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30일 목요일

왕(무인도의)

나는 일국의 왕이니라.

나의 영토는 내가 20년 전 표류한 이 섬으로, 그 넓이는 성인 남성의 걸음으로 반나절은 걸어야 끝에서 끝으로 종단 가능한 정도이니라. 섬에서 생활한 지 8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이곳에서 무한한 자유와 함께 이 땅에서 나고 자라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복속되어 있음을 느끼고 국가의 탄생을 선포했노라.

나의 백성은 최초에는 각각 넷이었으나 지금은 저마다 수십으로 불어난 개와 고양이 들, 그리고 국가법에 따라 엄격히 다섯 마리로 제한하고 있는 염소들이니라. 염소들은 노동과 함께 평화롭고, 개와 고양이들은 서로의 영역을 나눠 분쟁 중이나, 나누어진 그 영역마저도 엄연히 짐의 것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어서 내가 행차하면 그 주인을 알아보고 충성스레 애교를 부리매 그 또한 노동임을 내 모르지 않노라.

내 섬의 많은 것들이 내게 많은 것을 선사하기에 나는 이것들이 나를 위해 존재함을 아노라. 또한 내게 필요한데 없는 많은 것들을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신께서 주셨기에 이 나라에서 나보다 높은 곳에 있는 이는 오로지 신뿐임을 모르는 이 없노라. 그리하여 나는 해 뜨는 시각과 해 지는 시각이 되면 언제나 나의 옥좌―평범하게로는 원두막이라 불리는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노라. 표류한 뒤에도 오랫동안 기도문을 기억했으나 인생에서 가장 큰 절망을 겪었던 표류 4년에서 7년 차에 잠시 신앙을 놓아 전에 알던 기도문은 이제 잊었노라. 표류 8년 차 어느 날 불현듯 내 삶과 이 세상이 새롭게 보이니, 내가 그전에 알던 종교는 거짓된 종교임을 깨닫게 되었노라. 그리하여 나는 오로지 신만을 위한 진실된 하나의 종교를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기도문부터 해서 모든 의식을 새롭게 만들었노라. 나는 일국의 왕이며, 또한 단 하나뿐인 진실된 종교의 유일한 신도요, 수장이니라.

내가 절실히 필요로 하였으나 끝내 구하지 못한 것은 말벗이었노라.
처음에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삶에서 큰 안식을 얻었노라. 대화는 늘 나에게 피로와 메스꺼움을 느끼게 만드는 행위였으매 더는 누군가의 말을 듣지 않아도 되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뭔가를 말할 일이 없으니 인간 사이에 있을 어떠한 문제와 불편도 없고, 그리하여 나는 불행의 근원은 바로 인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쓰는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노라.
그러나 어느 여름날 장마철에 질병에 걸렸을 때, 사경을 헤맬 때, 절로 내 입에서 기도의 말이 나오더라. 그러나 기도의 말 들어줄 이가 곁에 아무도 없더라. 그때 처음으로 신을 원망하였노라. 신이 내 목소리를 듣고 계신다면 나를 이렇게 버려둘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더라. 지금 이 순간 내 옆에 앉아 나의 땀을 식혀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내 말을 들어줄 이가 있다면 그가 누구더라도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더라.

그리하여 한때 나의 가장 충직한 신하였으며 나의 총애를 누린 회색앵무가 하나 있었으니 나는 그의 이름을 일요일이라고 지었노라. 그가 나의 성―평범하게로는 움막이라 불리는 곳으로 날아온 이후 나는 그에게 많은 단어를 가르쳤으매 그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단어의 뜻을 하나둘 이해하기 시작하니,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더라. 교육자의 기쁨이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깨달았더라. 그가 내 앞에 나타나 나는 크나큰 안식을 얻었으니, 그 작고 영리한 존재가 내게는 바로 안식일 같더라. 내가 900일하고도 스무날쯤은 더 지난 시간 동안 그에게 가르친 단어가 일백 개는 넘었더라. 내게 오라 하면 내게 오고, 망을 보라 하면 홰 위에 올라 망을 보고, 무엇을 보았느냐, 하면 “자연!”이라 대답하였으니, 그야말로 일요일은 자연에서 온 가장 큰 선물이었으며 신께서 내게 내린 가장 큰 축복 중 하나였더라.

그런데 하루는 “오너라” 해도 앵무가 말을 안 듣더라. 재차 “오너라” 해도 들은 체도 않고 홰에서 내려오지 않기에 “일요일아,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대뜸 “외롭다!”라고 소리치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나 놀랐노라. 첫째로 나의 말을 거역하여 놀랐으며, 둘째로 나의 말을 거역하는 까닭이 저가 외롭기 때문이라 놀랐으며, 셋째로 내가 외롭다는 단어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그 단어를 스스로 깨친 것인가 싶어 놀랐으며, 넷째로 일요일이가 온 이후로 더는 외롭지 않다고 느꼈으나 내가 잠꼬대로 외롭다고 중얼거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 내가 모르쇠 했던 속마음에 놀랐노라. 그 모든 놀라움은 곧 분노로 바뀌었으니, 근처에 널브러진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네 이놈, 하며 일요일이를 마구 혼냈노라. 일요일이는 작대기질에 매우 놀라며 날개를 푸덕이더니 이윽고 떠올라 창공으로 날아올라 사라지더라. 그리고 더는 돌아오지 않더라. 나는 얼마 안 가 후회했으나, 떠난 말은 절대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섬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말벗을 잃으며 알았노라. 그렇게 왕국은 다시 침묵의 왕국으로 돌아갔노라.

이 말 없는 왕국은 그래도 내게 충분히 주었고 하여 나는 충분히 행복했노라.
가끔 두렵고 외로웠으며 고통스러웠고 불행했으나,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는 혹자들의 말이 완전히 틀렸음을 나는 내 삶을 통해 증명했으며, 본래 자연에 없었으나 인간이 새로 만들어낸 것들은 대체로 없어도 된다는 것을, 아니 없는 게 낫다는 걸 이 왕국을 운영하며 배웠노라. 그리하여 나는 이 왕국에서 내가 느낀 점들을 이렇게 남긴다. 고기를 위해 염소를 도축할 때마다 말려둔 가죽(양피지라고 부르기엔 부족하지만) 위에 얼마 안 남았던 잉크를 사용하여, 하루하루 잊어가는 단어들을 되살려가며.
‘쓰기’는 스러져가는 기억들의 부활이며 영혼의 방부제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배우노라.

만약 말을 할 줄 아는 자네가 만약 우연히 나의 섬을 방문한다면 나는 말을 않은 채 자네를 극진히 대접하리라. 자네를 위해 내 염소를 내어주고, 깨끗한 물을 내어주고, 표류 15년 차부터 만드는 법을 익힌 빵을 나눠줄 것이며, 표류 당시부터 가지고 있던―내 가장 진귀한 보물!―브랜디를 한 잔 내어줄 것이며, 개와 고양이를 한 놈씩 데려와 충분히 만질 수 있도록 할 것이며, 나 자신 또한 모닥불 앞에서 멋진 춤을 추리라. 그리고 그대를 위해 진실된 기도를 드리리라. 그 모든 일을 말없이 하리라.
그리고 자네가 나의 섬을 떠나간다면 점점 작아지는 나의 왕국을 오랫동안 말없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나의 삶, 나의 왕국, 복되고 복되고 복되었으며 앞으로도 일천만 세 복될 것이라.

2019년 5월 22일 수요일

바리스타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는 에밀리입니다.

네? 얼마 전까지는 제인이 아니었냐고요? 네, 그랬죠. 카페 매니저와 상담 후에 바꿨어요. 제인은 너무 올드하고 무뚝뚝한 느낌인 것 같다는 말을 들어서 좀 더 사랑스러운 느낌의 에밀리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강요나 압박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내린 결정이에요.
일하기 전에 탈의실에서, 혹은 일하다 잠깐 짬이 나서 한숨 돌릴 때, 저는 배지로 가득 찬* 저의 앞치마를 두 손으로 잡고 펼쳐봅니다. 아기자기한 배지로 빼곡하지요. 우리 카페는 직원이 손님들에게 자신의 개성을 어필할 수 있는 배지를 약 일곱여 종 정도 앞치마에 부착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네, 강요는 아니에요. 강요는 아니지만 카페의 얼굴인 바리스타로서 손님들에게 개성적인 인상을 심어주면 좋을 듯하여 아끼던 배지 중에 일곱 개를 골라 달았어요. 새를 좋아해서 새 모양의 금속 배지를 몇 개 달았고요-흰머리오목눈이, 뱁새, 퍼핀, 오리, 홍학 등-, 좋아하는 아이돌의 배지도 달았습니다.
네? 일곱 개를 골라 달았다더니 왜 앞치마에 달린 배지가 서른일곱 개나 되냐는 말씀이시죠? 카페 매니저와 상담 후에 추가했어요. 매니저가 그러더군요. 왜 배지를 일곱 개만 달았냐고요. 손님들에게 자신의 개성을 어필할 수 있는 배지를 약 일곱여 종 정도 앞치마에 부착하는 것이 규정상 권장 사항 아니냐고 말씀드렸더니, 그건 말 그대로 권장 사항일 뿐이라고 하더라고요.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지 않으세요? 돌아보니 조이, 리나, 헤일리 모두 앞치마에 배지를 수십 개씩 달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그제야 저는 현실을 깨닫고 퇴근한 뒤 곧장 후원 사이트에 접속했답니다. 여러 곳에 후원하고 배지 받으려고요.

제가 근무하는 시간은 점심 무렵부터 저녁 전까지입니다. 주변에 회사들이 많은 곳이라 점심에는 몰아치는 폭풍을 맞은 듯 정신 없다가, 폭풍이 지나가면 급격히 한산해지며 고요를 되찾습니다. 서너 시쯤이면 여느 여유로운 분위기의 카페로 돌아가죠.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피곤한 때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저기 구석에 앉아 언제나 제 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중년의 넥타이맨 때문이지요. 결코 알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제게 말해줘서 알게 된 바로, 그는 백수가 된 기러기 아빠였어요. 아내와 아이는 몇 년간 국외 생활 중이고, 자신은 그사이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됐는데 차마 밝힐 수는 없었대요. 집에 혼자 있는 게 외롭고 힘들어 남들처럼 출근하는 척하며 이 카페에 오게 됐고, 덕분에 저를 만나게 되었다고 말하더군요. 그러고는 저 때문에 계속 이 카페만 찾게 된다며, 정말 좋은 사람 같아 보여서 그런데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라고 묻는 거 있죠. 당연히 알려주지 않았죠. 엄청 난감했고, 화도 좀 많이 나고 그래서 울 뻔했는데 마스카라 번지는 거 엄청 싫으니까 참았고요. 그냥 어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죄송합니다 고객님 했어요. 그러니까 이해한다라고 말하며 그래도 카페에는 계속 와도 되는 거냐고 묻는 거 있죠? 아니, 그런 걸 왜 물어요? 자기가 언제 나랑 만났다가 헤어지기라도 했나? 저 같은 말단 직원이 솔직히 안 왔으면 좋겠네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혼자 머릿속으로 이상한 중년 로맨스나 찍고 한심하네요! 마음속으로만 백만 번 외쳐주고, 셀카 찍으며 화 풀었어요. 필터 한 방 먹이고 증강된 내 얼굴을 보면 마음도 더 단단해지는 기분.
이 카페에서 6개월 일하는 동안 각각 다른 남자 손님들로부터 열다섯 번이나 고백 받았어요. 정말로 저를 좋아해서 그런 건지, 고백해서 혼내주자**는 의도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저는 딱히 손님들에게 쌀쌀맞게 굴지도 않았다고요), 정말 그런 일 있을 때마다 피곤해요. 개새끼들!

저는 그저 ‘취준생’ 신분으로서 생활고 때문에 카페에서 일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커피를 사랑하고, 커피가 필요해요. 검은 그것은 영혼의 연료예요. 언젠가부터 하루 한 잔이라도 들이붓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고, 돈과 인간에 시달려 지쳤을 때 시럽 듬뿍 넣은 커피를 한 잔 마시면 그래도 조금 살 만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도 다음에는 절대로 카페에서 일하진 않을래요. 물론 내 카페를 차리지도 않을 거고요. 영혼의 연료를 파느라 제 영혼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어요. 계속 이러다간 더는 인간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구요.

그리고 여기, 주문하신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켰는데 왜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왔냐고요? 야, 이 개새끼야.





*마크 피셔, <자본주의 리얼리즘>, 리시올, 2018. 72쪽을 참조함.

**김태훈, “왜 알바에게 고백해서 혼내주려 하나요ㅠㅠ”, 경향신문, 2019년5월11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5111235011&code=940100

2019년 5월 7일 화요일

파다한 ― 28

“지다오 시거마?”

영경은 수확 없이 몇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명동. 명동은 전도하기 좋은 거리는 아니다. 외국인 여행객이 많기 때문에? 아니다. 영경에게는 몇 가지의 레파토리가 있었다. 시를 아십니까? 두 유 노 포에트리? 지다오 시거마? 시오 시테이마스카? 그러나 영경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냥 지나갔다. 알아 들은 것이 분명하다.

“시를 아십니까?”

별다른 복식을 갖추지도 않았다. 평범한 시장 양말. 스니커즈. 찢어지지 않은 청바지. 흰 티셔츠. 체크무늬 남방. 거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패션이 아닌가? 다른 게 있다면 하이바, 하이바를 썼을 뿐이다. 그러나 뭐 무더운 날도 아니고. 하이바를 쓴 게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영경은 명동 거리를 헤쳐나가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했을 뿐이다.

“지다오 시거마?”

침이 튀었는지 노점상인이 짜증스럽게 영경을 쳐다본다. 그는 회오리감자를 파는데, 언제부터인지 매상이 뚝뚝 떨어졌다. 계산해보니 시점이 비슷했다. 바로 저 전도쟁이 놈이 출현한 날부터지. 물론 이 구불구불하고 긴, 인간의 대장과도 같은 명동 거리에 전도쟁이 자체가 특이한 건 아니다. 잘못된 것도 없다. 상인이 물건을 팔듯 전도쟁이는 도를 판다. 하지만. 저놈은 아무것도 팔지 않으면서 이 거리를 더럽히고 있잖아? 지치지도 않으면서.

“지다오 시거마?”

어깨빵을 쓱 쓱 피하며, 영경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지 않는 질문이란. 혹여나 대답을 하는 이가 있다면 영경은 그 즉시 하이바를 내리고 뒷걸음질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영경은 아무런 기대 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시를 알지도 모르지도 못했다.

명동의 유령. 영경은 그런 이름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명동 밖에서.

시를 읽거나 쓰는, 그리하여 결국 시를 알게 되거나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은 명동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명동이 과거가 되어버렸다며 슬퍼했다. 영경은 아니었다. 영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침내 명동 거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2019년 5월 6일 월요일

불안한 뿌리

이런 불안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천변에서 피어오른 날벌레 떼에 둘러싸여 팔다리를 휘젓다 간신히 그곳을 빠져나왔을 때, 불현듯 귓속 깊은 곳이 가려워 정말이지 무심코,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거칠게 헤집었더니 손끝에 피가 묻어나왔다. 묻어나온 피는 나의 것일까, 귓속에 들어간 벌레의 것일까? 미량의 맑은 피가 묻어 있을 뿐, 손끝이 그리 지저분하지 않은 것을 보면 나의 피일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깨끗한 귓속이 벌레 떼의 습격을 받은 직후에 갑작스럽게 가려워졌던 것을 생각하면 날벌레 한 마리가 어찌어찌 귓속으로 들어갔을 가능성도 적지 않을 듯하다. 그렇다면 이 피가 차라리 벌레의 것이기를 바라야 한다. 살아 있는 아주 작은 벌레가, 귓속의 솜털 때문에, 나오지는 못하고 그냥 거기에 남아 있다면? 내 귓속의 뭔가를 양분 삼아 아주 오래 살아남는다면? 심지어 그것이 암컷이고, 알을 낳을 준비가 되어 있는 개체였다면?
누구나 이 같은 불안 하나로 중이염에 걸릴 수 있다.
이때 실제로 중이염을 유발하는 것은 오염된 물에서 나온 병균 덩어리 날벌레가 아니라 불안에 못 이겨 미친 듯이 귀를 파기 시작하는 습관이다.

최근에 나는 어떤 양치기의 불안에 대한 글을 읽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국경 가까이에서 양치기 노릇을 하던 한 남자가 이웃나라에서 돌아오는 선교사를 보았다. 양치기는 신앙이 있었지만 한철 내내 산등성이 목장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라 제례에는 참여할 수 없었다. 선교사는 양치기의 청으로 그의 거처에 하룻밤 머물며 신의 뜻에 대해 들려주기로 했다.
양치기는 신앙이 있었지만 여가시간에 경전을 읽기보다 수음하기를 좋아했다. 이와 같은 흠을 선교사가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바랐다. 선교사는 양치기에게 경전에 실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중에는 땅을 향해 사정한 남자가 신벌을 받아 죽은 이야기도 있었다. 선교사는 그에 더하여 땅에 떨어진 정액에서 인간을 닮은 극독초가 자란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날 밤에 양치기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선교사가 자신의 비밀, 즉 양떼를 돌보기보다 멀찍한 곳에서 사타구니 만지기에나 더 열중하는 습성을 꿰뚫어보고 저를 책망한 것 같아서 부끄럽고 분했다. 또한 선교사의 말대로 아무 곳에나 털어놓은 자신의 분비물에서 극독초가 자라면, 양들이 그것을 먹고 잘못되기라도 하면... 양치기는 그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머리에서 떨쳐버리려 애썼지만, 그보다는 선교사가 거짓말을 했을 리 없다는 생각을 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양치기는 생각했다. 양 몇 마리가 죽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저 수다쟁이가 그게 내 잘못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 말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렇지만 저 수다쟁이가 마을로 내려가서 내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지? 불안감을 이길 수 없었던 양치기는 동틀녘에 선교사를 죽였다. 양치기가 수다쟁이라고 생각한 선교사는 끅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었다.
선교사의 말대로 양치기가 땅에 뿌린 씨에서 정말로 극독초가 자랐을까?
결국 그의 분비물에서 맨드레이크가 자라기는 했다. 선교사가 속했던 수도회에서 돌아올 때가 지난 선교사의 행방을 추적한 끝에 양치기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양치기는 신앙이 있었지만 교수형을 당했다. 광장에서 수치에 떨며 자기의 죄를 고하고 뛰어내렸다. 축 늘어진 하반신에서 갖가지 분비물이 섞이어 뚝뚝 떨어졌다.
이처럼 맨드레이크는 목매달아 죽은 사람에게서 떨어진 분비물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숨이 붙어 있는 동안의 분비물은 아무 의미가 없다. 따라서 맨드레이크 싹을 틔우려면 씨주머니로 쓸 남자가 숨을 완전히 거둘 때까지, 분비물이 다 떨어지고 마를 때까지 매달아두는 것이 유익하다. 모 마녀회에서는 이를 땅을 저주로 수태하는 것으로 풀이하는데, ‘관점’으로서 소개할 뿐, 탁월하거나 적절한 시각은 아니라고 본다.

로버트

부스의 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켜고 앉았다. 아직 해가 다 뜨지 않아 충분히 밝아질 때까지 조명을 켜두어야 했다. 이 일을 막 시작했을 때 이 시간에 불을 켜지 않고 앉아 있다가 일찍 출근하는 연구원들을 놀라게 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대답하기 귀찮은 질문을 받는 것보다 잠깐의 거부감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 불을 항상 켜두기로 했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경비원으로서 연구원의 안위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다른 정보를 줄 필요는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난로를 켰다. 난로는 내가 오기 전부터 있던 것으로 잠깐만 켜놔도 금방 뜨거워져 오래 켜 둘 수 없었다. 나였다면 좀 더 유연한 설정을 가진 난로를 샀겠지만 상관없다. 나는 여기에 여덟 시간 머무를 것이고 난로는 이따 끄면 된다.
매일 오랜 시간을 작은 부스 안에서 보내다 보면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지게 된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매일 마을을 한 바퀴 돌아오는 산책을 할 때마다 굴뚝들을 살폈다. 어떤 집의 굴뚝이 고장 난 걸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도 그였다. 나는 그와 항상 산책을 함께 했지만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그는 사람들의 대화에는 대체로 무심했지만 누가 어딜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자세히 알고 있었다. 부스에 앉아 있으면 그가 자주 생각난다. 사람들은 보통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한다. 지각하는 사람이 정문을 통과하는 시간도 거의 일정하다. 테이블 위 전자시계가 12시로 바뀌기 8초 전에 점심 종이 울린다. 의자 뒤에 있는 작은 냉장고의 엔진이 웅웅거리기 시작할 때는 속으로 3분 정도의 짧은 노래를 다 부르면 웅웅거림이 멈춘다. 이런 것들이 부스 안에서 알게 된 사실들이다. 그때 그 마을에 내가 잠시 머무는 이방인이 아니라 정착민으로 남았다면 그처럼 굴뚝이든 뭐든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눈이 오면 걷기 힘들고 미끄러지기 때문에 싫다는 그의 말이 무엇보다 확실한 기호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그의 입을 통해 들었다. 그는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그와 있는 것을 즐겼지만 그가 좋았던 것인지, 그 이야기들이 좋았던 것인지,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와 앉아있는 걸 좋아했던 것인지, 그의 입을 통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좋아했던 것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다.
한번 일상적인 흐름에 익숙해지고 나면 일상적이지 않은 사건에 민감해진다. 연구원의 시설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는 사람들이나 연구원 내부에서 약속이 있는 사람들의 방문이 종종 있지만, 이것도 익숙해지면 그만이다. 정문 밖의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 조금 더 재미가 있는데, 어제는 점심 때쯤 어떤 사람이 정문을 향해 걸어오다 나랑 눈이 마주치더니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뒤를 돌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나 싶어 거울을 봤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연구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보통 작업복이나 정장차림에 커다란 가방을 들고 있어 미리 알아채곤 하는데 그 사람은 그것도 아니었다. 무엇이 그 사람을 놀라게 만들었을까? 연구원에 용무가 있다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해 기다려 보고 싶었지만 오후에 다른 경비원과 자리를 교체하는 바람에 그 사람이 되돌아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어제 내가 돌아가는 집이 내가 이방인이었던 그 마을이었다면 그에게 들러 이 이야기를 해주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내 말을 듣기는 할까? 어쩌면 엉뚱한 곳에서 내 말을 끊고 굴뚝 얘기를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끊기지 않을 이야기를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몇 주 전 새벽의 일은 어떤가?
그날은 밤 근무였다. 보통 밤 근무일 때는 순찰을 돌고 나서 숙직실에서 잠을 자는데 그날 같이 숙직실을 쓰는 동료가 코를 심하게 골아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뒤척이다 잠이 달아나는 걸 느꼈고 도서관 반납기한이 내일까지인 책이 부스에 있다는 걸 떠올렸다. 웃옷을 입고 나가자 새벽공기가 차가웠다. 부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켜지 않고 서랍에 있는 북라이트를 꺼낸 후 난로를 켰다. 책갈피 대신 사용하는 영수증이 끼워진 페이지를 찾아 책을 펼쳤을 때였다. 고요한 시야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들었다. 연구원 건물과 직각으로 맞닿아 있는 기숙사 입구에서 누군가 나오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가 향하는 곳은 연구원 맞은편에 있는 작은 철문이었다. 문이라고는 하지만 높지 않아 한 걸음에 충분히 넘어갈 수 있었다. 그는 문을 넘었다. 문을 넘어가면 숲으로 향하는 오솔길이 있었다. 그는 오솔길을 걸어 숲으로 들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았지만 이내 거리가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잠시 고민을 했다. 그의 뒤를 쫓아가 볼 것인가? 숲은 크지 않았고 평소에 산책로로 이용되는 곳이었다. 밤이 되어 작은 짐승이 나올 수 있지만 크게 위험한 동물이 있다고 들은 적은 없었고 불안한 마음이 약간 가라앉았다. 나처럼 잠이 오지 않아 밤 산책을 나왔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숲을 바라보자 먼 숲의 경계가 검은 하늘과 맞닿아 흐려져 있었고, 그가 숲의 입구로 되돌아오는 길을 걷고 있을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해 이쪽과 멀어지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한밤중에 기숙사에서 나와 숲으로 들어간 사람? 나는 그의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는지 떠올려 보았지만, 있었다 해도 거리가 멀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들고 있던 책은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동료를 깨워 의논해 볼까? 하지만 만약 단순한 산책이라면 괜한 소동을 피우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확인해 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안절부절못하며 그가 얼른 다시 나오길 바랐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그가 숲에 들어가고 한 시간 정도가 흘러 있었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옷을 껴입고 손전등을 찾아 쥐었다. 그때, 한껏 민감해진 시야 안에 그가 등장했다. 그가 숲에서 나오고 있었다. 움직이는 속도는 들어갈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전등을 손에 쥐고 일어나던 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굳어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그가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갈 때까지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서 있었다.
이 이야기를 굴뚝 얘기에 대한 보답으로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장면을 쭉 상상해보니, 굴뚝이 고장 난 것보다 인상 깊은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이 밤 산책을 나왔고 나는 그의 의도를 알지 못해 불안했다. 그뿐이다. 그날 이후로도 몇 번 그가 밤의 건물을 나와 숲으로 가는 것을 보았지만 그의 산책을 처음 발견한 날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은 없었다. 다만 그가 숲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 예상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으면 자주 고개를 들어 숲의 입구를 살펴보게 되었을 뿐이다. 그때 그 산책은 내가 발견한 첫 산책일 뿐 그의 첫 산책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는 일부러 모두가 잠든 시간을 택해 나왔을까? 나오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겪고 있었을까? 숲을 한 바퀴 도는 데에는 사십 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잠시 어디 앉아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언뜻 생각하기에 재미가 있을 것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굴뚝 이야기보다는 시시했다. 굴뚝이 고장 났던 것은 완벽한 사실이었다. 그는 그것을 그의 눈으로 보았다. 우리는 그의 발견 후에야 굴뚝의 고장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완벽함을 나는 아무래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어제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던 그 사람도 어쩌면 이미 여러 번 이곳을 지났던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와 내가 눈이 마주치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직접 보거나 겪지 않은 일들로 내가 어떤 자신을 가질 수 있나.
퇴근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 사실을 시계의 숫자로 확인했다. 남은 시간에 맞춰 남은 업무의 우선순위를 확인하고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할 일을 내일로 넘기기로 했다. 시간이 되자 동료와 교대하고 퇴근을 했다.



Remembering Nov. 2014 ~ Dec 2015

2019년 5월 3일 금요일

줄어드는 욥

사금파리로 얼굴을 긋던 욥은 자신이 어떤 언어와 어떤 음성으로 자신의 신을 찬양하였는가를 생각했다. 욥은 곧 하나님을 저주하는 행위 자체가 사탄과의 내기 때문에 그토록 충성하였던 그의 자식을 죽이고 패가를 행한 하나님을 더욱 이롭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욥의 분노와 절망은 욥의 것이지만 욥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육성과 마음을 통해 세상에 더해지는 분노와 절규는 그가 저주하는 하나님의 총량을 더욱 더 늘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 생산하는 것은 뭐든 음한 것과 양한 것을 따지지 않고 하나님의 총량에 더해질 것이므로.

하나님의 총량의 증가- 이것이 과연 하나님에게 이로운 일인가?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욥은 억울하고 원통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여 그 광대함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욥은 그렇게 생각했다. 욥은 미쳐 버렸던 것이다. 허나 저주를 하고 뭘 한들 욥은 종복이었고 평생을 몸담은 양 목장의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것은 욥이 나기 전부터 정해진 일이었고 그가 살아온 삶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었고 현 상태의 행과 불행에 관계없이 절대로 유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예컨대 저 배신감은 그가 <하나님의 존재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 한에서만 생겨나는 것이었다. 욥은 여전히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 되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들고 있는 기와 조각을 내려놓는 것이다. 울분과 절규를 그만 토하는 것이다. 욥은 이제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총량을 줄이고자 하였다. 그의 자식들의 죽음은 어처구니없는 것이고, 먼 훗날 그가 다시 부귀하며 새 자식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그 자식은 있던 자식이 아니라 없던 자식이며 있던 자식은 천국에서 부활하든 하나님의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든 하여튼 어쨌든 뭐든 간에 지금 지상에 그의 곁에 없고 없을 것이며 없던 것처럼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줄어들면 될 일이다. 그게 무엇이든, 어떤 것을 세계에서 빼버리면 될 일이다. 하나님의 것인 자신과 자신의 것이 줄어들면 하나님의 총량도 줄어들 것이므로. 그러려면 먼저 아무것도 생산해서는 안 된다.

물론 하나님은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계신다. 때문에 욥이 모든 것을 멈추고 오히려 제 부피를 줄인다고 하여도 하나님에게는 아무런 손실이 없을 거였다. 그러나 미쳐 버린 욥에게 있어 <무한함>이란 것은 순 모순덩어리였다. 이를테면 욥이 무한대의 공깃돌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아내에게 줄 때, 무한한 공깃돌 전체를 주면 자신에게 공깃돌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되고 네 번째 공깃돌부터 주면 자신에게 세 개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공깃돌을 전부 건네 준 첫 번째의 경우 무한대 빼기 무한대는 0이 되고 네 번째 이후의 공깃돌을 다 준 두 번째 경우에서는 무한대 빼기 무한대는 3이 된다.

그러니 당최 그 <무한함>이라는 것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욥은 저 무한의 전제를 없는 것으로 해 버렸다. 이제 어떻게 하여 줄어들지를 생각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재산을 내버리는 일과는 정반대의 성질일 거였다. 더불어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일과도 아무런 연관이 없을 거였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