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3일 토요일

이안

죽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이쪽을 끈질기게 바라보고 있는 어떤 꽃(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분명 원망을 품고 있음을 ‘시선’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녹아가는 날개를 끌며 수면 위에 그러듯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청둥오리. 어떤 ―손끝으로부터 어둠을 뿜어내고 있어 그 사람이 바로 밤의 근원이로구나 생각하게 하는― 사람(그럼에도 사람이라고 했다). 산산이 흩어져 있는 수정 조각들이 반사해 올린 듯 수많은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무지개. (겹눈생물의 눈에 맺힌 상과 같았다 하는 것이 좋으리라고 차후 수정.)

이상은 이안에 감염된 사람들이 보았다고 주장한 것들의 사례이다. 괴시 증상은 이안 감염의 2기에 해당한다.

시작은 속눈썹 한 가닥이다. 평균보다 조금 길거나 조금 짧고, 색깔이 다른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속눈썹 한 가닥. 이안은 속눈썹 모공을 통해서 침투하며 그 과정에서 속눈썹을 가장하고 속눈썹을 양분 삼기 때문이다. 즉 감염이 의심되는 속눈썹 한 가닥만 뽑으면 간단하게 이안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듣기에는 매우 이상적이겠으나, 이안 감염 자가진단을 위해 거울을 들여다보면 이윽고 그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속눈썹이라는 것은 대체로 모두 평균보다 조금 짧거나 조금 길고 색이 완전히 균일하지도 않다.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렇다. 평균의 함정이다.

무사히 안구에 안착한 이안은 안구를 감싸는 그물 형태로 자라난다. 이 단계에서 숙주에게는 안구건조증과 유사한 자극감과 이물감이 나타난다. 1기에 해당하는 증상으로, 이안에게도 힘든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안의 감염력과 숙주의 감수성susceptibility이 조응되지 않을 시 성체로 자라지 못하고 탈락하기 때문이다.

이안은 성장하며 때때로 안압을 높이거나 두통을 유발한다.

괴시가 나타나는 것은 이안이 안구를 반 이상 점한 뒤부터의 일로, 흔히 일어나지는 않는다. 괴시의 양상은 감염력과 감수성의 조응 결과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개별 연구가 필수적인 부분이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숙주가 가지고 있는 내밀한 죄책감과 연계되어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3기는 이안이 완전히 기존 안구의 기능을 대체하게 된 시점부터를 말한다. 괴시가 사라지고 안구 건강에도 큰 무리가 없어진다. 다만 이따금 시야가 흐려지거나 캄캄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단순히 이안이 숙주가 눈을 깜빡이는 박자를 놓친 것 뿐 별 일은 아니다.

드문 사례지만 기존 감염이 2기까지 진행된 안구에 다시 감염이 일어난 일도 있다. 중복 감염자의 괴시 증상에 대한 연구는 참고할 만한 것이다.

3기까지 진행된 이안은 숙주인 인간이 죽으면 경화를 일으키고 미라화 된다. 시체에서 나온 안구는 마치 연마 도중의 보석처럼 보인다. 이를 수집하는 부호를 본 적이 있다.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인간 안구 보석이 특별 주문된 냉장 쇼케이스 속에 보관되어 있다. 그 중 그가 특별히 아끼는 것들에는 생전 그 안구가 보았던 괴시를 금박지에 새겨 장식해두기도 했다. 여러 모로 악취미이지만, 최악은 아무래도 그것들이 주문 제작된 것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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