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9일 금요일

결정자

“결정 사무소입니다. 무엇을 결정해 드릴까요?”

“제가 지금 중국집인데요, 짜장면을 먹어야 할지 짬뽕을 먹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뭘 먹는 게 좋을까요?”

“평소 매운 걸 잘 드시는 편인가요?”

“아뇨.”

“방문하신 곳이 어딘가요?”

“돼지반점이요.”

“돼지반점은 짬뽕이 맵기로 유명합니다. 매운 걸 못 먹는 사람이 먹기엔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이니 평일 점심 식사로는 적당하지 않겠네요. 짜장면을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오늘도 이런 자질구레한 콜을 100통가량 받았다. 나는 결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결정자라 부른다. 그 말 그대로 나는 수많은 것을 결정한다.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진 시대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정 장애’라 불리는 현상을 어느 정도 경험하고 살아간다. 결정 장애가 일어나는 까닭은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을 때, 우리의 뇌가 과부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과부하를 덜어주기 위해 이 사무소를 차렸다.

사람들은 나에게 결정이 필요한 온갖 것을 다 물어본다. 내일 옷 뭐 입을까요? 집을 사야 할까요? 어느 대학을 가야 할까요? 내일 출근하기 싫은데 어떡할까요? 책 표지를 뭘로 해야 할까요? 유튜브 채널을 새로 파야 할까요? 꼭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 할까요? 퇴직해도 될까요? 이런 식으로 프로그래밍해도 될까요? 어떡하면 학원에 빠질 수 있을까요? 살 뺄까요? 지금 이 주식 사도 될까요? 친구랑 절교해야 할까요?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요? 대선에 출마할까요? 찍을 사람 없는데 누구를 찍어야 할까요? 자살할까요? 제가 이제서야 신을 믿어도 되나요? 지금 쓰고 있는 원고가 개떡 같은데 버릴까요?

방금 점쟁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당신 때문에 손님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폐업할까요 말까요?” “폐업하세요.” 나는 결정해주었다.


그들이 내 결정에 따랐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나의 객관성이 그들의 결정에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뭘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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