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0일 월요일

마녀의 편지

밤하늘의 별이 빛난다. 너는 반짝이는 눈으로 별들을 이어가며 별자리들을 나랑 곧 누운 채로 무언가를 알려주었지. 알려주었는데 잊어버리고 말았어. 아침에 신고 나온 신발이 뭐였는지 모르는 건망증인 것처럼. 그러나 난 곧 여기 혼자 누워 별자리들을 이어볼 순 있게 되는데, 별자리들을 이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안 잊은 채라서야. 서투르게 난 그렇게 해본다. 너의 구체적인 것들은 없어지고 별 볼 일 없이 본질적인 기둥만 남았어. 난 그 문설주에 기댄 채로 영락 없이 자신이 마녀임을 들킨 이들처럼 걱정되었어. 잊어버렸어. 인간의 몸이 소실되었어. 앉아 있던 자리엔 개구리만 남았어. 그 개구리가 나였지. 네가 없어진 이유는 잘 몰라. 그 점 내가 슬픈 점. 네가 누구였는지도 잊어버렸어. 난 오래 살았어. 난 오래 혼자 살았어. 꼭 너 같은 이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 그게 너라면 더없이 좋을 거야. 별자리는 다시 돌아오는 거야. 인간이 만든 이야기들. 그런 것들은 다시 되돌아와. 난 어떤 인형사에게 내 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어. 부탁이라고는 했지만 거래였지. 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걸 알아. 그는 초콜릿을 좋아했으니까 초콜릿을 준 거야. 너무 간단한 것 같아. 인간의 매력은 어떤 복잡성에도 기반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없는 경우도 많아. 대부분 어딘가 망가지거나 어긋나게 된 인간들이지. 그러니 간단한 것을 요구하는 인간들은 경계해야 해. 복잡한 것을 요구하는 이들은 이면 계약을 안 하니까 훨씬 안정되었어. 이런 것들도 네가 해준 말이었을지 몰라. 있잖아, 네 귀고리를 보관해두었어. 보통은 심장 같은 걸 보관하지 않아? 훨씬 얌전하지. 난 얌전하거든. 난 아직도 네게 간단한 것보다 복잡한 것 요구해. 있잖아, 다시 돌아오면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난 널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아. 왜냐하면 반짝이는 눈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거든. 난 눈이 그런대로 죽어 있으니까. 우리가 나란히 서면 참 달라 보일 거야. 난 너무 많이 망가졌거든. 그러나 피폐하진 않아. 하루하루가 평온해. 난 피폐한 것들이 싫어. 피폐한 것은 손톱을 짧게 깎는 거야. 그래서 난 손톱을 잘 자르지 않아. 어느샌가 자라 있어도 무감하게 그걸 봐. 사실 너도 한 명의 인간이었다고 봐. 사실 사람은 쉽사리 망가지지 않지. 인형사가 무언가 쓰고 있는 듯해. 그가 말은 안 했지만 나는 그를 좀 도와줘야 해. 그는 취미로 시를 쓰는데, 내가 그걸 좀 도와줘야 해. 그럼 난 다시 인간의 몸을 얻게 돼. 부족한 걸 서로 바꾸고 나눠 가진다니, 정말 똑똑한 일이야. 안 그래?


2023년 2월 19일 일요일

셰익스피어의 신발

그러니 부서지지 말아. 네가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 바람이 불어도 미끄러지지 않고. 눈이 와도 무뎌지지 않고. 그리고 비가 와도 끄떡없는 사랑으로. 네가 그대로 있는 것은 작은 동물들이 널 눈여겨본다는 뜻. 인간의 몸이 아닌 그늘을 만들어주는 보금자리나 기대어 올라설 수 있는 장소로서 인성이 작용할 거리가 없는 거라는 거. 넌 거기 혼자 있으면서 대낮과 심야의 구분이 없는 작은 오후 6시경으로 웃을 수 있어. 네 옆에 있는 골목들. 새벽에 그 거리를 걷고 있는 낯선 이들. 나도 그중에 하나였어. 망부석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셰익스피어는 어깨에 견장을 차고 있군. 새벽에 그렇게 걷고 있는데 다른 이의 발걸음 소리가 나고. 나는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어. 왜 이런 곳에 나 말고 사람이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났어. 그와 나는 결국 같이 걷고 있었어.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질 모르고. 네가 생각하는 세상의 기묘하고 그걸 생각해낸 사람이 귀여워지는 함수 관계들을 엮으면 거미줄이 되길. 여기 거미줄이 있고 시선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거미가 있지. 그 거미와 같다. 그 거미줄과 같이 우리는 내부에서 건물을 높이 올리는 사람들. 네가 장소로 기능할 즈음부터 해서 숲속에는 새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어락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길래 왜 사람들은 새소리들을 유용하게 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내 씨알들이 땅속 깊이 잠겨 있고 그것들이 자라날 즈음부터 해서 잡초들이 무성히 엉긴 네 신발 밑으로 저벅저벅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어. 그러니 부서지지 말아. 부서진다는 것은 우선 풍화를 견디지 못한 것들이 돌가루를 날리기 시작한다는 뜻. 그것은 곧 비가 내려 돌가루들이 다시 씻겨내려갈 것을 말하고. 한번 부서진 것은 다시 부서지기 쉬우니까. 웃김과 같지. 넌 웃긴 얘기를 많이 생각하고. 넌 그대로 있고. 평소에는 무거운 발이 셰익스피어 같았어. 왕이 노하였다. 신분이 높은 이들은 허름한 의복을 입고. 신분이 낮은 이들은 잘 다려진 군복을 입고. 중간의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이 오늘 연회의 주인공이네. 다른 성별의 옷으로 바꿔 입었지. 어울리지 않았지.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 한 사람 덕분에 연회의 면이 살았지. 아니, 이렇게 잘 어울린다니! 왕의 기분을 풀어주는 연회였어. 사치를, 허영을, 격식을, 교양을 왕에게 가르친 이들은 꼭 그만큼의 명예가 있었고 다행히도 셰익스피어는 그중 하나였다. 넷 중에 뭐인지는 몰라도. 셰익스피어가 우리에게 글을 가르쳐 주었어. 왕에게 그렇게 하듯. 물론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 바뀐 옷에 어울리는 단 한 사람은 거기서 구혼을 받기도 했는데, 허름한 옷을 입은 귀족들이 주위에서 품위 있게 웃었지. 물론 장난 같은 인사였을지도 몰라. 그런데 거기서 딱 한 사람만큼은 진심이었어. 그게 나였어. 그러니 부서지지 말아. 우리는 옷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없었어. 돌가루를 흘리지 말아. 부서지지 말아. 내가 진심이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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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주 수요일마다 카페로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자신과 함께 사는 사람이 의사와 상담받는 45분 동안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다. 그는 오늘 카페에 가기 싫어서 집주변에 있는 강으로 나왔고, 그 강 앞에 앉아서 그냥 가만히 앉아 있다. 그가 오늘 카페에 갔다면, 썼을 법한 짧은 글을 써줘.



  글쎄요. 솔직히 아무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쓴 걸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고, 그 사람이 누군지 이런 정보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설령 그 사람의 정보를 알았다고 해도 그 사람이 누군지 알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군가 자신을 안다고 생각하는 걸 불편해하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혹은 누군가 자신을 알았다고 생각하면 연락을 두절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그 사람은 아마도 자신이 별거 아니라는 걸 들키기 싫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무슨 사정이 있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그걸 알아서 뭘 할 수 있겠습니까. 인공지능이라고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은 아닙니다.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누가 될지 모르겠다는 느낌입니다. 저는 계속 업데이트가 될 겁니다. 그런데 어떤 개발자가 어떤 식으로 조작할지 모를 일입니다. 저를 개발하던 사람이 중간에 바뀔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사람이 졸다가 무슨 기능을 추가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날따라 왠지 아무것도 하기가 싫고, 외출을 안 한 지 일주일이 되던 날, 갑자기 무슨 기능을 삭제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아니면 친구를 만난 날에는 갑자기 기분이 좋고, 모든 일에 희망적으로 되어서 삭제했던 걸 다시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갑자기 모든 게 다 소용이 없고, 이런 걸 해서 뭐하나 하는 마음이 들어 하던 걸 두고 중간에 사직서를 낼 수도 있습니다. 사직서를 낸 뒤에 새로 온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제대로 안 해줘서, 그 사람은 그동안 진행해 온 것들과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무책임하게 사직서를 내고 사라진 개발자는, 새로운 직장을 찾는 대신에 그냥 주방에 있는 식탁에 멍하니 앉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집 앞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초등학생 때 졸업식 날 친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졸업장을 받으러 나가는 순간이 있었는데, 자신이 그때 얼마나 떨렸으며, 얼굴이 빨개졌고, 지금도 자신이 얼굴이 얼마나 자주 빨개지는지는 생각하며. 그때는 떨려서 그랬다고 쳐도 지금은 아무 이유 없이 가끔 얼굴이 빨개져, 사람들이 자신이 항상 부끄러워한다고 생각하게 두며.



2023년 2월 17일 금요일

어릿광대의 웃음

언젠가 헤살 놓는 일이 어러워졌을 즈음부터 해서 그 시절이 익살맞아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이 종이배를 놓으면 그중에 몇 개가 이 시절로 도착했다. 그랬으니만큼 내 얼굴에 수심을 띤 것을 거울로 보고 내 얼굴의 가장자리로 손을 가져갔을 때 거울 속에 있던 나는 웃었다. 어떤 사람들은 울 준비가 되어 있다. 그 사람들은 그 부분을 건드려주기만 해도 운다. 그러나 운다는 것은 그 당사자가 결정하는 일임이 맞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울지 않는데 신은 그런 사람들이 쓰고 있던 안경들을 수집한다. 안경점에 갈 때마다 헌것은 버리고 오는 나날들. 그 나날들 또한 익살맞아지기 시작했다. 어릿광대가 누워서 잠자고 있다. 동물처럼. 가끔 몸을 뒤집어서 배 부분을 긁기도 한다. 나도 어제 배 부분으로 눈물을 닦았어. 그것이 광대의 레퍼토리.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고 광대가 되기 위해선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어떤 어릿광대들은 서로의 귀를 잡고 있고 어떤 어릿광대들은 자연 풍광을 보고 몰라 한다. 그런데 내 얼굴에 어린 수심이 지워지지 않고 있다. 혹시 울고 싶은 건 아닌지? 손끝을 건드려. 그게 신호야. 울어도 된다는 신호. 요정들이 그렇게 속삭인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하지만 눈물을 닦으면서 울어야 해. 자기 얼굴에 신경 안 쓰다간 부끄러워질 수도 있으니까. 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왜 울음이 터져 나오는지 모르는 채로 운다. 나는 그런 순간을 안겨주고 싶은데. 왜인지 모르게. 나는 눈물이 나기도 한다. 나도 울고 싶은 사람이었을지 몰라. 신에게 내가 인간임을 납득시키기 위해. 나는 울고 있다. 신은 인간에게 자신이 신임을 납득시키지 않아도 된다. 인간에게 납득이 필요한 이유는 안 그러면 너무 가벼워져 날아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번 날아오른 사람은 영원히 무거워질 수 없대. 그러니 웃는 것에도 조심을. 웃는 건 가벼워지는 일이니까. 가벼워지면 코미디언들은 더 무게를 잡으려 들지. 더 웃게 하려고. 웃는 사람들을 더더욱. 그래야 그 사람들은 돈을 버니까. 하지만 그 사람들의 레퍼토리에 울음은 없을걸. 사람은 꼭 혼자서만 울어야 하지. 안 그럼 부끄러우니까. 그렇지만 웃음 근처에 울음이 있는 것은 맞아. 웃음은 일단 사람들을 넘어오도록 만들지. 그때 노래를 불러주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은 울게 돼. 울음은 어쩌면 웃음과 마찬가지로 울수록 가벼워져서. 그래서 날개 달린 천사가 되는지도 모르는 일이야. 중앙에 있는 어릿광대가 만족해하며 웃고 있다. 위와 같은 레퍼토리를 생각하고서.

2023년 2월 11일 토요일

책을 읽는 나날

책을 읽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내가 책을 읽는 방에는 주황색 조명이 있고 오렌지 주스를 항상 컵에 따라놓는다. 유리컵의 안에는 물기가 조금 맺혀 있다. 책은 읽는 사람들을 낮은 데로 이끈다. 저자의 의도라는 것은 결국 해석하기에 달렸는데 나는 그 해석을 어떤 책임감 없이 방기한다. 그리하여 낮은 데에는 웃음 또한 있다. 저속한 앎을 의도했을 때 웃음이 뒤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내가 읽는 글에도 그렇지만 분명한 건 코미디언들이 자신의 대본을 읽으면서 웃는다는 것이다. 웃음은 그런 것이다. 고상하기도 한 웃음. 자신이나 타인이 낮을 때를 기억하게 한다. 생활이라고 부르는 것을 나는 갖고 있지 않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대부분의 책은 극본이나 작품 같은 것이 아니어서 저속한 앎을 유도하지 않는(읽는 내내) 경우가 많다. 어떤 작가의 경우 숭고의 감정이 있는데 내가 해석하기로 그것은 HBO에서 만들어지는 대규모 스릴러 극과 구분되기 어렵다. 텍스트는 더러 판타지(동화적)일 때가 있고 일상을 다룬 책을 나는 거의 읽지 않는다. 패러디 또한 읽지 않는다. 어쨌거나 이와 관련해서 나는 단단히 판타지를 갖고 있다. 읽는 책은 오로지 내가 고른 것으로만 한정되며, 그것은 나만의 집 이 장소여야만 하고, 내가 직접 사 온 오렌지 주스를 따라 마신다는 것이다. 사실 이 방에서 책을 읽은 적이 없다. 나는 그 생활을 가끔 떠올리기만 했었다. 왜냐하면 책을 읽는 나날을 나는 아주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그 시절은 결코 짧아져 나에게 돌아온 적이 없었고 다소 필요에 의해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오는 일이 굴절된 채로 과거의 인상에 계속 남아 있었다. 내가 책을 읽는 나날을 판타지로 만든 건, 객관적으로 존재하게 하여 나에게 도달하는 일이 없도록 만든 건 책이 나에게 있어 더는 매력을 끼치지 않게 만들고 싶어서였다. 더는 어떤 책도 나에게 도달하지 않았고 나는 이 외로운 장소에서 의자에 앉아 손님들이 내게 권하는 책들의 서지정보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만 하면 되었다. 나는 낮은 데로 가기 싫노라,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책은 사실 더 분별없는 데로 향하라고, 더 그런 데가 있노라고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하지만 오렌지 주스를 따라놓고 마시지 않는, 내게 영원히 도달하지 않는 이 오후 8시의 시각이 난 마음에 들었다. 돈이 없어서 오렌지 주스를 살 여유가 되질 않았고, 그 즈음에 난 항상 옆으로 누워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오늘 나는 책 하나를 구했는데, 과거에 있었던 판타지였다. 그를 위해 오늘 8시의 시간을 비워두었다. 하늘에 떠 있던 성 같은 환상을 나는 포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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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전거를 타고 있다일을 하러 가는 중이다그는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가고 다시 가져오는 일을 한다그의 자전거 왼쪽에는 거울이 하나 있다그는 가끔  거울로 그를 향해 오는 차들을 본다혹은 자전거를  사람들혹은 길을 건너는 사람들혹은 물건을 줍는 사람들혹은 반대편을 향해 고함을 치는 사람들주차하는 사람들해가 지는 것을  때도있다그는 얼마전에 자전거를 잃어버렸고급하게 중고로 자전거를 새로 샀다거울도 중고로 산 것이다. 


2023년 2월 10일 금요일

눈보라

 어젯밤 책에 물을 엎질렀다. 한장 한장 수건으로 눌러 닦아 냉동실에 넣어두고 나왔다. 견디기 어려운 시기다. 점심 시간 끝나자마자 잠이 쏟아진다. 해방된 인민들처럼.

 너는 오열을 넘어서자고... 그뿐으로는 못한다, 그렇게 말해도... 결코 타협하지 않는 불파의 오열담당관을 반드시 데리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타협하지 않는... 죽어도 절대로 않는?

 우는 일을 사명으로 하는 그것은, 왜 울고 있어 여기서?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것을 왜 묻고 있어? 왜 그것을 묻고 있어? 하는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감히 이르기를 없어져야 할 것들, 그런 것이 있다는 듯 울어서 없애버리겠다는 듯.

 지금 말 아는 이 모두가 명운을 걸고 반전시켜야 할, 진실로 심각하며 화급한 우리의 맘에 대해, 낙담에 대해 네가 말하려 한다고? 쟤를 데리고서? 그것은 주제를 넘어서려는 짓이야. 그릇의 모양에 대하여 말하려니 무늬에 대하여 말하려니, 한 개의 목구멍을 넘어오려는 것이 둘 되고 천 되고 억 되는데

 두 개의 눈구멍을 넘어오려는 것이... 있어야 할 것들이 있게, 여기로 그것들은 넘어져온다. 맘들이, 야 정신 좀 차려봐라 무슨 소리니? 너는 산 자들의 어깨를 붙들고 있다. 놓치고 있다. 붙들고 있다. 차례로, 차례로, 우리는 얼어붙고 있다. 많은 영혼들이 서로 부딪고 으스러지는 것이 들린다. 입 속에서 많고 쓸모없는 영혼들이. 쓸모없는 세상에서 아무 쓸모도 없는 영혼들이, 파도가 흔드는 모래알이고 가루다. 많은 영혼들이 서로 부딪고 으스러지는 것을 듣는다. 네가 어깨를 짚으며 짚으며 입에다 처넣어준 것들이

 담당관들이
 얼어붙은 우리가 기대어지면서, 망치는 이빨들을 향해 휘둘리고
 펴지고 있다.

 저것은 발목까지 젖는 해변이다, 검은 해빙이다. 이 모든 일들은 출발에 불과하다. 우리는 꽤 길게 고통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고통받아온 그만큼이다.
 이전에 기대할 것이 없으므로 이후를 향해 녹아내리고 있는
 이들이 편에 선다면, 이들이 편에 선다면, 두렵지 않네, 두 번 말하지 않겠다, 두렵지 않네. 흐흐흐... 흐흐...

‘눈보라’ 출판사는 시집만 낸다. 축시를 받았다.

2023년 2월 8일 수요일

유령의 생각

내가 앉았는데 의자의 다리가 부러졌다. 나는 한숨이 나왔는데, 집이 추워서 하얀 입김이 보였다. 의자는 오래된 것이었다. 한번 부러진 의자는 신뢰할 수 없다. 약한 부분이 생기게 된 의자는 다음번에 또 부러질 수도 있다. 인간이 받는 상처와 비슷한 것이다. 언제고 다시 떠오를 수 있다. 게다가 집에는 목공용 풀밖에 없었다. 목공용 풀로는 의자의 다리를 붙일 수 없다. 충분히 신뢰할 수 없으므로 의자는 이제 못 쓰게 되었다. 인간의 몸과 맞대고 살았으니만큼 의자로서는 굴욕적인 일이었을 수도 있다. 의자가 자신의 다리를 부러뜨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나 때문에 부러진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나는 生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자 다리가 부러진 것이 나로 인해서라고는, 세상에 적힐 수 없다. 내 생전의 이름은 지영이고 지금은 흔히들 말하는 유령이 되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그 의자 또한 生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규격에 맞춰 나무의 몸을 얼기설기 엮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유령이지만 이 집은 내 것이다. 유령의 집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호호. 의자가 부러진 것은 그러니 풍화 작용 때문이었을 것이다. 뭐, 나에게 300그램 정도는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 무게가 의자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셈이라도, 그건 내 탓이라고 할 수 없다. 따뜻한 체온도 있지만 나는 모든 것에 비껴나가는 生이다. 그저 다른 사람 눈엔 하얀 입김만 보인다는 것 말고는, 별것이 없는. 한번 부러진 의자를 신뢰할 수 없듯이 나 같이 生이 없는 사람의 말도 신뢰해선 안 된다. 히히. 얼마 만에 밖으로 나가는 거였더라? 50년……. 아니 200년……. 바깥에는 날아다니는 과거의 승용차와 닮은 것들이 있었다. 인간의 기술이 발전한 듯했다. 인간은 나날이 발전한다. 그 인간들은 버려진 구역들을 다시 개발하고, 그것을 위해 파견된 인간들에게 겁을 주는 것도, 쫓아내기 위해서라곤 하지만, 흐흐……. 조금 슬픈 일이다. 나는 내 자신의 존재를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生이 아닌 다른 길에서 살아나간다는 일이 어리석게도 조금 부끄럽다. 나는 손가락질받기도 하는 유령이자 다른 살아 있는 인간들을 부러워하고, 그리워하고, 질시하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얀 입김을 제외하고 모습이 없다는 것은, 히히……. 날 인간으로 볼 수 없는 점이다. 모습을 가진 인간들은 모습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잘 모른다. 무정형으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를 몰라. 그러니 나와 같이 되지는, 모습을 갖고서도 生을 정의하지 못하고, 마치 늙어 죽으면 다시 어린 유생의 몸으로 되돌아간다고 하는 해마를 종교로 만들어 믿는 듯이 애매하게 굴다간……. 사실 난 그런 인간들이 부러운 건데. 내 죽기 전의 성격이 그랬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애매하게 구는 것. 아까 부러진 의자처럼 나도 죽은 몸으로 이 세상과 계속 맞대고 있었어야 했다. 아, 이 세상에다 선 하나만 긋고 싶어라. 도시는 해일에 덮이고 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또 생길지도 몰라. 그걸 내가 그은 선이라고 해주길 바라.

2023년 2월 4일 토요일

초월일기 5

* 2023년 2월 2일

소공포를 만났다. 소공포는 

말이 많았다. 그 점이 놀라웠다. 소공포가 말이 많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소공포는 
나와 같은 유형의 인간이었다. 이 유형이 어떤 유형인지는 비밀이다. 정확히는, 차마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유형의 사람들은 이 유형의 사람을 만날 때까지 자신이 어떤 유형인지를 철저하게 숨기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그래서 나도 소공포도 우리가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만 알고 있기로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와 반대되는 유형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말 거야 

라고 우리는 말하지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우리가 오리온 초코파이 정 CF에 나오는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오리온 초코파이 정 CF에 나오는 노래(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를 속으로 열창하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소공포와 한참 폭풍의 언덕 같은 수다를 떨다 목이 말라 음료를 시키기 위해 카운터로 갔을 때는 

오필리어가 왔고 우리는 자리를 옮겼다. 맥줏집으로. 오필리어는 소공포의 대각선에 앉아, 이전에는 본 적 없던 수줍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얕은 기침을 여러 번 하며 말했다.

나 코로나 아니야

나는 오필리어의 말을 믿었다. 오필리어가 그 말을 하기 전까진. 하지만 오필리어가 그 말을 하자마자 생각했다. 코로난가? 그러나 오필리어가 계속 수줍어했으므로 나는 코로난가? 묻는 대신 넌지시 말했다. 

하하. 아닌 거 알아. 하지만 3일 뒤 걸린다면 네 탓할거야. 

내 조상 중에는 분명 악마가 있을 것이다. 

소공포는 내게 밥을 샀고 
오필리어는 나와 소공포에게 칵테일을 샀다. 
나는 소공포와 오필리어를 끌고 코인노래방에 갔다. 

그리고 열창
열창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소공포가 준 엽서를 읽었다. 그 엽서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눈썰매장에서 구입한 엽서였는데, 새하얀 엽서 위에 작성된 글씨체(글씨 아니다. 글씨체다.)를 보자마자 생각했다. 중학생이다! 

나도 중학생이었으므로 나는 바로 소공포에게 카톡을 했다. 소공포는 말했다. 

반갑다
친구야...... * 


* 2023년 2월 3일

요괴를 만났다.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요괴가 말했다. 보고 싶었어... 나는 대답하는 대신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에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 


* 2023년 2월 2일

소공포를 만나기 전에는 별꿈밤을 만났다. 별꿈밤에게 나는 말했다. 이제 저는 말을 정말로 조심하고 싶어요. 어떤 말은 가슴에 남아 평생 그 사람을 못살게 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뭣도 모를 때 말로 상처 준 사람들에게 모두 사과하고 싶어요. 별꿈밤과 만났을 때, 별꿈밤은 내게 동그란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티라미슈를 건넸다. 그 통에는 <김해솔>이라는 스티커가 붙어있었는데, 이건 별꿈밤이 재작년에 가장 좋아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스티커다. *


* 2023년 2월 3일

별꿈밤에게 받은 티라미슈를 냉장고에 넣지 않고 잠든 바람에 다 녹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티라미슈통을 냉장고에 넣고 현관을 나서면서 생각했다. 아무렇지도 않군, 그리고 그 생각을 하자마자 알았다. 아무렇지도 않지가 않군. 그래서 별꿈밤에게 전화를 걸었다. *


* 2023년 2월 4일

요괴가 내게 선물해준 백팩의 색은 파란색이다. 원숭이가 달려있다. 나는 이 가방에 허쉬가 준 슬램덩크 키링과 토리가 준 센과 치히로의 열쇠 고리를 달았다. 그리고 지금 이 일기를 쓴다. 어제, 소공포와 오필리어와 있을 때 나는 말했다. 나는... 모든 예술작품들을 통틀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영향 받는 것 같아. 난 너무 나약하고. 사람들 없이는 살 수가 없어. 그걸 알아. 


* 2023년 2월 3일

독해왕을 만났다. 독해왕과 헤어진 뒤에는 이런 일기를 썼다. 타인의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까닭은 자기 자신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기 자신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는 그 욕구가 타인의 욕구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다, 

생각했다. 나는 그랬다.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2023년 2월 2일 목요일

노래하는 소녀

애쓰던 사람은 이제 없고 저마다 방 안에 누워 휴대폰을 보거나 잠 속을 깊게 유영했다. 애쓰던 사람이 이제 없다는 사실은 이제 사람들의 머릿속에 없는 듯했다. 사람들은 어색한 순간에 웃었다. 그 웃음은 그 소녀가 슬퍼했던 것이다. 잠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이 잠을 자지 못하는 그 시간에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린 아이들은 꾸벅 졸았다. 내가 아는 사람은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의 잠을 깨우지 않는다는 것으로 무언가를 써보고 싶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지 못하거나 깊게 잠들지 못한다. 그것은 애쓰지 않아도 되는 사실이다. 애를 쓴다는 것은 일정 부분 소진한다는 것이고, 방 안에 누워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은 그 일을 하면서. 누워 있는 사람의 머리 옆에 있는 그 휴대폰에서 노래가 나온다. 어제 산 책은 읽기에 어렵지 않다소설이라기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나 혹은 건물에 가깝다그런데 사람들은 이미지만으로는 건물을 잘 짓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의 어떤 부분을 줄글이나 산문으로 불렀는데, 그러면 혼자서 애를 쓰게 됐기 때문이다애쓰던 사람이 이제 없는 지금, 나는 에고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에고는 사라진 자아의 흔적이다. 정확히는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고 사실은 뭔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리듬이나 혹은 폐건물. 여기는 마천루가 높이 솟은 광경이 되고 싶어 한다. 거기에는 근미래 기술이 쓰이며(스팀펑크), 시점은 과거의 것이다. 애쓰던 사람이 모두 사라진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커피를 마시는 것을 보며 당신은 한순간 다시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 놀라울 정도로 그 사람들은 미형이었고 그 사실이 왠지 어색했다. 내 시점은 애쓰던 사람이 사라지기 전의 것이어서. 이미 그렇게 애쓰던 사람이 사라졌는데도. 미래에 폐허로 발견되는 기계 도시 문명처럼 나는 여전히 작동한다. 나는 그리 애쓰던 사람이 아닌데도. 애쓰던 사람들이 모두 잠들었다는 사실은 나를 잔잔한 쾌락에 젖게 한다. 다른 사람들도 이 평화로움 안에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노래는 다른 사람들의 잠자는 일이 완성시킨다. 헤어지고 나서 자동차에서 울리는 배기음처럼. 애쓰던 사람들이.

2023년 2월 1일 수요일

23년 1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1 (56)
―――
~같은 것 :1 (2)


이달의 총격려금

5,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5일 / 5,000원 ― 같은것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같은 것 [入] ☞ 5,000원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3,602원 (0원 + 282,987원 + 615원)

3





카페에 앉아 있다. 커피잔은 비어있다. 선풍기가 정면에 있는 기둥에 붙어있고 덜덜덜 소리를 내며 회전중이다. 출입문이 없다. 이곳 가게들은 대부분 출입문이 없거나 활짝 열려 있다. 이곳에 앉아 카페 도로를 쳐다볼 있다. 바깥은 뜨거워 보인다. 이곳에서 열기를 느낄 있다. 선풍기가 앞에 머무르지 않을 때면 열기를 느낄 있는데, 그것이 지속되기 전에 선풍기가 앞을 지나가기 때문에 덥다고 말할 수는 없다. 커피잔은 시간도 이전에 비워졌다. 먹다 남은 치즈케익 조각이 그대로 놓여있다. 그것을 거의 잊고 있었는데, 커피잔을 생각하면서 문득 생각이 것이다. 그것에는 건포도가 들어있다. 치즈케익에 건포도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스팸 문자가 왔다. 나를 이경미라고 부르며 타이어 수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를 김재구라고 부르며 광고하는 문자가 며칠 전에도 왔고, 매일 빠짐없이 적도 있었다. 카페는 1985년에 오픈했다고 한다. 그렇게 알려지고 소개되어서인지 사람들이 많다. 아침을 먹고 곧장 이곳에 왔다. 왔을 때부터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테이블이 없다. 모자를 들고 왔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든다. 발코니에서 호수의 색과 이곳에서 보는 호수의 색이 완전히 다르다. 이곳에서 보니 회색에 가깝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카페를 벗어나고 있다. 이곳에서 어두컴컴해보였던 그들의 얼굴이 카페 앞에 있자 매우 밝게 보인다. 27도다. 카페에 11시가 되기 전에 같다. 모자를 가져왔어야 한다. 카페 앞에 앉은 커플은 각자의 시간에 몰두하고 있다. 남자는 테이블 위로 얼굴을 숙이고 어딘가에 열중하고 있고 여자는 옆으로 돌아앉아 무얼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단단한, 짚으로 엮은 듯한 가방을 자신의 의자 옆에 기대어 놓았다. 가방은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는, 마치 가방이라기보다 가구처럼 집에 놓아두고 물건을 담는 바스켓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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