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5일 일요일

미워하는 마음 없이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주인공 자신만이 가진 단 하나의 불꽃같은 진실이 담긴 영화다. 어떤 것이 있을까. 아마도 성폭행을 당했지만 신고하지 않고 더는 떠들지 않는 마음의 이유 같은 것일 거다. 가해자의 억울함을 이해하는 사람, 그럼에도 자신이 겪은 일은 성‘폭행’임을 정확히 인지하는 사람, 가해자의 비자와 아내와 세 명의 딸을 신경 쓰는 사람, 자신의 부주의를 인정하는 사람, 자신의 부주의를 인정하는 일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안전을 침해하는 일임을 알고 입을 닫는 사람, 타인을 이해하여 위하려는 사람, 터무니없을 정도로 천진한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이 주인공일 것이다. 이런 거, 영화적으로 진실이 될 수 있는가. 해당 진실이 영화가 되려면 그 영화의 감독은 노력해야 한다. 그는 성폭행 장면을 적나라하게 담을 것이다. 중요한 장면이기 때문이다.

느릿하게 만류하는 힘없는 손짓,
[Close-up].

우리의 주인공은 그 손짓이 거부인지 뭔지 애매하게 느껴질 정도로 제대로 거부하지 못하는 만취 상태. 만취의 무거움을 받아내기 위한,
[Low angle].

좁은 화장실 칸 안,
[Bird's-eye view].

여자의 뒤에서는 인도 남자가 신음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다. 바깥에서 다른 남자가 문을 두드리고, 칸 안에서 보이는 흔들리는 문,
[Eye level].

다른 남자의 노크는 분노의 노크인데, 그것은 폭력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신의 먹잇감을 누군가 뺏어갔다는 분노이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성폭행 장면 전에, 그 남자가 주인공의 몸을 더듬는 장면 또한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나와. 당장 나와. 뭐 하는 거야?” 영어로 말한다. 그 남자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괜히 바닥에 있는 것을 걷어찬다. 바가지 같은 것일까. 나오라는 게 영어로 컴 아웃인가. 나는 나오라는 뜻의 영어를 들었다는 정도로만 기억한다. 나? 나는 내 이야기를 감상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는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영화다. 그 눈물은 나만이 가진 단 하나의 불꽃같은 진실이기 때문에 나는 눈물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사용하여 나를 지우고 싶고, 내가 아니게 되고 싶고, 수많은 나와 작별하고 싶다.

수많은 나 중 한 명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모르는 번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는다.

Do you remember me?
나 아니 영화의 주인공은 말한다. 
너 그 술집 근처 인도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사람 맞지?
Yes.
너한테 아내가 있고 딸이 셋 있다고 들었어.
So what?
너는 어제 나를 성폭행했어.
What do you want?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마.
(읽고 답 없음)
왜냐하면 내가 수치스럽기 때문이야.
Ok.

그리고 주인공은 친구에게 전화한다. “바텐더 언니들에게 신고하지 않는다고 전해줘.” 친구는 잠시 후 그 술집의 스태프 단톡방을 캡처해서 보낸다. 신고 안 하는 건 방조한다는 거잖아, 추가적인 피해자가 생기면 어쩌려고? ㄱㄴㄲ.

주인공은 눈을 감는다. 닫힌 눈 위의 떨림. 얼마 후 주인공은 아무것도 참을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은 어느 무엇이라도 견디기 어렵고 번개처럼 도망친다. 주인공은 그래서 다니던 직장을 관두게 된다. 주인공은 이후 또 직장을 관두고, 또 직장을 관두고, 또 직장을 관두고, 또 직장을 관두고, 빚이 는다. 느낀다. 느낀다. 느끼고, 주인공은 그 영화를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느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주인공은 아직 그 술집에서의 만취한 자신과 작별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도 작별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그리고 또 어쩌면 자신의 진실이 진실되지 않을 수 있기에.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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