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25일 토요일

봄볕들의 돗자리

정돈되지 않은 어느 봄볕이 술을 홀짝이고 있다. 봄볕은 구부러져서 네 머리맡에 닿고 있다. 은은한 술 냄새가 나고 너는 술병 곁에 앉아 있다. 네 밑에는 돗자리가 있는데, 그것은 일 년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햇빛에 닿지 않았으므로 귀여운 곰팡이가 살짝 피어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안온히 앉아 있고 돗자리 바깥에는 조명이 있어서 벌레들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그 조명은 윌 오 위습이란 것인데 나는 조명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이렇게 봄볕이 내리고 있으면 그것들은 까르륵 웃기만 하지 제 모습을 드러낼 줄 모르기 때문이다. 봄볕과 너는 대화를 하는데 그 내용이 하잘것없어서 그 둘은 오래된 친구이거나 연인 사이인 것 같다. 봄볕은 곰방대를 문 여인의 몸으로 앉아 있고 네 머리맡에 닿는 그 여인의 손은 희고 하얗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그 여인은 너보다 나이가 많은 것처럼 보인다. 너 또한 마이라는 이름의 여자애인데 내가 마이를 너라고 부른 이유는 마이라고 부를 경우 따가운 봄볕처럼 애매해져 버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 애매하고도 태만한 어떤 권태를 감당해온 것이 그 곰방대를 문 여인인데 너의 경우 그런 것을 참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잘 못하는 술을 홀짝이고 있다. 너는 점점 마이라는 고유명을 잊어가고 앞에 앉은 여인의 모습이 더더 눈에 잘 들어온다. 그래서 흔들거리다가 그만 여인의 품에 안겨버린다. 봄볕은 대부분 웃고 있고 가끔 사람을 째려볼 때가 있는데 그때에는 제 분수도 모르는 봄이라며 따가운 햇살을 맞은 사람이 성을 내곤 한다. 그 성냄이란 애매하고도 분명하게 소용돌이치는 것이어서 성을 낸 사람은 자기도 성냈다는 것을 잘 모르고 그저 다음 순간으로, 계절이라는 넉넉한 품에 안기는 듯이 넘어가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봄볕은 대부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한번 자기에게 성냈던 사람을 상대로 제 자신이 여름이라는 사기를 치려고 한다. 봄은 그래서 더움과 따스함 사이에 있는, 덥다면 덥다고 할 수 있는 계절이고, 저 봄볕의 여인은 이수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그녀는 지금 화장을 하지 않은 맨 얼굴인데 눈꼬리가 길게 나 있는 것이 원래 얼굴이어서 화장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이, 그러니까 너는 술에 취해서 여인의 품에 안긴 채로 인사불성 어떤 말을 중얼거리기도 하는데 그것이 이수정의 은근한 분노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광경은 제법 웃긴 것이라 구멍이 뚫린 양말처럼 발가락을 이쪽으로 내놓고 있다. 한번 간질여 보라는 듯이. 마이, 너는 새로 양말을 사지 않은 것인지 이렇게 양말에 구멍 나 있고 그렇게 내놓아진 발가락을 여인이 쳐다보며 풋, 웃기도 한다. 너는 술을 견디지 못하고 금방 취해버리고 말았는데 이수정은 아까 전에 말한 대로 혼자서 계속 술을 홀짝인다. 어쩌면 저 여유롭고도 느긋한 몸짓은 술의 힘을 빌린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수정은 의기양양 이쪽을 보면서 말했다. “저 아이의 선생님이면서. 나와 둘이 내버려 둔 이유가 뭐죠? 금방 취해버리고 말 것을 알면서. 저 아이를 내버려 두고 있었어요.” “계절이라는 것이 뭔지 가르칠 필요가 있었거든. 너는 엄밀히 말하면 계절이 아니지만. 그와 비슷하잖니.” “그래서 나는 저 아이를 벌써 취하게 만들었어요.” 마이를 품에 안고 이수정이 그렇게 말했다. “한껏 멀리서 보면 작은 개체들은 휘어지고 있고, 나는 그것을 봄이라고 생각한단다.” 여인이 곰방대를 피우기 시작한다. “내가 여름 학교에 들어가 있었을 때. 당신은 내가 여름과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며 그만둘 것을 권했었죠. 그 옷이란 건 대체 뭐죠?” “옷은 사람이 입는 것. 그리고 눈에 그렇게 보이는 것. 그래서 인간들의 기호가 반영된 것. 난 단순히 당신의 성정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 성정이 누군가가 입는 옷이라고 판단했어. 안과 밖을 거꾸로 뒤집은 셈이라,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지.” “실제로 당신은 나에게 도움을 준 것이 맞아요. 나는 봄이 마음에 드니까요.” “여름이 질투 나지는 않니?”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내가 걸어온 길이니까요.” “반면 여름이 너를 질투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럼 그렇게 하라죠, 뭐.” “저 아이는 나에게 있어 소중하단다.” “그런 것처럼 보였어요. 뭐 하는 애인가요?” “아직 애니까.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 “그럼 그다음에는요?” “글쎄. 내 생각에는 시를 쓰면 좋겠는데. 그것도 제 마음에 들어야 하겠지.” “당신이 유일하게 못 해본 걸 시키시려고 하는군요.” “응, 그래서 저 애가 내 미래야.” “그렇다고 하기엔 성별이 다르지 않나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옷들과 같은 것. 저 조명들은 아직 어려서 성별이 뭔지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너나 나나 아직 어리다.” “당신은 나이를 많이 먹었잖아요? 봄이면서.” 나는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연초에 불을 붙이면서 말했다. “그건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진짜 봄이라고 믿어버릴 수도 있으니.” “그럼 그게 아니고 뭔가요?” “알다시피 봄의 시스템이란 건…… 누가 봄인지 알 수 없게 해놓았기 때문에.” “정돈되지 않은 봄볕의 일부일 뿐이라는 거죠? 모두가 다.” “그래그래.” “한심해요.”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