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8일 월요일

동시출장 같은 것

빛이 들면 좋겠네. 빛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빛은 지금 산책을 나가고 없다.
대신 그는 오래 입은 옷들을 버리며 풀린 실밥의 개수와 처음 산 날짜를 헤아린다. 혼자 그린 달력에 처음 보는 기념일을 빨갛게 표시하고. 돌과 돌이 세게 부딪히듯이, 부딪혀 괜히 빛나듯이 걸으며 지나치며 아이들을 본다.
아이들은 볼에 불이 나 있다. 종이에 조그만 핀홀 뚫어 너무 밝은 태양빛 쏟아질 때마다 작게 나누어 본다. 나눌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만 나누어지는 빛. 살고 있는 집에서 가장 멀리 떠났을 때 그도 짙은 빛을 가슴에 맞아본 적 있다. 일없이 매일 토마토를 한 개씩 먹는 사람처럼 발그레한 얼굴로 처음 가본 도시의 운동장을 달렸다.
지금은 익숙한 골목에서 사이좋게 나눌 수 있는 열망 대신에 혼자 소망하는 바를 말하기 위해 서성인다. 뒷골목으로 달려가는 아이, 뒤따라 달려가는 아이들. 달리는 데엔 이유가 없는데 누구를 위해서라도 생일 초를 피우면 여기야, 여기야, 금세 모이잖아요. 입 모아 바람 불잖아요. 속에서 나온 숨이 다할 때까지. 나도 그럴 수 있다면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아이들 뒤편에 서서 말했다.
잔설이 날리기 시작했고 그의 볼 위에서 눈 녹고 있었다. 녹는 눈에서 흰빛이 일었다. 우리는 걷고 있었고, 목적지까지 걷고 있었다. 그는 내가 보자고 하는 것을 보았고 나는 그가 생각하자 하는 것을 생각했다. 하다보니 여기까지 와 있었다.

2022년 3월 27일 일요일

선반

이사야가 선반 위에 앉아 있다. 곡물 포대에 난 구멍이 보인다. 선반 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다. 난 거기 위에 올라갈 순 없지만. 선반 위에는 유리 구슬, 안에 눈이 오는 작은 마을이 비쳐보이는 것이 하나 놓여 있다. 이사야가 구멍이 난 곡물 포대 근처로 가서 구멍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 거기에 모든 것이 있을 것이다. 밖에는 눈이 오고, 한 사람이 빗자루로 눈을 쓸고 있다. 나는 이사야를 회색 고양이라고 부르곤 한다. 아쉽지만 나는 그런 별명을 소리내어 부를 수 없다. 대신에 날 뒤덮은 천이 있는데, 그 천은 평소에 이 창고의 선반 위에 걸려 있다. 그 천이 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나라고 볼 수 있고, 다만 천이 나를 뒤덮고 있으면 무거워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어째서 저 사람은 처음에 천으로 선반 위를 덮을 생각을 했을까? 날 확인하기 위해서? 난 온 힘을 다하면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2~ 3번 정도 낼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저 사람을 놀래키기 위해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처음에 그 사람은 깜짝 놀라는 듯했다. 아마도 쥐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구멍이 난 곡물 포대 안을 들춰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놀라지 않는다. 그것이 재미없어 나는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길 그만두었다. 대신에 평소에 노는 것은 이사야와 같이다. 이사야는 좀처럼 가만히 있질 않는 회색 고양이다. 내가 포대 안에 들어가 귀리 몇 알을 꺼내 가져다주면 맛을 보기도 한다. 나도 옆에서 따라 맛을 본 적도 있었다. 물론 맛은 나지 않았다. 맛이란 건 뭐였을까? 나는 지금은 이 창고의 선반인 신세지만 내게도 살아 있는 몸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난 이사야와 같은 회색 고양이였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이사야의 조상이거나, (아니면 이쪽이 오히려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데) 이사야가 내 조상이라는 것이다. 이사야는 나보다 어린 고양이지만 이미 난 평범한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되었고―나는 물건 취급 받는다. 문자 그대로. 왜냐하면 진짜 물건이니까?― 사실 내가 살던 곳은 저 유리 구슬 안의 작은 마을이다. 실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아마도 이건 내 생각이지만 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유령이 된 것이 아니다. 아마 난 요정의 장난으로 태어나게―제작된― 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내가 회색 고양이였다는 것은 확신하는데, 이 추측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사야가 내 조상이거나 내가 이사야의 조상일 거라고 말은 했어도 어쩌면 난 이사야와 형제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이사야에게 저 유리 구슬을 보여주고 이곳이 기억나니? 라고 물어봐야 할 텐데 이사야조차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깜짝 놀래키는 일이 이제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아서 평소에 그냥 가만히 있는 채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할 줄을 안다. 지금은 이렇게 천을 덮어 놨지만. 나는 말할 줄 아는 고양이다. 원래 회색 고양이였던 (지금은) 선반이다. 나는 내 근처에 있는 것들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곡물 포대에 난 저 구멍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구멍이 아니다. 아, 내가 말을 더 할 수 있었다면 저 구멍에 대해 더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 잠이 온다. 나는 이제 잠든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 그대로 있는 채다. 가끔씩 이사야가 들락거린다. 내가 꾸는 꿈은 저기 유리 구슬 안에서 보인다. 

2022년 3월 21일 월요일

기사들의 무덤

평소보다 좁은 공원의 길을 걸으며 나는 기사들의 무덤으로 향했다. 왜 길이 좁은 것일까? 그것은 무덤에 안장된 기사들(죽은)이 내가 접근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염으로 길을 구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싫어한다. 그러나 이미 죽은 그들은 산 사람인 내게 어느 정도 이상의 간섭이 불가능하다. 나는 마음껏(좀 불편하지만) 무덤가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데, 안장되어 있는 그들의 막내뻘의 기사가 흙더미를 제치고―동료들에게 떠밀린 모양인지― 걸어 나와 말한다. 이곳에서는 금지되어 있소. 나는 되묻는다. 무엇이요? 그가 대답한다. 이곳으로의 접근이. 그리고 당신처럼 무언가를 먹는 일이. 그렇게 말하는 기사는 어쩐지 떨떠름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말을 잇는다. 하지만 난. 난 보기보다 어려요. 지금 이곳도. 난 길을 잃어 왔는걸요. 그리곤, 배가 고파져서 들고 있던 음식을 먹은 거고요. 기사가 말한다. 길을 안내해주겠소. 그렇게 날 내보내시려는 거군요. 그렇지 않소. 우리들에게 남은 당신들(기사)의 이미지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검을 들어 막는다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보통의 복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금속 갑옷을 입고 싸움터로 나간다는 것이었지요. 난 전쟁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당신네들은 전쟁을 많이 했나요? “많이 했소.”라고 그가 답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을 조롱하거나 비꼬려는 의도는 없었지만, 이것 하나는 물어봐야겠네요. 무고한 사람들을 죽여봤나요? “그렇소.”라고 그가 답했다. 과거의 망령이 무고하다 어쨌다 판단까지 하는군요. 그렇게 판단하는 언어를 누가 당신에게 쥐여주었죠? “상급자가.”라고 그가 답했다. 당신은 내게 비난받기 위해 솔직한 모양이군요. 아니라면 솔직하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비난을 받거나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저기 있는 무덤 안쪽에서 한 기사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선 안 되었죠. 당신은 차라리 이렇게 대답했어야 해요. 그들은 무고하지 않았노라고요. 그러면 당신들은 무고한 일을 한 것이 되죠. 그것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죽어서까지 그렇게 용서받고 싶은 건가요? 그것이 내 질문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소’라고 답한 이유인가요? 난 전쟁으로 인해 한쪽 눈을 잃었어요. 지금 내 눈이 당신을 쳐다보고 있군요. 이해받고 싶은 게 아닌가요? 그렇다면 어째서 이곳까지 오는 길을 구부렸지요? “우리들은 안식을 원하오.”라고 그가 말했다. 그렇군요. 난 수다를 원해요. 난 전쟁을 싫어하는데, 전쟁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이 전쟁을 일으켰어요. 이 말은 틀렸다고, 전쟁은 권력 가진 이들의 결정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난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나에게서 내 감정인 증오를 앗아가 버리려고 하기 때문이죠. 항상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해요. 냉철하게 생각해보라고요. 하지만 난 한쪽 눈을 잃었는데요? 다시 한번 말씀해 보세요. 왜 무고한 이들을 죽였죠? 혹시 죽이기 전부터 미리 용서받고 싶었던 것 아닌가요? 그 사람은 죽은 후에 어떻게 되었죠? 주검이 되었겠죠. 지금 당신들이 누워 있는 것처럼요. 기사가 내 말을 끊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살아 있는 사람이 맞습니까? “네.” 혹시 당신은 내가 죽인 사람이 아닙니까? “아니에요.” 그렇다면 어째서 죽은 우리와 대화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내가 오직. 당신들과 대화하려 여길 찾아왔기 때문이지요. 그 기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울기 시작했다. “왜 울죠?” 한 번도 그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과 대화하러 온 사람이. “그래서 고마운가요?” 그 기사는 말없이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는 서서히 무덤 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또 다른 기사가 나와서 말했다. 나는 지금의 대화를 다 들었소. “그런가요?” 당신은 우리에게서 무엇이 궁금한 것이오? “궁금한 것은 없어요. 단지 그냥 얘기를 나누려고 찾아온 것뿐이에요.” 당신 뒤에는 대의가 있소? “아뇨, 그런 건 없어요. 당신들은 대신해서 화내주고 비난해주고 울어줄 이가 필요한 것 아닌가요?” “전체의 의견은 아니오.”라고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느 쪽이지요? 그리고 아까 웃은 사람은 누구예요?” “상급자요.”라고 그가 말했다. 그가 마음에 드나요? “마음에 안 드오.”라고 그가 말하자 아까보다 더 여럿이 된 웃음소리들이 들려왔다. 당신은 어째서 여기엘 찾아온 것이오? “남이 누운 자리에서 샌드위치를 좀 먹어보려고요. 내 생각에 당신들은 잘못이 없거나 미미해요. 지금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가시나요?” “더 들어보고 싶소.”라고 그가 말했다. “왜냐하면 내가 증오하는 터인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신네들의 세상에도 있었다면 그렇다는 거예요. 그리고 틀림없이 있었겠죠. 그런 사람들이. 있었나요?” “있었다오.”라고 그가 말했다. 우리들의 주인이 그랬소. 당신의 세상에서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오? “그 사람들도 나의 주인이지요. 내 증오의 주인.” 그 사람들은 무고하지 않소? “어째서 지금 당신이 하는 말은 ‘그래서 그들을 우리가 죽여도 되오?’라고 하는 것처럼 들리는 거지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무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당신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고, 전쟁에 대해 남들이 아는 정도만큼도 모르오. “내가 그런 말을 당신들 입으로부터 나오게 하기 위해 지금껏 수다를 떨고 있었던 거랍니다.”

2022년 3월 17일 목요일

전쟁하는 꿈

전쟁하는 꿈을 꾸다가 깼다. 이불 속으로 수류탄을 넣어주길래 그 손을 붙들었다. 언제는 비둘기들을 쏴 죽였던 적도 있다. 창문이 다 깨지고... 꿈에서 비둘기들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사명을 ‘전쟁하는 꿈’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출근했다. ‘꿈’과 ‘전쟁하는’ 사이를 붙일까? 띄울까? ‘전쟁꿈’ 세 글자로 맞추는 건 어떨까? 이름에 ‘전쟁’이란 단어가 들어간 출판사가 있는지 검색해보았다. 몇 군데 있었고 문자 그대로의 의미였다. ‘살인하는 꿈’ 같은 사명은 상상하기 어렵다. 전쟁이 있는 한 그 이름도 어려울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출근했다. 마스크 위의 잔병 같은 눈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면서. 비둘기들은 바닥에 있고 공중에 있다.

2022년 3월 11일 금요일

환상 동화

환상 동화는 재를 뿌려 마당 앞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마이는 걷고 있습니다.

사탕 신사가 된 그는, 아무 것도 앞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한 입 베어 물린 그는, 결손된 채로 움직입니다.

작은 기계 신세입니다.

좋아하는 긴박한 노래가 나옵니다.

내가 전에 쓴 적 있었던 미니어처의 세계관이 그대로 있습니다.

‘릭과 배반’에 나오는 닷지 자동차라는 것도, ‘흡혈귀’에 나오는 벨벳 나무라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서재에 앉아 그것을 쳐다봅니다.

나만을 위한 도서관, 드라마틱한 조명의 여가수,

그리고 녹아내리는 알사탕, 참외 무늬가 그려진 맥주잔,

다 내가 쓴 글에 나온 것들입니다.

마이는 달리고, 도착 행렬 앞에 사람들이 관람하고 있습니다. 

마이는 [81]등으로 도착합니다.

한 입 베어 물린 그는 환상 동화에 나오곤 합니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 재가 있는 이유는.

한 번 불탔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어떤 중요한 사물이.

그것은 어딘가의 고전에 나오는 시체일 수도 있겠습니다.

시체에 대한 것은 내가 쓰려다 못 쓴 것입니다.

환상 동화는 동화이지만, 아이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른들을 위한 것도 아니네요.

환상 동화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도 내 등장 인물이 될 터인 마이를 위한 것이라고는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마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끔 붙들린 신세가 되어 애매하게 등장하곤 합니다.

환상 동화는 환상의 이야기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과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환상 동화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아이들입니다.

나는 어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른들이고

나는 아이입니다.

길을 잃은 어떤 사람이. 내가.

어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집안의 어른의 앞에 당도합니다.

어느 가문의 아이냐고 묻습니다.

길을 잘 아는 터인 어른이. 내가.

그 아이의 앞에서 딴청을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교육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들을 만들어낼 뿐이었죠.

그런데 이야기들은 교육이라는군요.

그 어른이요.

아니면 교육이 이야기들인가요?

그 아이가 묻습니다.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당신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집안의 사람이군요.

자랑스럽지 않나요? 

저 멀리 보이네요. 저 아이가.

혼자서 길을 찾은 저 아이가.

난 아이를 한 번도 혼낸 적이 없었어요.

그건 내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였을지도 몰라요.

환상 동화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재를 뿌리고……

마당이 있으면 마당 앞에……

더럽히는 일이죠.

나는 그렇게 길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건 필요 이상으로 반납하는 느낌입니다.

사과 소년이 한 입 베어진 채로 걷고 있습니다.

학급은 무너지기 마련이죠.

미리 주어진 것을 추구하고 있는 듯합니다.

서늘한 성질의 보석.

그것을 나는 비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환상 동화는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2022년 3월 7일 월요일

헤매기 업무

저장고의 문은 무겁고 안쪽은 어둡다. 빛은 문간 몇 발짝에서 더 뻗쳐오르지 못한다. 숨을 잠시 멈췄다가 저장고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괜히 되뇌자, ‘살았던 적 없기 때문에 죽지도 않는 것들의...’ 그런 비슷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 냄새는 건강에 좋을 것 같지 않다. 그것은 건조하고 서늘하다. 나는 이 냄새를 사랑한다. 쥐잡이를 불러본다. 대답은 없다. 안에 있었다면 허리띠의 무지갯빛이 먼저 보였을 것이다. 현황판에 내걸린 표패의 수를 두 번 센 뒤 나는 어두운 저장고 안으로 한 발 내딛는다. 이것은 헤매기 업무다.

죽도록 일하게 시키면서, 죽도록 일하고 싶지 않다면 알아야 한다고들 한다. 뭘 알아? 알지 못하면 죽으란 거냐? 죽도록 일하게 시키며? 알려주지 않고 죽인다, 죽은 것은 알지 못한 네 탓이다, 사회라는 것이 이런 식이다, 돌아가는 꼴을 겪으며, 이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죽고 싶을 정도로 불쾌하다, 세상사의 전개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예전엔 뭐가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는 것이 조금은 있었다, 지금으로선 하나도 알고 싶지 않다, 선대도 다들 이런 시간을 지나서 거기에 있는 것이겠지? 개 좆이다, 쓰레기세상의 인간쓰레기들, 오랜만에 그런 젊은이 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어두운 저장고 속에서 헤맨다.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알지도 않을 것이다, 알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일하고 있다. 이것이다. 나는 한참을 더듬다가 하나를 꺼낸다.

저장고의 문은 무겁고 안쪽은 어둡다. 쥐잡이를 불러본다. 안에 있었다면 허리띠의 무지갯빛이 먼저 보였을 것이다. 숨을 잠시 멈췄다가 저장고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이 냄새는 건강에 좋을 것 같지 않다. 빛은 문간 몇 발짝에서 더 뻗쳐오르지 못한다. 현황판에 내걸린 표패의 수를 두 번 센 뒤 나는 어두운 저장고 안으로 한 발 내딛는다. ‘살았던 적 없기 때문에 죽지도 않는 것들의...’ 그런 비슷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이 냄새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고 괜히 되뇌자, 나는 이 냄새를 사랑한다. 대답은 없다. 그것은 건조하고 서늘하다. 이것은 헤매기 업무다.

죽도록 일하게...

2022년 3월 1일 화요일

22년 2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1 (52)
――― 곡물창고 +1 (18)


이달의 총격려금

10,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17일 / 10,000원 ― (주)카카오페이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56,744원 (10,000원 + 246,564원 + 180원)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