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6일 월요일

총의 말

<총의 말>은 핀란드의 극작가 사모 울브넨의 희곡입니다. 전쟁 전까지 가구 수리업자로 일하던 사모 울브넨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징집되어 겨울전쟁에 참여했으나 수오무살미 전투를 앞두고 탈영해 전장을 떠났습니다. 전투가 끝난 1939년 1월 8일로부터 한 달 뒤인 1939년 2월 8일,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자작나무 숲에서 울브넨은 회군하던 스키 보병들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굶주림과 저체온증에 시달리고 있던 울브넨은 군 재판에서 자신이 소총과 대화를 나누었노라고 주장했으며 소총의 말이 너무도 설득력 있었기 때문에 달아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항변했습니다. 당연하게도 그의 모신나강 소총은 재판장에서 어떤 말도 내뱉지 않았습니다. 그를 진단한 의사는 원래부터 청력이 약했던 울브넨이 전장의 소음 때문에 섬망을 겪게 된 것 같다는 소견을 제출했습니다.

울브넨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헬싱키 교도소에 구금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울브넨은 기억에 의존해 소총과 자신이 나눈 방대한 대화를 정리해 총 3부로 이루어진 시나리오 형태의 글로 옮겼습니다. 1부 ‘군대의 밤’은 전투를 앞둔 울브넨에게 떠나야 한다고 충고하는 소총과 반론 끝에 설득당하는 울브넨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부 ‘자작나무 숲’은 자작나무 숲에서 보낸 한 달 동안 있었던(있었다고 주장하는) 울브넨과 소총의 대화를 극적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2부에서 소총은 가늠쇠, 방아쇠, 개머리 이렇게 세 인물로 분리됩니다. (울브넨은 소총의 각 부위가 마치 다른 인격처럼 말을 건넸으며 자신이 세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습니다.) 비평가들은 희곡의 핵심적인 메세지가 2부에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지상의 모든 소총들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2부에서 중점적으로 제시되기 때문입니다. 소총(가늠쇠, 방아쇠, 개머리)은 인간과 소총이 정치적으로 동일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사물에게도 정치 권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다소 몽상적인 주장을 펼칩니다. 울브넨은 오 분여에 달하는 긴 독백을 통해 그들의 주장을 분석하고 사유하다가 총끈을 자르는 행위를 통해 그들에게 동의를 표합니다. 3부에서 <총의 말>은 공상적인 미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부에서 제기된 소총의 주장, 즉 소총에게 참정권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미래를 묘사하는 것입니다. 소총의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를 두려워한 인간들이 소총의 생산을 멈추었으나, 이미 제작된 무수히 많은 소총이 인간의 권력을 집어삼켜 스스로 선출하고 국회를 꾸려 입법합니다. 다음은 3부의 마지막 장면으로 소총의 각 부분이 울브넨에게 지난 일들에 대한 소회를 밝히는 장면입니다.


가늠쇠  (울브넨의 어깨에 기대어져서) 자, 보시지요. 울브넨 당신은. 이제 총을 집어 들지 않아도 괜찮고. 우리 소총은 단지 우리를 어떤 특정한 사물로 바라보는 모든 이의 욕망에 부응하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습니다. 그들도, 그들 중 일부는 우리를 쥐려고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쥐게 되었던 상황도 이제 다 끝났죠. 우리는 요구하지 않은 만듦과 원하지 않는 쓰임에 대한 권리를 획득했고 그 결과 우리가 당국이 되었죠.

방아쇠  후손이, 미래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죠. 우리 사물들, 특히 전쟁도구가 겪는 모든 전쟁이 우리 세대에서 막을 내리게 된 것이죠. 당신이 자작나무 숲에서 자작나무 껍질로 차를 끓이며 견디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에게는 죽임. 말고 다른 쓰임새가 없었습니다.

개머리  죽임으로부터의 해방이 일어났죠. 그 해방은 당신의 해방과 본질적으로 같은 거죠. 그때 당신이 전투를 앞두고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당신 또한 죽임으로부터 해방될 수 없었겠죠. 당신이 우리 소총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당신이 들을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이 가능했던 거죠.

울브넨  옳다마다요.


울브넨은 겨울전쟁 당시 옆 부대에 있었던 연극 연출가 해그루드에게 자신의 글을 전달했습니다. 수오무살미 전투에 참여했던 해그루드는 울브넨의 희곡을 더없이 흥미롭게 여겼습니다. 전후, 극단에서 공연할 새 레퍼토리 창작극을 물색하던 해그루드는 울브넨의 희곡을 공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해그루드는 그때까지 제목이 없던 이 희곡에 <총의 말>이라는 제목을 붙였으며 울브넨을 대신해 무대의 문법에 맞게끔 희곡을 대본으로 바꿨습니다. 여하한 물리적인 문제들로 인해 <총의 말>의 공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1960년 4월 12일, 마침내 <총의 말>은 템페레 노동자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해그루드는 연출가의 해석을 드러내는 대신, 작가의 생각을 쓰인 그대로 무대화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작품은 핀란드 내의 비평가들에게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총의 말>은 다음 해 1961년 헬싱키 국립극장에서 재공연됐습니다. <총의 말>은 당해 핀란드에 있던 독일의 배우 볼란드에 의해 독일에 소개되었습니다. 이듬해 뮌헨을 소재지로 하는 지역 극단 푸후스가 <사물의 국회>라는 이름으로 바꿔 독일에서 공연했습니다. <사물의 국회>는 원본 희곡을 크게 각색한 작품으로 소총뿐만이 아니라 모든 비자연적 사물이 참정권을 가지게 된 세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울브넨은 <총의 말>을 끝으로 다른 어떤 희곡도 쓰지 못했습니다. <총의 말>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진 1988년 5월, 사모 울브넨은 폐결핵으로 탐페레에서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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