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일 토요일

8월 더미 태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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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농장 이야기는 여러 번 했었다. 협동농장을 만들 것이라고. 주력 사업은 마리화나 쿠키다. 먼저 대마 합법화가 필요하겠다. 작목반과 제과반, 풀에서 입으로... 생산한 대마를 바탕으로 뮤지션들을 포섭해 음반 레이블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도 했었다. 풀에서 귀로... 출판도 한다. 대마 화분 키우기 핸드북, 캐나다 나홀로 대마 여행기 등... 풀에서 눈으로. 이렇게 음반과 대마와 책을 패키지로 묶어 선물 세트를 구성한다. 이것이 농장의 삼두마차다. 잎사귀 마차. 잎사귀를 쓰는 건 아니지만 잎사귀가 예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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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농장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미래 인류의 단백질 공급을 책임질, 식용 곤충 사업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애벌레 건조 분말을 굳힌 애벌레 큐브가 아이템이다. 말하자면 치킨 스톡 같은 거다. 하나 넣으면 멀건 국도 고소해지고... 포장 디자인이 중요하다. 채식의 새로운 길도 제시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두더지 큐브 같은 이름은 어떨까. 아니면 지빠귀 큐브, 또는 PA(포스트 아포칼립틱) 큐브... 간식 접근이 아니라 식품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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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산보회. 코스를 정하고 날을 정해서 산보를 하고 돌아오는 것이다. 남는 건 사진뿐이니까 기왕이면 찍을 만한 것이 있는 곳으로. 첫 코스로는 벌레 쿠키 같은 걸 파는 모처의 카페에 다녀오기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대낮부터 떼 지어 다니는 거는 보기에 좋지 않다는 얘기를 듣고서 과연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하지만 언젠가 가볼까,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만 한다. 생각만. 무슨 모임을 만드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유행 좋다. 유행이 돌고 도는 것은 유행들의 숨겨진 목적이 세대를 건너며 성취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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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좀 된 것이다. 사전이라는 형식이 좋겠다는 생각. 그 형식으로 뭘 쓴다면 좋을 것 같다고. 뭐가 좋나?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일단 해 본 것은 일기 같은 사전이었는데 해 보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그것은 일기 이후에 대한 기획이기도 했는데, 그 면에서는 아무것도 일기라는 고유한 형식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일기의 형식을 바깥으로 반출해 낼 수는 있어도. 일기 같은 것을 원한다면 그저 일기인 편이 좋다. 누구에게 좋나? 자신에게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일기라면 정말 질려 버렸다. 일기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더 제대로 기획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사전다운 사전을 기획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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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매짜리 글을 쓰고 1매씩 포스터 형태로 나눠 10개월 동안 출간. 2개월은 놀고 마신다. 12개월은 너무 기니까. 포스터사이즈는 A2 또는 B1. 물론 좋은 그림이 그려져 있어야 한다. 내용 10매는 엄청 재밌어야 한다. 엄청 재밌는 얘기. 그림이야 뭐든 멋있게 그리면 된다지만 거기 들어갈 것을 쓰는 일은 아주 도전적일 것이다. 두고두고 봐도 괜찮아야 하고, 독립성과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 글씨는 손글씨다. 못 쓰면 안 되고 너무 잘 써도 안 된다. 그림을 보듯 읽을 글자여야 하지만 캘리그래피 식이면 안 된다. 양피지 같은 걸로 만들어서 평소에 말아 보관할 수 있는 형식도 생각해볼 만. 물론 비싸게 팔아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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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니 캐치볼을 하고 싶다. 캐치볼 모임의 기획은 다음과 같다. 인원: 6인, 장소: 유수지 축구장, 주제: 육망성(사탄소환). 캐치볼을 하려면 일단 글러브가 있어야 하는데 글러브를 사기는 좀 아까운 느낌이 있고, 그러니까 그 정도로 캐치볼을 자주 할 것 같진 않고, 나로서는 그냥 길을 가다가 하나 줍고 싶다. 귀신 들린 글러브를. 그것을 끼면 마구를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주변에 마구를 던질 수 있는 아무도 없지만. 그것은 아무 사탄도 소환할 수 없지만 육망성 캐치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싶은 것과도 같은 이치다. 나는 사실 안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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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바뀌는 냄새에 연기 냄새가 더해진다. 양철 밥그릇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사야는 가로로 누워 불을 쬐고 있다. 소각장은 충동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이사야의 하얀 배털에 간혹 떨어져 붙는 재를 보고 있자니, 역시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벽돌들을 싣고 오면서, 이 창고의 아침 실루엣을 보다가, 그런 걸 만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저기 저쯤에서 연기가 나면 괜찮을 것 같아서. 벽돌들은 한참 봐두기만 하다가 가져온 것이었다. 필요시가져가시요, 갈겨 적힌 널판 옆에 마구 쌓인 벽돌들을 바라보다가, 그저 갑자기, 별 필요도 없는데. 벽돌들을 좀 잘 놓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에 했다. 누구든 좋다면 뭐라도 좋으니 좀. 따지고 보면 이 창고부터가 그런 것 아닌가? 그게 뭐 누구의 벽돌인지, 누가 들인 가마니인지 별 중요한 일도 아니다. 중요한 일이지만. 이제 나는 이사야가 자고 있던 게 아니라, 누워 고개를 젖힌 채 뭔가를 골똘히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알림판에 뭘 달고 있는 창고관리인이다. 무슨 쓰잘데없는 사진 같은 것일 테다. 오늘의 관리인은 작업복도 제복도 아닌 평범한 차림새다. 그는 날마다 입고 싶은 대로 입고서 나타난다. 처음 관리인이 됐을 때는 뭘 열심히 써서 보내기도 하더니 이제는 환경정리의 날(관리인 혼자 멋대로 정한 날이다) 말고는 얼굴을 잘 비치지 않는다. 소각장을 만든다고 했을 때 어어 그러쇼 하고 반색하는 구석이 있었던 걸 보면, 관심이 있어서 오늘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사야는 여전히 관리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무슨 생각일지. 관리인을 먹을 생각인지? 관리인은 이사야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기서 쥐를 잡을 이유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도 관리인을 이사야를 쥐잡이라고 부른다. 쥐잡이를 만진다고 쪼그려 앉아 있자니 다리가 아프다. 의자를 구해다가 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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