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0일 토요일

건물과 구조

 

건물은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다. 건물 한가운데 홀이 있고, 홀이 지붕까지 향하고, 지붕은 유리 같은 , 비닐하우스에 쓰이는 비닐 같은 걸로 덮여있다. 홀을 둘러싸고 방들이 있다. 방들의 창문은 쪽으로 있다. 그래서 홀에서 나는 모든 소리는 공간에 울려 퍼지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창문을 닫았는데도 홀에서 나는 모든 대화 소리가 들린다. 홀에서 사람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단체로 듯하고, 단체가 아니면 사람이 같이 듯하다. 나는 왠지 주인에게 속은 듯한 기분으로, 그가 나에게 어딘가를 추천해 주고, 그곳에 갔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돌아왔는데, 왜냐하면 속은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니 다른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고, 나는 배가 아프다고 해서 아침을 먹고 지금까지, 저녁까지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방에 앉아서, 사람들이 식사하면서 하는 소리, 주인이 그들에게 아첨하는 소리(나에게는 그렇게 들린다) 듣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만약 프랑스 사람들이 모로코를 여행하면서 프랑스어로 말한다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왜냐하면 자신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프랑스어로 말하는 모습을 본다면, 그들의 백인성, 하지만 그건 사실 그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지, 피부가 하얀 것이 백인이 아니다, 그들의 백인성을 닮고 그들처럼 되려고 하고 그들처럼 말하고 싶어 하고, 그렇게 백인성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고, 백인성, 너무 당연한 듯이 자신의 식민지였던 곳에 가서 이곳은 저렴하구나 하면서 프랑스어를 하면서 프랑스에서 하듯이 바게트를 먹고, 왜냐하면 자신들의 식민지였으니까, 그곳에도 내가 매일 먹는 바게트가 있겠지, 그곳에도 내가 좋아하는 와인이 있겠지, 있을 것이다,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하는, 너희들의 입맛에 맞춰 생계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모든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는, 모로코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배워야 하고, 나는 모로코에 가서 자랑스러운 모국의 언어를 것이며, 바게트를 먹을 것이고 저녁에는 와인을 마실 것이며, 포크와 나이프로 식사를 것이며, 모로코 사람의 농담에 재미있는 사람이군 하며 웃을 것이며, 그를 친절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좋은 리뷰를 남길 것이며, 모든 것이 당연하게 생각된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다.


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수발자본주의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는 뜻하지 않은 원고청탁을 받고 쓴 것이었다. 매호 하나의 주제를 정해 다양한 필자들, 주로는 젊은 연구자들로부터 원고를 받는 잡지였다. 그 호의 주제는 ‘대학’이었다. 편집자님은 내가 블로그에다 써 올린 어떤 부주의한 글을 재밌게 읽으신 모양이었다. 교정공으로서 교수들의 한심스런 원고에 대해 한탄하며 쓴 얘기를... 잡지에 나 같은 사람의 잡문은 격에 맞지 않는 거 아닌가도 싶고, 노동 외 뭔가 원고를 써야 한다는 것이 또 다른 괴롬이기도 하고... 그러나 편집자님께도 나름의 공감과 결단이 있으셨겠거니... 나 자신의 부주의함에 대한 책임으로, 한편으로는 출판산업의 가려진 하청노동자로서 우리 웬수 같은 교수님들에 대해 성토할 공적인 기회가 왔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유수의 출판사로부터 지급되는 고료를 빨아먹을 기회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일념으로, 꾸역꾸역 썼다. 썼는데, 쓴다는 일이 늘 그렇지만 아무리 뭘 써도 불만족스럽기가 짝이 없고, 왜 더 낫게 쓰지 못했는지 후회가 남고, 뭐가 정리 정돈이 되기는커녕 내면 낼수록 더 내고 싶은 화만이, 더 쓰지 못한 아쉬움만이 남는 것이다. 나는 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다 하지 못한 얘기가 뭔가?

내가 못다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지금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본다. 내 친구들은 지금 Y랜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거기 얘기는 잊을 만하면 나온다. 웃기는 데라는 거다. 모 지방도시에 있는 Y랜드... 나도 이야기에 끼어든다. 나는 거기 실제로 가봤다. 정말 재밌는... 콘텐츠가 많은 곳이다. 특히 외적 몰아내기 체험이 재밌었다. 심청이 체험도 진실로 기가 막혔는데... 없어지기 전에 다녀와야 할 곳으로 보여 다녀온 지가 벌써 6년이 지났고, 아직도 안 없어졌다는 게 대단하다. 따지자면 지나간 때의 유행이었을 Y랜드는 이제 진정한 밈으로, 웃음거리로 남았다. 안쓰러운 우리의 지방 도시들이 스스로 관광지화 외에는 활로가 없다고 여기는 상황에서 기획력과 집행력이 태부족한 상태로 어떻게든 돈 버는 용도로만 돈을 쓰려다 보니 그런 쓰레기-관광지가 자꾸만 만들어지고, 그런 실패작이 지나간 뒤 빈자리를 채우는 ‘검증된’ 유행들―물 있는 데마다 흔들다리, 산 있는 데마다 케이블카, 무작정 둘레길, 닥치고 데크, 이 악물고 축제, 눈물 나는 마스코트... 그런 것들이 꼭 복제되는 밈 모양으로 지방 구석구석을 채워 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너무 즐겁고 팔짝 뛰겠다. 왜 안 즐겁겠나? 유행을 읽어라! 더 이상 관광지에 아무 글자도 쓰지 말고 아무 뜻도 담지 마라! 관광객 모두의 손손마다 들린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남겨짐으로써, 그 구조물들은 그 자체로 글자가 되어야 한다. 이 또한 언젠가 웃음거리가 될 것인가? 이것은 마치 같은 것을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틀리고 마는 저자들 같고, 내 눈 사이로 빠져나가 인쇄되어 버린 오자들 같다. 이미 인쇄되어 버린 것들을 보며 나는 웃음을 감출 수가 없다. 그냥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너무 좋죠. 나는 그것들을 더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다! 더! 더 만들어라! 더! 빼곡하게 채워라!

우리 대가리만 남은 좌파의 저작물들(존경과 감사, 안쓰러움을 담아)의 제목에도 돌고 도는 유행이 있다.
  1. ‘선언’ 앞에다가 땡땡 붙이기 → 욕심쟁이 스타일
  2. ‘사회주의’ 앞뒤에다가 땡땡 붙이기 → 세미나 스타일
  3. ‘공산주의’ 앞에다가 땡땡 붙이기 → 도발적인 스타일
  4. ‘자본주의’ 앞뒤에다가 땡땡 붙이기 → 조심스런 스타일
나 같은 필부도 못할 거 없으므로, 조심스럽게 ‘수발자본주의’를 제시해 본다. 어떨까? 모든 것에는 악몽 같은 버전이 있다. 수발자본주의는 이른바 돌봄선언의 악몽 같은(=현실의) 버전이다. 돌봄 대신 수발이다. 자본이 세계의 지배적인 동인인 한, 90% 인간의 삶은 그저 위쪽 10% 정도 인간의 수발을 들기 위한 것으로 격하된다. 자본이 그대로 힘 그 자체를 상징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사회구조도 힘의 논리를 따라 상향 수발식으로 재편된다. 노동자가 자본가를, 남반구가 북반구를, 여성이 남성을, 약자가 강자를, 종들이, 여전히 양반들을 수발 들어야 한다는 식이다. 지방의 관광지화도 그 일환이다. 지방은 이제 그냥 수도권에서 관광하러 가는 곳일 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은 관광부로 전락한다. 왜 관광하는가? 누가 관광하는가? 어떻게 관광하는가? 수발 드는 존재로 격하된 자신들을 잊기 위해서... 내가 그러했듯. 나는 그냥 평생 원청 수발 들어주는 사람이다. 원청은 교수 수발 들어주고... 노동이 쟁취한 권리들을 하나둘 무장해제시켜 온 과정을 거치며, 이제 산업은 원하청과 특수고용, 비정규직의 형태로 정렬되어 그 자체로 사회적 연쇄수발의 형상을 띠고 있다. 이제 경영활동이란 노동력을 뽑아내면서도 노동권을 우회하는 기발한 술수의 고안에 다름 아니게 되었고,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수발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 곧 자유와 해방으로 취급받기에 이르렀다. 수발 그 자체인 산업에 발맞춰 수발 스트레스를 다루어줄 산업들, 나 대신 진정한 인생을 살아줄 영웅들을 우리는 찾아 헤맨다. 수많은 종류의 셀렙들이 인간의 이상으로 부상한다. 그들이 우리의 수발을 들어주는 듯이 우리가 그들의 수발을 들어주고... 기업 광고 부서의 수발을 들어주고... 조회수를 따라 기업으로부터 예산을 분배받고... 이건 문자 그대로 수발 중독이다. 우그러지는 중인 대의민주주의다. 착취를 넘어 착즙이다. 착즙이 아니라 복수가 필요하다. 수발이 아니라 돌봄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에겐 필요하다. 돌봄으로서의 복수, 복수로서의 돌봄이. 그것은 무엇인가? 심청이 정신...?

2024년 3월 25일 월요일

말하는 책

 


이 책은 아는 사람이 준 책이다. 아니다, 아는 사람이 나에게 준 책이 아니라, 아는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준 책을 빌리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혼자 출판사 등록을 하고 혼자 책을 썼다. 그런 경우 가운데 어찌어찌 잘 알려지게 되는 책도 있지만, 이 책은 잘 알려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게 된 그런 책이다. 나는 갑자기 이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왜냐하면 이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자마자, 첫 문장을 읽자마자 그 사람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까 몇 번 듣지 않은 목소리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를 생각하지 않고 책을 읽기가 어려웠다. 이 책이 그 사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그 사람을 판단하려고 한 건 아니다. 그냥 궁금했고, 억지로 읽을 생각도 없고, 하지만 책을 읽기가 어려운 건 책이 말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책과 너무 가까운 기분이 든다. 하지만 다시 말하면 그 책에 쓰인 모든 것을 내 일처럼 읽을 수 있다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언젠가 시간이 지난 뒤에 집에 있는 일요일 같은 날 문득 다시 읽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2024년 3월 24일 일요일

아침 같은 것

꿈에서
꿈으로만 남아 있는
다수의 미완성 물체를 완성했다
예를 들면 귤 하나를
귤 더미로 쌓아올렸다
희미한 귤빛 하나가
눈부신 귤빛 더미가 되어
무엇이든 밟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멈춰 세웠다
꿈에서 정신을 차리면
눈꺼풀 아래가 깜깜한데
그 안에서 빛을 보았다는 게
꿈의 거짓말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
머릿속에서 굴러다니던
귤 하나
눈앞에서 딱
정지했다
여기서부터 다시
귤 더미를 쌓을 차례라고
눈에 조금 묻어 있던
꿈이 말해주었다
이제 일어나서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2024년 3월 19일 화요일

교정의 골짜기

이 개새끼들은 대체 뭐가 문제냐? 목줄을 채우고 싶은 두 가지 유형의 쓰는 이가 있다. 하나는 ‘나는 절대 안 틀려’다. 무조건 자신이 맞는다고 아득바득 우긴다. 어디서 뭘 잘못 보고 온 게 있는지, 어떤 감각의 혼란이 있는 건지... 아니면 이상한 신념이 있는지... 하여튼 절대적으로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 틀리지 않는다는 식이다. 물론 그는 틀린다. 당연하다. 틀리지 않는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이런 일은 꿈에도 없으며 결단코 없다). 이 경우 뭔가를 틀린다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자신은 틀리지 않는다는 그의 확신, 아득바득 우김이 나를 돌게 만든다. 뭐가 됐든 일단 우기고 보는 그 자세가.

다른 하나는 ‘나는 틀려도 돼’다. 그는 자신이 무조건 틀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걸 고쳐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거의 아무것도 터치하지 않‘았’다. 그의 원고는 하나의 불모지다. 그는 자신의 원고를 돌보지 않고 떠나간다. 애초에 돌본 적도 없다. 그의 생각은 이렇다: 돌봐야 하는 녀석은 따로 있다. 혹시 그게 나냐? 그는 죽이고 싶은 땅주인처럼 돌아와 검수에 나선다. 이 경우에도 뭔가 틀린다는 건 전혀 문제가 아니다. 똥무더기를 줘 놓고 열매만을, 오직 자신의 열매만을 기대하는 그 무책임함이 나를 돌게 만든다. 쓰기에 가담 중인 우리 모두가 이렇듯 골짜기의 들개들과도 같다.

2024년 3월 13일 수요일

등장인물

 


지난주에 그 영화를 다시 봤다.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본 영화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어떤 인물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보았다. 그런 식으로 계속 다른 인물을 눈여겨보면서, 영화를 끊임없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 속의 모든 사람이 다 되어볼 때까지 말이다. 물론 그러려면 영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되어본 뒤에는 A길로 돌아갈 수도 있고 B길로 돌아갈 수도 있다. A길은 도로와 가까워서 차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건물의 열린 창문들로는 울리는 전화벨을 들을 수 있다. 걷다 보면 그곳에 나무가 많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고, 정신을 차려보면 그곳이 여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걷다 보면 매연에 숨이 막힐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 사람은 이름은…… 아마도 상자와 비슷한 종류의 이름이었다. 아무튼 그 이름을 듣고 병을 담는 상자가 생각난 건 사실이다. B길은 조금 더 외진 곳에 있다. 그곳으로 가면 아무도 만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 B길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 B길을 지양하기도 한다.

2024년 3월 11일 월요일

벽장 속의 드래곤

어젯 밤에는 벽장을 잠근 자물쇠가 달그락거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잊을 만하면 있는 일인데, 가끔은 며칠 동안 저러기도 한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영원히 벽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이야기하려 정리해보았지만 마음처럼 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요즘은 새로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이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겨우 퇴근 후 몇 시간을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찾은 것도 입사 후 반 년이 지나서였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모처럼 돌려받은, 아니면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생에 처음으로 얻은 여유를 도려내어 방 안의 벽장에 대해 정리하기 위해 쓰기로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제 그 일은 영원보다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번에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매번 조금씩 가까워졌는데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지금은 손에 잡힐 것 같다. 그 모든 이야기가.

2024년 3월 9일 토요일

가속장치 같은 것

안개 속을 걷듯이, 안개 속이 미어지듯이,
그러다 미어터진 안개 조각이 내
발밑에 툭 떨어져 있듯이, 그건 누가
흘리고 간 검은 증기……
그러나 내 마음은 가속, 지금 말고 이따가 와
터진 자루를 꿰매야 하니까
얼어붙은 연못에도 양떼가 모이니까
죽은 자의 부활도 믿어버리는 마음으로
내 어금니를 내가 깨뜨린다
새벽의 검은 수박을 사서
검은 모범 택시를 잡아 탄다
나는 달린다 또
달린다 내 마음은 가속,
지금 말고도 작고 미묘한 일들은 계속
일어나는데 너는 모르겠다,
모르겠단 말만 백 번
하는 사이에 이것도 모르겠다면
앞으로는 알아볼 수도 있는 일을 할게, 계속해서
알아봐주길 바라며 내 마음은 가속,
지금 말고 이따가 와
아무리 해도 자루가 터지니까
여기선 잦은 안개 조심
택시에서 내릴 때
수박을 떨어뜨리고 마니까
조심하지 않으면 산산조각나고
바닥에 검은 물이 흥건하니까
한편 안개는 좋겠다
네가 좋을지도 모르겠다
안개가 다 쏟아지면
나는 빈 자루를 갖고 논다
그때쯤 너를 부를게
네가 올 테니까,
그러니까 이따가 와
그러면 네가 올 것이다

2024년 3월 7일 목요일

무명용사

애초 혼란한 원고를 준 녀석에게 교정을 보시라고 뭘 줘 봤댔자 혼란한 교정을 해 올 뿐이다. 대체로 봤을 때 제대로 고칠 능력이 있으면 애초에 그렇게 쓰지도 않는다. 사장은 ‘그냥 교수가 해 달라는 대로만 하라’ 하지만, 그런 것은 절대 좌시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 나는 대체 뭐 하러 있나? 오늘은 옳은 로서를 틀린 로써로 죄 고치라 표시해 놓은 끼새수교 때문에 위가 쓰리다. 자신감 있으셔서 좋으시겠어요... 나는 위장에 빵꾸가 나려 하고 있는데... 제발 좀... 그런 거는 내가 할 테니까... 사전 한 번만 찾아보면 다 아는 그런 거를 왜... 왜 모르면서 아는 척하니 왜... 제발... 너네는... 지성의 담지자가 아니고... 이런 거는 그냥 아가리 쌉치고 있어... 제발... ㅅㅄㄲ들 진짜... 그만... 단도 들고 찾아가기 전에...

뭐 그런 험한 생각을 속으로만 하며, 도대체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떤 요소들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걸까, 나는 나의 직업적 특성상 증오해 마지않는 그들의 얼굴(신기하게도 꼭 얼굴들이 어디 내걸려 있는데)을 들여다보며 단서를 찾아보려 하지만, 그저 보통 사람의 얼굴이 있을 뿐, 사진으로 알 수 있는 건 없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뛰어난 학자이며 좋은 이웃사람일지 모른다. 아주 개차반 같은 녀석이라고 욕하는 글도 가끔 찾지마는, 어디 다 그렇다고 할 수야 있겠는가. 문제는 분명 그들의 존재양식에, 세계에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안 된다. 내가 견딜 수 없다. 그들도 피해자입니다! 암요! 이건 다 그들이 해 달라는 대로 다 해 주지 않으려는 내 잘못이다. 그렇다. 내 탓이다!

내가 입사하기 전, 어떤 교수 녀석이 □□□이라고 틀리게 쓰려는 걸 끝까지 □○□으로 고치려다 대판 싸우고 퇴사한 교정공이 한 명 있었다고 들었다. 그는 단 하나의 자음, ㅇ을 ㄱ으로 옳게 고치기 위해 자신의 거의 모든 것을, 우리 같은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노동 그 자체를 걸었다. 부러질지언정 구부러지지 않은 그의 불굴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로써와 로서 따위에서 물러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그의 얼굴은 물론이요 이름도 모르지만 그는 오늘 무명용사 되어 내 안에 살아 숨쉬고 있다. 잘못된 교정을 다시 옳게 되돌리며, 나는 그 무명용사가 왜 교수와 대판 싸웠는지 이해한다. 내가 겪은 일인 것처럼 이해한다. 그것은 글자의 옳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전혀 아니다.

2024년 3월 5일 화요일

우리가 사는 방식 같은 것

너는 사자를 기다리는데
사자를 기다려서
사슴이 와도
사슴을 보내고 사자를 기다린다
나는 사자를 기다리는데
사자를 기다려서
문 앞에 사슴을 놓고
사자를 기다린다
높은 어둠 속에서는
잘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희박해진다
옷에는 얼룩덜룩
낮에 본 빛과 사랑을 묻히고 있다
검은 종이에
검은 글씨로
그것들에 대해 쓴다
아무에게도 안 보일 테니까
아무렇게나 쓴다
무언가 열심히 했는데
아무것도 안 한 듯한 주말처럼 시간이 간다
너는 그동안 밝게 빛나는 전구처럼
공중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다
그 뒤로 너를 보는 일 앞에는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네가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너는 흔들린다
많이 기다려서 예쁘네
서러워서 빛나네
내가 고함을 지르자
너는 깨져버린다
사자가 왔을 때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고
사자는 날카롭게 흩어진
죽은 너를 밟아버렸고
나는 도망가버린 상태였다
우리라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라고 네가 말했다
나는 부끄러워졌다

2024년 3월 3일 일요일

교외 식당 같은 것

구슬픈 음악이 나오는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을 먹는다 벽에는
환호하는 손흥민과 박태환의 대형 사진이 붙어 있다
진열장엔 온갖 트로피와 인삼주…
새벽 세 시
우리 중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카운터의 박하사탕 그릇 옆에는
세라믹 소재의 리트리버 가족이 놓여 있다
은은한 빛을 내는 보라색 자수정 램프가
마음을 끌어당기고 있다
우리 테이블 번호는 25번 그러나
테이블이 스물다섯 개나 있는 식당은 아니다
사람들은 숟가락을
잔을 들었다 놨다
하면서 가끔 한숨 쉰다
이제 나는 이들 중 한 명이고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도
감히 못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조금 자신이 없을 뿐
우리는 황태해장국을 먹는다
서글프고 낯선 그러나
우리 중 누군가는
알 수도 있는 음악을 들으면서
그러다 절정에서 갑자기
모두의 숨소리가 멎는다
지금 뭐가 여길 지나간 것처럼
서로 눈을 마주친다
주인이 잠깐 홀에서 사라진 사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좋다
손흥민과 박태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사이에 뭔가

2024년 3월 1일 금요일

국립현대미술관 앞을 지나가는 개 같은 것

국립현대미술관 앞
을 지나가는
떠돌이 개

개에게는 미술관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들어갈 수 없는 상자거나
멀리 돌아가게 만드는 벽이겠지만
사람들은 ‘미술관 앞을 지나가는 개’
의 사진을 찍는다
귀여우니까
너무 보기 좋으니까

현대미술?
지나가는 개랑 저
안에 있는 것들이랑
남몰래 겨루는 전쟁술

개는 최소한
사람들의 지루함에 길을 내준다
즐거움을 보여준다
저 개는 어디에서 나타났을까?
궁금하게 만든다

미술을 전혀 모르는 개
미술이 전혀 모르는 개
그러나 미술관 앞을 지나가는 개는
미술관에 연동되어 버린다

일군의 행인들이 지나가고
아까와는 다른 이들이
개의 사진을 찍는다
개의 삶에 접근하려고

요 귀여운 댕댕이 사진을
해시태그 미술관
해시태그 댕댕
SNS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사진 속의 개는
미술관 앞을 지나가면서도
미술관 앞에 계속 있다

‘계속 있다’는 게
계속되는 상황 속의 개
참고로 이곳에서는
《개를 위한 미술관》(2020)
이라는 전시를 연 적이 있다

이 개는 아마도
전시를 본 적이 없을 것이고
사실 미술관이 정말로 모든 것을
위할 수는 없지
않나?
웃으며
사진을 찍으며
사람들은 받아들인다

개를 아끼는 동시에
개를 멀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고 말하고 싶은
국립기관의 너무 평범한 마음을

24년 2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9)
―――


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99,595원 (0원 + 299,177원 + 418원)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