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2일 월요일

모자

나는 무엇인가를 말한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바로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그 모자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그 사람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나에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 목소리는 작아서 그에게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의 모자가 마음에 든다고, 쪽지에 적어서 건네주었다. 그 사람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더니 그런 말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 모자가 잘 어울려 보였다. 그 사람도 장난스럽게 쪽지에 뭘 적어서 나에게 건네주었다. 모자가 잘 어울려 보인다고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웃는 표정으로 그 사람 쪽을 쳐다보며 목 인사를 했다. 이러한 제스처는 목소리가 작은 나에게 꽤 어울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럼 그 모자를 누군가에게 파는 건 어떨까요. TV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당신이 그 모자의 모델이 되는 거예요. 나는 쪽지에 이렇게 적어서 보여주었다. 그 사람은 잠시 고개를 갸웃, 하더니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왜요?’ 그건 자기의 마음에도 이 모자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같이 내 모자를 사러 나가지 않으실래요? 나는 그 사람에게 쪽지를 적어서 건넸다. 그 사람이 흔쾌히 그러자고 한 후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저 사람처럼 어울리는 모자를 하나 갖고 싶었다. 중절모, 베레모, 차양 모자 등... 나는 여러 종류의 모자들을 떠올렸다. 나는 차양 모자를 하나 골랐다. 그 사람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윌리엄스였다. 그 사람은 내게 그 모자가 잘 어울려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 우리는 둘 다 잘 어울리는 모자를 갖게 된 셈이로군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나에게 되물었다. 예? 나는 윌리엄스에게 대답하지 않고 쪽지에 내용을 적어서 건넸다. 같이 공원에 가지 않으실래요? 마침 태양빛이 내려오고 있어요. 모자를 시험하기에 좋겠군요. ‘네? 모자를 시험한다고요?’ 그 사람은 웃으면서 말이 좀 어색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같이 공원으로 갔다. 그리고 벤치에 앉았다. 그늘에 있는 벤치에 앉으니 꽤 시원했다. 그가 쓴 것은 베레모였다. 나는 차양 모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작은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모자가 마음에 들어. 윌리엄스는 이번에는 내 말을 되묻지 않았다. 그는 간간이 휴대폰을 들어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아 좀. 업무상으로 일이 있어서. ‘그럼 가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한 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고 나서 한 시간 동안 우리는 벤치에서 공원 구경을 하거나 쪽지 대화를 했다. 이 사람 앞에서 내 작은 목소리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기뻤다. 난 사실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단지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잘 들리지 않게 목소리를 작게 내는 것뿐이었다. 언젠가 윌리엄스 같은 이해자를 만나게 될 것 같았고, 지금 이 시간이 즐거웠다. 한 시간이 다 지나고 난 후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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