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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4일 월요일

월요일 아침

월요일 아침이 제일 팍팍하다. 모름지기 컴퓨터도 전원 꺼뒀다가 켜면 정신 차리는 데 오래 걸린다. 사람이라고 별로 다를 바 없다. 윤회와 같은 순환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풀면, 한 번 죽었다가 되살아나는 것이나 진배없다. 말하자면 나는 지금 아기처럼 약해져 있는 것이다... 응애. 하지만 진실된 아기라면 커피 따위 탐하면 안 된다. 나는 기계가 내려준 카페인 국물을 갈망한다. 그것을 꿀꺽 들이삼키면, 머잖아 내 전신의 피는 회전을 가속하기 시작하고, 불현듯 나는 과거생의 기억을 모조리 되찾게 되며, 삽시간에 몰락한 아저씨로 삭아버리고 만다. 이것이야말로 내 존재의 자기동일성, 생활의 연속성을 보장해주는 감사한 메커니즘이다...
그렇지만 프로 아저씨에게도 사무실은 삶을 영위하기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끝없는 고난과 절망의 판도를 뒤집어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이붓기 위하여, 사무실 동료에게 DULTON사의 알루미늄 바인더 하나씩 장만하자고 꼬셨다. 물론 사무실은 본디 철저히 기능주의적 공간이다. 판때기가 종이만 받쳐주면 되지, 무슨 재질이 철일 필요가 있냐... 합판도 감지덕지다. 아니 그렇게 협소하게 생각하지 말고 이 사람아, 받침판이 고급스러우면 똑같은 종이도 더 있어 보이는 거야! 어차피 비품 구매 및 관리는 그의 업무이므로 나는 입만 놀려대면 그만이다. 과연 그는 나의 팍팍한 직장생활에 한 줄기 설렘을 보태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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