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30일 수요일

플루크스

요즘 다른 대표들 만나면 그저 부동산 얘기뿐이다. 책을 아무리 팔아도 부동산 대박 한 번에 미치지 못한다는 거. 어디 출판사 누구가 어디를 샀는데 어디가 어떻게 되어서 어쨌고 그걸로 어째서 또 어째저째 하는데 정권이 어쩌고 저쩌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출판을 한다는 것들이 말야, 천박하기 짝이 없는 얘기를 철면피로 한다. 책 만들고 싶은 기분이 안 난다는 쪽은 차라리 양반이다. 세상이 다같이 미쳤어도, 분위기가 그래도 그렇지, 그래도 자존심이, 출판윤리라는 게 있는 법인데. 우리는 우리 우리의 사명, 직업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매주 월요일 아침 우리 사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자신들의 사명을 인지하고 있어야 됩니다. 수많은 출판사들이 있고 그보다 많은 책들이 있다. 그 여러 종류의 책들에는 다 나름의 방식으로 나름의 가치가 있다. 그중에 우리가 만들려는 책, 그것은 특별한 책이다. 그것은 딱 한 권의 책이다. 우리가 맡은 사명은 바로 세상을 바꾸는 한 방, 한 권의 책을 ‘터뜨리는’ 것이다. 딱 한 권이면 족하다는 생각을 품어야 한다. 하나만 터뜨리면, 하나만 걸리면 된다. 하나만! 딱 하나! 이 판을 떠도 후회가 없을 정도로! 즉 책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바로 여러분 각자의, 여러분이 살게 될 인생을, 바로 그 세상을 바꾼다는 뜻이다.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이 만들 마지막 책을 만들어라. 온 정신을 한 점에 집중시켜라. 한 점. 일점一點, 정점頂點으로. 이 세계가 원하는 바로 그 책을 향해. 판을 뒤엎는다는 것은 역사에 기억된다는 뜻이 아니다. 역사 속에 기억되는 책은 좋은 책이다. 물론 그런 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식의 좋은 책이 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터진 책이 좋은 책’이다. 판 자체를 기울이는 책을 만드는 게 아니다. 기울어진 판의 가장 낮은 곳에 책을 올려두는 것이다. 역사에 올라타는 것이다. 뒤집어지고 있는 판의 축으로 가라! 그다음부터는 흐름을 타고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져 내려오기 마련이다. 미끄러져 내려가는 게 아니다. 꼭대기로 가는 게 아니다. 꼭대기가 되는 곳에 있어야 한다. 머릿속에 깔때기 모양을 그려라. 그게 바로 이 세상의 법칙이다. 법칙을 찾아서 거기로 가라! 중력이 센 곳을 찾아라! 나는 사원들에게 중력 모형을 보여준다. 그것을 위아래로 뒤집어가며, 그리고 사원들의 자리를 한 바퀴 돌아가며 위치에 대해, 우리가 꿈꾸는 출판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한다. 내가 없으면 이 친구들을 대체 어찌할까? 힘차게 구호 한 번 외치고 한 주를 시작해 보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만! 하나만! 하나만! 야!

2023년 8월 29일 화요일

토렴집

우리의 머리는 식은 밥알이다
책은 뜨거운 국물이다
그릇에서 수저로 우리는 오른다
씹어 삼켜지려고
마음에게

종이컵 커피를 마신 다음
마음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신다
사탕을 빨며 배도 든든한데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식인 다음에

쓰러진 마음은 토막 된다
오래 끓인 죽은 것 된다
후생은 서리로 내리고
아직도 너희는 있어서 들판은 아직도 너희의 들판
돌아온 우리의 머리는

2023년 8월 27일 일요일

fish 노래 같은 것

지금 듣고 있는 곡은 오래전에 죽은 포크 가수의 노래다. 그는 꼭 나 대신 죽어준 사람 같다. 그는 이 노래를 비 오는 날에만 신는 장화와 마른 담배, 그리고 약간의 황금 같은 감자들과 맞바꾸었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고백한 적이 있다. 그는 보컬이 훌륭한 편은 아니었지만 가사를 쉽게 썼다. 대체로 나조차 이해할 수 있는 영어였다.
그는 관찰을 초년의 양식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물속의 living fish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수족관거리 앞을 걸었다. 열대어들은 수족관 유리벽에 머리를 부딪히며 한없는 반복운동을 보여주었다. 오래된 벽지처럼 벗겨진 생물의 이마. 언젠가 이 거리를 그때처럼 산책할 때, 정지한 물고기들과 너무 오래 눈을 마주치지 말라는 수족관집 주인의 경고를 들은 적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 노래 속에서 흔들리는 fish의 기분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fish는 흔들립니다.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데 흔들리고 있죠.”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노래가 뒤에 남아 그는 뜻대로 말년을 맞이하지 못했고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이 있다면 이마에 열이 오를 때까지 그걸 듣는 거였다.

2023년 8월 25일 금요일

사금파리

일단 ‘풀’ 자로 시작하는 사명을 짓고 싶었다. 찾아보니 풀칼*... 풀싸움*... 풀솜*... 풀베개*... 풀반지*... 풀매기*... 풀덤불*... 풀무덤*... 모두 생경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러다 ‘풀각시’가 눈에 띄었는데, 아이들이 긴 풀을 뜯어 막대기의 한쪽 끝에 묶고 새색시* 머리 땋듯* 곱게 땋은 뒤 자투리 천*으로 만든 저고리* 등을 입혀 갖고 놀던 인형*이라고 한다. 거기에 조그맣고 정교한 모형 세간*들을 함께 만들어 풀각시놀이를 했다는 거였다. 나는 곧장 즐거운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 마을*에서 풀각시를 제일 잘 만드는 아이가 있었겠지? 그 아이의 풀각시는 선망의 대상이었을 테다. 두 번째로 잘 만드는 아이와 경쟁했을 수도 있고, 특별한 풀각시를 서로 선물로 주고받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른 마을과 풀각시 기술 교류를 했을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으면 동생들*이나 자식들*을 앉혀놓고 풀각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줬을 것이다. 분명 마을마다 특별한 양식이 있었으리라. 없었을 리 없다. 대를 이어서* 전해져 내려오는* 방법이, 자그마치 왕*이 있던 시절부터 전해지던 방법이! 아, 독자들*께선 내가 쓰는 옛날 단어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음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이해를 돕기 위해 특별한 기호로 각주*를 달았다).

내게는 오래된 것들에 대한 지대한 흥미가 있다. 그 모든 사랑스러운 바보짓들... 풀각시놀이를 상상해보면서, 풀각시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었는지 보고 싶어졌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셀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거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웹’을 열심히 뒤져봤다. 나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신도 웹에 대해 들어는 봤으리라고 믿는다. 어쨌든 그건 아직도 있다. 작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셀이 나온 다음엔 완전히 버려졌지만, 전용 단말기와 약간의 기술만 있으면 여전히 웹을 뒤져보는 게 가능하다. 웹이 사용된 기간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찰나와 같았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 시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병적으로 쌓아놓은 온갖 것들이, 웹에는 여전히 보물처럼 쌓여있다. 나 같은 과거애호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믿기 어렵지만 웹에 있다!)에 가면 웹 탐험에 대한 많은 팁을 구할 수 있다.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건 탐험 결과 풀각시는 웹을 쓰던 시절에조차 잊혀지는 중이었던, 그 할머니 세대가 마지막으로 갖고 놀았던 장난감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은 고운 분말이 되어 세계에 흩어졌을 할머니가, 역시 지금은 분말이 되어 세계에 흩어져 있을 손녀에게 다소 부끄러워하며 직접 풀각시를 만들어주는 사진 이미지를 올린 블로그*(정말이지, 그런 것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니!) 포스트를 보다가... ‘풀’ 자로 시작하는 사명은 그만두기로 했다. 다른 게 아니라 그 풀각시놀이를 하며 소꿉*으로 썼다던, ‘사금파리’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혔기 때문이다. 사금파리, 어감이 신기해 기억하고 있던 단어였다. 사금파리란 사기그릇*의 깨진 파편을 말한다. 박물관에 가서 실물을 본 적도 있었다. 그때 박물관 한번 가보겠다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진열장 너머 사금파리에는 흰 바탕에 파란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안 그래도 보고 싶은 거 천지였어서 그때는 이름이 예쁘다고만 생각하고 지나쳤었다. 그런데 기억 속에 잠자고 있던 그것과 상상도 못한 데서 다시 마주친 것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감동받았다. 그저 쓰레기가 아니었구나... 깨진 조각을 놀이하는 데에도 썼었구나... 나는 ‘사금파리’라는 단어가, 내가 원하는 바로 그것을 가리키는 바로 그 사명이란 걸 깨달았다.

털어놓자면 내가 찾으려는 사명은 전자책 출판사를 위한 것이다. 전자책이라니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전자책이 뭐냐고 물을지도? 셀이 모든 것을 머릿속에 직접 꽂아주는 이 시대에! 하지만... 하지만 나는 어쩐지 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랬다. ‘스마트기기’들은 내가 어렸을 때 이미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어쨌든 나는 그걸 계속 만지면서 자랐다. 여기서 ‘만진다’는게 무슨 뜻인지 내 또래나 그보다 위라면 알 것이다. 나는 집에 온 손님들에게 수집품들을 보여주곤 한다. 이건 45년도에 나온 모델이고요... 이건 자그마치 30년대... 이건 안경 모양, 이건 시계 모양... 아, 혹시 전자책리더기라는 거 아세요? 거기까지 가면 사람들은 놀라고 만다. 나는 그 기계들이 정말 좋다. 지금 보기에는 너무나 바보 같은 기계들. 날 괴짜 취급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것들은... 바로 그 사금파리와 닮았다. 그것들에는 셀에는 없는 것, 절대로 대체 불가능한 물성이 있다. 매끄러움, 단단함, 투박함, 섬세함, 또 빛... 푸르스름한, 그리고 결정적으로 터치! 그건 정말 고유한 감각이다. 나는 그걸 사랑하고, 그걸로 읽었던 전자책들을 기억한다. 화면 위에 무늬처럼 떠오르는 그 수많은 글자들. 나는 그걸 만들고 싶다. 분말이 되기 전까지는.

2023년 8월 22일 화요일

유리철장

옛날엔 모두 여기 모여 놀았지. 유리철장은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이 만든 카페였다. 아이 하나가 커피를 내리고 아이 하나가 설거지를 한다. 밖은 한창 전쟁 중이다. 아직도 아이들은 그렇게 하고 있다. 커피를 내리던 아이의 몸이 커지고 목소리가 굵어져 성인이 된다. 설거지를 하던 아이의 정신이 어리지 않게 되고 유머의 여러 유형을 습득하여 성인이 된다. 옛날엔 성인이 되지 않은 아이들만 입장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성인들이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장소는 대부분의 아이들에게(이제 성인이 된) 잊혀졌다. 다만 유리철장이라는 이름이 남았을 뿐이었다. 커피를 내리던 사람은 들어오는 나를 보고 까닥 고갯짓을 한다. 나를 알고 있지는 않은 모양. 이곳을 찾던 꽤 많은 수의 아이들이 서로에 대해 잘 알았다. 나는 그 예외의 경우에 속한다. 이젠 밖의 전쟁도 멈춘 것 같다. 어린 시절을 장식했던 그 전쟁에 대한 기억은 이런 말도 내놓는다. ‘아이였을 때 한창 전쟁 중이었다. 이제 성인이 되자 그 전쟁은 뇌리에서 잊혀졌다.’ 난 어릴 때보다 지금이 행복한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기까지 필요한 시간을 잠들기 전에 세었다. 이제 난 어른이 되었는데, 아마 스무 살 이후라고 하더라도 어른이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느낀 건 최근의 일이거나 아니면 지금 바로 이 순간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어른이 되었다고 그렇게 느낀다. 유리철장의 회벽은 낡았고 보수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나는 일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오랜만에 와보는 곳입니다. 당신의 집도 과거에 화목하지 못했나요?” 이 말을 하면서 나는 눈물이 났다. 화목하지 못했던 게 뭐라고 아이들이 모여 돈을 걷고 카페까지 만들었던 걸까? “저의 경우엔 그렇습니다. 아마 그랬던 아이가 꽤 많았겠죠. 그 시절의 컴퓨터 게임이란 것은 그런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도 있는 걸로 압니다.” “그렇지 않았던 아이들도 돈을 걷은 건 동정 때문이었을까요?” “그럴 리가요. 이 카페는 전쟁의 반대항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었어요. 그저 너무 많은 시간을 혼자선 견딜 수 없기에 단순히 놀 장소가 필요했던 것뿐이죠. 그 아이들이 돈을 낸 이유는 아마 같이 놀고 싶었기 때문이겠죠. 우리는 어린 나이에 어린 아이들의 그 성향을 일부 이용했지요.” “그렇군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잠시 주억거리더니 설거지를 하고 있던 사람을 불러왔다. “내가 알기로는. 서로 안면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잘은 모르지만요.” “글쎄요. 그 시절에도 얼굴을 본 적은 없어서.” “여기서 아는 사이였다고 밝혀지면. 만일 그때 많이 친했더라면.” “조금 어색하고 곤란하겠죠. 그리고 그것은 어른이 피하는 것이랍니다. 그쪽은 어떠시죠?” “마찬가지입니다.” “좋습니다.” 무엇이 좋다는 건지 모르는 체로 그렇게 말했는데 내 앞의 두 명이 웃었다. 나는 그가 건네는 커피를 받아 든 뒤 카페를 나섰다.

2023년 8월 21일 월요일

기원 같은 것

*
꿈에 못 보던 무덤 하나가 나왔다.
일어나 종이 위에 동그란 무덤 하나를 그린다.
혼자 있어 외로운 무덤.
한켠에 누군가를 그려넣었는데 나도 모르는 여자다.
그로 하여금 참배차 무덤가를 서성거리게 한다.
석물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비석 또한 그린다.
엊그제 신문에서 본 억울한 이름들을 써넣을까 하다가
내가 그린 여자의 이름조차 알 수 없어 그만둔다.
이름을 물어보기엔
여자는 피곤해 보인다.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려볼까.
기다린다.
여자는 돌아갈 생각이 없다.
지면의 물감이 마른 뒤에도 무덤가에 있다.
그는 나와 무관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를 알 것 같다.

*
며칠 뒤 나는 연작에 해당하는 그림을 한 점 더 그린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무덤을 전면에 배치한다.
비석은 화면에서 잘라내고
상석에 빈 유리병을 하나 놓아둔다.
오늘도 찾아온 여자를 그릴까 하다가
더 이상 그를 힘들게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대신 유리병 속에 꽃 한 송이를 그린다.
지금까지 내가 그려본 꽃 중에 가장 화사한 노란꽃 한 송이를.
조금 전 여자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것만
이곳을 다녀갈 정도로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사실만 그리고 싶다.
아마도 그건 꿈이겠지.
꿈이라고들 말할 것이다.
꿈이어도 좋다.

침팬치

‘침팬지’가 맞는 표기지만, 무슨 상관인가? 나는 든과 던의 구분이, 로써와 로서의 구분이 흔적도 없이 으스러지는 것을 보았다. 거대한 힘, 그 어떤 초일류의 교정공들을 불러오더라도, 교정의 악마가 수만 번 강림하더라도 절대 통제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문자 생산력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힘에 의해 그것들을 구분해주던 피부가 벗겨내지는 것을, 곤죽으로 합쳐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사탄이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여기서 그를 떨어뜨리는 것은 수많은 입들이다. 신의 정체가 그렇게 밝혀지고, 그것은 가까워지는 중일까? 그것은 오는 게 아니라 모이는 것이었나? 감히 말을 멈춰 세우려 하느냐? 침팬지가 침팬치로 바뀌어도 바뀌지 않아도 뭘 어쩌겠는가? 미천한 교정공의, 절망 속의 사명감 같은 낭만적인 것은 다 접어두고, 그게 어디 눈썹 한 올만큼이라도 중요한가? 이 엄청난 함성 가운데, 침팬치와 침팬지 사이에 차이라고는 전혀 없다고나 할 것이다. 모두가 모든 것을 심판해야 한다는 상황, 심판의 성립 불능이 최종심판이다. 아니면 공판 시작이거나. 우리가 바로 각자의 표를 들고 강림한 수억... 교정의 악마다.

나, 옛날에 교정공이었던 침팬치는 손깍지를 베고서 가짜정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눈을 감아도 떠나지 않는 화면의 잔상과 어지러이 춤추는 글자들을, 이상한 말이지만 눈을 빠르게 깜빡여 바라보면서,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이지? 그러다 알았다. 아니, 인정하게 되었다. 압도적인 문자 생산력 그 자체... 세계를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천사를 악마로 그 반대로도 만드는 그것: ‘인터넷에 가짜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의 모든 것이 진실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터넷에서는 가짜라는 개념이 아예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교할 만한 진짜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떤 진짜가 인터넷 외부에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인터넷이라는 환경이 가짜정보를 생성하기 쉽다거나 가짜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무슨 말을 해도 거짓말’ 같다는 느낌 때문에 아무말도 하지 못했던 경험, 나는 그것과 인터넷 자체가 완전히 같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었다. 인터넷에 관하여, 참/거짓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1) 확대하면 할수록(적은 관측 대상) 해상도 떨어짐. 2) 축소하면 할수록(많은 관측 대상) 해상도 떨어짐... 말인즉슨 인터넷은 규모가 문제이던 시기를 넘어섰다. 그것은 이제 어떤 영역이 아니며, 연결 따위의 문제도 더 이상 아니다. ‘인터넷이 언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그다음, 그다음이다. 이것은 언어의 두 번째 강림이다. 언어가 본질적으로 현실에 대하여 갖던 그만큼의 후줄근한 해상력이 여기에, 전적으로, 자신을 펼치며 도래 중이다. 이제 인터넷은 재현 일체를 언어화시키는 무엇이다. 이는 언어에게는 대도약이고 인간에게는 재앙처럼 보인다. 우리를 혼란 가운데 작게 남겨버리고 자신은 도약하는 것, 말과 문자 사이의 심연 중에서 그것은 입을 벌렸다가, 그 이상의 크기로, 모든 것들을... 엮여버린 우리를... 함성과 함께 뒤덮고, 빨아들이며, 다른 종류의 우리를 남겨버리는 것이다. 나의 깍지 낀 손가락들이 뭉그러진다. 나는 합쳐진 손 덩어리를 위아래 양옆으로 휘두르며 우끼! 라고 외치고 우끼끼! 라고 덧붙인다. 이게 나의 결론이었고 ‘침팬치’ 출판사의 출발이었다.

우리 앞에 남겨진 문제는, 그렇다면 언어의 이 새로운 상태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 한때 교정공이었던 침팬치의 견해로는, 인터넷을 하나의 거대한 2차 창작으로 대한다면 가장 현상태에 부합한다. 우리는 실로 점점 더 그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인터넷을 통해 어떤 종류의 문학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터넷이 바로 거대한 문학, 겪어본 적 없는 문학, 유례없는 영향력을 떨치고 있는 문학이라고... 나는 말하려는 것 같다. 나의 확신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저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는 확신, ‘문학적’인 확신이! 아마 인터넷에 대한 이보다 더 적절한 평가는 없을 것이며, 이미 누군가가 이와 같이 평가했을 것이다. 누가 어떻게 평가했든 뭐가 중요한가? 여기서 아이러니가 있다면, 총인류의 입장에서 따지자면, 그럼에도, 이것이 어떤 후퇴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원래 그것이었던 것이 바로 그것이 되어가고 있다. 우리 침팬치들은 읽기를 갓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이나 다름이 없다. 우리의 손에는 동화책이 들려있다. 우리는 이렇게 배우는 줄도 모른 채 배우고 있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누구에게 배우고 있는가? 내가 아직 교정공이었던 시절 뭔가를 배웠다고 느꼈을 때는 반드시 반복의 실패, 종료, 감탄이 있었다. 우리는 작별을 통해 배운다. 지금은? 현실을 끝없는 원작으로 만들어버리는, 드디어 심판을 시작한, 언어라는 자동기계와 마주하면서, 나 춤추는 침팬치의 털가죽은 녹아내리고 있다. 여기에 무엇이 남겠는가?

2023년 8월 11일 금요일

랑데부

주저앉아 그 나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곳들도. 뭐가 잘못되었던 걸까,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했지? 나라였던 게 잘못? 서기장의 잘못? 바보같이. 그게 벌써 언젠데... 그때, 망할 때, 환호한 사람들도 있을 거야. 왜 없었겠어. 지금 그 사람들은 어떡하고 있을까? 죽었을까? 살았을까? 행복할까? 앉아 생각한다고 알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 한심한 생각 외엔 다른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겠어.

지금은 어때? 우린 망했다. 망한 것은 우리다. 우리는 귀를 막고서 소리치고 있다. 우린 망했다! 망한 것은 우리다! 그것은 너희 탓이다! 그것은 너희 탓이다! 우린 귀를 막고서 소리치고 있다. 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코를 막고서, 눈을 막고서, 아직 아니고, 아직 아니야! 이미 지났기에 아직 아니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눈물이 흐르는 세상이다. 내것은 아니다. 눈물도 세상도 아니고, 막힌 데서 우리는 소리치고 있다. 주저앉아서, 눈물이 나는 세상입니다! 눈물이 납니다! 으억! 으으억! 우린 무릎으로 기고 있다. 허벅지로 기고 있다. 여기를, 배로 기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탓이다! 우리의 탓! 그것은 터진 것이다. 폭탄들은 터졌다. 진작에 터졌다.

야 일어나봐라, 그러지 말고. 지금 너 아주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어. 어쩌려고 그럭하고 있어, 안 되면 어쩔라고, 야 그러지 말어, 어쩌려고... 안 되면, 공산 안 되면...

우리는 붙잡았어야 했다.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읊고 있다. 핥으면서. 답은 이미 나왔다. 그때 어떻게든 열었어야 했다. 못 열었고, 긴 엔딩, 그 생각이 천지 사방에서 누른다. 나온 답을 집어던진, 손잡이를 부숴버린, 우리는 지금 어둠 속에서 벌레가 꾸는 악몽이다. 우리는 내 속에 있다. 만약 돌아가더라도 그대로 하리란 걸

그러리란 걸 깨달으면서, 우리는 이렇게 자유를 얻었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날 수 있고, 앉고 싶을 때까지 앉을 수 있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갈 수 있고, 우리는 기쁘고, 여기서 꾸물텅거리고 있다. 인간은 여기에 있다.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고 더 버티다 죽을 수도 있다. 주먹이 으스러지고 있다. 어디서 개들은 짖고 있다. 그 뜻은 이렇다. 인간들이여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라! 우리의 움찔대는 배를 적시고 있는 이것은 눈물이나 배설물이 아니다. 우리는 따라서 짖고 있다. 복수한다! 복수한다! 복수한다! 우리는 복수했다. 우리의 피로. 우리에게. 우리는 우리를 들여다보면서 머리를 흔들고 있다. 저것은 우리가 아니라고. 저것은 우리여선 안 돼! 그러나 그것이 우리라니. 우리는 관 속에 있다.

우리는 읊고 있다. 우리의 생각은 저 멀리 깊고 넓은 데 있는데 우리의 말은 터무니없이 짧구나.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닿을 수 없다. 아니면 우리는 지르륵 지르륵 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우리를 웃게 한다. 지르륵 지르륵.

이걸 받고 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해졌다. 받은 것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이 내 일이다. 하지만 이런 걸 정말? 그러나 나는 이미 받았다. 머리털 끝까지 열이 뻗쳐 눈물이 흘러도 이걸 밖으로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밀어야 한다. 하지만... 이건 아니야... 입 속에서 세차게 말이 흐른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네가 화를 당하리라는 것이? 이토록 불행과 악이 만연한, 그리고 틀림없이 더해갈 세상에서, 네가 화를 당하리라는 것이? 그러니까, 아직은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게 무슨 뜻인지 생각해 봤어? 어떻게 이런... 이런... 이런 걸 갖고 나가라고?

다시 생각해봐. 너는 바보짓에 놀아나고 있어... 적들은 이것이 중요하다는 듯 저것이 중요하다는 듯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두고 홀린 듯이 하고 있어. 너는 낙심해서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 거야. 그게 아니야. 생각을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해. 싸우다 진 게 아니야. 싸웠던 이들은 오늘날을 위해, 사후세계를 위해 싸웠던 게 아니야. 어떤 뭔가에서 다른 뭔가로, 네가 바꾸는 게 아니야. 시간은 흐르는 게 아니야. 무한이 유한으로 바뀌는 게 아니야. 이기겠다는 생각,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고쳐먹어. 이기는 게 아니야. 거짓으로 거짓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진실은 거짓을 이기지 않아. 아니라고? 그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아니야, 그 말은 바로 그런 뜻이었어. 그 말이 그 뜻이야! 유한이 유한을 향해 나가는 거야. 나가는 거야...

그러나 너는 이미 흩어졌다. 유언처럼 된 너의 말이 계속 해변으로 도착하고 있다. 여전히 끌려가고 있고 머리 깨지고 있다. 으스러지고 있다. 어쩌면 생각을 고쳐먹어야 하는 쪽은 나인지도 모른다. 네 죽음은 멀수록 좋을 것이다. 네 죽음도 언젠가 내 머리통과 함께 흩어지고, 완전히 잊혀지는 날이 되면 좋을 것이다. 그때는 거짓도 서로를 붙들고 운다. 그들은 보여주기 위해 울지 않는다. 그냥 눈물이 흐르는 거예요, 왜 우는지도 모르고, 그들은 진실로 혼자다. 세계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세계가 그토록 쉽게 끝났다는 데에, 그들은 드디어 도달한다. 그리고 내가 읽어내려가는 것이 그들이다. 왜 이 일을 계속하느냐고? 내가 이 일을 그만둬도 누군가는 하기 때문이다. 그 한심한 생각 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도로는 여기서 끊겼고 우리는 떨어진 별처럼 쏟아져 있다.

2023년 8월 10일 목요일

공포 같은 것

내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
그는 잠을 자고 있다.
거실 소파 위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미련이다.

그 긴 것이
왔니, 하며 눈을 뜨고 내게 무언가를 묻기 시작할 때
나의 안부는 발생하는 것이다.
동그란 주먹을 쥐고 눈을 비비듯이 시작되는 것이다.

애인은 있니, 돈은 좀 있니,
기대할 때마다 무조건 나는 알았어, 알았어, 하는 것이다.
그래도 먹다 뱉은 수박씨처럼 마음의 허벅지에 와서 찰싹찰싹 달라붙는 것이다.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이토록 그는 나를 걱정하지만
이런 말을 들어도 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걸요. 그렇게 사는 게 아니라면 나는 어떻게 죽어야 합니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의 불화에 대한 것이 아니다.
둘이 살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는 거실을 나서지 않고 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의 불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기어코 그가 방으로 들어오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것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아마도 나는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인데 그저 방바닥에 누워 조용히 침을 흘리고 있는 침묵이었을 텐데.

사실 침묵 속에는 조그만 독채 하나가 있어
불경한 꿈이 칩거하고 있는 것이다.
집 안에 흙 둔덕이 있고 거기에 새가 많이 찾아오고
까마귀의 등에 까치가 올라탄 것을 그가 보게 되는 순간이 있어

꺼져 있던 형광등이 켜진 것이다.

그때 일어난 일에 대하여 나는 말을 아끼려 한다. 그러나 내가 한 일은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어 쥐 두 마리를 꺼낸 것, 그리고 쥐를 풀어 새를 쫓은 것.

그리 조용한 일은 아니었다.

쥐가 쥐의 함성을 지르고
새가 새의 박수를 칠 때,

놀란 그는 방으로 뛰어들었고 양손에 커다란 쇠망치를 들어

빨갛게
빨갛게

쥐와 새를 두들겨주었다.

다시 새로운 안부를 물을 듯한 얼굴로

팡!
팡!

두들기고 있었다.

2023년 8월 8일 화요일

초월일기 10

내가 날 배신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럼 다시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2023년 8월 4일 금요일

원뿔 같은 것

그는 살아 있다.
찻잔에 묻은 입술 모양의 얼룩이 그걸 잘 말해준다.
적당히 잊혀질 하루의 한 조각,
조각을 만지면 차가웠다. 한 주간 한파였다.
집집마다 동파가 이어졌다.
그는 이 조각을 적당히 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세게 쥐면 망가질 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질 수도,
그러나 할 수 없었다.
그는 입을 헹구러 갔다.
물을 틀면 차가웠다. 흘린 그의 일부가 역류했다.
이런 시대엔 대단히 어색하게도,
그는 이 지역에서 채취할 수 있는 돌과 나무로
손수 집을 지었는데 차돌같이 단단했던 생활은
한 조각이었다. 정말 한 조각만 남았다.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면 길고 새로운 원뿔 모양인데
그의 주장에 따르면 처음이자 마지막 원뿔이다.
그리고 그의 당부라면,
만약 여기까지 읽고 있는 당신에게,
차가운 줄도 모르고 원뿔을 만지고 싶은 당신에게,
원둘레에서 솟은 정점까지 진심으로 닦아주길.
어느 집에나 보풀 많은 수건이
하나쯤 있으리라 믿는다…….

2023년 8월 3일 목요일

18

 


프랑스의 시인 A는 자신의 나라를 떠나 벨기에로 간다. 나는 벨기에에서 태어났고, 벨기에에서 자랐으며, 벨기에를 떠난다. 그는 자신의 나라가 싫었고 자신의 시를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나라가 싫었고, 그런 나라에 태어난 게 싫었으며, 그런 나라를 떠나지 않고 있는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고, 자신의 나라만 아니면 될 것 같았고, 그걸 도피라고 부른다면 그냥 도피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았고, 그래서 그는 벨기에로 간다. 그가 벨기에가 자신의 나라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그런 기대를 했을 수도 있고 안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벨기에에서의 삶이 프랑스에서의 삶보다 약간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는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벨기에에서의 삶이 프랑스에서의 삶보다 더 각박하리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는 벨기에의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으로 강한 무관심을 받고, 그건 프랑스에서 받은 무관심보다 더한 것이고, 그래서 그는 여기 오는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다. 아무튼 그는 서서히 모든 벨기에 사람들이 자신을 적대시하는 듯한 기분을 받기 시작한다. 그가 빵을 사러 가면 가게 주인이 자신에게 인사조차 해주지 않았고, 가게 주인은 그날 저녁에 술을 너무 마셔 숙취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가게 문을 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열지 말자고 결론을 내린 후, 가게까지 왔다가 발걸음을 돌릴 단골 손님들을 생각하며, 숙취가 심하지만 가게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그가 거리를 걸어다니면 모두가 그를 향해 비난의 눈빛을 보내는 듯 했는데, 나는 비둘기가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 비둘기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했기 때문에. 그는 나중에 가서는 차마 길을 걸어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자신의 시를 알아봐주지 않은 것은 그렇다고 쳐도 그런 식의 적대감은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머리가 텅 비어 있고, 그래서 자신의 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다. 그는 그날 이후에 매일 매일 벨기에 사람들의 문제점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그는 어느 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벨기에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책을 떠올리며 약간 미소지었다. 벨기에에 와서 거의 처음 보인 진정한 웃음이었다. 그는 벨기에 사람들이 이 웃음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레스토랑 직원들을 친절하게 대했는데, 그것은 불쌍한 벨기에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었다. 저 손님이 마지막 손님이었으면 좋겠다. A는 도무지 그 책을 끝낼 수 없을 만큼 매일매일 벨기에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벨기에 사람이 아니라 프랑스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벨기에 체류 동안 그에게 일어난 변화라면 변화였다. 비둘기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 것은 어떤 먼 친척이었는데, 그는 유럽을 여행했고, 유럽을 일주일 만에 일주했고, 유럽에 대해 다 아는 듯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내가 벨기에의 수도가 어딘지 물어보자 취리히라고 대답해 나는 벨기에의 수도가 취리히가 아닌 건 알지만 그 습관을 버릴 수가 없어서, 누군가 벨기에의 수도가 어딘지 물어보면 취리히라고 말한다. 내가 벨기에가 수도가 취리히라고 말할 때 나는 내가 지금은 이름이 기억도 안나는 그 먼 친척이 된 것 같다. 

2023년 8월 2일 수요일

콘테나-추레라

사람을 욕한다는 것은 이제 지겨워졌다. 난 사람 욕하기를 그만두고 싶다. 사람을 욕하는 사람을 욕하는 사람을... 말할 것도 없이 여기서 마주치는 것들이란 다 개새끼 아니면 버러지들이다. 죽이고 싶은 녀석들 콘테나로 한가득이다. 아니야, 난 그러지 않기로, 사람을 욕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죽이면 될 거 아닌가? 나는 입을 다물고 있다. 콘테나 속에는 개버러지새끼들, 추레라엔 내가 타고 있다. 운전대를 잡은 나는 음악을 틀었다. 듣고 싶지 않지만 마음이 약해지지 않도록, 힘을 낼 수 있도록 음악을 틀었다. 마음이 약해져 사람 욕을 시작하지 않도록. 그렇게 가는 중이다. 쓰레기장으로다. 죽이고 싶은 것들 파묻어버리러다. 이것은, 이 도로는, 이 운반은, 보람도 뜻도 결과도 없는, 조용하게 확실하게 마음들과 삶들을 파괴 중인 전쟁이다. 누가, 무엇을, 누구에게, 어디서,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바로 이렇게다. 죽이고 싶은 것들...

그런데 이 세상에, 콘테나에 꽉꽉 처넣은 저것들보다도 더 증오스러운 치들이 있다. 개작살이 나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런 건 아주 모르는 듯이 굴고 있는 녀석들, 죽이고 싶은 것 파묻어 버리고 싶은 것 따위는 없는 듯이 구는 그런 녀석들이 있다. 그래? 그런 곳이 있다는 거야? 너희는 그런 곳에 있다는 거야? 진실로 나는 베인 풀더미처럼 선한 이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여기에 있고 가까이 있는 이들, 말이 없는 이들, 그런 이들이 아니라, 쓰는 이들을 말하는 것이다. 죽이고 싶은 것 따위 없는 듯이 쓰고 있는 이들, 내가 증오하는 이들이 그들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내 마음이 꼬인 세상에서 같이 꼬였다면, 그들의 마음은 꼬인 세상을 돌리고 있다. 어떻게 너희는 그럴 수 있는 거야? 어째서 그렇게? 우리 중 가장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너희가? 쓸 줄 아는 너희가! 우리...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그래도 서로를 매달고 있다. 쓰레기 같은 노래를 들으며 함께 쓰레기장으로 가고 있는 처지다. 나만 죽이고 싶은 것들이 있는 게 아니다. 나를 죽이고 싶은 이들이 각자의 콘테나에 나를 싣고 가는 중이다. 우리는 서로 죽이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수습해주고 싶은 것들이기도 한 셈이다. 그런 마음이 그래도 우리 사이에 통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교차로가 있다. 매일 지나며 어두워지는 마음, 날이 갈수록 어두워지는 마음이 있다. 고개를 빼고 사이드미러를 들여다보면 거기 버러지의 홑눈 겹눈이 있다. 이것은 어둠의 교육이고 훈련이다. 그러나 이런 건 아무래도 좋은 그 녀석들... 이런 것 따위 배우지 않는... 배울 필요도 없다는 듯이 구는... 그 녀석들은 정말이지 참아줄 수가 없다. 당연히 참아주기 어렵다. 매달아 끄는 게 아니라 쳐버리고 싶은 녀석들. 하지만 유령인 녀석들. 도로 한가운데 멍청하게 서있는 한 녀석을 피하려다 뒤집어질 뻔도 했다. 그렇게 죽이고 싶은 것들을 쏟아버리면 부서지도록 이를 깨물고 도로 주워야만 한다. 여전히 녀석은 도로 한가운데 서있는 동안에...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죽이고 싶어 하면? 오히려 좋아하지. 울면서도, 흐뭇하게 여긴다는 걸 안다. 핍박받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들! 그게 그들의 진짜 목적이다. 나는 안다. 그래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쓰려 드는 걸까? 이건 정말 미칠 노릇이다. 그래도 우리는 하여튼 꾹 참고 있다. 녀석들이 거의 없는 듯이.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못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들, 쏟아진 개소리 위에 비린내 나는 우리를 쏟아붓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냐? 있다는 말이냐? 우리도 진실로 이 도로를 벗어나 떠돌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지만 아니다. 그들처럼은 싫다... 이 도로, 이 밤의 도로를, 이걸 당겨서 끊어버릴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지만 어떻게? 하지만 어떻게? 아무리 어려워도 추레라의 후진보다 어려울까? 곧 나들목을 돈다.

2023년 8월 1일 화요일

23년 7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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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총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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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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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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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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