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25일 목요일

어부

그물 걷는 날이라 낚싯배 끌고 나갔지. 채비도 살피고 별신굿도 드렸지. 하늘 화창하고 풍랑도 잔잔해 가슴이 두근두근한 거라. 그물 걷어 올렸는데 뭣이고. 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뭔 해골바가지 하나 걸려 있는 거 아니겠나. 와, 나 황당해서 던져버리려는데 가만히 보니 해골 두상이 제법 잘 생겨 보인다. 뭔가 익숙하고 그립고 어디선가 본 듯한 두상. 나어린 꼬마가 대문 앞에서 손 흔드는 거 뒤로한 채 바다로 영영 떠난 아버지의 마지막 뒤통수. 맞나. 아버지 맞나. 해골 니가 내 아버지가. 내 아버지였던 무엇이가.

2019년 4월 18일 목요일

고서 감정사

이 책의 표지에서는 이론서의 냄새가 난다.
이론서는 냄새만 맡아도 이론서이고, 에세이는 냄새만 맡아도 에세이이다. 특히나 전도서는 잊을 수 없을 만큼 고풍스러우면서도 악독한 냄새를 품고 있어서 금방이라도 질식사할 것만 같다.
종이책=고서들은 저마다의 냄새를 품고 있다. 어떤 종이로 만들어졌는지, 주로 어디에서 어떻게 보관되었는지, 어떤 이들의 손을 거쳤는지에 따라 다른 냄새를 입게 된다. 아,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그 냄새를 통해 정말로 어떤 책인지를 정확히 감별할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니까 오해는 말기를. 우리는 책 감정사이지 책 소믈리에가 아니다.
선조들은 종이책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로 오리라고까진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때때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고어들을 번역해보면 ‘어쨌거나 종이책은 남아 있을 것이다’ 따위의, 추락하는 캡슐 속에서 보내는 희망의 구조 사인 같은 메시지들이 당대 여러 작가의 잡문 속에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선조들이 어떻게 생각했든 간에 책은 여전히 ‘생성’되고 있지만, 종이책은 유물이 되었다. 아직 개념 합의가 완전히 된 것은 아니나, 책은 더 이상 ‘물성’(선조들이 종종 사용했던 단어인데, 왜 이런 개념이 필요했는지는 모르겠다)을 지닌 단어가 아니라 지시적인 단어에 가깝다. 어떠한 대상에 대해 어떤 이가 그것을 ‘읽어내야’ 한다고 요구하면 그것은 책이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책의 개념에 관하여 선조들이 동의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종이책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더불어 책이 ‘전자책’이라는 과도기적 개념을 벗어난 뒤에도) 책이라는 단어가 이토록이나 모호한 형태로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어떠한 식으로라도 ‘책’이라는 단어를 존속시키고자 많은(소수의) 지식인들이 암암리에 공을 들였다는 점을 알아채도록 만든다.
손님은 내가 이론서에 책정한 감정가를 듣고 실망한 기색이었다. 그는 우연히 손에 넣게 된 고서를 팔아 크레디트를 여유롭게 채우고자 했던 모양이다. 감정받는 책이 이론서라는 걸 알면 높은 감정가를 받을 것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에세이라고 다 낮은 감정가를 받는 게 아니듯이 이론서라고 다 높은 감정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 이론서 및 저자가 당대에 미친 영향력이 막대했더라도 그 작가들이 살던 시간으로부터 아득히 멀리 떨어진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런 점들이 ‘그다지’ 고평가의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 제본의 형태나 디자인 등도 확실한 기준이 되지는 못한다. 어떤 얇은 페이퍼백은 어떤 두꺼운 하드커버보다도 훨씬 비싸다. (대중들이 책을 소비하지 않아 출판업이 사양길로 접어들었을 시기에는 시답잖은 책들까지도 죄다 하드커버로 제작되었다.)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우리 고서 감정사들은 고서 수집가들이 어떤 책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어떤 책이 고가의 책인지를 명확하게 분류해낼 수 있었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책등이 깨끗하며 눈에 띌 것. (가장 중요하다.)
2. 표지가 깨끗하며 개성적이면서도 아름다울 것.
3. ‘기분상’ 책을 몇 장 넘겨보더라도 종이가 바스러지지 않을 만큼 상태가 좋을 것.
4. 작품성이 있는 책이라고 전문가로부터 인증을 받았을 것.
5. 1~4의 조건들을 갖추면서 입수하기가 어려울 것.
6. 1~5의 조건들을 갖추면서 영향력 있는 작가일 것.
7. 1~5의 조건들을 갖추면서 완벽한 무명작가일 것. (현재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당대에 무명이었던 점이 중요하며, 단 한 권의 책만 가지고 있을수록 좋다. 이를 가려내는 데 있어 당대에 여러 필명을 사용했던 작가들이 무더기로 밝혀졌다.)

더는 종이로 만든 책이 생산되지 않고, 어떤 책은 그 책에 쓰인 언어가 더는 상용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을 거래하는 이들이 있다는 점은 재미있다. 그들 중에는 고서를 번역해 읽는 이들도 극소수 있지만, 대부분은 전혀 읽지 않는 사람들이다(물론 그들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다. 그저 딱히 고서를 읽을 이유는 없기에 읽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어떤 물건을 모으는 수집가들이 어째서 그 물건을 선택하게 되는지 그 이유가 가끔 궁금하다.
고서 수집가들의 성배 중 하나는 21세기에 출간된 『카페 인터내셔널』이다. 이 에세이는 지금은 사용자가 거의 사라진 한국어로 쓰였으며, 작가가 죽기 전까지 개정 증보하여 총 여섯 개의 판본을 가지고 있다. 책등은 무채색으로 판본마다 음영의 깊이를 달리하며, 신국변형에 무선 제본으로 제작되었고, 서체로는 노토 세리프가 사용되었다. 작가는 생전에 이 ‘여섯 개의 판본을 가진’ 단 ‘한 권의 책’만 썼으며, 책은 판본에 따라 각각 한 권씩만 제작되었다. 이 책은 작가의 자기만족을 위한 개인 소장품이 아니었으며, 매 판본은 제작될 때마다 판매되었고 몇 차례 그 주인을 달리했다. 여러 가치 있는 수집 대상 중 특히 그 책을 언급한 까닭은 내가 고서 감정사가 되기로 한 이유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그 책의 실물을 보고자, 만지고자, 그리고 마침내 읽어보고자 이 직업을 택했다. 잠깐, 지금 앞에서 이해되지 않던 많은 것들이 이해되려는 참이니 생각을 끝낸 뒤 다시 이야기하겠다…….

2019년 4월 4일 목요일

프로레슬러

이번 달 또 한 선수를 방출했다. 선수라는 호칭도 아까운 놈이다. 프로레슬링에 관해 아는 거라고는 쥐뿔도 없는 놈을, 체격 크고 발전 가능성이 있어 보이길래 거둬줬더니 운동도 안 하고, 아프다고 우는소리나 하고, 도무지 남자답지 않아서 더는 봐줄 수가 없었다.
이제 우리 단체에 남은 선수는 단장인 나를 포함해 4명이다. 아나운서이자 레프리이자 진행요원이자 선수를 겸하고 있는 김맨슨은 나더러 성질 좀 죽이라고 한다. 형이 레슬링을 사랑해서 그러는 건 알지만 너무 “FM”대로만 하면 다들 오래 못 버틸 거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딴 새끼들이랑 가짜 프로레슬링을 해나갈 바엔 나 혼자서라도 진짜 프로레슬링을 하는 게 낫다고, 다시 한번 그딴 소리 하면 너랑도 안 볼 줄 알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김맨슨은 더는 말 않고, “형 맘대로 하슈.” 하고는 남은 술만 퍼마시다 갔다.
가짜 프로레슬링은 뭐고 진짜 프로레슬링은 뭐냐고? 원래 프로레슬링은 다 가짜 아니냐고? 당신 같은 무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프로레슬링이 망한 거야. 알아?
프로레슬링은 짜고 치는 쇼가 아니다. 각본 있는 드라마다. 같은 말 아니냐고? 같은 말이면 당신도 앞으로 말 좀 저렇게 하고 살아라. “쇼네, 쇼!” 하지 말고 “드라마네, 드라마!”라고. “생쇼를 한다, 생쇼를!” 하지 말고 “리얼 드라마네, 리얼 드라마야.”라고.
드라마의 각본은 무대와 지문과 대사 들로 만들어지는데, 프로레슬링의 각본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레슬링에도 무대와 지문과 대사가 있다. 대형 프로레슬링 단체에는 각본을 쓰는 각본진도 따로 있지만, 우리 같은 작은 단체에는 문서화 된 각본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자 상의만 한 뒤 디테일한 부분은 즉흥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각본의 유무와는 별개로, 프로레슬링을 단순히 각본에 의한 드라마일 뿐이라고 일축할 수 없는 것은 링이 있기 때문이다. 궁금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경기는 링 위에서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수십 분간 펼쳐지는데 이 동작 하나하나에도 각본이 있는 것인지, 있다면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고 수행해내는지 말이다.
링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액션이 각본하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본이 지시하는 부분은 “누가 누구에게 어떻게(어떤 방법으로) 승리하는가”까지다. 그 디테일은 선수들이 채운다. 선수들은 저마다의 레슬링 스타일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 상대의 스타일과 기술을 이해하고, 상대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그것을 확실하게 받아줘야(이를 “접수”라고 한다) 부상도 최대한 피할 수 있으며 관객들이 보기에도 멋지고 깔끔해 보이는 기술을 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서로 잘 맞는 선수들이 링 위에 서면 멋진 경기가 나오게 되고, 서로 안 맞는 선수들이 대결하면 지루한 졸전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있는 드라마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각본 없이 몸으로 펼치는 드라마이기도 하다. 이 멋진 경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상대의 스타일을 배우고, 배려하고, 자신 또한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선수의 기본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본도 안 된 자식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지난번 내한해 한 경기 뛰고 간 하드코어대디 그 자식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산산조각이 난 형광등 위에 굴러도 봤다며 흥행 걱정은 말라던 놈이, 정작 경기 내용 조율 중에는 무슨 다 안 된대요. ‘새마을 킥’은 너무 아플 것 같아서 안 되고, ‘유신 밤’은 최근 디스크 판정을 받아 조심해야 해서 안 되고…. 이거 안 되고 저거 안 되면 무슨 기술을 접수하겠다는 건지. 나, 원, 참. 해머링이나 하다가 끝내자는 말이야? 도대체 뭐가 하드코어라는 거냔 말입니다. 저런 놈들이 바로 프로레슬링을 생쇼로 만드는 놈들이다.
내 레슬링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파워하우스라고 부르는 스타일이다. 난 신장이 그다지 크지 않다. 178cm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작은 편은 아니지만, 서양 빅맨들과 비교하면 작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서양 빅맨들에게 체격적으로 꿀리지 않기 위해 근육량을 늘렸다. 밥 먹고 운동하고 밥 먹고 운동했다. 지금도 하루 최소 한 시간은 꾸준히 운동하고 있다. 벤치 100킬로그램 깔끔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나와라. 그자만이 나랑 유일하게 대화가 가능할 것 같으니까. 운동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근육량이 일정 수치를 넘어서면 근육량이 비슷한 사람과만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진다. 흔히 말하는 ‘멸치’들이랑은 대화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는 거다. 근육이 언어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지 내가 언어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이런 것들에 관해 연구하지 않고 도대체 무슨 연구를 하고 있을까? 제대로 된 연구 좀 하세요. 그전에 일단 운동도 좀 하시고요. 운동을 해야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까? 그거 맨날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이상한 글이나 쓰고 있으니까 사람이 이상해지는 거야. 근육이 있어야 ‘몸의 대화’가 될 거 아닙니까?
그래서 내가 “대화” 좀 하자는데도 자꾸만 거부하는 놈들을 방출시킨 겁니다. 아니, 나는 대화를 하고 싶은데 왜 대화를 하려 들지 않아? 근육 좀 단련하라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 운동은 하기 싫고, 링 위의 슈퍼스타는 되고 싶고? 완전 도둑놈의 세상이에요, 아주. 안 그래도 노력 안 하고 얻기만 하려는 빨갱이 새끼들이 넘치는 판국인데, 레슬링 하고 싶다고 기어드는 놈들마저 그러니 내가 기가 안 찰 수가 있을까? 이건 진짜 기믹*이 아니라 내가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진지하게 소신 발언 하는 거야. 내가 링 위에서는 로프에 태극기 걸어두고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다 욕하고 혼내주고, 박정희 대통령님 찬양하고 하지만 그건 내 기믹이 ‘국뽕맨’이라서 그런 거지, 사실 저 미국인 좋아합니다? 일본인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비록 일본이 과거에 죄를 짓긴 했지만 일본 국민들 개개인의 인성은 썩어빠진 한국 놈들보다야 제대로거든. 아, 중국인은 예외. 걔들은 너무 더럽고 게으른 것 같아. 하여튼 나는 박정희 대통령님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잘못하신 점도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국뽕맨이 아닌, 나라를 사랑하는 건전하고 건강한 대한민국 시민으로서 진짜 나라가 걱정됩니다.
솔직히 이제 한국에서 레슬링 못하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내가 레슬링 망한 땅에서 제대로 레슬링 일으켜 세워보려고 내 돈 들여서 땅 빌리고(주변에 논밭이 펼쳐져 있는 시골이지만), 경기장 짓고(주변에 논밭이 펼쳐져 있는 시골의 비닐하우스이지만), 링도 만들고(비록 직접 땜질하다가 경기 중에 한 번 무너졌지만), 그렇게 열정 하나만 가지고 계속해왔는데 레슬링 하겠다는 놈들도 죄다 환상과 허영심뿐이고, 좌파가 잠식한 한국 땅 자체에 정나미도 떨어졌다. 세계적으로 프로레슬링 자체가 완전히 망한 거나 다름이 없다. SWA도 완전히 망했어요!  요즘엔 남자들이 빌빌대서 여자가 단체를 이끌어가고 있다면서? 어이구, 근육이 아깝다 이것들아. 왜, 불만 있어? 링 위에 올라와서 얘기해. 내 필살기인 유신밤으로 콱 그냥… OK,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기믹: 링 위에 선 프로레슬러는 어디까지나 선수가 링 위에서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연기하는 선수가 실제로 캐릭터와 같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도록 포장하는 수법이다. 내가 이런 것까지 설명해줘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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