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5일 월요일

쥐 마술 ➊

"내가 뭘 데려왔는지 봐."

펜이 종이 위에서 멈췄다. 이제 막 첫 대사를 쓰려던 참이었다. 펜촉 끝에서 잉크가 번져 작은 검은 별이 되었다. 루틀리지는 그 별을 잠시 노려보았다. 직전까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실이 맥없이 탁 풀렸다. 또 망했군. 하긴 늘 망한다. 게친이 망칠 빌미를 주는 건지, 망하는 핑계를 게친에게서 찾는 건지. 아마추어 극작가인 그는 늘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는 의자를 뒤로 물리며 한숨과 함께 일어선 다음 쏘아붙일 말을 고르며 눈을 잔뜩 조였다. 그 눈으로 문간에 서 있는 아이가 들어왔다. 덥수룩하게 엉킨 머리가 작은 얼굴의 절반을 덮었고, 그 틈으로 두 눈만 지나치게 컸다. 맨발 밑엔 흙인지 때인지 모를 것이 말라붙어 있었다. 야위었는데도 말랐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웬 쥐 한 마리가 서 있어? 아이를 둘이나 키워보았으니 나이는 대충 가늠이 되었다. 여덟 살, 아니 아홉 살 정도 됐겠네.

"잠깐 이리 와봐, 게친."

게친이 걸음을 옮겼다. 아이의 어깨에 얹혀 있던 한 손을 살포시 떼면서. 게친이 다가오는 것은 바깥이 다가오는 일과 같았다. 그녀한테는 항상 자신과 다른 냄새, 바깥 냄새가 났으니까. 신선한 풀과 흙, 아무것도 한 곳에 고이지 않도록 바람이 몸 이곳저곳을 두드리고 지나간 냄새. 내 옆에 있으면 게친도 나의 냄새를 맡겠지.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사람의 조용하고 눅눅한 냄새. 닫힌 방과 식은 찻잔과 오래 접어둔 담요 같은 냄새. 그러나 게친은 섬세하지 않은 편이어서, 들리고 보이고 만져지는 것 이외에는 무심했다. 그건 흠도 아니고 단점도 아니었다. 그저 두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을 뿐이다. 허리에 손을 얹은 게친이 루틀리지를 내려다보았다. 잘했지? 미소는 하강하며 그런 말을 던지고 있는 듯했다. 두 사람은 머리 하나 정도로 키 차이가 났다.

"약속했잖아." 루틀리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화를 내는 게 아니라, 화를 내봤자 소용없음을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맡을 생각은 아니지?" 그 말의 그림자에서 자식이라는 단어가 부풀어올라 두 사람 사이 찬 공기 속에 풍선처럼 떠 있었다. 웃음은 여전히 게친 입가에 머물렀지만 눈에서는 사라졌다. 당혹감과 함께 떠나간 것이다. 게친은 몸을 돌려 문간의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언제든 달아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한 발을 뒤로 살짝 빼고 있는 저 아이, 자신이 주워온 저 아이에게.

"약속 같은 거 안 했어.“

"했어."

"솔직히 기억 잘 안 나."

"게친."

"버리고 왔어야 한다는 거야?"

"구하지 말자는 게 아냐. 먹이고 재워서 다른 마술사를 찾아줘. 그런데 입양은 안 돼."

게친이 문간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고야. 널 소개할 차례야." 아이는 화들짝 놀라 주춤하다가, 이내 허둥지둥 달려와 게친 뒤로 숨었다. 그다음으로 한 일은 얼굴을 빼꼼 내밀어 루틀리지를 훔쳐보는 것이었다. 정찰을 하듯. 아이가 가까워지자 루틀리지는 불만스럽게 입을 닥칠 수밖에 없었다.

"이름이 뭐니?"

루틀리지가 물었다. 고야는 대답하는 대신 웃음으로 얼버무리며 게친을 올려다 보았다.

"고야라고 했잖아."

"그래, 고야. 성은?”

프리올.”

그래, 프리올이구나. 그런데 게친, 애가 말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돼?"

"시간 아깝잖아. 할 게 많아. 가르쳐 줄 것도 많고, 밥도 먹여야 돼."

루틀리지가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주무르다가 말했다.

"그래, 고야 프리올. 좋은 이름이네. 아무튼 우린 널 보살펴 줄 거야. 그러니까 편안하게 있어도 돼. 네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말이야."

"앞으로 항상."

"적어도 몇 달은. 몇 살이니?"

열한 살이라는 대답에 루틀리지는 깜짝 놀랐다.

"열한 살이라고? 키가 굉장히 작구나."

루틀리지가 손가락으로 눈썹을 긁으며 말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감안하더라도 작아. 손을 내밀어보렴. 손가락을 볼 테니까."

잠깐이었지만 루틀리지는 고야가 망설이고 있다는 것을 읽어냈다. 손을 내민 고야는 시선을 내렸다. 손도 아니고 바닥도 아닌, 그보다 아래에 있을 밑바닥을 바라보듯. 그 사이 루틀리지가 고야의 손을 들고 살폈다. 하나가 달랐다. 앙금이 내려앉은 왼손 약지가 납처럼 창백한 하얀색으로 변해있었다. 죽은 손가락처럼 차가웠다. 그도 어렸을 때 그랬고 누군가에게 거두어졌다이런 일은 겪을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설명해줄게. 너도 이제 우리가 될 테니까.” 고야가 눈을 깜박였다. "마술사, 우리가 된다는 것은 마술사가 된다는 거야." 그래, 마술사. 세계에 칼집 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불행한 사람들. 게친이 왼손 약지를 고야에게 보여줬다. 오래 손때를 먹어 거뭇하게 바랜 은이 정확히 약지를 반으로 나누는 곳에 끼워져 있었다.

네 손가락을 잘라낼 거란다.” 고야가 처음으로 루틀리지를 정면으로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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