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9일 목요일

공짜책

댓글들을 모아 책으로 내겠다는 것은 미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친 세상에 걸맞은 미친 책이, 미친 원고가 필요했다. 눈길을 확 잡아끄는 글, 붙은 듯이 뇌리에 남는 글, 그날 잠을 못 이루게 하는 글, 그런 글을 찾다 보니 결론은 댓글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이 댓글들보다 추하고 흉하고 무섭고 로맨틱한 글을 읽어보질 못했다. 댓글은 저 고딕문학의 정통한 후예, 최첨단 후예다. 댓글들을 읽을 때마다 문자 그대로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때마다 반드시’라는 건 정말 대단한 거다. 그 어떤 위대한 작가라도 한 번은 실패한다고 하지 않나? 댓글은 그 어떤 대문호도 아닌,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미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손으로 완성해낸... 아니, 완성은 못한, 끝없이 쓰이고 있는 불멸의 명작, 끝없이 쓰이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 단점도 없는, 그래서 끝이 나기만 한다면 성경에 비견할 만한 원고다. 왜 아닐까! 이 ‘공짜책’ 출판사를 만든 계기가 된, 여전히 잊을 수 없는 댓글 하나가 있다. 그대로 옮길 수는 없고 내용만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지금 이 나라의 책값은 너무 비싸다, 정부가 이익집단들에 휘둘려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이상한 정책을 자꾸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책값을 비싸게 만드는 것은 사실 이 정권 우민화 기조의 일환이다, 우리는 여기에 맞서야 한다... 맞서야 한다... 난 이 댓글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맞선다니 어떻게, 누구에 맞선다는 것일까? 그것은 알 수 없었다. 그게 중요한가? 맨날 별 중요하지도 않은 문제들에 죽자 사자 매달려있는 쓰레기 같은 원고들만 들여다보던 중 마주친 그 댓글에서 느낀 청량감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과감함, 그 호쾌함! 이런 글을 두고 일필휘지라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야말로 우리 공짜책 출판사의 정신이었다. 우리 출판사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우리의 정신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맞서야만 한다! 우리의 첫 번째 책은 이런 식으로 우리를 감동시킨 댓글들을 800매 정도 모은 것이었는데, 500부를 찍어 90부 정도 힘겹게 공짜로 배부하다가 깨달았다. 우리의 책은 굳이 종이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두 번째로는 좀 더 구체적인 테마를 정해서 모은 댓글들을 전자책으로 만들어 배부했는데, 도합 20종을 내고 총합 9회 정도 다운로드된 시점에 또한 깨달았다. 우리의 책이 굳이 다른 책들과 함께 취급될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세 번째 책은 웹페이지 형태로 만들어 누구나 접속하여 읽을 수 있도록 만들었고, 네 번째 책은 일종의 게시판에 게시물 형태로 만들어 9000개까지, 그다음엔 원글과 댓글을 함께 올려보고, 그 다음엔... 우리가 최종적으로 깨달은 것은 굳이 우리가 책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댓글은 쓰일 것이고 그것이 계속 책으로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우리가 이제 마지막으로 만들고 있는 책은 ‘댓글을 책으로 만드는 백만 가지 방법’이다. 내가 ‘우리’라고 하는 것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2022년 9월 21일 수요일

헛간

농사를 짓다 보면 농사에서 생기는 여러 가지 부산물이나 농기구 등을 보관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비를 맞히지 않으려면 지붕이 있는 자리가 필요한데, 이때 사용하는 곳이 바로 헛간이다. 헛간에는 짚 뭉치나 건초, 땔감, 시래기, 콩깍지, 말린 깻단, 농기구, 멍석 그리고 오줌장군이나 구유 등을 보관하기도 하는데, 헛간에는 앞쪽으로 문짝이 없는 게 특징이다. 말하자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헛간」 항목


곡물창고에서는 독자 투고를 받고 있습니다. 필자로 등록하고 싶지는 않지만 ‘어쩐지 곡물창고에 들어갔으면 싶은 뭔가를 지었다’면, ‘뭔가를 짓다 보니 어쩐지 이것이 곡물창고에 들어가도 될 듯싶다’면, ‘전에 지은 게 있는데 어쩐지 곡물창고에 어울리는 것 같다’면 투고해주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든 좋고, 이미 다른 곳에 공개되었어도 상관없습니다. 원고는 별다른 선별을 거치지 않고 일주일 단위로 취합하여 선착순 2편을 [헛간] 태그로 게시합니다. 선착순에서 밀렸다면 투고가 없는 주에 게시합니다. 투고하기 전에는 반드시 안내 페이지를 확인하십시오. 도대체 누가 투고를 하고 싶어한답니까? 바로 당신: 작자명과 소개말은 아래 예시와 같이 들어갑니다.






예시) 작자명

예시) 관리인은 취미로 창고를 관리합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것은 투고자를 위한 예시용 소개입니다. 소개말은 쓰지 않아도 좋습니다. 소개한다면 어떤 소개든 좋습니다. 메일이나 홈페이지, SNS 주소 같은 것도 쓰든 말든 상관없습니다. 소개는 대체로 이와 같은 모양으로 들어갑니다.
hellgoddgan@gmail.com

2022년 9월 17일 토요일

부엉이 학교

밤이 되자 부엉이들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부엉이는 낮 동안에 날아다니고 밤에는 나뭇가지 위에서 잠든다. 잠든 부엉이는 한쪽 눈을 뜨고 있기도 한데, 조명이 부족해서 여기까지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는 기숙사 안이고 늦은 시간까지 마이는 미술 주간 과제를 하고 있다. 주간이라는 것은 이 학교에서 정해 놓은 학사 일정이다. 종종 인문학 구간이 될 때도 있다. 적당히 부유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마이는 기숙사 신청을 했을 때 합격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경쟁률도 셌을뿐더러 집이 그리 먼 지역에 있는 것은 아니라 가산점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숙사에 붙었을 때 마이는 기분이 좋았다. 기숙사 건물이 좋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었고. 실제로 와 보니 그건 사실이었다. 마이는 신입생이고 선배와 2인 1실을 썼다. 선배의 이름은 나오였고 마이에게 나긋나긋이 대했다. 마이는 조금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고 그건 선배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선배는 은을 다루는 세공 기술 클래스였고 마이는 반짇고리에 든 물건들을 모두 다루는 클래스였다. 클래스라고는 하지만 그건 꽤 가변적으로, 자주 변했다. 이 학교의 모토는 학생들을 경쟁시키지 않는 거였다. 따라서 이상한 제목의 클래스도 갑자기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곤 했다. 클래스는 말하자면 시편들의 제목을 보는 것 같기도 했고 그것을 전문적으로 고려하는 행정실 인력이나 외부 인원도 있었다. 클래스의 인원은 대체로 한 명에서 세 명 정도까지였고 인기 많은 클래스는 일곱 명까지 됐다. 학생의 수보다 개설된 클래스의 숫자가 더 많았기에 수강생 0명의 클래스도 있었는데 그런 클래스들도 폐강되지 않고 대기 클래스 목록에 들어가 수강 신청을 한다면 수업이 시작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강생이 한 명이라도 생기는 것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클래스실 하나를 받고 연구비가 지원조로 나왔기 때문이다(수강생이 딱 한 명 있더라도 연구비는 똑같이 나왔다). 외부의 학교와는 조금 다른 이런 제도는 이 학교를 독특하고 매력 있게끔 보이도록 했다. 여기에 입학할 수 있는 조건은 하나였는데, 그건 학생들이 각각 수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시험 같은 것을 볼 때도 있었고 그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포트폴리오를 검토하도록 하거나, 시험 강의를 하게끔 했다. 학교에서 모토로 정한 것은 경쟁을 시키지 않는 것이었으나 입학생들은 경쟁을 거친 한 분야의 숙련자들이라는 점에서 이 학교의 제도는 모순된 데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경쟁을 거치지 않고 입학한 이들이 경쟁적인 시스템 안에서 좋은 성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 등을 언급하며 이 학교를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꼭 성과라는 것으로 인해서 그것에 대해 비난할 구실을 만든다는 것은 좀 어떤가 싶기도 하다. 마이의 생각에 그런 연구 결과도 일리가 있는 게, 경쟁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상대적으로 소모된 사람들이 아니었고, 따라서 치열한 교과 과정에 자신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이는 좀 쉬고 싶었다. 마이가 생각하는 이 학교의 분위기는 평안과 장난스러움 같은 것에 가까웠다. 마이는 이 학교가 마음에 들었고, 이 학교에 들어오는 학생들은 4년 동안 8개 정도의 클래스를 만들어내야만 했는데, 그건 입학시험 때 치른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파생된 클래스여도 좋았고 다른 분야도 허용이 됐다. 다만 클래스 개설 심사의 경우 꽤 엄격했기 때문에(이것이 이 학교의 본격적인 교과 과정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자신의 전문 분야 안에서 개설하는 게 큰 힘 들이지 않고 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방법이었다. 초대 이사장은 이 학교 부지 안에 부엉이들을 데려와서 따로 조련사들을 두고 교정 내에서 밤이면 부엉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게 부엉이는 이 학교의 마스코트가 되었고 입학식 때마다 학생들, 그러니까 신입생들은 부엉이 하나씩을 배정받고 왼쪽이나 오른쪽 어깨에 부엉이를 올려놓고 있어야만 했다. 처음 보는 부엉이인 데다 그것과 접촉하고 있어야 하니 아무리 잘 길이 든 부엉이들이라도 분위기는 부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부엉이 조련사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은 자주 보이는 광경이었다. 후-웅 하는 부엉이들의 울음소리가 학장의 연설이 끝나면 나오는 것으로, 입학식은 항상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에게 배정되는 부엉이들의 나이는 2~3살 정도였고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부엉이를 물려주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생당 부엉이를 하나씩 배정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학교에 입학하면 길이 든 부엉이를 이용해 학교 근처에서는 편지를 주고받을 수도 있었다. 마이는 입학식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책상 위에 엎어져 누웠다. 부엉이의 날갯짓에 뺨을 맞아서 선배들이 웃음을 지었던 그 일. 마이가 시험을 본 분야는 글쓰기와 반짇고리 다루는 법이었고 두 개 다 합격해서 좋은 성적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기숙사에 합격한 데에는 그런 점이 작용한 것 같기도 했다. 각각 한 분야의 수업을 맡은 학생들은 수업을 그들 내에서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시니어 클래스라고 해서 학교와 계약한 졸업생들이 주관하는 수업도 있었다(다만 재학생들의 것과 비교해서 인기는 비슷한 정도였다). 초대 이사장이 부엉이를 좋아했던 건 현자들이 부엉이를 좋아한다는 다소 흔한 속설 같은 것 때문이었는데, 그것도 꼭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현자인 마이도 부엉이를 마음에 들어 했으니까. 학생들에게 배정되는 부엉이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약속되어 있었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딱히 불러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숲에서 살았다.

2022년 9월 16일 금요일

수해

드넓은 수해가 접근을 꺼리는 듯도 한데 그곳에 자리 잡은 어두움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것들을 가려준다. 원숭이 무리가 던지는 플라스틱 물건들을 맞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캠프에는 몇 사람이 남아 있다. 내가 혼자 온 것은 작은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원숭이 한 마리가 보인다. 원숭이의 뒤로 허공에 마법진이 생기고 곧이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 하나가 이쪽에 날아온다. 이곳은 쓰레기장으로도 유명하고 중요한 식생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약 19년 전 이곳에서는 생물 재해가 있었다. 그다지 유명한 얘기는 아니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인간의 나쁜 마음이 중첩된 결과라던데(아이한테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으레 그렇듯 앞뒤가 잘린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어느 프랑스 철학자의 말대로 최악의 가능성, 가능한 것 중에서 이쪽에 불리한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것은 자기 보호라는 것을 하는 국가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여기에 다국적 관할 기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나도 거기에 속한 몸으로서 오늘 그곳의 사람들과 다툼을 벌였던 이유는 다소 심기가 상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마법에는 촉매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촉매를 도난당하는 일이 있었다.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채로 우리는 모여 있었는데 한 사람이 명확하지 않은 근거로 내 옆 사람을 지목했다. 그 시간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알리바이가 없다는 거였다. 공교롭게도 우리 중 알리바이가 없는 건 그 사람뿐이었고 내가 나서서 그를 변호했다. 그것은 곧 다툼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각자 상한 마음을 가진 채로 흩어지게 되었다. 내 생각엔 원숭이 중 하나가 범인인 것 같았는데 그 의견을 사람들한테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접 물어볼 생각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아까 나에게 플라스틱 물건을 쏘아보낸 원숭이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캠프에서 촉매가 없어진 일이 있었어. 너희 중에 하나가 훔친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맞니?” “네, 내가 훔쳤어요.” “어디에 쓰려고?” “마법을 쓰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그건 우리의 물건인데.” “훔친다면 상관없어요.” “어떻게 들키지 않았지? 분명히 알람이 있었을 텐데.” “그건 자원 낭비예요. 우리 쪽엔 그걸 무력화시킬 방법이 있으니까.” “그것도 훔친 거니?”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건 우리가 가졌던 것이니.” “그러니까 훔친 것이란 말이지?” “옛날에요.” “너희들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은 잘 이해하기 어렵구나. 아무리 그래도 남의 물건은 훔치면 안 되는 것인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원숭이는 다시 마법진을 만들어내 이쪽으로 플라스틱 물건을 던졌다. 나는 그것의 속도를 완화해 부드럽게 받았다. 그런데 그 물건 안에는(페트병이었는데) 바나나 잎이 들어 있었다. 아까 우리 쪽에서 없어진 촉매였다. “주고받기 놀이 해요.” “이걸 말이니?” 나는 내 손에 든 페트병을 들어 보였다. “아뇨. 난 던지기만 하고, 받기만 하세요.” “그게 주고받기 놀이라는 거니?” “네, 그럼요.” 원숭이가 던지는 물건은 각각 캠프에서 없어진 촉매들을 담고 있었다. “이걸로 너희가 훔쳐 간 건 다 받은 것 같구나. 훔친 거라면서. 왜 돌려줬지?” “일단 우리가 훔쳤으니까요.” “너희들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은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구나.” “우리는 누굴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돌려준 거죠.” 원숭이가 돌려준 촉매를 확인해 보니 한 번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고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곤경에 빠뜨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원숭이의 말은 정말인 듯했다. 그것들을 카트에 담아서 캠프에 돌아오자 몇 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원숭이가 훔친 거였어.” “우린 걱정했는데요.” 그렇게 말한 건 세실이었다. 테메코 군집이 내보이는 검은 탑의 형상에 대한 연구자. “왠지 뭘 하러 가는 것 같았거든.” 그렇게 말한 건 나비의 초시공간성을 연구하는 이나테였다. “우린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한 사람을 의심했어.” 그렇게 말한 건 아까 듀크를 의심했던 셀린느였다. “우리라고요? 당신이 그랬던 거겠지.” “너무 싸우지들 말게.” 테스와 피어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여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아까 전에 있었던 다툼은 거짓말이라는 양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나테와 세실은 이쪽에 앉아 있었고 셀린느가 내 앞에서 꽤나 취해 있었다. 그녀는 취한 몸짓으로 듀크에게 말했다. “설마 원숭이가 훔쳐 갔을 줄은.” “그거 사과하시는 건가요?” 누군가 옆에서 말했고 셀린느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읊조렸다. “사과가 맞을걸.” 테스와 피어는 저쪽에서 무심한 듯해 보이는 시선으로 수해가 있는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뭐가 보이시나요?” “까마귀들이 있는 것 같아.” “까마귀들이라면 없어졌을 텐데요.” “세력 다툼 이후로 그랬던 것이 맞는데. 모르지, 무슨 일이 또 일어난 걸 수도.” “한번 비춰볼까요?” “그렇게 해 주게.” 나는 마법으로 그곳을 비추었고 그러자 거기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겉보기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있는 까마귀들인 것처럼 반짝거리는 폐플라스틱 병 안의 물방울들이 이곳까지 점점이 빛나며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우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어. 그 녀석을 혼낼게.’

2022년 9월 14일 수요일

달의 나무

달의 나무에 작은 달들이 얽혀 있다. 분진을 이용한 번식은 달 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 아주 적은 확률로 가능하다. 걸을 때마다 마주치는 웅덩이들 위에 작은 달들이 떠 있다. 사찰에서 관리하는 연꽃 모양 같기도 하고. 그런 달들이 웅덩이 위에 떠 있는 이유는 작은 달들도 뜨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 있는 웅덩이를 보다 보면 으레 궁금했던 달의 뒷면을 볼 수도 있다. 작은 달들은 이 조그만 항성인 달과 똑같이 생겼다. 달의 나무는 크기만 다를 뿐인 똑같은 것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꽤나 신기한 나무라고 할 수도 있을 터이고 병맛이라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 먼바다에 이는 풍랑과 같은 모습을 빌리는 지켜본다. 달의 나무에 얽힌 달들이 달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다. 지나쳐 오면서 봤던 웅덩이들에 작은 달들이 몇 개씩 떠 있었던 이유는 빌리가 그것들을 하나씩 웅덩이 위에다 놔뒀기 때문이다. 빌리는 달의 수분을 돕는다. 달의 웅덩이에는 물이 없고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작은 달들의 웅덩이에는 달이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다고 해야 한다. 작은 달들은 동물일까, 식물일까? 빌리의 입장은 그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하나씩의 항성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구태여 나무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이 달 위에 뿌리를 내린 그 나무와 작은 달들 사이에는 동족이라 부를 만한 아무 근거가 없다. 그 사이에 가로놓인 것은 쓸쓸함이나 황량함이라는 것이고 빌리는 누워서 달의 저녁이 오는 것을 보고 있다. 여기에는 대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선을 옮기면 깊은 우주의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달에 일어난 일은 최근 지구에서 도착한 탐사 차량이 왔다 갔다는 것이다. 긴 치맛단의 옷을 입은 고아한 사람이 그 탐사 차량 위에 타고 있었는데 먼 곳에서 당도한 인간들의 착시가 공유된 것인지도 모른다. 암석 하나를 부숴서 떼어갔는데 마침 그것이 부숴준 돌덩어리를 가져다가 빌리는 깎기 시작했다. 달의 나무는 빌리가 만든 것이다. 달의 축소된 전체 모습을 깎아서 나무에다 얽어 놓은 것도 빌리가 하는 일 중의 일부이다. 그 달의 내부에는 마찬가지로 지각이 있고 맨 가운데에는 씨앗이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는 적절한 환경만 갖춰진다면 씨앗이나 그것의 부서진 분진만으로도 달에서 뿌리내릴 수 있고 번식까지도 가능하다. 빌리는 달의 치즈 같은 이야기를 믿는다. 실제로 와본 달에는 그런 게 없었지만 지금도 없어진 빌리를 찾고 있는 지구의 동지 같은 이들처럼 안 와본 곳에는 적당한 판타지가 있다는 걸 빌리는 알고 있다. 빌리가 여기서 권태로워 보일 수 있는 생활을 하는 이유는 어릴 적 읽은 동화책에서 달이 나왔었기 때문이다. 빌리는 항성인들 중 하나로 언젠가 지구에서 살았었다. 빌리가 타고 다니는 차량은 롤스로이스였고 잘 알겠지만 빌리는 큰돈을 벌었다. 이방인들이 가득한 지구에서 빌리는 의태하는 것처럼 들키지 않고 살았다. 우주인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는 들키지 않음은 대학에서 배운 것이다. 잘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빌리와 같이 나고 자란 이들은 빌리처럼 사는 것이 꿈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가 없는 작은 항성에서 예술적인 일을 하며 보내는 것. 예술가에게 후원되는 금액도 막대해서 빌리는 그것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있다. 우주 예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빌리가 하는 일이 예술로 취급받는 것은 현대 지구인들이 보기엔 그리 이해가 가지 않는 데가 있다. 단순히 똑같은 것만 만들어내기를 한다니. 물론 한 항성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인 만큼 거기에 쓰이는 기예가 짐작하기 어려운 수준의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단순히 똑같은 것이잖은가. 그런 걸 어디에 쓰나. 물론 예술의 용처가 결정되는 것은 사람들의 의지가 아니라 예술적인 시스템 안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빌리의 예술에 대한 일종의 낮잡아 보는 시선을 갖고 가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사실 똑같은 것을 만들어내기 분야라는 것은 빌리가 온 데에서도 반신반의하거나 그 존립 가치에 대해 설왕설래하기도 한다. 다만 이것은 다분히 예술 철학, 그러니까 거기에선 철학 자체로 취급받는 한 학파에 의해 지탱되고 있어서 이 기술을 연마했을 때 돌아오는 이득이 크고, 먹고 살 걱정도 없어진다. 빌리는 책상에 노트북을 켜고 자기가 만든 달의 나무를 송출하고 있다. 동기화 통신망은 값이 비싸기에 지연된 통신망으로 하고 있기는 한데, 오히려 그 편이 운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빌리의 영상은 물론 영상보다는 고정된 사진에 가깝고 지구인들이 종종 찾는 움직이는 바탕화면이라는 것과 뭐 그리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시청자 수는 꽤 높은 편이랄 수 있다. 똑같은 것 만들기 학파는 우선 똑같이 만들 대상을 선택하는 것에 매우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적절한 대상을 선정하는 것만으로도 인정받는 것이다. 똑같이 만들기 기예에 있어서는 뭐랄까 탈락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왜냐하면 그 교육 과정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다. 빌리가 지구에서 갑자기 사라진 이유는 동화책의 시점이 지구에서 본 달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빌리는 어른이 되었고 그 느낌을 한가득 기억하고 있다. 화면이 옮겨져 웅덩이가 찍히고 그 안엔 빌리가 준비한 물이 고여 있다. 그 위에 떠 있는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과 그리 차이가 나는지는 잘 모르겠다.

2022년 9월 13일 화요일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2011, 민음사)

조너선 사프란 포어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읽다. 포어는 소설로 유명하다. 이 책은 포어의 논픽션이다. 일반적인 논픽션의 문법을 벗어난다. 문장은 문학적이다. 결론은 잘 내려지지 않는다.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과 관련된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 어느 목소리도 다른 목소리보다 특별히 강하지 않다. 최종적인 판단은 자꾸 지연된다. 판단이 지연되는 동안 독자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 개를 먹는 것과 돼지를 먹는 것의 차이는 뭘까. 어느 정도로 동물을 위해야 동물의 복지가 완성되는 걸까. 동물의 복지가 완성되면 고기를 먹어도 되는 걸까. 물고기도 고등의 인지 능력이 있을까. 소를 먹는 것보다 닭을 먹는 게 덜 나쁠까. 조류가 인간에게 옮기는 바이러스는 어느 정도 고려를 해야 할까. 결국, 포어는 이 모든 목소리들을 들어본 다음 완전한 채식주의자가 된다. 하지만 포어는 당신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이 책은 어떠한 ‘주의’를 담고 있지 않다. 어떠한 ‘주의’가 되기 전에 포어는 물러선다. 이 책은 ‘이즘’도 아니다. ‘프로파간다’도 아니다. 이 책은 생각들의 집합이다.

2022년 9월 8일 목요일

로베르트 발저, ≪세상의 끝≫(2017, 문학판)

로베르트 발저 ≪세상의 끝≫ 읽다. 발저의 글은 새롭다. 발저의 스타일은 다양하다. 발저는 엽편 소설, 단편 소설, 노벨레, 에세이, 일기, 메모, 스케치 등의 스타일로 쓴다. 스타일을 정하고 쓰는 게 아니다. 발저가 먼저 쓰면, 스타일은 나중에 온다. 발저의 ‘쓰기’는 신기하다. 누구도 이렇게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저만이 이렇게 쓸 수 있다. 카프카만이 발저의 개성에 비할 수 있다. 발저는 생의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낸다. 겨울에 산책을 하다 눈밭에 쓰러져서 죽는다. 발저는 평생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하인으로 일한 적도 있다. 발저는 작가다. 발저의 문체는 단출하다. 수사가 없다. 발저의 글에는 플롯이 없다. 플롯이 담기기엔 글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발저는 평생, 거의 무명이었다. 발저는 심장마비로 죽는다. 발저는 쓴다. 발저는 하나의 개성이다. 발저의 글은 자연발생적이다. 발저는 가난하다. 가난했다. 요즘엔 발저처럼 쓰는 사람이 많다. 발저가 무덤에서 이걸 보면 기뻐할까?

2022년 9월 6일 화요일

관둠

출판사 ‘관둠’은 출판사를 관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출판사를 관둔 그 수많은, 수많은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들과의 외주협력으로 출판사 관둠은 오늘도 돌아간다. 출판사 관둠의 외주 팀장님은 외주 디자이너님에게 오늘 전화를 걸어야 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때려치웠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외주 팀장님은 잠자리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낸다. 하지만 이상하다... 영 이상한 일이다. 물을 마시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오늘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외주 디자이너님은 절대 먼저 연락해오지 않을 것이다. 나도 연락하기 싫다. 외주 디자이너님한테 연락하라고 외주 편집자님한테 말해뒀는데 했을까? 모르겠다. 안 했을 것 같다. 외주 편집자님은 외주 교정자님 좀 구해달라고 성화다. 외주 번역자님 건은 어떻게 됐지? 외주 저자님도 아직 연락이 없다고 했다. 아무한테도 연락하기 싫다. 이걸 왜 내가 하는 거야? 외주 연락자님을 구할까? 어제는 이 출판사 오너가 도대체 누구인가 찾아봤다. 도대체 어디가 ‘안쪽’이지? 외주 본부장님... 외주 이사님... 외주 부사장님과 사장님... 외주 대표님... 외주 팀장님은 안쪽을 찾는 데 실패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분명히... 이건 문자 그대로 지옥 같은 꿈이다. 이런 꿈을 꾸고 있는 못난 녀석이 있다면 주먹으로 코를 내려쳐줄 것이다. 이상하게도 녀석의 곤한 얼굴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것 같다. 너무나 평화로운 얼굴. 잘 말려서 눌러놓은 것 같은 얼굴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책들이 꾸고 있는 꿈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식의 생각은 외주 팀장님을 자주 사로잡는다. 우리가 만든 책들, 그것만은 현실이다. 그렇지? 그럴까? 그런데 책들은 어디에 있지? 외주 팀장님은 모른다. 아니, 알 것 같다. 외주 인쇄소님... 외주 사무실님... 외주 창고님... 외주 서점님... 외주 팀장님은 이제 출판사 관둠의 마지막 조각이 외주 독자님들임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외주 팀장님이 인정했으니 다 잘 될 것이다. 관과 둠... 관과 둠...

2022년 9월 4일 일요일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 2022년 4월 9일 토요일, 순천에 있다

• 중요한 건 생각을 오래 하는 거다. 

• 제육을 먹었다. 에이플러스급의 제육이었다. 제육을 목으로 넘기면 향긋하고 나긋한 참기름 내음이 풍긴다. 식당주인 아줌마는 불친절했다. 제육 가격은 육천 원이었다. 지방이라 물가가 싼가 보다. 반찬들도 좋았다. 

• 나는 지금 순천에 있다. 여기는 물이 많다. 물이 깨끗하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무슨무슨강도 엄청 깨끗하다. 투명해서 바닥까지 다 비친다. 

• 게이 커플을 보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생각났다. 행복하고 예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 이전에 대학교 친구에게 구스 반 산트의 영화들은 한 갤러리를 잡아놓고, 갤러리 개장시간 동안 무한 연속 상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훌륭하다는 거다. 그리고 중간부터 봐도 그 예술성에 아무런 손상도 안 간다. 지금 생각해보니 구스 반 산트가 그렇게나 훌륭한 예술가인지는 모르겠다. 구스 반 산트는 영화란 ‘영상’과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내게 깨우쳐주긴 했다.

• 선암사에 갔다 왔다. 아름다운 작은 절이다.

• 아니, 구스 반 산트는 엄청엄청 휼륭한 예술가다!

• 저녁에 게스트하우스 사랑방에 갔다. 주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작은 사업을 한다고 한다. 주인은 원래 간호사였다. 간호사 일이 너무 고됐다. 월급도 적었다. 좀 무리를 해, 대출을 받아 이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사람들은 꽤 온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알음알음 소문이 꽤 나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온단다. 이 이야기를 하는 주인의 얼굴과 목소리엔 생기가 가득했다. 근데 눈이 몹시 슬퍼 보였다. 

• 씻었다. 지금 침대에 누워있다.

• 주인의 슬픈 눈이 생각난다. 이젠 자야 한다.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이건수는 방랑예술가다. 대한민국 곳곳을 떠돌아다닌다. 이건수는 며칠에 한 번씩 일기를 쓴다. 그 일기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돌아다니는 중에 만난 사람. 먹은 음식. 자신이 쓴 시. 자신이 쓴 노래 가사. 엄마 생각. 죽은 아빠 생각. 사랑하는 여동생 생각. 보고 싶은 친구 생각. 후회. 강박. 죽음. 반추. 이 같은 것들이 일기에 써있다. 이건수는 로베르트 발저, 기타노 다케시,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황정은, 이상우, 폴 토마스 앤더슨, 구스 반 산트, 스티븐 스필버그를 좋아한다. 일기에는 이들에 대한 얘기가 가끔 나온다. 이건수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건수의 일기는 때로는 짧다. 때로는 중간 길이다. 때로는 길다. 이건수의 일기를 여기 모아둔다.

2022년 9월 3일 토요일

데이비드 베너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2019, 서광사)

데이비드 베너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읽다. 책이 주장하는 바는 간단하다. 세상엔 나쁨이 너무 많다. 나쁨 천지다. 태어나면 이 나쁨에 그대로 노출된다. 이건 해악이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 필요 없다. 하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이 ‘반출생주의’ 논증에 동의한다면, 인류 멸종이라는 필연적인 결론에 이를 거다. 베너타는 이 내용을 직업 철학자의 철저함으로 논한다. 철두철미하게, 때로는 도표를 그려가며, 제기된 반증과 제기될 반증을 하나씩 논파한다. 이 책을 들고 다니면 주목받을 수 있다. 책 제목이 파격적이기 때문이다. 철학책이라고 생각 못 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책 내용을 물어볼 수도 있다. 책 내용을 요약하는 명료한 설명 몇 문장을 외워두는 것도 좋겠다. 엄마나 아빠가 이 책을 보면 슬퍼할 수 있다. 집 안에서는 숨겨놓길 추천한다. 근데 정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나을까?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스스로 하는 생각이 우리를 살린다. 

2022년 9월 2일 금요일

김태용, ≪포주 이야기≫(2012, 문학과지성사)

김태용 ≪포주 이야기≫ 읽다. 김태용은 기기괴괴하다. 김태용은 새 공기를 들여온다. 김태용 소설은 배설물이다. 김태용은 정신의 엔지니어다. 김태용은 소설의 엔지니어이기도 하다. 김태용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리듬이 있다. 적당한 길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탄력적으로 늘어났다 줄었다 한다. 쉼표는 적다. 김태용은 ‘똥’에 관심이 많다. 적어도 소설 두 편 중 하나는 꼭 똥 이야기가 나온다. 김태용은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한다. 새로운 시도는 실패하지 않는다. 좋은 소설은 클리셰에 저항한다. 새로운 걸 하면 클리셰를 뛰어넘어 간다. 한번 넘어가면 다신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김태용은 실패하지 않는다. 그 태도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소설은 배움이 아니다. 소설은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리뷰 비슷한 것

책을 리뷰합니다. 리뷰란 주관적인 평가 활동입니다. 사실, 주관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건 말장난입니다. 책의 장르와 두께 가리지 않고 리뷰합니다. 되도록 쉬운 단어로 리뷰합니다. 되도록 짧은 문장으로 리뷰합니다. 다 읽지 않은 책을 리뷰할 수도 있습니다. 아예 읽지 않은 책을 리뷰하지는 않습니다. ‘쉬움’이란 기준은 필자인 제게 있습니다. ‘짧음’이란 기준은 필자인 제게 있습니다. 가끔씩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리뷰의 성질을 벗어난 단어나 문장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곧 제 길을 찾아, 다시 리뷰를 합니다. 때때로 사진책도 리뷰합니다. 기준 잘 지키겠습니다. 분량은 때마다 달라집니다. 리뷰 ‘비슷한 것’을 지향합니다.

2022년 9월 1일 목요일

22년 8월의 모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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