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투명함을 위한 투명함 ] 태그의 글을 표시합니다.
레이블이 불투명함을 위한 투명함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25년 5월 17일 토요일

장마를 위한 기도

비가 안 온다니

빗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슬퍼하겠지?


그래도 절대 사라지지는 마 꼭 그럴 때만

자신의 자리를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라도


폭우에 집이 떠내려가는 꿈을 꾼 아이처럼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이러다가 또 오겠다 


언제나처럼 다분히

희망으로 돌아오고 


비와 이야기

이야기와 비

비와 이야기

이야기와 비


그럼에도


그럼 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데

돌아갈 곳이 멀리 떠나간 사람처럼  


자꾸 밖을 내다보게 되어서

긴 밤의 기미조차 없어서

말라가는 심장에 자꾸만

달라붙는 갈라지는 말들


이곳에도 금방 비가 내리게 될까 

그곳이 아직 축축하다면


아직 없는 미래라도 함께

나누게 되면 최선이 된대


서로의 기분을 걷어주고

창문을 열어주면서


시절처럼 가벼워지는 우리의 긴 계절

유리창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날씨 하나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믿음이

우리의 슬픔을 대신하면서 


햇빛 사이로 보이는 빗줄기

풍경이 견고해진다


우리는 말없이

기울어지기를 반복했고


계속해서 제자리를 흔들고

2025년 5월 9일 금요일

불면을 위한 거짓말

매일 나의 전생이 끝나지 않는 게 기묘한가요

 

범람하는 희망 사이로 모든 가능성을 끌어안고 뛰어든다 끝이 희박해지는 사진처럼 다시 내게 돌아오는 이야기들은 내가 있을 수 있는 모든 곳이어서 내게는 나를 가리는 내가 가득하다 이 중심은 나를 멈춰 세우려다 나와 좁혀 세워진 것이고 침묵이 아픈 밤을 지새우면


거짓말같이 닫혀있는 내가 탄생한다 아닌 말라가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방식으로

 

커튼을 걷으며

바닥을 깨우며

점점 희박해지는 슬픈

이야기를 기억하며

 

쇠락을 약속하는 날에는 결국

죽어가는 나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길어지는 그림자에 몰입한다면

무한히 많은 뒤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래도 다시 나의 궤도를 만져봐야지

 

출발하는 동시에 사라지고 싶으니까

흔적을 매듭짓고 투명해지는 얼룩처럼

 

나는 그러다 어떤 책을 떨어뜨리고


낯선 페이지가 온다

조용히 자라났던 진심을 돌려주기 위해

 

2025년 4월 29일 화요일

잠을 위한 쓸어내림

너의 밤은 잠들어 있다 나는 잠과 거리가 멀어서 너의 뒷모습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너는 온전히 잠들지 못해 내 손길은 끝없이 머문다 끝없이 쓸어내리다 보면 없던 빈틈도 생기게 된다 악몽을 꾸는 너의 머리카락이 나의 손가락을 움켜쥔다 너의 깊이와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너의 잠에 손을 담가본다


너의 말은 잠들어 있다 네게 무슨 꿈을 그렇게 꾸냐고 물어보지만 너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그래도 침묵을 흔드는 것처럼 나는 계속 너를 쓸어내린다 그래도 너를 쓸어내릴 때마다 너의 꿈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마음의 틈새가 벌어진다 아직 내가 없는 미래에 손을 담가본다


너의 꿈은 잠들어 있다 그곳엔 바다가 넘쳐나고 아무런 맹세도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 너는 치즈를 먹고 와인을 흘리고 수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누군가 너와 대화를 하는데 나는 그가 누구인지 너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름과 말들이 모호해진다 대화도 금방 오겠다는 약속처럼 흐트러진다 나는 그 물결에 내가 손을 담가보려 하지만 너는 계속해서 멀리 헤엄쳐 간다


내가 다가갈수록 네 바다가 나를 밀어낸다 너로부터 끝도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생각은 다 한 것 같다 아무리 쓸어내려도 우리의 어떤 말로도 메울 수 없는 빈틈이 계속 나온다 이런 말을 해도 너는 응응 하면서 따듯한 이불로 다정한 뒤척임으로 나의 두려움과 우리를 덮어버리지 혼자 먼저 잠들어버리는 사람들은 정말 미워 하지만 사라지고 싶다고 후렴처럼 말하는 나의 버릇이 사라지는 그런 밤이, 그런 잠이 계속해서 나를 네 곁에서 배회할 수 있게 한다 가끔은 계속해서 잠들어 있을 뿐이라도

2025년 2월 2일 일요일

빗방울을 위한 일기예보

비가 와서 당신이

어디론가 간다

 

파랗게 서늘하게

커져가는 방을 두고

 

날씨는 날씨의 역할을 한다

빗방울은 빗방울의 역할을 한다

 

당신을 울게 하고

당신을 떠나게 하는

 

다만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라도 갖고 싶은 것처럼

부드럽게 어긋나고

 

당신을 날씨에게 뺏기면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지

 

이동은 모일수록 의문스러워지고

순하고 시끄럽게 모이는 모순들 미래들

 

사전에서 감정을 배우는 것처럼

흐르는 방향 속에서 당신을 찾고 싶지만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없다

 

도무지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드는지

 

가지런하게

사라지는 구름들 사이로

추락하는 빗방울 사이로

 

대안이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곳을 떠날 수 없다

2025년 1월 14일 화요일

단추를 위한 이름

   아직도 구멍 난 것을 보면 기쁘다 한 번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은 문득 주머니 속에서 있고


  세상을 나누는 척도처럼

  당신은 아주 구멍도 많다

  예쁘게 뚫려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이 잘 보이는 세상은 어쩐지 내가 사라져야 할 풍경 같아


  우리는 증오 없는 세상의 일부 같았다 다만 더 많은 결함이 계속해서 태어날 뿐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는 일은 뜻을 모르는 모국어를 듣는 것처럼 따듯하고


  그렇게 나와 같은 몸을 사랑하고

  신호등처럼 껴안고

  옷처럼 당신을 뺏어 입는 일을 하고


  그러다 우리를 들여다보았는데 

  당신의 많은 것이 없었고

  나의 더 많은 것들이 없었다 


  금이 간 단추 하나가 나에게로 굴러올 때


  나는 쓰러지는 기타리스트처럼 몸을 숙이며 시끄러워진다

  점점 더 좁아지는 사람들의 틈

  그사이에 어떻게 끼어있을 수 있을까


  생략하고 무시한 나의 목록이 

  점점 늘어났다

  깔끔하고 빈틈 하나 없는

  거대한 이름처럼


  구멍이 꿈속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밤


  모든 것이 잘 보이는 꿈은 무섭다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이 있는 게 좋고 막혀 있는 것은 싫다 붉고 흐릿한 것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망쳐놓은 당신의 어깨에 닿는다

  죽은 선인장처럼 그저 말랑하기만 할 뿐인 당신의 어깨 나는 그 어깨에 동굴을 하나 뚫어놓고 잠들고 싶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녹지 않는 딱딱한 악몽처럼


  눈을 떴을 때 당신이 내 몸을 빈틈없이 덮고 있어서 나는 내 몸에 구멍이라도 난 줄 알았다 그저 모른 척을 하거나 욕할 수도 있었지만 숨을 헐떡이며 나를 따라온 구멍을 보면 손을 잡아주고 싶다


  당신의 손은 크고 부드럽네요 내 흠집을 열어주시겠어요


  당신이 나를 펼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이름을 간직한 채

2024년 12월 12일 목요일

좀비를 위한 돌림노래

  비틀거리는 검은 머리

  그 속에서 탈출하려는 감각이

  이빨처럼 돋아난다

  텅 빈 시선으로 닫히는 너의 세계


  허기를 따라가다 엎어진

  차가운 짐승을 쓰다듬을 때

  나는 무언가를 약속했고


  살과 삶을 떼어내며 

  사이좋게 나눠 가지는 침묵도

  부패할 수밖에 없겠지만


  너는 으르렁, 노래를 부르고


  침대 위에 올려놓은

  침 흘리는 얼굴 하나


  나를 한번 따라 해볼래?


  목젖 속 짐승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일렁이는 

  우리의 실루엣


  살아있어? 


  그래도 네가 네가 아니라는 것은

  진실이 아니고


  너는 너를 찾는 너의 무리 속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만


  나는 우리를 사랑하고 싶다


  입에서 입으로 온기를

  심을 수 있을 것 같은 밤


  혼자 하려니 무섭지?


  심장이 썩는 속도만큼이나

  사랑은 느리게 스며들고


  나는 떠미는 법을 잊어버려 자꾸만 네게 네 몸을 돌려주려 한다 덮을수록 더욱 차가워지지만 네게 남은 것인데, 이 몸은 어쩌지

  나는 아직 눈동자 속에 담겨 있는 너를 위해 노래를 부른다 죽어 있는 순간은 처음이라 오랜 시간 네 몸 위로 너를 토했지 너는 


  우리의 포옹이 속삭인다

  알아들을 수 있거나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로

  이상하게도 부패는 상냥했고


  누가 도망가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 왔다

  몸이 춥고 배고픈 것이 느껴져 좋은 기분


  이제는 안에 있던 것들이 바깥으로 나가야 하는 시간 나는 위험한 우리를 사랑하고 싶어서 창문을 열었다 떨어진 유리알같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세계


  멀리 굴러갔던 몸들이 모여 있네 그래도 여전히 세계는 그저 세계일 뿐 그저 너의 노래가 흐르고 사람들은 도망가고 있는 세계 우리는 손에서 손으로 우리를 건넨다 가볍고 따뜻한 침묵으로부터 몸이 몸을 배반하는 미래로부터 배부르고 따듯해지기 않기 위해 그저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잡고

2024년 11월 28일 목요일

빈 방을 위한 허기진 이야기

  비어있는 곳을 비어있는 것들이 이어나간다
  나는 침묵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방에 
  뚝뚝 침을 흘리는 이야기를 꺼낸다
  그 안에는 아직 당신을 삼키지 못한 내가 있고

  이곳을 지키는 것들은 여전히
  당신이 늘어지는 순간들을 사랑하고 있어

  당신이 굴리던 볼펜 끝에서 망가진 문장들이 흘러나오고 당신이 남긴 침묵과 나의 침묵 사이엔 낯선 영원이 태어나고

  다만 이것은 오래된 일이어서  
  아직 나에게도 갓 태어난 소문인 일  

  왜 하필 당신은 사라지기를 사랑해서 

  당신처럼 이곳을 통과하려고
  눈을 감아보아도 나는
  여전히 아무런 미래가 없는
  꿈으로밖에 가지 못하는데

  이 사실을 어찌해야 해?

  당신을 없애기 위해
  조금은 혼잣말을 곁들여도 될까?

  나의 일기장이 메말라 가는 동안에도 
  어디서든 어디로 이어지는 당신은
  또 어딘가로 뻗어나가는 최선의 것

  구부러진 약속과 망가진 희망이 이어나가는 당신의 릴레이
  그러다 모순이 허기를 어루만지는 저녁이 오고
  오랫동안 자라나는 당신을 바라보다 잠에 들었어

  투명한 몸을 입고 온 당신이
  더 이상 비어있지 않기 위해
  어린 당신을 데리고 나간 것 같아
  아마 바다나 안개 그런 곳으로

  축축하고 끈적이는 아침

  포옹이었던 것들이 벽지 위에 찰랑인다

  밤새 오래된 이야기를 지키던 아름다운 단어들이 이제 이곳의 공기가 되겠지 더 이상 우리를 설명할 필요도 없이 약속이나 비밀이 되며 망가질 필요도 없이 구석구석 가지런히 흔적이 죽어가는 친밀한 현실 속에서 고요하게 잠든 완벽한 기억을 봐 도무지 이것은 이야기처럼 보이질 않을 거야 당신을 모르는 사람들이 당신을 상상하는 것처럼

2024년 10월 28일 월요일

여름 비를 위한 연습

여름 비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갑자기 온 손님은 우산도 두고 달아났고 쓰러진 나무 밑에서 안부를 물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묻어둔 편지들이었다 여름 비는 항상 이상한 발견을 만든다 이때만 볼 수 있는 습기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야 할까 조만간 사라질 이름이겠지만 멈추기 전까지는 같이 젖는 이름이다 같이 있는 여름이다

편지를 받는 사람보다 편지를 쓰는 사람이 많다는 건 아직 이 세상이 사랑에 서투르다는 증거 생각하기도 싫고 삼키기도 힘든 이야기에 대해서는 일부러 답장을 길게 적는다 사랑을 믿는 건 무서운 일이니까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척 나를 접었다 폈다 하며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아직도 솔직하지 않다 밤마다 맡는 비와 흙의 냄새 때로는 여름의 것이 아닌 것이 찾아온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과 울어버리게 될까?

네 잘 지내세요. 속삭이며 흘러내려가는 말들 사이로 끝맺지 못한 편지들을 던진다 각자 다른 여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이 여름은 충분히 잘 사라질 것 같다 소나기도 장마도 아닌 이 여름 비의 이름을 지어본다 그림자 위로 자주 비치던 여름의 얼굴을 생각하며

2024년 10월 8일 화요일

심장을 위한 모티프

  물과 얼음 사이에서 침묵이 태어날 때마다 나는 어딘가로 그 마음을 보냈지

  햇빛을 따라 죽어가는 말들은 썩지 않는 거울 같아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런 답장이 없으니 그저 그 안의 모두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라 여겼어

  그렇지만 심장은 자꾸만 투명한 이별을 흘려보내고


  슬픔의 상이 잘 맺히는 그곳에선

  매일 목이 희게 만드는 의식이 일어나지

  충직함, 부끄러움, 신성함

  가장 출구가 필요한 것들을 탈출시키기 위해서 사랑하기 위

  해서 사라지기 위해서 잉태한 것들을 내보내기 위해서


  누가 먼저 도망쳤다고 생각해?

  부러지거나 깨진 것은 없었는데

  무슨 미래가 태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아직 없는 말을 만들기 위해

  그저 녹아내리는 중이었는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기로 할 때마다 혹은 애인이 자신의 언어를 까먹을 때마다 말 없는 언어가 우리의 안부를 묻지

  어느새 길게 늘어선 심장들의 그림자 그 사이 알 수 없는 계절을 베껴온 철새들이 들어오고 있어 애인의 인사는 다시 새로운 외국어가 되고 있어 나는 또 불가능으로 가득 찬 내 심장을 녹이고 있어

불투명함을 위한 투명함

사람들에게 나를 갖다 대었을 때 생각보다 나를 잘 꿰뚫어 보고 있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참을 헤매고 있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다시 자라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나를 흩트려놓는다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서 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람들 곁에서 투명해져 있다 꿈에서 깨어도 나는 눈을 뜨지 않게 되었다 나는 언제쯤 그 부패의 과정을 사랑할 수 있을까

기껏 사라지지 않을 준비를 마치고도 나는 자주 나가지 못했다 나가도 자주 말하지 못했다 슬퍼하는 것과 외로워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해서 점점 더 투명한 사람이 되었다 네게는 날개도 성대도 없어 나는 나를 꿰뚫어 보는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걸었고 안에서 밖으로 자꾸만 악취가 나는 질문들만 만들어냈다 너는 내 안에 있을 수 있어? 너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있어? 너는 내 몸과 마음이 아닌 나도 사랑할 수 있어?

나는 조난당한 사람들과 함께 잠든다 눈을 뜨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믿는다 하필 그런 사람이 나였다 때를 놓쳐 떠나지 못한 지평선에 눕는다 더 이상 투명해질 수 없는 그림자 위로 나를 눕힌다 내가 나를 나에게 포개했을 때 생각보다 나를 잘 꿰뚫어 보고 있는 내가 있는 반면 한참을 헤매고 있는 나도 있다 어떤 나는 나를 다시 자라나게 만들고 어떤 나는 나를 흩트려놓는다 조용히 내 안에서 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내 안에서 투명해져 있다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