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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유리 유리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여러 번 진 것 같지만 어차피 나는 싸운 적도 없다.

휴가였다. 호수공원을 산책하는데 크고 낯선 오리가 아는 사람처럼 나를 따라왔다. 내 앞에서 오줌을 싸더니 삼 미터 정도 나와 눈 맞추며 걸었다. 길바닥을 적신 오리 오줌 위로 노을이 져서 빛났다.

빛나는 오줌이 그렇게 축축하고 예쁜 줄은 몰랐다. 손가락을 대어보면 따뜻할까 싶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병 걸릴까봐.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손뼉을 치며 오리야 이리 와 이리 와
하니까 오리는 고개를 돌리고 그를 따라갔다. 아주머니가 데크 옆에 난 아무 풀이나 뜯어서 주었는데 그걸 다 받아먹었다.

솔직히 오리가 조금 무서웠는데 안심되었다.
받아먹는 풀이 나에게 주어진 그대로 살기에는 너무 미끄러져.

어제는 애인과 대형 뷔페에 갔다.
외국인들이 주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먹고 남긴 음식을 끊임없이 처리하면서.
사장은 불투명한 유리로 최대한 가려두었는데 그래도 보였다. 하얀 세제 거품 속으로 음식 조각들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순간이.

뷔페의 그 많은 음식 더미는 우리를 일시적으로 배부르게 해주면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한없이 먹고 행복해지길 원하고
이렇게까지 먹다간 기절해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도 알려준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망설임 없이 오줌을 싸고
내 오줌을 빛나게 해야 할까?

치우는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아니면 거기 풀이 있기에 풀을 먹고 사는 삶.

2026년 2월 3일 화요일

허니콤

“베란다 바깥쪽에 붙어 있던 커다란 벌집, 아직도 있다. 꿀도 없고 벌도 살지 않는, 내 머리통만 한 벌집이다. 어쨌든 꽤 커서, 봄이 되면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다. 벌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하면,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지고 있다는 슬픔이다.”*

나는 이 슬픔을 신문지 구기듯이 뭉쳐두었다가 월요일마다 펼쳐보았다. 볼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지고 있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 슬픔을 포갠 접시처럼 쌓아 올렸다가 화요일마다 한 장씩 집어던져 깨뜨려 보았다. 그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졌다는 강화유리 같은 슬픔이었다. 나는 수요일마다 그 슬픔으로 남의 집 창문을 해 넣으러 다녔다. 그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슬픔의 단열이 너무 잘되어, 슬픔은 각자의 취미가 되어버렸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목요일마다 그 슬픔을 내 것으로 착실히 챙겨서 출판사에 취직했다. 슬픔을 교양서로 편집해 천 부씩 출력해서 금요일 아침에 전국의 서점에 입고했다. 무려 월급이 나오는 슬픔이었는데, 그럼에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당연히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완전히 지쳐서, 이틀을 꼬박 자면서 쉬었다. 빈 벌집 생각은 멈추고. 그런데 내가 정말로 멈출 수 있었을까? 자는 동안에도 과각성된 슬픔은 잠들지 못하고 육각형 결집을 시작한다. 벌집 만들기 경연대회가 있다면 단번에 우승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커다랗게. 당연하게도, 나 같은 일반인, 가해자, 한계 많은 동시대인은 슬픔으로 경연을 걸어서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슬퍼하는 사람들을 자꾸 이겨버린다.



*블로그 이웃 eaches님의 이야기다.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마른 꽃잎 하나가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몰라

어깨에 조금 붙어서
그의 하루종일을 넘겨다볼 뿐

이 거리의 사람들 다
가벼운 재질의 여름옷 입고 있는데
아저씨만 몸에 붙는
블랙야크 등산복을 입은 거예요

때는 밤이었고
사람들 어디로든
돌아가 쉴 곳 찾고 있는데
아저씨 가게만 밤새 거기 있을 것처럼
조명을 환하게 켜놓고 있는 거예요

간간이 오는 손님들은
그와 약간씩 대화합니다

꽃 이름 몇 가지 물어보고
감당할 만한 가격인지 체크하고
힘든 사람 위로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것
적당히 챙겨서 떠나지요

나는 어깨 너머로
아저씨가 권하는 아름다운 것

카라를 신문지에 싸주며
이게 더 낫다 말하는 것

라벤더의 꽃말은 “기억해주세요”랍니다
허허 웃으며
너스레 떨 줄 아는 것

하나하나 보고 배웁니다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는
뭐든지 겪고 있으니까

우연히 아저씨를 겪고 있어요

그가 견디는 박살 난 화분을
뿌리가 거꾸로 난 마른 식물을
흙과 뒤섞여 범벅된 바닥을
나도 견뎌봅니다

꽃집의 분위기는 적당히
아저씨 하고 있고
그나마 자신이 오래 해온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손님 맞고 식물 관리하는 일과
다 말라서, 그의 어깨에서 날아갈 때까지의 내가
남은 생애에 하는 일이
구별되지 않을 때가 좋습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나는 몰라요

그런데 아저씨를 한다면
그의 어깨 정도
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내게 아저씨 하라는 사람
세상에 아무도 없지만요

2025년 10월 25일 토요일

사랑니 뽑고 다음 날 아침

피를 뱉고 놀라웠다!

어떻게 몸에서
이렇게 역겨운 색깔이
나올 수 있지…

피부 아래엔
내가 먹은 빵과 풀 비슷한
자연적 색깔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일요일의 상한 굴
쓰러진 거인의 타액
너무 피곤해서 죽어가는 사람의 냄새가
절망처럼 뒤섞이고 있었다.

감은 눈꺼풀 속에서나 끈적거리던 기억이
세면대 위를 느리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스무 살, 나 같은 애들로 빼곡한 대형 강의실에서
교수는 어느 스페인 화가의 투우 동판화를 보여주었지.

정오의 뜨거운 태양 아래
창을 든 군중들이
소의 힘줄을 찢고 있었어.

한 사내는 장대를 들고
인생의 단독 무대처럼 사방으로
소의 등을 뛰어넘었다.

이 그림의 제목으로 말할 것 같으면…
「완전히 죽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였던가?

소는 자기 목숨만큼이나 짧은
그림자를 밟고 서서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공황에 빠져 있었어.

다 끝나기 전까지는 차라리
축제 같은 느낌이었고
은회색 그림 속엔
단색조의 긴장감이 흘러넘쳤어.

하지만 화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지.
교수는 그래서 예술가인 거라고 했어!

커브를 돌며 피하는 소의 등허리에
마지막 일격을 가했거든,
관중석까지 피가 튀자
그림 전체가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거든…

그때 내가 목격한 건
날카로운 철침으로 선을 새긴 뒤
산을 뿌려 부식시킨
금속성 폭력이었어.

나를 매달리고 애원하게 만드는 냄새,
나를 두 손 들고 굴복하게 만드는,
함부로 폭도 같은 피 냄새…

이제 나는 더
뽑을 사랑니가 없다.

마음속으로 여러 번
남의 등에 칼을 꽂고
거기서 멈추지도 않아.

살아서 움직이는 우유처럼
없는 상상을 하지 않아.

그런 건 내가 만든 시신들을
하얗게 표백할 때나 의미가 있다.

어제는 뭘 죽였을까?

잊어버리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해.

오늘 아침처럼 가끔씩
입안에 머금은 피를 생각하고.

2025년 9월 28일 일요일

쓸데없이

날카로운 모서리에서
서서

돈 벌기.
멀리 안 가기.
인생 보내기.

(이때 내가 좋아하는 바람이 분다)

내가 읽는 책은
좌절하는 느낌들에게
찬성표를 던진다

  1장. 빵 한 조각은 아무것도 아니다
  2장. 그 루프가 시작되면 산산조각 폭풍처럼
  3장. 신발 뒤축을 끌고 다니는 녀석들이 있다
  4장. 고무나무 잎에서 흐른 피
  5장. 우울 조리개를 개방하며
  6장. 버터가 된 H빔 호랑이의 투쟁

 감사의 말: 옥수수 수염 같은 부드러운 식물성 한 토막.

이 모든 걸 합친
잉여 쓰레기 늙은 여자 머리채.
  ―모서리 끝에서 굴려버린다.

세상에 아주 많은 평범한
굴러떨어진 죽음들이
이불 속에서 날 안아준다

내가 죽여놓고도 모를 죽음들이
나머지 생을 살아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오늘 밤
나는 잘 크는 아이다

잠들기 전 읽는 과학책에서:
  얼마나 많은 공룡이 석유 1리터에 녹아 있을까?
  왜 인간은 언제나 최첨단을 추구할까?
  나와 돌멩이의 공통점은?

물으며 나는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며 마구 자라버린다

아무것도 못 느끼는 하루가 많고
서서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급가속.

엄마가   물려준. 공포의. 지폐와
아빠가 만들어  준 적 없는. 잡채 사리가. 머릿속에. 한  가득.

자,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맥주를 마시자.
노란 밤 어른의 맥주.
언젠가 암 덩어리가 될 수 있는
어른의!
뭐가 흔들리지 않냐고?
  ―네가 생각하는 모든 것!

모든 것에는 속옷이 포함되어 있다
모든 것은 속옷을 입고 있다
내 몸은 모든 것.
남의 속옷을 입고 있다

(이제 머릿속에선 속옷이라는 바람이 분다)

나는 하면 할수록
허탈한 맥주를 마신다.

허탈한 맥주를 마시는
나에게 찬성한다.

그리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

(너도 속옷 바람이잖아)
(맥주 좋아하잖아)

2025년 7월 29일 화요일

고질적인 문제

지금만을 생각한다면
마음은 급하지 않아도 돼

늙어가는 개를 데리고 사는
친구가 말했다

자기도 늙어가고 있으면서.

친구네 개가 늙어가고 있다는 얘길
어쩐지 내 일처럼 듣고 있었다

휴게소였나? 생각해보면
화장실 앞 복도에 서 있을 때
다급한 얼굴로 줄 서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늙어가고 있었다

먼저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들의
오래 참은
피곤한 냄새를 맡으면서

이제 나도 그런 걸 많이 봤구나.

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면 친구네 개가
온 힘을 다해 컹컹 짖는다

나오라고,
이제 나오라고,

짖을 힘도 없으면서.

남의 집에 사는 젊은이들이 늙어서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결혼하지 않고
개와 함께 삽니다

매체에선 이런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한다

무슨 문제라도 되는 듯이.

문제 속에서 살게 하는 게
문제라는 걸 왜
자기들만 몰라?

친구가 짜증을 내자
너무 늙어서 지혜로워진 그의 개가
컹, 하고
동의했다

나도 하나의 입장을
내 옷처럼 입고
사회 언저리를 돌아다닌다

늙어가면서.
급속도로
늙어가면서,

하지만 어떡해?

나는 바람이 좋아!
그냥 생각한다

내가 겪은 모든 것을 지나서,

나는 구름이 좋아!
그냥 생각한다

2025년 7월 11일 금요일

나에게서

너 사공도를 아니?

나는 모른다
늙은 선생이 묻는
대부분의 것을

그런 선생이 오늘
또 하나를 가르쳐주겠다 한다

그에 따르면:

사공도(司空圖)는 중국 당나라 말기의 문인이자 시론가다.
웅혼에서 고고, 유동까지
스물네 가지 시의 풍격을 정리한 이십사품을 썼다.
그가 살던 시대엔 환관이 득세하고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난세의 사공도는 은거를 택한다.
이후 줄곧 조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고
시 창작에만 몰두하다
당 애제(唐 哀帝)의 피살 소식을 접한 뒤
곡기를 끊고 일흔두 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렇군
죽었구나

선생은 죽은 당나라 사람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쓰다듬던 머리통을 나에게 건네준다

너 시가 뭔지 아니?

죽은 사람의 머리를 붙들고 시를 생각하니

인간의 생각이 끝나고
시론가 귀신의 생각이 시작되는구나

“태화산 밤하늘엔 푸른 기운 감돌고
사람들 귀에는 맑은 종소리…”

대신 머리통이 입을 여는구나

발 아래에는

죽은 입이 왈칵
쏟아놓은 검은 물

물은
스물네 가지의
흔들리는 마음 모양이다

일흔두 살까지 시를 쓸 수 있었던
죽은 머리통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나는 목의 절단면을
살살 만지며 궁금해한다

사공도 얼굴이
선생 얼굴 될 때까지

사알살 만진다


*
장례식장 근처에 가면
비가 온다

청결한 건물에 들어섰을 때
나는 자연의 말에 따를 생각이었다

나는 죽음이 흔들고 간 분위기가 익숙하다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인생은 잘 모르겠다

주먹 쥐고 일어서…!
발로 차는 돌…!

나는 이런 비명들을
죽은 친구의 이름처럼 불렀다

빈소에 도착하자
내가 풀어놓은 비명들이
온몸에 달라붙었다

너무 살아 있었던
좋아하던 얼굴에서

쓰러진 의자 다리에 핀
곰팡이 냄새가 났다

그날도 비가 많이 왔다
나는 오늘까지 조용하다


*
집중해라

사공도의 열아홉 번째 시품은
비애(悲哀)가 아니다
비개(悲慨)다
슬프게 개탄한다는 뜻이다

선생은 사공도의 비개를 화폭에 옮긴
겸재 정선의 그림을 보여준다


그림 속에서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불지 않니?

칼은 있으나
쓸 수가 없지 않니?

이윽고 장사의 슬픔도
한 방향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네가 사는 방향도
한 가지인 것이다

선생이 사람을 읊는 동안

나는 그가 칼을 버렸기를 바란다
등에 나뭇잎 지고 돌아갔기를 바란다

그러나 온 데 없는 그가 어디로 돌아갔을 것인가
그것마저 말하는 경지가 비개다. 말하자면―

죽은 친구가 준 모자 쓰기
죽은 친구가 준 외투 입기
죽은 친구가 쓴 시 읽기

누가 나를 뜯어서
여기에 던져버리고 갔다

그렇다고 해도
손으로 쥘 수 없게 다 뜯어진
나를 원하는가?

나는 뜯어진 손으로
뜯어진 목을

사알살 만진다

죽은 네 냄새
나에게서 나라고

2025년 5월 6일 화요일

오물분수

오물분수야, 너는 붙잡은 잠을 놓치게 한다. 세상의 찌꺼기들 그러모아 천국 향해 솟구친 뒤 엊그제의 속마음처럼 박살이 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울컥거리는 폭주는 언제나 즐거울 거야. 최대한 움켜쥐고 있던 건강이나 미래와는 무관하게, 내 안으로 안착하는 너의 물줄기에는 삶의 분변 덩어리가 거대한 발사체처럼 자리 잡고 있고

빛을 등진 영혼의 파편들 짊어진 채 아래로 쏟아지며, 지체 없이 흐르고 있다.

계속해서 작동하는 잡동사니 마음들에 24시간 하방 압력이 커지는 것을 오래 견디고 있다. 이를테면 대형종 난초를 지탱하는 화분 속 돌멩이의 무거운 정적부터, 작은 어미 문조가, 자기보다 더 작은 새끼를 키우느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내가 들을 수 있는 어떤 주파수의 오물에서도 함부로 살 만한 냄새가 난다.

그렇게 살다가도 죽어 있는 나 자신을 보는 게 자연이라며—

오물분수야, 너는 쏟아지고, 죽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새롭게 쏟아지고, 죽는다.

2025년 4월 24일 목요일

좋은 경험

강변을 걷다 보면
어디에서 흘러나왔는지 모를
종이 하나를 줍게 돼

별거 아니야
그냥 종이로 된 운명 같은 거야

처음엔 지도인지, 편지인지 알 수 없는데
펼쳐보면 모르는 나라의 젖은 산맥이지

거기 살던 사람들은
수용성 육체인가봐

흔적도 없이 조용해져 있다
나는 주운 것이 마음에 든다

집으로 가져와서
드라이어로 말려보게 돼

마른 종이 위에서 돋아난 얼굴들이
촛불 켜고 외치기 시작하지

우리는 불을 가지고 물속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물속에서도 불을 피우고 살았던 사람들이다!

종이에서 흘러넘친 그들이
나를 둘러싸고 말해

하지만 나는 그대로 항복해버리고 싶고

사실 조용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은
나한테 얼마든지 그래도 돼
그렇게 무너지면 황홀하잖아

나는 모르는 나라의 젖은 산맥에 올라
서서히, 함부로 미끄러지는 걸 좋아한다

이다음에도 누가 흘린 종이를 보면
또 집으로 가져오고 싶겠지

아니면 물에 잠긴, 풀어진 나라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종이질의,
얇은 인기척을 듣고 있거나

2025년 2월 23일 일요일

코끼리하우스

이 방에서 나는 존재하고
동생은 유령이다.

출근할 때는 사람이지만
열네 시간을 일한 후 퇴근할 때는
발을 잃고 허공에 붕 떠서 들어오니까.

나는 하루 종일
여기에서 시를 쓰거나
라면을 끓여 먹고 있을 테니까.

오후 한 시쯤 되면
동생이 밥은 먹었을까,
오늘도 어떤 환자가
간절히 팔을 붙잡았을까,
짐작한다.

동생이 환자를 보고 있을 동안
나는 방 안에서 시를 써야지.
한없이 슬픈 시를.
—나는 매일 결심하지만
왜 시일까.
왜 굳이 슬퍼야 할까.

물으면
나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 좁은 방 안에서
홀로 다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일까

어제 죽은 사람의 이름을
환자 명부에서 지우고 돌아온 동생에게,

사망 보험금을 놓고 다투는 가족들 사이에서
모른 척 스테이션에 앉아 있어야 했던
동생에게.

나의 시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병원 주위를 일곱 번 돌며
이 병원이 불타길 기도해야 할까.

아니다,
시인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근로 감독을 신청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다시
빈 공책을 연다.

“흰 것과 만나 흰 것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첫 줄을 쓰고,
모두가 ‘시’라고 인정할 만한 문장을 이어간다.

내가 시를 쓰는 이유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은
존재해서 슬프다.

동생이 이 시를 어떻게 읽을지 모르겠지만,

아니다.
동생은 이 시를 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너의 환자들을 돌보느라,
돌아올 수 없는 이 방에서
밤새 허공이 되어가느라.

2025년 2월 16일 일요일

조심스러운 사람들

돌을 많이 보고 만지고 밟고 다니며. 돌한테 얼쩡거리고 발로 차고 시비 걸고 그래도 같이 술 마시자고는 안 해보며. 시간이 흐를수록 남의 종교 보듯 했다.

금요일 밤 해장국집에 모인 중년들은 서로의 밥그릇에 국물 떠주며
혼자 못 먹어? 애기야? 서로 업신여기는, 가학-피학 관계로 절묘하게 구성된 뜨거운 사랑의 모임을 잘만 하던데,

우리는 왜 조금이라도 친한 척 안 해봤는지. 어차피 다시 만나자고도 안 할 거니까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층층이 서로를 쌓아올리기만 했는지. 다들 하는 것처럼 탑 만들고 다시 무너뜨리고 나 아니어도 바람 불어서 와르르 무너질 것을,

사실은 바람이 제일 비겁했다. 보이지도 않는 것이 번번이 때리고 갔다.
대신 너는 아침부터 바빴다. 너의 잘못 말하기를 행하느라.
오해인 줄도 모르고 너는 그 행위가 오로지 너라는 듯이, 바람 같은 건 꿈에도 모르고 다녔다.

그랬던 너는 참 용감하지. 언제까지 자신처럼 행동할 참인가.
이제야 나는 내 몸 하나지만 돌은 저 멀리 펼쳐진 데까지 다 돌들이란 점을 절대로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그대로 너 될 수 없어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대신에.

2025년 2월 10일 월요일

silo

이번 여름에는 서울시 은평구 봉산의 대벌레 무리 일원으로 위장해볼 생각이다. 직박구리나 인간을 속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을 햇볕에 널어 온몸이 두루 갈색이 될 때까지 최대한 바싹 말린다. 안감에 체취를 흡수하는 활성 목탄을 댄 옷을 입고 모든 이음매에는 덕테이프를 붙이는 게 좋다. 좀 더 효과적인 위장을 위해서는 옷 안에 열어놓은 암모니아 캡슐을 붙이는 게 상책이다. 이것도 저것도 귀찮다면 소나무 기름과 여우 오줌을 몸에 바를 수도 있다. 이렇게 사람 냄새를 완전히 가리는 데 성공했다면 주변 환경에 맞는 색깔의 스프레이를 골라 몸에 골고루 뿌린다. 단 무미무취한 제품이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작은 나뭇가지나 나뭇잎을 붙여 위장한다. 몸통과 팔, 다리를 최대한 길게 뻗어 대나무 비슷한 것처럼 군다. 그러면서 자신이 도처에 창궐하는 대벌레라고 생각한다.

참고:『감각의 박물학』(다이앤 애커먼)에서 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저자는 ≪필드앤드스트림≫이란 잡지에서 알게 된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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