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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7일 월요일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여전히 순천

 • 안목해변에 갔다. 사람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드넓은 갯벌! 사방이 시원하게 탁 트였다. 제방 비스무리 생긴 곳에 앉아 이상우 <프리즘>을 꺼내 들었다. 읽히지 않았다. 도로 집어넣었다. 갯벌에 발을 살짝 디뎠다. 발이 푹- 빠졌다. 갯벌은 못 걸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너무 좋아 춤을 추고 싶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다음, 오 분간 춤을 추었다. 크고 과감한 스텝을 밟아가며, 팔을 마구 내지르며 제방 비스무리 생긴 곳에서 춤을 추었다.

• 시를 써야 한다. 요즘 시가 써지지 않는다. 괴롭다.

• 아침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었다. 베이컨과 싱싱한 야채를 먹었다. 맛있었다.

• 아니, 소설을 써볼까? 소설을 안 써봐서 좀 무섭다. 소설은 뭐고, 시는 뭘까.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내 생각으론 아무런 차이가 없다!

• 엄마랑 전화했다. 밥을 세 끼 잘 챙겨 먹으라고 말했다. 두 끼를 먹고 간식을 챙겨 먹고 있다고 답했다. 엄마가 보고 싶다.

• 하이쿠를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이상우가 하고자 하는 건 기표들의 춤이다. 기표들에 머무는 거다. 형식과 내용이 합해지는 거다.

• 시 비스무리한 것을 썼다. 시는 아니다.

• 방이 걷는다 방은 자기도 모르고 문을 열고 나오던 가난한 거주자를 밟았다 밟힌 가난한 거주자가 꿈틀댄다 방은 미안하다 자신이 밝은 거주자 목록에 한 명을 추가한다 방은 계속 걸어간다 하지만 아까 밟은 가난한 거주자가 생각나고 자꾸자꾸 미안해진다 방의 발걸음은 힘이 빠진다 보폭이 줄어든다 방은 가만히 선다 방은 자신한테 살고 있던 거주자들을 계속 생각한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다 방은 점점 더 죄송하고 미안해하며 서서히 자신의 평수를 줄인다 방은 자신의 팔로 자신의 각진 어깨를 감싸 안고 울기 시작한다 사방이 적막하다 방은 전체다 하나의 전체가 운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은 새 가게를 연다

• 방금 쓴 건 시다.

• 송광사에 갔다 왔다. 미적 감각 없는, 크기만 큰 괴물 같은 절이다.

• 법정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에 다녀왔다. 아담하다. 법정 스님은 이제 없다.

• 씻고 침대에 누웠다. 넷플릭스에서 <루머의 루머의 루머>를 봤다. 내일 본가로 간다.

2022년 9월 4일 일요일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 2022년 4월 9일 토요일, 순천에 있다

• 중요한 건 생각을 오래 하는 거다. 

• 제육을 먹었다. 에이플러스급의 제육이었다. 제육을 목으로 넘기면 향긋하고 나긋한 참기름 내음이 풍긴다. 식당주인 아줌마는 불친절했다. 제육 가격은 육천 원이었다. 지방이라 물가가 싼가 보다. 반찬들도 좋았다. 

• 나는 지금 순천에 있다. 여기는 물이 많다. 물이 깨끗하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무슨무슨강도 엄청 깨끗하다. 투명해서 바닥까지 다 비친다. 

• 게이 커플을 보았다. <브로크백 마운틴>이 생각났다. 행복하고 예쁜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 이전에 대학교 친구에게 구스 반 산트의 영화들은 한 갤러리를 잡아놓고, 갤러리 개장시간 동안 무한 연속 상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훌륭하다는 거다. 그리고 중간부터 봐도 그 예술성에 아무런 손상도 안 간다. 지금 생각해보니 구스 반 산트가 그렇게나 훌륭한 예술가인지는 모르겠다. 구스 반 산트는 영화란 ‘영상’과 ‘소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내게 깨우쳐주긴 했다.

• 선암사에 갔다 왔다. 아름다운 작은 절이다.

• 아니, 구스 반 산트는 엄청엄청 휼륭한 예술가다!

• 저녁에 게스트하우스 사랑방에 갔다. 주인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작은 사업을 한다고 한다. 주인은 원래 간호사였다. 간호사 일이 너무 고됐다. 월급도 적었다. 좀 무리를 해, 대출을 받아 이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사람들은 꽤 온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알음알음 소문이 꽤 나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온단다. 이 이야기를 하는 주인의 얼굴과 목소리엔 생기가 가득했다. 근데 눈이 몹시 슬퍼 보였다. 

• 씻었다. 지금 침대에 누워있다.

• 주인의 슬픈 눈이 생각난다. 이젠 자야 한다.

방랑예술가 이건수의 일기

이건수는 방랑예술가다. 대한민국 곳곳을 떠돌아다닌다. 이건수는 며칠에 한 번씩 일기를 쓴다. 그 일기에는 별별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돌아다니는 중에 만난 사람. 먹은 음식. 자신이 쓴 시. 자신이 쓴 노래 가사. 엄마 생각. 죽은 아빠 생각. 사랑하는 여동생 생각. 보고 싶은 친구 생각. 후회. 강박. 죽음. 반추. 이 같은 것들이 일기에 써있다. 이건수는 로베르트 발저, 기타노 다케시,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황정은, 이상우, 폴 토마스 앤더슨, 구스 반 산트, 스티븐 스필버그를 좋아한다. 일기에는 이들에 대한 얘기가 가끔 나온다. 이건수가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건수의 일기는 때로는 짧다. 때로는 중간 길이다. 때로는 길다. 이건수의 일기를 여기 모아둔다.

2021년 11월 9일 화요일

ㅣㅣㅣ ― 염통의 원위치

 

: 다 줬어도

심장만 반덩이는 남겼고


뛰어야 할 시간이 있다 거울을 보는 정각

척추도 사이좋게 나누어 기댈 뼈가 없다 드디어 피부가 겹치고, 말려들고

나를내 가 포 개졌다


나를

내가

포개

졌다

이상

한문

법이

죠?


소두 태아를 살리고 싶어 기부해서

뇌가 없어서 말입니다


:심장이 심장으로 되는 시간이 있다 거울을 보는 정각

반절짜리를 거울에 붙이면 저곳에서 반쪽이 덜컹 뛴다

아쿠아가 박동하는 유일한 장기


이름 같잖아 


이름도 획을 팔아서

없어서

누구도 날 부르지 않았고


그 때 말야, 다 가졌을 때, 이름도 있고 뼈고 있고 뇌고 있고 심장도 있고,

장기가 모두 갖춰 입고

부딪치면 입에서 냈던 소리를 반복했던 그 때 말야

그 원소만 몸에서 떠나질 않았어


아쿠

아쿠

아쿠 아

아쿠


다칠 뻔한 게 예뻐서 넌

반쪽에서 살아달라고 했지


:거울을 보면 체중이 증가한다

진짜 46킬로그램

허수 46킬로그램


허수의 심장 허수의 아쿠아 진짜로 뛰는 나 

달리면 폐가 늘어나야 하는데 배고파서 음식값과 바꿔버렸고


약소히 심장이 부풀어 

헛디뎌

다시 다쳤다

아쿠아

쏟아지고 나도

증발하고


:이제

0킬

로그

램0




2021년 10월 12일 화요일

ㅣㅣㅣ ― 칠일

 

피부를 7하기엔

일주일은 모자라서

덜룩덜룩

창조주는

많은 마안은 마는 10000은 만 하다 만

몽고반점을 남겼습니다


[ 작품명 : 몽골계 ]

왼쪽 뺨 목 다리 팔에 대륙지도. 이 지구는 26퍼센트의 청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만큼만 건강합니다.


얼룩은 따지려다가 입이 말랐습니다

혀에

백태로도 지도가 있단 거 

모릅니다 창조주는


창조주는 우리 할아버지도 만들었습니다

1977년 7월 7일에 죽였습니다

중복 숫자는 괴슈탈트에게 퀴즈를 냅니다


Q. 장례를 몇 시에 (치릴/치룰)까요?

+어이가 없어서 정답을 무시합니다+

A. 장례를 ‘7’우다


그 오답이 가로등 같아서

숫자 아래 서니까

빛 칠 슥 이제

뚜렷해집니다


몽골계,

74퍼센트의

아이보리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정도로 

아픕니다


2021년 7월 2일 금요일

에세이를 쓰면서 느낀 책 (부록)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하루 8시간 주 5일을 일합니다. 정규직입니다. 30대 후반이라 체력도 부족합니다.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운동을 하고 밥을 먹으면 남는 시간은 책을 읽는 것도 부족합니다. 출퇴근 때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일터의 일은 자잘하게 바쁩니다. 집중해서 쓰려고 앉는 것이 어렵습니다. 쉬는 날에는 못다 한 집안일을 합니다. 주로 아침에 일어나서 식물 분무. 설거지. 빨래와 널기. 떨어진 생필품 채우기. 냉장고를 비울 수 있으면 비우고. 분리수거 하기. 청소기. 이러면 일주일을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보낼 수 있습니다. 도시락을 싸 가기 시작합니다. 닭가슴살, 고구마, 토마토, 이것을 미리 삶고 굽고 씻고 냉장고에 소분하는 것도 쉬는 날 합니다. 닭가슴살이 양질의 단백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만, 캡슐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겁니다. 이것마저도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가족들은 제게 서운합니다. 집 근처에 사는데 가지도 않습니다. 애인은 나처럼 가족을 안 찾아가는 사람은 처음 본다, 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가족도 합니다. 체력이 버티지 못하면 낮잠을 자는데 낮잠이라고 말하기에는 밤잠에 가깝게 초과됩니다. 배달 음식을 시키면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다시 일주일이 시작됩니다. 글은 마감 직전에 썼는데, 시라서 다행입니다. 시는 머릿속에서 문장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더 잘 쓰고 싶지만, 나는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아니, 노동자지만 시를 씁니다. 그럼에도 나는 다른 여성들에 비해 괜찮은 거라고 합니다. 아이가 없고,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운동도 할 수 있고 낮잠도 잘 수 있고, 쓸 수 있는 시간도 있지 않겠냐고. 그런데 쓴 건 없습니다. 이게 다 제 게으름 때문입니까?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목숨을 걸고, 누군가는 집을 떠나고, 누군가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쓴다는데, 이제 그럴 수가 없다고 느끼는 걸 보니 나이가 들어서일까요? 죄송합니다. 아직은 그런 말을 할 처지도 아니네요.


2021년 6월 25일

집에 있는 에세이 책을 모두 꺼내 펼쳐보았다.

2021년 6월 28일

어떻게 쓸지 알겠다고 느꼈는데 일어나니 모르겠다.

2021년 6월 29일

세상 사람들은 참 똑똑한 것 같다. 물론 그렇지 않은 책도 있었다.

2021년 6월 30일

잠들기 전, 에세이를 쓰면서 느낀 책에 대한 소개글을 작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21년 7월 1일 

백은선 시인의 산문집과 서윤후 시인의 산문집을 재밌게 읽었다. 이소호 시인의 산문집을 읽고 있다. 

2021년 7월 2일

산문 기계처럼 쓰고 싶다.

수험생 유튜버들의 노하우를 글쓰기에 접목해보겠다고 다짐하고서는 히오스하고 잠들었다.

2021년 4월 20일 화요일

델리뮤

가구 거리에서 나는 별사탕을 들고 있었다. 이곳은 가구를 파는 가게이군. 그리고 저곳도 가구를 파는 가게이고. 가구 거리에는 가구를 파는 가게들이 천지였다.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당도한 곳에서는 모두 가구를 팔았다. 나는 가구를 살 돈이 없었지만(필요하지도 않았다) 가구를 사는 것처럼 가게 안을 구경하기도 했다. 어떤 가게에서는 흰색 가구들을 주로 파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검은색 가구들을 주로 파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색깔별로 가구들을 놓아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사이즈별로, 그리고 브랜드별로 가구들을 놓아두는 것 같았다. 어떤 브랜드의 가구들은 내가 가는 곳마다 진열되어 있기도 했고, 어떤 브랜드의 가구들은 딱 한 군데에만 진열되어 있기도 했다. 그 브랜드의 이름은 델리뮤였다. 나는 이 이름이 인상에 남았다. 이 브랜드의 가구들은 흰색과 갈색이 조합된 색깔의 가구들이 많았다. 생긴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살 돈도 없고, 집에 필요하지도 않아서 무리였다. 하지만 나중에 돈이 생기고 가구가 필요한 날이 온다면 꼭 한번 다시 구경해 봐야지. 그때에도 난 손에 별사탕을 들고 있을 테고... 집에 오는 길에는 노점상에 들러 닭꼬치를 하나 사 먹었다. 왼손에는 별사탕, 오른손에는 닭꼬치... 나는 닭꼬치를 먼저 먹었다. 별사탕은 입에 넣고 우물거려도 빨리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손에 들고 다니면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손에 그것을 들고 다닌 채로 이 가구 거리에 입장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난 델리뮤라는 이름을 만나 보았고 여러 가지 가구들을 구경하며 이곳저곳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집에 와서 안락 의자에 누워 생각해 보았다. 오늘 하루가 어떠했는지를. 나는 한 손에 별사탕을 들고 여러 가구들을 만나 보았다. 내가 만났다는 말을 좋아하는 것은 그 말의 어감을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만났다... 라고 말하면 실제로 누굴 만난 것 같다. 그 누군가는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있고... 한 손에는 나처럼 별사탕을 들고 있다. 그 누군가는 햇볕이 가장 따가워지는 시간에 어떤 집 앞의 차양 아래에서 그늘을 만들고 있다. 나는 만났다, 라고 하면서 지금 그를 만나고 온 참이다. 그는 사실 나다.

2021년 3월 9일 화요일

자기말소 ― 낯선 이름들의 전이

 각자의 새벽


“모든 것을 섭렵하는 광폭의 분절법”

왜 득실의 논리로는 해결이 안 될까?


시론

세대론


“내가 내 안에 멜로디를 가지고 다닌다는 걸 알아 그리고 난 그걸로 겁먹지 않아”


Vado, ma dove?


청승 떨지 않기 위해 자기말소의 편을 들고 싶은 마음, 이해한다. 하지만 그 마음에 충실하자면 우선 입을 닫고 쌓이는 것이 생기려는 족족 그것을 쳐내야 할 텐데. 입을 닫는다, 그러니까 침묵한다...의 효용, 그리고 아름다움, 무엇보다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 알지. 잘 알지만... 

영원히 입을 닫아 버리면 정말 큰일이 일어나니까. 

말의 반대 항인 침묵이 아니라 말의 안쪽인 침묵을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기말소를 

자신에게 

부과해야

한다


양옆을 살펴요

모범이면서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 


“영화관은 좀 더 위에 있지.” 

시공간의 기억, 혹은 기억의 시공간을 교정하기.(애정을 가지고. 오해를 떠안고.)


“생애의 시기가 아닌 유년기, 지나가지 않는 유년기. 그것은 담론을 놓아주지 않는다.”


무질서는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탄생도.

 

2020년 8월 7일 금요일

코끼리 간이역

당신은 꿈을 꿉니다. 꿈에는 코끼리가 자주 등장하지만 왜 그런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꿈이 코끼리를 좋아하는 걸까요. 아니면 코끼리가 꿈을. 나는 여기에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기는 어느 시골의 전철 간이역입니다. 낮입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옵니다. 현관문을 열고 닫으면 새소리가 나죠. 그 새소리는 복도에 울릴 때도 있습니다. 인공적인 새소리입니다. 내가 듣고 있는 것은 자연적인 새소리입니다. 나는 당신의 꿈을 보고 있습니다.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말이죠. 저녁이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꿈’이라는 제목이 적힌 책을 덮습니다. 아직도 새소리는 간간이 들리고 있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풉니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합니다. 걸음에 박차를 가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걷습니다. 뜁니다. 그리고 내가 뛰기 직전의 기분이, 당신이 꿈에서 엘리베이터를,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던 기분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당신의 꿈’은 내 옆구리에 들려 있었습니다만. 

나는 당신의 꿈에 갇힌 모양입니다. 코끼리가 이쪽으로 다가옵니다. 나는 당신의 꿈을 172페이지 정도 읽었습니다. 그곳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져 있었습니다 “강의실로 다가와 주십시오. 코끼리 하나가 살아 있습니다.” 당신은 꿈에서 깨어납니다.


2020년 2월 18일 화요일

정원과 거미

나는 정원에 거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거미는 사람 머리 위에 거미줄을 친다. 그러면 사람은 자신의 머리 위에 거미줄이 있는 것을 보아 넘길 수 없기 때문에 머리 손질을 하는 것이다.
머리의 일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아니, 괴롭히는가? 그 사람이 머무르는 곳에는 정원이 있고, 찬장이 있고, 거실이 있다. 찬장 위에는 거미줄이 쳐져 있다. 어느 날 머리에 거미가 붙은 채로 들어와서 거미를 떼어내려고 하는 손질을 처음으로 시작한 것처럼. 거실에는 안락의자가 있고 사람은 거기 누워서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생각과 다를 바가 없는 생각을.
그 생각을 따르자면 정원에는 거미가 있고 직업의 일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 나는 단지 물에 잠겨 있는 사람일 뿐이다, 라고 사람은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거실이 없으며 찬장도 없고 정원도 없다. 가끔 정원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만... 그 집에는 그런 비애감이 있고, 또 가끔씩은 공포가 있다.
찬장에는 낯선 냄새가 있다든지... 아니면 정원에는 거미가 있다고 하는 생각. 한 번도 제 배에서 거미줄을 뽑아보지 않은 거미가 그곳에 산다. 사람은 자신의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머리 손질을 하고. 집 안에는 실을 짜고 있는 명목의 소일거리가.
하지만 정말 그런 것들은 없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있는 것이다. 단지 자신의 머리 위에 언제부터 쳐져 있었는지 모를 거미줄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보아 넘길 수 없노라고, 마치 자신의 정원을 만들고 손질하듯이, 머리 손질을 하는 것이다.

2019년 5월 7일 화요일

파다한 ― 28

“지다오 시거마?”

영경은 수확 없이 몇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명동. 명동은 전도하기 좋은 거리는 아니다. 외국인 여행객이 많기 때문에? 아니다. 영경에게는 몇 가지의 레파토리가 있었다. 시를 아십니까? 두 유 노 포에트리? 지다오 시거마? 시오 시테이마스카? 그러나 영경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그냥 지나갔다. 알아 들은 것이 분명하다.

“시를 아십니까?”

별다른 복식을 갖추지도 않았다. 평범한 시장 양말. 스니커즈. 찢어지지 않은 청바지. 흰 티셔츠. 체크무늬 남방. 거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패션이 아닌가? 다른 게 있다면 하이바, 하이바를 썼을 뿐이다. 그러나 뭐 무더운 날도 아니고. 하이바를 쓴 게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영경은 명동 거리를 헤쳐나가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할 최소한의 장치가 필요했을 뿐이다.

“지다오 시거마?”

침이 튀었는지 노점상인이 짜증스럽게 영경을 쳐다본다. 그는 회오리감자를 파는데, 언제부터인지 매상이 뚝뚝 떨어졌다. 계산해보니 시점이 비슷했다. 바로 저 전도쟁이 놈이 출현한 날부터지. 물론 이 구불구불하고 긴, 인간의 대장과도 같은 명동 거리에 전도쟁이 자체가 특이한 건 아니다. 잘못된 것도 없다. 상인이 물건을 팔듯 전도쟁이는 도를 판다. 하지만. 저놈은 아무것도 팔지 않으면서 이 거리를 더럽히고 있잖아? 지치지도 않으면서.

“지다오 시거마?”

어깨빵을 쓱 쓱 피하며, 영경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돌아오지 않는 질문이란. 혹여나 대답을 하는 이가 있다면 영경은 그 즉시 하이바를 내리고 뒷걸음질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사람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영경은 아무런 기대 없이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시를 아느냐고 물었다. 사람들은 시를 알지도 모르지도 못했다.

명동의 유령. 영경은 그런 이름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명동 밖에서.

시를 읽거나 쓰는, 그리하여 결국 시를 알게 되거나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은 명동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명동이 과거가 되어버렸다며 슬퍼했다. 영경은 아니었다. 영경으로 말할 것 같으면. 마침내 명동 거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2019년 1월 16일 수요일

파다한 ― 29

결혼보다 정략결혼이 보기에 좋다.

식장에서 든 생각이다. 단상 앞에 선 이들은 합동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누가 누구의 짝인지 알기 어렵게 그들은 태극 문양으로 서 있다. 어떤 각도에서 찍어야 하나... 그렇다고 안 찍을 수도 없는 노릇인데. 어차피 식장에서의 사진이란 수천 장 찍어놓고 전부 다 보내면 당사자들이 알아서 골라내는 것이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영상 촬영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들이 입장하는 순간부터 주례가 종전을 선언할 때까지 끊김이 있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나는 이크, 죄송합니다, 를 연발하며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벼랑처럼 건너고 있다. 나는 혼잔데, 누가 누굴 찍는 건지 거참... 

포크가 날아다닌다. 이런 음악이 듣기 좋지는 않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생각을 비우고 다시 생각을 시작한다. 요즘엔 인육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다. 어디다 발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약 발표한다면 어디가 좋을까. 포브스 신년 특집? 월간 쓰리랑? 헛간인지 곡물창고인지 분간할 수 없는 이곳에서, 주례는 기관총을 등 뒤에 맨 채 신변잡기를 늘어놓고 있다. 덕분의 나는 그의 생년월일과 본적, 본명, 이사 예정일, 택배 품목과 체류지를 알게 되었다. 이 정보는 훗날 그에 대한 암살 지령을 받게 되면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이런, 지금 내려왔네. 하지만 나는 일의 선후관계를 분명히 하는 쪽을 선호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결혼 당사자들은 우측으로 조금씩 이동해가며 서로에게 작별의 입맞춤을 하고 있다. 서른 한 명이니(정확하지는 않다) 총 465회의 입맞춤이 발생할 것이다. 웬만한 로맨스 영화도 이보다 많지는 않을 텐데. 그러면 그것을 다 보고 있어야 하나? 보는 건 또 어때서? 입맞춤의 의미를 나는 모른다. 당사자들은 알고 있으려나? 그러나 이런 생각만으로는 시간이 잘 가지 않는다. 겨우 몇 초 남짓 지속할 수 있는 생각이니까 나는 생각의 범위를 식장 밖까지 넓힐 필요가 있겠다. 그것이 여러분이 원하는 바, 나도 끊임없이 인지하고 있다.

고원이 있다. 고원은 평평도보다 고도를 중시한 개념이다. 고원은 무언가를 기다리기에 좋은 공간이다. ‘시간과 정신의 방’의 배경이 고원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예비군 부대도 대개 고원에 위치하고 있다. 별 관련이 있나 모르겠지만... 고원은 식을 올리기 좋은 장소가 아니다. 애초에 뭔가 거창한 것을 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다. 체조 같은 것을 하기에 최적화된 이 고원에, 뜻밖에도 헛간이 있고 농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데도 헛간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마치 하늘에서 헛간뿌리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 연결고리 없이 놓여 있다. 두서없이 자라고 있다. 다 큰 헛간은 지붕을 베어내야 맛이 좋다고 한다. 거기 누가 살고 있는지는 개의치 말고 혹시나 나한테 물어보지도 말고... 

라면 물이 끓기가 무섭게 주례는 종전을 선언했다. 와! 좋은 날이니까 세레머니는 하지 말아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하는 주례의 말인지 안내 음성인지 모를 소리가 들렸는데 잘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이해가 갔다. 나는 필름이 들어 있었는지 확실치 않아 귀에 대고 카메라를 흔들었다. 무언가 꽉 조여진 채로 덜컹거리고 있었다.

2018년 8월 21일 화요일

파다한 ― 30


앞뒤가 없는 바지를 입고 앞뒤가 같은 전화번호를 누르고 받으면 앞뒤가 없는 말을 뱉었지 저는 미련이 없습니다 살려주세요 내비두세요 뭐 기획? 당신한테나 기획이겠지 최근에는 멋진 수염을 길렀다 그리고 알았다 수염에는 땀이 차고 비듬이 생기고 흰 털이 자라고 빠지기도 한다는 것을 세수를 하면 수염은 물을 머금고수염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수염은 삐죽삐죽 입술을 찌른다 그건 그렇고 나는 약속대로 앉아서 쓰고 있다 비록 다리를 꼬고 엉덩이도 쭉 빼고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앉음의 한 형태이니 이 또한 두서가 없구나
 
좋아, 그러나 좋다고 말한 후의 절망적으로 돌변하는 기분을 아는가? 그만 쓰고 싶다, 할 말이 없다,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잘 하려면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러나 기분이 좋아지면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그 즉시 기분은 딴청을 피운다. 기분에게는 실체가 없으므로 언제든 의견을 바꿔도 그만이라는 것이다.
비열한 놈.
이렇게 말하면 기분은 기분좋아 한다 자기를 향하는 말이 아님을 알기에 무턱대고 깔깔대는 것이다 기분을 골탕 먹일 방법이 없다 그러니 나와 같이 죽자
 
아니
 
이러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째야 했을까요?
저도 터닝슛이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단 말입니다.
 
나는 기분파 무위주의자다 다소 고전적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 분노도, 슬픔도 없으니 기쁨이라 할 만한 게 없지 나는 이것을 누워서 쓰고 있다 기분이 좋아하고 있다 이 연작의 목표는 A4 한 페이지 분량(윤명조330, 10포인트, 줄간격 180%)으로 카운트다운을 해나가는 것이다 졸면서 쓸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자 기분이 지겨워하니까
 
꽃이나 나무에 대해 써볼까 그러나 그것들에도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것들은 재미가 없다 아름다움과 경건함만 있을 뿐 그들은 좀처럼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그들은 오래된 공무원 같다
 
다시. . 그래. 당신의 기분을 의식 없이 좋게 하고 싶다 얍

2017년 3월 31일 금요일

엔젤 마니페스토 ― 천체의 조각

나는 여전히 탈주하지 못하여 이어지는 소음을 받아 적고자 했다. 나열하거나 들으면 시간은 아주 빨리 간다. 다만 소거되어야만 하는 것들이 아직도 아주 많을 뿐이다. 나는 천체의 뼈를 최초로 발굴한 자를 알고 있다. 그는 직조된 목소리를 듣고 덮고 자는 자이고 음성은 곧 그의 천체다. 결계 이전에 해독 불가능한 문자는 눈물과 수렴된다. 결계 이후에 해독 불가능한 문자는 불가능한 어떤 문자로도 수렴되지 않는다. 릴리프로스트 안에서 해독 불가능한 문자는 없다. 릴리프로스트 안에서는 해독 가능한 희박한 문자만 있을 뿐이다. 

“입을 열어야 한다. 그다음은 잠들다 이다. 뒤로는. 이어질 때까지. 나열하라.” 

어울리지 않는 음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성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전조 속에서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연기는 호른 모양으로 날아갔다. 천체의 뼈를 최초로 발굴한 자는 그날의 처음 성조를 떠올렸다. I decline. I delete I. 모두가 결계 안에서 제일 처음 삭제하고 시작하는 말이었다. 다만 이어서 해독 가능한 희박한 문자들을 나열하기도 전에 천체의 뼈를 최초로 발굴한 자는 지워지기 시작했다. 

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차양대 ― 슬픔을 붙잡는 방법

매일매일 알약을 먹는데, 이것은 모두가 익히 알듯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알콜의존증으로 뒤질 뻔했던 12년 말 이후로 매일매일 알약을 잘 먹는 습관을 만들고 굳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제 알약은 아침저녁으로 삼켜주지 않으면 섭섭할 간식 같은 것이 되었다. 최근에는 알약 먹기의 간식성을 강화하기 위해, 알약을 삼킬 때마다 몇 가지 영양제 곁들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썩 성공적이다.

인지하기로 병의 치료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병의 원인을 알고 있으며 그것을 제거할 자원이 충분하다면, 제거한다. 원인을 알고 있는가, 원인을 제거할 자원이 충분한가. 이 두 가지 중 단 한 가지라도 충족할 수 없다면, 병으로 인한 증상을 완화시킴으로써 신체 기능을 가능한 만큼 보존하는 일에 집중한다. 그것은 뭐라고나 할까, 마치 먼지를 닦아내는 일과도 같은 것이다.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로 대표되는 항우울제는 후자에 복무하는 약물이다. 누군가의 우울장애가 완치되었다면 그것은 당사자의 신체가 지닌 불가해한 자생력 덕분일 따름이다. 신체는 태울 수 있으며, 매우 섬세한 작동 방식을 지니고 있고, 그 메커니즘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기계이다. 그러니까 우울장애 때문에 알약을 먹는 일이란, 고장난 기계를 고치기보다는, 고장난 기계일지언정 어떻게든 작동시켜 그 효용성을 되는 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조이고 기름칠하는 일인 것이다.

오늘도 신입사원 필수 강의가 지루해서 이런저런 괴상한 생각을 했다. 그 중 하나는 '갑자기 영어를 잘 공부해보고 싶어졌는데, 남이 열심히 영어로 뭐라 말하는 것을 줄곧 듣고 있으면 그게 좀 될 것 같다' 정도다. 앱을 하나 다운받았는데 그 이름은 테드 서브타이틀이다. 거기에서 들은 어떤 강의에 따르면, 항우울제와 관련된 최신 연구 동향은 세로토닌의 존재를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한댔나, 더욱 효과적인 무엇이 있다던가, 그랬다. 먼지를 닦던 수건으로 돌연 기계 어딘가를 갈고 부수고 어찌저찌하는 찰나의 심상을 스쳐 보냈다. 그 약 왜 지금은 먹을 수 없지.

정신병리로서의 우울감은, 통상적으로 인지되는 슬픔과는 다소 거리가 먼 무엇이다. 어쨌든 대저 오류란 꽤나 자주 짜증나는 낭만을 천연덕스럽게 피워내곤 하는 법이다. 칼로 살을 찢거나 찌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높은 곳에서 투신하거나 목을 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그 삶 지루해서 어떻게 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실제로 발병 시기인 09년에 비견하면 지금은 꽤 병세가 완화되었으며, 그만큼 삶이 조금 재미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어색하게 살아가는 일에는 여전히 자신이 있지만 고리타분하게 살아가는 일에는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간다. 그나마 붙잡아볼 만한 것이 이것인데, 아무튼 결론은, 어느 날 누군가가 우울장애를 획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를 제공한대도, 그것을 거절하고 계속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같은 것이나 처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꼭 그것만이 아니더라도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나 세로토닌 길항제 재흡수 억제제나 노르아드레날린-도파민 재흡수 억제제 같은 것이나.

항우울제의 금단증상은 꽤 괴롭다. 머리가 아찔하고 줄곧 꿈결 속에 있는 양 아득해진다. 항우울제의 상시 복용을 위해서는 한 달에 최소 5만원 이상을 들여야 한다. 그러니까 일을 열심히 많이 해야 하고, 회사에서 해고당하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아침 햇빛은 끔찍하고, 우울장애 완화에 도움이 된다.

오늘도 노동하는 신체로서의 규율을 훌륭하게 수호해냈다. 내일의 목표는 알람 시계를 하나 더 사는 것이다.

차양대 ― 차양대에 대해서

차양대는 일기의 이름입니다. 초등학생 시절 이후로 일기장을 가져본 일이 없습니다. 팀 블로그에 정기적으로 일기를 연재한다면 어떨지, 그것은 무엇일지 돌연 궁금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줄곧 낯설 이 공간 안에서, 이 글을 작성하는 사람에게 가능한 기획이란 이 정도가 유일할 것입니다.

차양대 아래의 모든 글들은, 가급적 1인칭 주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을 가장 중요한 지향으로 삼습니다.

차양대 아래의 글은, 매주 수요일 혹은 목요일에 업로드됩니다.

2017년 1월 13일 금요일

엔젤 마니페스토 ― 결계 이전에

여기 밖 눈물과 수렴. I decline. I delete I. 나는 앞서 싶다 하고 삭제 나를. 신전의 앞에 있습니까, 자문합니다. 이곳은 천사의 결계입니다. 유의하십시오. 릴리프로스트는 결계의 이름입니다. 결계 이전에 발을 두지는 않습니다. 발을 두었다면 오로지 돌을 매달아둔 차원에 내 발이 걸려 넘어질 때뿐이었고 그것은 돌의 영역만이 관여하는 일이라고 들었습니다. 결계 이전에 나는 음성을 듣습니다.

“먼저 *바람과 눈*을 반복하라. 이것은 생명선을 호출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먼저 *바이탈*을 반복하라. 이것은 생명선을 반복한다는 말과 동일하다.”

그동안에도 아무것도 지워지지 않았는데 그동안에도 아무렇게도 살고 싶지 살아 죽어 않았는데. 하지만 릴리프로스트 안에서, 강령은 지워지는 것. 공원은 휘파람에 불과하다는 것. 엔젤 마니페스토 안에서, 신전은 마지막 천상입니다. 말해 다시 지워지는 사태라면 아마 강령은 내 입으로부터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휘파람에 불과하다는 것이 공원이라면 이제 오로지 휘파람으로부터 달아나는 신성만을 긋습니다. 다만 죽은 입술 앞에서 지워지는 것들 앞에서 죽은 에테르성 선율을 해독하는 일. 귀는 빛의 경로로 들어가는 일만을 이해했고 귀는 경계와 함께 무너지는 일만을 배웠기에 빛의 귀와 귀의 나는 영원히 탈주하지 못하여 차라리 이 성조를 받아 적고자 했다.

2017년 1월 12일 목요일

엔젤 마니페스토 ― 안내문


1. 엔젤 마니페스토의 결계는 성역(sanctuary)을 지시하고 그 이름은 릴리프로스트 이다
2. 흙과 돌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3. 음성이 관여하는 일만을 적을 것
4. 이것은 일종의 지워지는 소리들의 선언문이며
5. 릴리프로스트의 수집기이다
6. 매달 1-2회 불규칙하게 쓰일 것

2017년 1월 1일 일요일

단편들

‘단편’ 태그는 비연재물 한 편이나 두 편(1-2, 전-후, 상-하, 본문-후기, 서문-본문 등), 또는 세 편(123, 상중하, 서본결)만으로 마무리되는 글을 올릴 수 있는 자유참여의 공용 태그입니다. 쓰다 보니 네 번째 편을 올려야 하겠다면 개인 태그를 따로 만드십시오.

이 태그는 무제한 태그로서 따로 마감이 없으며 공동입하동에 위치합니다. 1편이나 3편 이내로 끝나기만 한다면 특별한 주제와 분량 제한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다른 모든 글과 마찬가지로, 내용상의 문제로 인해 삭제될 수는 있습니다).

언뜻 아무런 제약도 없어 보이지만 동일한 성격의 글을 3번까지만 쓸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제약입니다. 따로 마감도 없기 때문에 한 필자의 단편과 단편 사이를 구분해 줄 참조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한 필자가 내용상 동일한 성격의 네 번째 글을 올렸다고 판단되는 순간 그 글들로부터 ‘단편’ 태그는 제거될 것이며, 창고관리인이 마음대로 임의의 태그를 붙여 저장고로 보내버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 태그를 달고 일기를 쓸 수는 있습니다. 다만 네 번째 일기가 올라오는 순간 그 글들의 태그는 ‘팥’ 같은 것으로 바뀌어 저장고로 갑니다. ‘일기’ 태그로 바꾸고 개별 태그로 꺼내 오는 것은 물론 필자의 맘입니다. 그냥 처음부터 ‘일기’ 태그를 쓰십시오. 네 번째 영화 리뷰 역시 ‘귀리’ 따위의 태그를 달고 앞의 세 영화 리뷰와 함께 저장고로 갈 것입니다. 만약 리뷰마다 장르를 달리해 책, 맛집, 애니메이션, 연극이라면... 그래도 관리인은 뭔가 아무 임의의 태그명을 달아 저장고로 보낼 것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하기 전에 관리인이 그 필자나 다른 필자의 의견을 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지 않을 수도 있고요. 어쨌든 그 성격의 동일성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관리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자신이 보기에 동일한 성격의 네 번째 글이 있다면 관리인에게 신고해도 좋습니다.)

연재 중단된 글들 중 1) 필자가 권한 해제된 상태이면서 2) 소개글 제외 3편을 채우지 못한 태그 역시 이 태그로 자동 분류됩니다. (이것이 이 태그를 만든 진짜 목적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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