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30일 수요일

사연 위조꾼

꾼이라뇨. 위조 전문가라고 정중하게 불러주십시오. 물건에 얽힌 사연을 위조하는 게 저의 일입니다. 일종의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죠, 소설가와 비슷한 부류랄까요? 제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단 말씀이시죠? 자, 여기 팔방으로 다채로운 광휘를 내뿜는 아름다운 크리스털 브로치가 보이시나요? 공들여 세공한 것이 틀림없는 물건이죠. 이 크리스털 브로치의 주인은 보스턴에서 살던 베키라는 할머니입니다. 베키의 손녀에 따르면 이 브로치는 1950년대의 물건이고요. 이 브로치는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이 착용했을 법하게 보이긴 합니다만, 잘 살펴보면 이 화사하면서도 고도로 절제된 멋이 미국에서 탄생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건 뭘까요? 베키는 본래 영국인인 미국 이민자입니다. 영국으로 비지니스를 온 남자―그의 남편을 따라 낯설고 무례한 땅인 미국으로 건너와 무턱대고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 베키. 그의 새 인생은 마냥 아름답고 행복했을까요? 물론 아니었겠죠? 그는 곧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 시대의 보통 미국인답지 않게 베키의 남편은 아주 정중하고 다정한 신사였으나, 그의 따뜻한 배려조차 베키의 향수병을 낫게 하진 못했습니다. 베키는 시체가 되어서라도 대서양을 건너 고국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자살 충동에까지 빠졌습니다. 더 이상 이러다간 큰 사달이 나겠다 싶었는지, 남편은 베키를 데리고 일주일간의 영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런던 거리는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베키는 런던 거리를 거닐며, 런던 사람들의 삶을 텅 빈 해골에 비유한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작가는 순 엉터리라고 생각했죠. ‘이렇게 아름다운 해골들이 세상 어디에 있겠어!’ 베키는 거리를 거닐며 어느 가정집의 창문을 몰래 들여다봅니다.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입니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원탁에서 체스를 두고 있고, 어머니는 갓난아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정시에 도착하는 도심 속 열차,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텔레비전! 도심 곳곳에는 아직까지 대전의 상흔이 남아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것들이 모두 지난 상흔에 불과하며 지금은 안전하고 전에 없이 풍요로워졌다는 그 감각 때문에 런던 전체는 평화로운 활력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베키는 이 활력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영국의 멋을 대표하는 빈티지 주얼리 숍을 찾았습니다. 이 크리스털 브로치는 그때 베키가 느꼈던 활기찬 고향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물건이랍니다. 베키의 손녀는 베키가 더없이 아끼던 이 브로치를 부디 소중하게 간직해달라고 전했습니다. 이 물건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나니 어떻습니까. 물건이 조금 특별하게 보이지 않나요? 이제 제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버지니아 울프.


2020년 9월 27일 일요일

계룡이

 






PLA (PolyLactic Acid) 필라멘트
3D 프린터 제작
2시간 15분 소요

강상준 작품

2020년 9월 18일 금요일

자네, 유령을 아나?



선생의 업무 강도는 높지 않다. 잡무가 많을 뿐이다. 잡무의 연속에서 모든 선생은 자신이 잡무 자체가 되는 걸 깨달으며 교무실에서 아이들의 공책을 뒤적인다. 부모는 알아볼 수 없는 글씨를 선생은 알아볼 것이다. 자신이 뭐라 쓴 건지 모르는 아이들의 글자를 유추하는 것도 쉬운 일이다. 오래 들여다보면 저절로 열리는 글자가 있는 법이다.

첨삭을 하는 것도 잡무에 속한다. 어렵지 않으나 딱히 보람을 느낄 일도 아니다. 가끔 웃기고 가끔 영특한 글을 읽는 재미가 있다. 열 권의 노트를 빠르게 해치우고 다음 공책을 펼친다. 편지 형식의 글을 적으라고 한 적 없는데, 강상준은 보란 듯이 한선생에게, 라고 적은 숙제를 제출했다.

“한선생에게.
나는 상준이야. 자네 유령을 아나?”

아이들의 이상한 화법은 종종 이렇다. ~했습니다, 하다가 바로 했다, 로 변한다거나 선생님, 제가 그랬다요? 꼭 요를 붙여야 존대를 한다고 착각한다거나, “제 동생은 저한테 이것이 제 형이에요.”라고 말한다고 떠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 건 결코 빠뜨리지 않는다.

아무튼 유령이라. 나는 유령이라는 단어를 안다. 단어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다.

“니가 요즘 심심하지? 최근에 내가 책을 하나 읽었는데 말이야. 켄터빌 저택에서 유령이 등장하는 이야기야.”

최근에 우리는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을 다뤘었다. 그들은 『캔터빌의 유령』외에도 『행복한 왕자』를 읽었지만 제목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동상에서 사파이어를 빼가고 제비가 날아다닌 거, 라고 말을 하자마자 어어? 하며 알아들었다. 그들에게는 저자의 이름이나 책의 제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 바로 그거.

상준은 캔터빌 저택의 유령이 사라졌다지만, 여전히 다른 차원을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이미 사라진 존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1차원과 2차원, 3차원과 4차원에서 계단을 이용하듯이 교차하는데 그건 사라진 존재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등장 방식이라고도 말했다.

“유령은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제일 기쁜데 그렇지 않으면 어떻하겠어? 내입장에서는 다른 방법으로 더 무섭게 할거야. 온갖 전기를 끊어버린다던가, 물어 뜯으러 다닌다던가, 아니면 놀라운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믿기지 않을 수 있기에 그는 자신이 본 유령의 모습을 그림으로 첨부한다고 했다. 



































나는 도무지 이들의 서사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믿는다. 저절로 만들어지는 유령도 있는 법이다.

한선생은 밑에다가 굳, 이라는 단어를 적어주고는 빠르게 첨삭을 마쳤다.

2020년 9월 16일 수요일

처마

우리는 창고의 흰 처마를 보고 있네. 가을로 넘어가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네. 쥐잡이는 꼬리로 바닥을 때리네. 맑은 날에 털었던 담요를 꺼내네. 팔에 소름이 돋는다. 그 위로 담요가 덮인다. 절대로 죽지 않는 집짐승이 이리로 올라오네. 꼬리로 이 배를 두드리네. 이따가는 차를 내려볼까? 죽은 잎들에 물을 부어?

어때? 이게 뭔가요? 시를 한 편 써봤어. 이런 취미도 있나요? 요즘은 시심이 동하는군. 뭐가 동한다고요? 나도 한때는 시집 깨나 읽었는데. 잘 모르겠네요. 흰색이 아니잖아요? 시라니까. ‘쥐잡이’라는 건 어때요? 우리 말고는 잘 모를 것 같은데. 쥐잡이라고 하면 대충 뭔지 다 알지 않나? 각주라도 달까? 달 각주가 뭐 있어요. 그냥 고양이죠. 왜 말이 달라져. 요즘은 그렇네요. 관은 입을 다문다. 쥐잡이가 관의 무릎으로 올라간다. 담요가 덮여 있다. 컵에서는 아직 김이 오르고 있다. 우리는 창고의 흰 처마를 본다.

2020년 9월 1일 화요일

우리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자


“선생님, 우리는 장례식에 왜 못 가요?”

아이는 축구화의 끈을 야무지게 묶다가 묻는다.
“왜 못 가는 것 같은데?”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하는 것. 선생의 답은 단순하다. 몇몇 아이들은 눈치를 보다가 “저희가 뛰어다니고 시끄러우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얼마나 많은 어른이 그들에게 눈치를 줬을지, 또 그걸 알면서 잘도 뛰어다녔을지 가늠이 되는 대목이다. 그들은 객관화가 제법 이루어지기 시작한 모양이지만 때로는 정서를 보호한다거나 너희의 액운을 면하기 위한 관습이라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로 보였다.

“호상이라면 갈 수 있지. 잔치 같은 분위기일 수도 있고.”

처음 질문을 했던 아이는 “저, 사실 가본 적 있네요.” 하고 대답했다.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그는 증조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느릿하게 꺼냈다.

“증조할머니는 나이가 많으셨는데요, 치매가 있으셨거든요. 다른 가족들은 다 못 알아보는데 저랑 아빠는 알아보았어요. 할머니는 왼손이 없으셨는데.”

“윽? 손이 없어?”

“옛날에는 소에 여물 주다가 그런 경우가 많았대.”

아이들은 모두 집중하고 들었다.

“아이는 저 혼자였어요. 한 손으로 저를 오래 잡았고...... 잊었는데 방금 생각난 걸 보니 묘하네요.”

아이의 묘하다는 표현은 어떻게 해석이 가능할까. 주변 아이들이 공감을 하는 ‘묘하다’에서 선생은 그들이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지 그저 어림잡아 짐작해볼 뿐이었다.

마침 며칠 전에 읽은『우리 함께 죽음을 이야기하자』가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저자 게어트루트 엔눌라트는 어린 시절 실제 남동생의 사고와 부모의 자살을 겪었다. 그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죽음에 대한 어떤 질문과 답을 하면 좋을지 고심한 흔적이 담겨있는 책이기도 하다. 훗날 도움이 될까 싶어 뒤적여봤지만 애완동물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 형제 자매, 예고 없는 죽음, 자살 등, 서양의 문화적 차이나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구분 짓고 이야기를 꺼내기가 만만치 않은 사례가 많았다.

주변의 죽음을 겪은, 아이의 상실에 대비하는 어른의 자세. 선생은 아직 이런 말을 해줄 여력이나 들을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죽음을 가볍게 던진다. 캐치볼이라도 하는듯 작은 글러브로 쉽게 받아낸다. 강의실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는 있을까. 다시 남자 아이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선생님, 그런데 하남집은 좋아하세요?”

하남집은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인지 고심을 하자 옆 친구들이 “아, 하남 돼지 고깃집 말하는 거예요. 거기 유명해요.” 떠들었다. “저는 거길 좋아하는데 엄마는 안 좋아해요.” 그는 재빠르게 죽음을 잊었고 친구들은 “슬프겠네.” 대답해주고는 자신이 먹은 점심 메뉴를 자랑했다.

선생이 떠난 교실에는 “아, 배고프다. 거기 명이나물 맛있는데.”라는 말이 오가고 있었고 선생은 그제야 자신이 한 끼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20년 8월의 모금통

메시지 모음

애틋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1 (25)
―――
박물지: +1 (2)


이달의 총격려금

3,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29일 / 3,000원 ― 박물지 애틋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박물지 [入] ☞ 3,000원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118,592원 (0원 + 118,538원 + 54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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