 익월 일주일 내로 모두 정산하고 들어온 격려금·전달된 격려금·기금 현황 등을 모금통 태그 글로 작성, 공개합니다.

  5. ※요주의점
    독자의 경우―‘격려’는 구매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지해야 하며, 따라서 환불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개별 필자가 아니라 곡물창고/태그에 대한 격려라는 점에도 함께 주의가 필요합니다. 원칙적으로 격려금은 곡물창고에 대한 후원이며, 격려인이 특정 태그를 지정하였고 그 달에 그 태그의 게시물이 올라왔을 경우에만 그 태그 작성자에게 완전 전달하는 것으로 규정합니다. 1개월 중 입금 시기를 달리하여 격려금의 성격을 어느 정도 표현(마감응원/선불독촉/후불후원)할 수 있으나, 필자에 대한 강제력은 없습니다. 분명한 후원을 원한다면 후원하고 싶은 태그의 글이 입하된 그 달에 태그 격려를 권장합니다.
    필자의 경우―자신의 태그가 격려되었다고 해도 당월에 당 태그의 게시물을 입하하지 않는다면 기금으로 들어갑니다. 격려금 입금과 게시물 입하 사이의 관계 설정에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소관에 달려 있습니다(예: 격려받으면 무조건 쓰기, 격려받으면 절대 안 쓰기, 격려를 격려해 ○○○원 이상 격려받으면 쓰기, 본인의 태그에 격려금 내고 쓰거나 안 쓰기, 신경 끄기 등등).

운영책임: 「모금통」은 공식적으로 필자 유리관이 무한책임을 지는 개별 태그이며, 곡물창고는 이를 지원하는 위치로 설정됨. 정산-보고 등 일체는 계절마감과 무관한 사이클(1개월)로 운영. 기금은 민주적 과정을 거쳐 곡물창고와 관련된 공적 목표[예: 다과회, 물품제작, 독자격려금(?), 관리비, 당월 입하 필자 일괄 뿜빠이 등등...]에 사용(구체적으로는 필요가 닥쳤을 때 모임방 등을 통하여 정함)하고 공개.


-이상에 대해 수정, 보충, 결사반대 등 여타의 의견이 있다면 적절한 방법으로 개진해 주십시오.

이상.

2020년 5월 4일 월요일

면피

선생님, 버섯이 자라기 시작했어요.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원인을 짐작할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원흉은 우리가 함께 만든 테라리움이었다. 테라리움 만들기는 조수에게 한 지역의 식생을 이해시키기 위한 실습 활동이었고, 재료로는 물론 한 지역에서 구한 흙과 물과 이끼만을 썼다. 우리가 사용한 이끼가 버섯 균으로 ‘오염’되어 있었고, 거기에 끼어 있던 버섯 균이 다른 화분에 옮겨붙은 것이었다. 정작 우리의 테라리움 안에서는 버섯이 자라지 않았다. 문제의 이끼를 그대로 넣어두었음에도. 외부 대기를 거의 차단하여 자체적인 기후 체계를 갖게 된 테라리움 내부에서는 자라기에 충분한 습도나 영양분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라리움 내부에서 버섯이 자라기 시작하면 그 안의 작은 식생이 틀어지고 말 것이다.

각설하고 실제로 자라난 버섯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첫째 날, 버섯은 희고 둥근 형태로 화분 테두리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조수는 바로 그날 버섯을 발견했다. 테라리움을 만든 이후부터 조수는 그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테라리움 바로 곁에 있는 커다란 화분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모르고 넘어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떻게 할까요?

며칠은 그대로 두고 보자고 했다. 조수는 동의했다. 둘째 날 화분 위로 조금 더 솟아난 버섯은 한쪽 모서리가 특이하게 긴 삼각뿔 모양이 되었다. 한쪽 단면에서 작고 둥근 흠집 같은 것이 한 쌍 발견되었다. 강낭콩 모양에 대칭을 이루고 있는 흠집이었다. 그래서…… 이건 마치 사람의 코 같네요. 조수가 말했다.

그러므로 셋째 날과 넷째 날, 그 이후에 일어났을 일을 이제 당신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광대와 눈썹뼈, 입술과 턱이 천천히 화분 밖으로 밀려 올라왔다. 버섯이 자람에 따라 화분의 원래 주인이었던 식물은 (박물학과는 별개로 그저 재미로 기르는 것이다) 조심스럽게 파내 다른 화분으로 옮겨 주어야 했다. 버섯은 다섯째 날쯤에 완전히 사람의 얼굴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형태로 자라났는데, 특유의 창백한 빛깔 때문에 밀랍으로 만든 데스마스크처럼 보였다.

여섯째 날에 버섯은 눈을 떴다. 눈동자도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밀랍 색이어서 눈 뜸과 감음의 차이는 크지 않았으나, 어쨌든 눈꺼풀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움직인 것이 눈꺼풀만은 아니었다. 버섯의 입술이 열렸다. 마침내, 라고 해야 할까.

종말이다.

버섯은 그렇게 말했다.
이러한 생물군이 있다.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실질적인 지혜나 신성력 같은 것과는 별 상관 없이, 인간-또는 숙주에게 부정적인 암시를 주어 파괴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생물들이. 그중 몇몇은 영향받은 인간이 벌이는 행위를 통해 먹이를 얻거나 번식을 하거나 더 나은 환경으로 이동하는 등의 이로움을 꾀하지만, 그 나머지 대부분은 자기의 생존과 아무 상관 없는 이유에서 인간에게 그런 암시를 준다. 그렇다면 그것은 유희인가? 오락인가?

버섯이 인간의 얼굴 모양으로 자라는 것은 기이한 일인 한편 그다지 의미부여를 할 만한 일은 못 된다. 우리가 테라리움을 만들기로 한 것, 우리가 박물학자와 조수인 것, 우리가 각각 박물학자와 조수가 되기까지의 시간, 총체적으로, 우리가 우리인 것과 버섯이 사람 얼굴 모양인 것은 서로 개연되지 않는 무작위의 사실이다. 물론 버섯이 하는 말도 그러하다.

버섯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떠오르는데, 그중 내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버섯이 귀까지 자라도록 내버려둔 다음 (아마 여덟째 날 정도면 귓바퀴가 완전히 흙 밖으로 빠져나올 것이다) 귓구멍에 대고 엿이나 처먹으라고 말한 다음 화분째로 불사르는 것이다. 조수는 이 버섯을 보존하기 위한 새로운 테라리움을 마련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 화분에서 솟아난 사람 얼굴을 찢어지지 않게 뜯어낼 수 있다면 그러라고 했다. 아마도 여덟째 날에 조수는 내 판단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쥐잡이의 대모험

오랜만에 찾은 창고는 그대로였다. 알림판을 살펴보았다. 역병이 돌고 있는 때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뒷마당의 동백나무 앞에서 괜히 떠난 사람들 생각이 났다. 예브게니, 조라, 휘, 오그오헤, 타라... 언제쯤이면 ‘떠난 사람들 생각’이 그칠까? 내가 떠나면. 우리가 어디로 떠난다는 걸까? 우리의, 떠난 사람들이라는 기억 속으로. 이것이 이승과 저승으로 우아하게 임의구분된 연속체의 구조이며, 사후세계라는 오래된 비유의 실지다. 우리는 떠난 이들의 저승에 태어났고 오는 이들의 저승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 왜 이런 생각까지 줄지어 날까? 떠난 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거 맞지? 어딘가에 이 얘기를 적어 두자고 생각하고 있을 때, 소독통을 멘 관리인이 밖으로 나오며 손을 쳐들었다. 마스크를 벗는데 어쩐지 표정이 밝았다. 그 이유는 곧장 알 수 있었다. 뒤로 꼬리를 치켜세운 이사야가 따라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식상한 관용구처럼 눈을 비볐다. 이사야가 돌아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서는 아니었고, 이사야가 반으로 잘릴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저 순간 그렇게 보인 것이 아니라 확실히, 쥐잡이의 길다란 허리 한가운데 손가락 한 개가 들어갈 정도의 틈이, 꼭 세상에서 빠져나간 듯이 사라져 있었다. 이런 걸 분명히 어디선가... 오랜만이네. 잘 지냈나? 아, 네. 관리인의 다리에 자꾸만 머리를 받는 이사야를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듬는 척하며 슬그머니 ‘그 부분’을 만져 보았다. 이쪽이야말로 괜찮은 건가? 이사야의 단면은 무지개색이었다. 쪼그려 앉은 채로 어, 음, 하고 있자 관리인은 이상한 줄무늬가 생겨서 왔어, 하며 허허 웃었다. 그 웃음까지를 포함해 모두 어디선가 겪은 것 같았다. 나는 진실로 기묘한 기분에 휩싸여 일어섰다. 기묘한 기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 같았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