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31일 수요일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後)

이건 어떨까. 실험용 쥐 rat을 ‘랫드’라고 부르는 과학계의 해괴한 표기법에 대해 황당해하는 이야기를 봤다.
가장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과학용어 중에 실험용 쥐 rat를 “랫드”라는 해괴한 표기로 쓰는 전통이 있음. 왜 이걸 랫드라고 쓰는지 아무도모름. 근데 교과서 같은데도 저렇게 쓴 책많음. 심지어 국가 법령같은데서도 저렇게 씀. 그냥 단체로 이상한 표기인걸 다 알면서도 그냥 다같이 틀리는거임
@JaesikKwak. 2022년 10월 6일, 오후 10:38. Tweet.
‘랫드’라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어쩌면 내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 신비에 대해 약간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직업적으로 이런 일에는 나도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다. ‘랫드’는 물론 일하다가 종종 마주치는 단어다.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어이가 없었다.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또한 책의 바깥과 안의 말이 서로 통할 수 있도록, 정해진 규범을 따르거나 규범을 정해 고치는 것이 우리 교정공의 일이다. 기본적으로 ‘랫드’ 같은 게 나오면 표기법에 맞도록 다 고쳐야 맞는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이거를 왜 맘대로 고쳤느냐고 따지는 교수님이 계실 수 있고, ‘학술적’ 영역이므로 무엇이 표기법에 맞는지부터가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그 누구도 나 대신 싸워 주지 않는다). 실상을 말하자면 교재 한 권에서 rat 하나를 놓고 그 번역어로 ‘랫드’, ‘래트’, ‘랫트’, ‘랫’, ‘시궁쥐’, ‘쥐’ 등등으로 다 다르게들 쓴다. 아예 rat이라고 그대로 쓰는 사람도 있다. 세계로 뻗어 나가려면 한국어의 족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 이게 교수님들끼리만 통일을 못 하고 있는 거면 그래도 행복한 경우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한 교수님이 맡았다 하는 한 장 안에서도, 분명히 한 사람이 썼어야 하는 한 문단 안에서도, 심지어는 바로 옆 문장에서도, 나로서는 다르게 쓸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는데 다르게 쓰시는 (자연히 얼굴을 찾아보게 되는) 분들이 적잖다. 즉 대부분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 아예 처음부터 쥐털만큼의 관심들도 없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책 한 권에서 ‘랫드’로 통일되어 있기라도 하다면 그나마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rat은 ‘랫드’라고 옮긴다고 하는, 어쨌든 이 책 안에서만은 통하는 약속을 세우려는 누군가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교정지에 다음과 같은 메모를 달아 물어봐야 한다.
‘rat’의 번역어가 ‘랫’, ‘랫드’, ‘래트’ 등으로 통일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요?
만약 전체 감수를 맡아 끌고 가는 교수님이 없다면, 그 메모를 본 교수님들이 다 같이 모이려 들 수도 있다. 모여서 회의한 끝에 어떤 결과가 나오기까지 우리는 기다려야 하고, 그 결과가 나오면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 어쨌든 출간일은 정해져 있고 우리에게 달라붙어 있는 책은 한 권이 아니다. 시간이 정 부족하면 나 외에 다른 외주 교정자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구한다 해도, 그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달라 하는 것은 결국 내 일이다. 해 달라는 대로 그가 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처음부터 아예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멋대로 고쳐도, 또는 전혀 안 고쳐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나는 항상 그런 유혹에 시달린다. 어쨌든 그 시점에 전체를 읽어 본 사람은 나 혼자다. 그럼에도 각자 자기 생각들이 있으신 여러 교수님들 사이에서, 무슨 교통정리 비슷한 것이라도 가능한 나이 지긋하신 교수님으로부터 교정공이 받은 답이 ‘랫드’라면, 이 구조 속에서, 그것은 그냥 랫드면 그만인 것이다. 랫드라고요? 왜죠? 이렇게 되물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전에는 있었을까? 나는 모른다. 사장님은 그냥 교수들이 해 달라는 대로만 하라고 말한다. 네가 입씨름을 하려고 들지 말고, 교수들이 해 달라는 대로만 해라. 너는 시간만 맞춰라, 너의 업무보고에 따르면 너는 지금 하루에 몇 쪽을 보고 있는데, 어쨌든 네가 하루에 몇 쪽 이상 봐야 우리가 수지타산이 맞고…….

자, 사장님은 나를 왼쪽으로 당기고 동료님들은 나를 오른쪽으로 당긴다. 원청업체는 앞에서 나를 당기고 교수님들은 뒤에서 나를 당긴다. 다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나를 아래로 당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위로 당긴다. 나는 내가 보고 있는 교정지를 양쪽으로 동시에 당기고 싶다. 이것이 내가 만들고 있는 책이 당하고 있는 얼차려의 구성이고 가련한 예비-책들이 처한 상황이다. 말 못하는 책들, 그러나 만들어져야만 하는. 내가 교정 보고 있는 원고 외의 모든 것이 내 눈과 손과 마우스 포인터를 당긴다. 나도 당연히 업무시간에 몰래 트위터 합니다! 랫드가 어쩌고 하는 얘기도 그러다 본 것이다. 아니, 어떻게 사람이 쉼 없이 교정만 봅니까? 내가 항상 하고 싶은 말: 당신이 한번 해 보세요, 네가 해 보세요! 눈앞이 깜깜해지도록 아침부터 밤까지 한번 봐 보세요! 그리고 항상 하는 생각: 이래서는 어떤 책임 비슷한 것이 나올 만한 구조가 아니다. 무슨 책임? 최선의 의사소통을 시도할 책임? 나와 교수님 사이에, 책과 학생들 사이에, 말하고 싶은 사람들, 책과 책들, 화면과 화면들 사이에? 왜 이렇게 되었는지 말해 보라 하면 다들 저마다의 그럴싸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장님에게는 사장님의 이유가, 편집자에게는 편집자의 이유가, 교수님에게는 교수님의 이유가, 교정공에게는 교정공의 이유가, 없을 리 없다. 어떤 분들은 한마디도 더하실 필요가 없는 분들이신지도 모르지만, 한 말씀에 필요한 값이 다른 분들이신지도 모르지만, 학문에 열심이시라 언문의 필요를 등한시하시는 분들이신지 아니면 그 반대이신지, 그런 것은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바로 그런 필요들의 분배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된 데에 누구를 탓할까? 다 나의 탓이다! 내가 그 분배들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인 한 이 오류들은 바로잡히기 어렵다. 그러면 더 나은 내가 되는 것이 답일까? 내가 더 수준 높은 교정공이 되는 것이? 아니면 교정공보다 나은 것이 되는 것이? 나 교정공의 눈에, 여기에서 분명하게 틀린 것은 우리가 우리 되기에 실패하고 있는 이 사태다. 책은 다름 아닌 우리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정공처럼 말하자면, ‘모양이 어색하다’. 사랑하는 교수님들, 내가 우리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내가 부르면 그렇게 됩니까? 내가 분배될 수만 있다면 나는 사라져도 좋다.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거의 다 한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는 데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내가 맞게 했나? 내가 내게 주어진 지면에, 일생에 있을까 말까 한 기회에, 필요한 말을, 해야만 하는 말을 적절히 늘어놓은 게 맞나?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말한 게 맞나? 내가 매일 보고 있는 어떤 원고들과도 같이, 헛되이 글자로 똥칠을 해 버린 건 아닌가? 아니, 지면이 굳이 나에게 필요한가?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 나 교정공이란 이를테면 사라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교정공이 개입할 수 있는 지면은 오늘날 점점 좁아지고 있다. 또는, 교정공이 개입할 수 없는 지면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아와 어의 다름도 점차 사라지는 듯, 아와 어가 다르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들과 어와 어가 다르다고 우기는 사람들 사이의 다름도 사라지는 중인 것만 같다. 가끔 우리가 견딜 수 없이 산산조각이 났다는 생각이 든다. 합쳐졌던 적이라고는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만 같으니 이상한 생각이다. 대체 어떻게 감히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겠니? 말하는 얼굴들을 보면 그야말로 박살이 나 있다. 전에도 이랬던가? 이러지 않았던가? 우리 산산조각의 양상이 과연 바뀌는 것이라면 산산조각을 대하는 우리의 양상도 분명 바뀌는 것이겠다. 내가 지금 맞게 대하고 있나? 글자들은 자신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박살 난 우리 사이에 쌓이고 녹고 쌓이기를 반복하며 서로 합쳐지려고 이어지려고 이를 악문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틀림없이 그렇다.

2024년 1월 30일 화요일

아 다르고 어 다른 세상에서(前)

나는 절망한 교정공이다. 정확히 쓰자면 절망했던 교정공이다. 이제 그런 시기는 지나갔다. 이 일에 대한 나의 마음은 언제부터인가 결딴이 나 버렸기 때문에 이젠 괜찮다. 우리 사랑하는 교수님들의 원고를 교정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아무 탓할 것이 없다. 다 나의 탓이다. 교수님들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나의 탓! 만약 교수님들께 한마디 전할 수 있다면 뭐라고 할까? 지난 몇 년 동안 여기에서 일하며 그런 순간을 자주 상상해 봤다. 교수님들께 감히 한 말씀 올리는 순간. 하지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슨 간절한 말씀 한마디 드리는 건가? 잘 모르겠다. 말이 왜 필요하지? 교수님들께 얼차려를 드리고 싶을 뿐 아닌가? 오, 교수님들, 이쪽으로 모여 주세요! 여기 줄 맞춰 보세요! 하나에 교수도, 둘에 사람이다! 그 왜 요즘은 다들 누군가에게 얼차려를 주고 싶어하지 않나? 안 된다면 자기 자신에게라도. 내가 나 자신에게 되뇌는 말. 하나에 교수도, 둘에 사람이다! 나는 무슨 신세 한탄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얘기를?

내가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책들은 대개 대학 학부의 교재다. 번역서도 있고 저서도 있다. 이걸 정말 교재로 쓰는지 어쩌는지는 모른다. 머리말에서 쓴다 하니 쓰는가 보다 할 따름이다. 쓴다고 해도 안 쓴다고 해도 나는 묘한 기분에 휩싸인다. 내가 교정한 책이 책꽂이로 들어가 몇 해 묵은 다음 중고로 팔리거나 폐지로 버려질 때까지 절대 펼쳐지지 않는 상상을 가끔 해 본다. 그것은 고통스럽다. 학생들이 책에서 말도 안 되는 오류를 발견하는 쪽이, 그래도 그보다는 낫다. 그 학생은 교수님께 이 책의 여기 이 부분이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인지 물어볼 수도 있다. 그러면 교수님은 출판사 탓을 하면 된다. 나라도 출판사 탓을 할 것이다. 너무 짜릿한 상상, 강단에 서서 이 책의 어느 부분이 어떻게 틀렸는지 설명하는 우리 교수님들에 대한 상상! 내가 눈에 특별히 불을 켜고 교정해야 하는 역·저자 소개를 보면, 이분들은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셨고 무엇을 옮기셨고 무엇을 쓰셨고 무엇을 받으셨고…….

그런 훌륭한 우리 교수님들, 자신이 쓴 원고에 마땅히 전문가 대여섯 정도가 일거에 달라붙어 최상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리라 여기시는 듯한 우리 훌륭한 교수님들 일부의 상상과 달리, 나 한 명의 교정공은 보통 두어 권의 교재를 동시에 본다. 짧은 거 한 권이 500쪽쯤 된다 치면 50쪽씩 10개 장, 대여섯 교수님들이 두 장씩 나눠 맡으므로 나는 열댓에서 스무 분 교수님들의 원고를 한 번에 늘어놓고 보는 셈이다. 그렇게 늘어놓고 보면 교수님들 사이의 문장 수준에 차이가 있다. 아마 A부터 F까지 점수를 매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정녕 이 문장을 한국 최고의, 뭐 최고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양 지성인이라는 이가 썼단 말인가 싶은 그런, F조차 아까운 경우도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 나라 학문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건가,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교수님이 보내는 이메일이나 메모 따위를 함께 살펴보면 이것은 이 교수님의 문장이 분명하다. 아마도 한국어에 원래 서툰 분이시거나, 원래 학문과 문장은 아주 별개인가 보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고, 그래서 내가 있는 것이다, 내 일이 있는 것이고, 하여튼 내가 찰떡같이 알아들으면 된다, 어떤 개떡이 앞에 놓여도,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보다도 긴 장탄식이 나오게 만드는 것은 아무리 봐도 한 인간의 문장이 아닌 경우다. 어떤 교수님들의 원고는 아무리 봐도 거기 적힌 이름보다 많은 사람이 쓴 것이 분명하다. 나는 그것을 모를 수 없다. 도대체 교수님 아닌 누가 그 원고들을 썼단 말인가? 그것은 모른다. 대학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이 아실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이 썼다면 그나마 다행?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은 게 분명한(읽어 봤다면 인두겁을 쓰고서 그걸 그냥 보낼 수야 없으므로), 번역기의 일차 생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뭔가를 원고라며 넘기는 교수님들도 있다. ‘번역 엔진이 역자 서문을 써야겠다’와 ‘차라리 번역기라도 돌려줬으면’ 사이에서 나는 입을 다문다. 이 학부 교재라는 것은 아예 별거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들 하시는 걸까? 더 중요한 책은 이렇게 안 하실까? 아니면 이 교수님의 원고는 일괄적으로 다 이런 식인데, 단지 책의 중요도에 따라 교정공의 수준이 달라지는 걸까? 여러모로 봤을 때, 적어도 교재를 쓰는 일에 있어서는, 이 교수님들이 노고에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도대체 얼마를 드려야 노고에 합당하다고 여기실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좀 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유독 고통스럽게 하는 교수님들의 얼굴은 한번 검색해 본다(하여튼 스무 교수님들 중 두엇의 얼굴은 꼭 검색해 보게 된다).

대충 번역기 한 번 돌린 것을 원고라며 보내는 등의 일이 있으면 교수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한다. 서로 싸우기라도 하면 차라리 다행이고, 대개는 서로에 대해서든 책에 대해서든 큰 관심도 없다. 아니, 다행인 게 맞나? 교수님들이 책에 세세한 관심을 갖는 편이 좋나? 저마다 나서서 이 교수님은 이렇게 해 주세요, 저 교수님은 저렇게 해 주세요, 이러면 내 일이 두 배 세 배가 될 뿐……. 어쨌든 출간일은 정해져 있다. 내가 교수님들과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상사 또는 원청업체의 편집자가 대신 싸워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잠깐, 원청업체라니? 말 그대로 나는 이 일을, 출판 편집을 대행하는 회사에서 하고 있다. 원청업체인 출판사들로부터 일을 받아서 한다는 이야기다. 교수님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어르고 달래고 일정을 조율하는 편집자 역할은 그쪽 편집자와 내 상사가 나눠서 맡는다. 내 상사는 원청업체와 교수님들에게 그때까지는 이래서 저래서 안 된다 하소연한 다음에 우리 사장님한테 깨지는 사람이고, 원청업체 편집자는 이때까지 이거 해 주세요 저거 해 주세요 한 다음에 이것도 제대로 못하느냐고 핀잔주는 사람들이다. 언젠가 하도 화가 나서 찾아본 원청 홈페이지에는 무슨 해외 굴지의 교육 계열 어쩌고의 자회사라 적혀 있던데…… 입맛이 달아나며 더 알고 싶지도 않아졌다. 그러니까 내가 만드는 책의 출판사명 자리에는 원청업체의 이름이 들어가고, 책에 이름이 올라가는 사람은 역자 또는 저자인 교수님들 그리고 원청업체 쪽 편집자다. 나 교정공은 힘써 만든 것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처지에 있다. 애당초 몇이나 되겠나? 나는 무슨 신세 한탄을 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해야 하는 말은 무엇인가?

계속

2024년 1월 28일 일요일

실명

 내 본명은 김거울이다. 사실 그건 내가 예전에 만난 어떤 사람의 이름이다. 잘 모르는 사람의 이름이다. 그 사람은 13년 전에 잠깐 만난 적이 있다. 그 사람은 노랗게 탈색한 바가지 머리를 하고 있었고 자신의 취미가 잘 잊어버리는 거라고 말해서 몇몇 사람들이 웃었다. 그 뒤에 내가 내 소개를 했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나도 저렇게 재미있게 소개를 해서 사람들을 웃기면 좋았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지금 침대에 누워 있고 잠을 자려고 애쓰는 중인데, 갑자기 그 사람이 생각났다. 13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을 말이다. 그냥 한 번 스쳤을 뿐인 그런 사람을 갑자기 생각하게 되는 건 왜일까. 그냥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 본명은 김거울이다. 저녁에 A의 집에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어떤 협회의 대표인데, 나는 그 사람을 실제로 만난 적이 있었고, 하지만 좋은 인상을 갖지는 못했고, 하지만 그 사람은 실력 있는 사람이며, 그 분야에서는 최고라고 볼 수 있고, 근데 그 최고라는 건 누가 붙여주는 건지? 아무튼 그 사람은 일을 잘하기로 소문이 났으며, 자신의 일에 대한 홍보도 적당히 하고, 아무튼 실제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똑 부러지는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그 좋지 않은 인상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 사람이 나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대화를 중단하고 사라져버려서 그렇다고 했다. 중단을 하기 전에 어떤 말도 없이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사라져버리면서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A는 그 사람이 단단한 사람이라고 했고, 나는 단단하다기보다 배려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A는 그런 단단함이 없으면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가지 못했을 거라고 했다. 나는 단단한데 배려가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A는 그 사람이 그 순간에 어떤 이유로 그런 행동을 했을 수 있고,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일 수 있으니, 한순간의 태도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 건 아니고, 그 사람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인상이라는 건 바뀔 수 있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 건 사실이다. 사람들이 칭찬하는 그 사람의 업적 같은 것에 말이다. A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업적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게 왠지 모르겠지만 힘들다고 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사람들은 아무 말 없이 밥을 먹었는데, 대화가 끝난 뒤에 정신을 차려보니 접시가 비어 있었다.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오직 네 독자를 위한 여덟 성물 이야기 후일담

― 22년 8월 7일부터 24년 1월 21일까지의 플레이로 완결된,
TRPG팀 『너드트레인 1호선』 언리미티드던전 캠페인에서 미처 다뤄지지 않은 후일담


신앙을 버린 알료샤
폐허가 된 로시야로 돌아가 마을 재건에 힘씁니다. 부서진 성당을 고치고 이뤼가레의 눈을 다시 전시합니다. 로시야는 여덟 성물 이야기의 시작점이자 프리예로의 기착점으로 부흥합니다.

전대의 대마녀 미르지요
로시야에 약초상점을 개업하고 죽은 혼들을 달래줍니다. 알료샤에게 악마학 지식을 가르쳐줍니다. 가끔 대삼림에 찾아가 따부 등 요정들과 만납니다.

안내인 셰르
로시야에서 미르지요를 도와 약초꾼으로 일합니다. 테베의 세 기사의 발자취를 따르는 별의 순례객들을 위해 로시야-대삼림 가이드로도 가끔 나섭니다. 가정을 이루고 예레흐 남작의 표장을 가보로 간직합니다.

대삼림 요정 따부
미르지요가 떠난 요정 마을에서 자치위원장으로 뽑힙니다. 리더십을 발휘하여 서슬멧돼지 및 달혈족 등과 대삼림평의회를 조직, 프리예-로시야의 마법오솔길을 관리합니다.

고블린 키엘키엘
프리예에서 자라며 공용어를 배웁니다. 동서부를 두루 다니며 쓴 고블린여행기로 유명해지며 훗날 만자트의 조수가 됩니다.

천사통역 무하필
마법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인간이 아니었음을, 아니면 적어도 반은 인간이 아니었음을 깨닫습니다. 대드루이드 수호자가 되어 수은의 오아시스를 지킵니다. ‘수호단’ 드루이드 제자들을 양성합니다.

어린이 드래곤 가나슈
혹시 있을지 모를 동족들을 찾아 북쪽으로 모험을 떠납니다.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심연지기 이그라디
오펜에게 감화되었습니다. 오펜을 따라가 마이라에서 살며 마술을 배워 새로운 마술사 길드장이 됩니다. 인-엘 우호에 힘씁니다. 오펜의 연인이 됩니다.

궁기사 탈타미쉬
가나슈와 함께 북쪽으로 떠납니다. 도중에 가나슈와 헤어져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문이 들려옵니다.

마술사왕 만자트
운명성 마법진에서의 경험은 만자트의 지식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습니다. 공중섬으로 돌아가 보석내장을 연구하며 언데드 조수들과 함께 저술에 힘씁니다. 지나치게 많은 장서량으로 인해 공중섬은 그냥 섬이 됩니다. 도서관왕 만자트로 불립니다.

율리아-폴라
본스테드를 도와 전쟁고아들을 돌보고 난민구제에 힘씁니다. 테베의 성녀로 알려지며 테베 대주교를 거쳐 중심교회 추기경까지 오릅니다. ‘알료샤와의 문답’이 뭇 종교인들의 전설적인 필독서로 전해집니다. 운명성의 마법진에 의해,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성인의 눈’으로 지정됩니다.

이방도둑 쁘라쳇
얼마간 키엘키엘과 함께 여행합니다. 먼 남쪽 고향 섬으로 이야기를 가지고 돌아갑니다.

테베의 테시우스 공
율리아-폴라에게 청혼하나 거절당합니다. 끝까지 남부를 평정하지는 못합니다. 생의 마지막 즈음에는 수정구로 지옥의 공주와 대화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유능하진 않았지만 호인이었던 군주로 기억됩니다.

마술사 길드장 오펜
마법을 잃은 후 마술사 길드의 명예 고문이 됩니다. 세계는 평화롭고, 이그라디의 얼굴을 보기만 해도 행복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베라의 자리도 있습니다.

바드천하일 라다가마
모든 일이 끝난 뒤 얼마 가지 않아 영면에 듭니다. 죽기 전 중심교회에 마이라의 새로운 군주로 본스테드를 추천합니다.

와젠의 마담 루왈라
와젠이 순례객들로 북적거릴 때 수완을 발휘합니다. 와젠의 장로가 됩니다.

코룸의 짐꾼 마치
자신이 만들진 않았어도 ‘여덟 성물의 노래’를 가장 잘 부르는 가수로 인정받습니다. 대륙 곳곳에서 쇄도한 공연 요청에 응하며 한동안 바쁘게 산 다음 코룸으로 금의환향하여 다시 짐꾼이 됩니다. ‘역시 음유시인은 적성에 안 맞아.’

피조물의 전당 박물관장 헬가
서부군에 억류되었다가 풀려난 이후 집념과 불굴의 의지로 전 대륙으로부터 수장고 파괴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냅니다. 파괴된 수장고를 보존하여 ‘테베의 세 기사와 금강석 두개골’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순례객들의 필수 코스를 만듭니다. ‘저주받은 서슬멧돼지 어금니’는 피조물의 전당 최고의 전시품 중 하나입니다. 죽은 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박물관장으로 방부처리되어 유리관에 안치·전시됩니다.

미우-미우
북쪽에서 전설의 붉은 새 한 쌍에 대한 목격담이 전해집니다. 그냥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사당지기 베르감
아들과 화해합니다. 베라에게 에피르단 사당지기 자리를 맡깁니다. 잠시 린천에 살다가 죽기 전에는 돌아옵니다.

어부왕 바바 우르즈
크루즈 사업이 생각처럼 잘 풀리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를 린천으로 데려왔습니다. 아버지와의 크루즈 여행은 즐거웠습니다. 조선소는 협동조합이 됩니다.

묘인 낚시꾼 한지
서부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지하실에 숨겨주었습니다. 평화로운 세계에서 별일 없어도 행복하게 살며 천수를 누립니다. 안탈리아에는 한지가 낚은 최대어 실물 크기의 대리석 조각이 남았습니다. 운명성의 마법진에 의해, 그의 낚싯대들이 ‘어부왕의 왼손들’로 지정됩니다.

천재마법사 카롱
어느 날 갑자기 감옥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행방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던전도둑 누야
오펜의 소개로 마르타의 마술사 길드 지부장이 됩니다. 본스테드로부터 받은 본스체인 지분 절반 덕에 이미 부가 차고 넘치지만 가끔 익스트림 던전 탐험을 즐깁니다. 보물은 남몰래 좋은 곳에 사용합니다.

렉상의 엉터리마술사 조른
렉상의 마술사 길드를 펍으로 개조합니다. 사업을 크게 벌릴 수도 있겠지만 만족을 압니다.

갱염의 공주 예레흐
지옥에서 여전히 지상으로의 재기를 노리며 일을 꾸밉니다. 어찌어찌 테시우스에게 수정구를 전달하는 데 성공하고 그 이야기가 예레흐전서로 남겨집니다. 지상에 약간의 숭배자들이 생깁니다.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럽습니다.

유령요정 예언자 셸라
긴 세월이 지나 고향숲은 다시 살아납니다. 셸라와 유령요정들 역시 다시 몸을 얻습니다. 로프의 손가락뼈를 깎아 뼈 구두를 만들고, 셸라가 그걸 신고 추는 만남의 춤 의식은 그들 사이에 대대로 전해집니다. 운명성의 마법진에 의해, 그것은 ‘대마녀의 발목’으로 지정됩니다.

2024년 1월 18일 목요일

부채

굉장히 불편한 자리에 앉아 있다. 큰 책상에 사람들이 서로 마주보고 앉는 구조다. 이런 자리에서는 집중하기가 어렵다. 그리고 내가 불편해하는 것은 내가 뭘 쓸 때 누군가가 보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이 내가 뭘 쓰는지 궁금해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 줄도 쓸 수 없다. 그걸 의식하면 말이다. 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평소에도 굉장히 대답을 시원시원하게 빨리 하지 못하는데, 글을 쓸 때도 굉장히 고민해서 쓰게 된다. 그런 일기는 나중에 읽어도 별로 감흥이 없다. 너무 멈추면 말이다. 요즘은 밤에 자꾸 잠을 설치게 된다. 잠을 설치게 되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 난다. 부채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생각했다. 그는 예쁘고 글을 잘 쓴다. 그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는데, 머리를 말리는 데 아침마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하지만 그는 머리를 자를 생각은 없다. 머리카락 말이다. 그는 헤어드라이어를 끊은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것을 기념하고자 아침에 특별히 맛있는 원두로 커피를 만들었다. 이 원두는 어느 나라에서 왔다. 그는 그 나라에 가 본 적이 없다. 헤어드라이어를 끊은 이후로 그는 많은 색과 모양의 부채를 사용했다. 처음에 그는 특정한 부채를 선호해서 썼는데, 접을 수 있고 펼칠 수 있는 그런 부채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는 그냥 아무런 부채를 쓰기 시작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부채로 머리를 말리는 행위이지 부채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그가 지금 쓰고 있는 부채는 길에서 나눠주는 부채이다. 영어학원 광고가 적힌 부채. 그는 머리를 말리면서, 그가 한때 알던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영국에서는 맥주를, 미국에서는 독한 술을 마시며, 주로 두바이나 파리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미국과 영국을 오고 가던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가 한국으로 돌아와 영어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했고, 그는 갑자기 로마 제국의 부흥과 멸망이라는 세계사를 배우던 때에, 사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런 문장이 떠올랐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예전에 아끼는 부채를 들고, 고대의 유적지 같은 걸 보고 갔을 때, 그는 유적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났고, 한동안 유적지 구석에서 마음을 추스려야 했는데, 그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영어학원 부채로 머리를 말리며 느끼게 되는 건 왜일까 하는 생각으로 머리를 말린다.

2024년 1월 16일 화요일

뒷산

양력 해가 바뀌었다. 7년을 넘어섰다. 작년 결산은 하지 않았다. 홀수 해에는 어쩐지 그렇게 되는 것 같다. 오전 동안 관리인 프로필 그림을 바꾸고 입고현황판도 고친 다음 어쩐지 마음이 동해 뒷산에 다녀왔다. △산이다. △산은 필시 어떤 전설이 깃들어있을 법한 모양새로, 갑작스럽다고나 할 위치에 엎드려 있다. 그 형상이 집짐승처럼 온순하고 부드러워 정감이 간다. △산에 대해서는 여즉 아무 전설도 들어보지 못했다. 없을 수는 없을 텐데. 누가 알까? 누구네 산이라는 이야기도 들은 바가 없다. 누구네 산이더라도 무슨 뜻일까. 무주공산? △산에서 본 것은 겨울 나무, 겨울 바위, 겨울 수풀, 겨울 오솔길, 겨울 무덤, 겨울 창고 건물의 정겨운 모양이다. 저 나무는 어떤 나무고 이 바위는 어떤 바위다, 하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면서 내려왔다. 볼끼는 하고선 장갑을 끼지 않아 조금 후회했다. 꺾어 온 억새를 눈앞에서 흔들어봐도 쥐잡이는 별 관심이 없다. 죽은 억새라서? 나간 사이 쥐를 쫓아 한참 뛰어다녔는지도 모른다. 이불 덮고 잠깐 누운 다음에, 먼저 손과 발을 씻은 다음에, 쥐잡이를 위해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고 싶다. 내가 먹을 떡국을 끓이면서. 우리의 몸은 일터에 있어도 머릿속의 냄새는 불굴이다. 쥐잡이의 머릿속, △산의 머릿속에서도.

2024년 1월 14일 일요일

괴담 같은 것

어두운 물이 흐르는 다리
한밤에 혼자 아니고
둘이 지날 때
이런 얘기 한다
몇 년 전 저기 늪지대에서
시체 하나 떠오른 적 있대
여기 사람들은 강가로 나올 때마다
아, 이 밑에서 살인난 적 있지,
떠올린대
동행은 두 손으로 주먹 말아
긴 망원경 만들고
낯선 동시에 무언가 있었을지도 모를
검은 물 한가운데를 바라본다
그 얘기, 나도 들은 적 있어
구급차도 왔었대
반쯤 상의가 벗겨져 있었대
들것으로 실려나간
물에 불은 여자의 시체
목격한 사람도 많대
조금씩 커지는 이야기는
우리가 걷기 좋은 핑계 같다
평소엔 쓸 수 없던
동행의 망원경을 빌려
정말?
정말이야?
길지 않은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만
서로 묻고 답하는 밤
너무 무서운 밤
그런데 동행이 자꾸 웃는다

2024년 1월 9일 화요일

아키라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달리고 있다.

커다란 배기통과 높이 솟은 손잡이,

검은색 가죽의 레이싱 슈트를 입고

아키라는 어느 카페에 들어선다.


자주색 테이블과 의자,

검은색 커피 머신.

아키라는 커피 머신 앞에 가서 커피를 내린다.

곧이어 다 내린 커피를 들고 테이블에 앉는다.


가죽의 삐걱이는 질감이

불편해 보이지만

아키라의 몸짓엔

주저함이 없다.


석양이 든 저녁,

창밖은 강렬한 소음과 배기 연기가 희끄무레하게 나고 있고

먼저 와 있던 사람이 스마트폰을 꺼내

그것을 들여다본다.


조금 뚱하고

무미건조한 표정이다.

다른 사람들도 전부 스마트폰을 본다.

이빨로 껌을 질겅이며.


아키라도 용병이 될 수 있어?

아키라가 지닌 브로치 안의 여아가 묻자

될 수는 있지만 안 할 거야, 그런 일은.

아키라가 답한다.


폭력에 대한 암순응들이 자주 보이는 시대.

그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사이버펑크의 느낌은

아직 나지 않는다.

2024년 1월 8일 월요일

16

  

카페에 왔다 카페는 처음 오는 카페다사실 지나가면서 많이 봤는데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들었다그런데 오늘 이상하게 여기를  지나가보고 싶었고지나가다 괜찮으면 들르고 싶었고지나가다가 보니 괜찮은  같아서 들렀다오늘은 그냥 집에서 나가서 목적지로 가는 동안 아무렇게나 걸어보고 싶었는데아무 곳이라고 해봐야 사실 그렇게 아무 곳은 아니다 주변은 이미 어느 정도 알기 때문이다자리를 바꿨다 자리는 정말 맘에 든다내 마음에 드는 자리는 항상 쪽이 벽이나 유리창이어야 하는  같다구석 같은  말이다그리고 정면은 바깥을   있는 쪽이면 좋다카운터와 등지거나 멀리 떨어진 곳이면 더욱 좋다왠지 고립된 느낌이 드는 곳이면 더욱 좋다하지만 그런 자리라고 해도 실제로 앉아보면 계속 앉아 있고 싶은 마음이  수도 있고왠지 불편할 수도 있다그러니까  자리에 앉아 보기까지는 전혀 모르는 것이다이상하게 사람들과 시선이 교환되고 그래서 불편한 기분이  수도 있다지금까지 많은 카페에 앉아서 조용히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꺼내 글을  적이 많다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그게 불편했던 적도 있다어느 카페에서는 책이  읽어지고 어느 카페는 커피가 맛있다사실 커피 맛있는 곳은 많이 아는데그냥 편하게 앉아 있을  있는 카페는 최근에  적이 없는  같다 주위에 그런 카페가 없기도 하고돈을 아끼기 위해 집에서 마신 적도 많다하지만 이제 다시 그런 카페를  찾아볼 생각이다카페에서 중요한 것은 공간이다결국 커피를 마시러 가는  아닌  같다그냥 카페에 가는  행위 자체카페까지 걸어가고 혹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그렇게 가는  자체가 이미 시작인  같다무엇의 시작그건  모르겠다어떤 생각을 새롭게   있을지도 모르고어떤 일기를   있을지도 모르고카페에 그냥 앉아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오늘도 카페에 가려고 나오면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나도 모르게 챙겼다하지만 노트북이나  크다고 생각되는 것은 챙기지 않았는데거창하게 무언가를 하러 가겠다는 마음보다는 그냥 한 카페에 가고 싶고괜찮으면 거기 앉아서 홍차 같은   마시고 싶고 분위기가 괜찮다면 이렇게 일기를 쓰게  수도 있으니홍차에 설탕이라고 생각했지만 소금인  같은  가루를 넣었다홍차가 짜다그래도 맛있다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하루인데올해 들어 가장 햇빛다운 햇빛이 있는 날이기도 하다그래서 그냥 걷고 싶었고  햇빛을  쐬고 싶었지만 건물들에 가려져 거의 그림자만 지나서 왔다여기 있으니 편안하다아니다사실 불편하다하지만  불편함은 내가 좋아하는 불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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