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골당 앞, 윤주의 얼굴. 애써 지은 듯한 웃음이 이어진다.
“잘 지내세요.”
지유의 부친은 윤주를 향해 말한다.
“칠푼이, 팔푼이 둘이었는데, 이제 니 혼자 칠푼이 팔푼이 다 해야겠네.”
윤주는 아하하! 하고 웃음을 크게 터뜨린다.
웃고 나서 재빨리 뒤를 돌지만, 곧 누군가 윤주의 머리를 세게 친다. 윤주는 놀라 다시 뒤를 돌아본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지유의 가족들과 가까운 지인들. 윤주를 때린 것은 지유의 모친이다. 떨리는 손만이 남는다.
혼자 귀가하는 윤주. 윤주는 괜히 콧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시간이 흐른다. 지유를 상실한 슬픔을 비롯하여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을 품은 채 살아가던 노년의 윤주는 어느 밤, 상상된 노년의 지유와 함께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려고 한다.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는 마을버스 안. 시끌벅적한 윤주와 지유의 수다 소리와 함께 해가 지며 버스의 창밖은 점점 어두워진다. 밤이 되고, 지유는 윤주에게 화가 난 듯 많은 짐을 들고 버스 맨 뒤 끝자리로 가 혼자 앉아 눈을 감는다. 윤주는 곧바로 그 뒤를 따라간다.
윤주는 갈고리를 걸 듯 지유의 손을 잡는다. 지유는 윤주를 탐탁잖게 바라보다가 자신의 엄지를 윤주의 엄지 위에 올린다. 윤주는 씩 웃으며 엄지로 씨름을 시작한다. 둘은 열심히 게임을 하고, 윤주는 너무 크게 웃는다. “왜 웃는데?” 지유의 말과 거의 동시에 버스 기사의 목소리가 들린다.
“종점입니다, 내리세요!”
버스는 낯선 차고지에 도착한다.
“여가 어디고.”
“아이고.”
둘은 버스 기사를 찾아보지만 그는 담배를 물고 금방 시야에서 사라진다.
“걸어보자.”
두 사람은 차고지를 빠져나와 어둠 속을 걷기 시작한다. 걸을수록 어두워진다. 노년의 윤주와 지유는 점점 실루엣만 보이다가 어둠 속에 파묻혀 거의 보이지 않게 된다. 어두워질수록 가까워지는 고가도로. 상부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가 점점 커져 두 사람의 대화는 거의 들리지 않게 된다. 그 어둠 속에서 노년의 윤주와 지유는 젊은 시절의 모습과 뒤섞인다.
고가도로 아래 거대한 옹벽.
밤의 푸른 빛.
옹벽의 녹
구멍
그런 것들.
고가도로 아래 거대한 옹벽을 마주한 두 사람은 마침내 모두 젊은 시절의 모습이 된다. 수다스러웠던 버스 안과 다르게 새까맣고 거대한 옹벽 앞에서 둘은 침묵한다. 둘은 옹벽에 난 녹과 구멍, 그런 것들을 바라본다.
지유는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펴본다. 윤주는 그런 지유의 손을 바라본다.
푸른빛 속에서 지유의 몸이 부분부분 드러난다.
윤주의 시선은 지유를 따라 움직인다.
윤주는 지유를 바라보다가 씨익 웃는다.
지유는 윤주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눈물이 고여 있다. 차 소리 때문에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지유의 입모양만 보인다.
“왜…”
웃냐고? 윤주는 움직이는 입을 홀린 듯 바라본다. 그 순간 누군가 윤주의 손을 잡는다.
노년의 윤주는 젊은 윤주의 손을 갈고리처럼 잡고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두어 걸음 정도 움직인 뒤, 노년의 윤주는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젊은 윤주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만 노년의 윤주는 무표정하다.
차 소리. 콧노래 소리. 춤추며 바닥에 끌리는 발소리.
노년의 윤주는 춤 동작의 일부처럼 엄지로 하는 씨름에서 이기듯 젊은 윤주의 엄지를 자신의 엄지로 꾹 누른다. 젊은 윤주 역시 씨름에 응하듯 적극적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둘은 춤추며 승부를 이어간다.
둘이 함께 점점 더 커지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여태 윤주가 외면해 온 감정들 또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승패가 제대로 나지 않은 채 노년의 윤주는 사라진다.
바로 이어서 윤주는 몸을 떨며 울고 있는 지유를 꽉 껴안는다. 이마에, 우는 눈 근처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춘다.
지유는 윤주를 거세게 밀어낸다.
윤주는 혼자 남는다.
고가도로 아래 옹벽 앞에는 노년의 윤주만이 서 있다. 고가도로의 시끄러운 차 소리만 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