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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1일 수요일

징후

 

비가 올 것 같은데, 네가 말한다. 나는 우산을 챙긴다. 화창한 날이다. 비를 기다리는 중이다. 시간이 흐른다. 

2025년 6월 7일 토요일

산불

산에서 불이 났다.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이 산으로 간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보다 구조를 하려는 사람이 더 많다. 나는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불을 좋아하는 곤충들이 불 속으로 뛰어드는 걸 보면서. 나도 불이 싫지는 않다. 헬기가 물을 퍼와서 물을 붓고, 다시 물을 퍼와서 물을 붓고, 물을 퍼와서 물을 붓고, 불은 고요하다. 불은 아무런 동요도 없다. 나는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구조를 하려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한 듯하다. 연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 여기 있어요. 여기 사람이 있어요. 여기요. 마음 속으로 외친다. 불을 좋아하는 곤충들이 날아와 왜 거기 있냐고 묻는다.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하지만 불이 싫지는 않다. 불이 깨끗하게 나무를 지우고 깨끗하게 나방을 지우고 깨끗하게 풀을 지운다. 깨끗하다. 나도 깨끗하게 지워질 것이다. 불이 번져서 다른 산으로까지 번진다. 나는 아이를 깨끗하게 지운다. 나는 이런 날씨를 너에게 주고 싶지 않다. 헬기가 물을 퍼오다가 말고 생각에 잠긴다.

2025년 5월 22일 목요일

깨우고 사라지기

 

누군가 나를 깨웠는데, 일어나보니 아무도 없다. 누구였지.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여기가 어디지.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잠이 깼는데,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놨는지 모르겠다. 내가 직접 걸어왔을 수도 있다. 목이 말라서 물을 마시려고 보니 누군가 이미 사용한 컵이 있다. 내가 마신 걸 수도 있다. 어제는 날씨가 좋았다고 한다. 나는 양말을 빨랫줄에 널고 햇볕에 잠을 자는 비둘기를 본다. 비둘기를 깨우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나를 깨웠는데, 일어나보니 날씨가 좋다. 나는 잠깐 벤치에 앉아서 숨을 돌린다. 숨을 돌리는 사이에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렸는데 고개를 돌리니 아무도 없다.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누군가 자신의 여행기를 친구에게 들려주고 있다.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다. 비둘기가 꿈을 꿨을 수도 있다. 비둘기를 깨우고 사라진 사람이 나였을 수도 있다.

2025년 5월 19일 월요일

태풍

태풍이 온다고 해서 창문을 닫았다. 이 집은 오래된 집이라 창문이 많이 흔들린다. 창문 사이에 고무 같은 걸 끼우면 덜 흔들리지 않을까.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이면. 태풍을 기다리다가 잠이 든다. 태풍을 피해 차들이 유턴을 한다. 거기로는 가지 말라고. 거기는 태풍 피해가 극심한 곳이라고. 누군가 내 팔을 붙잡고 거기로 가지 말라고 외친다. 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때문에 나는 잘 듣지 못한다. 뭐라고 했어. 창문 닫으라고. 창문을 닫고 외출을 자제해 달라고. 나는 사람들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뭐라고 했어요, 방금. 거기로 가면 태풍의 눈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나는 태풍의 눈이 보고 싶다. 그 눈으로 나를 보고 싶다. 외출을 하려고 집을 나왔는데, 집이 송두리째 날아가고 있었다.

2025년 5월 13일 화요일

천둥과 번개

 

천둥과 번개가 치는 꿈을 꿨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천둥과 번개가 치고 있다. 우박이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 다시 잠을 잔다. 그러고 보니 심장이 뛰는 소리 때문에 잠을 설친 것 같다. 비를 맞으며 걷고 있을 때 나는 잠을 설친다. 번개가 칠수록 더 깊은 잠 속으로 빠지는 것 같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는데 비를 맞은. 비를 피해서 가렴. 너무 높이 날지는 말고. 새에게 작별을 하고 새의 뒷모습을 보며 서 있었는데 새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 보지는 못했고, 새의 표정이 궁금해서 기상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되고, 안타까운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데, 그 사람은 표정이 없었다.

2025년 5월 12일 월요일

지진

지진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유래에 없는 지진이었다. 이제 기상학자들은 기후를 예측하지 못하게 되었고, 출근을 하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 아무것도 예전과 같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순간을 목격했고, 두려웠으며,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지진이 멈추기를 기다리면서 하필 지진이 난 순간에 누워 있었으며, 하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으며, 천장의 형광등이 흔들리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다가 천장이 내 위로 쏟아질 것 같았고, 빨리 몸을 일으켜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나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아마도 그 꿈에서 깨지 않고 싶었던 것 같다.

2025년 5월 9일 금요일

기둥

 

그런데 내가 그 건물에 들어갔을 때 그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을 보았을 때 그건 내가 오래전에 본 건물의 기둥을 연상시켰고, 그런 기둥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얇은 기둥들이 하나로 합쳐져 기둥을 이루는, 마치 나무처럼 보이는 그런 기둥들이 이 천장이 높은 건물을 지탱하고 있다는 생각과 이 건물은 무엇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으며 무엇이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숨기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건물을 나갈 때에는 건물을 들어설 때와는 다른 마음이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사진으로 찍을 수 없는 높은 건물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계단을 들어갈 때 발걸음은 쿵쿵쿵 온 힘을 다해 걷듯 걸었지만 이제 그녀는 최대한 사뿐히 걷기 시작한다. 가끔은 뒤뚱뒤뚱 걸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사뿐히 걷기 시작하게 되면서 그녀는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었고 사뿐히 걷는 것의 장점은 수도 없이 많았는데 예를 들어서 잠든 사람 몰래 집을 빠져나간다거나,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고 방에서 빠져나갔지만 갑자기 잊고 온 물건이 떠올라 다시 들어간다거나, 다시 들어갈 때 잠든 사람이 깨지 않은 걸 보면서, 이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멈춰 있다거나, 모르는 사람과 하룻밤을 보내는 건 꼭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이 잠든 사람을 이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잠든 사람을 깨우지 않으려고 책상에 있는 라이터를 가지고 다시 사뿐히 걸어서 나올 때, 그녀는 집을 나서면서 다시 자신의 걷는 방법의 변천사를 생각했고, 사뿐히 걸어서 지루한 수업에서 빠져나온다거나, 일을 하다 말고 집으로 간다거나 하는 일은 무사히 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걷다보면 꼭 꿈을 꾸는 것 같고, 꿈속에서는 왜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지, 꿈속에서마저 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지 생각하면서, 꿈 속에서 사뿐히 걸어서 빠져나간다.

2025년 5월 7일 수요일

베개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침대보를 새것으로 바꾼 것이다. 매트리스 커버를 벗기고 이불 커버를 벗기고 베개 커버를 벗기고 매트리스 보호하는 커버까지 벗기고 다 세탁기에 돌릴 것이다. 덧니였는데. 덧니가 어딘가에 있었는데, 노란 덧니까지 세탁기에 다 넣을 것이다. 그것이 가장 먼저 한 일인데, 두 번째로 한 일은 창문을 연 것이다. 여기 어딘가에 다른 사람 냄새가 있다. 창문을 연 뒤에 가장 먼저 한 것은 거리를 내려다본 것이다. 뒷모습을 본 것이다. 새 이불을 덮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그런 뒤에 가장 먼저 한 생각은 네가 같이 간다는 그 사람이 누군지 물어보지 않은 것이다. 세탁기를 돌리고 덧니 같은 게 세탁기에서 나오면 잠시 웃고 버리면 되는 것이다.

2025년 5월 2일 금요일

4일간의 휴일

 

 4일간 휴일이 생겼다. 노동절인 5월 1일을 포함해서. 사람들은 4일간의 휴일 동안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운다. 날씨가 좋다고 하는데 바다가 있는 북쪽으로 기차를 타고 가볼까. 아니면 근교의 xx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도시를 방문해볼까. 4일간의 휴가가 생기자 모두 관광객으로 변신한다. 

너는 바쁘겠지.

4일간의 휴일이 생긴 뒤에 세상에는 바쁜 사람과 안 바쁜 사람이 생긴다. 

너는 그래도 즐겁게 일을 하겠지. 

너는 사람들과 잘 지내니까.

너는 네가 실패했다고 부르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려고

여름에는 너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하려는 계획을 하고

너는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겠지.

너는 빵을 사러 오는 관광객들에게 싫은 표정 짓지는 않겠지.

너는 예의가 바르니까.

나는 늦잠을 잔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물을 마시고 

너는 일찍 일어났겠지. 새벽에. 빵을 만들어야 하니까

내가 너에게 편지를 쓰는 동안

너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 

나는 4일간의 휴일 동안 밀린 편지를 쓸 예정이다.

 

2025년 3월 31일 월요일

소리들

기분이 이렇게 오묘할 때에는. 아니, 나는 방금 오후부터 계속 들리는 저 소리들. 아이들이 도로에서 공을 차고 노는 소리. 소리 지르는 소리. 그리고 이제 해가 져서, 엄마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런 소리는 아무 데서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 소리가 얼마나 소중한 소리인지 생각하면서, 옛날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애들이 하나둘씩 엄마나 아빠 목소리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걸 보면서, 나는 왜 이름이 안 불렸을까? 나는 스스로 집으로 돌아갔다. 애들이 다 가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문득 뒤를 돌아서 놀이터를 보면, 우리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고, 우리는 내일 다시 저기로 오게 될까. 어두워져서 그런지 왠지 차가운 흙들. 검은 모래들을 보면서. 내가 놀던 곳이 정말 저기가 맞나? 못 알아보게 되었다. 잠깐 사이에 말이다. 요즘은 정말 이렇게 아이들이 밖에서 아무 놀이나 하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놀이터 같은 데서 말고, 그냥 길거리에서 말이다. 동네 거리에서 말이다. 놀이터에서 노는 건 왠지 재미가 없다. 놀라고 하는 데서 놀아야 하는 것처럼. 저렇게 그냥 아무 거리에서 아무 놀이나 하는 게 정말 재미있어 보인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쟤들이 몇 시간 동안 저렇게 놀았는지. 내가 엄마 같은 마음이 되어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도 되지 않았니? 라고 물어 볼 수도 있었겠지. 나는 책을 읽으려다 말고 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멍하게 있는다. 책이 중요한 게 아니다. 저 소리가 중요한 것이다. 근데 나는 저 소리를 평생 기억하고 싶은데. 기억 못 하겠지? 기억 못 해도 되겠지? 이제 애들이 다 집으로 돌아갔다. 바깥도 조용해지고. 너희는 곧 저녁을 먹겠구나. 뭘 먹을까? 내일도 저기서 놀까? 근데 내일은 내가 집에 없으니까 못 듣겠지. 여기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나는 이거면 충분할 것 같다. 너희들 노는 소리 들으러 여기 온 것 같다.

2025년 3월 1일 토요일

찾는 사람과 안 찾는 사람

찾는 사람들에게 개는 신발이다. 개에게 신발을 신기고 얼굴을 손바닥으로 치면서, 집에 있으면 게을러진다. 게으름에 대항해서 무언가 해야 할 텐데. 밖으로 밖으로. 옷을 챙겨 입고. 갖춰 입고. 그래도 너무 지저분한 모습으로 나갈 수는 없지. 꾸민 듯 안 꾸민 듯. 그게 이제는 유행이다. 더 빨리 더 빨리. 쟤보다는 빨리 가야지. 더 좋은 건 몰래 먹고. 쟤가 모르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것, 쟤는 이미 한물간 유행을 따라가고 있고, 나는 걔보다 한 발짝 더 앞서 있다는 사실에 빙긋 웃으면서. 이런 순간에는 게으르게 집에 있어도 왠지 분위기가 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더 그렇다. 비가 오는데 개가 내 옆에서 잠을 자고 있고, 나는 어쩐지 기분이 좋다. 사람들이 나를 따라 하는 것이지 내가 사람들을 따라 하는 게 아니다. 바람은 개집으로 숨는다. 나는 숨죽여 그걸 본다. 안 찾는 사람들에게 트렁크는 신발장 밑에 있는 어두운 공간이다. 거기에서는 바퀴벌레가 자주 나온다. 나는 그곳을 안 보려고 애쓴다. 바퀴벌레 말고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그곳을 보는 것이 무서워서, 그 안으로 들어간 신발을 눈을 감고 꺼낸다. 이 집에는 그런 구멍이 많다. 문틈에 난 구멍. 그건 그냥 오래된 집이라서 그런 것이다. 안 찾는 사람들에게 그런 구멍은 계산이다. 계산서를 청구하면, 계산서대로 돈을 내는 것이고, 계산서 안 내면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찾아온 사람들은 집으로 가지 않는다. 그들은 집이 없다고도 말한다. 이제 딱히 갈 곳이 없다고. 이렇게 돈을 받으러 찾아와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말이다. 찾는 것도 아니고 안 찾는 것도 아닌 사람들도 있다. 그 사람들에게 일요일은 월요일이다. 가장 좋아하는 요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월요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냐고 묻겠지. 왜냐고 물으면 그걸 묻는 이유가 뭐냐고 대답하면 된다. 이유가 없는 걸 알지 않느냐고. 저 멀리서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보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든다. 찾는 사람과 안 찾는 사람이 기차 안과 밖을 드나든다.

2025년 2월 11일 화요일

속도

 

 

 

쓰레기 더미가 건물들을 꽉 채우고 있고, 건물 밖으로도 삐져나와 있다. 도시는 폐허가 된 것 같다. 텔레비전에서 생물들이 살기 위해 바다를 향해 이동했는데, 그 속도가 어마어마해서 인간이 따라잡지 못할 속도라고 했다. 

2024년 11월 6일 수요일

눈물

 

 

오늘 말을 하다가 눈물이 났는데, 그 공식적인 상황에서 일부러 울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물이 났고, 그 눈물의 기원이 궁금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 눈물의 기원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눈물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하던 사람처럼. 하지만 나는 그냥 눈물이 나는 대로 눈물을 흘렸고, 우리는 굳이 그 눈물에 대해 분석하지는 않았다. 그 눈물은 어떤 과거와 관련된 눈물이라기보다는 그냥 흐르는 눈물이었다. 유년시절과 관련되지 않은 눈물이었고, 내가 하던 얘기가 과거의 얘기긴 했지만, 슬프지는 않은 눈물이었다. 눈물이 났을 때 당황하며, 어 내가 왜 이러지, 원래 잘 안 우는데, 그런 말은 하지 않았고, 그냥 눈물이 나는 대로 나게 두었다. 그는 나에게 눈물에 대해 묻지 않았는데, 휴지 같은 것도 건네지 않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잠시 말을 멈췄고, 눈물이 끝나자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창문이 바람에 열렸고, 밑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 지나간 뒤에, 나는 시계를 봤고, 이 시간이 끝나기까지 아직 시간이 좀 더 남아 있었다.

2024년 11월 1일 금요일

두 가지 일

오늘 두 가지를 알게 되었다.

하나는 A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몇 년 전에 일어난 일인데 그 일을 오늘 알게 되었다. A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아니면 병에 의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A가 죽기 전에 그에게 있었던 사건을 생각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 일을 오늘 어쩌다가 알게 되었는데. 어떤 사람의 삶이, 하지만 그는 나름의 이름을 얻고, 아마도 살면서 그 명성을 누리기도 했을 텐데, 이렇게 끝나버리고. 그에게 관심을 가질 사람, 그의 작품을 기억할 사람이 세상에 1백 명도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그 사람의 작품에 크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어떤 위치, 뭐랄까, 새롭고 독창적이라는 이름, 어떤 아이콘, 어떤... 아무튼 그런 타이틀을 달고 지내던 사람이 죽자, 그냥 그대로 끝나버리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작품들, 50년 100년 전의 작품들이 아직까지 살아 있는 걸 보면, 그의 그 독창적이고 새롭다, 라는 타이틀은 20년도 채 살아남지 못 하고 끝나버린 것이다. 허무하다. 모든 게 너무 빠르기 때문에, 빠르게 성공하고, 빠르게 타이틀을 얻고, 하루아침에 말이다. 그런 뒤에 빨리 끝나버린다. A가 죽었다는 사실, 그 사람을 직접적으로 아는 건 아니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 실제로 교류하던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까 그렇다고.

두 번째는 B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나는 B와 두세 번 만난 적이 있고, 그가 이 분야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하지만 오늘 우연히 B가 일하는 곳에 방문하게 되었고, 그가 거기서 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 B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 사람을 거기서 만날 것이라고 전혀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하지만 나가는 길에 B를 알아보았지만 굳이 아는 척은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그냥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오는 것이, 인사를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와 이런 일기를 쓰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에게 인사를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B가 거기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의기소침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B는 이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고, 어쩌다가 그 일을 하게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 분야를 전공하고 있고, B가 일하는 바로 거기 지원서를 냈으며, 아무런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B를 마지막으로 만난, 6개월 전에 우리가 이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B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오늘 그곳에서 일하는 B를 만난 것이다. 내가 지원하고 연락을 받지 못한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나는 그들이 내 지원서에 답장하지 않은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데, 바로 그 이유에서 B가 그곳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니 의기소침해졌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잘하지 못하는 어떤 분야를 공부하고 있고, 애쓰고 있는 반면에 B는 그 분야와 상관없고,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아무렇지 않게 그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항상 내가 이런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오늘 내게 일어난 일과 상관없이, 안 되는 일을 붙잡고, 진지하고, 항상 너무 진지해서, 그 일과 계속 멀어지게 되는 느낌 말이다.

두 가지 일을 알게 되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커피를 두 잔 마셨고, 마지막에 마신 커피는 조금 남겼다.

2024년 8월 10일 토요일

앨범

최근에 어떤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은 이상하게 잊어버리기가 힘든 일이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이없이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물론 그 어이없는 일이 정말 내가 지금 살아온 방향과 아무 관련 없이 일어난 일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 길로 가고 있었고 그 와중에 어이없이 좋은 일이 일어났다. 아무튼 그 어이없이 일어난 좋은 일이 정말 좋은 일인지 완전히 밝혀진 건 아니다. 아직 진행 중이다. 어디로 갈지는 알 수 없다. 최근에 겪은 어떤 일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근데 더 어이가 없는 건 내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내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중간에 무언가 배달이 안 되었거나, 내 이름과 다른 사람의 이름이 실수로 바뀌었거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건 없다. 그냥 내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뿐이다.

며칠 전에 앨범 커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A는 자신은 앨범 커버가 별로면 음악이 궁금하지도 않다고 했다. 나는 A가 이것도 별로고 저것도 별로고 그런 식으로 커버를 보고 음악을 고르는 걸 보고, 또 어떤 음악을 고르는지도 봤다. 그건 A의 취향이고 기준이다. 나도 앨범 커버를 본다. 근데 내가 앨범 커버를 볼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냥 디자인이 내 마음에 드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앨범을 다시 한번 봤을 때도 좋을까 하는 것이다. 그 앨범을 한 번 듣고 말 것이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계속 들어도, 계속 들어도, 계속 마음에 들 것 같은 앨범 커버 말이다. 그건 한 번에 알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앨범 커버는 대체로 처음에는 큰 인상이 없는 것 같다. 심심하다고 할 수도 있다. A는 아마도 그런 앨범 커버는 그냥 걸렀을 것이다. 그게 그 사람의 기준인데, 나도 내 기준이 있고, 누구의 기준이 더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아무튼 나는 A가 어떤 앨범 커버를 거르는 걸 보면서, 아...... 저 앨범 커버에 한 번만 더 기회를 줬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2024년 6월 16일 일요일

풀들

 

날씨도 좋아졌고, 이제 발코니에 풀만 심으면 될 것 같다. 이 풀은 그냥 풀이 아니다. 그냥 풀같이 보여도, 얘기하자면 길다. 아무튼 풀을 심으려고 보니 화분에 잡초 같은 풀이 자라고 있다. 내가 심은 건 아니다. 그냥 공중에 홀씨 같은 게 떠다니다가 어쩌다 보니 여기 자라게 된 풀 같다. 이끼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는 같은 풀처럼 보이지만 이 모르는 풀은 화단 같은 데 버리기로 한다.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히틀러를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내가 한 것이 약간은 그 사람의 정책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풀은 버리고 잘 검증된, 정체성이 확실한 풀만 발코니에 모아 놓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건 그런 발코니인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내 발코니에는 내가 선택한 풀들만 놓자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내” 집에는 “나”에게 검증된 것들만 들여놓겠다는. 그런데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집이 정말 어수선하다. 예기치도 못한 물건이 예기치도 못한 곳에, 예를 들면 커피를 만드는 모카포트가 화장실에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지금 생각하면 화장실에서 대변을 누면서 커피를 마시고 그것을 깜빡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것들이 섞여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듯했다. 나는 정돈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날 집을 청소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런 생각만 해도 피곤하긴 하지만, 구석구석 청소하고 정리하는 편이다. 정리를 위해 상자 같은 걸 사고, 이 상자에는 케이블 같은 걸 넣어야지, 이 상자에는 상비약을 넣어야지 하다가 상자들이 늘어나고, 만약 상자 하나하나가 제대로 통제되지 않으면, 상비약이 있어야 할 곳에 케이블이 있게 되면, 갑자기 기운을 잃고, 아무 상자에 아무것이나 막 넣게 되고, 결국에는 청소한 듯 보이지만, 그 상자들 속에 혼란을 숨기는 것과 다름없다. 아무튼 무슨 얘기 하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내 일상 속에 그렇게 아무렇게나 자라서 거기 자라고 있는 풀을 뽑아 버리는, 그래서 모든 것이 깨끗하고 깔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통제와 관리가 무섭게 느껴지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더럽고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게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건 무섭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 같다. 



2024년 3월 30일 토요일

건물과 구조

 

건물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건물 한가운데 홀이 있고, 홀이 지붕까지 향하고, 지붕은 유리 같은 , 비닐하우스에 쓰이는 비닐 같은 걸로 덮여있다. 홀을 둘러싸고 방들이 있다. 방들의 창문은 쪽으로 있다. 그래서 홀에서 나는 모든 소리는 공간에 울려 퍼지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홀에서 나는 모든 대화 소리가 들린다. 홀에서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단체로 듯하고, 단체가 아니면 사람이 같이 듯하다. 나는 왠지 주인에게 속은 듯한 기분으로, 그가 나에게 어딘가를 추천해 주고, 그곳에 갔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돌아왔는데, 왜냐하면 속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니 다른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고, 나는 배가 아프다고 해서 아침을 먹고 지금까지, 저녁까지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에 앉아서, 사람들이 식사하면서 하는 소리, 주인이 그들에게 아첨하는 소리(나에게는 그렇게 들린다) 듣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만약 프랑스 사람들이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프랑스어로 말한다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왜냐하면 자신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말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들의 백인성, 하지만 그건 사실 그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지, 피부가 하얀 것이 백인이 아니다, 그들의 백인성을 닮고 그들처럼 되려고 하고 그들처럼 말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백인성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백인성, 너무 당연한 듯이 자신의 식민지였던 곳에 가서 이곳은 저렴하구나 하면서 프랑스어를 하면서 프랑스에서 하듯이 바게트를 먹고, 왜냐하면 자신들의 식민지였으니까, 그곳에도 내가 매일 먹는 바게트가 있겠지, 그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 있겠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너희들의 입맛에 맞춰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모든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모로코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고, 나는 모로코에 가서 자랑스러운 모국의 언어를 것이며, 바게트를 먹을 것이고 저녁에는 와인을 마실 것이며,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것이며, 모로코 사람의 농담에 재미있는 사람이군 하며 웃을 것이며, 그를 친절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좋은 리뷰를 남길 것이며, 모든 것이 당연하게 생각된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다.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말하는 책

 


이 책은 아는 사람이 준 책이다. 아니다, 아는 사람이 나에게 준 책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준 책을 빌리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혼자 출판사 등록을 하고 혼자 책을 썼다. 그런 경우 가운데 어찌어찌 잘 알려지게 되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게 된 그런 책이다. 나는 갑자기 이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이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자마자, 첫 문장을 읽자마자 그 사람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몇 번 듣지 않은 목소리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를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이 책이 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사람을 판단하려고 한 건 아니다. 그냥 궁금했고, 억지로 읽을 생각도 없고, 하지만 책을 읽기가 어려운 건 책이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책과 너무 가까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다시 말하면 그 책에 쓰인 모든 것을 내 일처럼 읽을 수 있다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에 집에 있는 일요일 같은 날 문득 다시 읽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24년 3월 13일 수요일

등장인물

 


지난주에 그 영화를 다시 봤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본 영화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떤 인물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다른 인물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끊임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의 모든 사람이 다 되어볼 때까지 말이다. 물론 그러려면 영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되어본 뒤에는 A길로 돌아갈 수도 있고 B길로 돌아갈 수도 있다. A길은 도로와 가까워서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건물의 열린 창문들로는 울리는 전화벨을 들을 수 있다. 걷다 보면 그곳에 나무가 많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고, 정신을 차려보면 그곳이 여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걷다 보면 매연에 숨이 막힐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이름은…… 아마도 상자와 비슷한 종류의 이름이었다. 아무튼 그 이름을 듣고 병을 담는 상자가 생각난 건 사실이다. B길은 조금 더 외진 곳에 있다. 그곳으로 가면 아무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 B길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 B길을 지양하기도 한다.

2024년 2월 20일 화요일

침대

 

어두운 방에 앉아 있다. 날씨가 흐려서 낮에도 불을 켜야 하는 지경이다. 이 집은 2층에 있다. 창문으로는 맞은편 건물이 보인다. 아주 가까이 있다. 그래서 불도 안 켜고 앉아 있다. 어두운 곳에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밝은 곳에 있어도 마음이 편안하다. 하지만 어두운 곳에 있어도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항상 그렇게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내가 지금 이런 문장을 썼다고 해서 말이다. 아마도 그 문장은 평행하게 계속 살아갈 것이고 나는 내 길을 간다. 


빈혈이 있다. 방으로 들어서면서 갑자기 빈혈 때문에 침대로 들어간다. 지금은 오후 한 시이고, 그런데 집 안이 어둡고, 낮에도 불을 켜야 할 만큼 바깥이 어둡다. 하지만 지금은 불을 켤 수가 없다. 그냥 일단은 누워 있자. 얽히고설켜 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말이다. 한쪽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B는 힘없는 자의 입장이다. 하지만 다른 쪽에서 일어나는 전쟁에서 B는 오히려 힘 있는 사람들 쪽을 지지한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가운데, 가난하기 때문에,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인생에서 엄청난 불운을 겪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 가운데는 오히려 그런 일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고, 내가 힘든 일을 겪었기 때문에 세상에 똑같이 복수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있다. 빈혈 때문이 아닌 것 같다. 그냥 누워 있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고 사실 빈혈이 있긴 하다. 거짓말을 하고 집에 왔다. 사실 거짓말을 하고 일을 관두고 집에 왔다. 내가 잘하는 거짓말은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고향에 내려가야 한다는, 그런 거짓말을 하고 일을 그만뒀다. 사실 아버지는 돌아가신 게 아니라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갑자기 집을 나갔고, 집을 나간다고 하고 집을 나갔지만, 누구도 아버지에게 어디로 가는지는 묻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을 나간 다음 날은 평화로웠는데 왜냐하면 가족들은 아버지가 이 집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없었고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다. 몇 년 후에 내가 집을 나갈 때 가족들은 나에게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가 바로 그 집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들이 지키고 싶었던 평화가 뭘까? 서로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만 살아남는, 그건 왠지 독재하의 평화와 비슷하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