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햄버거성

낭비되고 있었다. 낭비되고 있다. 이 장면은 아주 느리게 재생된다. 당신은 얼음도 넣지 않고 코카콜라 레버를 주욱 잡아당기고 있다. 원수의 볼살이라도 되는 걸까? 떨어진 콜라는 가득 차오른 컵을 비켜선다. 당신은 레버를 놓아주지 않는다. 콜라가 낭비되고 있다. 그것은 하수구로 곧장 들어간다.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왜 안 나오는 거지? 당신은 레버를 당겼다 밀었다 반복하며 큰 소리로 불평한다. 당신은 따라 들어가 한참을 흐르고 있다.
 
햄버거성에 콜라가 사는 일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차피 뱃속에서 섞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은 대장 속 용종을 움켜쥐며 겨우 흐름을 멈춘다. 햄버거성이군. 햄버거성이야. 당신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그리고 다 알았다는 듯이 안도하며 중얼거린다.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 당신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햄버거성은 전쟁 중이다.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는, 글쎄, 당신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지 않나. 어차피 당신도 싸우게 될 것이다. 싸우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싸우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죽거나 죽인 후에는 다 상관없어질 테지만 이 부분은 내가 특히 관심 있으니까.
 
시나리오는 군웅할거다.
군웅할거는 프리 포 올이다.
 
당신은 조금 더 쉽게 생각하기로 한다. 당신은 간호사의 목소리를 하나 둘 까지 듣고는 깊은 잠에 빠진다. 자는 동안 당신의 몸은 패티로 이루어져 있다. 패티를 재조립하는 일은 쉽지 않다. 최상의 조합이란 재료가 아니라 순서에서 온다. 고기 패티를 어느 위치에 두느냐의 문제, 내가 아는 바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토마토는 아래로 축 늘어진다. 소스는 침착하고 빵은 늘 견고하다. 그러나 고기 패티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기 어렵다. 특히 이렇게 주문이 많은 날이라면
 
내시경 다 끝나면 성시경 되나요 주시경 되나요?
 
당신은 잠꼬대를 시작한다. 약은 힘이 강하다. 정말이지 당신과 이렇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스 몇 개 더 가져오라고, 내가 말한다.

2017년 12월 30일 토요일

요정

인간 외 지적생명체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유인종(類人種, The humanlikes)이라는 명칭은 적절치 않다. 존재양식이 다양한 만큼 외양상 인간과의 유사성이 적은 종도 많고, 종목간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기능면에서 인간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유의미한 지적이지만 여기에서는 대체어로 추천되는 대화종(對話種, The Conversables)보다 유인종이라는 옛말을 쓰기로 한다. 다소 고정된 <관점>이 있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유인종의 대강을 점하고 있는 존재군은 단연 요정이다. 곤충이 종 다양성에 기여하는 바와 같다. 몇 쌍의 다리와 날개, 삼부로 나누어 파악 가능한 몸통 구조 등의 조건 안에서 곤충들의 생김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요정들도 몇 가지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다. 모든 벌레를 곤충이라고 하지는 않듯이 모든 유인종을 요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날개를 가졌는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같은 것은 (비록 많은 요정들이 그런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그 존재가 요정이라는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요정을 요정이게 하는 요건들은 시점에 얽혀있다. 다음의 질문들에 긍정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현재 인간이 아닌가?
2. 과거 인간이었던 이력이 없는가?

(이처럼 분류법이 완전히 인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에도 유인종이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기만적이지 않은가? 개인적인 불만이다.)

장래에 인간이 될 가능성의 유무는 요정과 비-요정(임시로 조어된 개념이기 때문에 하이픈을 넣는다)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어떤 요정들은 인간이 된다. 그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은 그들 중 일부가 인간으로 변태할 수 있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특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과 부분-혹은 전체적으로 유사한 외양을 지녔고, 인간과 소통 가능하면서-’라는 숨은 전제가 있다. 서두에서 말한 유인종/대화종 명칭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다만 요정 연구사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 부분이 명문화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인간에게 우호적일지라도 인간과 비교당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요정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추측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숨은 전제를 모르고 요정을 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 같은 분류기준이 체계적이고 정확하지는 못하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폴 버니언이 계통상 구두수선공 요정들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한 쪽은 성냥갑 안에 한 다스가 들어가지만 다른 한 쪽은 새끼발톱 위에 성냥갑 한 다스를 올리고도 남는다. 그런 그들을 달리 무엇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요정들의 외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특징들은 요정과 비-요정을 가를 때보다 요정들을 한층 더 세분하고자 할 때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같은 분류법은 상당히 재미있다. 가령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육안식별가능성을 두고도 보통 인간의 눈에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렇지 않은 경우 전문가의 눈으로는 인식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 육안식별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 요정들끼리는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크기를 기준으로 요정들을 재분류할 때는 자연히 공룡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크거나 작아봤자 미터 단위 안팎을 오가는 인간들과 달리 요정들은 밀리미터 단위에서 킬로미터 단위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최다개체가 분포되어 있는, 달리 말해 양적으로 요정의 대표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크기는 6:1 스케일이다. 인형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이즈와 같다. 우연이 아니라면 상상력을 발휘해 볼 만한 공통점이다.

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나무성

이거 컨셉이죠?
 
아닌데요.
 
그럼 사칭?
 
뭐하러.
 
그거야 저는 모르죠.
 
저도 몰라서
 
햄버거
햄버거를 생각한다. 이 별의 숲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무언가를 깎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기척은 없다. 이 별의 숲의 나무들은 알아서 자란다. 자라다 말다를 반복한다. 비물리적으로 자라므로 시간과 속도는 자람과 무관하다. 이것이 이 별의 숲의 나무들의 잎사귀를 저 별의 당신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오지는 숲이군.
 
당신은 감탄부터 하고 본다. 그리고 나서 이유를 생각한다. 왜 자라는 거지? 어떻게 자라는 거지? 나는 지금 당신이 이유를 생각하는 이유를 헤아리고 있다. 당신의 생각에 보조를 맞추며. 당신의 미간에 몇 겹 주름이 생길 때 나는 약 올리듯 자란다. 나는 당신이 놀라는 게 좋다. 당신의 방에는 저 별의 나무로 만든 것이 가득하다. 그들은 죽은 척 하고 있다. 어느 화창한 날 당신을 크게 놀라게 하려고.
 
이것은 성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명확히 하자. . 건축 자재는 다양하다. 나무가 가장 흔하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나무성은 드물다. 드물게 남은 나무성은 굳건하다. 김무성처럼.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불타는 나무성을 본 자는 그것을 평생 떠올리게 된다. 죄악감. 나무는 죽을 때까지 타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무에게는 삶이 없듯이 죽음도 없다. 나를 본 자들은 이미 죽은 후였다. 당신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나는 가지 두 개를 움직여 당신의 입을 벌려주었다.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11월 더미 태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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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를 해야겠다. 뭘 쓸지는 아직 생각해내지 않았다. 사실 쓸 만한 것은 전부 다 쓰고 있기 때문에 더 쓸 것이 없는 듯도 하다. 근 몇 년 동안 보잘것없는 밑천을 거의 다 쓰기도 했다. 그리고 거지 상태로, 다음과 같은 뭔가를 쓰고 싶다. 텀은 월 2회. 연속성이 있을 것. 시의성도 조금. 읽기에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한 번 읽고 치워 버릴 만하지도 않게. 야구카드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일기와 구분된다. ~했다와 ~할 것이다와 ~야 한다와 ~하고 싶다가 뒤섞인 뭔가가 아니다. 패턴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반복적인 뭔가였으면 한다. 다른 데서 쓰고 있는 다른 것들과는 무관해야 하고, 남이 만든 뭔가와도 무관해야 한다. 이거는... 여기다 이렇게 적었다는 거는 결국 당분간 안 쓰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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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이 곡물창고 1년째다. 그날은 곡물창고의 날이다. 쌀, 보리, 콩, 조, 기장, 수수, 밀, 옥수수 따위 곡물로 만들어진 음식을 챙겨 먹고 밤에는 곡주를 마신다. 빼갈이 좋겠다. 보드카도 좋다. 그날은 고기를 삼간다. 굳이 먹어야 한다면 새고기만 가능하다. 글도 몇 자 쓴다. 딱 몇 자다. 문단은 안 된다. 이제는 中華時代, 이렇게. 향을 피우든가 향초를 켜고 누워서 냄새를 맡는다. 전깃불을 꺼야 한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러다 잠들 것이다. 곡물창고는 긴 기획이다, 괜히 구글에 기댄 게 아니다, 앞으로 최소 5년은 기본으로 간다, 당연히 건립일도 챙겨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리고 경작지 꿈을 꾼다. 도중에 일어나 초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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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나 칼을 차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은 날이 추워지면서부터 들었다. 그것은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허리에 차야 한다. 홀스터나 칼집. 무거운 신발도 신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걸어가는 것이다. 집까지. 어디까지든. 하지만 요즘만치 추우면 외투를 입어야 하고 외투 위에다 벨트를 찰 수는 없다. 거추장스럽겠지만 소총 메기는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소총을 멨으면 좋겠다. 내가 갖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도록. 내 소총이 있다면 이래저래 꾸미고 싶다. 스티커도 붙이고 스트랩도 예쁜 것으로. SMG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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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 딱 걸고 비밀스럽게 시험적으로 원고 모집을 해봤는데 투고는 없었다. 어느 정도 될 것 같으면 고정 코너로 삼으려고 했다. 무슨 만 원 정도로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이었다. 장난으로라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장난으로도 없었다. 삼만이면 될까?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한 나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하기 어려우므로 역시 좀 아리송하다. 아마 안 될 것 같다. 어쨌든 내가 딱 그 정도 느낌, 월 만 원어치 느낌으로 쓰고 있기에 그 넘게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돈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공고公告를 바로? 이쪽도 안 오면 끝이고, 와도 좀 문제다. 그냥 청탁이 깔끔할 수도 있겠다. 무슨 청탁을 말하는 건가? 가상의 누군가에게 청탁을 하는 식으로 해서... 이런 건 어떤가? 악마에게 청탁을 거는 것이다. 정말 그런 식이라면 유치할 거고, 골자가 그렇다는 얘기다. 사타닉한, 최악의 적들이 있고, 그들의 옆에 서서, 차분하게 최악의 주장을 펼쳐보는 것이다. 혐오와 살인, 자살과 전쟁, 강간과 방화 등의 이런저런 죄악을 합리화하고 변호하는 것이다. 교인의 옆에서 노인의 옆에서, 군인의 옆에서 선생의 옆에서, 남자 옆에서 여자 옆에서, 사장 옆에서 회장 옆에서... 악마보다야 나은 것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이건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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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에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진다. 취미마저 쉬고 싶다. 그러고 보면 연말이 아닌가? 연말이라면 역시 송년회다. 토탈브레이크 송년회를 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눕거나 앉아서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알아서 밥 먹고 스스로 잠들며... 모이지도 않는다. 이건 곡물창고의 날과 함께 진행하면 될 것 같다. 다른 기획도 있다. 하나는 불의 송년회다. 원탁에 그냥 둘러 앉아 각자 가지고 온 초를 꺼내놓는 것이다. 다같이 켜도 좋고 두어 개만 켜도 좋다. 앞에 물, 좋은 술, 좋은 차, 그리고 컵과 잔을 두는 물의 송년회도 있다. 마음껏 마셔도 좋다. 뱃지와 돌멩이, 장신구, 주사위 따위를 늘어놓고 이야기하는 광물의 송년회, 말린 고기와 과일, 과자를 두고 영상물을 보는 생물-번개의 송년회, 향을 피우고 담배를 피우고 음악을 트는 공기의 송년회, 이 다섯 송년회를 다 함께 해서 지구별 송년회, 그리고 거기에 몇몇 외계 문물을 가져와 교류하는 것까지 더하면 코스모 송년회다. 곡물창고의 날로 시작해 월화수목금토 매일 저녁 60분씩 해 가지고 마지막 토탈브레이크까지 굿바이 코스모 송년주간으로 해도 되겠다. 쓰고 나니 벌써 이미 한 기분, 충만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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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아주 춥고, 나는 오두막을 갖고 싶다. 바깥의 일이 다 고통스런 나날들이다. 내 바람은 일단 오두막에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다. 바구니 짜기 같은 소일을 하면 좋겠다. 손이 시렵지 않겠나? 발로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발도 그러나 시려울 것이다. 발을 집어넣을 수 있는 담요가 있어야 한다. 손도 집어넣고. 머리도 집어넣어야 한다. 외풍에 대한 방비가 철저히 이뤄진 오두막이고 그 방비는 내가 한 것이다. 무지개천 같은 것으로. 오두막 안에는 난로가 있고 연통이 있다. 난로는 켜지 않았다. 땔나무가 없기 때문에. 그래도 바깥보단 따뜻한 편이다. 웅크리고 있자니 바람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통하는 바람인가?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다 가려놓았기 때문에. 오두막 어딘가에 쥐가 있는 것 같고 문간에는 총이 기대어져 있다. 그런 식이다. 당연히 그곳에서 송년회를 하고, 그 오두막을 떠나며, 그 오두막이 송년회만을 위한 오두막, 송년장이었음이 밝혀진다.

*
소반 위의 쥐잡이는 그사이 살을 더 찌운 것 같다. 딱 차게 들어가 앉은 택배박스는 역시 주운 것이다. 받는 이 칸에 유명한 가수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가수가 근방에 산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혹시 하는 생각에 처분하지 못하고 뒀던 것이다. 혹시... 이사야는 그 속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세운 채 미동도 없이, 뭔가를 깊고 그윽하게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그가 꾸고 있을, 반쯤은 추억이고 반쯤은 예언인 폭풍 같은 꿈을 상상해 본다. 최근 그가 창고 안에서 번개처럼 뛰어다니는 걸 자주 봤다. 쫓았던 것이 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추워지면서 하여튼 뭔가가 들어온 것이다. 매양 그러는 걸 보면 잡기에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젖은 깃발처럼 흔들리던 누런 꼬리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 들었던, 고양이의 꼬리를 붙잡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 척추가 빠진다는 이야기. 그건 관리인의 손도끼를 만지다가 떠오른 것이다. 손때를 탄 자루가 딱 겨울 이사야의 꼬리만큼 도톰하다. 관리인은 뭐 한 십 몇 년 됐다고 했다. 이것으로 어제 나무를 해 왔다. 나무를 했다기엔 민망한 정도지만. 오늘 돌려주러 갔는데 관리인은 자리에 없었고, 대신 못 보던 포대가 있었다. 이사야를 위한 사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퍼뜩 든다. 떠들어 보진 않았다. 그 사료를 먹고 힘이 나서 그렇게 뭘 쫓아다닌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은 이사야의 일이다. 마구 뛰어다닌 끝에 배불리 먹고, 불가에서 꿈꾸는 일. 그러고 보니 오늘이 2일이 아니라 1일이다. 그래서 관리인이 없나? 하지만 불은 이미 피웠다. 올해도 곧 끝이다.

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소실수

방이 너무 좁다고 여겨져서 씨앗을 주문했다. 일종의 담쟁이 덩굴같은 것인데 벽 가운데 박으면 자라면서 벽을 장악해 소실점을 만든다. 공간의 너비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좁지 않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역할로는 충분하다.

흙에 심는 것도 아니고 수분이나 양광을 취하는 것도 아니어서 키우기 쉽지 않을까 하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사실은 발아시키는 것부터가 큰일이다. 식물의 즙으로만 자라는데 어째서인지 열매나 뿌리에서 난 즙은 통하지 않는다. 샐러리 따위를 갈아서 면포로 즙만 걸러 붓으로 발라주면 좋다고 한다. 완전히 자라 벽에 정착하기까지 이 공급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즙은 상온보관하되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발라주어야 한다. 자연상태에서는 수령이 오래된 큰 나무에 박혀서 자라는 것이 보통인 듯하다. 숲에서 나무 하나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는 사람을 발견한 적이 있는지? 그 사람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를 감싸며 자란 소실수에 마음을 빼앗긴 것일지도 모른다.

4~5년에 한 번 개화하고 열매를 맺는데 제 가지의 꽃끼리는 수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내에서 거둔 씨앗은 발아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다만 개화기에서 결실기까지는 벽 하나에서 여러 개의 소실점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하니 상당한 장관이겠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현상에 멀미가 일어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더욱 열심히 샐러리즙 같은 것을 발라주어야 한다. 쓰다보니 역시 짜증나는 식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문을 취소할까 한다.


특기할 만한 점 하나를 잊을 뻔했다. 소실수가 자라는 구역에서는 버섯이 나지 않는다. 필자에게는 중요한 장점 중 하나지만 이 방에서는 원래 버섯이 안 나기 때문에 방이防茸 목적으로 소실수를 키울 필요까지는 없겠다.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7호 서신]


*겨울철
 - 건강 관리 유의.
 - 입하 관리 철저.

*관리권한 변경
 - 필진 권한이 관리자에서 작성자로 일괄 변경됨.
 - 관리자 권한은 창고관리인 계정만이 가짐.
 - 구글 계정(창고관리인) 공유 기조는 유지.
 - 위 변경에 맞게 사용조례를 개정함.

*필진 모집
 - 추천제로 항시 진행.

*기타
 - 이메일로 구독 기능 추가.
 - 꼴바꿈 주기 2개월에 1회로 변경.

이상.

2017년 11월 2일 목요일

10월 더미 태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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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를 갖고 싶다. 더 정확히는 묏자리를. 숲속에 반듯 널찍한 구멍을 파놓고 싶다. 이 나라엔 산뿐이고 숲이랄 건 없지만서도. 파놓고서 가끔 가 주변을 매만져두고 싶다. 부장품들을 미리 가져다 둔다. 전혀 쓰지 않지만 버리지도 않을 물건들이다. 내가 여생을 비참히 보내지 않는다면 아마 보물함이 거기 들어갈 것이다. 호박, 흑단, 산호, 물총새깃이 들어 있는 작은 나무함이다. 작은 금붙이나 터키석이 추가될 수도 있다. 청금석도 좋다. 도기나 조약돌 따위. 그리고 그들을 닦을 수 있는 천. 개다리소반도 가져다 둘 것이다. 개다리소반을 주우러 동네를 쏘다녔던 기억이 난다. 결국 줍지 못하고 샀었다. 만 원을 주고. 상인은 다리 하나에 이천오백 원이라고 했다. 묏자리에는 이제 죽을 때까지 읽지 않을 두어 권의 책도 들어간다. 묘를 만들며 쓴 도구들도 함께 묻어야 한다. 물이 차지 않게 지상 둘레에 얕은 흙담을 올리고 천막을 친다. 20년 정도만 소일하듯 해도 진시황 부럽지 않게 될 것이다. 개 무덤도 그 안에 만들면 되고, 후손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거기 앉아서 내 벽들과 함께 살다가, 그냥 거기 누워 죽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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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켓북은 상당히 관심사다. 포켓북을 만들고 싶다. 포켓북이라는 형식에 맞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가져와서. 시집, 단편소설, 유머집, 소사전, 논문, 저작권 풀린 옛 고전의 한 부분, '무엇을 할 것인가', 마오 어록, 박근혜의 산문, 김재규 일대기, 우주세기 연표, 야인시대 64화(심영 에피소드)의 각본, 한국의 시·군 목록, 그런 잡다한 것들을 같은 시리즈로 하나씩 만들고 싶다는 얘기다. 안주머니나 손가방에 쏙 들어가는, 손바닥만 한 종합 문고다. 번호가 있어야 수집욕을 자극할 수 있다. 표지가 예뻐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나씩 띄엄띄엄 나오면 안 되고 와장창 쏟아져 나와야 한다. 순서대로 나오면 안 된다. 이 형식에 내가 쓴 것을 슬쩍 끼워 넣는다는 것이 당연한 핵심이고, 그 참에 네가 쓴 것도 슬쩍 끼운다는 것이 두 번째 핵심이다. 협동농장총서. '***문고' 같은 이름도 좋겠는데 적당한 ***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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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점대 갖기. 주역점에 쓰는 점대를 말한다. 산가지, 서죽이라고도 불린다. 주역을 배운 것은 대학생 때 교양수업에서였다. 몇 없었던 만족스런 강의였다. 주역점을 쳐서 해석해 오는 것이 과제였던지라 나무젓가락을 깎아 점대를 만들었다. 한동안 그걸 갖고 점을 쳐댔다. 축제 때도 치고 엠티 가서도 치고 이거 위험해지는 거 아냐? 싶을 때까지 쳤다. 그때 만든 점대를 계속 갖고 있다가 한 개를 잃어버렸다. 본래 50개 중에 한 개는 빼놓고 치므로 점을 치려면 칠 수는 있으나 법에 맞지 않는다. 하나만 새로 만들기엔 이전 것들에 든 길 탓에 너무 튄다. 사려고 하면 값이 보통이 아니다. 아마추어 주역쟁이들은 이것저것으로 자작해서들 쓰는 모양이다. 김발을 사다가 끈을 풀어서 쓴다는 사람도 있다. 나도 이제 나이도 적당히 찼고, 새로 한 세트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좋게 해 가지고. 얼마 전 꿈에서도 거짓말처럼 이 생각을 했다. 꿈속의 대밭을 보면서 저걸로 서죽을 만들면 어떨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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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차 말했지만 이제는 中化시대다. 중화시대가 온다. 나는 그럴 필요가 있는 단어에서는 언제나 한자를 병기하고 있는데, 다 중화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한 자라도 더 써두고 더 봐두면 좋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중국어 스터디 그룹를 만들고 싶다. 중국어를 배웠으면 배웠지 왜 굳이 그룹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것 같다. 정말로 갖고 싶은 것은 뭐 무슨 그룹인 것 같기도 하다. 그놈의 그룹... 벽 같은 것이다. '한계가 있어야 전진이 있다'라는 식으로. 서로의 한계가 되어 주는... 주역을 통해 중국어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너무 오래되었나? 협동농장총서에 주역해설도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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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러 다니기 좋은 시기도 끝나 간다. 바퀴 달린 탈것을 갖고 싶다 노래를 부르고 다니기도 했다. 바퀴는 세 개 이상, 승객을 한 명은 태울 수 있어야 하고,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인력이라도 괜찮다. 세발 자전거가 그나마 현실적이다. 장은 잘 보지도 않지만, 그걸로 장을 보러 다니면 좋겠다. 좋기로는 짐마차가 가장 좋다. 마차면 마구간도 있어야 한다. 마구간도 물론 갖고 싶다. 마구간 정도는 있어야 성공한 인생이 아닌가? 마부를 하기는 싫다. 나로서는 그런 크기의 큰 짐승을 감당할 수 없다. 나귀 정도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르지만. 나귀 마차. 오토바이라면 사이드카다. 오토바이는 너무 좁다. 자동차라면 다마스 정도가 귀엽다. 라보도 괜찮다. 그런 것들을 끌고 다니기다. 버스도 전철도 아닌, 개인적인 이동 방안이 필요하다. 개인적인 이동 방안을 위한, 개인적인 이동 방안의 계류지가 필요하다. 아니면 개인적인 이동방안 속에서 잘 수 있어야 한다. 그쪽이라면 내 것이 아닌 역들이 있어야 할 것이고, 아니다, 그런 것은 필요가 없다! 외양도 포장마차도... 그런 것들은 필요가 없고 가질 수도 없다. 무덤이 그러한 것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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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옷을 입은 관리인은 자신의 의자를 가지고 나왔다. 튼튼하고 우아한 철제 의자. 그는 내게도 차를 따라 주었다. 어두운 빛에 구수한 향이다. 그는 '좋은 거'라고만 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두툼하며 묵직한 그의 컵은 그와 나 사이에 놓인 소반 위에 있다. 그는 내 메모를 하나씩 읽고 내게 돌려준다. 나는 나의 메모를 하나씩 받아 불 속으로 던진다. 그 화는 빛날 화 자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 말고 다른 말은 없었다. 메모들은 곧 다 탄다. 속절없다. 땔나무 구하기는 제법 힘들었다. 차는 별 도움이 안 됐다. 다음엔 지게를 지고 산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관리인은 지게가 있다 말하고, 차에 대해 묻는다. 만든 것이냐고. 주운 것이다. 훔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고친 이는 나다. 새 왼쪽 바퀴를 구하고 아주 기뻤던 이야기를 했다. 관리인은 산에 대해 말한다. 옛날에는 저 산에 나무가 없었다. 산 이름을 묻자 알려주었다. 노인들이 다 죽어 놔서... 지금 그의 무릎에는 보란 듯이 이사야가 올라앉아 있다. 그는 쥐잡이를 만지지도 않고 부르지도 않는다. 이사야는 그곳에서 편안해 보인다. 저번 주부터 내게 쌀쌀맞게 군다. 쥐무덤을 찾아낸 게 아닌가 싶다. 그래도 통조림은 먹었고, 그곳에서 졸고 있는 것이다. 관리인이 뭘 적고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이것도 그에게 보여준다. 그는 이것도 태우는 거냐고 묻고, 나는 그렇다고 답한다.

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적기투항: 민주노총 (17년 10월 넷째 주)



마지막 PIMPS는 청와대 만찬 보이콧 건으로 진흙탕 화제에 오른 민주노총이다. 원래 디폴트로 보수반동들에게 까이던 것에 더해, 탄핵과 대선 국면을 거치며 여기에서 저기에서 좌우 노소 안팎을 가리지 않고 나날이 더 욕을 먹고 있다. 어떤 면에서 이 정도로 욕을 들어 처먹는다는 것은 민주노총이 이제는 자의든 타의든 명실상부 한국의 주요 정치 주체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겠다. 거짓말 약간 보태서, 요즘 나는 자나깨나 민주노총 걱정뿐이다. 그간 내가 그들의 여러 노력들을 보아 알고 있으며 항상 응원 지지하는 입장임에도, 금주의 그 결정은 참 마음이 아프다. 판단력이 흐려졌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꽤 역사적인 시점을 지나고 있고, 이런 때일수록 침착함이 필요하다. 뭘 해도 공은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무조건 여기저기서 욕은 먹고, 이러면 당연히 심사가 꽈배기가 되기 마련... 이런 건 재미없는 이야기다. 지금 민주노총에 필요한 이미지 메이킹은 바로 이미지 메이킹 그 자체의 시작이다. 재작년 민중총궐기 즈음을 기점으로 민주노총의 디자인 역량이 매우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미지를 한번 바꿔 보려는 이런저런 산발적인 기획들(별 반응은 없었지만)도 봤다. 여전히 부족하다. 전격적이고 종합적인 기획, <토탈플랜>이 필요하다. 부족한 역량을 짜내면서 찔끔찔끔 하지 말고 팀을 제대로 꾸려서 돈을 한 번 크게 쓰자. 어차피 다 노동자들이니 못할 일이 없고 못 만드는 것이 없지 않은가? 먼저 TV광고 집행. 두산의 뭐 사람이 미래다 이런 느낌으로, 그윽하게 나레이션(노동자는~ 어쩌고) 깔면서 건물 한번 보여주고 도로 한번 보여주고 각종 일터 여기저기 훑고 뭐 이래저래 일하는 사람들 쫙, 웃다가, 뭐 사장 새끼들 용역 새끼들, 데모 장면 따닥 보여주고, 로고 빵,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러면 그만이다. 안에서 뭘 하는지를 밖에서 모르니 자꾸 데마고기가 퍼지는 것이다. 그런 건 티브이가 직격이다. 대체 언제까지 옆에서 남들이 만화 그려주고 영화 만들어 주고 글 써주고 해야 되나? 메인 스트림에 공격적으로 진출을 해야 한다 이 말이다. 합정에 상균아 사랑한다 D+얼마 지하철 광고 붙이고 홈페이지에서 굿즈, 뭐 뱃지도 팔고 조끼 머리띠도 팔고 손수건, 소책자, 티셔츠, 뭐 또 이것저것에 이래저래 긁어 모아서 현카처럼 아예 집회 신고를 염병땡땡 콘서트로 해서 티켓도 팔고 얍티비 좆같은 데에 광고 때리고 종합적으로다가 하여튼 개좆같은 자본주의 문화 세계에 한번 온몸을 던져 보라는 얘기다. 어차피 망한다 망한다 하는데 못할 일이 뭐 있나? 안 그런가? 위기가 기회라는 점을 다시금 강조하며, 이것으로 PIMPS를 마친다. 그간의 성원에 감사드린다.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TK목장의 결투: 유승민 (17년 10월 셋째 주)



저번에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진보 정치인을 다루겠다고 했는데 막상 쓰자니 딱히 인물도 없고, 파워이미지메이킹은커녕 눈물과 한숨뿐... 원래 진보 정치는 이념과 연대로 하는 것이지 인물로 하는게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난 인물들이었으면 왜 그러고들 있겠나? 그런 의미에서 금주의 PIMPS는 큰 액션 보여주며 큰 인물을 꿈꾸는 유승민으로 정했다. 탄핵 때부터 줄창 연기만 피워대던 정계 개편 헤쳐모여를 이 주에 정식으로 들고 나왔다. 낚이는 쪽이 유승민인지 안철수인지 하여튼 빨리 좀 정리들을 했으면 좋겠다. 유승민에게 아직 뭔가 야심이 있다면, 일전에 내가 한반도에서 안경잡이는 절대 안 된다고 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제 와서 안경을 벗기에는 너무 빈상貧相인 면이 있지만 그래도 벗어야 한다. 안경만 문제가 아니다. 입술이 얇고 어깨도 좁지 않은가. 거기에다 전부터 사람들을 잘 추슬러서 가기보다는 꼬장꼬장하게 뻗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맞물려, 한마디로 그릇이 작아보인다. 보면 미 공화당 같은 걸 하고 싶은 게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지금 그 딸깍발이 꼴로는 절대 못한다. 선비의 시대가 아니다. 유승민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무武, 전례가 없는 무력이다. 어차피 마동석 정도로 벌크업을 하지 못할 거라면 간단한 액세서리로 돌파구를 만들 수 있다. 내 말은, 총을 갖고 다니라는 얘기다. 그 뭐, 가족을 지켜야 하니까. 안경을 벗은 김에 잔뜩 찌푸리고 다녀도 좋다. 표정에서부터 상대를 제압하고, 술이 달린 바지, 챙이 넓은 모자, 계절감 있는 판초, 그런 것도 모두 잘 어울릴 것이다. 관을 끌고 다니는 것까진 너무한가? 하지만 말은 타고 다녀야 한다. 말이 좀 그러면은, 김무성, 그래, 김무성을 타고 다니면 되겠다.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길 주인

박스 안에 앉아 있다. 길을 지나는 차량으로부터 도로 요금을 징수하기 위해서다. 말해두지만 나는 요금 징수원이 아니다. 나는 이 길의 주인이다. 이 길은 먼 조상 때부터 집안의 길이었다. 이 길은 할아버지의 길이었다가, 아버지의 길이었다가, 지금은 내 길이다. 먼 조상 중 하나는 둘도 없는 로맨티스트로 전해 내려온다. 그 조상은 다른 조상에게 청혼할 때 자신과 결혼해준다면 그를 위한 길을 사주고 그 길에 그의 이름을 붙이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켰다. 그때 지어진 길의 이름은 더 이상 전하지 않지만 길은 유산으로서 전한다.
명절이지만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박스 안에 앉아 있다. 명절은 나에게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니까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만날 가족도 없다. 더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형제도 없다. 아버지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친인척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려 부모 외에 내 핏줄이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이 없다. 원래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도 귀찮고, 귀찮게 돌아가도 반겨줄 이도 없어서 그냥 팔아버렸다. 나는 이 박스 안에서 생활한다. 박스 안에서 자다가, 밥을 먹다가, TV를 보며 웃다가, 차를 보며 요금을 징수한다. 이 길을 물려줄 자식이 나에게 없으므로 나는 이 길과 함께 죽을 작정이다. 아니면 영원히 살거나.
이 길 안쪽에 땅이 있긴 하지만 밟아본 적 없다. 저 땅은 주인 없는 맹지(盲地)다. 그 땅을 둘러싼 모든 길은 나의 길인데, 대대로 우리 집안에서 도로 이용 허가증을 내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출입할 수 없고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그 땅으로는 풀과 벌레가 무성하게 번식한다. 푸서리를 지나 정중에는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있다. 조사원들조차 그 땅을 밟지 못해 그 나무의 나이도 모른다.

서재극

클로짓 드라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연을 전제로 하지 않은, 오로지 읽기 위해 쓴 극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네요. 한자어로 다시 쓰면 서재극. 이 분야의 유명한 작품 제목을 따서, 우리말로는 ‘안락의자 연극’이라 부르기도 한대요.

상당히 근사하게 들리는 얘기죠. 이 형식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번영했습니다만, 연출가의 역량에 따라 어떤 텍스트라도 무대에 올릴 수 있다 -는 전위・실험적 연출 사조의 등장에 밀려 서서히 저물었다는 모양입니다. 이해하기에 그리 어렵지는 않은 듯도 합니다만 곱씹어보면 조금 역설적이기도, 하지 않나요. 희곡 작가가 무대라는 제한을 벗어나 최대한의 자유도를 추구한 결과, 상연되지 않을 극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연출가가 추구하는 극단적인 연출적 자유에 밀려 결국 다시 사라지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는. 

송출되지 않을 라디오의 대본을, 그것도 오프닝만 쓰는 것은 어떤 일일까요? 이런 형식이라면 무슨 이야기든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이런 것을 쓰기로 했습니다만, 언젠가 이것이 더이상은 클로짓 오프닝이 아니게 되는 날도 올 것 같은 예감도 벌써부터 들고, ‘최대한의 자유도를 보장하는 형식’, 바로 그것에 오히려 걸려 넘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함도 느낍니다.

그럼에도 일단은, 이렇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열린 옷장 방향으로 놓인 안락의자에 앉아 옷장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느낌으로. 


말난 김에 안락의자를 하나 살까요? 이렇게 말함으로써 당신은, 내 집에 아직 안락의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심상정이 아닌: 이정미 (17년 10월 둘째 주)



PIMPS의 마지막 한 달은 (재미없게도) 진보 정치인을 다루기로 했다. 적아를 가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의미다.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언제나 진보 정치인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그리고 언제나 이렇게 외치고 싶다. 여러분 거기 있지요? 그들은 보이지 않고, 그들은 들리지 않으며, 그들은... 오늘은 이정미를 다룬다. 이정미가 누구냐, 박근혜 탄핵 당시 선고문을 읽은 헌재소장 권한대행과는 동명이인으로, 현재 정의당 당대표다. 그가 진보정당 후보로서 대선 최고 득표율을 찍었던 전임 대표 심상정의 자리를 이은 지가 3개월이다. 이 순간까지도 그의 존재감은 퇴임한 법조인에게 밀리는 실정이다. 현재 이미지로 따지자면 이정미에게는 이모적인 데가 있다. 어머니의 여자 형제 말이다. 이름조차 어머니의 여자 형제 같다. ‘이정숙의 매(妹) 이정미’인 식이다. 이대로라면 뭔가? 추미애의 사이드킥밖에 안 된다. 공세적인 이미지 메이킹으로 난세에 중량감을 키운 심상정은 자신의 노하우를 전해주지 않았던 걸까? 이정미를 위해 준비된 오랜 솔루션 하나는 일단 귀를 좀 보여주는 것이다. 여성중앙이 그렇게 하고 사진을 찍어준 적이 있다. 바로 그거였다. 실망스럽게도 곧장 전으로 돌아갔지만. 귀를 보여준다는 것은 잘 듣는다는 의미다. 농담 같지만 전혀 아니다. 야심을 품고 한국 정치사에 유례없는 이미지를 한번 노려본다면 포니테일도 고려해 볼 수 있다. 목이 길기 때문에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더불어 의외의 장신인 점도 어필해야 한다. 동안형 외모와 구부정한 자세에 키가 묻히고 마는데 그래서는 곤란하다. 키가 크다는 것은 눈에 띈다는 의미다. 눈에 띄어야 한다. 전처럼 해서 뭐가 되는 그런 한가한 때가 아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이용해야 한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동안에는 허리를 펴고 턱을 당기자. 엄중한 세계 정세를 생각하자. 기아와 전쟁... 웃는 상이지만 웃어 주지 말라는 이야기다. 대통령이 다른 당대표들과 함께 사진 찍자고 어디 불러내도 한번 껴 보려고 기웃거리지 말고 차라리 팔짱을 딱 끼고 있어야 한다. 팔짱을 딱 끼고 사진을 찍히자. 결혼하지 않는 신비의 이모 간지를 밀어붙여 폭발시켜야 한다. 철없는 조카들을 홀려 좌경화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그게 답이다. 답은 차세대에 있다. 이정미의 짐이 무겁다... 피를 토하는 심정을 누르며 쓴다... PIMPS는 언제나 정론직필이다...

2017년 10월 2일 월요일

9월 더미 태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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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펜이 아니라 검은 펜으로 글씨를 쓰고 싶다. 써서 붙여 놓기다. 쓰는 행위를 하고 싶다는 얘기지만 뭘 쓸 것이냐가 실은 중요하다. 오래된 소설의 유서 깊은 부분이 좋을 것이다. 아니면 오래된 팸플릿. 포이어바흐 테제 같은 것. 버리기 아까워 붙여 놓겠다는 얘기지만 실은 붙여 놓는다는 행위가 중요하다. 나는 벽에다 뭘 그려 붙이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벽이 비어 있는 게 이상한가? 벽 보기를 좋아하는 것일 테다. 말도 모르는 아기 때부터 누워서 멍하니 벽을 보고 있곤 했다. 기억이 난다. 거짓말이지만. 하여간 그렇게 했다. 그랬던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벽이 좀 허전해 보였음이 분명하다. 저 벽에다가 뭘 좀 붙이면 좋겠군, 했던 것이 분명하다. 조금 자란 다음에는, 침대에 누워 벽지의 패턴이나 벽과 천장이 모이는 구석을 한참 보았던 기억이 난다. 벽에다 처음 뭘 붙였던 건 초등학생 때였다. 그림 같은 걸 그려서. 내가 그린 것을 계속 들여다 보곤 했다. 아기 때의 다짐을 떠올렸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고 보면 글자를 붙인 적은 없다. 언제나 그림이었다. 그림 쪽이 획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볼 것도 많다. 더 좋은 글씨를 쓰고 싶다. 종합적으로 필요한 것은 족자 모양의 화이트보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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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꿈 얘기가 보통 아무 재미가 없는 것과 같이 내 꿈 얘기도 써놓고 보면 별 재미없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일기보다 더 재미없는 정도다. 꿈은 글로 남길수록 더 많이 꾸게 되는데, 꿈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꿈은 감각과 감정과 상황과 이미지의 뒤범벅일 뿐이다. 서랍을 정리하기 위해 쏟았을 때의 혼돈 같은 것이다. 그 재료를 가지고 아무리 조리 있게 말을 만들어 봤자 뭔가의 뒤범벅일 뿐이다. 꿈이 조금이라도 재밌다면 꿈의 이전 때문이다. 꿈 이전의 맥락이 점점 흐려지면서 꿈의 재미도 점점 떨어진다. 꿈 자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미가 없어지는 종류의 것, 문자로 남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꿈 기록하기는 언제나 구미가 당기는 계획이다. 모으기 좋은 허망한 것이니까. 그것은 나의 것이 전혀 아니면서도 나만의 도록처럼 보일 것이다. 굳이 하겠다면 공개되지 않아야 하겠다. 재미가 없다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그러나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는 그런 일은 해봤댔자 금방 질리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꿈 이야기가 자신의 뒤쪽, 미래와 관계하도록 만들 수 있다면 어떤가? 말하자면 꿈 해몽 일지의 형태라면? 요셉 어쩌고 하면서 말이다. 비록 지금은 이사야를 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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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하는 일은 대개 바보 같은 일이고, 그래서 혼자서 하는 일은 정말로 진지한 일이다. 하지만 최고로 혼자 하는 일이라도 교류에의 열망이 거기에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교류회, 가상의 교류회를 혼자서 만들기, 이것은 오래된 기획이고 주제다. 이 가상의 교류회는 마음대로 소집되며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한다. 사람을 기다릴 필요도 없고 제한된 자원을 놓고 합의할 필요도 없다. 무제한 완전 갖춤의 교류회. 하지만 그래서야 무엇을 왜 교류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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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으로! 아름다움의 필수 요소인 균형과 긴장감과 어려움은 결국 '통제할 수 없는 바깥'과 '복잡해지려는 안쪽'의 경계면에 깃든다. 그것을 가리켜 형상이라 한다. 나는 그렇게 본다. 기획들의 외부 접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게 생각된다는 얘기다. 실루엣만으로 그 뒤에 선 군중들에게 긴장감을 불어넣는, 인도자 같은 것을. 그 인도자는 리듬을 안다. 스케일을 안다. 참과 거짓이 자리를 바꾸는 순간을 안다. 그렇지, 자꾸 이런 이야기는 쓰지 말자. 형상을 만들자. 형상으로!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고! 시리즈는 쉬운 형상에 속한다. 시리즈 내 리듬이란 것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스케일 큰 것이 필요하다. 리듬은 리듬의 없음을 통해서만 있다. 요는 시리즈가 아닌 다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단발의 뭔가를. '특별 기획'을! 내가 원한다면 이 취미를 위해 월에 1만원까지는 지출할 수 있다. 고료로 만 원을 주고 글을 하나 받는다. 받아서 특집입고 태그를 붙이고, 관리인 계정으로 올린다. 접촉 가능한 주변의 필자와 주제도 짧게 생각해 봤다. [가을특집] "수염과 커피", "초등학생을 위한 인술강의", "기회의 땅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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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르날이란 무엇인가? 어쩌면 독자투고를 받을 수도 있겠다. 메일로. 자유주제로. 또는 주제를 정해서. 한 번 보고 치울 만한 짧은 공짜 글을. 게재 심사는 아마 관리인이 할 것이다. 일단 윤리 심의 기준을 만들어 적용하고 그 다음 제비뽑기나 사다리타기, 심사-추첨제다. 하지도 않을 텐데 벌써 귀찮다. 지면상의 제한이 없는데 추첨이 왜 필요한가? 제한은 만들면 그만이다. 아니 그보다 도대체 누가 투고를 한단 말인가? 그와 관련해서는 절대로 오지 않는 투고를 언제까지고 기다리는 이야기나 할 수 있을 것이며, 기적적으로 온다 해도 관리인이 대부분 쳐낼 것이다. 하지만 투고 자체는 나쁘지 않다. 최근 많이 읽힘 가젯을 독자투고란으로 바꿔도 된다. 일주일에 하나를 받아서 매주 바꾼다면...? 그런데 어차피 관리인이 올리는 거면 그냥 자기가 직접 써 버리면 그만 아니겠나? 투고도 관리인이 하고 심사도 관리인이 하고... 필진에게 최대한의 자유도를 보장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못할 것도 없는 기획이다. 나 자신에게 최대의 자유를... 하지만 그래서야 무엇을? 왜? 여기서 나 자신의 운신 폭은 더 좁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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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건 굿즈의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 손수건은 가볍고 얇고, 그걸로 할 수 있는 일도 적지 않다. 일테면, 뭔가를 닦을 수 있다. 보관도 배지에 비해 훨씬 쉬운 편 아닌가? 매듭법을 배워 유행시키자. 스카우트처럼. 손수건대도 만드는 것이다. 손수건대에 손수건을 달아서 백팩에... 옛 일본의 족경대처럼. 두껍게 만들면 핀버튼이나 배지 따위를 달 수도 있다. 이건 완전 러브라이버구나. 곡물창고의 굿즈를 만든다면 역시 삼베 손수건이겠다. 이걸 벽에다가 붙여 놓으면... 또 벽인가? 벽이 아주 많이 필요하겠다. 아주 많은 내 몫의 벽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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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마자는 죽은 쥐 한 마리가 제법 멀쩡한 상태로 놓인 것을 봤다. 분명 어디 멀리 있는 건 아니다. 이사야 말이다. 재가 앉을까봐 밥그릇으로 캔을 덮었다. 가릴 것 같진 않지만. 메모들과 함께 타고 있는 것은 의자가 되려다 만 나무토막이다. 연장을 꺼내 준 관리인에게 미안하다. 지금 앉은 의자는 주워 온 것이다. 싣고 온 것. 약간 높다. 다리를 좀 잘라 볼까 하다 그만뒀다. 내가 만들었을 리 없는, 낡고 야무진 의자를 보고서도 관리인은 별말 없이 연장을 받았다. 관리인에겐 그런 세심한지 무심한지 모를 구석이 있다. 혼자서 좀 그런 기분이 들어서 계획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다. 언제 음료수라도 하나 들고 갈 것이다. 짐승도 답례를 아니까. 이럴 때 관리인도 불러 차라도 같이 마시는 건 어떨지? 좋은 생각이다. 아까 관리실에 들렀을 때 찻주전자 같은 걸 본 듯도 하다. 수돗가에서 뜬 물을 끓이면 된다. 허름하게 생기긴 했어도 지하수를 쓴다. 그러면 내 컵을 가지고 다녀야겠다. 양철컵. 매달 수 있게 끈을 달고. 차에 고리를 달아야 할 것이다. 어디에 달까? 차는 창고 건물 옆에 대어져 있다. 덮어 놓은 호루도 관리인이 내어 준 것이다. 그도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며 뭘 싣고 오거나 간다. 내가 그러는 것처럼. 대충 그런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이다. 뭘 싣고 오가는지. 불을 보며 앉아 함께 차를 마시면서. 나무가 들어가선지 타는 냄새가 좋다. 다음엔 땔나무를 좀 해올까? 방금 이사야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다. 요옹... 그것이 나를 부르는 소리인 줄을 안다. 그쪽으로 간다. 쥐무덤은 소각장에서 울타리 쪽으로 4보 앞이다. 쥐잡이가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2017년 9월 29일 금요일

북벌을 앞두고 눈물이 앞을 가려: 박지원 (17년 9월 다섯째 주)



금귀월래! DJ의 영원한 비서실장, 정치9단, 여우, 능구렁이, 상왕, #Mokpo의 박지원이다. 개새끼들아, 만주당을 살, 주면 마시고 실수하고 그러면 죽고 그러면서도... 바로 그 박지원을 나는 좋아한다. 친가 쪽 아재들이 그를 개눈깔이라고 부를 때부터 그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그는 내가 구독하고 있는 유일한 보수정치인이다. 그는 말도 잘하고 목소리도 좋고 SNS도 잘 쓴다. 다른 어떤 정치인과도 겹치지 않는 독보적인 캐릭터,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이 그에게는 있다. 그는 어떤 층을 대표하는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중’이 자신에게 이입하게 만드는 종류의 정치인이 아닌 것이다. 그는 저스트 정치인, 프로 정치인이다. 이런 사람은 여기저기서 허벌나게 치욕적 비난을 받기는 해도 꼭 필요한 사람이다. 안철수가 대표직을 접수한 국민당의 행보가 중요해지는 이 순간, 박지원은 뭘 어떻게 할 것인지에도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박지원은 뭘 하고 있는가? 나는 그가 늙어 보이지 않기 위해 들이고 있는 피나는 노력을 알고 있다. 운동도 하고 염색도 하고 자세 꼿꼿이 하고 페북 트위터 하고 목포까지 매주 다니고 잘한 건 잘했다 박수를 치고 그물을 치고... 하여튼 그는 여러 가지로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토록 열심인 것은 아마도, 당의 허리에 도대체 멕아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애석한 일이다. 내가 보기에는 반대로 해야 한다. 박지원은 이 순간 노회한 권모가의 이미지를 끝까지 밀어붙여서 당내 연령 폭을 더 깊어 보이게 만들 필요가 있다. 탈색이라도 해서 머리를 희게 함이 맨 처음이다. 노인적인 액세서리도 들자. DJ는 지팡이였는데 지원은 부채 같은 것이 좋겠다. 기품 있는 깃털 부채. 그까짓 의안도 빼 버리고 차라리 안대를 하자. 멋진 것, ‘615’ 같은 자수가 놓인 것으로.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측근 위치를 고수할 게 아니다. 미애와도 화해를 하고 금귀는 이제 그만두자. 영원한 건 없다! 서울에 딱 누울 자리를 어디 뭐 서교동 같은 데로 잡자. 다음은 후계자다. 아직 늦지 않았다. 영선도 동영도 정배도 동철도 철수도, 그 어떤 기타 등등도 아닌, 특히 철수가 아닌! 최대한 주인공처럼 생기고 주인공 같은 이름의 후계자를 뒤에 남기고 출사표를 던져 평양 특사를 가면 모두 좋을 것이다. 아아 슬프다, 얼마나 슬프고 애통한가!

2017년 9월 24일 일요일

클로짓 오프닝 Closet Opening

심야 라디오 방송의 오프닝 멘트를 수집합니다. 송출된 적 없고 방송된 적 없는 프로그램. 오프닝만을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
오프닝만 가지고는 방송이 되지 않고, 오프닝만 있을 때 그것을 오프닝이라고 불러도 될까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단세포 생물이 딱히 머리랄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렇지만 오프닝이라고 부릅시다. 제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나직한 목소리로 느리게 말하는 화자가 약간 버벅거리면서, 방금 읽은 내용을 의심하면서 말하고 있다고 상상해 주세요.
이것은 당신과 나의 통화이기도 합니다.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이안

죽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끈질기게 바라보고 있는 어떤 꽃(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분명 원망을 품고 있음을 ‘시선’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녹아가는 날개를 끌며 수면 위에 그러듯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청둥오리. 어떤 ―손끝으로부터 어둠을 뿜어내고 있어 그 사람이 바로 밤의 근원이로구나 생각하게 하는― 사람(그럼에도 사람이라고 했다). 산산이 흩어져 있는 수정 조각들이 반사해 올린 듯 수많은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겹눈생물의 눈에 맺힌 상과 같았다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차후 수정.)

이상은 이안에 감염된 사람들이 보았다고 주장한 것들의 사례이다. 괴시 증상은 이안 감염의 2기에 해당한다.

시작은 속눈썹 한 가닥이다. 평균보다 조금 길거나 조금 짧고, 색깔이 다른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속눈썹 한 가닥. 이안은 속눈썹 모공을 통해서 침투하며 그 과정에서 속눈썹을 가장하고 속눈썹을 양분 삼기 때문이다. 즉 감염이 의심되는 속눈썹 한 가닥만 뽑으면 간단하게 이안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듣기에는 매우 이상적이겠으나, 이안 감염 자가진단을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윽고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속눈썹이라는 것은 대체로 모두 평균보다 조금 짧거나 조금 길고 색이 완전히 균일하지도 않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렇다. 평균의 함정이다.

무사히 안구에 안착한 이안은 안구를 감싸는 그물 형태로 자라난다. 이 단계에서 숙주에게는 안구건조증과 유사한 자극감과 이물감이 나타난다. 1기에 해당하는 증상으로, 이안에게도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안의 감염력과 숙주의 감수성susceptibility이 조응되지 않을 시 성체로 자라지 못하고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안은 성장하며 때때로 안압을 높이거나 두통을 유발한다.

괴시가 나타나는 것은 이안이 안구를 반 이상 점한 뒤부터의 일로, 흔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괴시의 양상은 감염력과 감수성의 조응 결과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개별 연구가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숙주가 가지고 있는 내밀한 죄책감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3기는 이안이 완전히 기존 안구의 기능을 대체하게 된 시점부터를 말한다. 괴시가 사라지고 안구 건강에도 큰 무리가 없어진다. 다만 이따금 시야가 흐려지거나 캄캄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이안이 숙주가 눈을 깜빡이는 박자를 놓친 것 뿐 별 일은 아니다.

드문 사례지만 기존 감염이 2기까지 진행된 안구에 다시 감염이 일어난 일도 있다. 중복 감염자의 괴시 증상에 대한 연구는 참고할 만한 것이다.

3기까지 진행된 이안은 숙주인 인간이 죽으면 경화를 일으키고 미라화 된다. 시체에서 나온 안구는 마치 연마 도중의 보석처럼 보인다. 이를 수집하는 부호를 본 적이 있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인간 안구 보석이 특별 주문된 냉장 쇼케이스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 중 그가 특별히 아끼는 것들에는 생전 그 안구가 보았던 괴시를 금박지에 새겨 장식해두기도 했다. 여러 모로 악취미이지만, 최악은 아무래도 그것들이 주문 제작된 것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2017년 9월 8일 금요일

매력총공격: 김무성 (17년 9월 둘째 주)



오늘은 김무성을 다룬다. 왜 하필 이 순간 김무성인가? 이 순간 뭔가 해내야만 하는 사람을 돕고 싶기 때문이다. 20대 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그는 차기 대통령이었고, 입에 잘 붙는 킹무성이란 별명도 있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의 서광이 비치던 바로 그때부터 그의 추락도 시작되었다. 사위의 추문부터 해서 영도로의 옥새런, 선거 참패 후의 배낭여행, 대선불출마선언, 추미애와의 뭔지 모를 회동과 뻔한 패턴의 메모 흘리기, 탈당과 잠행, 그리고 노룩패스까지... 지난 시간 김무성의 동충서돌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차기 대통령 지지도 1위 시절 그는 한국-중년-남성을 대표하는 정치인이었다. 그야말로 안하무인, 무례하고 퉁명스럽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챙겨주는 정’이 있는 사람, 나서서 밀어붙이기로 교통정리를 할 수 있지만은 한편으로는 허술한 구석이 있어 실수도 좀 하는 사람... 속 썩이는 자식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할까. 이런 캐릭터는 기본적으로 통하는 캐릭터고, 유행하던 시기도 물론 있었다. 개저씨라는 名프레임의 등장과 그의 몰락 사이에는 분명한 관련이 있으리라. 나는 그가 이대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가 그를 내쳤던 것과 같이 시대가 그를 다시 부를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사이 여러 차례 보여준 판단 미스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인 최고의 자산인 ‘좋은 인상’을 쥐고 있다. 그에게는 [매력]이 있다. 정치성향에 있어서는 아주 저편이지만, 순전히 그의 눈웃음이 마음에 들기 때문에, 그를 위한 다음의 솔루션을 전한다. 이 순간 그는 새로운 아저씨 모델이 되어야 한다. ‘덜렁이 전술’은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다. 귀여움-동정심 쌍끌이다. 펜 따위를 떨어뜨리고 주우려다가 어딘가에 머리를 받는 것이다. 아무도 봐 주지 않으면 봐 줄 때까지. 그 다음 어디서 삐끗하든 구르든 해서 적당히 다치도록 하자. 목발이나 팔 붕대 1주일. 안대 역시 검증된 아이템이다. 메모를 노출하는 것처럼 항상 먹는 약을 노출시키자. 본회의장에서 약통을 떨어뜨리고 그걸 줍다가 머리를... 일단 그런 느낌으로 이미지를 바꾸며 시선이 끌린 다음에는 금주 선언이다. 그놈의 술 말고 다른 취미, 요리가 딱이다. 친구들과 기자들을 불러라. 업어주기의 시대는 끝났다. 바보들이나 거기 업혀 좋아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는, 거기 업혀서 좋아하는 척하며 무성을 바보 취급한 것이다. 이제는 먹여주기의 시대다. 맛있는 것은 누구나 좋아한다. 싫은 놈(일테면 유승민)에겐 맛없는 걸 처먹여 버리고 데헷, 손이 미끄러져서... 무늬가 아름다운 앞치마를 하고 나와라. 머릿수건이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은 본인도 이미 알 것이다. 바로 그때 야무진 모습 반전 매력 총 어필로 설거지까지 딱 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정말이다. 대통령이니 총리니 무슨 대장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 이러한 천기누설 때문에 내가 화를 입을까 걱정이 된다...

2017년 9월 2일 토요일

8월 더미 태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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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농장 이야기는 여러 번 했었다. 협동농장을 만들 것이라고. 주력 사업은 마리화나 쿠키다. 먼저 대마 합법화가 필요하겠다. 작목반과 제과반, 풀에서 입으로... 생산한 대마를 바탕으로 뮤지션들을 포섭해 음반 레이블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풀에서 귀로... 출판도 한다. 대마 화분 키우기 핸드북, 캐나다 나홀로 대마 여행기 등... 풀에서 눈으로. 이렇게 음반과 대마와 책을 패키지로 묶어 선물 세트를 구성한다. 이것이 농장의 삼두마차다. 잎사귀 마차. 잎사귀를 쓰는 건 아니지만 잎사귀가 예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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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농장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미래 인류의 단백질 공급을 책임질, 식용 곤충 사업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애벌레 건조 분말을 굳힌 애벌레 큐브가 아이템이다. 말하자면 치킨 스톡 같은 거다. 하나 넣으면 멀건 국도 고소해지고... 포장 디자인이 중요하다. 채식의 새로운 길도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두더지 큐브 같은 이름은 어떨까. 아니면 지빠귀 큐브, 또는 PA(포스트 아포칼립틱) 큐브... 간식 접근이 아니라 식품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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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산보회. 코스를 정하고 날을 정해서 산보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기왕이면 찍을 만한 것이 있는 곳으로. 첫 코스로는 벌레 쿠키 같은 걸 파는 모처의 카페에 다녀오기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대낮부터 떼 지어 다니는 거는 보기에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서 과연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하지만 언젠가 가볼까,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만 한다. 생각만. 무슨 모임을 만드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유행 좋다. 유행이 돌고 도는 것은 유행들의 숨겨진 목적이 세대를 건너며 성취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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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좀 된 것이다. 사전이라는 형식이 좋겠다는 생각. 그 형식으로 뭘 쓴다면 좋을 것 같다고. 뭐가 좋나?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일단 해 본 것은 일기 같은 사전이었는데 해 보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그것은 일기 이후에 대한 기획이기도 했는데, 그 면에서는 아무것도 일기라는 고유한 형식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일기의 형식을 바깥으로 반출해 낼 수는 있어도. 일기 같은 것을 원한다면 그저 일기인 편이 좋다. 누구에게 좋나? 자신에게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일기라면 정말 질려 버렸다. 일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더 제대로 기획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전다운 사전을 기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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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매짜리 글을 쓰고 1매씩 포스터 형태로 나눠 10개월 동안 출간. 2개월은 놀고 마신다. 12개월은 너무 기니까. 포스터사이즈는 A2 또는 B1. 물론 좋은 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한다. 내용 10매는 엄청 재밌어야 한다. 엄청 재밌는 얘기. 그림이야 뭐든 멋있게 그리면 된다지만 거기 들어갈 것을 쓰는 일은 아주 도전적일 것이다. 두고두고 봐도 괜찮아야 하고, 독립성과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글씨는 손글씨다. 못 쓰면 안 되고 너무 잘 써도 안 된다. 그림을 보듯 읽을 글자여야 하지만 캘리그래피 식이면 안 된다. 양피지 같은 걸로 만들어서 평소에 말아 보관할 수 있는 형식도 생각해볼 만. 물론 비싸게 팔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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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니 캐치볼을 하고 싶다. 캐치볼 모임의 기획은 다음과 같다. 인원: 6인, 장소: 유수지 축구장, 주제: 육망성(사탄소환). 캐치볼을 하려면 일단 글러브가 있어야 하는데 글러브를 사기는 좀 아까운 느낌이 있고, 그러니까 그 정도로 캐치볼을 자주 할 것 같진 않고, 나로서는 그냥 길을 가다가 하나 줍고 싶다. 귀신 들린 글러브를. 그것을 끼면 마구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마구를 던질 수 있는 아무도 없지만. 그것은 아무 사탄도 소환할 수 없지만 육망성 캐치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 것과도 같은 이치다. 나는 사실 안 해도 된다.

*
계절이 바뀌는 냄새에 연기 냄새가 더해진다. 양철 밥그릇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사야는 가로로 누워 불을 쬐고 있다. 소각장은 충동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이사야의 하얀 배털에 간혹 떨어져 붙는 재를 보고 있자니, 역시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벽돌들을 싣고 오면서, 이 창고의 아침 실루엣을 보다가, 그런 걸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저기 저쯤에서 연기가 나면 괜찮을 것 같아서. 벽돌들은 한참 봐두기만 하다가 가져온 것이었다. 필요시가져가시요, 갈겨 적힌 널판 옆에 마구 쌓인 벽돌들을 바라보다가, 그저 갑자기, 별 필요도 없는데. 벽돌들을 좀 잘 놓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에 했다. 누구든 좋다면 뭐라도 좋으니 좀. 따지고 보면 이 창고부터가 그런 것 아닌가? 그게 뭐 누구의 벽돌인지, 누가 들인 가마니인지 별 중요한 일도 아니다. 중요한 일이지만. 이제 나는 이사야가 자고 있던 게 아니라, 누워 고개를 젖힌 채 뭔가를 골똘히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알림판에 뭘 달고 있는 창고관리인이다. 무슨 쓰잘데없는 사진 같은 것일 테다. 오늘의 관리인은 작업복도 제복도 아닌 평범한 차림새다. 그는 날마다 입고 싶은 대로 입고서 나타난다. 처음 관리인이 됐을 때는 뭘 열심히 써서 보내기도 하더니 이제는 환경정리의 날(관리인 혼자 멋대로 정한 날이다) 말고는 얼굴을 잘 비치지 않는다. 소각장을 만든다고 했을 때 어어 그러쇼 하고 반색하는 구석이 있었던 걸 보면, 관심이 있어서 오늘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사야는 여전히 관리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무슨 생각일지. 관리인을 먹을 생각인지? 관리인은 이사야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쥐를 잡을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도 관리인을 이사야를 쥐잡이라고 부른다. 쥐잡이를 만진다고 쪼그려 앉아 있자니 다리가 아프다. 의자를 구해다가 둬야겠다.

2017년 9월 1일 금요일

[6호 서신]


*추수철 돌입
 - 곡물창고의 추수철 돌입을 축하함.
 - 입하 관리 철저.
 - 환절기 건강 유의.

*상단 메뉴 추가
 - 곡물창고와 메뉴를 소개하는 소개 메뉴가 추가됨.
 - 저장된 글 소개를 확인 가능한 저장대장 메뉴가 추가됨.

*사용조례 개정
 - 게시물의 소유권이 게시물의 작성자에게 완전하게 있음을 밝힘.

*작성자 프로필
 - 이제 글 하단에 작성자 프로필(블로거 프로필)이 표시됨.
 - 프로필을 비공개로 했을 시 표시되지 않음.
 - ‘소개’ 부분을 작성하지 않았을 시 표시되지 않음.
 - 구글플러스 프로필이 아닌 블로거 프로필 사용을 권장함.

*추가된 사이드 메뉴

 - 최근 많이 읽힘 가젯이 추가됨.
 - 곡물창고 트위터 계정 위젯이 추가됨.

*저장 태그 저장의 전당에서 저장고로 간단화.
 - 대체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이상.

2017년 8월 31일 목요일

포크 가수

당신의 손에 들린 도구에 대해 들려주세요.
당신의 육체 피로에 대해 들려주세요.
그러면 나는 내가 아닌 당신의 이야기를 소리 나게 만들 겁니다.
당신이 휴일마다 되풀이해 보면서도 매번 처음인 양 좋아하는
자연 풍경들도 잔마디와 잔마디 사이로 스밀 겁니다. 그러나
그 풍경들이 인간을 대신하지는 않도록 할 거예요. 조물주의
자연은 노동을 하지 않으니까요. 세계는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새의 근육에 대해서만 노래하진 않을 겁니다.
나는 당신의 날개가 쉴 그늘에 대해서도
그늘 속에서 울려 퍼질 지저귐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서로의 깃에 부리를 파묻는 순간에 대해서도
그리고 당신에게 깃털 하나만 남기고 떠날 이에 대해서도
당신의 보금자리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만약 당신이 그러한 종류의 새가 아니라면
낙엽이 되는 당신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신은 어떤 것도 될 수 있으니까요.
당신은 모든 것이니까요.
그러나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까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해서 노래할 겁니다.
당연히도 조상에 대해 노래할 겁니다.
조상의 사랑에 대해
조상의 시장에 대해
조상의 산과 조상의 숲과 조상의 바다와 조상의 노동에 대해
조상의 증기 기관에 대해 노래하고
조상이 만든 노래를 노래할 겁니다.
가능해지지 못한 조상의 미래에 대해 노래하다 보면
인간사가 짧기도 하겠지요.
나는 H빔 위의 당신에 대해서도
용광로 앞의 당신에 대해서도
전화기 앞의 당신에 대해서도
방 안에 있는 당신에 대해서도
거의 당신 같은 당신의 사물들에 대해서조차 노래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생각은 관두세요.
나는 전쟁에 대해서는 노래 않을 겁니다.
군악은 장르를 넘어선 문제입니다.
나는 앰프와 토마토의 시대 이후로 점점 늙고 약해지겠지만
아마 죽지는 않을 겁니다.
노동이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저도 있어야 하니까요.
아마도 합창이라는 것으로서 말입니다.

2017년 8월 24일 목요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두목: 추미애 (17년 8월 넷째 주)



금주의 PIMPS는 추미애, THE UNCONTROLLABLE이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정치에 강력한 할머니 정치인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추미애는 심상정과 함께 가장 유력한 주자로 보인다. 추미애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경색된 국면에 홀로 나서서 뭔가 저질러 버리는 사람이다. 그에게서는 이것저것 재지 않고 딱 쇼부를 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보인다. 그래서인지 어째서인지 적들도 많아서, 그가 뭘 했다 하면 똥볼을 찬다느니 어쩌니 겐세이도 보통이 아니다. 왜 혼자 튀려고 하느냐 지금 대체 어쩌려는 거냐 이러려는 거 아니냐 저러려는 거 아니냐 옆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추미애는 하기로 한 건 그냥 해 버린다. 어차피 욕할 거잖아? 욕을 하고 싶으면 하라는 거다. 자신도 하고 싶은 거 할 테니... 가만히 있을 때에는 어디 있나 싶게 조용하지만 한번 움직이면 반드시 천하를 진동시키는 사람, ‘액션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지는’ 사람이다. 영웅처럼 행동함에도 불구하고 이념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 또한 매력적인 데가 있다. 한마디로 여포 같은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최대 2000년 전까지도 먹힐 수 있는 올드스쿨 정치인, 추미애는 항상 위기를 즐기는 듯이 보이지만, 언젠가 정말로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잔다르크의 최후를 떠올려 보라. 채 할머니가 되기도 전에, 그의 정치 대모험이 혼자서 선글라스에 쌍권총 돌격하는 식으로 끝나버릴 수가 있다. 그 자신의 요즘 말처럼 잘나갈 때 더 잘할 필요가 있다. 내가 보기에 지금 그에게는 그 자신이 뭘 해서 이미지를 어떻게 하기보다는 충성스런 부하가 옆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고, 이럴 때는 역시 추미애다운 정면돌파를 해야 한다. 당장 부하를 구할 수 없다면 일단 개부터 기르는 것이다. 충성스럽고 사납고 영리한 셰퍼드가 적절하겠다. 이름은 원하는 대로 지어주면 된다. 지원이 설훈이 뭐 기타 등등... 그리고 매주 훈련 영상(‘물어!’ 등.) 같은 걸 3분쯤 찍어서 유튜브 등에 올리자. 제목은 <미애의 CONTROLL 일지> 정도로. 그리고 국회 등원 때 데리고 가면 상상만 해도 그림이 참 좋다. 혹시 생물을 싫어한다면 답은 ‘부하 판넬’이 될 수도 있다. 너댓 개의 부하 모양 판넬을 갖고 다니면서 어디 나갈 때마다 뒤에 설치해두는 것이다. 물론 부하 판넬에도 다 이름을 붙여 줘야 한다. 판넬이 부담스럽다면 이런 스타일도 괜찮겠다.

2017년 8월 19일 토요일

마인어 사전

박물학과는 그다지 관계 없는 일로 모 국가의 K시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모종의 이유로 국가기관 초청을 받아 간 것이기에 정확한 지명을 밝히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계절은 겨울이었고 따라서 우기이기도 했고 우리 일행은 입국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도심의 거의 모든 빌딩들이 브리즈웨이나 지하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고 컨퍼런스 홀과 우리 일행의 호텔도 그랬기 때문에 업무상의 곤란은 없었지만 둘째날부터 일행 모두가 심한 권태에 시달리게 되었다. 우리는 어메너티와 찻숟가락같은 것을 나누어 걸고 카드게임을 하거나 (나에게서 칫솔을 따간 R이 한사코 돌려주기를 거부해서 결국 프론트에 전화를 걸 수밖에 없었다) 침대 시트를 활용한 놀이를 고안하거나 하며 시간을 녹였다. 컨퍼런스 홀에서 T를 만난 것은 셋째날의 일이다. T가 관심을 보인 대상은 우리를 거기까지 데려간 프로젝트가 아니라 일행 중 한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회교 국가의 공무원과 특별한 관계를 이루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일행은 모두 무척 심심했기 때문에, 가이드를 자처하는 T의 호의를 못 이긴 척 받아들인 것이었다. 만난 날 저녁에는 T의 안내로 현지 식당에 가서 무슨 유명하다는 밀크티를 마셨고 다음 날은 종일 T의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시내와 교외를 구경했다. 조류공원과 폭포와 전통시장과 마천루를 보았고 개인적으로 구입한 기념품 가격을 제외한 모든 비용을 T가 부담했다. 밤에는 K시의 핫스팟이라는 B지구의 화려한 바에서 와인을 마셨다. 거기서 노래하는 남자는 우리 일행의 국적을 묻고는 자기가 미군부대 출신이라는 말을 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T가 값을 치렀다. 회교도인 T는 술을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일행 모두가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할 무렵 T가 우리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우기라도 비는 주로 낮에 내리지 밤은 비교적 잠잠하다 들었는데 그날따라 늦게까지 비가 오고 있었다. 잠에 취한 일행들을 뒷좌석에 몰아넣고 비교적 머리가 맑은 내가 조수석에 앉았다. T에게 간단한 그 나라 말을 배우고 나도 그 말에 대응하는 모국어를 T에게 가르쳐주는 식의 대화가 이어졌다. 단어교환이 다섯 개쯤 되었을 때 문득 호텔이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대비 때문에 시야가 흐려 잘 알 수는 없지만 차창 밖에 성채같은 빌딩들 대신 공룡같은 야자수들이 점점 빽빽해지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옷을 갈아입고 B지구로 갈 때는 이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Where are you heading for? T는 잠깐 동안 대답이 없었다. 실제로는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겠지만 자연스러운 대답이 나올 만한 타이밍이 지난 시점부터 시간이 한없이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뒷좌석의 일행은 야속하게도 깨어날 줄 몰랐다. T가 차를 세운 곳은 웬 밭이 있는 곳이었다. 자라는 작물이나 밭의 구성 같은 것이 내가 알던 것들과는 달랐지만 그것이 밭인 것은 알 수 있었다. 한가운데에 십자 모양 장대가 있고 거기에 허수아비가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거짓말처럼 비가 그쳐 있었고 T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나는 T보다 먼저 내렸다. 열대의, 겨울의, 우기의, 교외의, 이상한 공기 때문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T는 저것을 보여주려고 여기까지 널 데려왔다고 했다. 저것은 당신 나라 말로 뭐라고 하냐고 물었다. T는 아디크Adik라고 대답했다. 그것을 나의 모국어로는 허수아비라고 부른다고 나도 말했다. 어째서 허수아비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생각하면서. 차의 시동이 다시 걸렸을 때 뒷좌석의 일행 하나가 반쯤 깬 채로 어디냐고 물었다. 거의 다 왔다고 모국어로 말하고, 방금 그녀가 뭐라고 했냐는 T의 물음에는 오늘 고마웠다는 말이라고 답했다. 일행은 다시 잠들었다. 나도 심하게 취했다는 생각을 그때쯤에야 했다. 호텔에 어떻게 돌아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귀국 후에 T에게서 안부 메일을 받았지만 답하지 않았다. 마인어로 Adik는 남동생이라는 뜻이다.

2017년 8월 11일 금요일

그의 이름은: 천정배 (17년 8월 둘째 주)



저번 안철수 2편에서 문제를 느끼고 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없음]과 김정은 234567이 번갈아 나오다가 끝날 것이다. 중복은 최대한 피하면서, 특별히 대단한 화제가 되지 않았더라도 이 순간 주목할 만한 정치인을 찾아가는 접근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 PIMPS는 천정배다. 그의 불가사의할 정도로 희미한 존재감에 주목해 본다. 천정배는 그의 위치나 행보에 비해 너무나 존재감이 옅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 하는 간략한 소개가 필요할 정도지만, 그런 귀찮은 정보들로 분량을 채우기보다는 곧장 본론으로 가는 편이 이 코너의 취지에 더 맞을 것이다. 먼저 한국 정치에서 안경잡이 범생이 스타일은 절대로 통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민심은 천심이라고들 하는데, 천심은 안경잡이를 원하지 않는다. 하여튼 안 된다. 젊은 세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로는 유승민이 있을 것이다. 계속 지금 이미지 그대로라면 유승민은 절대로 뭔가를 이룰 수 없다. 좀 더 예전에는 이회창이 있었다. 이회창은 아마 지금까지도 뭐가 진짜 문제였는지 모를 것이다. 이 계보에는 김종필, 윤보선, 쭉 거슬러 올라가 김구까지 있다. 박정희가 안경보다는 선글라스를 낀 이유, 전두환이 장기 집권을 못한 이유도 그와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이명박이 후보 때 안경을 벗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문재인이 첫 도전에서 실패한 이유, 그리고 두 번째에 옛날 사진을 자꾸 보여준 이유이기도 하다. 홍준표가 안경만 벗었어도 지난 대선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여하간 이 땅에서 안경잡이는 통하지 않는다. 쓰다 보니 천정배 얘기가 없는데, 하여튼 일단 안경부터 좀 벗으란 얘기다. 일단 안경부터 벗고, 그 다음에 고려해 볼 만한 것으로는 이름을 자꾸 틀리게 불린 다음에 버럭하는 컨셉이다. 마침 틀리게 부르기 딱 좋은 이름이다. 천장배, 찬정배, 찬장배, 천종배, 청전배, 전청배, 정천배... 연장선상에서 명찰이나 명패,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모자나 깃발 등을 항상 착용하고 다니는 것도 효과가 괜찮을 것이다. 그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조용히 응원해 본다.

2017년 8월 9일 수요일

소각장 만든 날

소각장이 창고 뒤편에 생긴다. 무슨무슨 ‘장’이라거나, ‘생겼다’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자투리 공터에 멀건 불벽돌로 삼면 벽을 별 마감도 없이 얕게 세워둔 것뿐이다. 쥐잡이 이사야를 위한 밥그릇도 이곳에 가져다 놓을 것이다. 그것은 양철 그릇이다. 내가 땡볕에 공구리를 갤 때부터 이사야는 옆에 와서 한참 보고 있었다. 그에게 캔 하나를 까주는 것으로, 여하간 소각장이 생겼다. 우리가 하지 않거나 못할 일, 누가 하거나 안 해도 상관이 없는 일들이 적혀 있는 무의미한 메모들이 이 소각장에 던져질 것이다. 그것들은 보는 사람도 없이 쌓이다가 매월 2일 태워진다. 1일은 월급날이고. 우리가 소각장에서 만나는 것은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기 위해서지. 이사야는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좋은 소리를 내면서 깡통 속의 물고기에 열중하고 있다. 시원해져서 다행이다.

[5호 서신]


*입추
 - 입추를 축하하며 건강을 기원함.

*사용조례 개정
 - 사문화된 3조 (필진의 수) 삭제.
 - 완결된 글의 취급(저장의 전당)을 명기.
 - 권한 해제 필진의 복귀 시 수정권 문제 명기.

이상.

2017년 8월 8일 화요일

미친 박물학자

박물학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미친다. 사람 중에서도 박물학자는 반드시 미친다.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의 어깨와 허리가 상하기 쉬운 것과 같다.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학자들의 광증에는 전형이 있다. 보다 기이한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시작이며, 범박한 사물을 볼 때도 다른 박물학자들이 미처 찾지 못했을 특징을 알아내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발견하고 기록한 것들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종장에 가서는 그것들을 창조해낸 장본인이 자기라는 착각에 빠진다. 박물을, 만물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믿음. 자기 뇌에 갇힌 신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이것은 진행중인 미래다. 미래는 일정하지 않은 속도와 중량을 가지고 도래한다.

박물학자의 광증을 이해하는 한 사람의 박물학자로서 나는 완전히 미치기 전에 기록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예비해 두었다. 목록은 물론 안전하게 은닉되어 있는데, 누구라도 그것을 보면 이 사람이 이미 미친 게 분명하다 생각할 것이 자명한 탓이다. (아직은 아니다.)

2017년 8월 4일 금요일

SUIT UP: 안철수 2 (17년 8월 첫째 주)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이 사람을 다시 다루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화제가 된 걸 어떡하겠나? 다른 정치인들의 분발(이렇게 쓰며 짜증이 확)이 필요할 것이다. 일전에 내가 그를 위해서, 중량감 있는 암흑계의 보스 느낌으로 칩거에 들어가 체중증량에 매진하는 것이 이미지 제고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정성껏 썼는데, 이 주에 아주 완전히 반대로 해버렸다. 주목을 받은 김에 마지막 힘을 한번 땡겨 보겠다는 걸까? 솔직히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무슨 발표 같은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답을 알지만 부끄러워서 발표에 나서지 못했던 소년 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그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지? 당의 운명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인 타이밍에 폭풍처럼 나와서 발표를 하고 말이다. 다들 나서서 말리는데 기어코 꾸역꾸역... 기왕 그렇게 밷애스처럼 굴 거라면 다음과 같은 솔루션도 있다. 과학초인 아이언맨이다. 역시 일종의 사장님으로, 킹핀보다 인지도도 높다. 머리는 짧게 쳐서 세우고, 수염을 길러 가꾸고, 몸을 좀 그럴싸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트빨이란 것이 좀 나도록. 또한 첨단 기술에 강하다는 점을 어필하려면 구글 글래스 같은 걸 끼고서 호버보드 같은 걸 타고 등장해야 할 것이다. 좀 더 과감하게 제트팩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목표는 앞으로 20일가량 남은 전당대회, 적지 않은 나이에 이것저것 하려면 시간이 많지가 않다. 아닌가? 아예 이번 발표 때 그러고 나왔어야 했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시그니처 컬러셋인 금색/빨강은 중국에도 어필이 될 수 있다. 사드 때문에 흐트러진 한중 관계를 한번 다잡아 보겠다는 결연함을 보여줄 수도 있을 테고... 미국에도 메시지의 울림이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여튼 이대로만 하면 반드시 먹힌다. 앞으로도 PIMPS는 어떤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든지 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7년 7월 28일 금요일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이언주 (17년 7월 넷째 주)



좀 사리겠거니 했던 이번 주에도 한마디(공동체...의식...)를 더한 데에는 정말이지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헛소리 던진 다음에 나서가지고 해명을 하는 것은 참 묘한 일이다.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줘야 할 위치인데, 뭔 말만 하면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고 자기 말이 무슨 뜻인지 해명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면서 언론이 어쨌느니 슬쩍 걸고넘어진다? 자연스레 그가 어떤 이들을 대표하려 하는지 어떤 생각을 대표하려 하는지 따져보게 되는데, 이런 정치인이 아직도 여당에 있었다면 어땠을지 참 아찔한 일이다. 그렇게 보면 혹시 일전에 아리송한 타이밍에 탈당했던 것은 자신을 버려 차기 정권을 위하는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과연 그의 정치 패턴이 그런 것이라면, 그러면 지지난 주의 그 수수께끼도 자연히 풀린다. 내용이며 타이밍이며 도대체가 전혀 이치에 닿지도 않고 납득도 안 되는 이야기(밥 짓는...미친년들...)를 했던 그것도 역시 조작 사태로 위기에 빠진 당을 위해 결연히 혼자 독박을 쓰려 나선, 자신을 버려 당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사회를 살리는, 김종인에게 배운 대하 스케일 정치감각이 발동한 결과였음이 틀림없다. 현재 그의 이미지 제고는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하다. 차라리 더 힘껏 밀어붙여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악역을 맡은 자의 깊은 슬픔을 좀 더 표현해 주는 편이 좋겠다. 솔루션으로는 역시 검은 옷이다. 검은 베일, 검은 망토도 괜찮을 것이다. 차도 물론 검은색으로. 누가 죽었나보다 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벨트는 반드시 금색이어야 한다. 예산이 된다면 차에 미사일이나 뭐 터보엔진 같은 것도 달고... 여름엔 더워 보일 테니까 겨울부터 그러고 나오면 된다. 겨울이 되면 킹핀이 되어 나타날 안철수와 함께 협치 이미지까지 어필하면서 아다리가 딱 맞는다. 햐 이거 뭐 완전...

2017년 7월 24일 월요일

보이지 않음에 관한 주석

보이지 않음과 보기 힘듦이 동의어였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저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보이지 않는 것들과 보기 힘든 것들, 가령 너무 멀리 있어 관측이 어려운 어떤 별, 너무 작아서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어떤 균 ―따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히 보이지 않는다.

한편 보이지 않음은 없음의 동의어 또한 아니다.
우리의 문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미치는 힘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막기 어렵다. 인류가 겸손을 배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위의 서술들을 배반할 가능성을 무릅쓰건대, 지금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후세에도 절대로 보이지 않으리라 호언할 수는 없다. 망원경과 현미경의 발명으로 한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 몇몇이 보기 힘듦의 지위로 강등된 것처럼. 박물학의 참된 목표는, 박물학자의 진짜 일은, 스스로는 확인할 수 없을지언정, 기록된 박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는지 <없는 것>이었는지 검증해줄 것을 후대에 요구하는 것이다.

흰 꿈개미

꿈은 무의식의 활동이라는 인간적인 접근과 별개로, 나는 꿈의 성질이 식물성이라는 주장에 매료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씨앗이 뇌를 양분으로 발아한다. 잠든 인간의 정수리 바깥으로 보이지 않는 뿌리가 만발한다. 신체 사지 말초를 향해서 줄기가 자라고 가지가 뻗친다. 잠든 인간이 팔다리를 뒤챈다. 꿈으로 꽉 찬 인간의 모습이다.

꿈의 씨앗은 본래 식물의 망령이다. 꿈의 시점이 이상하다 여긴 적이 있을 것이다. 배경은 익히 알던 등교길, 생활관, 회당, 벤치, 승강장이지만 너무 바닥에 가깝거나 너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감각, 이 감각은 그러니까 외래된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전염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때로 전혀 상상해본 적 없거나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경험해본 바 없는 공간이 꿈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꿈의 씨앗이 ―그러니까 식물의 망령이― 생전에 꿨던 꿈이다. 반복되는 꿈들은 같은 종의 식물이, 아주 튼튼한 식물이, 인간의 의식에 휩쓸려 죽거나 시들지 않고 세대를 거듭해 번성하는 증거다.

식물로서의 꿈의 연구에 가장 훼방이 되는 존재는 물론 꿈의 천적이다. 그것들은 꿈을 속부터 파고들어 인간이 꿈을 잊고 피로감만 느끼게 만든다. 병든 꿈이 무의식 아래로 침잠하는 광경이 꿈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한때 익충으로 개량해 악몽을 먹게 만들어보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그것들이 좇는 것이 꿈 그 자체보다는 꿈에 배는 인간의 정서인 바, 무용한 일이 되고 말았다. 악몽에 스미는 인간의 정서는 주로 공포, 후회, 열패감, 무력감 등인데 이런 것들은 전혀 달콤하지 않기 때문에 개미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7년 7월 21일 금요일

교정자

모든 것이 너무 많다.
모든 것은 너무 많고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다.
불완전한 것들을 더 완전한 것들로 만들려는 노력은 시기와 불확실성이라는 제약하에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결국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제약이 고려되지 않는 가장 불필요한 것들뿐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을 손보는 사람, 사람들의 필요와는 상관없이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그러한지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착란에 빠져버리고 마는 사람. 보통 사람들이 별반 신경 쓰지 않는 정서법 하나하나에 연연하고 위법 사항을 보면 거슬리고 화가 나 견디기 어려운 사람. 언어 법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며, 언어가 있다면 언어 법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보다 차라리 법 기계에 가까운 자. 마감하기 위해 원고를 쓰는 자들의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쓰는 자의 마감을 기다리는 자. 즉 그러한 잡다하게 필요한 불필요의 장인.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다.
나는 산업의 그늘 속에서 존재하고 한 번도 그 그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나의 노동은 흔히 무시된다. 사장에게, 소비자에게, 업계 관계자에게, 학자와 교수에게, 또한 수많은 편집자에게. 나는 편집자로 불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가장 은밀한 단계의 감독자라는 욕망조차 없으며 나는 나의 노동이 포괄적으로 분류되는 것에 모멸감을 느낀다.
나는 온갖 텍스트라는 숱한 소세계들을 교정하고 있으나 사실 세계라는 건 딱히 교정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회의 또한 품고 있다. 하지만 내가 회의한다고 해서 교정되어야 할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교정되어야 할 것이 내 손에 들어오면 나는 그것을 즉시 교정하거나 혹은 이런 식으로 교정될 만한 것이라는 제안을 전달한다. 세계가 딱히 교정될 필요가 있든 없든 내가 교정한 것이 반영되든 안 되든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다만 교정할 것이 눈에 들어오면 교정할 뿐이다. 곧 이러한 나의 노동은 넓게 보자면 산업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법과 시선 사이에서 발생한 신경질이 낳은 전기 신호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업무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교정되든 교정되지 않든 사람들은 대개 그 차이와 변화를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이것이 인간이기에 극도로 낮은 빈도로 저지르는 내 실수가 자학에 그치는 이유이다). 말하자면 교정이라는 것은 가시적 효과보다는 비가시적 증강과 관계된 기술이다. 내가 당신의 척추를 접는다면 그것은 교정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이며 혁명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이 자세를 바꾸도록 만들어 점차적으로 척추 원반 탈출증, 다시 말해 디스크를 앓게 만든다면 그것은 교정이다.
나는 교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교정하고 싶기에 당신 또한 교정하고 싶다. 가령 이런 식의 교정 말이다. 내가 교정한 책을 구입하시라.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당신의 서가에 꽂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보기에 좋을 것이다. 어차피 오랜 출판 산업의 역사 속에서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는 근래에 책이 아닌 다른 읽을거리를 찾는 풍조로 인해 나타난 급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19세기 말에 출간된 어느 소설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내 책 또한 벽을 장식하는 데나 사용될 뿐이다.” 세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봐야 뭣하겠는가? 출판 산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탄식만 숱하게 접할 것이다. 그것은 구텐베르크 이후부터 심화되어온 문제이다. 물론 최근에는 어렵다거나 힘들다는 말 대신에 이미 죽었다는 말을 더 많이 쓰기는 한다. 나는 시체가 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 중에서도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시체로서 나는 할 말을 하노니, 당신이 책을 구입하기를 바란다. 이는 나의 사후를 연장시키는 길이니 개인적인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신의 주변을 여러 소세계들로 가득 채우는 일이며, 결국 세계를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시원찮은 벌이를 하면서도 온갖 글들을 교정하는 이유이다. 하찮아 보이는 나의 교정이 세계의 교정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나는 버리지 않고 있다. 어리석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나는 진즉에 자살했을 것이다. ‘이제 세계는 더는 혁명을 통해 변화할 수 없다. 오직 교정될 뿐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나의 철학이며 내 노동의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부한다. 정기적으로 책을 구입하기를 바란다. 책이 쓸데없는 것이라면 그 쓸데없는 것들을 당신의 주변에 두길 바란다. 온갖 불완전하고 쓸데없는 것들로 인해 당신의 영혼은 끝내 구원받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나를 믿어도 좋다. 일단 책을 구입한다면 그다음 교정 단계를 내가 알려주겠다…….

고기안주: 없음 (17년 7월 셋째 주)


(이번 주에는 화제의 정치인이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증세 등의 의미 있는 화제들이 정치인들의 얼굴을 밀어낸 것이다. 애석한 일이지만 정치는 바로 이래야 한다. 정치는 개성 가득한 영웅들이 설쳐대는 뭔 역사 드라마처럼 좆같게 되면 안 된다. 일개 정치인 따위가 잘했냐 못했냐 어쩔 거냐 저쩔 거냐 진지하게 따지는 일은 정치엘리트들, 정치엘리트-워너비들이나 충혈된 눈으로 찾아 헤매는 것이고, 사실 정치와는 별 대단한 관련이 없다. 시선을 좀 끌자고 무슨 혼자 어디 쓸데없이 가서 장화를 신고 벗고 그런 쇼를 해봤댔자 전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것은 그야말로 짐승의 정치다. 우리 민중에게 그런 따위는 술자리의 고기 안주 정도 되는 일에 불과하다. 오늘은 고기를 먹고 싶다.)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중량감 확충: 안철수 (17년 7월 둘째 주)




7월 둘째 주는 안철수다. 추미애 이언주와의 경합 끝에 그로 정했다. 그의 정치 생명은 사실상 끝났다는 게 중론이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정치인에게 있어서 시선이 모인다는 것은 무조건 기회다.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야말로 곧 기회다. 그는 명분에 조심스럽고 참 신중하게 구는 게 특징이다.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겠지만, 한참 고민을 한 끝에 결국 대단히 획기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은 또 아니라서, 보다 보면 좀 쫄보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한마디로 중후함이 부족하다는 것. 그러니 간 본다는 이야기가 계속 따라붙는 것일 테다. 그런 의미에서 대선 때의 강철수 어쩌고나 발성 바꾸기는 낯이 좀 뜨거워지기는 했어도 신선한 시도였다. 사람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은 어쨌든 보기 좋은 것이다. 어떤 식으로 열심히 하든 간에. 그를 위한 나의 냉철한 이미지 메이킹 솔루션은 바로 중량감 확충이다. 중량감은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다. 문자 그대로 체급을 더 올려야 한다는 말이다. 어차피 이제 한동안 할 일도 없을 텐데 매일 술을 퍼마시든가 헬스를 다니며 프로틴을 먹든가 둘 다 하든가 해서 근수부터 늘려야 한다. 중절모는 어떤가? 담배를 피우는 사진을 뿌려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면 담배를 배워야 할 것이다. 사장님 이미지(원래 사장님이니까)를 다른 측면에서 어필해 본다는 감각으로 하면 된다. 잡스 같은 느낌이 아니라 킹핀 같은 느낌으로. 머리를 미는 것도 괜찮다. 잡스라도 머리는 밀어야 한다. 그래 거기서부터 하는 게 좋겠다.

2017년 7월 12일 수요일

소리생물

기록되지 않았지만 그는 빛이 있으라, 라고 한 다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소리도 있으라, 하고 덧붙였다. 번개가 친 다음에야 천둥소리가 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물론 농담이다.

빛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생명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빛이 생명에 기여하는 바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빛이 생명을 번성케 하고자 하는 의지같은 걸 갖고 있으리라는 착각 또한 금물이다. 손을 들고 질문하고 싶어하는 청중이 보인다. 그렇다면 소리는 살아있습니까? 모든 소리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이따금 그것들 중 죽지 않는 개체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살아있는 소리는 살아있지 않은 빛보다 우월합니까? 이런 건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소리가 어떤 조건에서 불멸성을 획득하는지는 여전히 연구대상이다. 여기서는 소리생물에 대한 논란보다는 지금까지 관찰, 보고된 바만을 다루기로 한다.

죽지 않는 소리는 음의 주광성을 띠고 잽싸게 어두운 곳으로 도망친다. 그 상태에서 일체의 생리활동, 즉 섭취하고 배설하고 활동하고 수면하는 등의 활동 없이 주변에서 완전히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버틴다. 구전된 바에 따르면 30년 된 소리생물이 발생한 장소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더 오래 버틸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소리생물들은 번식의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몹시 희귀하여 동종의 개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소리생물들은 대개 생식능력이 없다. 노새처럼.

소리생물들의 최후에는 사망이라는 말보다 소멸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그들의 소멸은 생물이 아닌 소리들의 방식보다는 작은보호탑해파리나 해삼과 같은 해저생물들의 방식에 가깝다.

소멸 직전의 소리생물들은 인체에 침투하려는 습성이 있다. 약간 성가실 수는 있으나 건강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1781-1868)는 소리생물을 관찰하고 잡아 가둘 수 있는 도구를 고안하다가 만화경을 발명했다. 이론적으로 만화경은 소리생물 덫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다른 쓰임새가 더 두드러지는 바람에 만화경kaleidoscope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희랍어에서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로스kalos, 형태를 뜻하는 에이도eido에 유리와 거울로 만든 안외 보조도구를 의미하는 어미 스코프scope를 붙인 것이다.

소리생물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19세기에는 이명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만화경을 귀에 대고 자라는 처방을 주는 경우가 흔했고, 실제로 이 처방은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2017년 7월 7일 금요일

소년에서 남자로: 김정은 (17년 7월 첫째 주)



PIMPS의 첫 번째 타자는 지난 4일 ICBM 발사로 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는 젊은 정치인 김정은이다. 요즘 세상에 가문의 이름을 걸고 정치를 하는 보기 드문 정치인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서체를 본받은 친필 명령서 공개에는 참으로 찡한 면이 있었다. 글씨를 보면 제법 귀여운 구석이 있다. 그렇게 백지를 기울여 놓고서 글씨체를 연습하고, 망원경으로 먼 것 구경하기를 좋아하고, 드론을 날려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연일 뭔가를 폭발시키고 발사하며, 농구 잘하는 친구를 집에 초대하는 그는 하여간 뭔가 소년적인 이미지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좀 마른 소년이었으면 먹혔(내가 보기엔 어머니와 할아버지를 닮아 잘생긴 편이다)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 상태로는 그냥 부잣집 도련님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서는 강성대국이 될 수 없고, 승냥이 같은 미제도 무찌를 수 없다. 그를 위한 나의 솔루션은 바로 소년에서 남자가 되는 것이다. 체중을 감량하고, 몸을 만들고, 얼굴은 더 각지게, 더 제대로 된 수트를 입고, 구레나룻과 수염을 길러 다듬어야 한다. 취미도 드론에서 자동차로, 폭죽에서 시계로, 농구에서 낚시로 바꿔야 한다. 종이를 기울여 놓고 쓰는 못된 버릇도 물론 고쳐야 할 것이다. 그러면 다들 고개를 기울여서 읽어야 하잖아?

PIMPS를 소개한다

폴리티션 이미지 메이킹 파워 솔루션. 매주 금요일, 화제의 정치인 한 명을 선정하여 그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파워 솔루션을 조심스럽게 제시해 보는 회심의 코너이다. 철저히 인물 중심으로, 외형과 이미지에만 집중해서. 최악의 저속한 방식으로 정치를 다룰 것이다. 3개월 동안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한국 정치 화이팅, 세계 평화 그날까지!

2017년 6월 16일 금요일

지남

자석을 부르는 다른 이름은 지남철指南鐵이다. 남쪽을 가리키는 광물이라는 뜻이다. 말할 것도 없이 지남은 -문자 그대로 풀이하면- 남쪽을 가리킨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방위를 의미한다. 정신분석학/뇌과학에서는 지남력이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는- 현재 자신의 위치/상황을 인지하는 능력이다. <현재>가 언제인지 안다는 것은 시간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은 공간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인간개념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을 정말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나?) 여하간 이런 개념들을 대략 갖추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제법 철학적인 명제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별 것은 아니고,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환자에게 다음 질문을 하는 의도와 같다.

1. 환자분, 지금이 몇 년도인지 아세요?
2. 환자분, 여기 어딘지 아세요?
3. 환자분, 본인 이름 기억 나세요?

지남력을 영어로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고 한다. 입문교육식 따위를 뜻하는 오리엔테이션과 통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입문교육으로서의 오리엔테이션은 새 집단/프로젝트에서의 역할과 사회적 위치를 재학습하는 과정이므로. 오리엔테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오리엔스oriens로 보인다. 오리엔스는 동쪽, 동방, 태양이 뜨는 방향 등을 의미하며, 익히 알려진 오리엔탈oriental의 어원이기도 하다. 지남력이라는 어휘에는 남쪽이,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어휘에는 동쪽이 들어있는 셈이다. 각 어휘를 만든 문화권이 어떤 방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해볼 만한 흔적이다.

자석을 지남철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게 지남의 능력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석 자체가 지남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그것도- 지혜로운 광물이라고, 옛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광물 상태로 발견되는 자석들은 높은 온도로 가열하거나 세찬 충격을 가하면 지남력을 잃어버린다. 같은 일을 인간에게 행하면 인간도 십중팔구 지남력이나 생명을 잃는다.

지남력이 없이도 생존은 가능하므로, 지남력을 가졌다는 사유만으로 자석들을 생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석들이 살아있다 믿었던 옛 사람들에게 현대의 전자석을 보여주면 어떨지를 상상해 본다. 광물 상태로 발견되는 자석들이 인간이라면 전자석은 안드로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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