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6일 금요일

정점으로 올라서기: 나경원 (19년 7월 넷째 주)



잊고 있었는데, 이런 걸 쓰고 있으면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것이지 싶은 생각이 든다. 정말로 대상자를 위하는 마음, 그의 이미지를 한껏 끌어올릴 진실된 솔루션을 내놓겠다는 마음 없이 이런 것은 쓰고 있을 수가 없다. 연재 재개와 함께 진실하게 다뤄 볼 정치인은 나경원이다. 극우 정당 인사에게는 솔루션을 주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건만 김무성이 모든 걸 포기한 채 복당하면서부터는 나도 이젠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이다. 전부터도 그러기야 했지만, 특히 원내대표를 맡으면서부터 나경원은 일부 사람들로부터 도를 넘어서는 모욕을 받고 있다. 아무리 정치인이 미워도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 나베라는 혐칭에 달창으로 응답한 데에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수긍할 만한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요즘 그를 보면서 드는 생각; 나경원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안드로이드로 대체된 게 아닌가? 그러지 않고서야 도저히, 그대로는 믿고 싶지 않은 행보와 언행을 보여주고 있음은 또한 사실이다. (노동자유계약 어쩌고 했을 때는 정말로, 정말로 깜짝 놀라 귀를 의심했다.) 정녕 이것이 그의 ‘본모습’이었던가? 몇 가지 장면들이 있다. 탄핵 즈음 새누리 분당 국면에서 탈당한다고 했는데요, 안 하겠습니다 해서 모두의 스텝을 꼬이게 만들었던, 장탄식이 절로 나왔던 그 순간. 선거제 합의문에 본인이 한 싸인이 마르기도 전, 패스트트랙 충돌 와중 대체 어쩌려고 저러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장군의 표정을 하고 동번서번 다니며 독려를 하던 그런 순간... 그는 이런 줏대 없는 기회주의자 이미지에서 좀 벗어나야 한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그러면 안 되고, 모든 사안마다 일일이 말을 다 걸쳐서도 안 된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만들어내야 하는 대변인 방식에 본인이 익숙하기 때문일까? 한마디로 후달려 보인다. 지금도 원내대표인지 원내대변인인지... 내용 없이 공허한 말장난, 이해되지 않는 악수의 연속, 통제되지 않는 의원들... 잡설이 길었다.

이 순간 나경원은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나야만 한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중간간부 포지션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 첫 번째 솔루션은 눈 감기다. 평소에는 눈을 아주 감고 다니다가 심기를 거스르는 얘기가 들릴 때만 살짝 뜨는... 이런 느낌으로 간다. 과연 눈 감은 사진들(1, 2)을 찾아보면 느낌이 괜찮다. 눈 감고 돌아다니기가 좀 그러면 앞머리를 만들어 가려도 좋고, 한쪽만 가리는 것도 좋다. 누구 뭐 해찬이 인영이 교안이, 이런 친구들이 앞에서 뭐라뭐라 깔짝거려도 그냥 척 눈 감고 있으면서 귓속말을 통해 따로 내용 전달을 받는다. 옆에서 귓속말을 해줄 친구가 필요하겠다. 똘똘한 녀석으로, 본인 옷이랑 조합이 맞게 깔끔하게 입혀서 세워 놓으면 된다. 그의 귓속말을 다 들은 다음에야 딱 눈을 치켜뜨고 한 30초 좌중을 노려본다, 아무런 말도 없이, 이게 바로 나경원이어야 한다! 두 번째는 육성 아끼기다. 육성이 어디로 새 나가는 것을 최대한 피하자. 나경원 목소리가 어땠는지 사람들이 잊어 버릴 정도로, 평상시 말을 할 때는 귓속말로만 하자. 아까 그 친구한테. 니가 알아서 적당히 말해, 이렇게 해도 된다. 그 친구가 말을 전파하는 식으로 말하면 그만이다. 반드시 무슨 말을 해야 하는 때에는 아주 천천히, 짤막하게만(‘마이크 꺼주세요’ 등) 말한다. 말을 하면서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는 게 중요하다. 카메라도 좌중도 안 된다. 그냥 눈을 감아 버린 채 말하는 것도 괜찮다. 뭐를 설명하려고 하면 안 된다, 설명하지 않는다, 설명하지 않는 나경원! 만약 누가 중간에 말을 끊으면 잠시 바라보다가 눈짓을 해서 끌어내도록 하자. 좌석을 함정식으로 만들어 버튼을 누르면 파캉, 하고 열리면서 어디로 떨어뜨려 버리는 것도 좋겠다. 그럴 수 없는 자리에는 아예 나가지도 않는다. 이 정도는 해야 야심에 걸맞는 격이 생기고, 일도 자연스럽게 쭉쭉 풀릴 것이다. 이로 인해 역사가 거꾸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두렵다... 나 의원의 건투를 빈다.

※추천 아이템: 서너 개의 커다란 반지, 생화 코르사주, 크고 시커먼 선글라스(외출 시), 말 안 듣는 놈들을 바로바로 패버릴 수 있는 튼튼한 세공 지팡이.

2019년 7월 19일 금요일

두 번째 소개: PIMPS (19년 7월 셋째 주)

돌아온 폴리티션 이미지 메이킹 파워 솔루션. 매주 금요일, 정치인 한 명을 선정하여 그 위상 제고를 위한 파워 솔루션을 조심스럽게 제시해 보는 회심의 코너이다. 철저히 인물만을 중심으로, 외형과 이미지에만 집중해서, 최악의 저속한 방식으로 정치를 다뤄 볼 것이다. PIMPS는 농담도 패러디도 아니다. 아무것도 비하하거나 비아냥거리지 않는다. PIMPS는 언제나 진지하게 주제에 임하고, 역지사지 속에서 길을 발견하며, 허심탄회하게 사안을 밝힌다. PIMPS는 인류와 민족의 앞날에 이바지하려는 모든 정치인들을 위한 정론正論 지향의 코너이며, 이는 지난 시즌 다뤘던 정치인들 중 김정은 씨와 민주노총 씨가 나름껏 솔루션을 받아들여(추정) 각기 북미 관계 개선, 조합원 증대 등 일정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던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전 시즌이 약간 아쉬운 맛이 있는 분량으로 다소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었던 것은 이래저래 연재 의욕이 꺾였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가장 크게 무릎 꿇렸던 콘텐츠는 한국 3대 민족찌라시의 하나인 중앙찌라시에서 연재되던 「백재권의 관상·풍수」였다(참고자료). 정치인 포함 유명인들의 관상을 동물의 얼굴에 빗대어 보면서 뭐슨뭐슨 막걸리 썰을 푼다고 하는, 동물과 관상과 평론을 결합시킨 기절초풍의 기획력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코너는 올 연초 99회째에 성폭행범과 그 피해자의 관상을 다루는 초현실적인 누를 범한 뒤 민중의 단합된 힘에 호되게 털리고 글 내리며 연재 중단되었다가 어느 순간 연재분이 책으로 엮여 나오더니 아마도 명예회복 차원으로 지난 유월 윤석열을 다룬 새로운 99회차가 올라오며 마무리되었다. 100회를 딱 실수 없이 깔끔하게 채우고 마무리했다면 백 박사가 김세연을 밀어내며 여의도연구원장으로 영입되어 자유당 의원단 단체 성형과 혁신적 관상 공천, 풍수에 입각한 철저한 정책 설계에 기여하며 21대 총선을 큰 승리로 이끌었을 텐데... 기회를 놓친 것은 백 박사 자신의 업보이고 하늘의 뜻이다.

지난 2년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정치는 여전히 끝나지 않는다. 19년 7월 19일 오늘, 남한 민주주의 대제전 프로듀스X101(참고자료) 방영이 종료되면서 PIMPS의 운신 공간은 다시금 열리고 있다. 총선 레이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빨랑 써서 해치워 버리고 마무리를 해야만 험한 일(고소·고발·협박 등)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 또한 섰다. 연재 재개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고민: 뭔가 새로운 기획을 추가해 혁신적인 면모를 보여야 하지 않을까? 장고 끝에 나는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성핍진성의 투트랙 정면돌파를 결정했다. 무엇이든 강력하게 촉구를 하고, 다양한 채널과의 공조 같은 거를 강화하고, 정·재계 및 노동계와의 접촉면을 늘리고, 또 뭐 어쩌고를 저쩌고하고... 그런 홀가분한 마음으로 PIMPS의 두 번째 연재를 시작한다. 각급 비서실 여러분, 각 당 내외부 싱크탱크 관계자 여러분, 정치 애호가와 정치 혐오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2019년 7월 6일 토요일

수의 무녀

“1611년.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스테파노의 입을 빌어 ‘생각은 자유다’라고 말했지요. 그것은 사실 인간사의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 통념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지요. 그 전엔 그렇게 적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극작가에게는 좋은 일이었지요. 오, 인간이 생각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부터의 일이지요. 인간은 생각을 은밀하고도 신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간섭할 수 없었지요. 추궁할 수 없었지요. 독심술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당신 생각을 읽을 수 있다면 당신 또한 내 생각을 읽을 수 있겠지요. (저는 지금 당신을 창피 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내 생각을 읽을 수 없어서 다행입니다.) 끔찍하고 무서운 일. 장막 뒤서 인간은 온갖 것을 다 생각했지요. 정말로 온갖⋯ 지금도 다들 그렇겠지요. 맞습니다. 어제는 참 우울하고 무력했더랬죠. 기분 나쁜 얘길 하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헤헤. 저는 제가 우울한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있어요. 괴로운 순간들이 있을 뿐이고, 그런 순간은 저의 연장이 아니므로 결코 저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특히 당신은 마음을 좀 편히 가지세요. 아시겠어요? 일단 물을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

그가 물을 마시고 옵니다.

“가끔은 내가 환전소에 죽치고 앉아 있는 환전원 같다고 느낍니다. 글말과 생각의 교환비, 오늘 환율 다르고, 어제 환율 다르듯 고정된 값을 기대할 수 없는 거 아닌가. 같은 단어와 문장이라도, 어제 죽으면 천국 가고 오늘 죽으면 지옥을 가는 인간과 같이. 모든 것이 내 의지와 무관하다는 것도⋯. 그리고요. 포착되기 이전의 생각이라는 것은, 끝없는 변질과 말랑말랑함 속에서 건져지기, 혹은 채굴되기를 기다리는 그 무언가, 그게 과연 뭘까요? 우리 안의 전기 신호에 불과한 것일까요. 그런데 언어 없이도 가능할까요? 이미지? 장면도 이미지도 언어가 아닙니까. 금 간 보석 같은 것을 상상하며 당신 마음을 생각했다고 우겨본다고 한들.”


“우리는 행성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 행성은 시궁쥐처럼 잿빛입니다. 위성이 보이죠? 마찬가지로 쥐색입니다. 그들은 별이지만, 별인 것만은 아니래요. 아이슬란드어로 컴퓨터는 ‘수數의 무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그는 초조한 듯 헛박수를 칩니다. 엇갈린 손은 소리를 내지 않습니다.

“저 별은 행성 크기의 컴퓨터이지요. 이해할 수 없는 기술로 되어 있습니다. 맞습니다. ‘수의 무녀’가 비유인 것처럼 컴퓨터라는 말도 비유이지요. 그냥 다 비유인 거, 알지요 당신은. 하여간 별의 맨틀은 스크린입니다. 우리도 꽤 잘나가고 있었지요 그쵸. 이메일로 보낸 닭강정을 다운받아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진짜 미쳤구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행성 크기의 컴퓨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얼마만큼의 미래를 내다보아야 좋을지 감이 오지 않아요. 그리고 저 컴퓨터가 하는 일이란 것은 도저히⋯ 우리 수준에선 기획할 수 없는 거지요.  우주적 단위, 못해도 계界 단위의 작업일 겁니다. 그게 무슨 작업인지를 알아내는 것만 해도 풀기 어려운 매듭이었지요.”

그는 주머니를 뒤져 진공포장된 비스킷 하나를 꺼냅니다.

수의 무녀 - 입출력의 건 - 화상 담당자가 유약함 - 머릿속 사과, 우리 손에 들어온 - 정비공 대원 - 갑론을박 - 양가감정 - 윤리의 감각

2019년 7월 5일 금요일

[13호 서신]


*한여름
 -건강 유의(일사병, 탈수증, 열사병 등의 온열질환 및 냉방병).
 -호우 대비 배수관계 점검.
 -해충 창궐에 유의.
 -수면의 질 확보 체크리스트 운영.

*곡물창고에서
 -사실상 연재 중단 상태이므로 저장고로 이동.
 -새 글이 올라오면 입하 중으로 복귀.

*트위터 계정
 -팔로어 100 달성(5월).
 -운영 방침 개선: 필자 개인 활동 관련 선전 사항이 있는 경우 리트윗할 수 있음(조례 수정됨).

*필자 모집
 -기 필자에게 추천 요청 통해 비밀스럽게 도전.
 -무료로 필자 등록하고 계절 마감의 노예 되기(단타성 게시도 환영).
 -확정 읽어 주기 품앗이 최소 5인.
 -개인 블로그 운영이나 매체 기고/게재와는 다른 야릇한 기분 제공.
 -반도 유수의 문예인들이 독자인 것 같은 기분 제공.
 -내가 제일 못 쓰는 것 같은 기분 제공.
 -내가 대체 뭘 쓰고 있는지 모를 기분 제공.

*창고발전위원회
 -운영상의 향상점에 대한 의견 항시 청취 중.
 -창고 양식의 호혜적 이용 대책 수립.
 -현행 조례의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기획 환영(실현 가능하다면 실현시켜 보는 경향).

이상.

2019년 7월 3일 수요일

펀드 매니저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여기는 빌딩 옥상입니다. 고객님의 소중한 자산은 고객님의 전부입니다. 저는 한 사람의 전부를 파괴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열매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여기는 사무실입니다. 증시판에서 수직 하강 중인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은 갈 곳 잃은 자신에 관한 존재론적 출구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여기는 뉴욕의 한 호텔입니다. 부는 행복과 상관이 없다는 증명에 의해 또한 부가 행복임이 증거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여기는 강을 건너는 철교입니다.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와 교차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여기는 뜨거운 맥주 통 안입니다. 망가진 것들을 복구하려는 노력과 회생에 대한 의지가 최고조에 다다르는 순간에 번개처럼 내려치는 판결의 두 이름은 불가능과 무의미입니다. 이 지울 수 없는 이름들이 죽음의 혁명적 속성을 나타냅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여기는 지중해의 휴양지입니다. 인생은 고통입니다. 인생은 죽음을 향해 전진하는 공포의 행군입니다. 그러한 여정길에서 돈은 진통제입니다. 그러나 자살하면 고통도 없습니다. 진통제도 더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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