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1일 일요일

햄버거성

낭비되고 있었다. 낭비되고 있다. 이 장면은 아주 느리게 재생된다. 당신은 얼음도 넣지 않고 코카콜라 레버를 주욱 잡아당기고 있다. 원수의 볼살이라도 되는 걸까? 떨어진 콜라는 가득 차오른 컵을 비켜선다. 당신은 레버를 놓아주지 않는다. 콜라가 낭비되고 있다. 그것은 하수구로 곧장 들어간다. 들어가서 나오지 않는다.왜 안 나오는 거지? 당신은 레버를 당겼다 밀었다 반복하며 큰 소리로 불평한다. 당신은 따라 들어가 한참을 흐르고 있다.
 
햄버거성에 콜라가 사는 일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차피 뱃속에서 섞인다고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은 대장 속 용종을 움켜쥐며 겨우 흐름을 멈춘다. 햄버거성이군. 햄버거성이야. 당신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그리고 다 알았다는 듯이 안도하며 중얼거린다. 유감스럽게도 이곳에서 당신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햄버거성은 전쟁 중이다.
누가 누구와 싸우는지는, 글쎄, 당신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지 않나. 어차피 당신도 싸우게 될 것이다. 싸우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생각할 것이다. 싸우기 전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 죽거나 죽인 후에는 다 상관없어질 테지만 이 부분은 내가 특히 관심 있으니까.
 
시나리오는 군웅할거다.
군웅할거는 프리 포 올이다.
 
당신은 조금 더 쉽게 생각하기로 한다. 당신은 간호사의 목소리를 하나 둘 까지 듣고는 깊은 잠에 빠진다. 자는 동안 당신의 몸은 패티로 이루어져 있다. 패티를 재조립하는 일은 쉽지 않다. 최상의 조합이란 재료가 아니라 순서에서 온다. 고기 패티를 어느 위치에 두느냐의 문제, 내가 아는 바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토마토는 아래로 축 늘어진다. 소스는 침착하고 빵은 늘 견고하다. 그러나 고기 패티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짐작하기 어렵다. 특히 이렇게 주문이 많은 날이라면
 
내시경 다 끝나면 성시경 되나요 주시경 되나요?
 
당신은 잠꼬대를 시작한다. 약은 힘이 강하다. 정말이지 당신과 이렇게 시작하고 싶지는 않았다.
 
호스 몇 개 더 가져오라고, 내가 말한다.

2017년 12월 30일 토요일

요정

인간 외 지적생명체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유인종(類人種, The humanlikes)이라는 명칭은 적절치 않다. 존재양식이 다양한 만큼 외양상 인간과의 유사성이 적은 종도 많고, 종목간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기능면에서 인간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유의미한 지적이지만 여기에서는 대체어로 추천되는 대화종(對話種, The Conversables)보다 유인종이라는 옛말을 쓰기로 한다. 다소 고정된 <관점>이 있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유인종의 대강을 점하고 있는 존재군은 단연 요정이다. 곤충이 종 다양성에 기여하는 바와 같다. 몇 쌍의 다리와 날개, 삼부로 나누어 파악 가능한 몸통 구조 등의 조건 안에서 곤충들의 생김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요정들도 몇 가지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다. 모든 벌레를 곤충이라고 하지는 않듯이 모든 유인종을 요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날개를 가졌는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같은 것은 (비록 많은 요정들이 그런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그 존재가 요정이라는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요정을 요정이게 하는 요건들은 시점에 얽혀있다. 다음의 질문들에 긍정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현재 인간이 아닌가?
2. 과거 인간이었던 이력이 없는가?

(이처럼 분류법이 완전히 인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에도 유인종이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기만적이지 않은가? 개인적인 불만이다.)

장래에 인간이 될 가능성의 유무는 요정과 비-요정(임시로 조어된 개념이기 때문에 하이픈을 넣는다)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어떤 요정들은 인간이 된다. 그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은 그들 중 일부가 인간으로 변태할 수 있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특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과 부분-혹은 전체적으로 유사한 외양을 지녔고, 인간과 소통 가능하면서-’라는 숨은 전제가 있다. 서두에서 말한 유인종/대화종 명칭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다만 요정 연구사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 부분이 명문화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인간에게 우호적일지라도 인간과 비교당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요정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추측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숨은 전제를 모르고 요정을 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 같은 분류기준이 체계적이고 정확하지는 못하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폴 버니언이 계통상 구두수선공 요정들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한 쪽은 성냥갑 안에 한 다스가 들어가지만 다른 한 쪽은 새끼발톱 위에 성냥갑 한 다스를 올리고도 남는다. 그런 그들을 달리 무엇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요정들의 외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특징들은 요정과 비-요정을 가를 때보다 요정들을 한층 더 세분하고자 할 때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같은 분류법은 상당히 재미있다. 가령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육안식별가능성을 두고도 보통 인간의 눈에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렇지 않은 경우 전문가의 눈으로는 인식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 육안식별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 요정들끼리는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크기를 기준으로 요정들을 재분류할 때는 자연히 공룡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크거나 작아봤자 미터 단위 안팎을 오가는 인간들과 달리 요정들은 밀리미터 단위에서 킬로미터 단위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최다개체가 분포되어 있는, 달리 말해 양적으로 요정의 대표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크기는 6:1 스케일이다. 인형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이즈와 같다. 우연이 아니라면 상상력을 발휘해 볼 만한 공통점이다.

2017년 12월 27일 수요일

나무성

이거 컨셉이죠?
 
아닌데요.
 
그럼 사칭?
 
뭐하러.
 
그거야 저는 모르죠.
 
저도 몰라서
 
햄버거
햄버거를 생각한다. 이 별의 숲은 사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무언가를 깎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기척은 없다. 이 별의 숲의 나무들은 알아서 자란다. 자라다 말다를 반복한다. 비물리적으로 자라므로 시간과 속도는 자람과 무관하다. 이것이 이 별의 숲의 나무들의 잎사귀를 저 별의 당신이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오지는 숲이군.
 
당신은 감탄부터 하고 본다. 그리고 나서 이유를 생각한다. 왜 자라는 거지? 어떻게 자라는 거지? 나는 지금 당신이 이유를 생각하는 이유를 헤아리고 있다. 당신의 생각에 보조를 맞추며. 당신의 미간에 몇 겹 주름이 생길 때 나는 약 올리듯 자란다. 나는 당신이 놀라는 게 좋다. 당신의 방에는 저 별의 나무로 만든 것이 가득하다. 그들은 죽은 척 하고 있다. 어느 화창한 날 당신을 크게 놀라게 하려고.
 
이것은 성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명확히 하자. . 건축 자재는 다양하다. 나무가 가장 흔하지만 아직까지 남아 있는 나무성은 드물다. 드물게 남은 나무성은 굳건하다. 김무성처럼. 이것은 농담이 아니다. 불타는 나무성을 본 자는 그것을 평생 떠올리게 된다. 죄악감. 나무는 죽을 때까지 타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무에게는 삶이 없듯이 죽음도 없다. 나를 본 자들은 이미 죽은 후였다. 당신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나는 가지 두 개를 움직여 당신의 입을 벌려주었다.

2017년 12월 1일 금요일

11월 더미 태우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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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를 해야겠다. 뭘 쓸지는 아직 생각해내지 않았다. 사실 쓸 만한 것은 전부 다 쓰고 있기 때문에 더 쓸 것이 없는 듯도 하다. 근 몇 년 동안 보잘것없는 밑천을 거의 다 쓰기도 했다. 그리고 거지 상태로, 다음과 같은 뭔가를 쓰고 싶다. 텀은 월 2회. 연속성이 있을 것. 시의성도 조금. 읽기에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한 번 읽고 치워 버릴 만하지도 않게. 야구카드 정도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 일기와 구분된다. ~했다와 ~할 것이다와 ~야 한다와 ~하고 싶다가 뒤섞인 뭔가가 아니다. 패턴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반복적인 뭔가였으면 한다. 다른 데서 쓰고 있는 다른 것들과는 무관해야 하고, 남이 만든 뭔가와도 무관해야 한다. 이거는... 여기다 이렇게 적었다는 거는 결국 당분간 안 쓰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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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이 곡물창고 1년째다. 그날은 곡물창고의 날이다. 쌀, 보리, 콩, 조, 기장, 수수, 밀, 옥수수 따위 곡물로 만들어진 음식을 챙겨 먹고 밤에는 곡주를 마신다. 빼갈이 좋겠다. 보드카도 좋다. 그날은 고기를 삼간다. 굳이 먹어야 한다면 새고기만 가능하다. 글도 몇 자 쓴다. 딱 몇 자다. 문단은 안 된다. 이제는 中華時代, 이렇게. 향을 피우든가 향초를 켜고 누워서 냄새를 맡는다. 전깃불을 꺼야 한다. 누구도 만나지 않고. 그러다 잠들 것이다. 곡물창고는 긴 기획이다, 괜히 구글에 기댄 게 아니다, 앞으로 최소 5년은 기본으로 간다, 당연히 건립일도 챙겨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리고 경작지 꿈을 꾼다. 도중에 일어나 초를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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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이나 칼을 차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은 날이 추워지면서부터 들었다. 그것은 모두가 잘 볼 수 있도록 허리에 차야 한다. 홀스터나 칼집. 무거운 신발도 신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걸어가는 것이다. 집까지. 어디까지든. 하지만 요즘만치 추우면 외투를 입어야 하고 외투 위에다 벨트를 찰 수는 없다. 거추장스럽겠지만 소총 메기는 대안이 될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소총을 멨으면 좋겠다. 내가 갖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도록. 내 소총이 있다면 이래저래 꾸미고 싶다. 스티커도 붙이고 스트랩도 예쁜 것으로. SMG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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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 딱 걸고 비밀스럽게 시험적으로 원고 모집을 해봤는데 투고는 없었다. 어느 정도 될 것 같으면 고정 코너로 삼으려고 했다. 무슨 만 원 정도로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이었다. 장난으로라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장난으로도 없었다. 삼만이면 될까?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런 종류의 일에 대한 나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하기 어려우므로 역시 좀 아리송하다. 아마 안 될 것 같다. 어쨌든 내가 딱 그 정도 느낌, 월 만 원어치 느낌으로 쓰고 있기에 그 넘게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돈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공고公告를 바로? 이쪽도 안 오면 끝이고, 와도 좀 문제다. 그냥 청탁이 깔끔할 수도 있겠다. 무슨 청탁을 말하는 건가? 가상의 누군가에게 청탁을 하는 식으로 해서... 이런 건 어떤가? 악마에게 청탁을 거는 것이다. 정말 그런 식이라면 유치할 거고, 골자가 그렇다는 얘기다. 사타닉한, 최악의 적들이 있고, 그들의 옆에 서서, 차분하게 최악의 주장을 펼쳐보는 것이다. 혐오와 살인, 자살과 전쟁, 강간과 방화 등의 이런저런 죄악을 합리화하고 변호하는 것이다. 교인의 옆에서 노인의 옆에서, 군인의 옆에서 선생의 옆에서, 남자 옆에서 여자 옆에서, 사장 옆에서 회장 옆에서... 악마보다야 나은 것을 고안해야 할 것이다. 이건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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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에는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어진다. 취미마저 쉬고 싶다. 그러고 보면 연말이 아닌가? 연말이라면 역시 송년회다. 토탈브레이크 송년회를 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눕거나 앉아서 하고 싶은 걸 하다가 알아서 밥 먹고 스스로 잠들며... 모이지도 않는다. 이건 곡물창고의 날과 함께 진행하면 될 것 같다. 다른 기획도 있다. 하나는 불의 송년회다. 원탁에 그냥 둘러 앉아 각자 가지고 온 초를 꺼내놓는 것이다. 다같이 켜도 좋고 두어 개만 켜도 좋다. 앞에 물, 좋은 술, 좋은 차, 그리고 컵과 잔을 두는 물의 송년회도 있다. 마음껏 마셔도 좋다. 뱃지와 돌멩이, 장신구, 주사위 따위를 늘어놓고 이야기하는 광물의 송년회, 말린 고기와 과일, 과자를 두고 영상물을 보는 생물-번개의 송년회, 향을 피우고 담배를 피우고 음악을 트는 공기의 송년회, 이 다섯 송년회를 다 함께 해서 지구별 송년회, 그리고 거기에 몇몇 외계 문물을 가져와 교류하는 것까지 더하면 코스모 송년회다. 곡물창고의 날로 시작해 월화수목금토 매일 저녁 60분씩 해 가지고 마지막 토탈브레이크까지 굿바이 코스모 송년주간으로 해도 되겠다. 쓰고 나니 벌써 이미 한 기분, 충만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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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아주 춥고, 나는 오두막을 갖고 싶다. 바깥의 일이 다 고통스런 나날들이다. 내 바람은 일단 오두막에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순 없다. 바구니 짜기 같은 소일을 하면 좋겠다. 손이 시렵지 않겠나? 발로 할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발도 그러나 시려울 것이다. 발을 집어넣을 수 있는 담요가 있어야 한다. 손도 집어넣고. 머리도 집어넣어야 한다. 외풍에 대한 방비가 철저히 이뤄진 오두막이고 그 방비는 내가 한 것이다. 무지개천 같은 것으로. 오두막 안에는 난로가 있고 연통이 있다. 난로는 켜지 않았다. 땔나무가 없기 때문에. 그래도 바깥보단 따뜻한 편이다. 웅크리고 있자니 바람 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통하는 바람인가? 바깥은 보이지 않는다. 다 가려놓았기 때문에. 오두막 어딘가에 쥐가 있는 것 같고 문간에는 총이 기대어져 있다. 그런 식이다. 당연히 그곳에서 송년회를 하고, 그 오두막을 떠나며, 그 오두막이 송년회만을 위한 오두막, 송년장이었음이 밝혀진다.

*
소반 위의 쥐잡이는 그사이 살을 더 찌운 것 같다. 딱 차게 들어가 앉은 택배박스는 역시 주운 것이다. 받는 이 칸에 유명한 가수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가수가 근방에 산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혹시 하는 생각에 처분하지 못하고 뒀던 것이다. 혹시... 이사야는 그 속에서 눈을 감고 고개를 세운 채 미동도 없이, 뭔가를 깊고 그윽하게 생각하고 있는 눈치다. 그가 꾸고 있을, 반쯤은 추억이고 반쯤은 예언인 폭풍 같은 꿈을 상상해 본다. 최근 그가 창고 안에서 번개처럼 뛰어다니는 걸 자주 봤다. 쫓았던 것이 쥐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날이 추워지면서 하여튼 뭔가가 들어온 것이다. 매양 그러는 걸 보면 잡기에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젖은 깃발처럼 흔들리던 누런 꼬리가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어린 시절 들었던, 고양이의 꼬리를 붙잡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 척추가 빠진다는 이야기. 그건 관리인의 손도끼를 만지다가 떠오른 것이다. 손때를 탄 자루가 딱 겨울 이사야의 꼬리만큼 도톰하다. 관리인은 뭐 한 십 몇 년 됐다고 했다. 이것으로 어제 나무를 해 왔다. 나무를 했다기엔 민망한 정도지만. 오늘 돌려주러 갔는데 관리인은 자리에 없었고, 대신 못 보던 포대가 있었다. 이사야를 위한 사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퍼뜩 든다. 떠들어 보진 않았다. 그 사료를 먹고 힘이 나서 그렇게 뭘 쫓아다닌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은 이사야의 일이다. 마구 뛰어다닌 끝에 배불리 먹고, 불가에서 꿈꾸는 일. 그러고 보니 오늘이 2일이 아니라 1일이다. 그래서 관리인이 없나? 하지만 불은 이미 피웠다. 올해도 곧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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