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 바깥쪽에 붙어 있던 커다란 벌집, 아직도 있다. 꿀도 없고 벌도 살지 않는, 내 머리통만 한 벌집이다. 어쨌든 꽤 커서, 봄이 되면 떼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만 하고 있다. 벌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느냐 하면,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지고 있다는 슬픔이다.”*
나는 이 슬픔을 신문지 구기듯이 뭉쳐두었다가 월요일마다 펼쳐보았다. 볼 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지고 있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그 슬픔을 포갠 접시처럼 쌓아 올렸다가 화요일마다 한 장씩 집어던져 깨뜨려 보았다. 그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났는데도 당연히 아무 일도 안 벌어졌다는 강화유리 같은 슬픔이었다. 나는 수요일마다 그 슬픔으로 남의 집 창문을 해 넣으러 다녔다. 그때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슬픔의 단열이 너무 잘되어, 슬픔은 각자의 취미가 되어버렸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목요일마다 그 슬픔을 내 것으로 착실히 챙겨서 출판사에 취직했다. 슬픔을 교양서로 편집해 천 부씩 출력해서 금요일 아침에 전국의 서점에 입고했다. 무려 월급이 나오는 슬픔이었는데, 그럼에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당연히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는 슬픔이었다.
나는 완전히 지쳐서, 이틀을 꼬박 자면서 쉬었다. 빈 벌집 생각은 멈추고. 그런데 내가 정말로 멈출 수 있었을까? 자는 동안에도 과각성된 슬픔은 잠들지 못하고 육각형 결집을 시작한다. 벌집 만들기 경연대회가 있다면 단번에 우승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커다랗게. 당연하게도, 나 같은 일반인, 가해자, 한계 많은 동시대인은 슬픔으로 경연을 걸어서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슬퍼하는 사람들을 자꾸 이겨버린다.
*블로그 이웃 eaches님의 이야기다. 나는 그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