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테나 씨가 그려내려고 했던 것은 한 폭의 풍경이었다. 아니 게르테나 씨가 그려내려고 했던 것은 차라리 한 폭의 장면scene이었을 것이다. 그는 단 하나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영화의 감독이자 배우였다. 56×66 cm 크기의 「차고 카페에 앉아있는 남자」가 걸려있는 벽면으로 향하는 기다란 복도 벽에 나열된, 동일한 제목의 수많은 크로키와 에스키스 작업은 게르테나 씨가 연출하고자 했던 단 하나의 장면을 포착하기 위한 리허설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곳은 오래된 차고를 개조한 카페였다. 셔터가 완전히 올라가 있어서, 차고를 가로지르고 있는 도로의 건너편에서도 카페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원형 테이블 네 개. 각 테이블당 의자가 두 개씩 놓여있고 카운터는 비어있었다. 카운터를 마주 보고 있는 가장 구석 쪽 테이블 자리에 단 한 명의 남자가 앉아있었다. 검은 셔츠 차림의 그는 구부정한 자세로 흰 찻잔에 담긴 무언가를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의 눈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찻잔에 고정되어 있었으나, 이따금 바깥을 향해 의미 없어 보이는 시선을 던지기도 했다. 차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들에게 잠시 시선을 빼앗긴 다음 돌아와 보면, 다시금 찻잔에 골몰하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곧 카운터를 비우고 있던 점원이 들어와서 그에게 폐점 시간이 찾아왔음을 알릴 것이다.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열려있는 셔터 문을 향해 걸어갈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내가 서있는 이곳―도로를 끼고 차고를 마주 보고 있는 바로 이곳―으로 건너올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차고의 네모난 프레임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발걸음을 꺾어 왼쪽으로 걸어가는 그를 나는 본다. 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본다.
그러고 나면 어디선가 게르테나 씨가 나타난다. 그에게 돈을 받는다. 너무 부족하지도 너무 많지도 않은 돈을 받아 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가벼운 목례로 게르테나 씨에게 인사를 하고, 카페에서 나온 남자가 걸어갔던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서 귀가한다. 돌아와서는 우선 뜨거운 물로 씻고, 카페인이 없는 차를 하나 끓여서 파란 머그컵에 따라 마시며 휴대폰을 들고 밀린 메시지에 답장을 하거나 책을 읽는다.
30일간 이런 식으로 돈을 벌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차고 카페를 가로지르는 도로 건너편에 서서. 1시간 동안 오직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돈을 벌었다. 카운터의 점원은 늘 똑같은 시간에 자리를 비웠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남자는 늘 입고 있는 검은 셔츠의 소매 커프스를 딱 한 단만 걷어 올린 채, 늘 똑같이 생긴 흰 찻잔을 앞에 두고 있었다. 게르테나 씨는 내게 처음 만났던 당시의 옷차림을 30일 동안 그대로 유지할 것을 요청했다. 그때 나는 중지손가락을 다쳐 드레싱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완전히 나은 상태로 드레싱을 제거하고 도착했더니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게르테나 씨가 몹시 곤란해 하며 근처 약국에서 붕대를 사와 나의 중지손가락에 감아주었다. 더 이상 아프지도 않은 나의 상처 부위를 어찌나 조심스레 다루던지, 과할 정도로 섬세했던 게르테나 씨의 손길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로 이어지는 기억들은 불쑥 나타난 두툼한 손. 갈색 가죽지갑에서 꺼낸 현금을 대충 세어 건네던 아주 일관되고 두툼한 손이었는데, 바로 그 손에서 나는 딱 한 번뿐이었던 섬세함과 신중한 얼굴을 자꾸만 떠올리곤 했던 것이다. 약속한 30일을 다 채우고 나서는 그곳으로 가지 않았다. 게르테나 씨에게 연락이 오는 일도 없었다. 기온은 낮아졌고 늘 입고 나섰던 감색 니트와 헤링본 무늬 치마는 더 이상 외투 없이 입을 수 없었다.
어쩐지 차고 카페 앞을 지나가는 일을 피하게 되었다. 자연스레 지나칠 일이 있어도 일부러 그곳을 빙 돌아서 다른 거리를 이용하곤 했다. 차고 카페와 차고 카페 앞의 도로와 그 건너편의 길. 하루 한 시간동안 나의 시야 범위였던 그 공간은 하나의 구역이 되었다. 전혀 무관한 다른 누군가의 사유지 혹은 공유지임이 분명한 그곳을, 속으로는 ‘게르테나 존zone’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리곤 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30일 동안 하나의 세계에 초대받았었다고. 재미는 있지만 남들을 잘 설득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은, 이상한 생각이었다. 지금 와서 그곳에 다시 진입한다는 것은 게르테나 씨의 세계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방문이라기보다는 침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침입은 좀…… 꺼림칙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내가 여기 차고 카페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은, 지금이 몹시 추운 겨울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차고 카페의 셔터가 완전히 닫혀있다는 뜻이고 더 이상 차고 카페 바깥에서 차고 카페의 안을, 차고 카페의 안에서 차고 카페 바깥을 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셔터의 닫힘과 시야의 차단으로 인해, 카페-도로-도로 건너편으로 이어져야 할 ‘게르테나 존’이 쪼개지고 붕괴되며, 게르테나 씨의 세계가 일시개방된 것이다. 지진 난 지역의 남의 집이 열린 공간이듯이. 그것은 기회였고, 놓칠 이유도 없었다.
나는 상가의 옆문을 통해 카페 내부로 들어왔다. 늘 고정된 위치에서 바라보던 장소였기 때문일까? 익숙해야 할 공간이 아주 낯설게 느껴졌다. 플로어스탠드의 노란 불빛에 벽면의 테이프 자국이 희미하게 빛났다. 갑작스레 높아진 해상도에 당황스러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누구를 향해?). 카운터에는 머리가 짧은 점원이 짝다리를 짚고 서 있었다. 카운터를 마주 보고 있는 가장 구석 자리의 테이블엔, 남자가 앉아있었다. 안경을 끼고 있었지만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카운터에서 카푸치노를 한 잔 시키고, 남자가 앉아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직 저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인사했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당황했고, 나도 당황했다. “저를…, 모르시겠나요?” 그는 또다시 당황했고, 나는 상심했다. 아주 이상한 마음이지만, 눈물이 나올 정도로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시개방 되었다고 생각하여 입장한 세계가 애초에 개방된 적도 없었던 전혀 다른 세계라면? 게르테나 씨의 세계에서 나는 방문객이거나 침입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내가 30일 동안 지켜보았던 이 남자의 세계에서 나는 기껏해야 불청객일 뿐이라는 생각이 내 가슴을 한순간 지배했고, 비참함을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까지 상심하고 있는가? 이런 마음들을 겨우 숨겨가며, 그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시 말을 걸었다.
“게르테나 씨를 알고 계신가요?”
“아, 혹시…,”
그가 검지를 들었다. 그의 검지가 하늘을 가리키는 듯하더니, 잠시 방향을 잃고는, 제 목적을 찾았다는 듯 안경을 올렸다. 그는 말했다.
“저를 계속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게르테나 씨가 일러두셨어요. 부디 그 사람을 무시해달라고, 눈이라도 마주치는 순간 자신의 모든 계획이 끝장날 것이니 30일 동안만 참아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더군요. 저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을 무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 찻잔 속에 든 커피나 바라보는 일이었어요. 고개가 아파서 머리를 들면 누군가의 인영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애써 초점을 맞추지 않았어요. 차 지나가는 소리에 잠깐, 사람들 걸어가는 소리에 잠깐. 타이밍을 맞춰서 고개를 들어보곤 했어요. 그래도 계속해서 시선은 느껴졌어요. 귀신이나 유령이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저를 꿰뚫고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무섭고, 기분이 이상해서 정확히 15일쯤 되었을 때 게르테나 씨에게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알아야겠다고 연락했어요. 게르테나 씨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그게 게르테나 씨와의 마지막 연락이었어요. 1시간만 참으면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데, 그걸 저버릴 이유도 없었어요. 3시간 같은 1시간이었지만 명상한다고 생각하고 버텼어요. 저 사람은 귀신도 아니고 유령도 아니다…… 그래 저 사람은 천사다!” 그가 검지를 들었다.
“나를 지켜주고, 보호하러 온 존재다.”
그의 검지가 하늘을 가리키는 듯하더니,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낫더군요.”
잠시 방향을 잃고는,
“그날 카페 나와서 걸어가는 길에는……”
제 목적을 찾았다는 듯 안경을 올리며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충만함마저 느꼈어요.”
나는 사랑을 느꼈다.
(‘나는 소름이 돋았다.’라는 문장을 고쳐 쓴 것이다.)
「차고 카페에 앉아있는 남자」는 밤거리, 그리고 셔터가 굳게 닫힌 차고의 외관을 그린 그림이다. 내가 서있던 자리에서 바라보던 그 방향과 각도가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