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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8일 금요일

미야



“일 년 전의 고양이는
아름답게 자랐을까요?
‘좋은 곳’으로 가꾼 그곳을
아무도 망가뜨리지는 않았는지
문득 궁금해하며,”



시집을 열었는데 미야의 안부가 적혀 있었다. 미야. 일 년 전 미야의 이야기. 잊고 있었던 고양이의 삶을 누군가 대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야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시인은 왜 이렇게 다정할까. 

미야는 나뭇가지에 앉은 참새를 보면서 입을 벌리고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귀 하나를 접었다가 펼쳤다가 등에 있는 검은 반점이 벌어졌다가 좁혀지는 순간, 아무것도 변한 건 없었다. 그는 사냥을 하지 않았다는 듯 능청스럽게 손에 침을 묻혀 그루밍을 시작했다. 미야는 사냥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의 실패를 한참 바라보던 나른한 오후.

나의 은밀한 취미 중 하나는 낯선 고양이에게 적정거리로 다가가 눈을 느리게 깜박이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복권을 긁는 심정에 가깝다. 길에서 만난 고양이들이 곁을 주지 않는 게 좋았으니까. “맞아. 잘하고 있어. 사람 믿지 마.” 나는 그들이 사람을 경계하고 믿지 않기를 원했다. 어떤 사람이 사료를 주면 어떤 사람은 엎어버린다. 어떤 사람인지 사람도 알아볼 수가 없으므로 그들이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아서 좋았다. 개체로서 길가에 있는 존재라서 그 거리감을 좋아했다.

미야는 처음 만난 날,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인사해주었다. ‘안 되는데.’ 의아한 표정을 지은 건 사람이었다. 미야, 라고 부르자 원래 아는 사이처럼 다가왔다. 희디흰 운동화 코에 자신의 발을 꾹 눌러주었다. 이러면 안 되는 거였다. 주변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사람을 따른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미야는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했다. 나는 그들에게서 미야의 정보를 들었다.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 버려진 고양이, 다행히 여기에 있는 고양이들이 미야를 내쫓지 않아서 주차장에서만 지낸다고 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자 미야는 산책을 하듯 그들과 함께 좁은 길가를 걸어다녔다. 미야의 밥을 주던 아래층 아주머니, 아주머니도 미야를 사랑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 고양이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어떤 이름으로 불렀을까? 몇 개의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미야는 버려진 고양이, 모두의 고양이. 

“그렇게 좋으면 아줌마가 데리고 살든가.” 그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악을 질렀고 저 멀리 보이지 않는 창문에서는 “그러는 네가 더 시끄럽다.”라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멀리서 들리는 사람의 소리.

고양이의 겨울, 미야의 겨울, 미야와 미아의 겨울. 나는 미야, 미아, 반복하면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길고양이의 생은 짧다.

미야가 오래 살기를 바란다.

아주머니가 상자를 접고 그 안에 담요를 깔아주면, 저녁에는 재활용품을 가져가는 사람이 그 상자를 달랑 집어가고는 했다. 미야에게 집을 선물해주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집을 사는 것보다는 그것을 주차장 옆 블록에 둬도 되는지가 문제라고 말해주었다. 미야의 볼품 없는 상자마저도 재활용품 수거차에, 고양이를 싫어하는 옆집 사람들에게로 잘도 사라졌다. 미야는 그저 사람들을 잘 따랐다. 털 관리도 할 줄 모르는 고양이, 씨앗을 털에 다 묻히고 돌아다니는, 엉덩이를 때려주면 좋다고 엉덩이를 번쩍 드는 고양이. (엉덩이를 자주 팡팡 때려주는 건 좋지 않다고도 들었던 것 같아서 조심했다.) 

어느 날, 미야가 보이지 않았다. 수소문을 해보니 주인을 찾았다고 했다. 주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가끔 미야의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면서 인사했다고 한다. 그 후, 겨울이 되기 직전에 미야는 주차장에 있었다. 다시 봐서 반갑긴 반가운데. 의아한 표정을 짓는 건 역시 사람이었다.

미야는 화단 구석에 있었다. 잠시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

미야가 즐겨 있던 자리에는 새로운 고양이가 와 있었고.

둘은 어색하게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다.



“다시 버린 거지 뭐.”



미야는 훗날 일산으로 갔다. 좋은 집에 분양됐다고 한다. 나는 길을 가다가 검은 점박이 고양이가 내게 반응하면 놀란다. 혹시 미야일까봐. 눈인사를 하는 취미도 귀퉁이에 밀어두었다. “사람 믿지 마. 언제나 멀리서 의심해줘.” 그렇지만 곁에 와서 꼬리를 다리에 말고 응석부리는 걸 보는 건 좋다.

“고양이 키울 마음 있어?”라는 말에는 언제나 단호하게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꾸 “우리집에서 개는 안 된다.” 말하고는 바닥에 드러누워 개의 얼굴만 쳐다봤다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나의 뒷모습이 겹쳐지는 것이다. 훗날 고양이의 얼굴을 한 번 보겠다고 바닥에 누워 있을 나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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