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6일 월요일

하녀가 되는 수업

옆 사람이 하녀가 되고 싶다길래 나도 얼떨결에 하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헛간으로 들어와 하녀가 하는 일을 하려고 보니 내가 입은 앞치마의 무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앞치마의 무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일거리를 앞에 두고 딴청을 부리기엔. 나는 정식으로 하녀가 된 건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래서 그런지. 하녀는 봉급을 받고 가사 일을 한다. 내가 일하게 될 수도 있는 집은 내 마음보다 큰 것 같았다. 어쩌면 내 손톱보다도 작을 수도 있디. 그에 비해 이 헛간은 내 좁은 마음보다 더 밴댕이이고 그리고 살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별의별 일거리를 만들려면 만들 수 있음을. 그래서 친숙해 보였다. 우선은 쟁기 같은 농기구가 있었는데 녹이 슬락 말락 했다. 반질반질 윤을 낼 수도 있을 텐데 이곳의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올라 지금 당장 하녀로서 행세하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다음 주에 나는 정식으로 하녀가 된다. 하녀의 신분을 갖게 된 사람으로서 일기를 써가야 한다. 어쨌든 간에 나 말고도 하녀를 지망한 사람이 몇 명 더 있었으므로 그들의 일기를 따라 한다는 방법도 있었다. 헛간 안에서 아무것도 건들지 않은 채로 나는 방을 치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녀 지망을 한 이후로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방을 치우는 것이었고 그것은 인간의 조합 안에 하녀나 사용인 등이 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멋지고 유용한 일인지에 대한 감상을 내게 남겨주게 되었다. 여기엔 하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진장 많은 것 같은데. 그러나 내가 일을 대신해 줘서 조금 편해지더라도 그게 안 편할 수도 있다. 무언가 일을 해내는 루틴이 있는데 그걸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서 알았다. 그런데 농사는 누가 짓는 거지? 이건 왠지 근본적인 물음인 것 같으므로 그냥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하자. 헛간에서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건강에 안 좋을 수도 있으므로 그런 일을 하지 말라는 기록을 보며 나는 빙그레 웃었다. 기왕 하녀가 됐는데 이렇게 일거리가 많아 보이는 곳에서도 손을 쉬고 있어야 하는구나. 이사야는 날 경계하지 않는 것인지 저쪽에서 잠든 채다. 이사야는 몸집이 저리 작아 보여도 아주 듬직하다. 가끔 쥐를 잡아오는데 그 쥐는 아마 누구에게 주려고 잡아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사야를 깨우고 싶었으나 그러진 않았다. 이사야와 할 수 있는 건 같이 뜀박질한다는 것이 있다. 나는 뜀박질을 좋아한다. 같이 하녀를 하기로 한 같은 수업 듣는 사람이 헛간으로 들어왔다. 여기서 다이닝을 한 적도 있었대요. 눈동자를 굴리면서 조금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인 그분에게 나는 말을 걸었다. 여기에서요? 식당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네, 그렇죠. 그런데 과거에서 온 악마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던데……. 아마도 예전에 여기에서 연재된 시리즈에 나오는 악마가 아닌가 싶었어요. 페이지에는 이제 안 올라와 있군요. 그러면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것이었나? 나는 약간 기분이 고조된 것 같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나도 그분처럼 눈동자를 굴렸고 이번엔 그분이 내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다음 주까지 써야 하는 일기 쓰셨어요? 아뇨, 아직 못 썼어요. 그래서 오늘 한번 써보려고요. 옷을 한 번 바꿔 입었다는 것만으로. 그러니까 나란 인간의 조합에. 하녀 같은 키워드가 추가됐다는 게 너무 이상해요. 그리고 이 헛간은 제가 못 치운 것들이. 그리고 아무도 못 치운 것들이. 방 정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앞으로도 치워지지 못할 것들이 많은 것 같아서 너무 친숙해 보이고 안온한 것 있죠. 왜 사람들이 방을 치우지 않는지 알겠어요. 그게 편해서 그래요. 그리고 왜 나도 제 앞의 분을 따라서 하녀를 하겠다고 한 건지도 알겠어요. 그게 제 마음에 편한 거죠. 치운다는 건 사실 사물들을 자기가 원하는 위치에 갖다 놓는 거니까. 사실은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죠. 하지만 너저분한 건 치워야 하는 것이고. 여기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모든 물건들이 이사야가 원하는 배치대로 되어 있는. 사람이 아닌 동물이 생각하는 배치. 그게 아마도 여기가 친숙해 보였던 이유 중에 하나일 것 같아요. 정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안 된 것 같기도 해서 이상해요. 아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없을 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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