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8일 목요일

시인


정말로, 정말로 먼 길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극심한 피로를 느끼며, 나는 광장이라 예상되는 곳에 서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자료 속에서나 마주했던 옛 국가, 옛 도시의 풍경이었다. 첫 시간 여행인 탓에 정신이 매우 혼란스러웠지만 훈련받은 대로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곧 귓속에 심어둔 번역기를 통해 고대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가 들리기 시작했다. 과거에 왔으니 이 피로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거 사람들이 자주 찾던 그것, 커피를 찾아 떠났다.

잃어버린 작품을 찾아서. 나는 젊은 문학 연구자다. 옛 사람들이 ‘그때쯤이면 문학은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하던 시대에서 나는 문학 연구를 하고 있다. 문학계에서는 나를 농담 삼아 ‘광부’라고 부른다. 저 역사의 깊고 깊은 시간을 따라 올라가, 자료를 파내고 파내어 사라진 줄 알았던 작가들의 작품을 발견해내기 때문이다. 왜 그러쥐면 한 줌밖에 안 될 학계에 발표하기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나는 그저 문학에 미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캄푸스가 남긴 말 중 하나인 “시인은 미래에서 오는 존재다.”라는 말을 나도 모르는 새에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문학에의 미침으로 인해 나는 마침내 금단의 영역에까지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대문호 캄푸스가 마음에 안 든다며 불태워버렸다는 원고를 소실되기 전에 읽어보기 위해 그가 생존하던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캄푸스의 가장 가까운 친구 중 하나이자 당대 가장 권위 있는 평론가 중 한 명이었던 카에이로가 “캄푸스가 남긴 최고의 시는 바로 그가 불태워버린 「단두대 위에 선 생각」이라는 장시다. 그는 그 시를 불태워버림으로써 대문자 시에 가장 가까운 시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별이 사라진 뒤에도 우리의 하늘 위에 남아 있는 별빛처럼 그 시를 기억한다.”라고 말년의 회고록에 밝힘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그 이름만 남은 시를 찾기 위해 나는 시간을 거슬러 왔다. 이러저러한 경고, 주의 사항을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들으면서 말이다.
“절대로 타임라인을 망가뜨리는 일을 저지르지 마십시오. 시간 여행자의 행동은 그 시대에 수없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지극히 사소한 것이어야만 하며, 절대로 사건이어서는 안 됩니다. 미래 세계에 큰 변화를 줄 만한 돌발 행동을 막기 위해 시간 여행자는 ‘시간역설의 유령’으로부터 24시간 감시당할 겁니다. 당신으로 인해 ‘세계가 변화되고 있다’는 기운이 감지되는 즉시 그 나노 유령들은 당신을 추적할 겁니다.
또 한 가지. 당신의 여행 비자로는 일주일간 체류가 가능합니다. 체류 마지막 날 정해진 시각에 ‘승무원’을 만나지 못한다면 이 시대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으니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환전을 넉넉히 해두시고, 계획된 소비 외에는 지출하지 마십시오. 방금 제가 알려드린 내용을 이해하셨습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일이었을까? 나는 캄푸스가 26세이던 시대로 왔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아직 문단에 이름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고, 그로 인한 우울감에 깊이 잠긴 채 불면의 나날을 지속해왔다. 삼일 밤을 지새운 뒤 그는 내가 있는 이 카페로 올 것이었다. 그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한 채 마시지도 않다가, 불현듯 종이와 펜을 꺼내어 「어느 비틀린 날의 몽상」을 쓸 것이었다. 그는 그 시로 문단의 찬사를 받으며 데뷔함과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었다. 그리고 후일 카에이로에 의해 밝혀진 것이지만, 이날은 그가 불태워버린 장시를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그 장시의 초고를 보게 될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주문한 채 가만히 그를 기다렸다. ‘살아 있는’ 그를 실제로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살아 있는 거장을 만난 것에 대한 놀라움? 훗날 최고가 되는 신예를 가장 처음 발견했다는 즐거움? 의외로 풋풋한 면모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흥미로움? 예상대로 어둡고 괴팍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의 확인으로 인한 따분함?

그는 오지 않았다. 전기에 따르면 그는 밤을 샌 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이 카페에 도착했어야 한다. 카페 내부를 몇 번이나 둘러봐도 그는 없었다. 대낮부터 예술과 사랑에 대해 떠드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무언가가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전기에 꾸며낸 부분이 있는 것일까? 나는 실망감과 심심함을 동시에 느끼며 주머니를 뒤적여 펜과 종이를 꺼냈다. 캄푸스를 기다리며 그의 시 「어느 비틀린 날의 몽상」을 기억나는 대로 한 줄 한 줄 적어 내려갔다. 몇몇 구절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생각하고, 쓰고 나서야 틀렸다는 걸 알게 되어 단어 몇 개는 두 줄을 그어 고쳐두었다. 기억에 의존해 시를 다 쓰고 난 뒤에 나는…… 어떤 이상한 기분에 빠졌다. 시가 아니라 그 시를 적은 종이의 이미지가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잠깐만. 이것은 그의 문학관에서 보존되어 있는 초고 이미지와 똑같았다. 변색 등 자잘한 훼손만 없다 뿐이지 내용과 필체는 캄푸스의 원본과 똑같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내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나는 오늘 여기에서 어떠한 문제로 인하여 내가 있던 시대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거나, 혹은 돌아가지 않기를 ‘선택하게’ 되는 것일까? “어느 비틀린 날”이라는 것이 실은…… 내가 캄푸스였던 것일까? 내가 연구했던 캄푸스가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일까?
아니, 말이 안 된다. 그렇다면 캄푸스를 연구하던 ‘나’란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반대로 내가 연구하던 캄푸스는 무엇이었냐고 자문해야 하는 걸까?) 만약에 내가 지금부터 캄푸스가 ‘되는’ 운명이라면, 나는 이제 「단두대 위에 선 생각」이라는 장시의 초고를 써 나가야 할 텐데, 그와 관련해서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캄푸스일 리가 없다. 더군다나 내가 캄푸스라면 카에이로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캄푸스와 알고 지낸 사이인데 말이다. 아니, 잠깐만. 설마.

정말로, 정말로 먼 길을 떠나온 기분이 들었다.





*팀 파워스, 『아누비스의 문』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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