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29일 금요일

낡은 마법사의 꿈

낡아 해진 마도구 상점에서 나는 서류철을 뒤적이고 있습니다. 사실 마도구 상점들은 다 낡고 해졌죠. 롤랑이 지난번에 갖고 온 고블린의 바지는 우리 중 누구에게도 맞지 않습니다. 노예 감독은 문 쪽에 서서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여기를 이끌고 있는 것은 한 명의 마법사이고, 나는 그 밑에서 봉급을 받는 처지입니다. 노예 감독은 그가 만든 골렘인 셈입니다. 간단한 말을 할 수는 있지만 복잡한 의사 결정은 누군가 대신 내려줘야 하죠. 우리는 한 사람씩 교대로 보울 안에 담긴 액체를 보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이스마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좋은 향이 난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 역할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끓어도 거의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한 원료이지요. 겉으로는 투박해 보여도 끓임 솥은 주기적으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마도구입니다. 이스마엘의 향은 향긋한 식물 계열의 것인데, 마치 단정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디퓨저와 비슷하게 지금도 얌전히 끓는 중이랍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온전한 서류들ㅡ두 장 받침의ㅡ을 작성하며, 각자 꿈을 꾸고 있습니다. 꿈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키보다 높은 서류 보관실에서 체류합니다. 꿈은 동물이 잠들었을 때 꾸는 것이기도 하고, 다른 의미로는 먼 미래의 목표 같은 것을 말하기도 하지요. 우리들은 꿈속에서 서로 만날 수 있고, 만나서 업무를 처리해야 하기에 약속 시간을 정해두고 잠드는 일도 빈번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잠들어 있는 것은 누군가의 꿈인데요. 누구의 꿈인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사무실 밖으로 문을 열고 나가면 창문에 우주의 풍경이 보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생각보다 드넓고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꿈속의 이 장소는 지상에 세워진 건물이 아니라 우주의 특정한 한곳에 정주해 있는, 추진 기능이 사라진 왕복선의 잔해입니다. 정확히는 그렇다고 하죠. 현실에서나 꿈속에서나 우리들이 발 딛고 있는 곳에 대한 소문들은 무성하고, 그것은 특히 세기말 시점의 도시에서 그 영향력을 키웁니다. 마치 걸어도 받지 않는 전화번호처럼. 조용한 새소리의 알림이 울리는군요. 탕비실에서 한 사람이 잠에서 깨어났다는 뜻입니다. 담당자는 서둘러 그 방문을 열고 아직도 이곳이 꿈의 안임을 그에게 알리고, 납득시켜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손바닥들을 그의 눈앞에 들이밉니다. 다행히 익숙하게도 그가 손바닥으로 손바닥들을 마주치고 다시 잠드는군요. 꿈속에서 잠들 수도 있다는 점은 꽤 웃긴 일입니다. 이런 일을 우리는 ‘걸어 올라왔다’라고 표현한답니다. 이와는 반대의 경우로 ‘미끄러진다’라고 말하는 것도 있죠. 말 그대로 미끄러지는 것인데요. 누군가의 꿈속에서 램프의 연기가 밖으로 새 나가는 것처럼 이탈되는 것입니다. 자신만이 드나들 수 있는 비로소 진짜ㅡ원래의? 아니면 본래적인, 응당, 평범히 그러한 성격의ㅡ 의미의 꿈으로 층계가 내려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와 만났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만난 것이 아니므로 업무의 분담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없습니다. 달 뒷면의 돌로 벼려낸 간이 공간 안에서와는 달리, 우리들은 여기에서 천체 관측의 업무 또한 하고 있지요. 사실 천체 관측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꿈의 위계가 매지컬하냐 아니냐를 가릴 수 있는 중요한 표지입니다. 여기ㅡ기록원ㅡ에서 천체 관측을 할 때에는 객관적이고 지루한 천체 정보의 나열 말고도, 개인적이고 사적인ㅡ어쩌면 비밀의ㅡ 관측자의 정한의 기록이 바로 뒤에 있는 시트지에 적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우지 않는다면 잊히고야 말 그러한 정보들은 이 세계에서 소용이 다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숨을 몰아쉬고 있네요. 어디엘 다녀왔냐고 물으니 고블린의 빈집에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카이브에 등록되어 있는 생물 종의 꿈입니다. 아카이브에 등록되어 있기만 하다면, 우리는 그곳에 잠들어서 다녀올 수 있죠. 여기는 위계가 높은, 상위의 꿈의 세계인 덕분입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우리들의 창밖에 실제 우주가 있는 이유도 누군가의 자의식을 감추기 위해 정교하게 엮어 놓은 공간ㅡ공간이 아니라 ‘틀’이나 ‘약속’, 아니면 ‘타자’에 가까운 것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ㅡ이라는 환상을 주기 위한 목적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세계에서 번역 및 편집이라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통계적으로 장편 소설 한 권ㅡ약 250kbㅡ의 분량을 손보기 위해서는 유능한 이라고 할지라도 약 스물 네 번의 꿈의 이탈, 층계로의 진입, 테라스에서의 휴식, 엘레베이터의 이용, 그리고 마지막에 송고하기 위한 목적에서의 이 ‘꿈’으로의 진입이 필요하다고 하니까요. 이 마도구 상점에서는 이름과는 달리 서류철의 분류 작업이 주된 업무입니다만, 가판대엔 그렇게 번역된 책들이 있고, 콘센트도 팝니다. 이 세계에서도 전기를 사용하지요. 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하는 것관 달리, 한 사람에게 묻어 있는 전기를 ‘털어내는’ 것에 가깝다고 하더군요. 가끔 알 수 없는 세계에서 전화가 걸려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아까는 ‘박력분 밀가루가 있어요?’라는 어떤 여성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는데요, 사실 이곳에서 전화로 그 사람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하기란 굉장히 까다로운 일입니다. 위의 전화도 사실 어떤 남성분이 건 전화였을지도 모르고 박력분 밀가루가 아니라 중력분 밀가루를 찾고 있었는지도, 아니면 과일 캔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들은 이것을 ‘분포’라고 배우는데, 수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은 많이 헷갈릴 수도, 적게 헷갈릴 수도, 아니면 의외로 안 헷갈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에 대해서 적게 헷갈리는 경우까지만을 상정하도록 교육받는답니다. 그러니까 위의 경우에는 박력분, 중력분, 부침 가루, 베이킹파우더 등의 재고까지 정도를 확인해 주는 것이죠. 그 여성분은 잠시 후 여기에 와서 고블린의 안 맞는 바지를 입어 다리의 모양이 비쳐 보이는 나의 차림을 보고 그거 벌칙 같은 것인가요? 라고 묻습니다. 이런, 시간대가 헷갈리는 모양이군요. 이 세계에도 잠은 필요합니다. 시간대가 헷갈리는 것은 잠이 필요하다는 표지이지요. 나는 이곳을 세계라고 부르기가 껄끄러운데, 왜냐하면 잠이 안 오고, 잠이 안 오는 세상은 세계라고 부르기가 어려운 것 같기 때문입니다. 더 낫게는ㅡ트여있더라도ㅡ ‘사무실’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담배 피우러 테라스에 나갑니다. 테라스 또한 별다를 바 없는 장소이지만, 가끔 담배 피우러 ‘달려온’ㅡ그러니까 의도적으로 미끄러진ㅡ 사람들이 있고, 나는 물론 그곳까지 천천히 걷습니다. 노예 감독의 관리자로서 천천히 걸어야 ‘품위’가 있을 테니까요. 노예 감독은 그 골렘에게 우리가 붙인 별명 같은 것입니다. 아무튼 테라스에 나가면 시인들이 쓴 시가 있는데, 그 시들은 음악처럼 계류적이죠. 여기에 시인들의 시가 있는 이유는 그들의 시의 전문을 기억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다시 여기로 오지 말라고ㅡ그러니까 기억 속에서 잊히기 전에 이곳으로 다시 오라고ㅡ 하는 당김줄과 비슷한 것이죠. 다시 사무실로 내려가면 중요한 것을 기억하기 어려워서, 계속 그곳에 머물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익숙해진다면 괜찮지만, 그렇게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무급 봉사를 하게 될 위험이 있지요. 물론 이곳을 만든ㅡ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잠든ㅡ 마법사의 입장에서는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으니 좋은 일이죠.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이 말은 이곳에서 당신에게 있어 중요한 것을 기억하라는 인삿말로 쓰이곤 한답니다. 이것이 당신의 기억 속에서 잊힐 수도, 내 기억 안에서 다시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아직도 그리고 영원히. 그럼 평안하세요. 낡고 해진 마법사의 꿈처럼.

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감기에 걸렸어요

교정의 요정으로부터의 전화였다. 감기에 걸렸다고.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몇 번 다그쳐 물었다. ...렸.. 기요... 감... 뭐라고? 감기라고? 감기? 맞아? 관리실 수화기를 붙들고 소리 소리를 치다가 마당으로 걸어 들어오는 교정의 요정을 본다. 손에 스마트폰을 들긴 했는데 입에다 대고 있지 않다. 교정의 요정에겐 입이 없다. 요정은 그대로 창고에 들어갈 기세였다. 수화기를 놓고 황급히 마스크를 썼다. 앞을 가로막고 보니 요정의 피부빛이 좀 달라진 듯도 했다. 좀 더 창백한 빛이 도는... 감기라며? 뭐하러 왔어? ...러요... 다... 뭐라고? 기러기? ...옴... 옮기러요. 옮기겠다고? 감기를? 요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흐흐흐 웃기 시작한다. 요정의 눈에서 점점 더 강하게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ㅣㅣㅣ ― 칠일

 

피부를 7하기엔

일주일은 모자라서

덜룩덜룩

창조주는

많은 마안은 마는 10000은 만 하다 만

몽고반점을 남겼습니다


[ 작품명 : 몽골계 ]

왼쪽 뺨 목 다리 팔에 대륙지도. 이 지구는 26퍼센트의 청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만큼만 건강합니다.


얼룩은 따지려다가 입이 말랐습니다

혀에

백태로도 지도가 있단 거 

모릅니다 창조주는


창조주는 우리 할아버지도 만들었습니다

1977년 7월 7일에 죽였습니다

중복 숫자는 괴슈탈트에게 퀴즈를 냅니다


Q. 장례를 몇 시에 (치릴/치룰)까요?

+어이가 없어서 정답을 무시합니다+

A. 장례를 ‘7’우다


그 오답이 가로등 같아서

숫자 아래 서니까

빛 칠 슥 이제

뚜렷해집니다


몽골계,

74퍼센트의

아이보리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정도로 

아픕니다


2021년 10월 1일 금요일

21년 9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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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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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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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27원 (0원 + 195,937원 + 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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