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0일 금요일

나를 좆되게 하려는 모든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

잠깐만, 여기서 ‘좆되게’는 ‘좆 되게’로 띄어 씀이 적절할까?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 보니 ‘좆되다’는 한 단어가 아니다. ‘한 단어’라는 것이 말은 쉬워도 모호한 개념이다. 일단은, 국립국어원에서 표준국어대사전에 올렸으면 한 단어이고 안 올랐으면 아니다. 국어원에게도 물론 나름의 기준이 있어 어떤 단어를 올리느냐 마느냐를 두고 일정한 심사를 거칠 것이다. 사전에 없는 걸 보면 ‘좆되다’는 아직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모양이다. 혹시 명사 ‘좆’에 피동이나 형용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되다’가 붙은 단어로 볼 수는 없을까? 하지만 ‘좆’이란 명사 자체에 서술성이나 동작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서술성이나 동작성이 있는지는 어떻게 따진담? 다소 빗나갈 위험은 있지만 공식이 있다. ‘되다’ 자리에 ‘하다’를 넣어서 어색한지 보는 것이다. ‘좆하다’는 어색하다. 만약 어색하지 않다면, 그리고 ‘-되다’를 붙였을 때 원래 명사의 의미를 유지하며 피동이나 형용의 뜻이 더해졌다면, 그때는 붙여도 된다. (뭐가 어색한지 안 한지 어떻게 구분하는지는 제발 묻지 마시라...) 이때 어색하므로 무조건 ‘-되다’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띄워서는 안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한 단어로 올라가 있는지를 검색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붙이는 편이 적절다고 국어원에서 판단한 단어들은 사전에 올리기 때문이다. 예로 ‘참되다’를 보자. ‘참하다’라는 표현을 쓰긴 하지만 그 경우 ‘참되다’의 ‘참’과는 뜻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참 되다’라고 쓰면? 매우 되직하다는 뜻 정도로 여겨질 수도 있다. 한 단어로서의 ‘참되다’가 필요한 것이다. ‘좆되다’의 경우 이미 찾아봤듯 없다. 역시 ‘좆 되다’로 띄어 써야 맞는다. 하지만... 하지만 이걸 정말 인정할 수 있나? 분명 국어원의 온라인가나다에도 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찾아보니 역시 있다. 답변은 ‘띄어 쓰라’는 것이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제는... 하지만 나는 끝까지 인정할 수 없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어도 내 사전(머릿속의)에는 그 단어가 있다. 지읒... 조... 좆... 역시! 나는 머릿속 사전에서 ‘좆되다’를 찾아낸다. ‘뜻하지 않게 몹시 마음에 안 들거나 난처한 상황에 처하다.’ 역시 맞지? 나는 그냥 붙여 쓰기로 한다. 내가 국어원의 개냐? 이래서는 뭔가 좀 좆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좆같다’는 붙여쓴다. 그것은 한 단어로 보아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좆을 들먹이는 것을 부디 용서해 달라. 하지만 표현하고 싶은 어떤 뭔가에 맞는 어떤 표현을 찾다 보면 뭘 피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렇지 않나? 이런 식으로, 교정공은 누구보다도 자신과 싸워야 한다. 내 맘에 들게 고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고치는 게 맘에 들지 않더라도 고쳐야 한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지? 아, 나를 좆되게 하려는 모든 사람들과 사람 아닌 것들... 그건 다음에 얘기하자. 오늘 얘기한 것은 사람 아닌 것들 중 하나인데, 그래도 이 정도는 그렇게 좆되는 문제까진 아니다.

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100

A나라는 고양이가 집을 나가는 것으로 유명하다. 벽에 셀 수 없이 많은 고양이를 찾습니다 벽보가 붙어 있는 것으로 말이다. 고양이들이 집을 나가는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A나라로 오면서 언젠가 자신도 집을 나갈 것이고, 벽에 자신을 찾는 벽보가 붙을 것이라는 것을 예감한다. 고양이들 가운데는 친구들을 잃어버린 고양이들이 많다. 자주 보던 고양이들이 사라지고, 조금 더 늦게 집을 나간 고양이들은 혼자 동네를 어슬렁거린다. A나라의 주변국인 B나라는 오래 전부터 A나라를 식민지화하려는 생각이 있다. 하지만 B나라는 내성적인 외교를 펼치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숨긴다. A나라 사람들은 자꾸 사라지는 고양이들 때문에 자살률이 높다. 고양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자신이 새로운 고양이와 산다고 해도, 그 고양이들이 또 집을 나갈 것이고, 그것이 반복될 것 같은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멈추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기도 하고 나라를 떠나기도 한다. 나는 오래전에 A나라를 떠났는데, 고양이 때문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도 고양이를 잃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바람에 고양이 때문에 떠난 것이 되었다.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낯가림 때문에 동물들에게 대놓고 다정하게 굴지는 못한다. A나라의 어느 벽에는 여전히 나를 찾는 벽보가 붙어 있다. 100년 후에 B나라가 A나라로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A나라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아무도 죽지 않았다.

2023년 10월 17일 화요일

교정공기는...

내가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이제는 희미해졌습니다. 교정공이라는 직업도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바늘방석의 바늘들처럼 꽂힌 채 일터로 집으로 실려 가는 출퇴근길 나는 생각합니다. 바로 지금이 인류 역사상 상대적으로든 절대적으로든 최대의 읽고 씀이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 아닐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또는 바로 그래서일지, 나는, 나의 일은,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뭔가로 교정공을 곧 대체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쓴 사람 자신의 조심성으로, 아니면 무슨 검사기로, 발달한 AI로...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사실을 교정공들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여러 의미에서요. 굳이 대체할 필요도 없이 어차피 헐값이고... 그래도 감사한 말씀입니다. 교정이란 게 필요하지 않다고 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판국입니다. 실제로 교정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 이유를 대면서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꼭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욕을 들은 것처럼 흠칫 놀랍니다. 나는 청소당하는 걸까요? 그러나 내가 놀라는 진짜 이유는,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실은 마음 한편에서는, 그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굳이 외치지 않아도 이 세계가 내 귀에 대고 그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필요하지 않다고요. 맞습니다. 나는 비밀스럽게 공공연하게 분명하게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래, 너희 맘대로들 해... 그겁니다. 맘대로들... 그러나 이 직업에는 내버리기 어려운 특유의 병과 벌도 있습니다. 그 어떤 잘나고 목소리 높으신 분들의 그 어떤 글에서든 고칠 곳이 보인다는 겁니다. 이 말글을 쓰는 이 나라에서 손발로 의전서열이 꼽히는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지성의 첨단에 계시다 하는 박사 교수님들, 심지어는 저 훌륭 대단한 여러 작가 문호님들까지... 그 누구도 관심이 없는 일에 오직 내가, 폭포 아래서 폭포를 멈추려 하고 있다는 그 느낌, 오직 나만이, 혼자서만 유령들을 보는 듯한, 그 위험천만한 느낌에 붙들릴 때마다 나는 눈을 감아 봅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의 기로 앞에서 맘속에서 눈물을 쏟고 분을 토했을, 이제 교정의 전당에 들어가 표정 없이 늘어선 선배 교정공들의 모르는 얼굴(데스마스크)들을 나는 떠올립니다. 선배들의 단단한 이마 너머에 무른 것의 고통이,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한없는 고통과 노고가 있었음을 나는 느낍니다. 이 고통은 도대체 언제쯤 끝날까요? 이 고통이 끝나는 것이 온당할까요? 나의 선생님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이들을 가장 존경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그런 이들을요. 다른 누구보다도요. 교정공기는 당신으로 나를 대체하려는, 나 교정공의 기록입니다.

2023년 10월 4일 수요일

선인장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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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단어나 개념인 듯이. 선인장 꽃들이 뜻 없이 피어 있구나. 아름답기도 하고 참 많기도 하다. 누군가의 정원인 듯한데 아마도 이건 꿈일지도 모르겠구나. 지금 이 순간 선인장 꽃을 보고 있는데 희미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그것이 갑작스레 핀다. 그렇게 피어나다니. 나 때문인지도 모르겠구나. 보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건 아주 다른 일이지. 지금 날 보고 있는 사람. 내가 그에겐 여기 피어 있는 선인장 꽃들처럼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꿈이 날 이 자리로 인도했다곤 해도. 낯선 자리에서 자기 자신을 소명할 필요가 있는 건 내 쪽일 터였다. 왜 선인장 꽃들을 이렇게 많이 피워냈는지 묻고 싶다. 그래서 나는 그쪽을 봤다. 꿈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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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인장 꽃을 이렇게 많이 피워낸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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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이 밭을 매고 있다. 나는 그중 섞여 함께 밭을 매고 있다. 지금은 옛날. 옛날 사람들을 옛날에 있다고 알아볼 수 있는 건 나도 옛날 사람이라서였다. 그들의 이름을 알고 생김새를 알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어려졌다. 중년에서 시작하여 청년이, 사춘기가, 7~8살 즈음이 되었다가 그만 포대기에 감싸여 있는 아기가 된다. 나는 그렇게 어려져서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 마을 사람들은 장례인지 돌잔치인지 모르는 것을 했다고…… 서신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서신은 엽서같이 생겼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씩의 선인장이 되었고. 나는 남들과 같이 나이를 먹고 싶었다. 나에게만 반대로 작용하는 시간이 싫었다. 어떤 수상한 노인이 나에게 펜과 종이를 줬다. 이것으로 내가 받을 나에게 보내는 서신을 적으라고. 나는 거기에 이렇게 쓴다.

선인장 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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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무슨 뜻인 걸까요. ‘선인장 꽃은 아름답다.’ 내가 넌지시 정장 입은 남자에게 물어보자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먼젓번 선인장 정원의 주인과 약속한 암호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암호를 알면 어떻게 되죠? 암호로 무엇을 할 수 있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이 암호 때문인가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저쪽에 있는. 그는 그렇게 말하곤 희끄무레한 안개에 감싸여 있는 저쪽의 저택을 가리켰다. 저택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저것은 당신의 소유입니다. 하지만 난 말을 소유할 수는 없는걸요. 저것은 말이(선인장 꽃은 아름답다) 아닙니다만. 난 말이라고 생각해요(선인장 꽃은 아름답다). 당신도,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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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가짜로 당위가 있는 것 같고 엉뚱한 아귀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서 이건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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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꿈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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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꿈이 아니라면 뭘까. 저쪽에 보이는 선인장이 선인장이 되기로 했던 아이리였다. 저기는 매번 같이 참을 먹던 이샨테가 있었다. 다 내가 알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젠 선인장이 된 그런 사람들. 난 여기에서 선인장이 되어야 하는 걸까? 정장 입은 남자의 말로는 이 정원에 있는 선인장들은 모두 이전에 선인장 정원의 주인, 그리고 저택이라는 곳의 주인들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얼마나 외롭고 권태로웠을까. 꿈의 몽롱한 느낌 외에는 없는 이곳은 얼마나 감옥인가. 실제로 이곳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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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인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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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아름답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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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와서 ‘선인장 꽃은 아름답다’라는 문장에 음을 붙여서 허밍하고 있었다. 나는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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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을 피워냈다.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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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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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없이 잠들어 있었다. 옛날 사람들과 같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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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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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안에서 그랬다. 나는 학생이었는데. 그 꿈을 꾸기 전까진 학생이었는데. 학생이기 전까진 그 꿈을 꾸고 있었는데. 무슨 꿈이었을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수업하고 있는 선생은 내가 모르는 개념을 칠판에 적어놓고 있었다. 뜻 없이 학생들이 고개를 주억거리고 필기를 하고 있는 듯했다. 아름답기도 하고 참 많기도 하다. 여긴 다시 누군가의 정원인 듯한데……. 라고 생각하다 그만 나는 분필을 맞는다.

2023년 10월 3일 화요일

일기 같은 것

말끔한 개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엉망인 나의 잔디밭 사이로.
환한 낮인데도
교회의 네온사인은 망가진 믿음처럼 깜박거렸다.
이러다 죽는 것이 최선일까?
내가 발걸음을 멈춘 사이에
이 광경은 전시되고 있었다.
나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나는…
나를 자주 말하고 있었다.
나는 말끔한 개들을 따라갔다.
죽은 풀들이 발밑에 붙어 끌려왔다.
여기저기 쓰러진 것들
그래도 나는 돌아다녔다.
이것이 내겐 산책이라고 믿어왔다.
개들을 따라다니며
점차 더러워지는 개들을 보았다.
개들은 무엇을 숨기거나
막으려는 움직임 없이
앞장서 가고 있었다.
누군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사진에 잘 나오기 위해 지어진 듯한 건물들 사이를 지나며,
몸통에 죽은 풀을 붙이고, 그것은 마치
내가 한 시간씩 할애하며
줄지어 기다렸다가 보기도 하는 공연 같았다.

개들은 자주 빛나는 벽 앞에 서게 되었고
나는 그 포즈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광경이 무언가를 암시한다고 생각했다.
교회의 네온사인은 망가진 채 깜박거렸다.
그러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교회는 주로 사거리에 있고
나는 사거리를 지나쳐버렸다.
이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오늘을
내가 사거리를 지나친 사건 발생일이라고 하자.
“제목: 내가 사거리를 지나친 사건 발생”
그러자 개들이 잊혀졌다.
그들의 말끔함도…
그들의 더러움도…

그러나 이 일기는 개들로 가득 차 있다.
내가 쓴 개들이 사라지자
내가 쓰지 않은 개들이 몰려온다.
나는 이 개들이
나를 지워줄 것 같다.
다른 것과 구별 안 되게 해줄 것 같다.

분신사바

1

폐허가 된 도시에서 왜 이 도시가 폐허가 되었는지를 생각해 본다. 꿈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느 비디오의 세트장이라거나. 도시에는 우리를 제외한 단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거대한 암석이 지상으로 하강하고 있다. 네가 땅에 손을 대고 하얀색 도마뱀(거대)을 소환한다. 그 도마뱀은 암석을 향해 눈부신 브레스를 뿜어낸다. 암석은 파괴된다. 그 도마뱀을 보자마자 그것이 나의 푼크툼(만들어낸 가짜)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영상은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나는 자꾸 그 도마뱀 기억만 났다.


2

물웅덩이를 세차게 밟아서 신발과 바지 밑단이 젖는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건 불가능한 것 같고 비 내리는 오늘 도시에는 물웅덩이가 심하게 많았다. 하나하나 보고 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그러지 못했다. 나는 부바르와 페퀴셰를 구분할 줄 모르고, 그건 다리 밑이 젖은 지금 별로 중요한 상념은 아니었다. 부바르와 페퀴셰가 마주 보고 앉아서 분신사바를 한다면. 거의 차이 나지 않는 숫자의 땀방울들이 두 사람의 이마에서 내려오고 있다면. 내가 문턱 옆에 서서 몰래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면. 우연히 발밑에 떨어져 있는 펜을 밟아 넘어지고 넘어지는 소리에 두 사람이 깜짝 놀란다면. 그런 식으로 의도치 않게 함부로 중단된 분신사바가 더 위험한 것이라면. 분신사바를 권한 건 나였지만 왜 지금 이 시간에 나를 빼놓고 했던 건지를 묻는다면 부바르와 페퀴셰는 나에게 미안해할지도 모른다. 타인이 내게 화냈던 것을 떠올린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던 것 같다. 분신사바는 진짜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러나 백과사전을 읽는 대신 두 사람이. 서로 같은 브랜드의 내의를 입은 두 사람이 나에게 관심 가져주고 미안해했으면 좋겠다. 내리던 비가 그쳤고 나는 약간 침울해졌다.


3

읽고 있던 <부바르와 페퀴셰>를 구석에 덮어두고 나는 하품을 했다. 하늘에는. 잘 모르지만 적란운이 떠 있는 것 같다. 비 내리고 난 다음에 떠 있을 확률이 높은 구름이란 건 내 거짓말이다. 난 잘 모르니까. 잘 모르는 구름들 위를 걷는다. 당연히도 난간이 없는 천국으로 향하는 계단이 옆에 보인다. 그 계단을 오르기는 무섭다. <피를 마시는 새>에서 똑같은 하늘 계단이 나온다. 역시 난간은 없다. 천국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나는 고소공포증이 조금 있다. 지금은 저녁이고 나는 아침이나 낮의 구름보다 저녁이나 밤의 구름이 더 마음에 든다. 분신사바는 왜 하는 걸까? 같이 난간 없는 계단에 올라 위험한, 위험한 느낌이 나는 동행을 하고 싶어서일지도. 공부하다가 서로에게 연애 감정이 싹튼다는 것은 들어봤어도 분신사바를 하다가 서로에게 반했다는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건 왜냐하면 아마도 분신사바를 하는 도중에 느끼는 설렘이나 불안감이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나는 계단의 3칸 위에 올라서 있다. 가위바위보를 너와 한다. 자꾸 이기고 져서 나는 계속 2, 3, 4칸을 왔다 갔다 한다. 너도 그렇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10칸 이상 올라가면 안 된다. 여길 지옥이라 생각하고 마주친 사람들에게 분신사바를 권하는 당신은. 저소공포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당신은 10층 즈음에 있다. 우리가 멀찍이 떨어져서 가위바위보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휴대폰 덕분이다. 우리는 동시에 소셜 게임을 켜고 있다.


4

소셜 게임은 가볍게 이기고 지고 순위가 나온다. 친구들의 순위를 볼 수 있다. 멀어진 사람도 가끔 눈에 띈다. 그것도 한때의 유행이었던 것 같다. 옆 나라는 어떨지 모르나. 부바르와 페퀴셰가 만나는 것은 우연이었을지 모르는데, 만나서 친해진 건 서로의 성격과 취미, 취향 같은 것들의 일치 덕분이었다. 그게 고마운 일이었으면 ‘덕분’이라고 하고, 그게 부정적인 것이었으면 좀 더 먼 거리에서 ‘때문’이라고 한다. 플란넬 셔츠 덕분에 그들은 친해졌고 그리고…… 나는 그들이 그대로 쭉 갔으면 했다. 그들이 백과사전을 탐식하며 읽어들일 때, 그들이 더 많은 사람들이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자꾸 실패했는데 머릿수가 적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분신사바의 정원은 4명까지지만(이것도 잘 모르지만) 나는 그들이 성공하는 광경도 보고 싶었다. 머릿 수가 많다고 꼭 일이 잘 풀릴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다. 소셜 게임은 순위를 정해놓음으로써 사람들을 가둔다. 그들은 미니 게임, 간단한 퍼즐 게임을 수감자들에게 배급한다. 당연히 거기서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이 싹틀 수밖에 없다. 그들은 감옥을 좋아하는 것이 아닌 이상, 주변인들의 존재(근황은 알 수 없다) 자체에 위로받는다. 그들은 위로 때문이 아니라 수감 상태에 가볍게 중독되어봤던 것이다.


5

그들이 탐식하며 백과사전을 읽어들일 때. 그들이 할 일을 찾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난 떠올리고 있다. 분신사바는 하지 않을 일을 찾고 싶어서 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경멸하는 동년배들과 그것의 불안한 결과까지를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옆에서 연출한 적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분신사바를 믿지 않았다. 믿지도 않는 것을 왜 하는가? 분신사바를 할 때에는 어느 정도 그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생기면 두려움이 생기고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나중에 생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알고 있다. 사랑할 때 일어나는 일은 분신사바에도 있다. 마찬가지로 분신사바를 할 때 일어나는 일은 사랑에도 있다. 안도하는 것이다. 아무도 분신사바를 믿지 않으므로 다 끝나고서 아무 일도 없을 때 안도하는 일 또한 없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그것을 느꼈다. 집에 가서 잘 때 뒤숭숭했어야 한다. 그것을 할 때 떨리던 손은, 앞에 앉은 아이의 떨림인지 내 떨림인지 모르는 그 손떨림의 경우는, 대개 아무런 일로 치닫지 않음으로 기울어지고 그리고…… 그 기욺은 재미없다. 그것을 먼저 믿었기에 그 믿음에 배반당하여 안도한다는 그런…… 것은. 마치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앉아 있듯.


6

그래서 난. 아직도 난. 방 안에 앉아 있다. 실내는 조금 따뜻하고, 서양식의 벽난로 같은 게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아쉬운데. 아쉬운 게 많은 몸이지 난. 저편에서 부바르나 페퀴셰 같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난 서서히. 플란넬 셔츠 내의를 입고서 난. 잠들고 있다. 잠은 일시적인 죽음이고 난. 죽음은 영원한 잠이고 난. 난 기다리고 있다.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서양 식의 고성이 아닌 곳에서 난.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문예부를 만들었다. 원래의 문예부도 있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은 학교 끝나고 분신사바를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하기 싫었다. 그들이 안 믿는 것이 눈에 보였으니까. 불을 끄고서. 그들은 그런 분위기만을 내고 싶어 했다. 난 그 상황 자체가 두려웠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고. 그래서……. 난. 아직도 난. 벽난로를 켜고서 그런 꿈을 꾼다. 분위기만을 내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둘이서 분신사바를 했다. 내 손이 떨리고 있는 건지 앞에 있는 아이의 손이 떨리고 있는 건지 잘 모르는 채로 손을 잡고 있으니까, 어쨌거나 손을 잡고 있으니까 난 사랑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쪽은 분신사바를, 한쪽은 사랑을 하고 있는 일. 분신사바를 좋아하는 그 아이는 이제 어떻게 됐는지를 모른다. 그게 제일 중요한 건데도.

2023년 10월 1일 일요일

23년 9월의 모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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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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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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