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30일 토요일

요정

인간 외 지적생명체를 가리키는 용어로서 유인종(類人種, The humanlikes)이라는 명칭은 적절치 않다. 존재양식이 다양한 만큼 외양상 인간과의 유사성이 적은 종도 많고, 종목간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기능면에서 인간보다 우세하기 때문이다. 유의미한 지적이지만 여기에서는 대체어로 추천되는 대화종(對話種, The Conversables)보다 유인종이라는 옛말을 쓰기로 한다. 다소 고정된 <관점>이 있다는 것은 편리한 일이다.

유인종의 대강을 점하고 있는 존재군은 단연 요정이다. 곤충이 종 다양성에 기여하는 바와 같다. 몇 쌍의 다리와 날개, 삼부로 나누어 파악 가능한 몸통 구조 등의 조건 안에서 곤충들의 생김이 각양각색인 것처럼 요정들도 몇 가지 구성요건을 가지고 있다. 모든 벌레를 곤충이라고 하지는 않듯이 모든 유인종을 요정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날개를 가졌는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같은 것은 (비록 많은 요정들이 그런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그 존재가 요정이라는 사실을 담보하지 않는다. 요정을 요정이게 하는 요건들은 시점에 얽혀있다. 다음의 질문들에 긍정으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1. 현재 인간이 아닌가?
2. 과거 인간이었던 이력이 없는가?

(이처럼 분류법이 완전히 인간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에도 유인종이라는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은 기만적이지 않은가? 개인적인 불만이다.)

장래에 인간이 될 가능성의 유무는 요정과 비-요정(임시로 조어된 개념이기 때문에 하이픈을 넣는다)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다. 어떤 요정들은 인간이 된다. 그에 대한 연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은 그들 중 일부가 인간으로 변태할 수 있다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특징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과 부분-혹은 전체적으로 유사한 외양을 지녔고, 인간과 소통 가능하면서-’라는 숨은 전제가 있다. 서두에서 말한 유인종/대화종 명칭의 근거가 되는 기준이기도 하다. 다만 요정 연구사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이 부분이 명문화된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아무리 인간에게 우호적일지라도 인간과 비교당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 요정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추측 가능하다. 그럼에도 이 숨은 전제를 모르고 요정을 대하는 사람은 없다.

이 같은 분류기준이 체계적이고 정확하지는 못하다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들에게 폴 버니언이 계통상 구두수선공 요정들의 친척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한 쪽은 성냥갑 안에 한 다스가 들어가지만 다른 한 쪽은 새끼발톱 위에 성냥갑 한 다스를 올리고도 남는다. 그런 그들을 달리 무엇으로 나눌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요정들의 외양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특징들은 요정과 비-요정을 가를 때보다 요정들을 한층 더 세분하고자 할 때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같은 분류법은 상당히 재미있다. 가령 어떻게 생겼는지보다 먼저 고려되어야 할 육안식별가능성을 두고도 보통 인간의 눈에 보이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렇지 않은 경우 전문가의 눈으로는 인식 가능한지 그렇지 않은지, 육안식별이 전혀 불가능한 경우 요정들끼리는 볼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크기를 기준으로 요정들을 재분류할 때는 자연히 공룡들을 떠올리게 된다. 아무리 크거나 작아봤자 미터 단위 안팎을 오가는 인간들과 달리 요정들은 밀리미터 단위에서 킬로미터 단위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 최다개체가 분포되어 있는, 달리 말해 양적으로 요정의 대표군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크기는 6:1 스케일이다. 인형 시장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장 다양한 종류의 피규어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이즈와 같다. 우연이 아니라면 상상력을 발휘해 볼 만한 공통점이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