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16일 금요일

수해

드넓은 수해가 접근을 꺼리는 듯도 한데 그곳에 자리 잡은 어두움은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것들을 가려준다. 원숭이 무리가 던지는 플라스틱 물건들을 맞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캠프에는 몇 사람이 남아 있다. 내가 혼자 온 것은 작은 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는 원숭이 한 마리가 보인다. 원숭이의 뒤로 허공에 마법진이 생기고 곧이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물건 하나가 이쪽에 날아온다. 이곳은 쓰레기장으로도 유명하고 중요한 식생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약 19년 전 이곳에서는 생물 재해가 있었다. 그다지 유명한 얘기는 아니지만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았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꽤 심각했던 모양이었다. 인간의 나쁜 마음이 중첩된 결과라던데(아이한테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것은 으레 그렇듯 앞뒤가 잘린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였다. 물론 어느 프랑스 철학자의 말대로 최악의 가능성, 가능한 것 중에서 이쪽에 불리한 시나리오를 상정하는 것은 자기 보호라는 것을 하는 국가들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고 여기에 다국적 관할 기관이 세워지게 되었다. 나도 거기에 속한 몸으로서 오늘 그곳의 사람들과 다툼을 벌였던 이유는 다소 심기가 상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마법에는 촉매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촉매를 도난당하는 일이 있었다. 누가 범인인지 모르는 채로 우리는 모여 있었는데 한 사람이 명확하지 않은 근거로 내 옆 사람을 지목했다. 그 시간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알리바이가 없다는 거였다. 공교롭게도 우리 중 알리바이가 없는 건 그 사람뿐이었고 내가 나서서 그를 변호했다. 그것은 곧 다툼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각자 상한 마음을 가진 채로 흩어지게 되었다. 내 생각엔 원숭이 중 하나가 범인인 것 같았는데 그 의견을 사람들한테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직접 물어볼 생각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아까 나에게 플라스틱 물건을 쏘아보낸 원숭이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 캠프에서 촉매가 없어진 일이 있었어. 너희 중에 하나가 훔친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맞니?” “네, 내가 훔쳤어요.” “어디에 쓰려고?” “마법을 쓰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그건 우리의 물건인데.” “훔친다면 상관없어요.” “어떻게 들키지 않았지? 분명히 알람이 있었을 텐데.” “그건 자원 낭비예요. 우리 쪽엔 그걸 무력화시킬 방법이 있으니까.” “그것도 훔친 거니?”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건 우리가 가졌던 것이니.” “그러니까 훔친 것이란 말이지?” “옛날에요.” “너희들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은 잘 이해하기 어렵구나. 아무리 그래도 남의 물건은 훔치면 안 되는 것인데.” 내가 그렇게 말하자 원숭이는 다시 마법진을 만들어내 이쪽으로 플라스틱 물건을 던졌다. 나는 그것의 속도를 완화해 부드럽게 받았다. 그런데 그 물건 안에는(페트병이었는데) 바나나 잎이 들어 있었다. 아까 우리 쪽에서 없어진 촉매였다. “주고받기 놀이 해요.” “이걸 말이니?” 나는 내 손에 든 페트병을 들어 보였다. “아뇨. 난 던지기만 하고, 받기만 하세요.” “그게 주고받기 놀이라는 거니?” “네, 그럼요.” 원숭이가 던지는 물건은 각각 캠프에서 없어진 촉매들을 담고 있었다. “이걸로 너희가 훔쳐 간 건 다 받은 것 같구나. 훔친 거라면서. 왜 돌려줬지?” “일단 우리가 훔쳤으니까요.” “너희들의 소유권에 대한 개념은 역시 이해하기가 어렵구나.” “우리는 누굴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돌려준 거죠.” 원숭이가 돌려준 촉매를 확인해 보니 한 번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고 새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다. 곤경에 빠뜨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원숭이의 말은 정말인 듯했다. 그것들을 카트에 담아서 캠프에 돌아오자 몇 명의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원숭이가 훔친 거였어.” “우린 걱정했는데요.” 그렇게 말한 건 세실이었다. 테메코 군집이 내보이는 검은 탑의 형상에 대한 연구자. “왠지 뭘 하러 가는 것 같았거든.” 그렇게 말한 건 나비의 초시공간성을 연구하는 이나테였다. “우린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한 사람을 의심했어.” 그렇게 말한 건 아까 듀크를 의심했던 셀린느였다. “우리라고요? 당신이 그랬던 거겠지.” “너무 싸우지들 말게.” 테스와 피어가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여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아까 전에 있었던 다툼은 거짓말이라는 양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나테와 세실은 이쪽에 앉아 있었고 셀린느가 내 앞에서 꽤나 취해 있었다. 그녀는 취한 몸짓으로 듀크에게 말했다. “설마 원숭이가 훔쳐 갔을 줄은.” “그거 사과하시는 건가요?” 누군가 옆에서 말했고 셀린느는 고개를 휘휘 내저으며 읊조렸다. “사과가 맞을걸.” 테스와 피어는 저쪽에서 무심한 듯해 보이는 시선으로 수해가 있는 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뭐가 보이시나요?” “까마귀들이 있는 것 같아.” “까마귀들이라면 없어졌을 텐데요.” “세력 다툼 이후로 그랬던 것이 맞는데. 모르지, 무슨 일이 또 일어난 걸 수도.” “한번 비춰볼까요?” “그렇게 해 주게.” 나는 마법으로 그곳을 비추었고 그러자 거기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 모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겉보기엔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걸고 있는 까마귀들인 것처럼 반짝거리는 폐플라스틱 병 안의 물방울들이 이곳까지 점점이 빛나며 글자를 만들고 있었다. ‘우린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어. 그 녀석을 혼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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