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6일 화요일

관둠

출판사 ‘관둠’은 출판사를 관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출판사를 관둔 그 수많은, 수많은 사람들... 그 수많은 사람들과의 외주협력으로 출판사 관둠은 오늘도 돌아간다. 출판사 관둠의 외주 팀장님은 외주 디자이너님에게 오늘 전화를 걸어야 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때려치웠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외주 팀장님은 잠자리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키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낸다. 하지만 이상하다... 영 이상한 일이다. 물을 마시면서도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막을 수가 없다. 오늘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정리해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외주 디자이너님은 절대 먼저 연락해오지 않을 것이다. 나도 연락하기 싫다. 외주 디자이너님한테 연락하라고 외주 편집자님한테 말해뒀는데 했을까? 모르겠다. 안 했을 것 같다. 외주 편집자님은 외주 교정자님 좀 구해달라고 성화다. 외주 번역자님 건은 어떻게 됐지? 외주 저자님도 아직 연락이 없다고 했다. 아무한테도 연락하기 싫다. 이걸 왜 내가 하는 거야? 외주 연락자님을 구할까? 어제는 이 출판사 오너가 도대체 누구인가 찾아봤다. 도대체 어디가 ‘안쪽’이지? 외주 본부장님... 외주 이사님... 외주 부사장님과 사장님... 외주 대표님... 외주 팀장님은 안쪽을 찾는 데 실패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분명히... 이건 문자 그대로 지옥 같은 꿈이다. 이런 꿈을 꾸고 있는 못난 녀석이 있다면 주먹으로 코를 내려쳐줄 것이다. 이상하게도 녀석의 곤한 얼굴이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것 같다. 너무나 평화로운 얼굴. 잘 말려서 눌러놓은 것 같은 얼굴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책들이 꾸고 있는 꿈이라고 하면 어떨까? 이런 식의 생각은 외주 팀장님을 자주 사로잡는다. 우리가 만든 책들, 그것만은 현실이다. 그렇지? 그럴까? 그런데 책들은 어디에 있지? 외주 팀장님은 모른다. 아니, 알 것 같다. 외주 인쇄소님... 외주 사무실님... 외주 창고님... 외주 서점님... 외주 팀장님은 이제 출판사 관둠의 마지막 조각이 외주 독자님들임을 비로소 인정하게 된다. 외주 팀장님이 인정했으니 다 잘 될 것이다. 관과 둠... 관과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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