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30일 금요일

양말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놓았다. 뒤집힌 오망성이 힘을 갖고 있는 것처럼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둔 존재는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약속이 있다. 부모님은 그런 약속이 나에게 알려지는 것을 꺼리는 듯했지만(그건 부모님의 돈이기에) 나는 TV를 봄으로써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면 하루 종일 TV를 보면서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누워 있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수건을 걸어 둔 선반에 백조의 무늬가 양각되어 있는 기념주화가 있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나는 그것이 나를 위해 준비된 선물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선반 위에 놓인 그것을 집어 들고 당장 문방구로 갔다. 그리고 문방구 문 옆에 있는, 동전을 끼우고 돌려서 뽑기를 할 수 있는 기계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백조 주화를 넣고 돌렸다. 그 기계의 안에서 뭐랄까 금속성의 딸깍거리는 음이 났는데, 나는 그것이 왠지 ‘영차’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기계의 밑부분에 반출된 플라스틱 알을 들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돌아오니 언니가 떡볶이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언니 뒤에 서서 만들어지고 있는 떡볶이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언니, 이거 맛있겠다.” “응, 그래.” “나 이거 많이 줄 거야?” “응. 많이 줄게.”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가 플라스틱 알을 먼저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의자 위에 앉아 그것을 두 손으로 쥐고 딸깍, 하고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백조 모형이 들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백조 무늬가 양각된 기념주화를 기계에 넣고 돌렸더니 다시 백조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직 난 문학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건 왠지 문학적인 종류의 사건 같았다. 그래서 난 헤벌레, 하고 웃음을 지었다. “왜 혼자서 웃고 있니?” 언니가 내 방으로 들어와 떡볶이가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나는 백조를 쥔 내 손을 황급히 뒤로 숨겼다. “뭘 숨기니?” “으응,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그 사건을 내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언니에게도 말하는 것을 삼갔다. 하지만 난 궁금한 것이 생겨서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양말을 뒤집어서 걸어 놓는 건 무슨 뜻이야?” “그건 네가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는 거야. 같은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 사실을 알 수 있지. 내가 떡볶이를 오늘 만든 건 그 때문일지도 몰라. 그리고 네게 줄 것이 있어.” 언니는 그렇게 말하곤 자기 방 안에 가서 어떤 물건을 가져왔다. “자, 열어보렴.” 그 안에는 양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도 왠지 문학적인 사건처럼 느껴져 눈물이 찔끔, 났다. 그리고 나는 왠지 시무룩해져 버렸다. 왜냐하면 그릇에 담긴 떡볶이가 너무 많아서 다 못 먹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고마워. 떡볶이를 이렇게 많이 줘서. 그리고 양말도 줘서 고마워. 그런데 떡볶이가 너무 많아. 그러니까 이거 같이 먹어줄 수 있어?” “그럼.” 언니는 그렇게 말하곤 포크를 두 개 가져왔다. 그날 밤 나는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 어떤 아파트의 주방 같은 곳이었는데, 큰 백조가 주방 위에 앉아 있었다. 나는 말했다. “안녕, 백조야. 다시 양말을 뒤집어 놓지 않을게.”

관광지

이것은 누군가가 어떤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하에다가 큰 돌 무리들을 뚫어 놓은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외국인들, 관광객들이 많았다. 나는 그중에 한 사람을 붙잡고 영어로 말했다. “우리들의 사진을 찍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뭔가 웃긴 요소가 있었던 듯 그 사람이 잠깐 웃곤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석굴 앞에 나란히 서서 그 사람이 사진 찍는 것을 기다렸다. 우리는 총 네 명의 일행이었다. 우리는 개연성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누구도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았다. 우리는 석굴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나는 우리 중의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공부를 한다더니, 그것은 잘 되었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다한 것 같아.” “그러면 우리들한테 이 석굴에 대해서 알려줄 수도 있겠구나. 이 석굴은 뭐지?” “이것은 일종의 기념비... 누군가가 어떤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하에다가 만든 거야.” “그렇군.”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큰 불상이 음각으로 거대한 벽에 새겨지고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거대한 유리 벽이 세워져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 유리 벽에 대해 아는 사람?” 한 명이 대답했다. “이 유리 벽은 사진 찍을 때의 플래시, 강렬한 빛이 저 안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그리고 섣불리 관광객들의 손이 닿지 않도록 만들어 둔 거야.” “그렇구나. 그건 보통 미술관에 있는 유리 벽과 비슷한 것 같아.” 내가 이어서 말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절이 있었대. 지상에 있는 것이 아닌, 지하에 있는 절. 절은 보통 지상에 짓지 지하에는 안 짓는 것 같은데 왜 지하에다 지었을까?”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아마도 지상에도 절이 있었겠지. 그리고 그것은 지하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을 거야.” “너희들은 똑똑한 것 같군. 이제 점심을 먹으러 가자. 이 중에서 배가 고픈 사람?” “나요, 나!” 그들은 갑자기 어린애가 된 것처럼 나에게로 엉겨 붙어 왔다. 내 양쪽 팔에 매달리는 그들을 떼어내며 나는 간신히 비빔밥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우리 중에서 키가 170을 넘는 사람이 둘 있었고, 그 이하인 사람이 둘 있었다. 우리는 키 순서대로 일렬로 서서 비빔밥 집에 들어갔다. 비빔밥 집의 현관은 일본의 가정 식당처럼 어떤 것을 수놓은 천을 위로 들고 입장해야 하는 형태였다. “방금 전 수놓은 것이 뭐였죠? 질문해도 대답할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관광지 근처의, 그리고 국내 색을 갖고 있는 음식점이었기에 음식값이 꽤 비쌌다. 음식이 다 나오자 우리는 먹기 전 기도를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어떤 종류의 개연성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수거해 둔 휴대폰은 지금 나눠주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한 뒤 투명 비닐에 담아 둔 세 개의 휴대폰을 그들에게 나눠주었다. 나는 나눠줄 때마다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고맙습니다.” “잘 쓰십시오.” “무탈하셨습니까.” 이 인사는 의례적인 것이었다. 휴대폰을 받아들자마자 그들은 침식을 잊고, 그러니까 눈앞의 비빔밥을 먹는 것도 그만두고, 반쯤 모로 누워서 화면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터치했다. 나는 말했다. “이제 저 석굴로 다시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LILY CALLS LILY ― Communist Daughter (Neutral Milk Hotel cover)

2021년 4월 28일 수요일

콜호스프레스

... 소위 순문학이란 것은, 어쩌다 보니 일부의 노동자들이 좀 지나친 열심 부업으로 생산하게 된 어떤 텍스트들을 박박 그러모아서, 또 다른 노동자들(예를 들면 문학편집자)이 어떻게든 굴리고 있는, 인쇄 산업 분야의 쬐그마한 게토라고 보는 것이 그 현상황에 가장 가깝다.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떤가 하면, 어떤 문학만으로 어떤 사람(작자건 편집자건)이 먹고 살 수 있게 되는 상황이, 참으로 극소수에게는 되고 있기야 하지만, 만약 그 구성원 중 누군가가, 그 분야의 모두가 그처럼 되길 바란다고 말하면, 그것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설령 당장 그 일이 이뤄진다 해도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듯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로, 연이어, 내 생각은 이렇다: 우리가 진정으로, 박물관에조차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일들로 최대화된 이利를 취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감각이다. 언뜻 열등감을 버리자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반대다. 그 누군가는 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있으며 어떻게 해야 그 감각을 버릴 수 있는가? 그것은 쓰는 일의 내용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문학 인간들의 얼굴들을 바꾸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문학만의 일로 가능한 일도 아니다. ...

그 일은 출간 계약으로 어느 정도 가능할지 모른다. ‘콜호스프레스’의 시각으로는 그렇다. 콜호스프레스와 계약하는 저자는 특별한 인세 관련 조항을 고지받는다. 인세가 특정 액수 제한선을 넘어서면 저자에게 가는 대신 기금에 보태진다는 데에 저자는 동의한다. 아니 이건 무슨 소립니까? 무슨 기금이요? 모두를 위한 기금이죠. 무슨 모두요? 이런저런... 출판... 노동... 좋은 일들... 콜호스프레스의 대표는 말을 흐리고 있다. 자신도 두 달 전에 제비뽑기로 대표에 뽑혔으며, 그 조항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나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제한선은 생활임금에 기반한 계산식으로 구한다. 작가의 초과 수익만 기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출판사 쪽의 수익, 정확히 말해 대표를 포함한 모든 출판사 구성원들의 수익도 마찬가지다. 기금이 어디에 쓰일지에 대해서는 자료가 있으니 보여주겠다. 몇 퍼센트로는 다른 책을 만들고... 몇 퍼센트는 임금과 고료로 배분하고... 몇 퍼센트는 출판노조에, 또 몇 퍼센트는 좋은 데에 후원하고... 좋은 데가 많다. 현재 기금은 없다. 인세나 출판사의 수익이나 제한선을 넘은 적이 아직 없으므로. 도대체 누가 이런 계약을 맺겠느냐 묻자 대표는 다른 조항도 알려준다. 계약자는 콜호스프레스 대표 추첨에 응모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대표 임기는 길지도 짧지도 않다, 대표는 임기 도중 탄핵될 수 있으며... 자신이 몇 대째 대표인지 모르고 그게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라 덧붙인 대표는, 이 계약서를 업계의 표준계약서로 만드는 것이 콜호스프레스의 진정한 목표이며 당신의 책 또한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홀린 듯 도장을 찍는다.

2021년 4월 22일 목요일

건축

병원을 짓다가 그만두었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처음부터 고려해야 됐을 텐데. 이젠 짓다가 만 건물의 철제 골조가 주위의 주택가 옆에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되었다. 주택가들 사이로 들어가 보면 좁은 골목이 있다. 거기엔 가끔 날벌레들, 눈에 잘 안 보이고 가까이 다가오면 그때서야 다가왔음을 알 수 있는, 날벌레들이 있다. 그리고 가끔은 집 옆에 쓰레기들이 나와 있다. 그 쓰레기들은 봉투에 담겨 있으며 그 봉투들 주위로 가끔 새들이 앉아서 쪼기도 한다. 그러면 운이 좋을 때에는 봉투의 약한 부분이 터지고, 음식물이 튀어나온다. 새들은 버려진 음식이더라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가? 마치 고양이들처럼. 도시에 사는 고양이들은 무엇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가? 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병원 대신 롤러스케이트장을 짓기로 했다. 롤러스케이트장 주위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내 몸의 반만 한 곰 인형을 안고 책상 앞에 앉아서 마우스를 딸깍거렸다. 주위에 무엇이 필요한지, 지을지를 고민하지 않고 그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정한 다음에 그것들이 이미 존재하는 곳에 롤러스케이트장을 짓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만약 그 자리에 건물이 이미 존재한다면 그것을 허물거나 아니면 리모델링하고. 나는 건축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건축업자인 친구를 하나 불러 집으로 초대했다. “안녕.” 그가 말했다. “안녕. 그런데 이게 내가 필요한 일이라고? 이건 그냥... 컴퓨터 게임이잖아.” “나는 그래도 네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나는 게임을 잘 못하거든.” “그래. 먼저 뭘 할 건데?” “롤러스케이트장을 지을 거야. 어디에 지으면 좋을까?” 그 친구는 한참을 마우스로 딸깍거리더니 이곳이 괜찮겠다며 장소를 추천해주었다. “이것은 사실 게임이 아냐.” “뭐?” 그 친구가 물어보았다. “그럼 뭔데?” 나는 대답했다. “나도 잘 몰라. 게임일 수도 있겠지.” “그렇군.” 나는 그 친구가 정해준 장소에 마우스를 올리고 철거 버튼을 클릭했다. “이것은 보여주기 위한 게임이야. 이런 게임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어.” 나는 약국과 PC방, 그리고 김밥집들이 포함된 한 빌딩의 2층을 모두 철거하고 거기에다가 롤러스케이트장의 건설 버튼을 눌렀다. “이곳에 있는 골목에 가본 적이 있어. 그 골목들을 끝까지 돌고 돌다 보면 가끔은 우연히 어딘가에 도착해. 그곳은 야시장이야. 나는 그 야시장에 몇 번 정도 도착한 적이 있어. 나중에는 그곳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어떤 골목들을 돌고 돌아야 도착하게 되는지 조금 알게 되어버리고 말았지.” 그 친구가 말했다. “그곳은 어땠는데?” “들어가 보면 천장이 낮은 집들밖에 없어. 그리고 그중에서도 천장이 더 낮아 보이는 국수집이 하나 있었지. 그곳에 실제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어. 꼭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소인국에 온 것 같았어. 소인들은 실제로는 문구점에서 파는 도시 모형 세트에 알맞은 몸 크기를 지니고 있겠지. 아니면 인형의 집이나. 그런데 내 몸 크기의 절반 정도 되어 보이고 그렇게 실제로 존재하는 야시장이 더욱.” “소인들의 나라 같았어?” “아니,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 내가 실제로 몸을 굽히고 들어갈 수 없어 보였거든. 이 게임은 그걸 아는 사람이 만든 거야.” “뭐라고?” 나는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내가 만들다 만 병원의 철제 골조들을 확대하여 바라보았다. 그리고 롤러스케이트장의 바닥 자재로 쓸 건축 자재들을 구입하며 그 도중에 그 친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도서출판 잿더미

그런 시가 있다. 꽃이다 피다 피다 꽃이다... 그러나 이 잿더미는 아래의 잿더미에 더 가깝다.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삼일길이라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를 입은지라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으니라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떼나 양떼나 아무 것도 입에 대지 말찌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 3:1-10

이스라엘의 예언자 요나가 야훼의 음성을 듣고 좌충우돌 끝에 적국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가서 40일 후 너희가 멸망하리라 예언한다. 이를 들은 니네베 사람들이 선뜻 통렬히 회개하고, 그 모습에 야훼가 뜻을 돌이켜 예언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내용. 개인적으로 종교 영역에 대해 각별한 흥미는 없다. 그저 친한 친구가 좋아하는 이야기라며 잊을 만하면 언급하는 통에 덩달아 알고 있는 것이다. 재밌는 이야기이긴 하다. 당대에 재를 뒤집어쓰거나 재 위에 앉거나 눕는 등의 행동은 ‘나는 한낱 재와 같은 사람입니다’라는 뜻으로, 신에 대한 경외와 반성의 의식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 부분이 특히 맘에 든다. 좋지 않나? 한낱 재와 같은 것들. ‘도서출판 잿더미’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다.

2021년 4월 20일 화요일

델리뮤

가구 거리에서 나는 별사탕을 들고 있었다. 이곳은 가구를 파는 가게이군. 그리고 저곳도 가구를 파는 가게이고. 가구 거리에는 가구를 파는 가게들이 천지였다.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당도한 곳에서는 모두 가구를 팔았다. 나는 가구를 살 돈이 없었지만(필요하지도 않았다) 가구를 사는 것처럼 가게 안을 구경하기도 했다. 어떤 가게에서는 흰색 가구들을 주로 파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검은색 가구들을 주로 파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색깔별로 가구들을 놓아둔 것 같았다. 그리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사이즈별로, 그리고 브랜드별로 가구들을 놓아두는 것 같았다. 어떤 브랜드의 가구들은 내가 가는 곳마다 진열되어 있기도 했고, 어떤 브랜드의 가구들은 딱 한 군데에만 진열되어 있기도 했다. 그 브랜드의 이름은 델리뮤였다. 나는 이 이름이 인상에 남았다. 이 브랜드의 가구들은 흰색과 갈색이 조합된 색깔의 가구들이 많았다. 생긴 것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살 돈도 없고, 집에 필요하지도 않아서 무리였다. 하지만 나중에 돈이 생기고 가구가 필요한 날이 온다면 꼭 한번 다시 구경해 봐야지. 그때에도 난 손에 별사탕을 들고 있을 테고... 집에 오는 길에는 노점상에 들러 닭꼬치를 하나 사 먹었다. 왼손에는 별사탕, 오른손에는 닭꼬치... 나는 닭꼬치를 먼저 먹었다. 별사탕은 입에 넣고 우물거려도 빨리 없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 손에 들고 다니면 재미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손에 그것을 들고 다닌 채로 이 가구 거리에 입장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난 델리뮤라는 이름을 만나 보았고 여러 가지 가구들을 구경하며 이곳저곳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집에 와서 안락 의자에 누워 생각해 보았다. 오늘 하루가 어떠했는지를. 나는 한 손에 별사탕을 들고 여러 가구들을 만나 보았다. 내가 만났다는 말을 좋아하는 것은 그 말의 어감을 내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만났다... 라고 말하면 실제로 누굴 만난 것 같다. 그 누군가는 어두운 그림자에 덮여 있고... 한 손에는 나처럼 별사탕을 들고 있다. 그 누군가는 햇볕이 가장 따가워지는 시간에 어떤 집 앞의 차양 아래에서 그늘을 만들고 있다. 나는 만났다, 라고 하면서 지금 그를 만나고 온 참이다. 그는 사실 나다.

2021년 4월 12일 월요일

모자

나는 무엇인가를 말한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자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그 사람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목소리는 작아서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모자가 마음에 든다고, 쪽지에 적어서 건네주었다. 그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그런 말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 모자가 잘 어울려 보였다. 그 사람도 장난스럽게 쪽지에 뭘 적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모자가 잘 어울려 보인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웃는 표정으로 그 사람 쪽을 쳐다보며 목 인사를 했다. 이러한 제스처는 목소리가 작은 나에게 꽤 어울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그 모자를 누군가에게 파는 건 어떨까요.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당신이 그 모자의 모델이 되는 거예요. 나는 쪽지에 이렇게 적어서 보여주었다. 그 사람은 잠시 고개를 갸웃, 하더니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왜요?’ 그건 자기의 마음에도 이 모자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같이 내 모자를 사러 나가지 않으실래요? 나는 그 사람에게 쪽지를 적어서 건넸다. 그 사람이 흔쾌히 그러자고 한 후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저 사람처럼 어울리는 모자를 하나 갖고 싶었다. 중절모, 베레모, 차양 모자 등... 나는 여러 종류의 모자들을 떠올렸다. 나는 차양 모자를 하나 골랐다. 그 사람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스였다. 그 사람은 내게 그 모자가 잘 어울려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는 둘 다 잘 어울리는 모자를 갖게 된 셈이로군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되물었다. 예? 나는 윌리엄스에게 대답하지 않고 쪽지에 내용을 적어서 건넸다. 같이 공원에 가지 않으실래요? 마침 태양빛이 내려오고 있어요. 모자를 시험하기에 좋겠군요. ‘네? 모자를 시험한다고요?’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이 좀 어색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같이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 벤치에 앉았다. 그늘에 있는 벤치에 앉으니 꽤 시원했다. 그가 쓴 것은 베레모였다. 나는 차양 모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모자가 마음에 들어. 윌리엄스는 이번에는 내 말을 되묻지 않았다. 그는 간간이 휴대폰을 들어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 좀. 업무상으로 일이 있어서. ‘그럼 가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한 시간 동안 우리는 벤치에서 공원 구경을 하거나 쪽지 대화를 했다. 이 사람 앞에서 내 작은 목소리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기뻤다. 난 사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단지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잘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작게 내는 것뿐이었다. 언젠가 윌리엄스 같은 이해자를 만나게 될 것 같았고, 지금 이 시간이 즐거웠다. 한 시간이 다 지나고 난 후 우리는 헤어졌다.

2021년 4월 9일 금요일

결정자

“결정 사무소입니다. 무엇을 결정해 드릴까요?”

“제가 지금 중국집인데요, 짜장면을 먹어야 할지 짬뽕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 먹는 게 좋을까요?”

“평소 매운 걸 잘 드시는 편인가요?”

“아뇨.”

“방문하신 곳이 어딘가요?”

“돼지반점이요.”

“돼지반점은 짬뽕이 맵기로 유명합니다.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이 먹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이니 평일 점심 식사로는 적당하지 않겠네요. 짜장면을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런 자질구레한 콜을 100통가량 받았다. 나는 결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결정자라 부른다. 그 말 그대로 나는 수많은 것을 결정한다.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진 시대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정 장애’라 불리는 현상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살아간다. 결정 장애가 일어나는 까닭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을 때, 우리의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과부하를 덜어주기 위해 이 사무소를 차렸다.

사람들은 나에게 결정이 필요한 온갖 것을 다 물어본다. 내일 옷 뭐 입을까요? 집을 사야 할까요? 어느 대학을 가야 할까요? 내일 출근하기 싫은데 어떡할까요? 책 표지를 뭘로 해야 할까요? 유튜브 채널을 새로 파야 할까요? 꼭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 할까요? 퇴직해도 될까요? 이런 식으로 프로그래밍해도 될까요? 어떡하면 학원에 빠질 수 있을까요? 살 뺄까요? 지금 이 주식 사도 될까요? 친구랑 절교해야 할까요?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요? 대선에 출마할까요? 찍을 사람 없는데 누구를 찍어야 할까요? 자살할까요? 제가 이제서야 신을 믿어도 되나요? 지금 쓰고 있는 원고가 개떡 같은데 버릴까요?

방금 점쟁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 때문에 손님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폐업할까요 말까요?” “폐업하세요.” 나는 결정해주었다.


그들이 내 결정에 따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객관성이 그들의 결정에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뭘 먹지.


2021년 4월 8일 목요일

동전 수집

나는 거리를 걷고 있다. 발 딛는 곳마다 버려진 동전들이 있는지 가까이 들여다보고 있다. 골목길로 들어간다. 거리의 주택들이 보인다. 나는 여기서 동전 수집을 하고 있다. 종일 걸어 운 좋으면 7개 정도를 모을 수 있다. 동전 수집 말고도, 길거리나 집들 구경을 한다. 그러면 재미있다. 여기는 쓰레기가 많은 곳이군. 나는 왼쪽으로 돌아 들어간다. 사실, 동전 수집을 하려면 그네가 있는 놀이터나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를 돌아다니는 편이 낫다. 그런데 이 말이 무색하게도, 저 앞에 500원짜리 하나가 눈에 보인다. 버려져 있는 동전. 누가 버린 것일까. 아니면 주머니에서 흘러나온 것일까. 나는 그리로 다가가 그것을 줍는다. 오늘은 오전부터 쭉 걸어다녀서 총 세 개를 주웠다. 이제 남은 시간 동안 다섯 개 이상을 모은다면 기록 달성이다. 나는 동전을 줍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 살고 있는 듯한 주택에서 인기척이 났다. 한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와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 나는 슬금슬금 다른 쪽으로 걸어가려다가, 무언가 생각난 게 있다는 듯 잠시 그 사람 쪽을 보았다. 그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와 말했다. “혹시 라이터 있습니까?” “네.” 하고 말하며 나는 라이터를 건넸다. “못 보던 학생인데.” “네, 잠시 일이 있어서요.” 그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 중간에 가만히 있다가 나는 그 사람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나섰다. 아까 전과 같이 골목이 있으면 그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나는 동전을 주우러 다녔다. 500원짜리보다는 100원짜리가 떨어져 있을 때가 많고, 지폐는 거의 떨어져 있지 않다. 나는 잠시 배가 고파서 가만히 서 있었다. 아침부터 무얼 먹지 않아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나는 이 골목들에서 나가는 경로를 떠올렸다. 이 골목들을 나가야 상가가 보이고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나는 이 골목들을 나가서 돈까스 가게에 갔다. 그리고 치즈 돈까스를 하나 주문했다. 아침부터 모았던 세 개의 동전들은 내 주머니에 깊숙이 있는 동전 지갑 안에 넣어두었다. 나는 물건을 살 때나 돈을 쓸 때 내가 모은 동전들을 내밀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러면 너무 빨리 없어지기 때문이다. 동전 지갑도 7천 원짜리였다. 내가 지금까지 모은 동전들을 다 합한다면 약 2만 원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러면 동전 지갑도 세 개 살 수 있고, 돈까스도 세 번 먹을 수 있고... 역시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는군. 내가 이런 일을 꽤 오랫동안 한 이유는 거리 구경이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거리 구경을 하면서, 괜히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으니까... 할 일을 만든 것이 바로 이런 일이었다. 나는 아까 담배를 피우던 그 사람을 생각했다. 가끔씩 있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하고 다니면 내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

2021년 4월 6일 화요일

캐치북

처음 캐치볼을 해본 것이 대학 때였다. 보통 ‘꽈실’이라 줄여 불렀던 학생회실 구석 바구니에는 반으로 접힌 글러브들이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를 때부터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유경험자의 인솔을 따라, 다음에는 알아서들, 공강 때에, 아니면 강의를 듣다 쉬는 시간에라도, 우리는 꽈실 창문을 타고 넘어 잔디밭에 나가 공을 주고받았다. 그대로 강의를 제끼기도 하면서, 우리는 몇 개의 평행선으로 섰다. 가끔 삼각형이나 사각형으로도 섰다. 동인 모임에 캐치볼에 대한 시를 써서 가져오는 것은 한 번쯤 거쳐야 할 관문이었고, 서로에게 야유에 가까운 평을 해주는 것이 또한 의례였다. 처음부터 웬만큼 던지던 이들을 빼면 대부분은 졸업할 때까지 멋지게 던지지 못했다. 가끔 공으로 서로를 맞혔다. 맞혔다기보다 멋지게 받지 못했던 것이다. 여기저기 공을 주우러 뛰어다녔던 일까지가 그때 했던 스포츠의 전부다(산보를 스포츠의 일종으로 볼 수 없다면).

그리고 우리는 다음 사람들을 ‘인솔’해 나간다. 우리는 다음 사람들의 캐치볼을 구경한다. 공을 던지고 받고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기에 좋다. 사진으로 남겨두고도 싶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바쁘다. 그 다음은 모른다. 그러한 지난날에 대해 몇 년간 회고를 거듭한 끝에, 각자의 글러브를 갖고 주말 체육공원에 모여 다시 캐치볼을 하기 시작한 것이 한 해 전부터다. 던지고 받고 뛰어다니다 뭔가 먹고 헤어진다. 지금의 내게도 이게 스포츠의 전부다. 멋지게 던지고 받고 싶고, 멋지게 던지고 받을 이유가 없다. 야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보지 않는다. 몇 개의 공은 잃어버렸다. 근데 그게 다 출판사와는 무슨 상관인가? 아주 깊은 상관이 있다. 심각한 인생, 고통스런 세계, 눈물·회한·불안,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 통한의, 부주의, 다툼과 피로, 피곤... 지겨움... 두려움... 억울함, 허무함과 탈력감, 망실·실망, 무희망·무전망, 시기 질시 아집... 잊어버리고 잊히지 않고...

2021년 4월 2일 금요일

21년 3월의 모금통

이달의 격려 수 (누계)

모든 격려: 2 (44)
―――
곡물창고: +1 (16)
빙터: +1 (1)


이달의 총격려금

53,000원


상세:
일자 / 들어온 격려금 ― 입금자명

3일 / 5,0000원 ― 공용
23일 / 3,000원 ― 빙터 완결성공 기원


전달:
격려된 태그 [입하여부] ☞ 전달된 격려금

빙터 [入] ☞ 3,000원


총기금 (당월 기금 + 이월 기금 + 예금이자)

194,573원 (50,000원 + 144,515원 + 58원)

2021년 4월 1일 목요일

하늘 정원

이 정원은 하늘에 있다. 그래서 하늘 정원이라고 부른다. 이 정원은 높은 곳(약 5천 미터)에 있어서 지상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하지 않는다. 이 정원에 상주하며 근무하는 정원사가 둘 있고 정원의 중앙엔 저택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넷 정도이다. 그러나 하늘 정원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많아서 저택에 사는 멤버는 자주 바뀐다. 하늘 정원은 가끔씩 지상으로 내려오는데, 시간으로 따지면 약 2400시간마다 한 번씩 내려온다. 인적이 없는 대륙의 사막이나, 우거진 수풀이 없는 밀림, 그리고 모래로 만든 섬의 공터 등에 내려온다. 그때 이 하늘 정원은 내려오면서 지상에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하늘 정원이 지상에 내려오면,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이 정원의 중앙에 있는 저택에 들어간다. 그때 멤버들은 몇 개월 동안 먹을 물과 식량을 거대한 미끄러지는 손수레에 싣고 들어간다. 이것은 ‘회’라는 곳에서 준비한 상비 도구이다. ‘회’란 이 하늘 정원의 회를 가리키는데, 공중에서 몇 달간 체류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단체이다. 이들 중 일부는 하늘 정원이 왜 공중으로 떠오르게 되었는지, 왜 정기적으로 지상에 내려오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그래서 하늘 정원이 내려올 때마다 흙을 퍼서 성분 조사를 한다든지 하는 경우가 있다. ‘회’는 이들을 가로막지 않는다. 하늘 정원의 발단은 지상에 있었던 몇백 제곱미터의 영역이 갑자기 공중으로 떠올라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다. 나도 이 설에 동의하는 쪽이다. 왜냐하면 하늘 정원에서 근무하는 정원사들의 입에서 직접 나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여느 때와 같이 지상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지상의 이 영역이 공중으로 떠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상에서 하던 근무가 공중에서 하는 근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혹자는 하늘 정원의 신비로운 느낌을 의식해 여러 가지 전설적이고 민담적인 기원론을 들고 오기도 하지만, 진실은 단순한 것 같다. 그게 내가 하늘 정원의 오르고 내림을 여러 해 동안 보면서 한 생각이다. ‘회’의 리더는 처음엔 다른 사람이었다가 이번에는 나로 바뀌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정원사들에게 물어보니, 하늘 정원의 이후로는 봉급이 올라 먹고 살 걱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면서, ‘회’에 대한 고마운 감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번에 하늘 정원의 인원수를 좀 늘려볼까 생각 중이다. 그러면 돈을 더 벌 수 있을 테고. 그러나 전임자가 인원수를 네 명으로 제한해 놓은 것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가령 나도 잘 모르는 어떤 이유가.

헤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