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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21일 금요일

비등단 작가라는 유령

한때 비등단 작가라는 말이 유행할 때 썼던 글입니다. 아마 2017년에서 2020년 사이였을 거예요.


본문

처음 금치산자레시피를 소개할 때에는 비등단이라는 말을 넣곤 했습니다. ‘비등단’이라는 조어를 만들진 않았지만 어쨌든 ‘등단하지 않은’ 이라는 표현을 썼죠. 공공연히 금치산자레시피를 소개할 일은 없었지만 나중에 이 말을 빼기로 했어요.

‘비등단 작가’는 ‘설거지 하는 남자’ 같은 말이죠. 인간이라면 누구든 설거지를 해요. 인간 새끼라면 자기가 먹은 걸 스스로 치워야 합니다. 때문에 남자가 인간이라면 ‘설거지 하는 남자’는 불필요한 수식이죠. 마찬가지로 저를 ‘비등단 작가’ 라고 이야기하는 건 불필요한 수식입니다. 작가라면 자기 스스로 글을 쓰고, 그 글을 발행해야 하니까요. 대체로 ‘작가’ 앞에 붙는 수식들이 그 작가의 주요한 정체성에 대한 단서가 되고 있다는 선례를 염두에 둔다면 ‘비등단’이라는 수식이 어떻게 작가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을지, 왜 그런 걸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건지 이해할 수 없고, 앞으로 이해할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는 등단 작가라는 수식에도 적용됩니다.

때문에 ‘비등단 작가’에서 더 나아간 ‘비등단 작가의 시’ 혹은 ‘비등단 작가의 소설’ 또한 등단 작가와 비등단 작가를 구분해서 얻게 되는 이점에 대해, 이 구분을 통해 누가 이득을 얻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스스로 작가임을 선언하고 시를 쓰고 소설을 쓰죠. 그리고 제가 쓴 것들을 책임지고 가치를 증명하는 데 제 남은 생을 쏟게 되겠죠.

이런 측면에서 요즘 독립출판물이나 문예지에서 덧붙이는 ‘우린 비등단과 등단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은 너무 거추장스러운 말인 것 같아요. 이런 말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해요. 그들의 태도도 증명하지 못하고요, 그들의 미적 목표도 증명하지 못하죠.

이도저도 증명하지 못하는데 뭐 하러 말하는 걸까요? 그냥 그 자리에 ‘나는 치킨이 좋아’라고 쓰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그럼 우린 같이 치킨을 먹으면 되니까요. 그리고 ‘비등단’이라는 말은 명백히 등단 상태의 결핍을 드러내는 기능만을 하고 있잖아요.

등단과 비등단을 입에 담는 순간 등단 작가와 비등단 작가는 묘한 게임에 참여하게 되요. 이 둘이 경쟁을 한다고 해도 몹시 이상하고요, 이 둘이 동료가 된다고 해도 대단히 이상합니다.

등단 작가들은 같은 지면에 참여한 비등단작가에 대해 “안녕 나는 등단 작가고, 너는 비등단 작가지만 나의 동료가 될 자격이 있어. 우린 그런 걸 구분하지 않거든.” “너는 비등단 작가지만 글이 너무 아름답구나.” “너는 비등단 작가라서 그런지 글이 신선하구나.” 이런 식의 태도만이 가능할 거예요.

아니라고요? 그럼 애초에 게임을 이렇게 짜면 안 되는 거죠. 애초에 이런 게임에 들어오면 안되는 거였어요. 다만 당신 활동으로 그걸 증명하면 되는 일이었죠. 나중에 생색내긴 힘들겠지만요. 저는 비등단 작가 동료가 등단 작가의 열린 정신을 증명하는 토큰 비슷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비등단 작가가 등단 작가에 대해 ‘우리는 등단과 비등단을 구분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건요? 이건 해당 작가나 집단이 자기 조건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으로밖에 안 보입니다. 그들은 그걸 구분하고 어쩔 입장이 안 되요.

기껏 비등단 상태로, 문단 밖에서 문학을 해나가기로 했으면서 왜 또 구분하고 그러나요? ‘비등단 작가’라는 말이 비등단 작가인 본인에게 무슨 의미인 거죠? 그게 당신 작품을 더 가치 있게 하나요? 그게 당신의 삶을 수식하는 데 적절한가요?

등단을 거절한다는 말도 정말 이상하죠. 일단 저는 저런 말도 쓰진 않습니다. 재작년에 신춘문예에 작품 30편을 9개의 이름으로 공모했다 모조리 떨어졌거든요. 전 이 게임에서 이미 아홉 번 졌어요.

그 순간부터 등단하기 전까진 저는 영원히 등단을 못한 작가인 것이죠. 때문에 이제 와서 등단을 거절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떨어진 거거든요ㅋ 그렇다면 등단을 거절하는 분들은 등단을 왜 거절하는 걸까요.

등단 상태가 그에게 무엇을 의미하길래 등단을 거절하는 걸까요? 그게 거절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 전 잘 모르겠어요. 더 나아가 그게 거절될 수 있는 건가요? 거절을 하려면 제안이나 요청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도저도 아니라면 대체 무슨 수로 등단을 거절하고 거부합니까?

아마도 어딘가에는 비등단이라는 말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장 분석을 할 때도 중요한 지표일 수도 있죠. 그런 걸 한다면 말이죠. 다만 작품으로 교류하는 장에서 언급되어야 할 말은 결코 아니죠.

전 아직도 작가는 적국에 내버려진 외교관처럼 단어를 공들여 골라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 쓴 단어는 오늘 내릴 수 있었던 최선의 선택이어야 해요. 이때 ‘등단과 비등단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적절한 건가요, 외교관님?

등단/비등단 게임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 이 게임을 시작한 분들의 탁월한 단어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유령 같은 말은 흔치 않거든요.

2025년 2월 18일 화요일

침몰하는땅

그때 이 땅이 침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 침몰을 감지했을 때
침몰은 멈추었다 더 이상
침몰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누구라도 그곳에 알량한
돌 하나라도 쌓았다면 침몰은 계속되었을
지 모른다
우린 내달렸다
가장 높은 곳으로 우린 서로의 두
어깨가 찢어지도록 붙잡고 늘어졌다 우린 둘 다
살아남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살아남아야 하고 그것은 바로
나여야만 한다. 우린 서로의 생의
찌꺼기를 안고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세상 언저리에서
벼랑 끝보다는, 간신히 안락한 곳에서
죽음이 보이는 곳에서
등지고 서서
나보다 이 세상이 먼저 탕진하길
기다리면서
가늘어 빠진 팔뚝에서
온 생이 소진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2024년 11월 25일 월요일

산의 중턱에서

산 중턱에 도착한 그들의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알지 못한 사이에 숲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것 같았다. 산의 비탈을 따라 내려오던 그들이었다. 그동안 희미하게나마 길을 밝히던 달빛도 감지되지 않았다. 하늘을 보려 고개를 올렸지만 달라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 그들의 눈앞을 지나가던 풀벌레들이 있었다. 달빛을 가로지르며 지나갈 때마다 수면이 깨어지듯 빛이 일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곧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갈 것이다. 이런 낙관으로 당혹감을 떨쳐내야 했다. 몇 걸음 걸어 보았지만 곧 멈추었다. 한 발 내딛는 일이 마치 깊은 골짜기를 뛰어 건너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온 세상이 어둠에 휩싸였다고 확신했다. 드디어 어둠이 그들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산의 중턱이었다.

온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기 전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다 마주친 중년 남성이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산의 중턱에서 그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다들 그때를 준비해야만 한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산의 중턱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산의 중턱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들에게 내가 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진실을 일러주겠다. 나는 이미 산의 중턱에 서 있다. 지금 이곳에서 빛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은 아직 산의 중턱에 도달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이 다시 걷기로 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들은 일어나 어떻게든 계곡 사이를 뛰어넘어 가기로 했다. 빛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걸음은 산의 중턱에 도착한 순간부터 도약의 연속이 되었다. 몇 번의 도약이 있고, 그들 중 하나가 넘어졌다. 팔꿈치가 쓰리지만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둘 중 하나가 크게 다쳤고 얼마간 쉰 뒤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둘 중 하나가 넘어지고 앞니가 박살 났다. 턱이 두 동강 났다. 어깨가 빠졌다. 무릎이 쓸렸다. 발목이 꺾였다. 별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럼에도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멈추어 선 상태에선 아무런 가능성도 그들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판단 유예도, 유보도, 추이를 살펴보는 모든 일들이 그들에겐 살점을 내어주는 일과 같았다. 그들은 이런 어둠을 준비해본 적도 없었고 아니, 그에 대한 준비가 가능하긴 한 건가. 다만 걷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픔을 동여매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그들을 한 사람이 지나쳐 갔다. 그는 바닥에 긴 불꽃을 그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불꽃에 드러난 것으로 보면 그는 마치 머리를 끌며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를 불러 어떻게 하면 불꽃을 그릴 수 있는지 물어보고자 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 새빨간 흙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가 그린 궤적을 따라 내려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무리 역시 모른 채 지나갔다. 붉은 흙이 사그라들었다. 그들은 다시 어둠 한가운데 걷는 신세가 되었다.

그 불꽃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그들 중 하나가 쓰러지며 바닥에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그 과정에서 두개골 일부가 드러나게 되었다. 넘어지지 않은 다른 하나가 두개골이 땅에 부딪히며 발생한 불꽃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불꽃의 정체가 규명되었다. 달빛도 별빛도 꺼진 이 세계에 두개골로 만든 빛만이 점멸하게 되었다. 그들은 애써 머리 가죽을 벗겨내고 땅에 머리를 부딪쳤다. 붉은 불꽃이 사그러지는 동안 서 있는 하나가 나아갈 길을 가늠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즉 빛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개골이 드러나야만 했고, 그것은 당사자에게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 일을 한 사람만 하자는 것이다. 한 사람은 계속 머리를 끌고 한 사람은 계속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제 한 사람에게 고통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이전에 그들이 취한 방식보다 진보했다고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아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머리를 끄는 동안 하나는 비명을 참기 위해 애써야만 했고, 나머지 하나는 억눌린 비명을 고스란히 들으며 그의 시야를 겹겹이 메운 의심을 몰아내야만 했다. 그것이 안쓰러워 나머지 하나가 두개골을 드러내고 땅을 기며 피고름에 시야를 가릴 순 없었다.

이런 식의 여정이 이어지고, 놀라운 일이 발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머리를 끄는 쪽의 두개골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그의 머리에서 안구는 곪아 사라졌고, 그 사이를 응고된 핏덩어리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코 또한 쓸려 사라졌다. 목뼈는 이미 뒤로 휘어 있었으며 비명을 감추기 위해 부푼 혀가 입안을 채우고 있었다. 바닥에 붙은 코 대신 터진 고막이 펄럭이는 귀를 통해 호흡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사지를 헤매고, 으깨어진 뇌가 귀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에 빛이 빠르게 사그라진 것이 몇 번이었다. 그의 귀에는 굳은 뇌수의 거품이 엉겨붙어 있었다. 서로의 역할을 바꿀 수 없을 만큼 멀리 갔기에 아예 몹쓸 동정심으로 이 여정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두개골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며 그 크기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이전보다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었다.

내 생각엔 그것은 뼈보다는 아주 단단한 각질에 가까웠을 것이다. 지금 이곳을 낮게 울리는 거대한 존재들의 성장 과정 또한 이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존재들은 그 크기에 걸맞는 어떤 폭발적인 계기가 있었을 뿐 그가 전한 이야기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이따금 그들을 지나치던 무리가 있었다. 대체로 세 명에서 네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무리가 머리통을 운영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머리통의 운동 기능을 살려두거나 머리통의 운동 기능을 다른 이에게 전담시키는 것이다.

이전의 무리는 전자의 방식이었다. 한 명의 ‘머리통’을 데리고 있고 또 하나의 교대할 머리통을, 나머지는 반쯤 기능을 잃은 눈으로 길을 판독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길을 찾아 나갔는데, 그러기 위해서 머리통이 탈진하기 직전까지 몰고 다닌다. 결국 그 머리통이 탈진해 운동능력을 상실하고 나면 나머지 머리통이 뒤를 잊고 탈진한 머리통은 다른 한 명이 부축해 가는 방식이었다. 저들이 두 머리통을 어떻게 무리에 포섭했는지, 혹은 무리 내에서 뽑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곳을 걷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그들’ 또한 한 명의 고착된 머리통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죄책감의 연대 때문에 감히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도 서로를 지옥으로 떠밀진 않았다. 다만 누군가는 결국 지옥으로 떠밀려 들어간다. 이런 일들은 항상 아무 말 없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또 다른 무리는 머리통의 운동 기능을 다른 이에게 전담시키는 예가 될 수 있겠다. 다른 누군가가 탈진한 머리통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무리 안에서 머리통을 하나만 보유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 머리통을 끌고 가야 할 사람이 탈진할 경우를 대비해 나머지 하나가 길을 살피는 한편 교대를 위해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이전의 무리에 비해 무리의 덩치를 더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머리통의 크기 자체도 다른 무리보다 더 크다. 머리통은 거의 가사상태로 내버려 둔다. 역시 이 무리의 머리통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끌고 가는 사람이 앞에 위치해야 했기 때문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떤 무리가 다른 무리와 마주치게 될 경우에는 아무래도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각 무리 간에 싸움 전야의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그 무리가 몇이건 상관없다. 어떤 무리가 먼저 앞으로 가면 생기는 불꽃으로 나머지 무리가 뒤따라간다. 물론 나머지의 머리통은 땅에서 떨어진 상태로. 아무리 굳은살이 빠르게 발달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떤 국면을 넘어서야만 한다. 대개의 머리통은 그것을 못 버티고 죽는다. 대부분의 무리가 그런 머리통을 보유한 상태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 국면 이전에 있는 머리통을 땅에 끄는 것은 무리에 있어서 아주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신경전 끝에 여러 무리가 한 무리로 통합되는 경우가 있고, 치열한 싸움 끝에 대부분이 죽는 일도 벌어진다. 이럴 때는 살아남은 몇 사람들은 죽음의 긴장을 안고 한 무리로 통합한 후 다시 산 아래로 향한다. 결국 누군가는 머리통이 된다.

나는 머뭇거리는 무리와 마주친 일이 있다. 나는 아직 산의 중턱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길을 안내하길 자청했다. 그들 또한 내가 그곳에 도착하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무리에 끌어들이고자 노력했으나 나는 그냥 안내만 하겠다고 거절했다. 다만 그때의 내 걸음은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그것은 이미 산의 중턱에 대한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이렇게 걸음을 재촉하다 산의 중턱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무리 사이에는 희미한 빛을 덮으며 등장하는 산 너머의, 산 아래의, 산의 골의 엄청난 빛의 근원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저 빛은 너무나 강해 이들이 길을 찾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산의 중턱에 닿기 전 그 빛의 근원을 본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그것이 거대한 머리였다고, 거대한 바위였다고, 거대한 산이었다고, 거대한 산이 움직이며 우리가 산 아래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 거대한 것이 이동할 때 울리는 대지의 소리는 이미 공포 그 자체였다. 그들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운동능력을 갖춘 머리통이 스스로 팔과 다리를 움직여 무리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거대한 머리를 끌며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고. 그 빛이 다른 머리통에 비해 강했기에 그가 지나간 땅은 한동안 달아올라 있었고, 그 빛을 따라 이동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며 그런 식으로 산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거대한 머리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무리는 오랫동안 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얼마 지나 나는 그들과 결별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미 각자 머리통을 갖고 있었고 머리통들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피부가 두개골을 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피부가 두개골을 가리기 전에 다시 사용해야만 했다.

내게 굳은살에 대해 말한 ‘그들’을 또 보게 되었다. 그들로부터 내가 이전에 안내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리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둘이 머리를 끌며 이동하던 중 십수 명의 시체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마침 발생한 산 아래의 빛을 통해 그들 중 몇 명의 머리통에서 각질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통은 이미 너덜너덜하게 박살 난 상태였다고 한다. 추정컨대 그들은 각질이 생긴 머리통의 독점 여부를 놓고 다툼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머리통의 시체에서 발생한 각질은 여전히 쓸모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들은 그의 머리통의 머리에 굳은살이 생긴 머리통 일부를 보철하는 시도를 해 보았다고 한다. 그 시도는 효과가 있었다. 이미 죽은 머리통은 꽤 큰 상태로 발달했고, 보철한 머리통 세 개 중 하나로부터 굳은살이 발달하기 시작해 그와 함께하던 머리통의 각질과 더불어 함께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기꺼이 그들을 안내하기로 하였는데, 그것은 처음 내게 중요한 정보를 선뜻 알려준 이들에 대한 예우였다.

우린 오랫동안 길을 걸었고, 나의 불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우정이라고 할 만한 감정이 오갔다. 그가 보인 머리통에 대한 우정, 피할 수 없는 희생에 대한 죄책감에 나는 깊이 공감했고, 그가 언뜻 내보이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내게도 깊은 충만감을 선사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나의 실수였다. 나의 잘못된 안내로 그의 머리통이 길에 튀어나온 바위를 무리하게 넘어가려다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친구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한편 내게 위로를 건넸다. 나는 죽음의 슬픔보다 실수에 대한 책임에 사로잡혀 겁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그는 서럽게 울다 나를 위로했다. 나는 위로 한마디 못하고 그저 그 상황에 있어서 내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판단하는 일에 사로잡혔다. 결국 나는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거대한 책임에 사로잡혀 길에 주저앉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죽은 머리통의 경련이 멈추었다. 그가 일어나 내게 말했다. 내게 큰 돌을 구해다 주렴. 한 무리가 우릴 지나치며 혀를 찼다. 나는 일어나 큰 돌을 찾아 그에게 건넸다. 그는 그 돌을 죽은 머리통의 뒤통수에 내려찍기 시작했다. 뒤통수가 내려앉고 뇌수가 튀었다. 그는 완전히 내려앉은 머리통의 머리를 완전히 열고 그 안에 있는 기관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손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들어낸 후 그 안에 가득 찬 피를 빨아내 밖으로 뱉어냈다. 이후 그 안에 흙을 넣어 내부를 깨끗이 닦고 흙을 모두 꺼냈다. 그가 이 모든 일을 끝내고 숨을 돌리며 머리통의 머리맡에 앉았을 때 이를 부딪치며 떠는 내게 말했다. 별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 텅 빈 머리통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게 인사를 남기고 단단하게 굳은 시체를 끌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기꺼이 길을 안내하겠다고 소리쳤으나 그는 빠르게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피투성이가 된 길가에서 단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몇 개의 무리가 나를 지나쳤다. 그러다 내가 다시 일어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어쨌든 별수 없이 어떻게든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둠의 정오에서 나는 산의 골을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빛을 보았다. 산의 귀퉁이를 무너뜨리며 이동하는 거대한 덩어리들을 보았다. 덩어리를 따라 대지가 으르렁거리며 뒤따라갔다. 먼 산의 탄내가 내게 도달할 무렵, 나는 내가 산의 중턱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겁에 질려 내달리다 땅에 고꾸라져 머리를 처박은 내게 무리가 찾아왔다. 그들이 나를 끌기 시작했다.

2024년 8월 29일 목요일

부고

내 친구들은 모두 죽거나 다치거나 불구가 되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부고는 여태 익숙해지지 않는다 부고를 반으로 접어 넣으니 네가 기억나지 않는다 망각이 아니었다면 우린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네 유언이 무엇이었는진 내가 입을 열 때쯤 기억나겠지


우린 아침에 괴로웠고 저녁엔 더 괴로웠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그 다음 날이, 그리고 그 다음 해가. 이렇게 우리는 미래를 앞세워 나아갔다

“절뚝이는 널 기다려줄 사람은 우리 말곤 없어 눈먼 너를 위해 길을 터줄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 입을 열지 않는 너를 위해 하루가 다 가도록 너를 기다렸어 우린 네 유일한 친구가 되었어 네 입꼬리에서 내 존엄이 흘러내리도록 내버려둔 것도 우리였어.”

“그래 널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바로 우리였어.”

내가 사랑한 이들은 모두 미치거나 살해되었다 대기를 떠돌다 불타 죽었다 우린 찬 바다 위에서 불탄 너를 수습했다 단 한 번 멈춘 우린 다시 미래를 앞세워 너보다 훨씬 앞서 나갔다

그래 널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바로 우리였어

우리 절대로 죽지 말자, 우리 절대 미치지 말자, 우리 절대로 아프지 말자, 그러다 한 번이라도 멈추면 우린 끝장이잖아

네가 죽으면 나는 네 머릴 밟고 앞으로 나갈 거야 네가 죽으면 저 시체가 내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라 가슴을 쓸어내릴 거야 우린 단 한 번 너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거야 너보다 훨씬 앞서 나갈 거야 네가 죽은 곳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아갈 거야

난 결국 네가 될 거야.

넌 죽은 나를 발목에서 떼어내며 말할 거야 그때 내 유언을 너는 기억할 거야 내가 입을 다시 열 때가 되어서야 네 유언이 기억나겠지 그러니 우리 다신 만나지 말자 우리 절대 다시 만나지 말자 그러지 말자 널 죽도록 내버려둔 것이 바로 나야.

그러니까

너만큼은 내가 잊기 전에 나의 부고를 써 보내주렴

2024년 8월 22일 목요일

대기권 밖으로

ㅍㅍ는 늘 화나 있었다. 이유는 다양했다. 모든 것이 이유가 될 수 있었다. ㅉ는 그와 사귈 때 한창 그가 미워한 것들, 그를 화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정리를 해둔 적이 있는데 그 목록은 다음과 같다.

그가 싫어한 것들
패배한 비폭력, 천박한 변명, 불가피성, 불필요한 배려, 시도―단지 시도, 실험: 보고서가 없는, 진정성, 스스로가 어른이 아니라 주장하는 40대, 부코스키 같은 주정뱅이를 좋아하는 남자들, ‘결국’ 좌파가 아니라고 호소하는 비겁자들, 가난을 정당화하려는 수사적 시도들, 부모탓 하는 멍청이들. 맛없는 공정무역 커피, 지가 예술가인지 거진지 구분 못하는 거지 새끼들, 안일한 자기비하, 정당에 자아를 탕진한 등신들. ‘우린 등단과 비등단을 구분하지 않는’ 천둥벌거숭이들. 분명치 않은 모든 것들, 옳은 문장의 옳지 않은 배치, 옳지 않은 법으로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 ‘상황의 어려움’, 모두에게 선할 수 있다는 믿음, 거의 모든 믿음, 선량한 씨발것들, 새로운 시도가 무언갈 보장할 것이라 말하는 스테이트먼트들, 새로운 것은 없다는 천박한 신념들, 거의 모든 신념들, 기술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순진한 착각, 엔지니어링과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텍스트들, 씁쓸하다는 비열한 논평, 구호와 호소로 시작해 또 다른 세기마저 구호와 호소만으로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노조들, 정당들, 정치인들, 정치적 결단을 내릴 줄 모르는 진보정당들, 정치적 결단만을 내리는 모든 정당들, 손에 피 한 방울 묻힐 줄 모르는 책임자들, 퇴근 후의 자기위안―오늘도 무척 힘든 하루였어. 인내와 노력, 그것이 미덕이라 말하는 사람들, 세계의 불행과 개인의 불행이 온전히 떨어져 있다 말하는 낭만종자들, 그것이 완전히 붙어있다 말하는 인문학 좌파들, 주정뱅이들.

어쨌든 나이를 먹다 보면 점점 좋은 것들을 찾는 것이 어렵다는 걸 느끼게 되고, 그럴수록 주변에 좋은 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더 좋아하게 된다. 이를테면, 머리가 꽃밭인 사람들이 아니라, 좋아하는 걸 곁에 두는 것에 남다른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그렇게 살기로 다짐한 사람들 말이다. 아무래도 미움을 나누는 일은 오래 하기 힘드니까. 이렇게 ㅍㅍ처럼 꾸준히 싫다는 소리만 하는 인간들은 지긋지긋해지니까, ㅉ는 ㅍㅍ와 헤어지기로 했다. ㅉ는 곁에 좋아하는 것들을 두기 위해 애쓰기로 했다. 그게 벌써 5년 전 일이다.

몇 달 전 ㅍㅍ가 나오는 꿈을 꾼 ㅉ는 수소문해 ㅍㅍ와 연락하게 되고, 세상을 그렇게 미워하던 그가 꾸역꾸역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란 한편 안도하게 된다. ㅉ는 ㅍㅍ가 좋았으니까. 그래서 그를 곁에 두었던 거다. 이렇게 ㅉ와 ㅍㅍ는 이전과는 좀 다른, 다소 거리를 둔 관계로 발전하게 되는데 이 와중에 ㅍㅍ가 말한 싫은 것들을 정리하면 또 다음과 같다.

그가 미워한 것들 2
죽음으로 진실을 증명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들, 결국 죽고 나서야 밝혀지는 진실들,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 모든 상황들, 도취된 모든 예술가들, 자신이 옳다 믿는 사람들, 사장의 말을 잘 듣는 관리인들, 여전히 자본가가 특정될 수 있다 말하는 무식쟁이들, 상황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솔루션, 정치적 옳음. 예술과 음란을 가르는 논리: 여기 숨어서 거유로리나 빨고 자빠진 비열한 새끼들. 정당한 폭력이 있다는 믿음. 이 모든 것들이 영원할 것인 양 현실에 도취된 게으름뱅이들, 믿음, 전체를 말하는 단 하나의 언어가 있을 거라 말하는 믿음, 어쩔 수 없었다는 호소, 플랜b, 수사학적 개수작, 할인행사, 1+1, 열심히 하는 모든 이들, 진심, 말해지는 모든 진심,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 알아주길 바라는 안일함,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등신들, 세계의 복잡성에 좌절한 지식인들, 좌절한 모든 지식인들. 그럼에도 지식인을 자처하는 모든 이들.

여전히 ㅍㅍ와 사귀는 일은 무척 지긋지긋한 일이었기에 ㅉ가 ㅍㅍ에게 이별을 통보하기로 한 아침이었다. 아침 일찍 ㅍㅍ가 ㅉ에게 연락해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ㅉ는 ㅍㅍ와 하늘이 보이는 곳에서 헤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기에 그러자 말했다. 한 시간 뒤에 만난 ㅍㅍ는 양손에 정수기 물통 두 개를 들고 있었다. 정수기 통을 택시 트렁크에 실은 ㅍㅍ는 기사에게 말했다. 하늘이 보이는 곳으로 가주세요. ㅍㅍ가 ㅉ에게 말했다. 너는 곧 놀라운 걸 보게될 거야.

ㅍㅍ와 ㅉ는 하늘이 보이는 곳에 도착해 정수기 통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준비한 돗자리 위에 나란히 누웠다. ㅉ가 ㅍㅍ에게 말했다. 넌 대체 어떻게 사니, 어떻게 이 모든 걸 감당하고 사니. ㅍㅍ가 말했다. 몰라, 이걸 다 미워할 수 있는 내가, 그러고도 살아남은 내가 너무 좋은가봐. ㅍㅍ가 빈정거렸다. ㅉ는 다시 물었다. 이걸 어떻게 감당하고 사는 거야? ㅍㅍ가 ㅉ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는 내가 미워하는 걸 내 눈앞에서 치워버릴 만큼 용감하지 않아서 그래. 내가 그렇게 용감했다면, 날 치워버렸겠지. 둘은 말없이 하늘을 봤다. 그러다 ㅍㅍ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내가 언제나 하늘로 가고 싶다고 했던 거 기억나? 이 대기권을 탈출하고 싶어했다는 거. ㅉ는 ㅍㅍ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ㅍㅍ가 말했다. 잘 봐, 놀라운 걸 보여줄게.

그는 정수기 통을 안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처음엔 빨대로, 다음엔 사이폰으로, 나중엔 누워서 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오도록 물을 마셨다. 가끔 구역질이 나왔지만 참고 마셨다. 그에겐 목표가 있었다. 그에겐 그 무엇도 가로막을 수 없는 야망이 있었다. 그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꾹꾹 누르자 팔다리가 부풀어올랐다. 그는 다시 두 번째 정수기 통을 안고 물을 마셨다. 처음 정수기 물통이 등장했을 때 그 용량은 20리터였다. 지금은 18.9리터로 정수기 용량은 1.1리터가 줄었다. 이는 국제도량형총회에서 킬로그램 단위를 백금원기에서 플랑크상수 기준으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차이이다. 정수기를 다시 비워 배가 부풀어 오른 그는 다시 배를 꾹꾹 눌러 팔다리로 물을 밀어냈다. 그의 아랫배와 팔, 종아리 살이 붉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구역질을 하며 말했다. 내가, 우웩, 너에게, 우웩, 멋진 걸, 우웩, 보여줄게, 우웩. 그는 힘들게 일어나 몸을 꼿꼿이 세웠다. 그는 쉼 없이 숨을 들이마셨다. 가슴이 벌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도록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부러진 뼈가 피부를 밀어내도 그는 멈추지 않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몸은 아침에 만났을 때보다 세 배 이상 부풀었다. 옷은 몸에 맞지 않아 이미 벗어던졌다. 그가 발꿈치의 대일밴드를 떼고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자 양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가 가장 낮은 구름에 닿을 때 팔과 다리를 떼어냈다. 그의 팔 한쪽은 경기도 모처에 떨어졌고, 나머지 팔 한쪽은 강남 한복판에, 무릎 한쪽은 영등포 쪽방촌 골목에 떨어졌다. 한쪽 무릎은 내 눈앞에 떨어져 지름 약 2미터의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그리고 잠시 추락하던 그는 다시 항문과 요도에서 물을 뿜어내며 하늘로 날아갔다. 양 어깨에서 물을 쏘며 경로를 조정했고, 아무것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성층권 근처에서 남은 몸통을 떼어냈고, 결국 그의 머리는 대기권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몸통이 떨어진 곳은 러시아의 퉁구스카 숲이었고, 어마어마한 폭발을 일으켰다고 한다. 주변의 러시아인들은 소문을 듣고 숲으로 달려갔다. 운석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ㅉ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ㅍㅍ의 머리가 보낼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신호가 올 것이고, ㅉ은 응답할 것이다.

2024년 8월 13일 화요일

추심업자에 관한 메모

채권추심업자. 굉장한 직업이죠. 저는 채권추심업자들이 살해당하는 비율이 생각보다 낮다는 점이 대단히 놀랍다고 봅니다. 2017년에는 단 한 명의 추심업자도 살해당하지 않았어요. 이건 사실은 비상식적인 일이죠. 왜냐면 추심업자를 살해하는 것이 자본주의적으로 더욱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추심업이라는 직업이 어떤 조건에서 성립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채무 계약을 성립시키는 최소한의 조건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채무가 성립하기 위해선 일단 돈이 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이 되돌아가기 위한 조건을 설정해야죠. 보통 우리는 그걸 시간으로 설정합니다. 즉 A는 B로부터 돈을 받고 그걸 되돌려주는 시점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A와 B의 채무 계약이 성립하고, 서로의 관계가 규정되죠, 채무자와 채권자로.

사실상 남한과 같은 과정상국가[주석]에선 이미 성립된 채무는 반드시 상환됩니다. 상환하지 않고선 최소정상생활마저도 위태로워지기 때문입니다.

추심업자는 채권자를 대변합니다. 채무자의 채무 관계는 추심업자가 아닌 채권자와의 관계죠. 추심업자는 채권자 그 자체는 아닙니다. 다만 채권자의 계약 이행은 추심업자와 채권자 사이의 계약에 따라 추심업자의 이득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능성이 추심업을 성립하게 합니다. 이 이득의 가능성은 비용으로 환원됩니다. 이 비용은 곧 채무의 이자를 통해 충당하게 되죠. 분명 여러 경제적인 법칙에 의해 채무에 일정한 이자가 필요하다는 점을 타당하게 설명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이자는 사실 추심을 위한 비용이라고 볼 수 있겠죠.

자 아래의 대화를 눈여겨봅시다. 2020년 있었던 추심원과 채무자와의 대화입니다. 이 대화 후 추심원은 쓰리잡을 뛰다 회사에 걸려 해고되고, 이후 구직기간 동안 진 채무로 인해 추심당하다 자살했죠. 이 이야기에서 가장 신나는 부분입니다. 그 사람은 빚에 허덛이다 자살했어요. 자살햤어요. 자살했어요. 우린 이 일련의 대화를 통해 추심업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왜 돈을 갚지 않습니까? 돈이 없으니까요. 왜 돈을 빌리고 갚지 않습니까? 돈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부책임한 사람입니다. 뭐, 일단 알겠습니다. 언제까지 갚을 수 있습니까? 나는 돈이 없는데요? 돈이 없는데 왜 돈을 빌렸습니까? 돈이 있는데 돈을 왜 빌립니까? 지금 저한테 화내는 겁니까? 씨발 그러면 안 됩니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너무 감정적이네요. 그게 이 대화의 쟁점입니까? 쟁점이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지각 있는 한국인이 맞습니까? 저는 지각한 적이 없습니다. 너 오늘 지각한 거 다 알거든? 니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그리고 단어 하나 모른다고 나보고 조선족이라고 한 겁니까? 한국인이 아니면 조선족입니까? 그럼 외노자라고 한 겁니까? 니가 외노자면 안 됩니까? 저는 외노자가 아닙니다. 중명해보세요. 아니 제가 그걸 증명하려고 전화한 건 아니고요. 언제까지 돈 갚을 수 있습니까? 월급이 나오면 갚을 수 있습니다. 월급은 언제 나옵니까? 오늘이 월급날입니다. 왜 안 갚습니까? 이미 당신들이 내가 가진 전부를 가져갔는데요? 아뇨, 갚을 돈이 더 남았잖습니까. 갚을 돈은 남았으나 내 잔고는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25일이니까 다음 달 2일까지 갚으세요. 그건 안될 겁니다. 왜죠? 내 월급날은 한 달 뒤이기 때문입니다. 갚으셔야 합니다. 압니다. 근데 왜 안 갚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저랑 말장난 하십니까? 돈을 갚아야 하지만, 내겐 돈이 없고, 돈이 생기려면 다음 달 월급날이 되어야 한다, 때문에 갚을 수 없다. 이걸 이해하는 게 어렵습니까? 투잡이라도 뛰어서 갚으셔야죠.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당신은 갚을 돈이 있으니까요. 갚을 돈이 있으면 그렇게 해야 합니까? 당신이 투잡을 뛰어서 제 돈을 대신 갚아주는 건 어떻습니까?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당신은 받을 돈이 있으니까요. 저랑 장난치십니까? 제가 장난치는 것 같습니까? 이 채무가 당신의 채무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추심인입니다. 추심인의 목표가 뭡니까? 채권자가 채권을 회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왜 당신은 채권자를 돕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왜 돈 없는 채무인을 대신해 투잡을 뛰어 돈을 더 벌어 채권자를 위해 채권 상환을 돕지 않습니까?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갚아줘야 할 돈이 있는데 왜 말로만 때우려고 합니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내가 돈이 없으면 당신이라도 갚아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대체 무슨 말입니까? 당신은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저는 무책임하지 않습니다. 아뇨, 당신이 책임 있는 사람이었다면 이미 채권자에게 돈을 갚아줬을 겁니다. 돈은 당신이 갚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기록을 보셨겠지만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이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씨발 돈은 당신이 갚아야지, 왜 나한테 갚으라고 하냐 개새끼야. 니 엄마도 니가 돈 안 갚고 이러는 거 압니까? 저에겐 엄마가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사실은 있지롱. 씨발새끼야. 또 욕했어. 어제 당신 어머니랑 떡쳤는데, 당신 어머니는 당신이 이런 일 하는 걸 모르더군요. 울엄마는 건들지 마라 개새끼야. 울웜마는권듈지뫄라괘쇄끼야. 당신 어머니가 울며 안에 싸달라고 한 것도 기억납니다. 당신 어머니는 제게 오빠라고 부르며 행복해했죠. 오빠 안에 싸도 돼, 나 폐경 지났어.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폐경 지난 걸 알고 있었습니까?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임질을 옮기고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자 이렇게 상상해봅시다. 한 명의 추심업자의 목이 잘려 광장에 내걸렸습니다. 그렇게 세계의 추심업자의 수 a가 a-1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추심업자를 위한 전체 비용 b를 상정했을 때 추심업자 1에게 할당될 비용은 b/a에서 b/a-1로 증가하게 되죠. [그래프] 이렇게 당분간 전 세계적인 추심업자 살해가 지속된다면 추심업자 한 명이 가져갈 비용은 b/a-a’으로 계속해서 늘어나겠죠. 이때 마지막 남은 추심업자가 살해되면 b/0으로 추심업자를 위한 비용 b는 모두 채권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즉 채권자는 추심업자를 모두 살해하는 것이 이득이 되는 것이죠. 또한 채권자는 추심업자가 살해될 때마다 채무자와 비용 b’를 나누어 채무자에게 환원해 채권 회수를 가속화할 수도 있죠. [다이어그램] 이런 측면에서 추심업자는 채권자에게, 혹은 채무자에게 살해당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득이 되고, 대단히 상식적인 일이라는 점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추심업자에게 돌아오는 건 없다는 점을 지적하시는 분들이 있을텐데요. 제가 왜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합니까? 나한테 뭐 맡겨뒀냐, 개새끼야?

2024년 3월 11일 월요일

벽장 속의 드래곤

어젯 밤에는 벽장을 잠근 자물쇠가 달그락거려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잊을 만하면 있는 일인데, 가끔은 며칠 동안 저러기도 한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영원히 벽장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몇 번이고 이야기하려 정리해보았지만 마음처럼 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한 일이었으니까. 요즘은 새로 입사한 회사에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새로운 분야, 새로운 이들에게 적응해야 했다. 겨우 퇴근 후 몇 시간을 낼 수 있을 만큼 여유를 찾은 것도 입사 후 반 년이 지나서였다. 요부에나와보시카는 모처럼 돌려받은, 아니면 요부에나와보시카의 생에 처음으로 얻은 여유를 도려내어 방 안의 벽장에 대해 정리하기 위해 쓰기로 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이제 그 일은 영원보다 좀 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번에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매번 조금씩 가까워졌는데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지금은 손에 잡힐 것 같다. 그 모든 이야기가.

2023년 12월 17일 일요일

사건의 전말

우리가 충분히 먼 곳에 있다면,
우리가 충분히 빛날 수 있다면,
우리가 충분히 오래된다면,
우리가 시작할 수 있다면.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너는 낡은 장판을 걷어 올렸다. 드러난 시멘트 바닥에서 4년 전 거길 비췄던 백색 LED 빛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적색, 녹색, 청색 광원은 장판 밑의 콘크리트 균열에서 4년간 대기중이었다. 네가 그 빛의 말단을 붙잡을 수 있었다면, 구겨진 광선을 천천히 펼칠 수 있었다면. 넌 그 빛의 말단을 붙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실패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어떤 빛은 네 등을 할퀴고 갔을 것이다. 어떤 빛은 네 정수리를 관통했을 것이다. 어떤 빛은 네 발 밑에서 무한히 진동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어떤 빛을 오른손으로 사로잡았고, 그 빛은 왼쪽 새끼손가락으로 빠져나갔다. 어떤 빛은 네 망막에 걸려 사라졌고 어떤 빛은 아직도 네 배꼽에 고여있다. 어떤 빛은 결국 반사되어 다른 항성을 비추러 떠났을 것이다.

네가 처음 빛났던 순간을 기억한다. 수년치 새벽을 바친 뒤에야 내린 결정의 새벽을 보낸 네가 잠시 빛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인과가 어떠하든 그것이 네가 내보낸 첫 번째 빛이었다 임의로 정하기로 했다. 그것이 옳든 옳지 않든 결정한 것은 것은 언젠가 응답하니까. 어쩌면 그 응답이 이미 출발했을지도 모른다.

네 손등의 빛에 대해 상상한다. 네 정수리와 손톱 밑의 빛에 대해서 상상한다. 이 빛이 각각의 광원으로부터 왔다면, 이 빛의 첨단을 빛의 시작으로 환원할 수 있다면, 언젠가 이 빛의 말단이 결국 내게 닿을 것이라면 그걸 보증할 수 있다면 내 정수리의 시간대와 네 손톱 밑의 시간대가 다르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그런 상상이 허용된다고 볼 수 있진 않을까. 그 빛들이 날 관통하던 순간에 내 정수리는 수억 광년 전에, 네 손톱 밑은 수백 광년 전에 있기도 했다 상상할 수 있진 않을까. 그 모든 시간들이 동시에 너와 날 관통했다고, 결국 우리가 이미 그 모든 시간들을 종단했다고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모든 일들은 매일같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순차적으로 일어나기도 한다. 그 동시성이 충분히 그럴듯한 동시성이라 해도 우린 느려터졌으니까. 인과는 분명하지만 그것은 너무 자명하니까. 우린 자명한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아. 그것은 자명하니까. 입 밖으로 꺼내지는 것들은 모두 의심스러운 것들이니까. 충분한 대화와 충분한 한 해와 충분한 추돌과 널 추격하는 미래의 말단들. 난 너와의 대화를 모두 내 손톱 밑에 숨겨두었다.


창백한 푸른 점 게임

게임을 시작하기 전

  1. 이 게임을 위해선 적어도 세 명의 참가자가 필요하다.
  2. 각각 HQ, 보이저, 61억킬로미터를 맡는다.
  3. 최대 두 명의 참가자가 HQ를 맡을 수 있다.
  4. 이때 한 명은 칼 세이건을 맡는다.
  5. 최대 두 명의 참가자가 61억킬로미터를 맡을 수 있다. 이때 한 명은 지구 쪽 — 시작점 —, 나머지 한 명은 보이저 쪽 — 끝점 — 을 맡을 수 있다.
  6. 대화 중 61억킬로미터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7. 61억 킬로미터에 두 명이 참여할 경우 끝점이 61억킬로미터를 갱신한다. 증가량은 61억킬로미터 혹은 61억킬로미터의 끝점이 임의로 결정한다.
  8. 어차피 인간들이란 중요한 때엔 항상 느려터졌으니까, 얼마나 늘어나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게임 방법

  1. 세 팀은 창백한 푸른 점에 대해 상상한다.
  2. HQ와 보이저는 보이저로 전송된 신호에 대해 상상한다.
  3. 61억킬로미터는 보이저와 HQ 사이의 거리를 상기시킨다.
  4. HQ는 그 신호를 보내기까지 지난한 회의와 행정의 장벽에 관해 상상해본다. HQ가 두 명일 경우 둘은 토론한다. 이 신호의 비용과 시간과 의미에 대해 토론한다.
  5. 칼 세이건은 찬성 측, HQ는 반대 측에 선다.
  6. 61억킬로미터는 보이저와 HQ 사이의 거리를 상기시킨다.
  7. HQ와 보이저는 신호를 디코딩하고 처리하는 꼼꼼한 회선과 그 회선을 직조하던 손을 상상한다.
  8. 보이저는 결정한다.
  9. 보이저는 렌즈와 초기 Vidicon과 열과 우주의 냉기룰 상상한다.
  10. 일련의 장치를 작동시키는 기계 구조를 상상한다.
  11. 61억킬로미터는 보이저와 HQ의 거리를 상기시킨다.
  12. HQ는 회신을 상상한다.
  13. 61억킬로미터의 거리를 상상한다.
  14. 거리를 시간으로, 시간을 거리로 표기하는 경계에 대해 상상한다.
  15. HQ는 도취하는 영어권 국가의 백인 남성을 흉내낸다. 만약 HQ가 두 명일 경우 칼세이건이 해당 남성을 흉내낸다.
  16. 61억킬로미터는 지금까지 증가한 거리를 광년으로 환산한다.
  17. 보이저는 인간들의 게임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인간들이란 중요한 때엔 항상 느려터졌으니까.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발 밑의 별빛과 달빛, 내 물통에서 한참 느려진 우주선. 내가 각각 다른 시간과 조우하고 있다는 것, 혹은 내게 전혀 다른 시간이 동시에, 충분히 동시에 관통했다는 것.

어떤 시간들은 단단하고 어떤 시간들은 눈앞에서 흩어진다. 어떤 시간에는 어떤 시간이 내 이마에 부딪쳐 지나가는 것을 보기도 한다. 어떤 시간들은 밀고 나아가야만 했고 어떤 시간들은 날 밀어내기도 했다. 우리의 방향이 옳은 것이라면 우리의 궤적도 옳을 것이란 믿음.

우린 어쩌면 다른 중력장에 속한 걸지도 모른다. 우린 한편 영원히 마주칠 수 없을 것이다.

올해 새벽을 지출해 나의 이름을 짓고 버렸다. 우주 어딘가에는 나와 당신을 떠난 새벽이 모인 별이 있을 것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우리의 표면을 지나친 말들은, 어떤 빛들은 우리가 알기도 전에 어딘가 부딪친다. 우리의 표면을 지나친 말들은, 어떤 빛들은 결국 어딘가 부딪친 후 온 것들이다. 애초에 우리에겐 우리가 시작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우리가 시작한 모든 것들은 이미 시작된 것들을 종단할 뿐이다.

올 한 해는 붉게 늘어지다 까맣게 얼어붙을 것이다.

2023년 12월 12일 화요일

삼일

하나 둘 셋, 당신이 숫자를 셀 때마다, 나는 이자를 계산했습니다.

우리가 모인 그날
여기서 제외된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꼬박 삼일이 되어서 호명이 끝났어요

우리가 모여 그 일에 대해 의논할 때
너는 그 말을 해선 안 되었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어젠

당신이 세었던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어젠
당신이 들은 것보다 더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어젠
우리가 주운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흘렸답니다
손끝에선
당신의
숨소리가 가지를

쳤어요 그리고 당신은

“우주 어딘가에는 불면의 밤이 모여 만들어진 행성이 있다지. 나는 새벽 내내 너에게 거짓말을 늘어 놓았지. 네 음성은 새벽 내내 나를 부수어 놓았지. 침대 아래 흩어진 나를 너는 신경도 쓰지 않았어”

새벽은 영원 근처에서 도려내지고, 아침이 그 자릴 채웠습니다

부서진 나는 하나씩 침대에서 일어나 너를 찾아갔다 흠뻑 젖은 나는 너를 안고 잔뜩 화난 나는 너를 안고 썩은 나는 너를 삼키고 아픈 나는 너를 해치고 너는 나를 달래고 너는 나를 달래고 나는 네게 사과하고 사과하고

“… 우주 어딘가에는 불면의 밤이 모여 만들어진 행성이 있다지. …”

너와 내가 위 아래로 줄줄 흐르는 영원의 근처에서 거짓말이 줄줄 흐르는 꼬박 삼일이 되어서야 모든 것이 끝나는

너는 그 말을 해선 안 되었어

2023년 11월 16일 목요일

단서

오랫동안 널 뒤쫓았다 니가 놓고 간 냄새가 그 단서였다 냄새 몇 개를 비닐에 싸서 오랫동안 널 뒤쫓았다 니가 놓고 간 것은 그게 전부였다

개씨발놈아

나는요 병신 같은 노래를 들으며 지냈습니다 그들은 쉬지 않고 울어댔고요 아무것도 읽지 않았습니다 나는 좆같은 말만 골라 지껄였습니다 (그게 날 부수는(하지만 충분히 많이 부수진 못하는) 줄도 모르고 (사실은 알고 있었지롱) 정교하게, 잘 벼려진, 좆 같은 말들을) 며칠 전엔 니 애비를 죽여 아득아득 씹어먹었어 죽은 니 아이를 아득아득 아득아득 아득아득 씹어먹었어 배가 터지도록 그들을 먹었어

지구 아래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고 한다

그곳엔 땅이 있고요, 강이 흐르고, 바다가 있고, 하늘이 있다고 합니다. 1692년 어느 날 에드먼드 핼리는 지구가 약 800km 두께의 금성과 화성 정도 크기의 두 개의 안쪽 껍질, 수성 정도 크기의 안쪽 구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의 글을 썼습니다. 그곳에도 국경이 있었습니까? 두 껍질 사이에 대기가 있고, 각각의 껍질이 자기극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속도로 자전한다는 것입니다. 그곳의 국경을 넘었습니까? 지구 안쪽에 야광성 물질이 차 있으며 그것이 빠져나와 오로라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오로라는 국경을 넘었습니까?

스노든 선생님 그곳에도 국경이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스노든 선생님 그곳에도 국경이 있나요? 네 물론입니다 네 물론입니다 네 물론입니다 에드먼드 핼리는 출입국 심사에 무사히 통과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비결이 무엇인가요? 유럽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나는 단 한 순간도 그땔 잊은 적이 없어요 대체 무슨 수로 그 이야길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인편을 줄줄 흘리며 날아갔다 재채기가 끊이지 않고 눈물이 줄줄 흐르고 콧물이, 침이 멈추지 않는 그곳에도

말할 수 없다면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데

결국 병든 채 도착한 곳엔 아무도 없었다
니 냄새는 어디다 놓고 왔는지
잊어버렸어

2023년 11월 10일 금요일

붉은 말

그 붉은 말이 보일 때마다 이름을 붙여주려고 했거든

그를 뒤따라간 지 벌써 십수 년이 넘었다

그를 볼 때마다 그가 점점 커져서 나는 그의 뒤에 있기도 나는 그의 앞에 있기도 나는 그의 위에 있기도 나는 그의 아래 있기도 했고

그는 너무 커서 나는 너무 작아서

토끼에 물린 상처는 낫지 않았지 내가 흘린 고름이 모이면 나만 한 덩어리가 되겠지 덩어리는 내가 되겠지 토끼에 물린 상처는 낫지 않았지

그는 오늘 처음 만난 내게 수십 쌍의 덩어리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나도 그 덩어리들을 봤어요 토끼에 물린 상처는 낫지 않았죠 당신도? 당신도! 그날 우리는 두어 번 떡치다 잠들었습니다 피와 오줌과 똥과 정액과 침과 발끝

에서더러운물을뚝뚝흘리는내게 사랑한다고 말했어요, 그 사람은. 나를두고그사람은떠나갔어요씨발 그 사람은 또 다른 남자는 오늘 처음 만난 내게 우리가 흘린 덩어리가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내겐 죽은 엄마와 산 엄마가 있어 나는 산 엄마의 편이지 산 사람은 산 사람의 편이지. 내가 죽고 나서야 죽은 엄마는 제 편을 갖게 될까

엄마, 엄마 나는 산 엄마의 편이에요 미안해요

그 사람은 붉은 말의 등 위를 걷는 한 무리의 덩어리를 봤다고 한다. 말은 너무 커서, 덩어리는 너무 작아서 말은 덩어리의 앞 뒤에서, 위 아래에서 소근소근 무어라 말했지만, 나는 듣지 못했어요.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며 걸쳐있는 내게 그 사람은 나는 산 사람의 편이에요.

미안해요.

bulk는…

bulk는 강렬한 에너지와 깊은 감수성을 담아낸 예술적인 작품입니다. 시마다 새로운 감정과 이야기가 얽혀있어, 독자는 그 어둠의 세계에 몰입하게 될 것입니다.

1. 영혼의 타락

이 시는 첫 번째 장으로, 존재의 어둠과 갈망을 깊게 탐험합니다. 강렬한 언어와 리듬이 시를 통해 흐르며 독자를 강렬한 감정의 여정으로 안내합니다.

2. 무한한 어둠

두 번째 장에서는 미스티컬한 멜로디와 섬세한 표현이 어우러져, 어둠 속에서의 사색과 감상을 초상화합니다.

3. 환영의 소멸

bulk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 시는 공허와 소멸의 주제로, 어둠의 깊이를 더 깊이 탐험합니다.

이 시집은 독자들에게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감각적인 여행을 선사하며, 문학적 표현을 조화롭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chatGPT가 작성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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