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7일 월요일

슈레더

우리 출판사는 당신의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의 쓰레기 같은 원고를요. 어떤 분들은 이걸 일종의 농담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가끔 ‘평범한 원고’ 같은 것을, 극히 드물지만, 심지어 출간을 고려해볼 만한 ‘괜찮은 원고’를 보내오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정말로, 정말로 쓰레기 같은 원고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통 쓰레기 같아서는 어렵고 최고의 쓰레기여야 합니다. 우리는 몇 단계의 긴 회의를 거쳐 최고의 쓰레기 원고를 엄선합니다. 정말입니다. 믿으셔도 됩니다. 우리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사로운’ 요소들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당연히 누구의 이익에도, 우리 자신의 이익까지도 포함하여, 우리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쓰레기 원고를 찾아낸다고 하는 사명에 대해 순수하고 엄중합니다. 진지하고요. 어쩌면 당신은 자신의 원고를 비할 바 없는 쓰레기라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럴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려낼 수 있습니다. 다 늘어놓고 보면 자연히 보입니다. 진정한 최고의 쓰레기는, 상상만으로도 머리가 아파지는 지독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별자리처럼 스스로 빛을 발합니다. 당신도 당신의 쓰레기들을 늘어놓은 다음 그중에서 최고의 쓰레기를 뽑아낼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바로 그 하나의 원고, 그 쓰레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출근해 메일함을 열어보며 기대합니다. 과연 최고의 쓰레기가 도착했을까? 도착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책으로 만들어낼 것입니다. 당연히 종이책으로 말입니다. 당신의 원고가 우리를 통과해 책으로 변하는 겁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쓰레기가 나왔음을 세상에 알리고 그 쓰레기를 서점들로 보낼 것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 책은 명실상부한 쓰레깁니다. 너무 쓰레기라서 주목과 물의를 일으킬까요? 그런 것은 최고의 쓰레기가 아닙니다. 너무 쓰레기라서 외면을 받을까요? 그런 것은 최고의 쓰레기가 아닙니다. 최고의 쓰레기가 이룰 수 있는 성취는 따로 있습니다. 그 성취란 뭘까요? 바로 그 성취의 탐색―오직 그 일이 우리의, 우리 ‘슈레더’ 출판사의 목표입니다. 우리가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요? 두 개의 원통형 절삭날 사이에서 으스러지는 악몽에서 깨어나듯, 우리는 우리의 목표가 이미 넉넉히 이루어진 세상에서 깨어납니다. 이것이 우리 출판사의 소개 전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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