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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월 16일 금요일

눈사람을 위한 플로깅

나뭇가지를 주우면

눈사람이 떠오른다


쓸어내린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묻어 있는 게

참 많기도 한


눈사람을 떠올리면

눈이 쌓인 공터를 거닐게 된다 


바닥에 떨어진 목도리를 파내고

누군가 흘린 장갑을 건지면


살아 있기

쓸모없지 않기


뭉개진 코와 부러진 팔다리에게

굳이 쓸모를 얘기하지 않기


더 많은 걸 선물해도 될까

비닐봉지, 스타킹, 양말, 모자


그러다 날씨가 좋아져

눈사람은 다시 흘러내리지만


거의 물이 되어가는 눈사람의 말


다시, 또다시


눈이 내린다

친한 눈사람이 떠오른다


2025년 11월 6일 목요일

랠리를 위한 놀이

랠리를 이어갈수록 우리는

무수히 많이 짝이 되었지

 

금방 끝낼 때도 있었지만

몇 번을 해도 서툴러서 오히려

쉽게 그만두기 어려운 여운


두 개의 속도가 하나의 속도로도 작동하고

온종일 손에서 손만으로도 가능한 율동

 

그저 무언가를 쳐내는 게 좋아서

공원을 마음대로 쓰는 게 좋아서

 

우리는 언제까지 짝이 되어볼 수 있을까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공을 둘이서 열심히 응원하며

억세게 자라는 풀들을 짓밟고 가만히 자고 있는 돌들을 차버리며

다시 서로에게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지


최초의 놀이를 발명한 사람들은

아마 놀다 지쳐 죽었을 거야


우리라고 다를까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공원에서

우리는 다시 놀이를 복사하기 시작하고


점점 느려지는 낮

바람이 불고 그림자가 길어지면

의문이 갑자기 찾아오며


나무에 걸린 셔틀콕을

절대로 꺼낼 수 없을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서

 

열렬히도 이어나갈 수 없는

랠리에게로

 

나무는 공원을 계속 흔들고 있지

2025년 7월 7일 월요일

낮을 위한 공원

기다리는 아이처럼

오래 앉아 있었다


이마가 서늘해질 때까지 

공원을 가로지르는 구름을 봤다

끝에서 끝으로 가는 것들을 떠올리며

시작이 사라지며


구름이 여기저기 퍼져나갔다


시선이 내려와

눈을 더듬으니 내게 필요한 자리가

풀밭처럼 펼쳐졌다

 

다른 누군가가 필요없는 것처럼

무릎을 조금 늘려 벤치에 누웠다

잠시 나는 사라지고


눈꺼풀 사이로 깜빡이는

아름다운 열대어 떼

 

그러다 한 마리가 내려와

유성처럼 떨어지려고 할 때

무서워 일어나게 되고

물고기는 사라지게 되고


되살아난 내가 낮을 목줄 삼아

다시 걷는다


조용히 가라앉는 닻처럼 

꿈의 윤곽은 희미해서


기다리는 아이처럼

오래 앉아 있었다


이곳에 마지막 구름이

언제 가라앉을까 


아이들이 열대어 떼를 따라가며

곧 비가 쏟아진다고 말했다


사라지는 아이들 사이로

계속해서 흔들리는 나무들


이런 기다림은

멈추지 않아도 돼


멈추지 않아도 돼


2025년 5월 17일 토요일

장마를 위한 기도

비가 안 온다니

빗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슬퍼하겠지?


그래도 절대 사라지지는 마 꼭 그럴 때만

자신의 자리를 쉽게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라도


폭우에 집이 떠내려가는 꿈을 꾼 아이처럼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 같다가도


이러다가 또 오겠다 


언제나처럼 다분히

희망으로 돌아오고 


비와 이야기

이야기와 비

비와 이야기

이야기와 비


그럼에도


그럼 비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데

돌아갈 곳이 멀리 떠나간 사람처럼  


자꾸 밖을 내다보게 되어서

긴 밤의 기미조차 없어서

말라가는 심장에 자꾸만

달라붙는 갈라지는 말들


이곳에도 금방 비가 내리게 될까 

그곳이 아직 축축하다면


아직 없는 미래라도 함께

나누게 되면 최선이 된대


서로의 기분을 걷어주고

창문을 열어주면서


시절처럼 가벼워지는 우리의 긴 계절

유리창에 부딪히며 부서지는 날씨 하나


한 번 쓰고 버려지는 믿음이

우리의 슬픔을 대신하면서 


햇빛 사이로 보이는 빗줄기

풍경이 견고해진다


우리는 말없이

기울어지기를 반복했고


계속해서 제자리를 흔들고

2025년 5월 9일 금요일

불면을 위한 거짓말

매일 나의 전생이 끝나지 않는 게 기묘한가요

 

범람하는 희망 사이로 모든 가능성을 끌어안고 뛰어든다 끝이 희박해지는 사진처럼 다시 내게 돌아오는 이야기들은 내가 있을 수 있는 모든 곳이어서 내게는 나를 가리는 내가 가득하다 이 중심은 나를 멈춰 세우려다 나와 좁혀 세워진 것이고 침묵이 아픈 밤을 지새우면


거짓말같이 닫혀있는 내가 탄생한다 아닌 말라가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방식으로

 

커튼을 걷으며

바닥을 깨우며

점점 희박해지는 슬픈

이야기를 기억하며

 

쇠락을 약속하는 날에는 결국

죽어가는 나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지 그래도

 

길어지는 그림자에 몰입한다면

무한히 많은 뒤편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래도 다시 나의 궤도를 만져봐야지

 

출발하는 동시에 사라지고 싶으니까

흔적을 매듭짓고 투명해지는 얼룩처럼

 

나는 그러다 어떤 책을 떨어뜨리고


낯선 페이지가 온다

조용히 자라났던 진심을 돌려주기 위해

 

2025년 4월 29일 화요일

잠을 위한 쓸어내림

너의 밤은 잠들어 있다 나는 잠과 거리가 멀어서 너의 뒷모습을 쓸어내린다 그러나 너는 온전히 잠들지 못해 내 손길은 끝없이 머문다 끝없이 쓸어내리다 보면 없던 빈틈도 생기게 된다 악몽을 꾸는 너의 머리카락이 나의 손가락을 움켜쥔다 너의 깊이와 가까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너의 잠에 손을 담가본다


너의 말은 잠들어 있다 네게 무슨 꿈을 그렇게 꾸냐고 물어보지만 너는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그래도 침묵을 흔드는 것처럼 나는 계속 너를 쓸어내린다 그래도 너를 쓸어내릴 때마다 너의 꿈이 조금씩 흘러나온다 마음의 틈새가 벌어진다 아직 내가 없는 미래에 손을 담가본다


너의 꿈은 잠들어 있다 그곳엔 바다가 넘쳐나고 아무런 맹세도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 너는 치즈를 먹고 와인을 흘리고 수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누군가 너와 대화를 하는데 나는 그가 누구인지 너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름과 말들이 모호해진다 대화도 금방 오겠다는 약속처럼 흐트러진다 나는 그 물결에 내가 손을 담가보려 하지만 너는 계속해서 멀리 헤엄쳐 간다


내가 다가갈수록 네 바다가 나를 밀어낸다 너로부터 끝도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생각은 다 한 것 같다 아무리 쓸어내려도 우리의 어떤 말로도 메울 수 없는 빈틈이 계속 나온다 이런 말을 해도 너는 응응 하면서 따듯한 이불로 다정한 뒤척임으로 나의 두려움과 우리를 덮어버리지 혼자 먼저 잠들어버리는 사람들은 정말 미워 하지만 사라지고 싶다고 후렴처럼 말하는 나의 버릇이 사라지는 그런 밤이, 그런 잠이 계속해서 나를 네 곁에서 배회할 수 있게 한다 가끔은 계속해서 잠들어 있을 뿐이라도

2025년 2월 2일 일요일

빗방울을 위한 일기예보

비가 와서 당신이

어디론가 간다

 

파랗게 서늘하게

커져가는 방을 두고

 

날씨는 날씨의 역할을 한다

빗방울은 빗방울의 역할을 한다

 

당신을 울게 하고

당신을 떠나게 하는

 

다만 나는 울고 싶은 기분이라도 갖고 싶은 것처럼

부드럽게 어긋나고

 

당신을 날씨에게 뺏기면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지

 

이동은 모일수록 의문스러워지고

순하고 시끄럽게 모이는 모순들 미래들

 

사전에서 감정을 배우는 것처럼

흐르는 방향 속에서 당신을 찾고 싶지만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봐도

많은 것을 알 수 없다

 

도무지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만드는지

 

가지런하게

사라지는 구름들 사이로

추락하는 빗방울 사이로

 

대안이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이곳을 떠날 수 없다

2025년 1월 14일 화요일

단추를 위한 이름

   아직도 구멍 난 것을 보면 기쁘다 한 번도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것은 문득 주머니 속에서 있고


  세상을 나누는 척도처럼

  당신은 아주 구멍도 많다

  예쁘게 뚫려 있기도 하다


  모든 것이 잘 보이는 세상은 어쩐지 내가 사라져야 할 풍경 같아


  우리는 증오 없는 세상의 일부 같았다 다만 더 많은 결함이 계속해서 태어날 뿐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는 일은 뜻을 모르는 모국어를 듣는 것처럼 따듯하고


  그렇게 나와 같은 몸을 사랑하고

  신호등처럼 껴안고

  옷처럼 당신을 뺏어 입는 일을 하고


  그러다 우리를 들여다보았는데 

  당신의 많은 것이 없었고

  나의 더 많은 것들이 없었다 


  금이 간 단추 하나가 나에게로 굴러올 때


  나는 쓰러지는 기타리스트처럼 몸을 숙이며 시끄러워진다

  점점 더 좁아지는 사람들의 틈

  그사이에 어떻게 끼어있을 수 있을까


  생략하고 무시한 나의 목록이 

  점점 늘어났다

  깔끔하고 빈틈 하나 없는

  거대한 이름처럼


  구멍이 꿈속으로 들어왔으면 하는 밤


  모든 것이 잘 보이는 꿈은 무섭다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이 있는 게 좋고 막혀 있는 것은 싫다 붉고 흐릿한 것을 따라가다 보니 내가 망쳐놓은 당신의 어깨에 닿는다

  죽은 선인장처럼 그저 말랑하기만 할 뿐인 당신의 어깨 나는 그 어깨에 동굴을 하나 뚫어놓고 잠들고 싶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녹지 않는 딱딱한 악몽처럼


  눈을 떴을 때 당신이 내 몸을 빈틈없이 덮고 있어서 나는 내 몸에 구멍이라도 난 줄 알았다 그저 모른 척을 하거나 욕할 수도 있었지만 숨을 헐떡이며 나를 따라온 구멍을 보면 손을 잡아주고 싶다


  당신의 손은 크고 부드럽네요 내 흠집을 열어주시겠어요


  당신이 나를 펼치고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이름을 간직한 채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