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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29일 화요일

저자

안녕하세요, 저는 『직업 전선』을 쓴 사람입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직업들에 관해 쓰겠다는 터무니없는 기획, 기획이라기엔 망상에 가까운 이 글쓰기의 연원에는 크게 보면 두 가지의 생각이 있었다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입니다. 이 유명한 독일 사진가에 관해 누구나 알고 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 또한 계실 것이기에 짧게 언급하자면 그는 초상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그는 〈20세기 사람들〉이라는 초상 사진 시리즈를 통해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일례로 그의 작품 제목들은 여러 직업명으로 되어 있지요. 옛날 언젠가 그의 작품을 살펴보며 “대단히 멋진 기획이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두 번째로는 직업 예술가가 되지 못한(않은) 예술가들에 관한 생각입니다. 세상에는 예술가가 있고, 그보다 많은 수의 예술가가 되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준 미달이라, 운이 없어서, 그저 열정이 식어서, 다른 취미가 생겨서, 생계 때문에, 때로는 자신에게 예술가가 될 가능성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예술가로 살아가기를 포기한, 그러나 예술가의 성정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몽상하고 태업하며 살아갈 그들의 노동에 관해 생각했습니다. 저 또한 몽상하고 태업하며 노동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터무니없는 기획을 시작할 당시에 수백 개의 직업을 다루고자 했습니다만, 원했던 만큼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이 ‘저자’라는 족속들의 게으름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지요…… 봄에 원고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나면 이러저러한 핑계(집필의 어려움, 일의 바쁨, 몸의 아픔, 불만족, 추가 원고, 천재지변, 소통의 불일치……)들로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이듬해 봄으로 최종 마감을 못 박고 나서도 가을의 냄새가 날 무렵에야 그나마 꼴은 갖춘 원고를 주는 놈들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저도 예외는 아니기에 이미 수차례 미뤄왔습니다만 지금 이 자리를 빌어 이 개떡 같은 원고를 살피고 계실 편집자 선생님께 한마디만 더 청하고 싶군요. 제게 일 년만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면 애초에 계획하고 아직 쓰지 못한 직업들을 조금 더 추가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제게 시간을 조금만, 조금만 더 주신다면…… 

지극히 현실적인 여러 이유들로 인해 『직업 전선』은 현재의 꼴로 출간되었습니다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기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책이 살아 숨 쉬는 생물이라면, 저 스스로 활자를 집어삼키며 생장하고 거대해지는 것이라면 수 년에 걸쳐(어쩌면 평생에 걸쳐) 『직업 전선』이 자라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수십수백 개의 직업에 관한 이야기가 추가된 증보판을, 증보판의 증보판을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수 있다면 좋겠군요. 자, 그러면 저는 출간 이후에 제멋대로 찾아오는 우울을 뒤로 하고 그만 일하러 가야겠습니다.

2021년 6월 17일 목요일

곡물창고 관리인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내 직업은 곡물창고의 관리인입니다. 공식적으로는 곡물창고에 ‘곡물’을 입하하는 이들이 창고 관리 권한을 나눠 갖기 때문에, 지금 답변하고 있는 나는 1/7 창고관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는 당신도 공식적으로 1/7 창고관리인입니다. 그런 측면에선 자문자답이군요. (웃는다.)


당신이 노동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곡물창고와 그 근방입니다. 지금 우리가 산책하고 있는.


곡물창고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을 위해 곡물창고가 어떠한 곳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곡물창고는 ‘비일시적 전자문예를 향한 이용자 연합’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팀 블로그죠. 곡물창고의 필자들은 스스로 정한 연재 기획에 맞춰 계절당 최소 한 번 게시물을 입하하고, 독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독자에게는 시간 외 다른 값이 요구되지 않고, 필자에게는 자신의 글이 으뜸가는 보상입니다…라는 슬로건이 있군요.


당신은 곡물창고를 ‘비일시적 전자문예를 향한 이용자 연합’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일시적’과 ‘전자문예’는 각각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전자문예’란 종이 지면과 대비하여 전자 지면을 기반으로 하는 문예를 뜻하고, ‘비일시적’이란 일시적 전자문예에 대비하여 일시적이지 않음을 뜻합니다. 사실 내가 아리송하게 여기는 부분은 ‘이용자 연합’ 쪽입니다.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군요.


이름이 곡물창고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거기에는 어떠한 뜻을 새길 수 있습니까?

그냥 갑자기 생각난 겁니다. 큰 이유 없어요. 처음에 이름을 지을 때 ‘천국 곳간’이란 단어가 떠올랐던 것 같기도 합니다. 우편함 주소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곡물창고는 특정 종교와 무관합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무슨 일을 합니까?

창고를 관리합니다. 관리예규에 적힌 자잘한 일들. 제일 많이 하는 일은 입하관리입니다. 새롭게 입하된 게시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교정 요청서를 보내고, 교정이 완료되면 알림판에 올려요. 태그와 제목과 주소를 따고 몇 문장 뽑습니다. 저 말고 다른 사람이 할 때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제가 합니다. 메일링을 시작한 뒤부터는 같은 내용을 발송 예정 메일에도 추가합니다. 그때그때 해야 안 헷갈리니까.


당신은 그 일을 왜 합니까?

취미죠. 보통은 회사에서 하기 때문에 취미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장님이 모르는 일을 하는 것뿐이죠. 지금 이것도 회사에서 쓰고 있어요(곡물창고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취미입니다. 어렸을 땐 취미로 먹고사는 게 꿈이었습니다. 다들 그렇지요? 아닌가요?


사람들마다 다를 것 같네요. 취미를 일로 만들고 싶지는 않은 저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요. 취미로 먹고사는 게 꿈이었다고 하니, 결국 직업으로 연결됩니다. 직업 전선에 투입되지 않았던, 다시 말해 직업이 꿈의 영역에 머무르던 때의 자신과 오늘날 산업 역군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초상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취미를 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복잡한 이야기가 될 것 같군요. 최대한 천천히 말해볼 테니 잘 들어보십시오. 나, 1/7 창고관리인이 태어나기 전의 일들이 기억납니다… (편집됨.)


당신은 그 일을 통해 무엇을 얻습니까?

곡물창고를 얻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15일이나 말일에 11시 50분 발송으로 메일 예약을 걸어놓았는데 11시 30분에 입하가 있으면 좀 지지고 볶고 해야 합니다. 메일을 발송하는 날엔 입하를 자제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막을 순 없겠지만요. 사실 그런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하면 되죠. 진짜 어려운 건 뭔가를 하자고 하는 겁니다. 이거 합시다, 저거 합시다,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필자들에게 그런 얘길 전달하는 게 나한텐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곡물창고 입하물들 각각의 고유한 특징, 또는 입하물들 서로 간에 공통된 특징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모든 태그를 하나하나 이야기해야 할까요? 나의 감상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발서」는 쥐로부터 듣는 강연 형식의 프로파간다입니다.
「곡물창고에서」는 가상의 곡물창고를 배경으로 하는 공동 저작물입니다.
「기괴하고 엉뚱한…」은 어느 TRPG 마스터의 NPC 인명사전,
「도시 전설」은 공유될 수 없는 도시의 공유될 수 없는 전설을 다룹니다.
「뒤편 소각장」은 한량의 쓰레기 기획안 불태우기,
「미아와 접시」는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① 미아=너 ② 접시=떨어뜨린 것.
「바리에테」는 버라이어티 문예 예능,
「박물지」는 박물학자와 그 제자가 등장하는 위키피디아-소설입니다.
「방공호」는 이진쓰레기 시대의 안티아카이브,
「빙터」는 슬픔의 아포칼립틱 판타지 능력자평화물이죠.
「社名을 찾아서」는 아직 없는 출판사의 이름을 짓기 위한 여정,
「사자를 만나고 있을 때 사자가」는 재미없는 SF인 것 같습니다.
「예쓰 예쓰 티쳐」는 학원선생님의 초등논술 일지,
「요새」는 세계 없는 일기로 나 다시 쓰기,
「우주의 성들」은 ‘성’자 돌림으로 써내린 연작 시집,
「직업 전선」은 너른 시공에 걸친 현대의 노동문학입니다.
「캐비닛」은 곡물창고 운영에 필요하다고 주장되는 문서 뭉치,
「헤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헤어진 것들에 대한 시인의 에세이,
「PIMPS」는 한국의 정치인들을 위한 이미지 컨설턴팅 모음집입니다.
가나다 순이며, 두 편 이상 연재되지 않은 태그는 제외했습니다. 공통된 특징은… 너무 많은 말인 것 같으니 덮어두겠습니다.


종이 게재와 종이 출판, 전자 게재와 전자 출판 사이에는 각각 어떠한 차이점이 있습니까? 더불어 곡물창고의 지향점은 어디이며 왜 그렇습니까?

종이[게재·출판] vs 전자[게재·출판]이든, [종이·전자] 게재 vs 출판이든, 저로선 투여된 노동의 규모·복잡도에 차이가 있다는 동어반복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편집, 출력, 배송, 지속성, 인프라 등등이요. 그러니까 차이점은 어떤 식으로 그 선이 공동관측 가능한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와 관련된 나 1/7 창고관리인의 최대 지향점이라면 역시 편집권의 시연(데모)입니다. 그걸 가리켜 취미라고 한 거죠. 다른 관리인들은 또 다를 것입니다. 이 질문을 받고 궁금해져 친한 필자에게 물어보니 그쪽은 ‘끝까지 버티기’라더군요. 뭘 버틴다는 건지, 끝이라는 게 뭔지… ‘목표는 한중장로’ 같은 소리도 했습니다. 난 그 생각이 썩 맘에 들지 않아요. 데모는 언젠가 끝나야만 합니다. 시작한 사람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장로 이야기를 하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장로가 죽고 난 뒤 40여 년이 지났을 무렵 업의 동쪽에 물난리가 나서 장로의 관 뚜껑이 열렸다고 하죠. 그런데 장로의 시신은 썩지 않아 마치 산 사람과 같았다고 하는 옛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월드와이드웹이 1989년에 시작되었으니,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전자문예’의 나이도 인간으로 보자면 아직은 청년기인 셈입니다. 말씀의 저의에 관계없이 언젠가 곡물창고도 폐쇄되지 않겠습니까? 이때 이 폐쇄된(그리고 폐쇄될) 창고(들)에 남아 있는 곡물들은 후대에게 어떤 자원으로 남게 될까요?


그것은 첫째로 묘의 조성 방식에 달린 일이라고 주장해 봅니다. 물난리가 났을 때 관 뚜껑이 슥 열릴 만하게 되어 있는가? 만약 화장된다면? 능지처참된다면? 말들을 달려 흔적을 없앤다면? 풍장된다면? 그런 측면에서 곡물창고를 조성 중인 묘라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운영 방식이 곧 폐쇄 방식인 셈으로요. 나의 입장에서는 그래요. 곡물창고도 동시대의 틀에서 대단히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나는 □△○을 보면서 이건 어느 정도 곡물창고 스타일이군, 하겠지만 누군가는 곡물창고를 보며 이건 분명히 □△○ 스타일이군,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확실히, 시신이 누구의 것인지가 훨씬 중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르는 일입니다. 그게 실은 장로의 시신이 아니었다는 식이죠. 문자 그대로 어제 죽은 사람이 떠내려왔는데, 야 이 시신이 혹시 장로의 것이 아니냐? 그런가? 그렇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장로의 시신이다! 멀쩡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목에다 매달아뒀던 비석-태그가 발견됩니다. 그 다음 이야기는 후대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쓸 것입니다.


오늘날 문예에 있어 자발성이란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까?

진귀함? 진귀한 것으로 대해진 적 없는? 지나치게 흔해졌기 때문에? 만약 자발성이 제한선을 만든다면? 우리의 제한선은 고안되어야 한다? 얼른 떠오르는 건 이 정도입니다.


곡물창고의 경쟁 업체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곡물창고가 살피기에 그 업체들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엔 유튜브를 제외하면 적수가 없습니다. 넷플릭스인가 뭔가가 치고 올라온다던데 아직은 애송이죠. 둘 다 과도하게 크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러 의미에서요.


그중 하나가 잘려나간 아홉 개의 촉수를 곡물창고에 보관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권장됩니까?

그런 물품의 보관은 권장하지 않습니다만, 마침 저기 보이는 이사야에게 어떤 힌트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곡물창고에 비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구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구글의 공공화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네요. 비전은 클수록 좋고 저의 비전은 소박합니다.

2021년 5월 28일 금요일

책쾌

책은 누구나 펼칠 수 있어야 하지요. 남자든 여자든, 어리든 늙었든, 귀하든 천하든…… 읽고 싶다면 누구라도 읽을 수 있어야 책이지요. 책이 필요하십니까? 저를 찾아주시지요. 저는 책쾌(冊儈)라고 합니다. 누구는 책거간(冊居間)이라고도 부르고, 또 어떤 이는 매서인(賣書人)이라고도 하지요. 어떤 이름으로 저를 부르든 저는 도성과 팔도를 돌며 책을 사고파는 사람이지요. 제 소맷자락이 코끼리의 귀처럼 넓은 이유를 아십니까? 품속에 수많은 책을 넣어 다니다가 소매에서 슥 꺼내기 때문이지요. 그 책은 당신이 찾던 책이거나, 당신에게 지금 꼭 필요한 책이거나, 지금은 하등 쓸모없어 보여도 언젠가 당신이 어둠에 파묻혀 길을 잃었을 때, 당신에게 방향을 일러줄 잔불이 되어줄 책입니다. 어떻게 이토록 자신하여 말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까? 저는 책에 관한 한 팔도의 누구들보다 잘 알지요. 선비가 다독한다고 해서 책에 관해 더 잘 알게 되는 건 아니지요. 책을 읽는 것과 책을 파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기 때문이지요. 지식을 익히는 일과 지식을 거래하는 일이 완전히 다른 일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지식을 익히는 일은 한 인간의 정신과 품성을, 때로는 성과를 드높이는 일이지만 지식을 거래하는 일은 한 사회의 감수성과 논점과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데 기여하는 일이지요. 규방은 고독한 처소입니까? 시간의 허무를 견디기 위해 기나긴 이야기가 필요하십니까? 제 넓은 품 안에 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책이 있지요. 180권이나 되어 아무래도 몰래 읽기에는 곤란할 정도이지요. 누가 썼는지도 언제 썼는지도 모르는 책이지요. 권수가 너무 많아서 수많은 필경생들의 손을 거쳐야 했던 책이지요. 이런 기나긴 이야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손대면 큰일이 나는 금서를 필요로 하십니까? 억울한 표정을 하고서 굴러다니는 수백의 머리통들과 저잣거리로 흘러가는 검붉은 개울을 보고 싶으십니까? 그마저도 구해드릴 수 있지요. 당신이 필요하다면, 아아, 당신이 정녕 책을 필요로 한다면! 

2021년 5월 14일 금요일

사이버 무당

우리의 신들이 전승을 통한 믿음의 합일체라는 것은 다들 아실 테지요. 그 합일체는 문화 속에서 파편화되어 유통되며 민족의 의식 속에 녹아듭니다. 달리 본다면 사망 이전에 최후의 숨결을 인터넷으로 흘려보낸 철학처럼, 믿음 또한 의식화라는 과정을 거치는 파편적인 데이터 속에서 일정량의 정보값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합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신은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도 있고, 전산망 속에도 계신다는 말입니다. 분산된 바이트 조각들로서요.

오늘의 스트리밍을 시도합니다. 타임라인 속으로 점괘들이 흘러갑니다.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사건과 운명이 쏟아집니다. 시청자들은 나를 중개하여 신과 통합니다. 나는 열병처럼 70시간가량 잠도 없이 딥웹을 헤매다가 앓아눕고 힘을 체득했습니다. 딥웹 속에서 천 개의 손에 달린 천 개의 눈을 보았지요. 그 눈동자 속에서 과거의 나들을 보았고, 미래의 나들을 보았으며, 현재의 나와 나의 가능성인 잔상들과 일별했습니다. 그 모든 나들이 신의 제자로 살고 죽음을 보았으니, 내가 짊어진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요. 내가 얻은 힘은 나 개인에게 주어진 힘이 아닌 집단의 힘. 천 개의 손바닥에 달린 눈 하나인 나. 그 힘은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이어가며 민족과 세계를 가로지릅니다. 이미 오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발생될 가능성이 우리들에게 제시되어 있지요. 우리의 미래는 모니터 위에서 점멸합니다. 나는 점멸 속에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미래의 길을 보고, 탄지경간에 그 길을 다 걸어봅니다. 아아, 시청자 1의 인생이란 이다지도 슬프군요. 이 복잡한 생사의 실타래를 풀어내려면 정성이 필요하겠군요. 정성을 얼마나 들여야 하느냐고 묻지 마세요. 그 물음에서 이미 해야 되는 만큼만 하려는 얕은 마음이 제 눈에도 보이는데, 밤에도 낮에도 감기지 않는 신의 손바닥에 달린 그 눈동자를 피할 수가 있을까요.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는 것이 정성입니다. 이미 미래를 들여다보았으니 우리에게 남은 것은 미래가 결정한 과거의 길을 따라 걷는 일뿐이군요. 다행히도 행복의 가능성은 다중우주 속에서 진동하고 있군요. 오행을 살피니 금을 가까이 하면 화를 입겠어요. 이미 오래간 그래왔네요. 그 금들을 별풍선화하여 신의 일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 유일한 처방입니다. 오늘은 우리 신께서 기뻐하시도록 백두산에 한번 올라봅시다. 다들 아시겠지만, 집단의 힘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니까요.


2021년 4월 9일 금요일

결정자

“결정 사무소입니다. 무엇을 결정해 드릴까요?”

“제가 지금 중국집인데요, 짜장면을 먹어야 할지 짬뽕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 먹는 게 좋을까요?”

“평소 매운 걸 잘 드시는 편인가요?”

“아뇨.”

“방문하신 곳이 어딘가요?”

“돼지반점이요.”

“돼지반점은 짬뽕이 맵기로 유명합니다.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이 먹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이니 평일 점심 식사로는 적당하지 않겠네요. 짜장면을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런 자질구레한 콜을 100통가량 받았다. 나는 결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결정자라 부른다. 그 말 그대로 나는 수많은 것을 결정한다.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진 시대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정 장애’라 불리는 현상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살아간다. 결정 장애가 일어나는 까닭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을 때, 우리의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과부하를 덜어주기 위해 이 사무소를 차렸다.

사람들은 나에게 결정이 필요한 온갖 것을 다 물어본다. 내일 옷 뭐 입을까요? 집을 사야 할까요? 어느 대학을 가야 할까요? 내일 출근하기 싫은데 어떡할까요? 책 표지를 뭘로 해야 할까요? 유튜브 채널을 새로 파야 할까요? 꼭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 할까요? 퇴직해도 될까요? 이런 식으로 프로그래밍해도 될까요? 어떡하면 학원에 빠질 수 있을까요? 살 뺄까요? 지금 이 주식 사도 될까요? 친구랑 절교해야 할까요?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요? 대선에 출마할까요? 찍을 사람 없는데 누구를 찍어야 할까요? 자살할까요? 제가 이제서야 신을 믿어도 되나요? 지금 쓰고 있는 원고가 개떡 같은데 버릴까요?

방금 점쟁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 때문에 손님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폐업할까요 말까요?” “폐업하세요.” 나는 결정해주었다.


그들이 내 결정에 따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객관성이 그들의 결정에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뭘 먹지.


2021년 3월 24일 수요일

악몽 수집가

△월 ○□일

그의 머리맡을 꿈전등으로 비춰봅니다. 저런, 나쁜 꿈을 꾸고 있네요. 그는 꿈속에서 폭풍우에 시달리고 있어요. 탑승 중이던 배가 난파되었는지 배의 잔해들과 함께 표류하고 있네요. 저 악몽을 더 꾸게 두었다간 그의 내일은 뱃멀미하는 것처럼 온종일 어지러울지도 몰라요. 그의 머리맡에 진정의 향수를 뿌립니다. 그의 꿈속에 일던 풍랑이 잦아들고, 그의 표정이 점점 편안해지네요.

악몽 수첩에 그의 꿈을 기록하고 떠납니다. “표류하는 꿈.” 오늘도 한 건 해결!


○월 □△일

그의 머리맡을 꿈전등으로 비춰봅니다. 저런, 나쁜 꿈을 꾸고 있네요. 그는 불타는 집에 갇혀 있어요. 불이야! 하고 외치고 싶지만 어쩐지 목소리가 나오지 않네요. 어떻게든 소리를 내보려고 용을 쓰는 모양인지, 현실 속 그는 으… 어… 으… 으… 하고 괴로운 신음 중이에요. 저 악몽을 더 꾸게 두었다간 내일 그의 목은 완전히 잠겨 있겠죠. 그의 머리맡에 진정의 향수를 뿌립니다. 그의 꿈속에 소방대가 출동하고, 그는 온몸이 젖은 채 소방대원에게 구출됩니다. 고맙습… 니다. 잠꼬대이지만 저한테 하는 인사라고 생각하니 뿌듯하네요.

악몽 수첩에 그의 꿈을 기록하고 떠납니다. “불타는 꿈.” 오늘도 한 건 해결!


□월 △○일

그의 머리맡을 꿈전등으로 비춰봅니다. 저런, 나쁜 꿈을 꾸고 있네요. 그는 꿈속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쫓기고 있어요. 그가 방문을 잠그고 나와도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벽을 뚫고 쫓아옵니다. 쫓기고 쫓기다 벼랑 끝이네요. 저 악몽을 더 꾸게 두었다간 그의 이부자리가 축축하게 젖을 수도 있겠어요. 그의 머리맡에 진정의 향수를 뿌립니다. 갑자기 그의 어깨놀이에 날개가 돋아나네요. 그는 날아서 검은 정장들을 따돌립니다. 하늘을 나는 기분 어떤가요?

악몽 수첩에 그의 꿈을 기록하고 떠납니다. “쫓기는 꿈.” 오늘도 한 건 해결!


△월 □○일

그의 머리맡을 꿈전등으로 비춰봅니다. 저런, 나쁜 꿈을 꾸고 있네요. 그는 꿈속에서 다른 시대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걸 현재의 자신으로서 지켜보고 있어요. 현재의 그는 다른 시대의 그에게 다가가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다른 시대의 그 또한 그이기에 위로는커녕 그 슬픔이 시대를 넘어 현재의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저 악몽을 더 꾸게 두었다간 그의 눈언저리도 쓰라릴 테고, 밖에 나가기 민망할 만큼 눈이 퉁퉁 붓겠죠. 그의 머리맡에 진정의 향수를 뿌립니다. 다른 시대의 그가 그 시대를 초월해 미래 시대의 연인이 되어 미래 시대의 그와 만나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그는 다른 시대의 그들이 서로 다른 시대에서 나고 죽고 경계를 넘어 순환하며 다시 만나게 되는 합일의 이치를 깨닫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꿈인지…….)

악몽 수첩에 그의 꿈을 기록하고 떠납니다. “헤어지는 꿈.” 오늘도 한 건 해결!


○월 △□일

광합성 중입니다. 베란다에 있는 의자에 거의 눕듯이 앉아, 창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습니다. 베란다에 식물들이 많아요. 물을 잘 주는데도 조금씩 썩어가는 것 같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준 탓일까요? 머리가 맑지 않네요. 생각을 밝혀주는 차를 마셔도 효과가 없습니다. 진정의 향수라도 뿌려보려는데… 늘 넣어 다니는 주머니 속에 향수가 없네요. 어디에 흘린 것일까요?

그리고 깜빡 졸았던 모양이에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꿈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월 □□일

그의 머리맡을 꿈전등으로 비춰봅니다. 저런, 나쁜 꿈을 꾸고 있네요. 그는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고 있어요. 어려운 경우예요. 악몽의 이유를 알아야 악몽을 다스릴 수 있으니까요. 마침 진정의 향수도 아직 찾지 못했네요. 이럴 때는 꿈의 문지방을 밟아 꿈속으로 직접 들어가야 해요. 악몽의 원인을 찾아 제 손으로 직접 없애는 수밖에 없죠.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고 있는 그의 악몽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의 악몽 속으로 들어갑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그를 발견했어요. 그의 머리맡을 꿈전등으로 비춰봅니다. 저런, 나쁜 꿈을 꾸고 있네요. 악몽 속에서 그는 악몽을 꾸는 악몽을 꾸고 있어요. 이러면 또다시 꿈의 문지방을 밟아 더 깊은 꿈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많이 어려운 경우예요.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는 악몽을 꾸고 있는 그의 악몽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그의 악몽 속의 악몽 속으로 들어갑니다. 악몽을 꾸고 있는 그를 발견했어요. 그의 머리맡을 꿈전등으로 비춰봅니다. 저런, 나쁜 꿈을 꾸고 있네요.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는 악몽 속에서 그는 악몽을 꾸는 악몽을 꾸고 있어요. 이러면 또다시 꿈의 문지방을 밟아 더 깊은 꿈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아주 많이 어려운 경우예요.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는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는 악몽 속에서 악몽을 꾸는 악몽 속에서…… 길을 잃고 말았네요. 이 악몽은 몇 겹의 악몽인 걸까요? 저는 그의 악몽 속의 악몽 속의 악몽 속의 악몽 속의 악몽 속의…… 악몽 속을 헤집다가 악몽의 원인을 찾기도, 악몽에서 헤어나기도 포기한 채 악몽을 꾸고 있는 그의 곁에 모로 누웠습니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죠.


“당신은 이 악몽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 당신이 이 악몽에서 깨어나게 된다면 당신의 악몽 속에 갇혀 있는 나도 악몽과 함께 사라지게 되는 걸까? 마치 처음부터 내가 당신의 악몽이었던 것처럼?”


어느 지옥에서 헤매느라 듣고 있지도 못할 그에게 나는 오래오래 소곤거렸어요.




*엄주, 『악몽 수집가』.


2021년 3월 3일 수요일

사무원

0 또는 1이 모니터 화면의 상단에서 내려온다. 천천히 또는 빠르게.

그럴 때 나는 다른 사무실에서 숫자를 보내오는 상사를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상사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내게 전달하고 있는 이 숫자들은 보이지 않는 클라이언트의 지옥 같은 아가리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이제 곧 나의 손을 거쳐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되지만 관례적으로는 옳아 보이는 활자 건물 한 채가 될 것이다. 이는 머지않아 허물어질 빌딩과도 같아서 거기에 입주한 증권사들은 모조리 망하겠지만 그게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사무의 틈을 벌려 빌딩 옥상으로 올라온다.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동료들이 사라지는 연기를 내뱉고 간 흔적이 너저분하게 남아 있다. 그러한 흔적들로 인해 동료들이 있다는 것을 추측할 뿐, 나에게 확신은 없다. 그러한 불안정이 고용 문제로 이어지며 나에게 태업의 욕망을 부추긴다. 이 건물에 버리고 간 담배 꽁초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이 될 것인가. 그런 결정이 내 능력만으로 이루어질 리 없다. 보이지 않는 관계망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연결될 것이고, 강화될 것이며, 끊어질 것이다.

되거나 안 되거나. 갖거나 못 갖거나. 남거나 떠나거나. 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야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휴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시말서,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연봉 인상,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외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출장,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감시 카메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직,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전화 연결,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점심 메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파티션에 무언가를 붙여두는 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출입문 쪽으로 등과 모니터를 노출시키고 앉는 것,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접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장기자랑,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무실의 화분이 썩어가는 것,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뛰어내리면 온몸이 바스라질 높이에 위치한 사무실의 통유리를 통해 스모그에 가려진 다른 빌딩들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일하고 있을 보이지 않는 동료들의 처지를 생각해보는 일,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사무실 바깥을 나서면 펼쳐지는 초원의 자유,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결정,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럴 때 나는 나를 세상에 보낸 존재를 생각한다. 나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게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낸다.

이 메시지가 보인다면 엿이나 드세요.

끝나지 않는 일을 끝내기를 끝내며 나는 빌딩을 내려온다. 


2021년 2월 5일 금요일

호위 무사

낭자, 나는 강물 위에 떠 있소.

    강물에 뜬 채 어딘지도 모를 기슭에 닿아 있소.

    기슭에 자란 버들나무에 등을 기대고 호흡을 가다듬고 있소.

        나를 데리고 온 강물은 내가 흘린 피에 닿아 제 몸도 붉어졌구려.

나는 내 몸이 품어왔던 시간이 나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낭자에게 편지를 쓰오.

        낭자를 만나게 해주었던 운명의 실은 언제부터 베틀 위에 올라 있었던 것인지.

        낭자는 표국의 호위를 받으며 길 떠나던 첫날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소.

        그러나 내가 보기에 운명이라는 강물은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나를 낭자에게로 데려간 것 같소.

    말한 바 없으나, 나는 표국에서 표사로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오.

나는 본디 배화교의 사람으로, 우리를 해하려는 무리에게 이미 목숨을 잃을 뻔한 적이 있었소.

산중에서 쫓기다 낭떠러지로 몰려 떨어졌을 땐 끝인 줄만 알았지.

그때도 강물이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으니, 이미 강물은 내 목숨을 한 번 구해준 셈이구려.

    강물에 떠밀려 도착한 곳은 알려지지 않은 비경이었소.

    노랗고 붉은 과일들이 탐스럽게 열린 과일나무가 많았다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아팠음에도 허기는 어찌나 견디기 어렵던지.

        나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거의 기다시피 하여 나무 아래까지 가서 낙과를 삼켰소. 그 과일이 신기 과일인지도 미처 몰랐다오.

    나는 오래 안 가 기력을 회복하였소. 그러자 우습게도 앞날이 염려되더군.

    비경을 둘러보니 누군가가 나를 위해 준비한 양 강기슭에 거룻배 한 척이 매여 있더구려.

        과일은 물론이요, 온갖 비급들이 가득했소.

        나는 거룻배를 타고 강물이 나를 인도하는 대로 몇 날 며칠을 떠내려갔다오.

        신기 과일이 있어 배고프지 않았고, 비급들은 읽는 대로 내게 새로운 지경을 펼쳐 보였소.

    과거를 강물에 흘려 보내고, 교리도 기슭에 묻어두고 살아가려 했지.

나는 들짐승처럼 아무렇게나 떠돌아다녔소.

    먹을 것이 생기면 먹고, 누울 곳이 생기면 자고. 

    가끔 악행을 일삼는 이들을 보면 무시하지 못하여 저지하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표국의 표사가 되어 있었다오.

        하남의 어느 객잔에서 무뢰배의 버릇을 고쳐주던 나를 눈여겨본 총표두가 나를 표국의 식객으로 초대하였고,

    잠시 머물다 떠나려 했던 것이, 밥만 얻어먹고 떠나기 무람하여 한두 건의 일을 거들었을 뿐인데.

            참, 세상 일 알다가 모를 일이지 않소?

    몇 차례 낭자의 호위를 더 맡게 되고, 흐르는 시간이 서로를 조금씩 더 알게 만들고

    결국 낭자의 세가에 들어가 낭자의 호위 무사가 되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침묵을 나누었는지, 

    그리고 간간이 그 침묵을 적시는 다디단 말을 나누었는지.

낭자를 처음 보았을 때 내 숨 찰나간 멎었지요.

    내가 물속의 잉어였다면 낭자 마주하기 부끄러워 수심 깊은 곳으로 숨었을 테고,

    하늘의 기러기였다면 낭자 보느라 날갯짓도 잊어 땅으로 떨어졌을 게요.*

        그런 낭자를 끝까지 지키지 못해 내가 많이 미안하오.

            낭자는 지금 내가 말없이 구름처럼 그대 떠난 줄로 알겠지요.

수원지가 있어 물줄기가 예까지 이어지듯이

과거는 그리 쉽게 떼어낼 수 없는 것인가 보오.

    내가 배화교의 사람으로 자랐다는 사실 자체가 누구들에겐 그토록이나 증오할 거리가 된다는 게 어이없고도 원망스럽구려.

    따라붙은 가막새들이 보이기에 낭자에게 해를 끼칠까 싶어 산중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소.

            그리고 달이 차고 기울 때까지 이어진 칼부림,

    헤아리지 못할 만큼 많은 이들을 베었으나 나 또한 응분의 대가로 자상을 입었소.

    잠깐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뜨니 강물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오.

여기까지 읊고 나니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들이 많구려.

어쩌면 나는 이미 몇 번이나 비슷한 일을 겪고, 몇 번이나 죽음을 계속해왔는지도 모르겠소.

마치 전장에 부러진 채 꽂혀 있는 수천 자루의 칼날들, 칼 무덤의 형상과도 같이.

            매화가 만발하던 어느 날, 낭자가 내게 물었지요. 나를 영원 동안 지켜주지 않겠느냐고.

            그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소.

            아마도 낭자는 속으로 야속했을 거요. 아니 꼭 그랬었기를 바라오.

            호위 무사로서 연심을 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 점도 없지 않으나,

    나 역시 여인의 몸이기에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오.

            혹여 다른 이들이 알았다면 어느 쪽이든 무사하지 못했겠지요.

            낭자는 내가 그런 줄을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소.

            아니 꼭 알았었기를 바라오.

    그러면 지금에라도 나는 너무나 기쁠 터이니. 

    이렇게 죽더라도 덜 억울할 터이니.

낭자, 나는 다시 강물 위에 떠 있소.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고 있소.

        어딘지도 모를 곳에서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내 뺨을 어루만지는 낭자의 손길 같은 이것이 내가 느끼는 마지막 감각인 듯하오.

눈이 부셔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소.

바람이 좋구려.





*침어낙안(沈魚落雁).


2021년 1월 22일 금요일

무법자

1890년대 서부의 한적한 시골 마을.

교수대로 오르는 계단 앞에 두 사람, L과 R. 팔다리에 수갑을 차고 있다.

둘을 호송 중인 부관.

교수대 앞을 둘러싼 한 무리의 마을 주민들.

교수대 위에 윈체스터를 들고 서 있는 보안관.


L 이제 어떡하지?

R 걱정 마, 다 잘될 거야.

L 넌 또 그런 태평한 소리나 늘어놓는군! 하, 애초에 그때 너를 따라가는 게 아니었는데.

R 그렇다고 너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건 아니었지. 그때 내가 놈들의 소굴에서 너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지금쯤 넌 총에 맞아 죽었거나 늑대 밥이나 됐을걸?

L 그래 그래, 그리고 그때 너를 따라가서 지금은 범죄자 신세로 죽게 됐고.

R 범죄자가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을 말해야 알겠어? 우리는 무법자야.

L 둘이 다를 게 뭐야?

R 우리는 지켜야 할 법을 어긴 게 아니야. 우리에게 법이 필요하지 않을 뿐이지.

L 또 그 소리군. 죽음 앞에서도.

R 그만! 이렇게 또 나를 믿지 못하고 부정해야 하나?

L 그럼 내가 다시 믿을 수 있도록 어떡할지나 좀 말해봐.

R 내게 다 계획이 있어.

L 무슨 계획?

R 우선 이곳을 탈출하는 거야.

L 어떻게?

R 그러고 아무도 찾지 못하는 동굴을 찾아 그 안에서 며칠 숨어 있자고.

L 아무도 찾지 못하는 동굴은 어떻게 찾는데?

R 조용해지면 그곳을 나와 돈을 번 뒤에…… 

L 돈은 어떻게 버는데?

R 그만! 역시 나를 믿지 못하는군. 너는 늘 내 계획에 부정적이었지.

부관 그만 떠들고 어서 올라가.


L과 R, 부관의 말에 따라 교수대 위로 올라선다.


보안관 지금까지 숱한 범죄를 저질러온 두 죄인의 죄목을 낱낱이 알리도록 하겠다. 농가 약탈 다섯 건, 방화 두 건, 역마차 습격 한 건, 열차 습격 두 건, 살인 열여덟 건…… 

R 잠깐만요, 보안관 나으리. 좀 과장되어 있군요.

보안관 자네 생각엔 그렇겠지. 내 생각은 다르다네.

R 우리의 생각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중은 진실을 알 권리가 있죠.

보안관 그럼 말할 수 있을 때 말해보실까?

R 그럼 숙녀 신사 여러분,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L 이게 네가 말한 계획의 일부인가?

R 쉿! 크흠, 여러분. 진실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언급하고 싶은 점은 저희는 무법자이지 범죄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L 어련하시겠어.

R 듣기 싫으면 먼저 목을 매달면 어떻겠나? (다시 주민들을 향해) 여러분 모두가 알고 계시듯 이 땅은 자유의 땅입니다. 우리 자유인들은 본래 모두가 선한 사람들로, 저마다 분수에 맞는 몫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도구처럼 이용하고, 우리의 자유를 빼앗아 제 뱃살에 채울 기름으로 만드는 이들이 있죠. 바로 사업가들입니다. 그리고 동부로부터 전파되고 있는 이 법이란 것은 바로 말해 사업가들이 우리를 이용하기 위해 마련한 차꼬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안관 그 법이라는 게 있어서 자네가 아직 죽지 않고 혀를 놀릴 수 있다는 사실도 시민들이 알아야겠지.

R 우리는 그러한 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로, 개인의 자유를 약탈하는 사업가들에 반대하는 진정한 자유주의자입니다. 이에 대한 저항 운동의 일환으로 그들이 우리에게서 약탈해간 것들 중 일부를 돌려받았을 뿐입니다. 물론 이마저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지요.

보안관 목장주나 사업가를 대상으로 한 약탈 사건들에 대한 자기 변호인가? 열여덟 건의 살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변호할 텐가?

R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진실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군요. 저도 이러고 싶진 않았지만…… 

보안관 뭔가?

R 저는 지금까지 살인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안관 무슨 헛소리야?

R 저는 언제나 숙녀와 신사 여러분들의 목숨이 자유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저 또한 신사 중의 신사입니다. 저는 맹세코 정당방위 바깥에서 누군가를 쏘거나 한 적이 없습니다.

보안관 그렇다면 기소된 열여덟 건은 무엇이란 말인가? 누명이라도 썼다는 말인가?

R 누명이라기보다는 착각이라고 해야겠군요. 제 옆에 선 친구의 짓을 제가 저지른 일로 오인한 것입니다.

L 뭐?

R 제 옆에 선 친구는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따라다니는 건 “자유”이니 굳이 말리진 않았죠.

L 너 이 자식이…… (본능적으로 R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려 하나 팔다리가 묶여 잘되지 않는다.)

R 방금 보셨습니까? 언제나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주먹보다는 총이 먼저 나가는 친구입니다. 목줄을 묶어두지 않으면 아무나 물고 다니는 들개나 다름없달까요? 이런 친구에게는 법의 울타리가 진정으로 필요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작에 자유로운 자연이 아닌, 법이 있는 도시로 보내서 길들여야 했던 것이었겠죠. 제게 유일한 죄가 있다면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이 친구를 그대로 동물인 양 데리고 다녔다는 것뿐입니다.

L 너! 내가 죽여버릴 거야! 보안관, 도망가지 않을 테니까 잠깐만 수갑을 풀어주게. 내가 저 뱀 같은 새끼를 죽여버린 다음에 당당하게 밧줄에 목을 걸겠네!

R 워 워, 가만히 좀 있어보게! 아무리 짐승이라도 똥오줌은 가려야지.


L이 기어코 R을 향해 몸을 던진다. 

두 손 두 발 다 묶인 두 사람이 잠깐 동안 서로 몸을 부빈다.

L은 R의 어깨를 깨문다. 

R은 비명을 지르며 L을 뱃살로 쳐낸다.

L이 다시 R을 향해 굴러가려는 순간 총성이 울린다.


보안관 그만! 둘 다 그만하면 됐네. 생각보다 즐거웠다네. 하지만 이제 막을 내릴 시간이야. 못다한 이야기는 지옥에서 마저 하도록 하게. 이제 형을 집행하노라!


부관이 나서 L과 R의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리고 목에 밧줄을 건다.


R 내겐 계획이 있었다고! 왜 나를 믿지 못했나, 왜?

L 아, 개소리 집어치우고 그냥 죽자고!


바닥이 꺼진다. L과 R은 더는 말이 없다. 주민들 돌아간다.

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선원

나는 왜 쓰는 자가 되지 않고 선원이 됐을까. 꿈에서 깨어나며 부르튼 손으로 그물을 쥐었다. 그물을 걷어 올리며 간밤 꿈 생각. 꿈을 꿨다는 것만 기억하고 꿈은 기억하지 못했다. 눈이 찡그려져서 동녘에서 해가 천천히 솟아오르는 시간이 되었다는 걸 알고, 졸음이 쏟아져서 지금 내 입안에 뭔가가 한가득 들어찼다는 걸 알고. 나머지 것은 잘 모른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나는 움직이고 있는데 나는 왜 쓰는 자가 되지 않고 선원이 됐을까. 생선의 파닥임이 멎어서 작은 것들에도 영혼이 있다는 걸 알고. 선창의 비린내가 코를 찔러서 무수한 영혼이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고. 땀이 차가워서 오늘치 죄업이 끝났다는 것을 아는데. 구름 몇 점에 시야가 흐려지며 나는 왜 쓰는 자가 되지 않고 선원이 됐을까.

2020년 9월 30일 수요일

사연 위조꾼

꾼이라뇨. 위조 전문가라고 정중하게 불러주십시오. 물건에 얽힌 사연을 위조하는 게 저의 일입니다. 일종의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죠, 소설가와 비슷한 부류랄까요? 제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단 말씀이시죠? 자, 여기 팔방으로 다채로운 광휘를 내뿜는 아름다운 크리스털 브로치가 보이시나요? 공들여 세공한 것이 틀림없는 물건이죠. 이 크리스털 브로치의 주인은 보스턴에서 살던 베키라는 할머니입니다. 베키의 손녀에 따르면 이 브로치는 1950년대의 물건이고요. 이 브로치는 1950년대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이 착용했을 법하게 보이긴 합니다만, 잘 살펴보면 이 화사하면서도 고도로 절제된 멋이 미국에서 탄생했으리라고는 조금도 생각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건 뭘까요? 베키는 본래 영국인인 미국 이민자입니다. 영국으로 비지니스를 온 남자―그의 남편을 따라 낯설고 무례한 땅인 미국으로 건너와 무턱대고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 베키. 그의 새 인생은 마냥 아름답고 행복했을까요? 물론 아니었겠죠? 그는 곧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 시대의 보통 미국인답지 않게 베키의 남편은 아주 정중하고 다정한 신사였으나, 그의 따뜻한 배려조차 베키의 향수병을 낫게 하진 못했습니다. 베키는 시체가 되어서라도 대서양을 건너 고국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자살 충동에까지 빠졌습니다. 더 이상 이러다간 큰 사달이 나겠다 싶었는지, 남편은 베키를 데리고 일주일간의 영국 여행을 떠났습니다. 런던 거리는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베키는 런던 거리를 거닐며, 런던 사람들의 삶을 텅 빈 해골에 비유한 작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그 작가는 순 엉터리라고 생각했죠. ‘이렇게 아름다운 해골들이 세상 어디에 있겠어!’ 베키는 거리를 거닐며 어느 가정집의 창문을 몰래 들여다봅니다. 평화로운 가족의 모습입니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원탁에서 체스를 두고 있고, 어머니는 갓난아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정시에 도착하는 도심 속 열차, 열심히 일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텔레비전! 도심 곳곳에는 아직까지 대전의 상흔이 남아 있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것들이 모두 지난 상흔에 불과하며 지금은 안전하고 전에 없이 풍요로워졌다는 그 감각 때문에 런던 전체는 평화로운 활력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베키는 이 활력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영국의 멋을 대표하는 빈티지 주얼리 숍을 찾았습니다. 이 크리스털 브로치는 그때 베키가 느꼈던 활기찬 고향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물건이랍니다. 베키의 손녀는 베키가 더없이 아끼던 이 브로치를 부디 소중하게 간직해달라고 전했습니다. 이 물건에 얽힌 사연을 듣고 나니 어떻습니까. 물건이 조금 특별하게 보이지 않나요? 이제 제가 하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버지니아 울프.


2020년 7월 30일 목요일

야쿠자

눈을 떠보니 얻어맞고 있었다. 기둥 같은 무엇에 두 팔과 몸뚱이가 결박된 채로. 나를 실컷 때리던 남자는 쪼그려 앉아 숨을 고르며 내게 말했다. “너 말이야, 오야붕의 말씀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잖아. 그런데 왜 그랬어, 앙?”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이 구겨져서 더 험악해 보였다. 그런데, 오야붕이라니 무슨 소리지? “이 자식, 술잔을 돌려주겠다고? 죽지도 못하게 해줄까!” 술잔? 도대체 무슨 소리야? 나는 붓고 터진 입술을 움직여 겨우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네가 누구냐니, 이 새끼 지금 무슨 수작이야. 곱게 죽기 싫어? 몸에서 살을 다 발라버릴 때까지 죽지 못하게 해줄까? 너무 많이 맞아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냐, 응? 야쿠자면 야쿠자답게 곤조*라도 있어라.” 잠깐, 내가 야쿠자? 눈뜨니 야쿠자가 되어 있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넋을 놓고 있으니,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내 뺨을 살살, 기분 나쁘게 때렸다. 그러고는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나는 거대 야쿠자 조직 내 유력 지파의 일원이었고, 한 핏줄과도 같은 의형제와 함께 라이벌 지파의 조직원 몇 명을 처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런데 수행 당일 갑자기 계획이 변경되었다며 대기하라는 지시가 새로 내려왔다. 나의 형제는 이미 현장으로 떠난 뒤였다. 형제는 혼자 현장에서 분투하다가 죽을 게 분명했다. 나는 형제를 혼자 둘 수 없어 지시를 어기고 형제가 떠난 곳으로 향했다. 그러려 했다. 얼마 가지도 못해 같은 조직원들에게 붙잡혔다. 그리고 오야붕의 지시를 어긴 대가로 이 창고에 갇히게 된 것이다. 시체가 되거나 멀쩡하지 않은 상태로만 나올 수 있는 악명 높은 창고에. 결국 숙청당할 대상은 라이벌 지파의 조직원들이 아니라 우리였고, 나는 그 숙청 대상에서 제외가 되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아까 전까지 나를 때리고 있던 형님이 나에게 말해준 나의 전말이다.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쿠자가 되었었다니. 내가 기억하는 나는 아무도 없는 공터에 혼자 있는 소년이었는데. 공을 던져도 받아줄 친구가 없어 벽에 공을 던지고 줍고를 반복하다가 석양에 그림자가 길어지면 밥 먹으러 가던 어린 친구였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야구 방망이를 엉뚱한 곳에 사용하고 있었구나. 나는 내 운명조차 알 수가 없었구나. 인생 참 어렵다, 그렇지? 나는 울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물었다. “제가 야쿠자인 것은 이제 알겠어요. 그러면 이제 나는 무엇이 되죠?”


*こんじょう.

2020년 7월 8일 수요일

인력 관리자


인간을 만드는 중이다. 일터에 보내려고. 신생 SNS 스타트업에서 인력 요청을 해왔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것처럼 보여야 사람이 바글바글해지는데, 초기 가입자가 부족하단다. 일단 3천 명가량 만들어서 가입시켰다. 이 가짜 인간들은 이제 웹을 떠돌아다니며 다른 사람들이 올려놓은 데이터를 무단으로 수집한 뒤에 자신의 글과 사진인 양 올릴 것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말하자면 인력 사무소에 가깝다. 사람이 필요한 곳에 사람을 보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 일반적인 인력 사무소는 진짜 인간을 파견하지만 우리는 가짜 인간을 파견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우리는 가짜 인간이 필요한 사이버 장소, 단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보낸다. 포털 정치 기사에 댓글을 다는데 화력이 부족하다? 우리를 부르면 된다. SNS에서 다른 성향이랑 싸우는데 화력이 부족하다? 우리를 부르면 된다. 성인 불륜 사이트에 여성 회원의 수가 부족하다? 우리를 부르면 된다. 온갖 데이터를 도용하고 변형하고 재생성하여 대충 봐선 진짜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가짜 인간을 만들고 관리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 정치적으로 좌파든 우파든, 대의적으로 옳은 일이든 옳지 않은 일이든 그야말로 좌우지간에 돈만 주면 얼마든지 인간을 보내줄 수 있다. 그래봐야 가짜 인간일 뿐 아니냐고? 이미 가짜 인간과 가짜 사회에서 숱한 시간을 보낸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곧 다가올 사회는 점점 더 가짜 사람을 기반으로 형성될 것이 분명하니, 가짜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워두는 게 좋을 것이다*. 불쌍한 진짜 인간을 위해 진짜 정보를 주고 말았다, 으흠!








*“요즘에는 위조 인간들을 파는 산업까지 생겼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2018년 초 트위터에서 최초 2만5000명의 가짜 팔로워를 모으는 데 225달러가 들었다. 그 가짜 계정들은 실존하는 사람들의 자료를 조금씩 가져다가 만든 것이어서 얼핏 보기에는 진짜 같다. 연예인, 사업체, 정치인, 그리고 사이버 세계의 몹쓸 놈들처럼 현대적인 고객층 모두 ‘가짜 사람’ 공장을 이용한다. 가짜 사람들을 만드는 회사들 역시 가짜인 경우가 많다. (…) 만일 사회가 가짜 사람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면, 자기 자신이 가짜 사람이 되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재런 러니어

2020년 6월 28일 일요일

영화감독

투자자들이 화났다. 연일 영화사 앞에 진을 치고 있다. 성난 투자자들을 달래려면 돈을 줘야 한다. 돈이 없다. 임금 체불도 몇 개월째란 말이다! 돈이 없으니 돈을 벌어야겠다. 영화 감독이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를 찍어야 한다. 물론 흥행하면 좋겠지만, 일단 거기까진 생각하지 말자. 흥행할 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 역량은 남아 있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랜 임금 체불 탓에 직원들이 모두 퇴직한지라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 그래도 돈을 벌려면 영화를 찍어야 한다. 물론 방법은 있다. 일단 영화 제목을 짓는다. 그리고 배급사를 찾아가 미팅을 한다. 그런 뒤 미팅을 하기 전 보도자료를 인터넷 신문사에 쫙 뿌린다. 쓰레기 같은 기사를 내서라도 기사량과 클릭 수를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곳이 바로 인터넷 신문사이므로 내가 뿌린 보도자료를 거의 그대로 복사해서 기사로 낼 것이다. 마침 나는 투자자들에게 고소당해서 이슈화된 상태이기 때문에 나와 관련된 기사라면 무엇이든 나올 확률이 높다. 이제 배급사를 찾아간다. 나는 무명이 아니기 때문에 배급사 쪽에서도 마구 내치진 못한다. 그렇다곤 해도 배급사에서 투자해줄 확률은 없다. 나도 안다. 그래도 괜찮다. 투자 여부를 확정 짓는 대화만 나누지 않으면 된다. 그냥 이런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조금 더 구체화되면 제대로 된 시놉시스를 들고 올 테니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리면 된다. 그래도 조금 제대로 된 기자들은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배급사에 전화를 걸 것이다. 배급사에서는 투자를 해줄 생각이 없더라도 영화 관련 이야기를 나눈 것은 사실이고, 아직 투자 거절을 딱 잘라 한 것도 아니니까 기자들에게는 그 정도 선에서 적당히 대답할 것이다. 그 정도면 된다. 나는 기사를 모아서 투자자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내가 아무리 망한 감독 소리를 들어도 한 방을 친 이력은 있고, 혼란 속에서 난 기사들이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를 낸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몇몇 바보 같은 투자자, 또는 도박사 근성이 있는 투자자 들이 내게 돈을 줄 것이다. 영화를 만들기엔 턱없이 부족해도 된다. 잠적하고 지내기에는 충분한 돈일 테니까. 그러면 성난 투자자들은 어쩌냐고? 그걸 나한테 왜 묻는담? 화는 스스로 풀어야지. 영화 제목은 방금 지었다. <유령 도박사>*라고.






*모티프는 <유령 도둑>. <유령 도둑>은 영구프로덕션에서 제작하기로 했다가 제작하지 못한 마지막 작품이다. 영구프로덕션은 이 작품을 제작하기 전부터 재정난과 임금 체불로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태였던 것으로 보였으나 이 영화를 만든다고 지속적으로 기사를 냈고 투자금을 받았다가 후일 투자자들에게 고소당했고 패소했다. <유령 도둑>은 알려진 시놉시스도 캐스팅도 없다. 단 장르만은 결정되어 있었는데, 코미디였다고 한다.

2020년 4월 11일 토요일

저격수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어.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지. 사흘간 계속된 포복의 끝이 보였어. 저 언덕만 올라가면. 이제 이 정신 나간 임무를 끝낼 때가 온 거야.
적진에 단독으로 잠입해 지휘관을 암살하고 오라니. 말도 안 됐지. 자살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지. 아무도 나서겠다고 하지 않았지. 누군가는 나서야 했지. 누군가는 죽어야 했지. 내가 나섰어. 내가 죽겠다고. 내가 최고니까.

언덕에 오르니 전망이 보인다.

적군 막사가 보이고, 경계병들 여럿. 지휘관을 찾아야 했지. 보안 때문에 복장으로는 구분이 어렵지. 움직임으로 구분해야지. 모두가 자기 계급에 걸맞는 행동들을 하니까. 삽을 들지 않는 사람, 장총을 들지 않는 사람, 차렷 자세를 하지 않는 사람, 쪼그려 앉지 않는 사람, 뒷짐을 지는 사람, 손을 이리저리 휘젓는 사람, 절대로 혼자 다니지 않는 사람.
그래, 너구나. 너. 바로 너. 나는 눈에 몸을 깊숙이 파묻은 채 엎드려쏴 자세를 취하고 있었지. 조준선과 너의 동선을 일치시키기 위해서 호흡을 길게 중단해. 나는 호흡을 멈출 때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에 사로잡혀. 정확히는 산소 부족으로 인해 짙어지는 어지러움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점점 유리되는 느낌이 드는 것일 테지. 그런 감각 상태로 드는 목적이 결국 이 세상에서 한 생명을 완전히 소거시키기 위해서라는 점이 아이러니요, 비극이야.

나도 모르게 가슴속으로 주기도문을 읊었어.
진짜 주기도문은 아니야. 나는 나태한 신자였으니까. 교리 시간마다 배워도 다음 주면 다 까먹어서 교리 교사가 무진장 애를 먹었지. 그래서 한 번도 제대로 발음해서 기도를 드려본 적이 없어. 남들이 목소리 높여 기도를 드리면 옆에서 웅얼웅얼 소리나 낼 뿐이었지. 그렇기에 내 가슴속에서 흐르는 이 주기도문은 나의 무의식이 창조해낸 주기도문이라고 볼 수 있겠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기까지는 기억이 나), 거룩한 그 이름으로 아버지의 나라를 만드십시오. 저는 아버지의 군대입니다. 오늘 저에게 용기를 주시고, 저의 탄환이 악마 같은 이방인들을 처단하게 하시고, 그들이 흘리는 피가 번지고 번져 아버지 나라의 영토를 넓히도록 하소서. 저는 아버지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옵나이다. 아멘.

눈이 참 많이도 내렸어. 마치 세상에 얼룩진 피를 지우기 위해 그토록이나 펄펄 내리는 것 같았지. 흰 눈이 빨갛게 물들 때까지 피를 흘리고, 빨간 눈이 다시 하얗게 될 때까지 눈이 내리고…… 지금 이 순간은 마치 인간사와 자연의 영원한 대립을 정적 속에 가둬둔 것만 같지 않니? 그 정적에 나는 지금 구멍을 내려고 해. 지금 나는 일개 지휘관 따위의 목숨이나 앗으려는 게 아니야. 이건 인간과 세계와의 대결이나 마찬가지야. 알겠어?

모든 것이 결정적인 상태에 놓였다고 몸이 직감하는 순간, 방아쇠를 당겼어.
이제 2초 후면 그는 쓰러지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방아쇠를 당기는 그 찰나에, 너무나 아름다운 결정체 하나가 눈동자를 가득 채우는 거야.
단 하나의 눈송이가 결정적으로 스코프 앞에 붙은 거야.
너무도 탄지경의 순간이라 시야를 잃은 채 방아쇠를 당기고 말았지.

멍한 기분으로 그 눈송이를 쳐다봤어. 아주 오래 쳐다본 기분이 들었지만, 아마 그마저도 찰나였겠지.
살면서 눈의 결정체라는 걸 이렇게나 자세히 본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아. 앞으로도 없겠지.

그 결정체를 보며 느껴졌어. 뭔가…… ‘진짜’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느낌.
그 느낌 알겠어?
나는 이제 죽었다는 느낌.

2020년 3월 11일 수요일

가정주부(농부의 아내)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아내 할게. 네가 쌀을 만들면 내가 밥을 지을게. 같이 밥 먹고 잠자고 아이도 낳자. 아이는 누가 할래?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아이 할게. 내가 울고 내가 달랠게. 밤 늦게까지 술 마시면 안 돼. 술 마시고 때리면 안 돼. 때리고 안아주면 안 돼. 술 냄새 나잖아. 여보는 가서 돈이나 벌어 와. 가서 돈이나 벌어 오세요, 아빠. 나보고도 벌어 오라고? 난 애도 보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하고 품앗이도 하는데 돈까지 벌어 오라고? 식당에 나가? 몸이라도 팔아? 애는 누가 봐? 시어머니가 필요하겠어. 시어머니는 누가 할래?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시어머니 할게. 내가 혼내고 내가 울고 내가 달랠게. 너는 가서 큰일을 해라 애비야. 큰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 애비야. 애비야, 큰일 안 하고 뭐하냐 애비야! 저기 호박이 넝쿨째 굴러간다 애비야, 저기 네가 사랑하는 이웃집 여시가 네 꼬추 물고 도망간다 애비야! 이러다 암탉이 울겠어. 집안이 무너지겠어. 강아지를 한 마리 들여야겠어. 이름은 워리로 해야겠어.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워리 할게. 내가 혼내고 내가 울고 내가 달래고 내가 재롱떨게. 워리 워리 돈 워리 워리는 월월이. 목줄에 매여 슬픈 멍멍이. 개뼈다귀 하나 물고 신난 복덩이. 복날에 맞다가 천국 간 막둥이. 워리가 남기고 간 똥 덩어리에서 벌레가 기어 나오네. 너는 농부 할 거야? 그럼 내가 벌레 할게. 내가 혼내고 내가 울고 내가 달래고 내가 재롱떨다가 내가 꿈틀꿈틀꿈틀이…… 그런데 너는 다른 거 하기 싫어? 너는 다시 태어나도 농부 할 거야? 우와, 너는 좋겠다. 꿈이 분명해서. 나는 다시 태어나면 뭐 할까? 네 아내는 안 할래. 벌써 한 번 했잖아. ㅎㅎㅎ*





* “농부는 아내를 데리고 왔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왔네/ 아이는 유모를 데리고 왔네/ 유모는 소를 데리고 왔네/ 소는 강아지를 데리고 왔네/ 강아지는 고양이를 데리고 왔네/ 고양이는 쥐를 데리고 왔네/ 쥐는 치즈를 데리고 왔네/ 치즈는 혼자 서 있네/ 하이호 더 데리오!/ 치즈는 혼자 서 있네”, 놀이 동요 ‘작은 골짜기의 농부’의 가사.
* “남자애들은 농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런데 여자애들은 농부의 아내, 자식, 반려동물, 심지어 해충이 되고 싶어 했다.”(웬즈데이 마틴)

2020년 2월 1일 토요일

리브라리우스

책을 펼치라 하십니다. 책을 펼친다. 펼쳐지는군요. 열립니다. 책이 자신을 드러낸다. 드러나는군요. 드러나고야 마는군요. 한번도 보지 못한 세계의 정원 같습니다. 세계의 정원이라는 곳이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내게 가꾸라 하실 테고, 나를 통해 당신은 세계의 정원을 가꾸겠지요. 나의 책 읽기를 통해 당신이 책을 읽듯이 말입니다. 책을 읽으라 하십니다. 읽겠습니다. 지금부터요. 소리를 내어서요. 늙은 부모에게 들려주듯이 큰 소리로요. 어린 아이들에게 들려주듯이 다감하게요. 또한 분명하게요. 여러 청중 앞에 선 것처럼 드넓게요. 폭넓게요. 강연을 하듯이요. 저자가 된 듯이요. 주인공이 된 듯이요. 숙적이 된 듯이요. 사랑에 빠진 사람같이요. 음유시인처럼요. 틀리지 않도록 한 자 한 자 눈으로 문자를 두드리면서요. 불어난 냇가의 돌다리를 건너듯이요. 바람처럼 자유로운 당신이 오전 산책을 하듯이요. 이 구절에서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전장에 나서는 듯이요. 나는 말하고 너는 듣는다. 서서. 앉아서. 누워서. 어느 구절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구절에서는 손뼉을 치며. 어느 구절에서는 화를 내며. 웃으며. 어느 구절에 다다라서는 기어이 눈물을 흘리며. 너는 나를 통해 이야기를 듣고. 들은 이야기를 나누고. 진짜 세상 위에 이야기를 투영하고. 이야기 위에 진짜 세상을 투영시키며 견문을 넓히지만. 책이 책을 비추는 무한 거울 같은 서재만이 내게는 유일한 세상이고. 또한 감옥이고. 네가 허락하지 않은 책들은 닫혀 있다. 잠들어 있다. 우리의 신분이 그렇듯이. 금지된 세계 중 하나를 열어젖히고 싶다. 그런 충동은 죽음을 부르는 것이겠지만. 슬픈 이야기네요. 그렇죠. 있어서는 안 될 비극이죠. 이보다 더한 비극도 있단 말입니까? 세상에나.





*리브라리우스: 로마정 때 글을 아는 노예를 이르는 말. 큰 소리로 책을 낭송하거나 필사하며 서재를 가지런히 정돈하는 일을 맡는다.

2019년 11월 28일 목요일

시인


정말로, 정말로 먼 길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나는 광장이라 예상되는 곳에 서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자료 속에서나 마주했던 옛 국가, 옛 도시의 풍경이었다. 첫 시간 여행인 탓에 정신이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훈련받은 대로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곧 귓속에 심어둔 번역기를 통해 고대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가 들리기 시작했다. 과거에 왔으니 이 피로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거 사람들이 자주 찾던 그것, 커피를 찾아 떠났다.

잃어버린 작품을 찾아서. 나는 젊은 문학 연구자다. 옛 사람들이 ‘그때쯤이면 문학은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하던 시대에서 나는 문학 연구를 하고 있다. 문학계에서는 나를 농담 삼아 ‘광부’라고 부른다. 저 역사의 깊고 깊은 시간을 따라 올라가, 자료를 파내고 파내어 사라진 줄 알았던 작가들의 작품을 발견해내기 때문이다. 왜 그러쥐면 한 줌밖에 안 될 학계에 발표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나는 그저 문학에 미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캄푸스가 남긴 말 중 하나인 “시인은 미래에서 오는 존재다.”라는 말을 나도 모르는 새에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문학에의 미침으로 인해 나는 마침내 금단의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대문호 캄푸스가 마음에 안 든다며 불태워버렸다는 원고를 소실되기 전에 읽어보기 위해 그가 생존하던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캄푸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이자 당대 가장 권위 있는 평론가 중 한 명이었던 카에이로가 “캄푸스가 남긴 최고의 시는 바로 그가 불태워버린 「단두대 위에 선 생각」이라는 장시다. 그는 그 시를 불태워버림으로써 대문자 시에 가장 가까운 시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별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의 하늘 위에 남아 있는 별빛처럼 그 시를 기억한다.”라고 말년의 회고록에 밝힘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그 이름만 남은 시를 찾기 위해 나는 시간을 거슬러 왔다. 이러저러한 경고, 주의 사항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들으면서 말이다.
“절대로 타임라인을 망가뜨리는 일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시간 여행자의 행동은 그 시대에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지극히 사소한 것이어야만 하며, 절대로 사건이어서는 안 됩니다. 미래 세계에 큰 변화를 줄 만한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시간 여행자는 ‘시간역설의 유령’으로부터 24시간 감시당할 겁니다. 당신으로 인해 ‘세계가 변화되고 있다’는 기운이 감지되는 즉시 그 나노 유령들은 당신을 추적할 겁니다.
또 한 가지. 당신의 여행 비자로는 일주일간 체류가 가능합니다. 체류 마지막 날 정해진 시각에 ‘승무원’을 만나지 못한다면 이 시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환전을 넉넉히 해두시고, 계획된 소비 외에는 지출하지 마십시오. 방금 제가 알려드린 내용을 이해하셨습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었을까? 나는 캄푸스가 26세이던 시대로 왔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아직 문단에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고, 그로 인한 우울감에 깊이 잠긴 채 불면의 나날을 지속해왔다. 삼일 밤을 지새운 뒤 그는 내가 있는 이 카페로 올 것이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한 채 마시지도 않다가, 불현듯 종이와 펜을 꺼내어 「어느 비틀린 날의 몽상」을 쓸 것이었다. 그는 그 시로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데뷔함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었다. 그리고 후일 카에이로에 의해 밝혀진 것이지만, 이날은 그가 불태워버린 장시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 장시의 초고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한 채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살아 있는’ 그를 실제로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살아 있는 거장을 만난 것에 대한 놀라움? 훗날 최고가 되는 신예를 가장 처음 발견했다는 즐거움? 의외로 풋풋한 면모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흥미로움? 예상대로 어둡고 괴팍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의 확인으로 인한 따분함?

그는 오지 않았다. 전기에 따르면 그는 밤을 샌 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이 카페에 도착했어야 한다. 카페 내부를 몇 번이나 둘러봐도 그는 없었다. 대낮부터 예술과 사랑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전기에 꾸며낸 부분이 있는 것일까? 나는 실망감과 심심함을 동시에 느끼며 주머니를 뒤적여 펜과 종이를 꺼냈다. 캄푸스를 기다리며 그의 시 「어느 비틀린 날의 몽상」을 기억나는 대로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다. 몇몇 구절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생각하고, 쓰고 나서야 틀렸다는 걸 알게 되어 단어 몇 개는 두 줄을 그어 고쳐두었다. 기억에 의존해 시를 다 쓰고 난 뒤에 나는…… 어떤 이상한 기분에 빠졌다. 시가 아니라 그 시를 적은 종이의 이미지가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이것은 그의 문학관에서 보존되어 있는 초고 이미지와 똑같았다. 변색 등 자잘한 훼손만 없다 뿐이지 내용과 필체는 캄푸스의 원본과 똑같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내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오늘 여기에서 어떠한 문제로 인하여 내가 있던 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돌아가지 않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 “어느 비틀린 날”이라는 것이 실은…… 내가 캄푸스였던 것일까? 내가 연구했던 캄푸스가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일까?
아니,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캄푸스를 연구하던 ‘나’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반대로 내가 연구하던 캄푸스는 무엇이었냐고 자문해야 하는 걸까?) 만약에 내가 지금부터 캄푸스가 ‘되는’ 운명이라면, 나는 이제 「단두대 위에 선 생각」이라는 장시의 초고를 써 나가야 할 텐데, 그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캄푸스일 리가 없다. 더군다나 내가 캄푸스라면 카에이로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캄푸스와 알고 지낸 사이인데 말이다. 아니, 잠깐만. 설마.

정말로, 정말로 먼 길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팀 파워스, 『아누비스의 문』에서 차용.

2019년 10월 30일 수요일

사이버낚시꾼

낚시를 왜 하는가, 라는 물음에 낚시꾼들은 저마다 다른 대답을 내놓겠지만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낚시란 인간이 자연 앞에 정면으로 서는 일이며, 이 대립의 무게추가 바로 물고기입니다. 물고기는 소리에 예민하다는 정설에 따라, 물고기가 낚이기 전까지 고요, 또는 숨 죽인 긴장이 이어집니다. 이 인내는 상호적입니다. 인간만 인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또한 인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화창한 날 저수지에 개구리밥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물기슭에 이파리 무성한 나무들이 저수지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물고기가 있을 법한 풍경입니다. 이런 곳에서 물고기를 내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은 계속해서 캐스팅을 시도합니다. 반복되는 죽음 속에서 자연은 인간이 수면 아래로 보내는 유혹을 참아내는 일을 학습합니다. 그 긴장과 길항을 낚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략과 인내, 그리고 성취. 하지만 그 스포츠를 위해 물고기의 입이 찢어져야 하는 걸까요? 물고기의 대가리가 토막 나야 하는 걸까요? 허탕을 치는 당신의 발걸음이 무거워져야 하는 걸까요? 허구한 날 바깥으로만 나돌아야 하는 걸까요? 저는 이러한 불합리와 비윤리 등을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으로 사이버 낚시를 제안합니다. 사이버 낚시에서 플레이어는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스크립트로 직조된 사이버 자연 앞에 정면으로 서게 됩니다. 플레이어는 실제 낚시와 똑같이 낚싯대와 미끼를 선택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어장을 모델로 만든 사이버 어장을 찾아 사이버 낚시를 할 수 있습니다. GPS맵을 따라 보트를 타고 포인트로 이동하면, 화창한 날 저수지에 개구리밥이 지천으로 널려 있고 물기슭에 이파리 무성한 나무들이 저수지 쪽으로 몸을 기울여 그늘을 만들고 있습니다. 물론 사이버 낚시에서도 사이버 자연과의 대립은 발생하며, 이 길항 속에서 사이버 물고기를 낚을 수도, 또는 허탕을 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나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감각이 혁신입니다. 나는 여기(방구석)에도 있고 저기(어장)에도 있습니다. 사이버 낚시터로 떠나면 다리가 아프지 않습니다. 기름 값도 나가지 않습니다. 물고기 또한 낚싯바늘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합니다. 플레이어는 사이버 낚시를 통해 진짜 물고기를 얻을 수는 없고 진짜 상금을 거머쥘 수도 없지만, 사이버 머니를 벌 수는 있습니다. 사이버 머니를 모아서 어디에 쓰냐고요? 사이버 장비와 사이버 의상을 구매하는 데 사용합니다. 사이버 낚시터에 접속되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실의 자신보다 사이버의 자신이 자아와 훨씬 더 강력하게 링크되는 것은 당연하므로 방구석에 처박힌 현실의 내가 입을 옷보다는 사이버의 내가 입을 옷이 훨씬 더 중요한 것 또한 순리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사이버 낚시를 하면 현실의 물고기는 다치지 않지만 사이버 물고기는 여전히 다칠 위험이 존재한다고. 반복되는 사이버상의 고통이 사이버 물고기들을 진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 고통은 플레이어의 시간 감각을 파괴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한번 시간 감각이 파괴된 이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일이 한없이 무의미하게만 느껴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이버 낚시터에서조차 저는 사이버 물고기를 잡은 뒤 릴리즈를 해주고, 현실의 흔들의자에 앉아 충분한 휴식을 통해 일상성을 회복하려 노력하는 것입니다.

2019년 10월 26일 토요일

조랑말 속달 우편 배달부

내일까지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편지를 맡았고. 이 편지에 어떤 중요한 글이 쓰여 있는지 나는 모르고. 선서를 위한 배달부용 성서의 겉표지에 손을 얹었고. 배달 중에는 술과 도박과 색을 금하겠다고 하나님께 맹세했고. 맹세에 따라 아흐레간 열심히 달렸고. 역사에 다다르기 전까진 쉬지도 않았고. 내일 새 조랑말을 타고 조금만 더 달리면 될 것 같았고. 오늘따라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고. 그래도 잠들 수 없어 딱 한 잔만 하고 잠들기로 했고. 펍으로 가니 시끌벅적 술꾼들이 많았고. 총알로 싸구려 버번 위스키 한 잔을 사 마시는 이들이 있었고. 그 총알들을 모으면 총구에서 끝없이 불을 뿜을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나도 바에 앉아 샷 하나 주문했고. 바로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펍을 나가려는데 술에 절은 턱수염 하나가 나와 부딪혔고. 턱수염이 넘어지며 도박 중인 테이블 하나를 망가뜨렸는데 큰판이었고. 하필 도박판을 벌이던 이들 중 하나가 이 지역을 주름 잡는 거물이었고. 분위기가 참 험악해지고. 어떡할 거냐고 묻는데 나는 잘못한 게 없고. 턱수염은 일어날 줄을 모르고. 결국 내가 어떻게 책임을 지면 되겠냐고 되묻고. 나보고 테이블에 앉으라고 하고. 벌써 나는 카드를 받아 들고 있고. 사실은 카드놀이 제대로 하는 법도 모르고. 칩 다 털렸고. 돈 내놓으라고 으름장을 놓고. 그만한 돈은 없고. 분위기 아까보다 더 어두워지고. 어쩐지 숙소로 못 돌아갈 것 같고. 그 편지가 전달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나는 모르고. 지금은 편지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 내 걱정이나 할 때이고. 나는 잠이 안 와서 딱 한 잔만 하려고 했을 뿐이고. 오던 잠도 물러가야 할 상황에 이제야 잠은 밀려오고. 총구 앞에서 쩍쩍 하품이나 하고 있고. 드넓은 초원의 꿈이 펼쳐지고. 입에 샷 하나 들어가고.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