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5일 수요일

여기에서 저기까지

영화관 로비의 의자에서 매표소 직원을 보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기까지 아홉 걸음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왼손 검지에 검은 반지를 끼고 있습니다. 두껍고 유광이고, 못생겼습니다. 본인도 그 반지가 못생겼다는 걸 알까요? 그래서 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온통 까맣게 입은 옷, 까만 옷 중에서도 개성이 소거된 까만 옷이고, 개성이 없는 게 개성인 것 같고, 오로지 손에 낀 못생긴 반지만이 그가 드러내고 싶은 무언가인 것 같으니까요. 한쪽 구석에서 아이들이 시끄럽습니다. 매표소에서 저 구석까지는 열 걸음 넘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노는 것을 볼 때면 안심이 됩니다. 그리고 저기에서 끝날까 봐 걱정됩니다. 그렇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슬퍼집니다. 아이들, 로비 반대편으로 달리고 지는 사람은 바보로 정해지는 시합을 하기로 합니다. 그들이 달리는 동안, 지면과 닿는 이백 밀리미터 미만의 면적을 제외한 모든 게 변할 것입니다. 직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에게로 걸어갑니다. 그의 것은 이백사십 밀리미터고. 열 개 맞고.

통유리로 된 출입문 너머로 검은 트럭이 멈춰 선다. 온통 검은 배경. 바깥이 없는 것만 같아, 함께 많이 걸었지, 이런 말들 목 끝까지 차오른다. 디안과 함께 걸을 때 그와 완전히 함께인 순간을 세고는 했는데 우리의 발이 동시에 지면에 닿을 때 그 면적의 수로 말이다 일어난 김에 여기에서 저기까지 걸어보는데 열세 개 달리는 아이들을 쫓는 모양새가 되었고 디안이 더는 발을 떼지 않으니 셈하기 방식이 반 나누어졌다는 생각 트럭, 떠나고 익숙한 풍경. 아무 조치 취하지 못고 다시 매표소로 돌아와 앉는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수 없게 된 지 오래되었다. 의사가 근처 부위를 이용해 최대한 움직이려 하는 재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주아주 오랜 시간을 열심히 해야 부드럽게 쓸 수 있다고. 재활 운동을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든다. 내가 취한 조치는 움직일 수 없게 된 손가락에 새로 산 반지를 껴 조심하는 정도. 저기에 앉아 관객인 척하는 디안이 여기에 있는 나를 보고 있다고 상상한다. 아주아주 오랜 시간을 지켜보고 있다고. 내 손도 빤히, 반지까지. 디안은 모르겠지. 이 반지 못생겨서 좋아한다는 거. 같이 걸을 때 우리 완전히 함께인 순간 세던 것, 그러느라 놓친 네 말 꽤 된다는 것 이런 건 일찍이 말했어야 했는데.

아이들이 시합 한 번 더 한다. 진 사람은 바보가 될 것이다. 달린다. 다시 일어나 걸어간다. 여기에서 저기까지.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