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매니저들은 현장 안내부터 CS처리까지 다방면의 일들을 수행한다. 정확한 고용형태는 알지 못하지만 어쨌든 정규직은 아니다.
시공사가 사전점검 업체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현장 매니저들도 궤를 같이 한다. 적출 업체시죠? 대체로 꺼려하는 태도가 느껴진다. 입주자가 직접 점검하는 세대에 비해 업체를 쓰면 하자 개수에서 몇 배의 차이가 나므로 한편으로는 그들의 적대심을 이해한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 무척 바쁜 현장에서는 문만 열어주고 안내를 우리에게 부탁하는 협력적인(?) 사람들도 있고, 우리의 업무 자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를 나누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스몰토크는 대체로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있을 때 발생한다.
그날은 현장 매니저와 스몰토크를 나누었다. 여기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내가 그렇게 물었을 때 현장 매니저는 잠시 말이 없었다. 저요, 원래 큰일 하던 사람이에요. 네? 저 애들 교육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고, 나 또한 잠시 멈추어서 그가 나와 충분한 거리를 벌릴 수 있도록 두었다.
또 다른 대화가 떠올랐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만약 우연히 아는 사람의 집을 점검하게 되면 어떨 거 같냐고 물었다. 더 열심히 해줘야지, 하며 의지를 다지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초라하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사람의 눈에는 우리 모두가 초라해보이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 일을 하는 동안 그는 참 불행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랬구나, 그간 이해가 가지 않던 그의 행동들에 대한 조각이 합쳐지기도 했다.
사실 차별이란 건 멀리 있지도,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행위다. 차별은 특정 대상, 이주노동자와 성소수자와 장애인 앞에서 별안간 갑자기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쌓아온 경험이다. 차별은 구분하고 구별하는 것을 시작으로, 분류된 것들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는 행위를 발판으로 삼는다.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높낮이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자기가 행해온 차별을 원인으로 한다.
무의식적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있다면, 그를 통해 우월감을 느끼는 방식으로 불안을 해소하고 있다면, 스스로 차별을 연습하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세상 이치가 그런 것이고 그래서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가? 세상에 통용되는 잣대를 들이댔을 뿐인가? 그러나 뭐가 어쨌든 일단 알아차렸다면 어떻게든 억지로라도 한 번씩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그건 세상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아니다. 차별을 멈추는 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다.
차별을 그만두는 것이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