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7일 일요일

선반

이사야가 선반 위에 앉아 있다. 곡물 포대에 난 구멍이 보인다. 선반 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다. 난 거기 위에 올라갈 순 없지만. 선반 위에는 유리 구슬, 안에 눈이 오는 작은 마을이 비쳐보이는 것이 하나 놓여 있다. 이사야가 구멍이 난 곡물 포대 근처로 가서 구멍을 잠시 바라보고 있다. 그렇지, 거기에 모든 것이 있을 것이다. 밖에는 눈이 오고, 한 사람이 빗자루로 눈을 쓸고 있다. 나는 이사야를 회색 고양이라고 부르곤 한다. 아쉽지만 나는 그런 별명을 소리내어 부를 수 없다. 대신에 날 뒤덮은 천이 있는데, 그 천은 평소에 이 창고의 선반 위에 걸려 있다. 그 천이 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나라고 볼 수 있고, 다만 천이 나를 뒤덮고 있으면 무거워서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어째서 저 사람은 처음에 천으로 선반 위를 덮을 생각을 했을까? 날 확인하기 위해서? 난 온 힘을 다하면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2~ 3번 정도 낼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난 저 사람을 놀래키기 위해 그런 적이 몇 번 있었다. 처음에 그 사람은 깜짝 놀라는 듯했다. 아마도 쥐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구멍이 난 곡물 포대 안을 들춰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놀라지 않는다. 그것이 재미없어 나는 덜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길 그만두었다. 대신에 평소에 노는 것은 이사야와 같이다. 이사야는 좀처럼 가만히 있질 않는 회색 고양이다. 내가 포대 안에 들어가 귀리 몇 알을 꺼내 가져다주면 맛을 보기도 한다. 나도 옆에서 따라 맛을 본 적도 있었다. 물론 맛은 나지 않았다. 맛이란 건 뭐였을까? 나는 지금은 이 창고의 선반인 신세지만 내게도 살아 있는 몸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난 이사야와 같은 회색 고양이였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이사야의 조상이거나, (아니면 이쪽이 오히려 신빙성이 있어 보이는데) 이사야가 내 조상이라는 것이다. 이사야는 나보다 어린 고양이지만 이미 난 평범한 고양이들과는 다르게 되었고―나는 물건 취급 받는다. 문자 그대로. 왜냐하면 진짜 물건이니까?― 사실 내가 살던 곳은 저 유리 구슬 안의 작은 마을이다. 실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아마도 이건 내 생각이지만 난 시간이 지나서 자연스럽게 유령이 된 것이 아니다. 아마 난 요정의 장난으로 태어나게―제작된― 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내가 회색 고양이였다는 것은 확신하는데, 이 추측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이사야가 내 조상이거나 내가 이사야의 조상일 거라고 말은 했어도 어쩌면 난 이사야와 형제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이사야에게 저 유리 구슬을 보여주고 이곳이 기억나니? 라고 물어봐야 할 텐데 이사야조차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깜짝 놀랄 것이다. 깜짝 놀래키는 일이 이제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아서 평소에 그냥 가만히 있는 채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할 줄을 안다. 지금은 이렇게 천을 덮어 놨지만. 나는 말할 줄 아는 고양이다. 원래 회색 고양이였던 (지금은) 선반이다. 나는 내 근처에 있는 것들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곡물 포대에 난 저 구멍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구멍이 아니다. 아, 내가 말을 더 할 수 있었다면 저 구멍에 대해 더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제 잠이 온다. 나는 이제 잠든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원래 그대로 있는 채다. 가끔씩 이사야가 들락거린다. 내가 꾸는 꿈은 저기 유리 구슬 안에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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