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4일 금요일

입출력의 건

“당신 앞에서 뭔갈 잔뜩 먹는 거요. 좋아하는 일이지요. 몇 번이고 봤으니까 당신도 알 거로 생각합니다. 잠시 나와서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로봇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당신은 나의 연인이니까, 연인은 고민을 주고받을 수도 있는 관계이니까, 그리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는 비스킷 봉투의 겉면을 뜯고 비스킷을 꺼내 먹기 시작합니다.

“행성 컴퓨터는 이상한 일을 합니다.”

그는 비스킷 봉투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둡니다.

“행성은 인간의 생각을 수집합니다. 인간의 생각을 데이터 조각처럼 변환시켜 끌고 온 다음 조립하지요.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몰라요. 그보다는 언제부터 그랬는지가 더 궁금합니다. 난 그냥 기가 죽어버렸죠. 이러한 사실을 눈으로 보고 겸손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무섭지 않아요? 우리의 생각이 휘발되기는커녕 어딘가에 남아 영구적으로 보존된다는 사실이. 보존만이 아니지요.”

그가 비타민 담배를 하나 가져와서 맛있게 피우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재현됩니다! 인간의 끝도 없는 온갖 생각은 저 행성에서 눈으로 볼 수 있게 재현된다니까요! 인간이 떠올리는 모든 것은 저장된 다음 행성 표면에 출현하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신기루나 아지랑이가 아녜요. 만지려면 만질 수 있고, 가져오려면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존재해요. 인간이 존재하는 방식과 똑같이 말입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누굴 죽이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고 합시다. 오, 이런 방금도 잠깐 생각하고 말았어요. 이제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현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굴 죽이는 일은 일어나게 되고, 그 누구는 저 행성에서 내 생각에 따라 죽습니다. 한 가족이 잠들어 있는 집에 불 지르는 장면을 그려본다고 합시다. 그 일은 그저 상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게 되어버립니다! 수도 없이 많은 이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누굴 죽이거나, 괴롭히거나 특정한 사람들을 학살하거나 역사를 뒤로 돌리고 물건을 부수고 하는. 감았다 떠지는 생각의 속성을 고려했을 때 아주 잠깐이겠지만, 폭력을 생각할 때마다 고통이 실재하게 된다는 것은 경악스러운 일입니다. 그 고통은 물론 원본인 우리에게 가해지는 것이 아니지요. 산물이며 모방인 시뮬레이션 실재자들에게 가해지는 것뿐이지요.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안 됩니까? 나의 동료들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몰래 회의장을 빠져나온 것이지요. 우리는 아직 모성에 보고하지 않았어요. 화상 담당자가 나인 걸 알지요? 저 별의 존재를 아는 것은 이 우주선 여섯 명뿐입니다. 나는 저 행성의 존재가 공표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동료들을 설득할 작정이었지요. 하지만 무섭고 두렵습니다. 내가 말할 수 있을까요?”

이제 나는 넘칠 듯한 사랑을 담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합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