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햄버거성
2017년 12월 30일 토요일
요정
유인종의 대강을 점하고 있는 존재군은 단연 요정이다. 곤충이 종 다양성에 기여하는 바와 같다. 몇 쌍의 다리와 날개, 삼부로 나누어 파악 가능한 몸통 구조 등의 조건 안에서 곤충들의 생김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요정들도 몇 가지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다. 모든 벌레를 곤충이라고 하지는 않듯이 모든 유인종을 요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날개를 가졌는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같은 것은 (비록 많은 요정들이 그런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그 존재가 요정이라는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요정을 요정이게 하는 요건들은 시점에 얽혀있다. 다음의 질문들에 긍정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현재 인간이 아닌가?
2. 과거 인간이었던 이력이 없는가?
(이처럼 분류법이 완전히 인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에도 유인종이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기만적이지 않은가? 개인적인 불만이다.)
장래에 인간이 될 가능성의 유무는 요정과 비-요정(임시로 조어된 개념이기 때문에 하이픈을 넣는다)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어떤 요정들은 인간이 된다. 그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은 그들 중 일부가 인간으로 변태할 수 있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특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과 부분-혹은 전체적으로 유사한 외양을 지녔고, 인간과 소통 가능하면서-’라는 숨은 전제가 있다. 서두에서 말한 유인종/대화종 명칭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다만 요정 연구사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 부분이 명문화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인간에게 우호적일지라도 인간과 비교당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요정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추측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숨은 전제를 모르고 요정을 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 같은 분류기준이 체계적이고 정확하지는 못하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폴 버니언이 계통상 구두수선공 요정들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한 쪽은 성냥갑 안에 한 다스가 들어가지만 다른 한 쪽은 새끼발톱 위에 성냥갑 한 다스를 올리고도 남는다. 그런 그들을 달리 무엇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요정들의 외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특징들은 요정과 비-요정을 가를 때보다 요정들을 한층 더 세분하고자 할 때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같은 분류법은 상당히 재미있다. 가령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육안식별가능성을 두고도 보통 인간의 눈에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렇지 않은 경우 전문가의 눈으로는 인식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 육안식별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 요정들끼리는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크기를 기준으로 요정들을 재분류할 때는 자연히 공룡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크거나 작아봤자 미터 단위 안팎을 오가는 인간들과 달리 요정들은 밀리미터 단위에서 킬로미터 단위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최다개체가 분포되어 있는, 달리 말해 양적으로 요정의 대표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크기는 6:1 스케일이다. 인형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이즈와 같다. 우연이 아니라면 상상력을 발휘해 볼 만한 공통점이다.
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나무성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11월 더미 태우는 날
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소실수
흙에 심는 것도 아니고 수분이나 양광을 취하는 것도 아니어서 키우기 쉽지 않을까 하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사실은 발아시키는 것부터가 큰일이다. 식물의 즙으로만 자라는데 어째서인지 열매나 뿌리에서 난 즙은 통하지 않는다. 샐러리 따위를 갈아서 면포로 즙만 걸러 붓으로 발라주면 좋다고 한다. 완전히 자라 벽에 정착하기까지 이 공급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즙은 상온보관하되 신선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발라주어야 한다. 자연상태에서는 수령이 오래된 큰 나무에 박혀서 자라는 것이 보통인 듯하다. 숲에서 나무 하나를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는 사람을 발견한 적이 있는지? 그 사람은 나무가 아니라 나무를 감싸며 자란 소실수에 마음을 빼앗긴 것일지도 모른다.
4~5년에 한 번 개화하고 열매를 맺는데 제 가지의 꽃끼리는 수정이 되지 않기 때문에 가내에서 거둔 씨앗은 발아하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한다. 다만 개화기에서 결실기까지는 벽 하나에서 여러 개의 소실점을 관측할 수 있다고 하니 상당한 장관이겠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현상에 멀미가 일어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모양이다. 물론 이 시기에는 더욱 열심히 샐러리즙 같은 것을 발라주어야 한다. 쓰다보니 역시 짜증나는 식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주문을 취소할까 한다.
특기할 만한 점 하나를 잊을 뻔했다. 소실수가 자라는 구역에서는 버섯이 나지 않는다. 필자에게는 중요한 장점 중 하나지만 이 방에서는 원래 버섯이 안 나기 때문에 방이防茸 목적으로 소실수를 키울 필요까지는 없겠다.
2017년 11월 15일 수요일
2017년 11월 2일 목요일
10월 더미 태우는 날
누차 말했지만 이제는 中化시대다. 중화시대가 온다. 나는 그럴 필요가 있는 단어에서는 언제나 한자를 병기하고 있는데, 다 중화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한 자라도 더 써두고 더 봐두면 좋지 않겠나? 그런 의미에서 중국어 스터디 그룹를 만들고 싶다. 중국어를 배웠으면 배웠지 왜 굳이 그룹이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런 것 같다. 정말로 갖고 싶은 것은 뭐 무슨 그룹인 것 같기도 하다. 그놈의 그룹... 벽 같은 것이다. '한계가 있어야 전진이 있다'라는 식으로. 서로의 한계가 되어 주는... 주역을 통해 중국어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너무 오래되었나? 협동농장총서에 주역해설도 넣어야겠다.
2017년 10월 27일 금요일
적기투항: 민주노총 (17년 10월 넷째 주)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TK목장의 결투: 유승민 (17년 10월 셋째 주)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길 주인
명절이지만 나는 어디로도 가지 않고 박스 안에 앉아 있다. 명절은 나에게 놓칠 수 없는 대목이니까 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만날 가족도 없다. 더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형제도 없다. 아버지가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친인척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려 부모 외에 내 핏줄이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이 없다. 원래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가기도 귀찮고, 귀찮게 돌아가도 반겨줄 이도 없어서 그냥 팔아버렸다. 나는 이 박스 안에서 생활한다. 박스 안에서 자다가, 밥을 먹다가, TV를 보며 웃다가, 차를 보며 요금을 징수한다. 이 길을 물려줄 자식이 나에게 없으므로 나는 이 길과 함께 죽을 작정이다. 아니면 영원히 살거나.
이 길 안쪽에 땅이 있긴 하지만 밟아본 적 없다. 저 땅은 주인 없는 맹지(盲地)다. 그 땅을 둘러싼 모든 길은 나의 길인데, 대대로 우리 집안에서 도로 이용 허가증을 내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도 출입할 수 없고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그 땅으로는 풀과 벌레가 무성하게 번식한다. 푸서리를 지나 정중에는 커다란 상수리나무가 있다. 조사원들조차 그 땅을 밟지 못해 그 나무의 나이도 모른다.
서재극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심상정이 아닌: 이정미 (17년 10월 둘째 주)
2017년 10월 2일 월요일
9월 더미 태우는 날
2017년 9월 29일 금요일
북벌을 앞두고 눈물이 앞을 가려: 박지원 (17년 9월 다섯째 주)
2017년 9월 24일 일요일
클로짓 오프닝 Closet Opening
오프닝만 가지고는 방송이 되지 않고, 오프닝만 있을 때 그것을 오프닝이라고 불러도 될까 망설여지기도 합니다. 단세포 생물이 딱히 머리랄 것을 가지고 있지는 않잖아요?
그렇지만 오프닝이라고 부릅시다. 제가 그렇게 정했으니까.
나직한 목소리로 느리게 말하는 화자가 약간 버벅거리면서, 방금 읽은 내용을 의심하면서 말하고 있다고 상상해 주세요.
이것은 당신과 나의 통화이기도 합니다.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이안
이상은 이안에 감염된 사람들이 보았다고 주장한 것들의 사례이다. 괴시 증상은 이안 감염의 2기에 해당한다.
시작은 속눈썹 한 가닥이다. 평균보다 조금 길거나 조금 짧고, 색깔이 다른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속눈썹 한 가닥. 이안은 속눈썹 모공을 통해서 침투하며 그 과정에서 속눈썹을 가장하고 속눈썹을 양분 삼기 때문이다. 즉 감염이 의심되는 속눈썹 한 가닥만 뽑으면 간단하게 이안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듣기에는 매우 이상적이겠으나, 이안 감염 자가진단을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윽고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속눈썹이라는 것은 대체로 모두 평균보다 조금 짧거나 조금 길고 색이 완전히 균일하지도 않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렇다. 평균의 함정이다.
무사히 안구에 안착한 이안은 안구를 감싸는 그물 형태로 자라난다. 이 단계에서 숙주에게는 안구건조증과 유사한 자극감과 이물감이 나타난다. 1기에 해당하는 증상으로, 이안에게도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안의 감염력과 숙주의 감수성susceptibility이 조응되지 않을 시 성체로 자라지 못하고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안은 성장하며 때때로 안압을 높이거나 두통을 유발한다.
괴시가 나타나는 것은 이안이 안구를 반 이상 점한 뒤부터의 일로, 흔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괴시의 양상은 감염력과 감수성의 조응 결과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개별 연구가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숙주가 가지고 있는 내밀한 죄책감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3기는 이안이 완전히 기존 안구의 기능을 대체하게 된 시점부터를 말한다. 괴시가 사라지고 안구 건강에도 큰 무리가 없어진다. 다만 이따금 시야가 흐려지거나 캄캄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이안이 숙주가 눈을 깜빡이는 박자를 놓친 것 뿐 별 일은 아니다.
드문 사례지만 기존 감염이 2기까지 진행된 안구에 다시 감염이 일어난 일도 있다. 중복 감염자의 괴시 증상에 대한 연구는 참고할 만한 것이다.
3기까지 진행된 이안은 숙주인 인간이 죽으면 경화를 일으키고 미라화 된다. 시체에서 나온 안구는 마치 연마 도중의 보석처럼 보인다. 이를 수집하는 부호를 본 적이 있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인간 안구 보석이 특별 주문된 냉장 쇼케이스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 중 그가 특별히 아끼는 것들에는 생전 그 안구가 보았던 괴시를 금박지에 새겨 장식해두기도 했다. 여러 모로 악취미이지만, 최악은 아무래도 그것들이 주문 제작된 것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2017년 9월 8일 금요일
매력총공격: 김무성 (17년 9월 둘째 주)
2017년 9월 2일 토요일
8월 더미 태우는 날
2017년 9월 1일 금요일
[6호 서신]
*추수철 돌입
- 곡물창고의 추수철 돌입을 축하함.
- 입하 관리 철저.
- 곡물창고와 메뉴를 소개하는 소개 메뉴가 추가됨.
- 저장된 글 소개를 확인 가능한 저장대장 메뉴가 추가됨.
*사용조례 개정
- 게시물의 소유권이 게시물의 작성자에게 완전하게 있음을 밝힘.
*작성자 프로필
- 이제 글 하단에 작성자 프로필(블로거 프로필)이 표시됨.
- 프로필을 비공개로 했을 시 표시되지 않음.
- ‘소개’ 부분을 작성하지 않았을 시 표시되지 않음.
- 구글플러스 프로필이 아닌 블로거 프로필 사용을 권장함.
*추가된 사이드 메뉴
*저장 태그 저장의 전당에서 저장고로 간단화.
- 대체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이상.
2017년 8월 31일 목요일
포크 가수
당신의 육체 피로에 대해 들려주세요.
그러면 나는 내가 아닌 당신의 이야기를 소리 나게 만들 겁니다.
당신이 휴일마다 되풀이해 보면서도 매번 처음인 양 좋아하는
자연 풍경들도 잔마디와 잔마디 사이로 스밀 겁니다. 그러나
그 풍경들이 인간을 대신하지는 않도록 할 거예요. 조물주의
자연은 노동을 하지 않으니까요. 세계는 노동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새의 근육에 대해서만 노래하진 않을 겁니다.
나는 당신의 날개가 쉴 그늘에 대해서도
그늘 속에서 울려 퍼질 지저귐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서로의 깃에 부리를 파묻는 순간에 대해서도
그리고 당신에게 깃털 하나만 남기고 떠날 이에 대해서도
당신의 보금자리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만약 당신이 그러한 종류의 새가 아니라면
낙엽이 되는 당신에 대해서도 노래할 겁니다.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신은 어떤 것도 될 수 있으니까요.
당신은 모든 것이니까요.
그러나 당신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까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해서 노래할 겁니다.
당연히도 조상에 대해 노래할 겁니다.
조상의 사랑에 대해
조상의 시장에 대해
조상의 산과 조상의 숲과 조상의 바다와 조상의 노동에 대해
조상의 증기 기관에 대해 노래하고
조상이 만든 노래를 노래할 겁니다.
가능해지지 못한 조상의 미래에 대해 노래하다 보면
인간사가 짧기도 하겠지요.
나는 H빔 위의 당신에 대해서도
용광로 앞의 당신에 대해서도
전화기 앞의 당신에 대해서도
방 안에 있는 당신에 대해서도
거의 당신 같은 당신의 사물들에 대해서조차 노래하겠지만
그러나 그런 생각은 관두세요.
나는 전쟁에 대해서는 노래 않을 겁니다.
군악은 장르를 넘어선 문제입니다.
나는 앰프와 토마토의 시대 이후로 점점 늙고 약해지겠지만
아마 죽지는 않을 겁니다.
노동이 사랑이 있는 곳에는
저도 있어야 하니까요.
아마도 합창이라는 것으로서 말입니다.
2017년 8월 24일 목요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두목: 추미애 (17년 8월 넷째 주)
2017년 8월 19일 토요일
마인어 사전
2017년 8월 11일 금요일
그의 이름은: 천정배 (17년 8월 둘째 주)
저번 안철수 2편에서 문제를 느끼고 좀 다른 방식으로 진행해 보기로 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없음]과 김정은 234567이 번갈아 나오다가 끝날 것이다. 중복은 최대한 피하면서, 특별히 대단한 화제가 되지 않았더라도 이 순간 주목할 만한 정치인을 찾아가는 접근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 PIMPS는 천정배다. 그의 불가사의할 정도로 희미한 존재감에 주목해 본다. 천정배는 그의 위치나 행보에 비해 너무나 존재감이 옅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다, 하는 간략한 소개가 필요할 정도지만, 그런 귀찮은 정보들로 분량을 채우기보다는 곧장 본론으로 가는 편이 이 코너의 취지에 더 맞을 것이다. 먼저 한국 정치에서 안경잡이 범생이 스타일은 절대로 통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해 둔다. 민심은 천심이라고들 하는데, 천심은 안경잡이를 원하지 않는다. 하여튼 안 된다. 젊은 세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로는 유승민이 있을 것이다. 계속 지금 이미지 그대로라면 유승민은 절대로 뭔가를 이룰 수 없다. 좀 더 예전에는 이회창이 있었다. 이회창은 아마 지금까지도 뭐가 진짜 문제였는지 모를 것이다. 이 계보에는 김종필, 윤보선, 쭉 거슬러 올라가 김구까지 있다. 박정희가 안경보다는 선글라스를 낀 이유, 전두환이 장기 집권을 못한 이유도 그와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이명박이 후보 때 안경을 벗었던 이유이기도 하고, 문재인이 첫 도전에서 실패한 이유, 그리고 두 번째에 옛날 사진을 자꾸 보여준 이유이기도 하다. 홍준표가 안경만 벗었어도 지난 대선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여하간 이 땅에서 안경잡이는 통하지 않는다. 쓰다 보니 천정배 얘기가 없는데, 하여튼 일단 안경부터 좀 벗으란 얘기다. 일단 안경부터 벗고, 그 다음에 고려해 볼 만한 것으로는 이름을 자꾸 틀리게 불린 다음에 버럭하는 컨셉이다. 마침 틀리게 부르기 딱 좋은 이름이다. 천장배, 찬정배, 찬장배, 천종배, 청전배, 전청배, 정천배... 연장선상에서 명찰이나 명패, 자신의 이름이 적힌 모자나 깃발 등을 항상 착용하고 다니는 것도 효과가 괜찮을 것이다. 그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조용히 응원해 본다.
2017년 8월 9일 수요일
소각장 만든 날
2017년 8월 8일 화요일
미친 박물학자
박물학자들의 광증에는 전형이 있다. 보다 기이한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이 시작이며, 범박한 사물을 볼 때도 다른 박물학자들이 미처 찾지 못했을 특징을 알아내는 일에 집착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발견하고 기록한 것들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종장에 가서는 그것들을 창조해낸 장본인이 자기라는 착각에 빠진다. 박물을, 만물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믿음. 자기 뇌에 갇힌 신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 이것은 진행중인 미래다. 미래는 일정하지 않은 속도와 중량을 가지고 도래한다.
박물학자의 광증을 이해하는 한 사람의 박물학자로서 나는 완전히 미치기 전에 기록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예비해 두었다. 목록은 물론 안전하게 은닉되어 있는데, 누구라도 그것을 보면 이 사람이 이미 미친 게 분명하다 생각할 것이 자명한 탓이다. (아직은 아니다.)
2017년 8월 4일 금요일
SUIT UP: 안철수 2 (17년 8월 첫째 주)
이렇게 빠른 시일 안에 이 사람을 다시 다루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화제가 된 걸 어떡하겠나? 다른 정치인들의 분발(이렇게 쓰며 짜증이 확)이 필요할 것이다. 일전에 내가 그를 위해서, 중량감 있는 암흑계의 보스 느낌으로 칩거에 들어가 체중증량에 매진하는 것이 이미지 제고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정성껏 썼는데, 이 주에 아주 완전히 반대로 해버렸다. 주목을 받은 김에 마지막 힘을 한번 땡겨 보겠다는 걸까? 솔직히 무슨 생각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무슨 발표 같은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답을 알지만 부끄러워서 발표에 나서지 못했던 소년 시절의 경험이 지금의 그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지? 당의 운명이 그야말로 풍전등화인 타이밍에 폭풍처럼 나와서 발표를 하고 말이다. 다들 나서서 말리는데 기어코 꾸역꾸역... 기왕 그렇게 밷애스처럼 굴 거라면 다음과 같은 솔루션도 있다. 과학초인 아이언맨이다. 역시 일종의 사장님으로, 킹핀보다 인지도도 높다. 머리는 짧게 쳐서 세우고, 수염을 길러 가꾸고, 몸을 좀 그럴싸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트빨이란 것이 좀 나도록. 또한 첨단 기술에 강하다는 점을 어필하려면 구글 글래스 같은 걸 끼고서 호버보드 같은 걸 타고 등장해야 할 것이다. 좀 더 과감하게 제트팩에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목표는 앞으로 20일가량 남은 전당대회, 적지 않은 나이에 이것저것 하려면 시간이 많지가 않다. 아닌가? 아예 이번 발표 때 그러고 나왔어야 했나?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시그니처 컬러셋인 금색/빨강은 중국에도 어필이 될 수 있다. 사드 때문에 흐트러진 한중 관계를 한번 다잡아 보겠다는 결연함을 보여줄 수도 있을 테고... 미국에도 메시지의 울림이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여튼 이대로만 하면 반드시 먹힌다. 앞으로도 PIMPS는 어떤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든지 답을 찾아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17년 7월 28일 금요일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이언주 (17년 7월 넷째 주)
2017년 7월 24일 월요일
보이지 않음에 관한 주석
한편 보이지 않음은 없음의 동의어 또한 아니다.
우리의 문명은 보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방향으로 발달해 왔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미치는 힘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막기 어렵다. 인류가 겸손을 배울 수밖에 없게 만든다.
위의 서술들을 배반할 가능성을 무릅쓰건대, 지금 보이지 않는 것들이 후세에도 절대로 보이지 않으리라 호언할 수는 없다. 망원경과 현미경의 발명으로 한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 몇몇이 보기 힘듦의 지위로 강등된 것처럼. 박물학의 참된 목표는, 박물학자의 진짜 일은, 스스로는 확인할 수 없을지언정, 기록된 박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는지 <없는 것>이었는지 검증해줄 것을 후대에 요구하는 것이다.
흰 꿈개미
꿈의 씨앗은 본래 식물의 망령이다. 꿈의 시점이 이상하다 여긴 적이 있을 것이다. 배경은 익히 알던 등교길, 생활관, 회당, 벤치, 승강장이지만 너무 바닥에 가깝거나 너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감각, 이 감각은 그러니까 외래된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전염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일이다.
때로 전혀 상상해본 적 없거나 직접적으로도 간접적으로도 경험해본 바 없는 공간이 꿈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그것은 꿈의 씨앗이 ―그러니까 식물의 망령이― 생전에 꿨던 꿈이다. 반복되는 꿈들은 같은 종의 식물이, 아주 튼튼한 식물이, 인간의 의식에 휩쓸려 죽거나 시들지 않고 세대를 거듭해 번성하는 증거다.
식물로서의 꿈의 연구에 가장 훼방이 되는 존재는 물론 꿈의 천적이다. 그것들은 꿈을 속부터 파고들어 인간이 꿈을 잊고 피로감만 느끼게 만든다. 병든 꿈이 무의식 아래로 침잠하는 광경이 꿈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처참한 것인지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한때 익충으로 개량해 악몽을 먹게 만들어보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그것들이 좇는 것이 꿈 그 자체보다는 꿈에 배는 인간의 정서인 바, 무용한 일이 되고 말았다. 악몽에 스미는 인간의 정서는 주로 공포, 후회, 열패감, 무력감 등인데 이런 것들은 전혀 달콤하지 않기 때문에 개미를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2017년 7월 21일 금요일
교정자
모든 것은 너무 많고 모든 것은 불완전하며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은 불충분하다.
불완전한 것들을 더 완전한 것들로 만들려는 노력은 시기와 불확실성이라는 제약하에 언제나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결국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은 제약이 고려되지 않는 가장 불필요한 것들뿐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을 손보는 사람, 사람들의 필요와는 상관없이 스스로가 필요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그러한지 스스로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착란에 빠져버리고 마는 사람. 보통 사람들이 별반 신경 쓰지 않는 정서법 하나하나에 연연하고 위법 사항을 보면 거슬리고 화가 나 견디기 어려운 사람. 언어 법은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이며, 언어가 있다면 언어 법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보다 차라리 법 기계에 가까운 자. 마감하기 위해 원고를 쓰는 자들의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쓰는 자의 마감을 기다리는 자. 즉 그러한 잡다하게 필요한 불필요의 장인.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다.
나는 산업의 그늘 속에서 존재하고 한 번도 그 그늘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나의 노동은 흔히 무시된다. 사장에게, 소비자에게, 업계 관계자에게, 학자와 교수에게, 또한 수많은 편집자에게. 나는 편집자로 불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가장 은밀한 단계의 감독자라는 욕망조차 없으며 나는 나의 노동이 포괄적으로 분류되는 것에 모멸감을 느낀다.
나는 온갖 텍스트라는 숱한 소세계들을 교정하고 있으나 사실 세계라는 건 딱히 교정될 필요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회의 또한 품고 있다. 하지만 내가 회의한다고 해서 교정되어야 할 것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교정되어야 할 것이 내 손에 들어오면 나는 그것을 즉시 교정하거나 혹은 이런 식으로 교정될 만한 것이라는 제안을 전달한다. 세계가 딱히 교정될 필요가 있든 없든 내가 교정한 것이 반영되든 안 되든 나는 개의치 않는다. 나는 다만 교정할 것이 눈에 들어오면 교정할 뿐이다. 곧 이러한 나의 노동은 넓게 보자면 산업적인 맥락뿐만 아니라 법과 시선 사이에서 발생한 신경질이 낳은 전기 신호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업무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 교정되든 교정되지 않든 사람들은 대개 그 차이와 변화를 쉽게 파악하지 못한다(이것이 인간이기에 극도로 낮은 빈도로 저지르는 내 실수가 자학에 그치는 이유이다). 말하자면 교정이라는 것은 가시적 효과보다는 비가시적 증강과 관계된 기술이다. 내가 당신의 척추를 접는다면 그것은 교정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이며 혁명이다. 하지만 내가 당신이 자세를 바꾸도록 만들어 점차적으로 척추 원반 탈출증, 다시 말해 디스크를 앓게 만든다면 그것은 교정이다.
나는 교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교정하고 싶기에 당신 또한 교정하고 싶다. 가령 이런 식의 교정 말이다. 내가 교정한 책을 구입하시라. 굳이 읽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당신의 서가에 꽂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보기에 좋을 것이다. 어차피 오랜 출판 산업의 역사 속에서 책을 읽기 위해 책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는 근래에 책이 아닌 다른 읽을거리를 찾는 풍조로 인해 나타난 급작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19세기 말에 출간된 어느 소설책의 서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내 책 또한 벽을 장식하는 데나 사용될 뿐이다.” 세기를 더 거슬러 올라가봐야 뭣하겠는가? 출판 산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탄식만 숱하게 접할 것이다. 그것은 구텐베르크 이후부터 심화되어온 문제이다. 물론 최근에는 어렵다거나 힘들다는 말 대신에 이미 죽었다는 말을 더 많이 쓰기는 한다. 나는 시체가 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 중에서도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자인 셈이다.
그럼에도 시체로서 나는 할 말을 하노니, 당신이 책을 구입하기를 바란다. 이는 나의 사후를 연장시키는 길이니 개인적인 요청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보다도 당신의 주변을 여러 소세계들로 가득 채우는 일이며, 결국 세계를 좀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내가 시원찮은 벌이를 하면서도 온갖 글들을 교정하는 이유이다. 하찮아 보이는 나의 교정이 세계의 교정으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나는 버리지 않고 있다. 어리석어 보여도 어쩔 수 없다. 이러한 믿음이 없다면 나는 진즉에 자살했을 것이다. ‘이제 세계는 더는 혁명을 통해 변화할 수 없다. 오직 교정될 뿐이다.’ 말하자면 이것이 나의 철학이며 내 노동의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당부한다. 정기적으로 책을 구입하기를 바란다. 책이 쓸데없는 것이라면 그 쓸데없는 것들을 당신의 주변에 두길 바란다. 온갖 불완전하고 쓸데없는 것들로 인해 당신의 영혼은 끝내 구원받을 것이다. 이것만큼은 나를 믿어도 좋다. 일단 책을 구입한다면 그다음 교정 단계를 내가 알려주겠다…….
고기안주: 없음 (17년 7월 셋째 주)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중량감 확충: 안철수 (17년 7월 둘째 주)
2017년 7월 12일 수요일
소리생물
물론 농담이다.
빛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생명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빛이 생명에 기여하는 바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빛이 생명을 번성케 하고자 하는 의지같은 걸 갖고 있으리라는 착각 또한 금물이다. 손을 들고 질문하고 싶어하는 청중이 보인다. 그렇다면 소리는 살아있습니까? 모든 소리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이따금 그것들 중 죽지 않는 개체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살아있는 소리는 살아있지 않은 빛보다 우월합니까? 이런 건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소리가 어떤 조건에서 불멸성을 획득하는지는 여전히 연구대상이다. 여기서는 소리생물에 대한 논란보다는 지금까지 관찰, 보고된 바만을 다루기로 한다.
죽지 않는 소리는 음의 주광성을 띠고 잽싸게 어두운 곳으로 도망친다. 그 상태에서 일체의 생리활동, 즉 섭취하고 배설하고 활동하고 수면하는 등의 활동 없이 주변에서 완전히 인간이 사라질 때까지 버틴다. 구전된 바에 따르면 30년 된 소리생물이 발생한 장소에서 발견된 적이 있다. 더 오래 버틸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소리생물들은 번식의 욕구를 가지고 있지만 몹시 희귀하여 동종의 개체를 발견하지 못한 채 최후를 맞이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게다가 소리생물들은 대개 생식능력이 없다. 노새처럼.
소리생물들의 최후에는 사망이라는 말보다 소멸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러나 그들의 소멸은 생물이 아닌 소리들의 방식보다는 작은보호탑해파리나 해삼과 같은 해저생물들의 방식에 가깝다.
소멸 직전의 소리생물들은 인체에 침투하려는 습성이 있다. 약간 성가실 수는 있으나 건강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
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브루스터(1781-1868)는 소리생물을 관찰하고 잡아 가둘 수 있는 도구를 고안하다가 만화경을 발명했다. 이론적으로 만화경은 소리생물 덫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으나 다른 쓰임새가 더 두드러지는 바람에 만화경kaleidoscope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희랍어에서 아름다움을 뜻하는 칼로스kalos, 형태를 뜻하는 에이도eido에 유리와 거울로 만든 안외 보조도구를 의미하는 어미 스코프scope를 붙인 것이다.
소리생물 연구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19세기에는 이명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만화경을 귀에 대고 자라는 처방을 주는 경우가 흔했고, 실제로 이 처방은 효험이 있었다고 한다.
2017년 7월 7일 금요일
소년에서 남자로: 김정은 (17년 7월 첫째 주)
PIMPS를 소개한다
2017년 6월 16일 금요일
지남
1. 환자분, 지금이 몇 년도인지 아세요?
2. 환자분, 여기 어딘지 아세요?
3. 환자분, 본인 이름 기억 나세요?
지남력을 영어로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이라고 한다. 입문교육식 따위를 뜻하는 오리엔테이션과 통한다고 볼 수도 있겠다. 입문교육으로서의 오리엔테이션은 새 집단/프로젝트에서의 역할과 사회적 위치를 재학습하는 과정이므로. 오리엔테이션의 어원은 라틴어 오리엔스oriens로 보인다. 오리엔스는 동쪽, 동방, 태양이 뜨는 방향 등을 의미하며, 익히 알려진 오리엔탈oriental의 어원이기도 하다. 지남력이라는 어휘에는 남쪽이,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어휘에는 동쪽이 들어있는 셈이다. 각 어휘를 만든 문화권이 어떤 방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짐작해볼 만한 흔적이다.
자석을 지남철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게 지남의 능력을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석 자체가 지남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살아있는, 그것도- 지혜로운 광물이라고, 옛 사람들이 믿었기 때문이다. 광물 상태로 발견되는 자석들은 높은 온도로 가열하거나 세찬 충격을 가하면 지남력을 잃어버린다. 같은 일을 인간에게 행하면 인간도 십중팔구 지남력이나 생명을 잃는다.
지남력이 없이도 생존은 가능하므로, 지남력을 가졌다는 사유만으로 자석들을 생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자석들이 살아있다 믿었던 옛 사람들에게 현대의 전자석을 보여주면 어떨지를 상상해 본다. 광물 상태로 발견되는 자석들이 인간이라면 전자석은 안드로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