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9일 일요일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 같은 것

주인은 무너진 집의 그림자를 베껴 집을 지었다는 사실을 발각당했다. 우리는 조금 싸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집보다 먼저 무너지는 자세가 많았다. 집은 새로운 지진 속으로 들어서고 있어서 살고 있던 사람들이나 앞으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착각이 일사불란하였다. 동시에 무너질 집의 조짐을 알 수 없었다. 주인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다시 또 연락을 해보려다 꿈을 꾸고, 꿈이나 꾸어버렸다. 벌초하러 온 사람들이 이미 동그란 무덤을 더 동그랗게 다듬고 있는 꿈이었다. 풀이나 깎으면 될 것을, 무릎으로 여러 번 흙을 다져 더 단단한 무덤을 만들고 있는 꿈이었다. 깨어난 후 우리는 다음의 결과에 포복하였다. 우리의 마음은 불타고 있었고, 어느새 눈 속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그즈음 집은 우리의 관계를 정당화한다는 말을 어딘가 새겨두고자 했지만 그럴 만한 기둥을 찾지 못했다. 기둥은 많았으나 할 만한 게 없었다. 우리는 더이상 우리가 아니었다. 우리로 건너갈 수 없었다. 그래도 어느 신혼부부가 찾아와 부득불 이 동네에 세를 들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023년 1월 18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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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여행중이다. 떠나기 전에 내게 수요일 12시에 카페에 가서 편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마치 나인 것처럼 써달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지만, 그럴 없을 것이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는 한국에 있는 자신의 집을 잠시 세놓고 간다고 했다. 돈으로 잠시 로마에 간다고 했다. 글을 쓰러. 그곳에 집을 빌려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한국의 세입자가 돈으로 로마에서 세입자가 것이고, 요즘은 한국 물가가 높아 돈으로 로마의 작은 아파트를 빌리고도 남을 거라고 했다. 물론 중심이 아니라 외곽에 있는 작은 아파트. 그런데 그곳에서 도심까지 가려면, 로마의 악명 높은 대중교통 시스템으로 인해 거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구글 지도로 검색해 결과 걸어가면 시간이 걸릴 거라고 했다. 하지만 지역은 밤에 위험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굳이 지역에 방을 빌린 , 자신의 아파트를 세놓고 받은 돈으로 충당할 있는 금액이어서 그렇다고. 사실 그의 세입자는 나이 또래의 사람인데, 그는 그와 이미 만나서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어느 정도 관심사가 비슷했으며,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가 버는 금액의 절반 이상을 월세로 낸다고 했는데, 그는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들어 월세 5만원을 깎아줬다고 했다. 그의 세입자는 고마워했고, 그는 일로 왠지 좋은 일을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아무튼 그는 세입자가 좋은 사람인 같아서, 그의 물건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그가 아끼는 책상이라든가, 베란다에 있는 안락의자 같은 . 혹은 벨벳으로 침대보와 이불, 그가 아끼는 오가닉 코튼 재질 잠옷 등등. 하지만 대신에, 매주 월요일에 집에 있는 모든 화분에 물을 주고, 그가 유리병에 표시한 만큼의 물을 각각의 화분에 .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의 이불보와 잠옷을 매주 규칙적으로 세탁할 . 안락의자 시트 역시 매주 세탁할 . 실내용 슬리퍼는 세탁기에 넣어서 돌리되 온도는 20 이하로 설정할 . 매일매일 환기시킬 . 방충망은 열지 등등. 그는 리스트를 만들어 그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가 한눈에 있도록. 그래서 그가 헷갈리거나 추상적인 느낌 없이, 그것들을 있도록. 그는 5만원을 깎아주었기 때문에 정도는 부탁할 있을 거라고 했다. 헷갈리거나 추상적인 느낌 없이.

2023년 1월 16일 월요일

하녀가 되는 수업

옆 사람이 하녀가 되고 싶다길래 나도 얼떨결에 하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헛간으로 들어와 하녀가 하는 일을 하려고 보니 내가 입은 앞치마의 무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앞치마의 무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일거리를 앞에 두고 딴청을 부리기엔. 나는 정식으로 하녀가 된 건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래서 그런지. 하녀는 봉급을 받고 가사 일을 한다. 내가 일하게 될 수도 있는 집은 내 마음보다 큰 것 같았다. 어쩌면 내 손톱보다도 작을 수도 있디. 그에 비해 이 헛간은 내 좁은 마음보다 더 밴댕이이고 그리고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별의별 일거리를 만들려면 만들 수 있음을. 그래서 친숙해 보였다. 우선은 쟁기 같은 농기구가 있었는데 녹이 슬락 말락 했다. 반질반질 윤을 낼 수도 있을 텐데 이곳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올라 지금 당장 하녀로서 행세하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다음 주에 나는 정식으로 하녀가 된다. 하녀의 신분을 갖게 된 사람으로서 일기를 써가야 한다. 어쨌든 간에 나 말고도 하녀를 지망한 사람이 몇 명 더 있었으므로 그들의 일기를 따라 한다는 방법도 있었다. 헛간 안에서 아무것도 건들지 않은 채로 나는 방을 치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녀 지망을 한 이후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방을 치우는 것이었고 그것은 인간의 조합 안에 하녀나 사용인 등이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멋지고 유용한 일인지에 대한 감상을 내게 남겨주게 되었다. 여기엔 하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진장 많은 것 같은데. 그러나 내가 일을 대신해 줘서 조금 편해지더라도 그게 안 편할 수도 있다. 무언가 일을 해내는 루틴이 있는데 그걸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알았다. 그런데 농사는 누가 짓는 거지? 이건 왠지 근본적인 물음인 것 같으므로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헛간에서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으므로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기록을 보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기왕 하녀가 됐는데 이렇게 일거리가 많아 보이는 곳에서도 손을 쉬고 있어야 하는구나. 이사야는 날 경계하지 않는 것인지 저쪽에서 잠든 채다. 이사야는 몸집이 저리 작아 보여도 아주 듬직하다. 가끔 쥐를 잡아오는데 그 쥐는 아마 누구에게 주려고 잡아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사야를 깨우고 싶었으나 그러진 않았다. 이사야와 할 수 있는 건 같이 뜀박질한다는 것이 있다. 나는 뜀박질을 좋아한다. 같이 하녀를 하기로 한 같은 수업 듣는 사람이 헛간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다이닝을 한 적도 있었대요. 눈동자를 굴리면서 조금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인 그분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여기에서요? 식당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네, 그렇죠. 그런데 과거에서 온 악마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던데……. 아마도 예전에 여기에서 연재된 시리즈에 나오는 악마가 아닌가 싶었어요. 페이지에는 이제 안 올라와 있군요. 그러면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것이었나? 나는 약간 기분이 고조된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도 그분처럼 눈동자를 굴렸고 이번엔 그분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다음 주까지 써야 하는 일기 쓰셨어요? 아뇨, 아직 못 썼어요. 그래서 오늘 한번 써보려고요. 옷을 한 번 바꿔 입었다는 것만으로. 그러니까 나란 인간의 조합에. 하녀 같은 키워드가 추가됐다는 게 너무 이상해요. 그리고 이 헛간은 제가 못 치운 것들이. 그리고 아무도 못 치운 것들이. 방 정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치워지지 못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친숙해 보이고 안온한 것 있죠. 왜 사람들이 방을 치우지 않는지 알겠어요. 그게 편해서 그래요. 그리고 왜 나도 제 앞의 분을 따라서 하녀를 하겠다고 한 건지도 알겠어요. 그게 제 마음에 편한 거죠. 치운다는 건 사실 사물들을 자기가 원하는 위치에 갖다 놓는 거니까. 사실은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너저분한 건 치워야 하는 것이고. 여기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모든 물건들이 이사야가 원하는 배치대로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닌 동물이 생각하는 배치. 그게 아마도 여기가 친숙해 보였던 이유 중에 하나일 것 같아요. 정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안 된 것 같기도 해서 이상해요. 아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없을 테죠.

납골당

부러 틀린 소리를 끌어다 대며 시작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뭔가를 부정하거나 반박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쉽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렇게 시작했다. 우리가 시작을 위해 고른 틀린 소리는 ‘독서는 듣기에 가깝고 출간은 말하기에 가깝다.’이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어쩌면 공간이 아직 있거나). 하지만 지금은... 적어도 이곳에서는 아니다. 따라서 ‘독서 인구는 줄어드는데 신간의 종수는 늘어나는’ 현상은, 들으려는 이는 점점 줄어들고 말하려는 이는 점점 늘어난다는 뜻이 아니다.

독서는 오늘날 뭔가를 듣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독서는 대단히 외로워지길 자처하는 일, 장롱 들어가기에 가까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 독자들이 그토록 독서모임(이나 그에 거의 준하는 것들)을 찾아 헤매고 자신의 독서 경험을 어떻게든 표현하려는 것이 아닌가? 독서를 통해 이루려는 목표를 하나 꼽는다면 외로움이다. 외로움을 손에 넣기 위해 독서한다. 외롭게 두지 않는 주변을 벗어나기 위함이든 외로움에 기대어 뭔가를 만나기 위함이든 그것은 둘째고, 먼저 외로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그에 비하면 말하기와 짝을 이룰 만한 ‘듣기’의 범주에 들어가는 종류의 읽기는, 우리가 보기엔 지나치게 만연하며, 아무 처음도 끝도 없이, 너무 짧게 너무 많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소음공해)에 가깝고, 독서와 같은 외로움도 제공하지 않는다.

한편 오늘날 출간은 뭔가 하니, 여러 의미 있겠으나 일차로는 관 짜기다. 출판사의 의뢰로든 저자의 의뢰로든. 죽는 날은 정해져 있고 누울 곳이 필요하다... 이 허망하고 고된 세상에서, 내가 뭘 아무리 만들고 일해도 명함 한 장 남기기 쉽지 않은데, 만약에 내 이름 적힌 책 하나 있다면, 누구한테 소개까진 못하더라도, 일테면 돌아가신 할머니 영전에라도 바치면, 일단 좋다? 뭐가 좋냐면, 모든 것이 그렇듯 생산물은 공동의 연합적 생산교환물일 때 힘이 서리는데, 도서는 그 자체로 교환되리라고 믿어지기 위한 종류의 생산물이고, 저자의 이름까지 적혀 봉인된다. 절대 열리지 않더라도, 저장소나 지성소로서. 따라서 출간 역시 독서와 유사한 맥락에서 ‘말하기’보다는 말을 그만두기나 줄이기에 좀 더 가깝다. 너무 많은 말들 가운데 말을 좀 더 낫게, 더 나은 말을 해보려는 것이다. 더 낫게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 대신 세워놓으려고. 그러다 혹시 아나? 가계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외로움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죽고 싶은 사람은 점점 많아진다. 이제 출판 산업은 죽고 싶은 사람들에게 뭔가를 파는 일이 되어가고 있다. 그 뭔가는 죽고 싶은 사람 그 자신의 저서다. 대개 사람들은 옛적으로부터 꾸준히 저서를 갖고 싶어했다. 아니면 남의 저서에서라도 자신의 생이 다뤄지기를. 거기 들어가자마자 낙심하든 더 깊이 들어가려 눈 벌개지든, 어떻게 보든... 그것은 관에서 빠져나오려는 발버둥처럼도 보이고 관에 들어가기를 준비하려는 일처럼도 보인다. 출간은 그 비슷한 종류의 업(인간 재생산을 정점으로 하는 장례-유산 관련업)들 중에서는 그나마 쉬운 편이고, 그에 대한 참가도 점점 쉬워지고 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독서의 줄어듦에서 기인한 인쇄출판업의 사업 모델 변화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늘의 출판을 현상태에 맞게, 도서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출간 행위 자체(더 넓게는 쓰기 행위)에 대한 믿음을 판매하는 것으로 다시 정의해 본다면, 정녕 그렇다면 우리는 실제의 책을 만들거나 팔지 않아도 된다. (통신업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으며, 그것이 읽기가 소음 노출로, 독서가 장롱 들어가기로 된 까닭이다.) 예를 들어 책은 저자가 직접 만들고, 우리는 돕기만 하면 그만이다. 당신의 출판사를 가져라! 하지만 당신도 책을 직접 만드는 게 아직 부담스럽다면, 그렇다면 우리에게 원고만 달라. 우리가 다른 출판사에 투고를 해주겠다. 눈에 불을 켠 편집자들이 쓸 만한 원고들을 얼마나 찾아 헤매고 있는지! 그들에게 보낼 출간기획서를 우리가 만들어줄 수 있다. 저자 소개도 우리가 공들여 다듬어줄 것이다. 원고를 같이 볼 수도 있다. 어차피 책을 파는 쪽은 저자다. 책을 쓴 자신을 파는 것일 수도 있고, 책을 쓰는 방법을 팔 수도 있고, 어느 쪽이건 좋다. 출간기획서 쓰는 방법과 저자 소개 쓰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마케팅하는 방법도 알려주겠다. 원고 쓰는 방법도 다 알려주겠다! 모든 것을 알려주겠다! 어떤가?

...농담이다. 우리 ‘납골당’의 방식은 그렇게 비열하지 않다. 우리는 그 다음을 준비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자료를 넘겨받을 것이다. 당신이 쓴 것은 물론이고 찍은 사진, 영상, 그린 것, 녹음한 것, 무엇이든, 당신이 주기 원하는 자료를 우리는 전부 다 받는다. 우리는 당신의 자료를 디지털화(어차피 대부분 디지털 자료겠지만)한 뒤 AI 편집기를 거쳐 머리통 크기의 양자 크리스털 코덱스에 정리하여 집어넣을 것이다. 가격에 따라 용량과 외관도 당연히 선택할 수 있다. 서비스를 미리 구독하면 계약 기간 동안의 자료를 자동으로 업로드할 수도 있고, 코덱스 안쪽에 당신의 유골 구슬을 담을 서랍을 만들 수도 있다. 특정 ‘독자’들에게만 전달되는 코드가 있고... 후손이나... 하여튼 우리는 바로 그것을 당신에게 안겨줄 것이다. 그냥 외장하드 아니냐고? 아니다. 이것은 통신업이나 교육업과 구분되는 다음 시대의 출판이다. 출판은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그다음은? 그다음은 다음 세대가 알아서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는...

2023년 1월 11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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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다. 비 냄새가 좋다. 몇 걸음 걸어서 카페에 왔다. 카페에 사람이 많다. 왠지 내가 불청객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동네 사는 사람들. 몇 번 본 얼굴도 있다. 브런치 먹는 사람들. 커피는 이미 집에서 마셨기 때문에, 차를 주문했다. 차 한 잔으로는 비싸지만. 매주 수요일에는 45분간 집을 비운다. 여기서 일기를 쓰는 일의 장점은, 아무도 내가 쓰는 언어를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놓고 아무 말이나 쓴다. 어느 카페에서는 아무도 보지는 않겠지만 왠지 신경이 쓰여서 일기를 잘 못 썼던 것 같다. 아무도 볼 일이 없지만. 이게 중요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의식에 시달려왔는데, 거의 병적인 수준이지만,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지내온 것은 책을 읽고, 뭔가 새로운 것을 보고, 가끔 사람들을 만나고 한 덕분이었던 것 같다. 아무도 관심이 없지만 신경이 쓰이는 일들이 있고, 설령 누가 본다 해도,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들, 그냥 한번 웃고 넘기겠지, 그런 일들을 내가 너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 사람들은 한번 웃고 난 후에 브런치를 먹으러 갈 것이고, 맛집 앞에서 줄을 설 것이고,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확인할 것이다.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 이 이상한 일은 습관이 되어 좀처럼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그냥 한번 웃고 넘길 일에 전전긍긍하는 것 말이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내가 어느 정도 알아듣는 언어로 말한다. 하지만 마치 누가 듣지 말라는 듯 너무 낮게 말하는 바람에, 마치 중요한 부분을 알아듣지 못한 것처럼,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미궁 속으로 빠진다. 마치 그 낮게 말한 부분이야말로 이 대화의 핵심이라는 듯이. 차가 쓰다. 저 사람 얼굴이 낯익다. 이 근처에 사나? 분명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그걸 추적하듯이 따라가 볼 생각은 없다. 낯익다는 생각이 내 앞에서 지나가는 동안 나는 차를 마신다. 20분 남았다. 이런 걸 쓸 생각은 없었다. 사람들이 브런치를 먹고 집에 간다. 직원들이 그 브런치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 그 브런치는 아마도 맛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맛이 없어도 괜찮을 일이다. 정해진 양이 정해진 방식대로 올려질 것이고, 그게 맛있다면 맛있고 맛없다면 맛없고, 누가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 카페는 구글 평점이 낮다. 이렇게 브런치를 먹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혹은 브런치를 먹는 와중에, 그 브런치를 만드느라 뛰어다니는 직원들을 보면서 음식이 매우 늦게 나옴, 혹은 이 가격에 이런 퀄리티라니 추천하지 않음, 직원들이 불친절함, 커피 맛이 없음, 양이 매우 적음 주의 등등. 그들은 이런 것을 브런치가 도착하기 전에 혹은 먹는 와중에, 혹은 집으로 돌아가는 와중에 쓸 것이고, 그 평가는 아직 오지 않은 손님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다.

2023년 1월 9일 월요일

열한 마리의 원숭이들이 내게

열한 마리의 원숭이들이 내게 뛰어들었을 때, 인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싸구려 스쿠터 두 대를 빌려 근처 어디 있다는 호수로 향하는 중이었다. 운전면허증 없이도 스쿠터를 빌려준다는 싸구려 스쿠터샵에는 먼지 쌓인 스쿠터들이 가득했다. “분명히 굴러는 갈 거야, 분명히. 만약 넘어진다면 알아서 스쿠터를 끌고 와. 어떻게든. 경찰을 본다면 돈을 내어주고.” 샵을 운영하고 있는 번티는 새까만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호수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언덕들을 몇 개 넘어야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이 주변에 목적지로 삼을 만한 곳은 오로지 그 호수뿐이었고, 다른 곳은 흙바람이나 날리는 황무지일 따름이었다. 거기 유일하게 빛나는 것은 그 저수지였다. 그때 우리는 그게 인공적으로 만든 저수지인지, 자연스럽게 형성된 오아시스 같은 호수인지 하는 것들은 궁금하지도 않았다. 단지 물을 보고 싶었고, 정확히는 물에 비치는 햇빛을 보고 싶었고, 햇빛이 흔들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싶었다. 그런 낭만적인 공간을 상상하며 이곳에 온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는 애써 낭만을 궁굴려야 했다.

원숭이들은 이곳저곳에 숨어 있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묵묵했다. 소리를 내는 법이 없었다. 언덕 구석 바위틈 사이에 숨어서 아주 골똘히 지나가는 것들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은 얼굴과 손이 검었고, 나머지는 흰 털로 덮여 있었으며, 머리 위쪽 부분의 털이 비쭉하게 솟아 있었다. 그들의 눈은 차분하지도, 멍하지도 않게, 지나가는 것이 분명 지나가고 있다는 그 사실만을 확인하려는 듯, 눈앞의 사물에 매여 있었다. 관광지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이곳까지 스쿠터를 몰고 오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 주변 사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작열하듯 뜨거운 태양만이, 언덕 위에 묵묵한 검은 원숭이들만이, 그리고 우리가 타고 온 낡은 스쿠터가 덜덜거리는 소리만이 주변을 채웠다.

우리의 싸구려 혼다 스쿠터는 돌무더기가 깔린 우둘투둘한 언덕의 경사로를 힘겹게 올랐다. 여기서 넘어진다면, 어떻게 이걸 다시 끌고 가지? 경찰 같은 건 있을 리 없었다. 다만 원숭이들이 있었다. 스쿠터는 계속 덜덜덜, 소리를 내며 위태로워했고, 우리가 스쿠터에게 몹쓸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인은 계속 이런 건 좀 무섭다, 무섭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면허가 없는데도 스쿠터를 곧잘 타서 돌덩어리를 유연하게 피해 갔다. 오로지 햇빛만이, 사실 이 모든 것이 전부 햇빛 속에 가득하다는 것을 너는 모르냐는 듯이, 눈앞에서 번쩍거렸다.

언덕을 두 개 더 넘으면 호수에 닿을지 몰랐다. 우리의 스쿠터는 계속 앞으로, 위로, 아래로 나아가고 햇빛은 방사하고, 나는 불현듯 내가 묵던 방에 보일러를 켜고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보일러를 켜고 온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이렇게 더운 곳에서도 사람은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해야 하고, 뜨거운 물을 덥히기 위해 다시 뜨거운 햇빛이 필요하고, 내 옆에 원숭이들은 나를 지켜보고, 내 앞에 인은 여전히 오르고 있다는 생각은 계속 이어졌다. 뜨거운 것과 흰 것이 겹겹이 섞여들었다.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을 것 같다, 빛이 가득하다, 이제 생각을 그만두고 스쿠터의 운전대를 다시 꽉 쥐었을 때

길가에 튀어나온 돌덩어리를 미처 피하지 못한 혼다 스쿠터가 나를 두고 멀리 날아간다. 모든 게 멈춘 것 같다. 멀리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하늘을 바라본 채로 누워 있는 나를 향해 인이 비명을 지르고, 열한 마리의 원숭이들은 나를 향해 달려든다. 그들이 그만큼 빠르다는 것을 나는 이제 겨우 알아챈다. 원숭이는 인보다 빠르다. 얼굴이 검은 원숭이들이 나의 얼굴을 둘러싼다. 태양빛은 점차 가려진다. 내 얼굴 위로 원숭이들의 땀방울이 떨어지고, 그 수분기 머금은 액체는 반짝거린다. 인이 자기 스쿠터를 바닥에 세워두고 점차 내게로 다가오고 있을 때,

원숭이 한 마리가 말한다.
“나는 경찰이다.”

그리고 열 마리가 합창한다.
“나는 경찰이다.”

소리는 곧 노래가 된다. 노래는 곧 돌림 노래가 된다. 이제 혼다 스쿠터들의 덜덜거리는 낡은 배기음은 하나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원숭이들의 노랫소리만이 황무지를 가득 메운다. 메워도 들을 사람 없는 노래가 황무지에서 계속된다. 내가 피에 젖은 손으로 가방에서 오십 달러를 꺼내 그들에게 내밀자

“무슨 나쁜 꿈이라도 꿨어?” 인이 내게 묻는다.

천장에는 거대한 팬의 선풍기가 휘적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땀이 나고, 다시 마르고 젖는 방에서 내가 모르는 냄새가 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그냥 원숭이들이 많았다고, 인을 바라보기 위해 겨우 몸을 돌릴 때

햇빛이 인의 뒤에 있어 인의 얼굴이 검다.






주뱅

달걀을 한 손으로 깰 수 있다.
https://blog.naver.com/mondergreen

2023년 1월 6일 금요일

수요일에 쓰는 사람

수요일에 쓰는 사람은 매주 수요일에 근처 카페로 간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걸어가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한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지는 않는다. 그는 12시부터 45분간 글을 쓴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수요일에 쓰는 사람은 목요일에 쓰는 사람이나 금요일에 쓰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다. 물론 겹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2023년 1월 5일 목요일

세계의 곡물창고들 '22

2023년 1월 3일 화요일

진주 같은 것

회벽으로 경계 세운 마을을 지나가다가
캄캄한 철문 앞에 앉아 있는 여인들을 만났다.
전도자들이었다.
손이 두툼한 사람들이었다.
서로의 무릎 앞에
작고 하얀 진주를 산처럼 쌓아놓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불러세워
그 안에 손을 넣어보라고 권하는 사람들이었다.
무엇을 위하여?
영혼을 위하여.
말총머리를 하고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허리 굽은 여인에게 물었다.
이 진주들은 희고 아름답네요, 이 많은 것을 어디서 구하셨나요?
여자는 속눈썹을 훑으며 말했다.
이 문을 지나는 이들이 흘리고 간
먼지를 굳혀 만들었다오.
건장한 어깨를 가진 장정은
어깨를 흘리고 갔다오.
머리숱 많은 여인은 사라져도 모를
머리카락을 흘리고 갔다오.
노인들은 종종 모자를 흘린다오.
대신 스카프를 챙겨 다행이다, 안도하면서…
제일 중요한 재료는
아이들이 흘리고 간 것이라오,
세상을 손에 쥔 오렌지처럼 통통 굴리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놓치고 마니까.
그때 신문을 펼쳐 읽고 있던 다른 여인이 말했다.
당신도 지금 뭔가를 떨어뜨렸소.
콩밭을 지나왔소?
콩 한 알을 떨어뜨렸소.
나는 지나온 길이 너무 많아
어디를 다녀왔는지 너무 오래된 일처럼 느껴졌다.
기억은 꼭
달리는 열차 바퀴에 깔려 죽은 것 같았다.
그럼 그것도 진주가 될 수 있나요?
그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 과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기에
그대로 진주 더미에 넣었던 손을 뺐다.
바깥으로 밀려난 진주 한 알을
몰래 손안에 쥔 채였다.
여행 내내 나는 그것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가
깔고 앉기도 하고
다시 꺼내 보기도 하고
잊어버리기도 하고
그런데 이게 아직도 있네!
생각나면 꺼내 보며 깔깔 웃다가
얌전히 가방 속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그것을
때론 먹고
때론 자기도 하는 나의 방
나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이게 영혼인가
인조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돋보기를 대고 들여다보면
수천만 개의 망점으로 이루어진 진주.
나는 그 흑백의 그리드 사이에서
누군가의 오른손에 쥐어진
작은 나무 십자가를 본 것 같다.
언제나 상황은
더 나빠질 수 있고
울고 있는 그녀는
내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말총머리의 여인일까.
아니면 신문을 읽고 있던 여인일까.
철문 앞의 여인들이 이런 실루엣이었던가?
반세기가 더 지난 듯한 이 이미지는
이제 막 삶이 고단해지기 시작한
모르는 젊은 여인을 보여준다.
내 기억은 어디선가 여러 번
밟혀 죽은 것 같지만
지나며 분명 본 듯한
바로 그 여인을.

2023년 1월 2일 월요일

22년 12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0
―――


이달의 총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해당사항 없음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해당사항 없음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282,987원 (0원 + 282,007원 + 493원)

2023년 1월 1일 일요일

입하장부 매뉴얼

입하장부는 곡물창고의 자랑입니다. 웹 화면에서는 옆에, 모바일 화면에서는 아래에 위치해 있습니다. 곡물창고 사용자는 입하장부를 통해 입하된 글 목록을 확인하고 쉽게 열람할 수 있습니다. 이런 종류의 '글 목록' 기능은 그 필수성이나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구글 블로거에서 기본 지원이 되지 않고 있으며, 사용자가 HTML/자바스크립트 등을 이용하여 자체적으로 제작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적잖은 블로거들이 이런 종류의 블로거 꾸미기에 관한 노하우를 공유해주고 있습니다. 곡물창고의 입하장부는 [링크]에서 제시된 것을 약간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작자의 빛나는 공유 정신에 감사드리며, 필요로 하는 분께 도움이 될까 싶어 여기에 밝힙니다. 앎은... 공유되어야 한다...! 새해를 맞이해 입하장부의 사용법을 아래에 기록해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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