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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1일 금요일

비등단 작가라는 유령

한때 비등단 작가라는 말이 유행할 때 썼던 글입니다. 아마 2017년에서 2020년 사이였을 거예요.


본문

처음 금치산자레시피를 소개할 때에는 비등단이라는 말을 넣곤 했습니다. ‘비등단’이라는 조어를 만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등단하지 않은’ 이라는 표현을 썼죠. 공공연히 금치산자레시피를 소개할 일은 없었지만 나중에 이 말을 빼기로 했어요.

‘비등단 작가’는 ‘설거지 하는 남자’ 같은 말이죠. 인간이라면 누구든 설거지를 해요. 인간 새끼라면 자기가 먹은 걸 스스로 치워야 합니다. 때문에 남자가 인간이라면 ‘설거지 하는 남자’는 불필요한 수식이죠. 마찬가지로 저를 ‘비등단 작가’ 라고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한 수식입니다. 작가라면 자기 스스로 글을 쓰고, 그 글을 발행해야 하니까요. 대체로 ‘작가’ 앞에 붙는 수식들이 그 작가의 주요한 정체성에 대한 단서가 되고 있다는 선례를 염두에 둔다면 ‘비등단’이라는 수식이 어떻게 작가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지, 왜 그런 걸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건지 이해할 수 없고, 앞으로 이해할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는 등단 작가라는 수식에도 적용됩니다.

때문에 ‘비등단 작가’에서 더 나아간 ‘비등단 작가의 시’ 혹은 ‘비등단 작가의 소설’ 또한 등단 작가와 비등단 작가를 구분해서 얻게 되는 이점에 대해, 이 구분을 통해 누가 이득을 얻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작가임을 선언하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죠. 그리고 제가 쓴 것들을 책임지고 가치를 증명하는 데 제 남은 생을 쏟게 되겠죠.

이런 측면에서 요즘 독립출판물이나 문예지에서 덧붙이는 ‘우린 비등단과 등단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은 너무 거추장스러운 말인 것 같아요. 이런 말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해요. 그들의 태도도 증명하지 못하고요, 그들의 미적 목표도 증명하지 못하죠.

이도저도 증명하지 못하는데 뭐 하러 말하는 걸까요? 그냥 그 자리에 ‘나는 치킨이 좋아’라고 쓰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그럼 우린 같이 치킨을 먹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비등단’이라는 말은 명백히 등단 상태의 결핍을 드러내는 기능만을 하고 있잖아요.

등단과 비등단을 입에 담는 순간 등단 작가와 비등단 작가는 묘한 게임에 참여하게 되요. 이 둘이 경쟁을 한다고 해도 몹시 이상하고요, 이 둘이 동료가 된다고 해도 대단히 이상합니다.

등단 작가들은 같은 지면에 참여한 비등단작가에 대해 “안녕 나는 등단 작가고, 너는 비등단 작가지만 나의 동료가 될 자격이 있어. 우린 그런 걸 구분하지 않거든.” “너는 비등단 작가지만 글이 너무 아름답구나.” “너는 비등단 작가라서 그런지 글이 신선하구나.” 이런 식의 태도만이 가능할 거예요.

아니라고요? 그럼 애초에 게임을 이렇게 짜면 안 되는 거죠. 애초에 이런 게임에 들어오면 안되는 거였어요. 다만 당신 활동으로 그걸 증명하면 되는 일이었죠. 나중에 생색내긴 힘들겠지만요. 저는 비등단 작가 동료가 등단 작가의 열린 정신을 증명하는 토큰 비슷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비등단 작가가 등단 작가에 대해 ‘우리는 등단과 비등단을 구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건요? 이건 해당 작가나 집단이 자기 조건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그들은 그걸 구분하고 어쩔 입장이 안 되요.

기껏 비등단 상태로, 문단 밖에서 문학을 해나가기로 했으면서 왜 또 구분하고 그러나요? ‘비등단 작가’라는 말이 비등단 작가인 본인에게 무슨 의미인 거죠? 그게 당신 작품을 더 가치 있게 하나요? 그게 당신의 삶을 수식하는 데 적절한가요?

등단을 거절한다는 말도 정말 이상하죠. 일단 저는 저런 말도 쓰진 않습니다. 재작년에 신춘문예에 작품 30편을 9개의 이름으로 공모했다 모조리 떨어졌거든요. 전 이 게임에서 이미 아홉 번 졌어요.

그 순간부터 등단하기 전까진 저는 영원히 등단을 못한 작가인 것이죠. 때문에 이제 와서 등단을 거절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떨어진 거거든요ㅋ 그렇다면 등단을 거절하는 분들은 등단을 왜 거절하는 걸까요.

등단 상태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길래 등단을 거절하는 걸까요? 그게 거절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더 나아가 그게 거절될 수 있는 건가요? 거절을 하려면 제안이나 요청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도저도 아니라면 대체 무슨 수로 등단을 거절하고 거부합니까?

아마도 어딘가에는 비등단이라는 말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장 분석을 할 때도 중요한 지표일 수도 있죠. 그런 걸 한다면 말이죠. 다만 작품으로 교류하는 장에서 언급되어야 할 말은 결코 아니죠.

전 아직도 작가는 적국에 내버려진 외교관처럼 단어를 공들여 골라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쓴 단어는 오늘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어야 해요. 이때 ‘등단과 비등단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적절한 건가요, 외교관님?

등단/비등단 게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 이 게임을 시작한 분들의 탁월한 단어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유령 같은 말은 흔치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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