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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10일 목요일

‘tㅣ발점’

“선생님은 말투 때문에 지적받은 적 없죠?”

“어조가 차분해서 그럴걸요.”

아이들의 경우도 그렇다. 보통 시끄럽다고 평가를 받는 경우는 목소리가 크거나 억양이 높았을 때 생긴다. (목소리가 큰 건 죄가 아니지만, 상대방이 불편하다는 걸 모르는 건 죄가 된다.) 정작 수다쟁이인 아이들은 나긋하고 조용하게 재잘거린다. 대부분 어디가서나 조용하다고 평가를 받을, 누구보다도 입을 쉬지 않고 떠드는 시환을 보면서 생각한다. 

말의 높낲이는 중요한 것 같다. 한선생은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지만 친절하게 말을 해서 그런가, 아니면 마지막에 웃어주면서 마무리해서 그런가, 이 부분에서는 누구도 컴플레인을 건 적이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는 욕할 일도 없고 말이다.

대부분 아이들이 욕을 배우면서 생기는 문제는 이 아이가 어떤 욕을 쓰는지 알려줘야 할 때다.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거친 걸 알지만 어떤 말을 하는지 모른다. 

“선생님. 어떤 욕을 썼는지 알려주세요. 제가 정확하게 알아야 아이에게 말을 할 수가 있지 않겠어요?”

“음. 어머님. 형진이는 상대방을 공격하는 욕을 하지 않고요. 본인이 입버릇처럼 붙은 거예요.”

“뭐라고 하던가요?”

이쯤 되면 한선생도 고민이 된다. 학부모한테 욕을 하는 건 이상하지 않나. 정확한 걸 정확하게 말하는 게 중요한가. 한선생은 나긋나긋한 어조로 전달한다.

“어머님. 형진이가 평소에 하는 말은 좆까, 씨발이에요.”

한선생은 아이에게도 욕의 어원이나 (예전 한선생의 국어 선생님이 그랬다. 그는 성기와 패륜에 대해 알려주었다.) 주변의 평가에 대해, 결국에는 타인이 보는 자신의 평가에 대해 알려주었다. 과연 아이는 이해했을까? 아이들이 배우는 신조어나 욕설의 경우, 매체에서 노출된 것이 대부분이다. 마냥 순진해보이는 애들이 ‘선생님, 아편 전쟁 때, 중국 조졌잖아요.’라는 표현을 쓰면 한선생은 “조졌다, 안 된다.”라고 빠르게 경고하는 것이다.

하루는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시원하게 욕을 하는 걸 보고 타 부모가 대차게 컴플레인을 건 적도 있다. 한선생은 신이 아니기에, 수업 이후의 행동까지는 터치할 수 없다. 다만 그 아이가 어떤 욕을 했는지 궁금하긴 하고, (아주 시원했다고 하던데) 한편으로는 그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에 난감함을 느낀다. 아이들은 대부분 “선생님, 그럼 몰래 해도 돼요? 화장실에 숨어서 하는 건 돼요?” 이 정도의 수준으로 답하기 때문이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런 느낌이긴 하지만, 답은 역시 “안 돼.”이다. 너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에서도 듣는 사람은 있단다.

아이들이 니 취팔러마를 쓰는 건 고전이다. 대부분 저열하다고, 말하면서 끊는다. 밥 먹었냐라는 뜻인데요 비실비실 웃으면 네가 왜 갑자기 밥 먹었냐고 중국어로 말하니, 다 안다, 라고 끊는다. 근데 여기서 시발점이 나온다면?

시발점에 대한 반응은 둘이 있다.

씨발과 비슷한 단어라 일부러 “쌤, 시발점이 뭐예요?” 묻는 경우.

씨발과 비슷한 발음인데 문제에 나와 동공이 흔들리며 뜻을 묻는 경우.

전자의 경우 “왜? 시발자동차 브랜드도 말하지?”라고 답해주고

후자의 경우 “와, 누구야. 선 넘네.”라고 답해준다. 

“아, 저는 그게 아니라,” 

당황하는 아이를 두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건 그래도 좋은 풍경처럼 느껴진다. 한선생은 첫출발을 하는 시점을 시발점이라고 말해주고, 우리나라 근대화의 시발점은 언제부터인지 수업한다. 그래서 우리의 시발점은, 

“쌤, 그만해요. 기분이 이상해요.”

한선생은 정확하게 발음한다. 

“시발점이 왜?” 

“뭔가 아슬아슬하게 발음이 씨와 시 사이란 말이에요.”

아이의 긴장하는 얼굴을 보고 한선생은 생각한다. 이런 아이들이 나중에는 어떤 욕을 쓰면서 지내게 되는 걸까. 

“선생님은 욕 써본 적 있으세요?”

한선생은 어떨 때는 있지, 라고 답하고 어떨 때는 없지, 라고 답한다. 아이들은 한선생의 욕하는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듯하다. 글쎄. 한선생의 욕의 시발점은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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