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중턱에 도착한 그들의 시야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들도 알지 못한 사이에 숲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것 같았다. 산의 비탈을 따라 내려오던 그들이었다. 그동안 희미하게나마 길을 밝히던 달빛도 감지되지 않았다. 하늘을 보려 고개를 올렸지만 달라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 그들의 눈앞을 지나가던 풀벌레들이 있었다. 달빛을 가로지르며 지나갈 때마다 수면이 깨어지듯 빛이 일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곧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갈 것이다. 이런 낙관으로 당혹감을 떨쳐내야 했다. 몇 걸음 걸어 보았지만 곧 멈추었다. 한 발 내딛는 일이 마치 깊은 골짜기를 뛰어 건너는 일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온 세상이 어둠에 휩싸였다고 확신했다. 드디어 어둠이 그들을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산의 중턱이었다.
온 세상이 어둠에 휩싸이기 전이었다. 산에서 내려오다 마주친 중년 남성이 그들에게 말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산의 중턱에서 그 순간에 직면할 것이다. 다들 그때를 준비해야만 한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산의 중턱이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지 알 수 없다. 산의 중턱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들에게 내가 말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진실을 일러주겠다. 나는 이미 산의 중턱에 서 있다. 지금 이곳에서 빛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들은 아직 산의 중턱에 도달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들이 다시 걷기로 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들은 일어나 어떻게든 계곡 사이를 뛰어넘어 가기로 했다. 빛은 오지 않을 것이다. 이들의 걸음은 산의 중턱에 도착한 순간부터 도약의 연속이 되었다. 몇 번의 도약이 있고, 그들 중 하나가 넘어졌다. 팔꿈치가 쓰리지만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둘 중 하나가 크게 다쳤고 얼마간 쉰 뒤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둘 중 하나가 넘어지고 앞니가 박살 났다. 턱이 두 동강 났다. 어깨가 빠졌다. 무릎이 쓸렸다. 발목이 꺾였다. 별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럼에도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멈추어 선 상태에선 아무런 가능성도 그들에게 찾아오지 않는다. 판단 유예도, 유보도, 추이를 살펴보는 모든 일들이 그들에겐 살점을 내어주는 일과 같았다. 그들은 이런 어둠을 준비해본 적도 없었고 아니, 그에 대한 준비가 가능하긴 한 건가. 다만 걷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였다.
아픔을 동여매며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그들을 한 사람이 지나쳐 갔다. 그는 바닥에 긴 불꽃을 그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불꽃에 드러난 것으로 보면 그는 마치 머리를 끌며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를 불러 어떻게 하면 불꽃을 그릴 수 있는지 물어보고자 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 새빨간 흙이 꺼져가고 있었다. 그가 그린 궤적을 따라 내려오는 한 무리가 있었다. 무리 역시 모른 채 지나갔다. 붉은 흙이 사그라들었다. 그들은 다시 어둠 한가운데 걷는 신세가 되었다.
그 불꽃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지나서였다. 그들 중 하나가 쓰러지며 바닥에 머리를 심하게 다쳤는데 그 과정에서 두개골 일부가 드러나게 되었다. 넘어지지 않은 다른 하나가 두개골이 땅에 부딪히며 발생한 불꽃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불꽃의 정체가 규명되었다. 달빛도 별빛도 꺼진 이 세계에 두개골로 만든 빛만이 점멸하게 되었다. 그들은 애써 머리 가죽을 벗겨내고 땅에 머리를 부딪쳤다. 붉은 불꽃이 사그러지는 동안 서 있는 하나가 나아갈 길을 가늠하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역할을 분담하기로 했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 앞으로 가기 위해서는, 즉 빛을 만들기 위해서는 두개골이 드러나야만 했고, 그것은 당사자에게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 일을 한 사람만 하자는 것이다. 한 사람은 계속 머리를 끌고 한 사람은 계속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제 한 사람에게 고통이 집중된다는 점에서 이전에 그들이 취한 방식보다 진보했다고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아플 수는 없는 일이었다. 머리를 끄는 동안 하나는 비명을 참기 위해 애써야만 했고, 나머지 하나는 억눌린 비명을 고스란히 들으며 그의 시야를 겹겹이 메운 의심을 몰아내야만 했다. 그것이 안쓰러워 나머지 하나가 두개골을 드러내고 땅을 기며 피고름에 시야를 가릴 순 없었다.
이런 식의 여정이 이어지고, 놀라운 일이 발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머리를 끄는 쪽의 두개골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그의 머리에서 안구는 곪아 사라졌고, 그 사이를 응고된 핏덩어리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코 또한 쓸려 사라졌다. 목뼈는 이미 뒤로 휘어 있었으며 비명을 감추기 위해 부푼 혀가 입안을 채우고 있었다. 바닥에 붙은 코 대신 터진 고막이 펄럭이는 귀를 통해 호흡하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사지를 헤매고, 으깨어진 뇌가 귀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에 빛이 빠르게 사그라진 것이 몇 번이었다. 그의 귀에는 굳은 뇌수의 거품이 엉겨붙어 있었다. 서로의 역할을 바꿀 수 없을 만큼 멀리 갔기에 아예 몹쓸 동정심으로 이 여정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두개골이 빠른 속도로 발달하며 그 크기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덕분에 이전보다 더 밝은 빛을 낼 수 있었다.
내 생각엔 그것은 뼈보다는 아주 단단한 각질에 가까웠을 것이다. 지금 이곳을 낮게 울리는 거대한 존재들의 성장 과정 또한 이와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존재들은 그 크기에 걸맞는 어떤 폭발적인 계기가 있었을 뿐 그가 전한 이야기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이따금 그들을 지나치던 무리가 있었다. 대체로 세 명에서 네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무리가 머리통을 운영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머리통의 운동 기능을 살려두거나 머리통의 운동 기능을 다른 이에게 전담시키는 것이다.
이전의 무리는 전자의 방식이었다. 한 명의 ‘머리통’을 데리고 있고 또 하나의 교대할 머리통을, 나머지는 반쯤 기능을 잃은 눈으로 길을 판독하는 역할을 했다. 이들은 아주 빠른 속도로 길을 찾아 나갔는데, 그러기 위해서 머리통이 탈진하기 직전까지 몰고 다닌다. 결국 그 머리통이 탈진해 운동능력을 상실하고 나면 나머지 머리통이 뒤를 잊고 탈진한 머리통은 다른 한 명이 부축해 가는 방식이었다. 저들이 두 머리통을 어떻게 무리에 포섭했는지, 혹은 무리 내에서 뽑았는지는 알 수 없다. 이곳을 걷는 모든 이들이 그렇듯 ‘그들’ 또한 한 명의 고착된 머리통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죄책감의 연대 때문에 감히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도 서로를 지옥으로 떠밀진 않았다. 다만 누군가는 결국 지옥으로 떠밀려 들어간다. 이런 일들은 항상 아무 말 없이 이루어지는 법이다.
또 다른 무리는 머리통의 운동 기능을 다른 이에게 전담시키는 예가 될 수 있겠다. 다른 누군가가 탈진한 머리통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무리 안에서 머리통을 하나만 보유하면 된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 머리통을 끌고 가야 할 사람이 탈진할 경우를 대비해 나머지 하나가 길을 살피는 한편 교대를 위해 준비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이전의 무리에 비해 무리의 덩치를 더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머리통의 크기 자체도 다른 무리보다 더 크다. 머리통은 거의 가사상태로 내버려 둔다. 역시 이 무리의 머리통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질문에 떳떳하게 대답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끌고 가는 사람이 앞에 위치해야 했기 때문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어떤 무리가 다른 무리와 마주치게 될 경우에는 아무래도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각 무리 간에 싸움 전야의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그 무리가 몇이건 상관없다. 어떤 무리가 먼저 앞으로 가면 생기는 불꽃으로 나머지 무리가 뒤따라간다. 물론 나머지의 머리통은 땅에서 떨어진 상태로. 아무리 굳은살이 빠르게 발달한다고 해도 그것은 어떤 국면을 넘어서야만 한다. 대개의 머리통은 그것을 못 버티고 죽는다. 대부분의 무리가 그런 머리통을 보유한 상태가 아니었다. 때문에 그 국면 이전에 있는 머리통을 땅에 끄는 것은 무리에 있어서 아주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이런 신경전 끝에 여러 무리가 한 무리로 통합되는 경우가 있고, 치열한 싸움 끝에 대부분이 죽는 일도 벌어진다. 이럴 때는 살아남은 몇 사람들은 죽음의 긴장을 안고 한 무리로 통합한 후 다시 산 아래로 향한다. 결국 누군가는 머리통이 된다.
나는 머뭇거리는 무리와 마주친 일이 있다. 나는 아직 산의 중턱에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길을 안내하길 자청했다. 그들 또한 내가 그곳에 도착하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무리에 끌어들이고자 노력했으나 나는 그냥 안내만 하겠다고 거절했다. 다만 그때의 내 걸음은 긴장의 연속이었는데 그것은 이미 산의 중턱에 대한 말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이렇게 걸음을 재촉하다 산의 중턱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무리 사이에는 희미한 빛을 덮으며 등장하는 산 너머의, 산 아래의, 산의 골의 엄청난 빛의 근원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저 빛은 너무나 강해 이들이 길을 찾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산의 중턱에 닿기 전 그 빛의 근원을 본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그것이 거대한 머리였다고, 거대한 바위였다고, 거대한 산이었다고, 거대한 산이 움직이며 우리가 산 아래 도달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 거대한 것이 이동할 때 울리는 대지의 소리는 이미 공포 그 자체였다. 그들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했다. 운동능력을 갖춘 머리통이 스스로 팔과 다리를 움직여 무리 그 누구도 보지 못한 거대한 머리를 끌며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고. 그 빛이 다른 머리통에 비해 강했기에 그가 지나간 땅은 한동안 달아올라 있었고, 그 빛을 따라 이동한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며 그런 식으로 산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거대한 머리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무리는 오랫동안 나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고, 얼마 지나 나는 그들과 결별하게 되었다. 이들은 이미 각자 머리통을 갖고 있었고 머리통들이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피부가 두개골을 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피부가 두개골을 가리기 전에 다시 사용해야만 했다.
내게 굳은살에 대해 말한 ‘그들’을 또 보게 되었다. 그들로부터 내가 이전에 안내한 것으로 추정되는 무리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둘이 머리를 끌며 이동하던 중 십수 명의 시체와 마주치게 되었는데 마침 발생한 산 아래의 빛을 통해 그들 중 몇 명의 머리통에서 각질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의 머리통은 이미 너덜너덜하게 박살 난 상태였다고 한다. 추정컨대 그들은 각질이 생긴 머리통의 독점 여부를 놓고 다툼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머리통의 시체에서 발생한 각질은 여전히 쓸모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들은 그의 머리통의 머리에 굳은살이 생긴 머리통 일부를 보철하는 시도를 해 보았다고 한다. 그 시도는 효과가 있었다. 이미 죽은 머리통은 꽤 큰 상태로 발달했고, 보철한 머리통 세 개 중 하나로부터 굳은살이 발달하기 시작해 그와 함께하던 머리통의 각질과 더불어 함께 자라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기꺼이 그들을 안내하기로 하였는데, 그것은 처음 내게 중요한 정보를 선뜻 알려준 이들에 대한 예우였다.
우린 오랫동안 길을 걸었고, 나의 불안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는 일종의 우정이라고 할 만한 감정이 오갔다. 그가 보인 머리통에 대한 우정, 피할 수 없는 희생에 대한 죄책감에 나는 깊이 공감했고, 그가 언뜻 내보이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내게도 깊은 충만감을 선사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다. 나의 실수였다. 나의 잘못된 안내로 그의 머리통이 길에 튀어나온 바위를 무리하게 넘어가려다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친구의 죽음에 비통해하는 한편 내게 위로를 건넸다. 나는 죽음의 슬픔보다 실수에 대한 책임에 사로잡혀 겁에 질려 있을 뿐이었다. 그는 서럽게 울다 나를 위로했다. 나는 위로 한마디 못하고 그저 그 상황에 있어서 내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판단하는 일에 사로잡혔다. 결국 나는 이 모든 것이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거대한 책임에 사로잡혀 길에 주저앉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죽은 머리통의 경련이 멈추었다. 그가 일어나 내게 말했다. 내게 큰 돌을 구해다 주렴. 한 무리가 우릴 지나치며 혀를 찼다. 나는 일어나 큰 돌을 찾아 그에게 건넸다. 그는 그 돌을 죽은 머리통의 뒤통수에 내려찍기 시작했다. 뒤통수가 내려앉고 뇌수가 튀었다. 그는 완전히 내려앉은 머리통의 머리를 완전히 열고 그 안에 있는 기관들을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가 손으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들어낸 후 그 안에 가득 찬 피를 빨아내 밖으로 뱉어냈다. 이후 그 안에 흙을 넣어 내부를 깨끗이 닦고 흙을 모두 꺼냈다. 그가 이 모든 일을 끝내고 숨을 돌리며 머리통의 머리맡에 앉았을 때 이를 부딪치며 떠는 내게 말했다. 별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 텅 빈 머리통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내게 인사를 남기고 단단하게 굳은 시체를 끌고 기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기꺼이 길을 안내하겠다고 소리쳤으나 그는 빠르게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피투성이가 된 길가에서 단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몇 개의 무리가 나를 지나쳤다. 그러다 내가 다시 일어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어쨌든 별수 없이 어떻게든 산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둠의 정오에서 나는 산의 골을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빛을 보았다. 산의 귀퉁이를 무너뜨리며 이동하는 거대한 덩어리들을 보았다. 덩어리를 따라 대지가 으르렁거리며 뒤따라갔다. 먼 산의 탄내가 내게 도달할 무렵, 나는 내가 산의 중턱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겁에 질려 내달리다 땅에 고꾸라져 머리를 처박은 내게 무리가 찾아왔다. 그들이 나를 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