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사회는 상호 간의 믿음으로 이뤄져 있다. 하다못해 떡을 살 때도 식용이 가능한 상태라는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아파트는 떡보다 더 복잡한 믿음의 구조로 쌓아 올려진다. 토목을 믿고, 건축을 믿고, 감리를 믿고, 시공을 믿고, 인테리어를 믿고, 모델하우스를 믿고, 부동산이 오를 거라고 믿고... 등등의 믿음으로 세워진다.
그러나 믿음을 저버리는 일들이 너무도 만연하다. 뉴스에는 철근이 누락되고 외벽과 발코니가 무너지고 1년이 넘도록 누수를 보수 받지 못하고 보일러 배관이 누락되고... 등등의 사건사고가 보도된다.
아파트가 온갖 규제를 통해 위험을 줄여왔다고, 공급 호수 대비 사고율의 통계를 들이민들, 몇 대에 걸쳐 쌓아온 불신을 손쉽게 해소할 수는 없다. (게다가 외벽이 무너지고 발코니가 떨어져 나간 건 최근의 일이다. 좀 나아질만 하면 새로운 불신이 업데이트 된다.)
그러니 우리를 부르는 마음이 불안에 기인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애초에 불안하지 않다면 우리를 부를 이유도 없다. 게다가 저잣거리의 흉흉한 소문은 끝이 없지 않은가. 업체가 시공사와 담합을 하고 일부러 파손을 시키고 눈탱이를 치고... 등등의 두려움들은 너무도 흔하다. 눈 뜨고 코 베이는 상황을 나조차 여럿 겪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폭염이 한창이던 때에 내가 사는 집 거실과 서재 에어컨의 상태가 기묘했다. 온도를 아무리 낮춰도 시원해지지 않아서 사람을 불렀다. 전문가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었지만, 기사는 한사코 나에게 함께 실외기를 확인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절대 같이 가야한다고 하는 바람에 나는 기사를 따라 옥상으로 따라갔다.
기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매니폴드 게이지였다. 수치를 확인하니 거실 에어컨은 냉매가 아예 없었다. 기사는 친절하고 세세하게 에어컨의 ATOZ를 모두 알려주었다. 그제서야 인터넷에 돌아다니던 글을 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냉매가 있는데도 없는 것처럼 속여 돈을 더 청구했다는 어떤 인터넷 기사에 대한 글이었다.
그런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당장의 손익을 따져서 이득을 챙기려는 일명 체리피커, 한국말로는 얌체, 개자식, 호랑이 물어갈 놈... 등등의 것들은 설령 세상이 좋아져도 0이 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들이 망쳐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모두의 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게 억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으나 뭐 어떡하겠다. 부메랑이 돌아가는 자리는 꼭 제자리가 아닐 수 있다. 내가 던지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돌아온 부메랑을 맞았다면 눈앞에 놓인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노력 또한 부메랑이 돼서 꼭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 돌아갈 것이다.(생각해보면 선의, 호의, 배려... 등등의 부메랑들의 수혜로 이만큼 버티며 살고 있는지도?!)
점검을 모두 마치고 나는 기사에게 이온음료를 건넸다. 씨부럴 화이팅! 하는 마음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