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5일 수요일

두 번째 동네에서

오빠네 집에는 매일 초밥이 배달 옵니다. 둘째 이모가 나를 위해서 그렇게 주문해두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살지 않습니다. 오빠네 집 아래 거리에 삽니다. 낮엔 자고 밤에 깨어 어린아이들이 하는 반복적인 연극의 관객이 되어줍니다. 관객이 참여하는 형태의 연극인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적절한 관객을 만날 때까지 무덤에서 관을 파고 옆으로 뛰어가기를 반복합니다. 아이들이 관을 파내고 옆으로 뛰어가면 관객은 관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나는 관 뚜껑을 여는 일을 많이 해서 열고 나면 근처 울타리 위로 올라가서 남은 연극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속에서, 약간의 모래바람 속에 몸을 납작이 숨겨서요. 관 뚜껑을 열고 울타리 위로 올라오니 개들이 울타리 밑으로 몰려듭니다. 이 개들은 아주 무섭습니다. 오빠네 개들과는 아주 다르죠. 오빠는 개들이 아닌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를 갖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개는 깨끗합니다. 두 마리 다 아주 하얗고 큽니다. 그들은 나를 간지럽힙니다. 그러다 보면 초밥이 배달 옵니다.

오늘은 오빠가 자신의 집에 들른 나에게 아주 매운 라면을 끓여 갖다주었습니다. 왜 이걸 준비했지? “곧 초밥이 올 텐데.” 내가 말했습니다. 오빠는 당황한 듯합니다. 오빠는 매일 배달되던 초밥이 나를 위한 것이었단 걸 모르나 봅니다. 자신의 이 집에는 그저 원래 초밥이 매일매일 쉬지도 않고 배달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리고 초밥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달된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줄로만 알았나 보네요.

오늘은 초밥 배달을 주인이 직접 하였습니다. 초밥집 주인아저씨가 내게 새해에는 너네 집 어르신과 밥이나 차라도 같이 하고 싶다고 전해달라 하였습니다. 돈을 아주 많이 받나 봐요. 그래서 고맙나 봐요. ‘밥이나 차라도 같이’라고 준비해온 말이 계속 생각납니다. 누군가 자꾸 생각하며 준비한 말은 들으면 저에게도 자꾸 생각나기 마련이에요.

오빠네 집에 자주도 오래도 머무르지 않습니다. 나의 거리에서 오늘도 잠자긴 글렀네, 라면서 손으로 은박지를 헤뒤집어서 나오는 다크초콜릿을... 그리고 침을 자주 옷 근처로 아슬아슬하게 뱉습니다. 커다란 카페로 가서 카페 주인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모든 카페에 대한 책자를 구경합니다. 시작은 분명 그랬습니다. 그 카페의 냉동고를 뒤지면 냉녹차 음료를 준비하는 통이 있습니다. 탁한 녹색 물과 얼음들 속에 제가 언제나 사용하는 플라스틱 컵이 들어있습니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네요. 통 속에 손을 하도 넣었더니 먹기엔 조금 더러워졌습니다. 안돼. 이렇게 가다간 아이들의 연극까지 전부 망하겠어. 카페 주인은 절대 나타나지 않아. 카페 주인을 위해서 나는 제대로 된 손님이 되어줘야 해. 역시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 가서 손도 씻고 머리카락도 정리합니다. 너무 큰 거울은 내 앞에서 스스로 번쩍입니다.

바깥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된 메뉴를 먹습니다. 지금은 밤이지만 이것은 아침 식사라는 메뉴입니다... 불편한 의자에 앉아서 더 불편한 자세를 하고. 바깥은 온통 까맣고 무겁습니다. 번개가 지나가자 멀리서 아이들이 개들과 함께 비를 맞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뒤이어 천둥소리가 들립니다. 그제야 바깥의 빗소리가 의식됩니다. 크고 무거운 비입니다. 바깥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아이들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무표정한 저 아이들은 관을 파내서 옆으로 뛰어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려면 내가 필요합니다. 개들은 나를 쫓고 싶은 것입니다. 울타리 위로 빠르게 올라가서 절대 물 수 없는 나를. 나는 곧장 출구로 갑니다. 그리고 카페를 돌아봅니다. 이곳은 나타나지 않는 주인의 공간. 바깥이 훤히 보이는 곳. 밖에서도 안이 보이는 곳. 커다란. 맥빠진 분홍색과 금색 그리고 맥빠진 털 카펫과 철과 얼음과 크림 그리고 메뉴판 그리고 사장이 쓴 세상의 모든 카페에 대한 책자가 있는 곳. 아무도 없는 곳. 여기로 돌아올 수 있을까.

원래 살던 동네는 산 너머에 있습니다. 여기서는 고개를 들면 산 위쪽에 아주 높은 계단으로 이어진 하얀색의 최신식 집이 있습니다. 오빠의 집입니다. 오빠의 집은 놀랄 만치 밝습니다. 이 동네는 달도 해도 뜨지 않습니다. 희뿌옇다가 다시 까매질 뿐입니다. 오빠의 집으로 가는 계단은 아주 가파르지만 전등이 아주 많이 달려있고 하얘서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냉동고 소리. 비바람 소리. 바깥의 눈알들은 아이와 개 둘 중 누구의 것인지 분간이 잘되지 않습니다. 저기로 가야 합니다. 아이들이 황무지에서 달려와 무덤을 파내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달려가고,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중에, 관 뚜껑을 열어보아야 합니다. 그리곤 울타리로 뛰어 올라가고, 개들이 나를 쫓아와 아래에서 짖을 테지요. 아이들은 어둠 속에 납작 엎드려 조용히 나를 바라봐요. 그러면 오빠네 집 하얀 고양이와 하얀 개가 그리울 거예요. 그들을 찾아가면 나를 간지럽힙니다. 하지만 나는 바깥에서 오늘도 자긴 글렀네, 하며 은박지를 뒤집게 되지요.

카페에서 나왔습니다. 카페에 바짝 붙어서 비 내리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밤에도 하늘은 잘 보입니다. 하늘에서 비나 눈이 내려도 하늘은 잘 보입니다. 빗줄기가 어디서부터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지를 재어봅니다. 눈, 코, 입에 빗물이 들어옵니다. 이마를 타고 곧 머리카락을 전부 적시는 큰 비입니다. 양쪽으로 늘어뜨린 손이 무겁고 저립니다. 움직일 수 있을까 꽉 쥐어봅니다. 잠시 눈을 감으면 여름을 기다리게 됩니다. 이렇게 주먹을 꽉 쥘 수밖에 없는 어둑어둑하고 시끄러운 시간대의 여름을 상상합니다. 분명 나는 이런 황무지가 아닌 우림에 살았습니다. 해가 질 때 식물들이 전부 검어지고 그 속의 벌레 소리가 아주 시끄럽게 울립니다. 검고 거대한 식물들 사이로 보이는 건물들은 해가 져서 낮의 열기를 한바탕 잃은 모습입니다. 그렇게 맥빠지게 어두워지다니요. 그렇게 압도당하다니.

모든 게 어두워질수록 오른쪽 산 위편의 오빠네 집은 반짝거리는 빛을 내었습니다. 관 뚜껑을 열어야 합니다. 비록 어둠이 우리보다 강하더라도... 다시는 카페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은박지 안의 다크초콜릿이 동나더라도. 내가 뱉은 침이 내 옷자락에 떨어지더라도. 개들이 무섭게 쫓더라도. 아이들이 어둠 속에 납작이 엎드려서 뭔갈 기대하기 때문에. 카페 주인이 카페를 마련했기에. 둘째 이모가 내가 이곳에서 잘 지내기를 바랐기에.

더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자기는 글렀고, 오빠네 집 하얀 고양이와 하얀 개가 그리울 거예요. 아이들이 마련한 관 뚜껑을 열어야 해요. 눈을 뜨고 하늘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바라봅니다. 비 또한 더는 내리지 않습니다. 기이함이라는 그릇 안에 꽉 차 있는 감정은 강하고 약해요. 즐겁고 슬퍼요. 사랑스럽고 미워요. 현명하고 어리석어요.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